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에 돈을 들이지 않는 문화는 도쿄전력 뿐만 아니라 일본 전국에 만연해 있었다. 가사이 씨는 말한다.
"애초에 ‘중대 사고 따위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했죠. 먼저 경비 삭감 대상이 되는 것은 안전 대책 비용이었습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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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원전홍보관으로 가면 원전은 안전하다고 배웠다. 반드시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폭발이 잇따랐다. - P79

만일의 경우 선량이 높아지더라도 누군가는 남아서 사고 대응을 해야 한다. 그 누군가가 누구냐는 무거운 질문을 이 원전사고는 우리에게 물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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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열심히 모던을 좇았던 이효석이 근대 조선의 자연미를 발견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 역시 가장 푸른 존재를 라무네라고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였다. ‘순수하다‘,
‘깨끗하다‘는 근대 자연의 아름다움은 문명의 세례를 거친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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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중국음식이나 중국인에게는 왜 이렇게 어둡고 불결한 꼬리표가 붙어 다녔던 것일까? 영세한 자본을 밑천으로 가게 문을 열었으니 실제 호떡집이나 중국음식점이 어둡고 불결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식민지 조선에서 중국음식이나 중국인을 비하하거나 모멸하게 된 것에는 중국을 부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려는 일본의 의도 역시 작용하고 있었다. 중국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일본은 문명, 편리 등으로 상징되는 서양의 근대를 수용하고 뒤쫓으려 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아시아의 일원이라는 자각은 의도적으로 억압되거나 망각되었다. 스스로를 ‘아서구‘, 곧 아시아의 서양이라고 지칭한 것은 일본의 지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다른 아시아 국가를 자신과는 반대편에 부정적 타자로 위치시키려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전까지 세계관의 중심에 위치했던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일로, ‘중화‘, ‘화이‘ 등으로 집약되는 중국 중심의 유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중국을새롭게 인식해야 했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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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센 마쿠와우리는 일본에서 전통 마쿠와우리를 개량해 생산해낸 마쿠와우리였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서민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의 프린스멜론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프린스멜론의 달콤한 맛과 풍부한 과즙에 밀려 정작 긴센 마쿠와우리는 조금씩 사라지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웃픈‘ 얘기가 있다. 일본에서는 멜론이 마쿠와우리를 대신하게 되어 지금은 더 이상 긴센 마쿠와우리를 재배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드물게 예전 마쿠와우리의 맛을 찾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그런 소비자를 위해 거꾸로 한국의 금싸라기 은천참외를 일본에 수입해 판매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과일의 이름이 ‘마쿠와우리‘가 아니라 ‘차메‘, 곧 ‘참외‘라고 한다. 또 참외를 영어사전에서 찾으면 ‘코리안멜론 Korean Melon‘으로 되어 있다. 이 정도면 정말 ‘웃픈‘ 만한 상황일 것이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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