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원죄‘......
마음이 복잡해진다.


일본의 원죄는 스스로를 아시아에서 분리시키려고 했다는 데 있다.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죄이지만 그 여파는 끔찍했다. - P584

그 결과로 자리 잡은 현상 중 하나는 일본인 거의 모두가 일본을 아시아와 별개의 나라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아시아라고 말하면 그것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를 뜻한다. 서양에서 온 사람들은 일본의 지인이 자기는 아시아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놀라곤 한다. 리버럴하고 상식적인 일본인들조차 서양인이 일본을 중국이나 한국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라도 하면 일본이 그 나라들과 얼마나 다른지 즉각 지적하려 든다. 그러나 일본의 미래를 생각하면 일본이 다시 아시아의 일원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을 것이다. 경제 협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 협력은 이미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보다는 일본과 그 운명이 아시아 지역의 운명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 P585

일본의 과거에 대한 답은 일본인들 스스로가 구해야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일본이, 일본의 독립성을 파괴하며 해외에서 일본이라는 단어를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광기의 대명사로 만든 사람들의 손에 장악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말이다. 아베가 하는 것처럼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진실을 순수하고 고결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로 묻어 버리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일본이 비슷한 일을 다시 벌일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 P586

인간이기에 지지를 수 있는 실수와 죄악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마주하지 못하는 애국심, 진짜 세상의 논쟁으로부터 온실 속의 꽃처럼 보호되어야만 하는 애국심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아이들 사이에서만 통할 애국심이다. 아베와 시모무라 같은 이들은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을 어린아이처럼 여기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하는 일을 보면 어린아이와 같은 국민의 나라를 다스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정치체제로는 앞으로 일본에 닥칠 최대의 도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반일 감정을 국가적 구호로 채택한 채 빠르게 부상하는 호전적인 초강대국 중국이라는 도전 말이다. 중국 또한 고분고분하고 단합된 자국민을 배양하려는 뚜렷한 목적을 위해 국가적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 막대한 에너지를 쓰고 있다. - P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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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 이후 일본의 외교 정책은 본질적으로 한 가지 목표를 최우선으로 했다. 아시아 대륙에서 특정 국가가 패권국으로 재등장하는 것을 막겠다는 목표였다. 처음에 일본은 러시아가 곧 그 국가가 아닐까 엄려했다. 하지만 1911년 쑨원의 신해혁명이 있고 나서부터는 대륙에서 일본의 군사 외교 정책은 중국에서 통일된 독립국가가 출현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점점 더 초점이 맞춰졌다. - P577

일본은10세 소년의 전략적 지능을 가진 국수주의 과격파들의 손에 나라의 외교와 안보를 넘겨주고 말았다. 그렇게 전쟁에 패하고 미국에 점령당한 일본이 강력하고 위협적인 이웃 국가 중국의 등장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외부 국가의 힘을 이용해 ‘힘의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지난 한 세대에 걸쳐, 일본에 아무런 발언권이 없던 형태에서 일본이 자발적으로 미국의 말에 따르는 형태로 천천히 바뀌어왔다.
일본 우익 중 일부는 마침내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벗어버리고 스스로 충분히 위협적인 나라가 되어, 중국이 일본의 요구에 맞추어 협상하지 않을 수 없는 날을 꿈꾸기도 한다. 혹은 최소한 일본이 베트남과 필리핀 같은 나라들과 동맹을 맺어 중국을 포위하는 형세를 만드는 것을 꿈꾼다. 한 세기 전이었다면 실행해볼 만한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런 일을 벌였다가는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왔던 1914년 유럽의 자멸적 행동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에게는 현실적으로 오로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중국과 어떤 식으로든 합의를 이루어 공존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품 안으로 더욱 파고드는 것이다. 일본이 왜 후자를 더 선호하는지 수긍이 가기는 한다. 하지만 길게 내다보면 그것이 더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다.
- P578

미국의 엘리트 지도층은 일본을 미국의 군사적 자산, 미국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미국의 꿈은 미국의 품안으로 들어가 중국과 직접 맞대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민당의 꿈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무모하다. 그 꿈이란 미국이 역사적으로 북미 대륙에서 아무런 잠재적 위협도 없고 아무런 잠재적 도전도 받지 않던 상황을 어떻게든 전 세계로 확대하고 싶은 것이다. 망상에 빠진 미국의 군사 전략가들은 이런 상태를 ‘전방위 지배‘라고 부른다.
- P579

아시아에 머물고 싶어하는 미국의 바람보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떠나기를 원하는 중국의 바람이 훨씬 더 강하다. 중국은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많은 것을 걸고 장기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이것은 중국만큼이나 일본에도 운명이 걸린 일이 될 것이나, 대부분의 미국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 사실이 명확해지는 날 미일 ‘동맹‘은 무너지고 일본은 외롭게 홀로 남겨질 것이다. - P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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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생각하면 과연 아베와 구로다가 시행한 통화정책/재정 부양 콤보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이 내렸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들은 일종의 경제적 환각 상태‘를 만들어 그 에너지로 2013년 7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할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선거를 이기기만 하면 자민당은 헌법을 뜯어고치고 전체주의 정권을 세우는 데 필요한 과반을 상하 양원에서 모두 차지하게 된다. 그 전체주의 정권은 일본을 일류 국가로 재정립하는 데 필요한 일(필요하다면 경제 개혁도 포함해서)에 반대하는 세력을 잠재울 합법적이고도 강제적인 권력을 갖게 된다. - P563

