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복종의 상징으로서 가장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른바 유대인 위원회다. 독일은 암스테르담에서 민스크까지 학살 프로그램을 집행하러 가는 곳마다 자신들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끔찍한 요구를 대신 수행해줄 유대인 위원회의 설립을 명했다. 다윗의 별을 배포한 것도 유대인 위원회이고, 실직자들에게 중노동에 지원하도록 부추긴 것도 유대인 위원회이며, 폴란드에 있는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질 사람들의 목록을 작성한 것도 유대인 위원회였다. 이러한 유대인 위원회에서 일한 사람들은 좋은 의도를 갖고 커뮤니티의 기둥 역할을 하던 교수나 의사, 랍비, 회계사, 변호사와 같은 이들이었다.(중략) 이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행위를 통해 나치 박해의 가혹함을 완화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 줄여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이들 중 일부는 자기 가족을 먼저 지키려는 의도로 그러기도 했다. 그런 의도는 거의다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물론 이들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임무를 떠맡은 셈이다. 조직적인 학살을 멈출 아무런 힘도 없던 이 사람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결국 본인들도 나중에 다 살해되고 만다. - P153

사람들이 폭력적 죽음에서 벗어나도록 명단을 만들던 이가 바인레프 혼자만은 아니었다. 강제이주의 위협은 현지의 온갖 폭력배들에게 좋은 사업 기회가 되었다. 이들은 현금이나 부동산, 보석을받는 대가로 사람들을 네덜란드 밖으로 몰래 빼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 범죄자들은 일단 금전 거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피해자를 나치 경찰에 넘겨서 더 많은 돈을 벌었다. - P160

그가 공포에 질린 사람들 눈앞에 내밀었던 모든 것은 환상이었다. 기차도 존재하지 않았고 탈출도 존재하지 않았다. 바인레프는 1976년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시인했다. "모든 약속은 비눗방울과 다름없었다. 사람들에게 비눗방울을 파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다. 그 시절의 유일한 진실은 독일인이 유대인을 파멸시키려 한다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비눗방울이 터지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리는가였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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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세류 2024-01-01 08: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루피닷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덜란드에서 독일계 유대인들은 비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네덜란드계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온전히 환영받지 못했다. 박해당하고 모욕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해 어쩔 수 없이 독일에서 도망쳐 나왔지만, 독일계 유대인들은 잘난 체한다는 인상을 풍겼다. 이들에게는 뭐든지 독일 것이 더 좋았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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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은 모든 권력을 가진 일본의 강력한 보호 아래, 거창한 직함을 가졌으나 아무런 실권이 없던 중국인들이 다스리던 나라였다. - P59

의화단 운동이 종결된 뒤 숙친왕은 베이징에 근대 경찰 조직을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고 가와시마 나니와에게 부탁했다. 가와시마 나니와가 그런 일에 경험이 있을 리 없었으나 숙친왕은 아마도 새 친구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근대적인 일에 관해서라면 무엇이든 정통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남자가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타락한 중국을 구해야 하고 일본이 그 일을 주도한다. 추악한 백인 세력을 몰아내자. 둘 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며 건배할 수 있었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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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독일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르부프 인구의 약 30퍼센트가 유대인이었다. 그 숫자의 대부분이 그 후 수년에 걸처 학살되었다. 학살은 가장 가까운 강제수용소인 베우제츠나 르부프 바깥에 있는 수용소인 야노프스카에서 이루어졌다. 야노프스카에서는 고문과 집단 총살이 벌어지는 동안 국립 오페라 단원들에게 배경음악 삼아 노래를 시켰고, 다 끝나면 이들도 총살시켜버렸다. - P35

독일 문화에 대한 강한 소속감을 가졌던 이 교양 있고 이상주의적인 유대인들은 교육받지 못하고 가난하고 종교에 얽매이던 유대인들과 비교해서는 물론이고, 우크라이나 농민들과 비교해서도 스스로를 우월한 존재로 생각했다. - P37

1905년, 기독교 신자이자 흔히 ‘근대 중국의 아버지‘로 알려진 쑨원이 도쿄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을 모아 혁명 운동을 조직했다. 쑨원의 ‘중국혁명동맹회‘는 아시아에서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내고 아시아를 아시아인에게 돌려주고자 꿈꾸었던 일본인들의 지원을 받았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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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억압되어 있거나 혹은 진실을 공개적으로 말하기에 너무 위험한 상황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구할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각종 음모론과 상상이 넘쳐난다. 허언증 환자, 신분을 꾸며내는 사람, 가공의 인물이 되어 실제 삶을 살아가는 기회주의자들에게 전쟁은 이상적인 조건을 만들어준다. 전쟁만이 그 유일한 조건인 것은 아니지만. - P10

케르스텐과 가와시마와 바인레프의 대단히 기이한 인생을 보면 수많은 부역자의 이야기에 드러나는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다. 탐욕, 이상주의, 모험의 갈구, 권력에의 목마름, 기회주의. 심지어는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항상 틀린 것은 아니었던 신념까지도. - P17

나는 극심한 사회 정치적 분열의 시대에 이 책을 쓰고 있다. 우리는 개인의 정체성이 점점 더 가변적이고 뒤섞인 형태를 띠는 한편, 집단적인 정체성이 강요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정치적 논의가 있어야 할 자리에 끊임없는 음모론적 상상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서로 다른 장소에 살 뿐 아니라 개념적으로도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산다. - P19

사람들이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내용은 영화나 소설, 만화책이나 컴퓨터 게임 같은 허구에 기반하고 있다. 집단적 기억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형성되기도 하지만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상상에 의존한다. 꾸며낸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볼 가치가 있는 것은 그래서다. 그 이야기들이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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