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여성들과는 달리 일본의 여성들은 한 번도 누가 떠받들어주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 여성이 방에 들어온다고 일어서는 일본 남성은 없다. 누군가 일본 여성을 위해 의자를 빼주거나 문을 잡아준다면, 그것은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였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여성은 남성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제대로 교육받은 아내라면 항상 한발 뒤에서 남편을 따라간다. 여성이 하는모든 행동과 모든 말은 같은 나이, 같은 출신, 같은 계급의 남성들보다 스스로가 낮은 위치에 있고 거기에 복종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 P259
베이브 루스, 윌리 메이스, 샌디 코팩스, 조 디마지오와 같은 미 메이저리그의 개성 넘치는 야구 스타들과는 달리, 나가시마 시게오나 오 사다하루(우리나라에는 왕정치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옮긴이)같은 고도성장기 일본의 야구 스타들은 전형적인 팀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단 하나의 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이었으며, 주어진 연봉을 받아들일 뿐 단 한 번도 협상하지 않았다. 일본 야구의 연습은 선수 개개인의 실력을 발전시키는 것보다는 전반적인 노력이나 인내를 강조했다. 그런 경향이 어찌나 심했던지, 코치들이 재능 있는 선수들을 필요. 이상으로 밀어붙여 망가뜨린다는 비난을 들을 정도였다. 이는 끊임없는 노력과 단결된 팀워크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일본 기업 인사부서의 핵심 원칙을 그대로 반영한다.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비상한 팀워크와 사원들의 자기를 돌보지 않는 직업 윤리,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표현으로 바꾸자면 곤조 또는 ‘갓쓰‘에 있었다. - P255
도쿄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나 정부 부처에서 일하고 있으면서 자이언츠의 광팬이 아니라면 조직에 부적응한다거나 혹은 그 이상의 의심을 살 정도였다.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은 달랐다. 오사카의 홈팀 한신 타이거즈는 도쿄의 자이언츠를 능가하는 열광적인 팬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열광은 영원한 패자에 대한 열광이었다. - P257
일본에는 이미 예로부터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어서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했다. 일본인들은 직계 가족과 친한 친구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에서 정해진 행동 양식을 선호하고 예상외의 상황을 극도로 꺼리는 나머지 서양 사람들에게는 거의 병적으로 보일 정도다. 사람들은 언어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그에 맞춰 어떻게 대접받기를 기대하는지 의도적으로 상대에게 전달한다. 가령 일본의 비즈니스 미팅에서 명함을 교환하는 습관은 서로의 상대적인 지위를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의례다. 일본 기업의 경영진이나 공무원 무리와 함께 있을 때는, 이들이 자동차나 식당이나 회의실에서 어디에 앉는지, 사무실에서의 자리 배치는 어떻게 되는지, 서로 어떤 경어 표현을 쓰는지를 보면 각자의 직위와 서열을 즉각 알 수있다. 술집의 여종업원, 주부, 학생, 기업 간부, 대학교수, 건설직 노동자,엔지니어, 예술가들은 저마다 특유의 복장을 하고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판단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사회의 인간관계는 예측가능성에 기반해서 항상 의례를 따르는 듯한 양상을 띠게 된다.일본 사회생활의 이러한 예측 가능성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흔히 ‘일본적 문화의 한 측면이라고 뭉뚱그려져 더 깊은 이해를 가로막는 또 하나의 사례다. 예측 가능성 역시 허용된 틀을 벗어나 행동하면 죽을 수도 있었던 도쿠가와 시대의 권력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 거의 틀림없다. - P200
미쓰이가 노조를 파괴하고 대신 고분고분한 사측 노조를 만드는 데 성공하자, 다른 기업들도 그걸 따라하기 시작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때부터 일본의 대기업들은 정규직 남성 직원들에게 평생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할 의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업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분기 이익이나 주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직원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거나 회사가 재정적으로 힘들 때라도, 제대로 된 회사라면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렇게 경제적 안정의 보장이라는 좌파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이 충족되면서, 노동 투쟁은 점점 일종의 의례적인 절차로 변해갔다. 가끔 있는 반나절 파업은 중요한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사전에 조심스럽게 조율되었다. - P207
당시 일본 정부의 문제 중 하나는 애초 메이지 헌법을 다시 쓰는 작업에 참여한 일본의 법학자들이 프러시아의 법률 전통에 깊이 경도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프러시아에서는 법을 시민이 통치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국가 권력을 정당화하고 명확히 하는 수단으로 본다. 또 다른 문제는 일본의 보수주의자들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신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일본의 본질로 여겨지던 위계질서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위계질서라는 것은 무정부주의와 야만주의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서 이들의 사상적 공간에서 신성한 아우라를 갖고 있었다. - P183
‘여자 사람 검사‘라기보단 ‘여자 엄마 검사‘라는 제목이 떠올랐던 책... 검사로서의 경험 부분은 흥미롭게 읽었고, 엄마로서의 이야기들은 읽으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역시 일하면서 애 낳아 키우는 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을 재차 다지게 된 책이다.(이런 효과를 의도하진 않으셨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