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일본 학자와 변호사는 먼저 ‘무오류 신화‘의 문제점을 든다. 일본 검찰에서는 자신들의 수사가‘완벽하다‘는, 아니 ‘완벽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너무 강하다는것이다. 기소했는데 무죄를 받으면 담당 검사는 인사에서 좌천되고 평생 경력의 오점으로 남는다고 한다. 언제나 완벽한 수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다. 과학수사 기법이 발전하면 새로운 증거가 나올 수도 있다. 따라서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가정하고 제도적으로 보완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권위의 실추, 불명예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 - P23
그러다 보니 일본에서는 ‘억울한 죄‘를 구제하기가 정말 어렵다. 무죄라는 증거가 차고 넘쳐도 수십 년에 걸쳐 호소해야 겨우 재심이 받아들여지거나 그마저도 묵과된다. 일본 사법 역사상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은 사건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그중에는 62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 모두 증거라고는 자백뿐이었던 사건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건을 담당한 경찰과 검찰, 재판관이 사죄한 사례가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 법정에서 가끔 나오는, 판사가 고개 숙여 국가가 지은 잘못에 대해 피해 당사자에게 사과하는 장면을 일본 법정에서는 꿈꿀 수도 없다는 이야기다. - P24
왜 일본 최고재판소는 눈에 띌 만큼 위헌 결정에 소극적일까? 최고재판소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파장이 일 만한 사안에 대해 일부러 판단을 회피하거나 자제해왔다. 최고재판소는 이를 우아하게 국회와 정부의 "재량권을 폭넓게 존중" 해서라고 표현한다. 일부에서는 사법 소극주의의 원인을 사회적 조화를 중시하고 분쟁을 피하는 일본의 문화적 특성에서 찾기도 한다. 최고재판소가 입법부에서 합의된 법률을 사회적 합의‘로 보고, 파기하는 데 부담을 가진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사법부가 행정부 정책에 관한 판단을 회피한다면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것 아닐까? 사법부가 입법 · 행정부를 존중만 한다면, 이는 스스로 사법독립을 부정하는 것이어서 결국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일본 내에서도 "삼권분립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종종 나온다. - P32
불평등조약 개정이 절박했던 메이지 정부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법전 편찬 등 사법 근대화를 서둘렀고, 결국 법의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물론 일본의 다른 분야 근대화도 급하게 추진된 면이 강했지만, 사법 근대화는 정권의 운명이 달려 있는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에 조급함이 훨씬 더했다. 그러다 보니 근대법의 핵심 가치인 인권, 입헌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등에 관해 고민이 거의 없었고, 소홀히 다뤄질 수밖에 없었다. 기존 일본의 봉건적 가치관은 그대로 둔 채 서구의 법체계만 따온 기묘한 모습이 된 것이다. - P36
메이지 법의 기본 개념은 ‘사법 관료=천황의 관료‘였다. 백성 위에 군림하는 ‘천황의 관료‘라는 권위주의가 민주주의 하에서도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윗사람인 법관이 잘 알아서 처리해줄 테니, 백성은 입 다물고 거기에 따르면 된다는 봉건적이고 고압적인 법의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셈이다. - P39
한국과 일본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성평등 지표에서 최하위권이다. 사회적 젠더 감수성은 바닥이다. 어느 나라가 낫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갈 길이 너무 멀다. 그런데도 일본이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미투 운동의 강한 역풍에서 보듯이 그것이 문제임을 자각하는 의식 자체가 희박하다는 점이다. 사회적 공감대가 약하다 보니 다음 단계를 말하기조차 어렵다. - P58
일본 여성들은 개헌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성평등 사회로 바꿔나갈 힘은 부족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녀평등을 규정한 헌법 조항(제14조)은 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남녀평등법은 끝내 제정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패전 후 모든 법적 권리가 ‘내부‘인 일본 여성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미군이라는 ‘외부‘ 로부터 주어진 권리라는 근본적 한계가 작용한 탓일 것이다. - P63
고도성장 시기에는 일본의 사회복지 모델이 큰 무리 없이 작동했다. 낮은 실업률에 종신고용과 연금이 보장됐고, 전업주부인 여성은 육아 등을 담당하면 됐다. 그러나 1990년대 거품이 꺼지고 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 모델은 ‘기능부전機能不全‘에 빠졌다. 기업이 더는 고용을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서구처럼 국가가 나서서 복지를 맡아야 하지만, 재정 능력이 모자라는 국가는 복지의 책임을 가족, 즉 여성에게 계속 떠넘겼다. 문제는 남성의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여성들이 전업주부에만 머무를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여성이 가계를책임지는 저임금 파트타임 노동자이자 가족의 돌봄까지 맡으며 이중 부담을 졌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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