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왜 굳이 ‘괴롭힘‘이라는 표현을 쓸까? 재미 삼아 붙이는 표현이지만, 전문가들은 일본이 ‘사회 동조 압력‘, 즉 자신의 의견과 태도에 동조하도록 타인에게 가하는 심리적 압력이 강한 사회, 또는 그런 사회라고 믿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자신이 다수가 아니라 소수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이다. - P76

서울대학교 박훈 교수도 일본은 겉으로는 개인주의적 사회로 보이지만, 결코 아니라고 단언한다. 개인주의의 핵심은 사회 비판과 저항의 용인인데, 일본은 이를 수용하는 문화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본 사회가 허용하는 것은 집단의 안정을 위협하지 않는 ‘개인의 일탈 뿐이라고 꼬집는다. 개인은 파편처럼 흩어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를 일종의 ‘고립 허용주의‘라고 부른다. - P82

‘고립‘과 ‘무관심‘이란 키워드로 접근하면 일본식 개인주의의 독특함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프라이버시 존중은 서구의 그것과 좀 다르다. 특유의 ‘민폐‘, 일본어로 메이와쿠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나도 민폐를 끼치지 않을 테니 너도 그래라."라는 식이다. 간섭은 사양, 일본어로 ‘엔료‘한다는 것이다. 독립보다는 고립의 색깔이 짙다. 잘 뭉치지만 개인은 단절되어 묘한 느낌이다. - P82

"기부는 국가의 몫"이라는 일본의 뿌리 깊은 사고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사회의 취약계층을 돕는 것은 공적 서비스로, 행정 역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 상부상조라면 모를까, 사회단체를 통한 기부에 동의하고 선뜻 기부하는 데 저항감을 느끼는 일본인이 많다. 여기에 "가난은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조自助 노력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다. 국가나 사회가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응석을 받아주는 것이다."라는 이른바 ‘자기책임론‘도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한다. - P90

냉소의 배경으로 1960년대 전공투(公共圖, 전학공투회의)와 일본 적군파(赤軍派)로 상징되는 과격 투쟁에 대한 부정적 기억을 드는 사람이 많다. 극단을 달리는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행태에 시민들이 큰 충격을 받고 외면해버렸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일본 근현대사에서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성공한 적이 없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일본에서는 줄곧 ‘위로부터의 개혁‘의 연속이었지, 우리의 4·19혁명이나 6월 민주항쟁처럼 미완이라도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처절한 좌절의 기억밖에 없다. ‘승리의 기억‘은 저항의 역사에서 큰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일본 시민들은 일종의 ‘학습된 무기력감‘에 빠진 것일까. - P105

한국과 일본은 갈등 해결 방식에도 차이점을 드러낸다. 이누미야 요시유키 교수는 《주연들의 나라 한국 조연들의 나라 일본》에서 한국인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진취적이지만, 갈등이 밖으로 드러나 조정과 타협이 어려운 갈등 ‘외재화外在化‘ 사회가 되기 쉽다고 진단한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과잉과 분열로 치달아 사회 전체적으로 피로감이 쌓이곤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일본은 갈등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억제에 치중해 안으로 굶기 쉬운 갈등 ‘내재화內在化‘ 사회로 흐른다고 말한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다 보니 언젠가 모순이 폭발한다고 지적한다. - P109

이런 처리 방법은 일본인의 독특한 합리화로 나타났다. "육군을 중심으로 한 일부 범죄적 군벌이 전쟁 책임을 져야 하고, 일왕도 국민도 진실을 알지 못한 채 군벌에게 속은 희생자" 라는 역사관의 성립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군부를 ‘꼬리 자르기‘ 한 셈이었다. 그들의 편리한 역사관은 전시 중의 궁핍하고 통제된 국민 생활이나 군인의 횡포에 대한 생생한 기억에 뿌리를 둔 만큼, 아주 강한 심적 근거와 공감대가 있었다. 이는 대부분 일본인이 자신과 군부를 분리함으로써 스스로 합리화하는 방어기제로 작동했다. "나도 피해자" 라는 역사관의 확산은 자신들이 가해자이며 침략전쟁을 일으켰고 주변국에 큰 고통을 줬다는 인식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종의 집단마취였다. - P124

나는 일본에 머무는 동안 일본 ‘종전 기념일‘에 아시아 주변 피해국의 고통을 진지하게 조명하는 기획을 그다지 보지 못했다. ‘피해자 일본‘의 아픔을 되씹는 프로그램만 넘쳐났다. ‘가해자 일본‘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피해자 의식은 짙어지고 있고 갈수록 더 심해질 것 같다. 젊은 세대는 이미 ‘사죄 피로감‘에 가득 차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 정부의 태도다. 시종일관 인권이 아니라, 정치 · 외교적 관점에서 과거사 문제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죄와 보상의 길은 너무 멀고, 쉽게 열리지 않을 듯하다. - P1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