무사는 과거의 뛰어난 인재이자 지도자였다. 갑자기 필요 없어졌다고 추방할 수도 검을 빼앗을 수도 없었다. 그것은 일본이라는 온정 넘치는 사회의 장점일수도 있지만 동시에 귀찮은 점이기도 하다. 온정에서 시작된 일, 타성에서 시작된 일이 결국 사회에 큰 악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일본에서는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 P185
무사는 최상위 계급으로서 존경받으며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인간은 존경받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배출구를 상실한 무사의 과잉 에너지, 폭력성을 발산시키기 위해서 참근교대라는 대규모 행사, 대규모 낭비가 반복되었다. - P186
"죽는 것이라고 보았다"라는 폭력에 대한 미화, 집단주의는 메이지유신에서 무사계급이 부정당한 뒤에도 그대로 살아남았다. 제2차 세계대전 역시 무사도의 하나의 귀결이었다. - P186
미국에서 중후장대산업은 일찌감치 주역의 자리에서 내려와 조연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곳은 과거 시대를 선도한 주역을 언제까지나 대접해주는 미적지근한 곳이었다. 무사를 온존하는 풍토가 그대로 20세기가 되도록 잔존하고 있었다. 일본의 건설산업은 1970년대 이후에도 조연으로 밀려나지 않았다. 경제의 주역이었던 그들은 정치와의 결탁을 통해서 70년대 이후에도 주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사집단의 결속력과 집단주의는 강력한 득표장치로 기능하며 1970년대 이후의 일본정치에서 주역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득표장치가 장기적으로 계속 가능하려면 건축공사를 끊임없이 발주해야만 한다. 이것이 1970년대 이후로 일본 정치의 숨겨진 목표가 되었다. - P189
무사를 확실히 성불시켜서 없애버리지 않으면 일본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다. 무사는 에도시대에도 성불하지 못했고, 실은 메이지시대에도 성불하지 못했다. 성불하지 못한 무사의 폭력성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을 이끌었다. 건설업도 건축설계사도 모두 살아남은 무사다. 한시라도 빨리 성불시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나는 어떤 폭력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 P192
고객(발주자)의 말을 듣는 것도 건설업계에서는 수준 낮은 사람의 행동으로 여겨졌다. 고상한 예술가인 건축설계사는 고객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예술을 추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고객의 말을 듣지 않아 그 건축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왠지 윤리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풍조가 존재했다. - P193
과거의 무사적 건축가는 오로지 건축잡지에 작품이 실리는 것을 목표로 일했다. 다른 사람의 돈을 들여서 그저 사진에 멋지게 찍히는 것이 전부인 건축을 설계했다. 그러나 무사를 버린 건축가는 사진에 어떻게 찍힐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손님이 올지, 어떻게 하면 품을 덜 들이고 개수할 수 있을지를 매일 고민하면서 그것을 디자인에 반영한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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