정권이 선동과 가장을 통해 진짜 목표를 잠시 숨겨둘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떤 정권도 원하는 것을 다 이루지는 못한다. 어느 순간에는 우선순위를 정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한정된 정치적 자산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 P566

일본의 입장에서 이런 바람은 한여름의 맑은 날에 예고 없이 왔다 가는 폭풍우와도 같다. 모두들 늘 원래 하던 대로 일을 하는 와중에 미국으로부터 뭔가를 요구받는 강풍이 갑자기 불기 시작한다. 워싱턴에서 날아온 사절단이 특별한 요구 사항을 흔들어대며 폭우를 내리고, 미국의 기업가, 정치인, 통상 관료들이 쏟아내는 엄포의 천둥으로 도쿄 중심가의 창문이 흔들린다. 일본의 정책 담당자들은 먼 옛날의 제사장들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무엇을 제물로 바쳐야 신의 노여움을 달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중략) 제물이 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해가 바뀌고 연대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지만, 일이 전개되는 패턴은 거의 똑같다. 폭풍우가 거세어지면, 미국의 타깃이 된 특정 상품이나 협약으로부터 이익을 취하던 업계, 정치인, 관료, 노동자, 농부, 하청업체의 네트워크가 소환당해 미국이 만족해서 물러갈 만큼의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 그러고는 미국 대통령이 TV에 나와 국민에게 흔들어 보일 수 있는 협정 같은 것이 맺어진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바람은 잦아들며, 천둥 소리는 일본이 정말 자유무역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를 의심하는 태평양 너머의 울림으로 멀어져간다. 일본의 통상 교섭진과 외교관들은 이번 폭풍우를 잠재우는 데 필요한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정치인과 관료들은 희생의 부담을 뒤집어써야 했던 대상에게 조용히 보상해줄 것이다. - P568

아베의 정치적 자산은 2013년 말 비밀정보취급에 관한 법안을 의회에서 강행 통과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특정비밀보호법‘이라 불린 이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원하는 모든 것에 보안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고, 고의성이 없을지라도 보안 사항의 내용을 파악하려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기소할 수 있게 된다. - P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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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은 집권 정당성의 근거로서 ‘당의 지도적 역할‘을 주장하는 레닌주의 신조를 버렸다. 그 대신 점점 더 일종의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힌 국가주의에 호소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커져만 가는 빈부 격차와 고위 간부층에 구조적으로 만연한 부정부패에 분노하고 있던 중국 국민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 P548

예전의 서사가 중국인이 중국인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서사에서는 애국심 넘치는 중국인들이(공산당이건 국민당이건) 외국인을 상대로 싸운다. - P549

중국은 과거 왕조 시절에 누리던 주변국들과의 조공관계를 부활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주변국들은 중국에 의존하는 나라나 속국으로 전락하거나, 티베트나 신장위구르자치구처럼 독립을 아예 박탈당할 수도있다. 중국 공산당은 일본에 대한 증오를 냉소적으로 조장하여, 공산당의 문제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굴절시키는 데 이용한다. - P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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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선거에서 압승해 정권을 차지할 것처럼 보이자, 검찰과 주류 언론들은 야심찬 정치인들이 체제 질서를 위협할 때마다 항상 사용하던 주특기를 꺼내들었다. 모호한 선거법 위반으로 문제의 정치인을 걸고 넘어져서, 그 조사과정을 뉴스로 만들어 언론에 대서특필하는 방법 말이다. - P513

관료와 자민당과 기성 재계를 중심으로 한 엘리트층의 상당수는 주권의 핵심 부분을 미국에 맡기는 것이 자신들이 국내 상황을 지속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치러야만 하는 타당한 대가라고 줄곧 자기합리화를 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품에서 안정을 누리는 일은 미국의 자비심에 달려 있다. 그리고 미국처럼 변덕스러운 나라로부터는 늘 자비심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의 여론을 감시하고 주도할 수 있는 재단, 언론인, 정부 관리, 학자들로 이루어진 막강한 네트워크를 수십년에 걸쳐 구축해왔다. 미국 내에 있는 대규모의 일본 기업 커뮤니티도 ‘일본 주식회사‘의 현지 지사 역할을 맡아 이 네트워크를 측면 지원한다. 일본이 미국의 대일 정책에 영향을 행사해야 할 때 미국 내에 있는 자생적인 우호 세력만 믿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 P520

전문가들이나 해당영역의 풍부한 지식을 갖춘 관료들 없이 나라를 다스리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도로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관료들이 점차 오만함을 갖게 되고, 자신들이 하는 일에 간섭하는 모든 유의 시도를 경멸하게 되면서 결국 사회 전체의 발목을 잡는다. - P527

일본 관료 조직의 고위 정책 담당자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여전히 전쟁 전 관료들과 같은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당시에는 ‘천황의 신하였고, 요즘에는 ‘일본의‘ 신하이지, 스스로를 유권자들의 공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선거로 뽑은 더럽고 욕심 많은 정치인들은 더더욱 그들이 섬길 대상이 아니다. - P528

노다의 승리는 많은 사람에게 민주당이 과거의 정치로 회귀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애초에 사람들은 바로 그런 유의 정치를 타파하라고 민주당에 투표했었다. 노다가 당선된 이유는 단지 다른 후보들보다 적이 더 많지 않아서였을 뿐이다. 유권자들의 입맞에는 어떤지 몰라도, 그의 무색무취함이 역설적으로 당내 다양한 파벌과 관료의 입맛에 맞았던 것이다. - P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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