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여러 국가와 일본이 중국의 ‘감시사회화‘를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유 중 하나는, 다음 장에서도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중국의 기술 진보나 사회 적용 속도가 너무 빨라 전문가라도 상황을 쫓아가기가 무척 힘들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된 이유로는 중국의 사회체제가 보편적 인권 · 의회제 민주주의 · 법의 지배·입헌주의 등의 보편적 가치에 바탕을 둔 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급격히 변화하는 기술, 특히 감시사회와 관련된 기술이 중국에서 도대체 어떻게 사용되는지 몰라서 생기는 ‘불확실성‘을 막연히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P25

경제학자 이노우에 도모히로는 AI·빅데이터 · 사물인터넷(IoT) 등의 차세대 범용목적기술(GPT)을 빠르게 발전시킨 국가가 4차 산업혁명의 패권을 쥘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중국을 가장 유력한 후보 국가로 예측하고 있다. "차세대에 가장 중요한 기술인 AI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대처가 중국 내에서 가장 활발" 하고, 나아가 "인구가 많고 독재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인권을 경시하며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데이터를 얻기 쉽기" 때문이다. - P27

정치권력이 국가에 집중되는 권위주의 국가야말로 AI 패권을 잡는다는 주장의 유행은 현재 중국 사회에서 기술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유포리아(행복감)‘가 생긴 상황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 P28

중국의 현재 상황은 더 편리하고 쾌적한 사회를 바라는 사람들의 공리주의적 욕망을 바탕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SF소설이라도 <1984> 보다는 서두에서 인용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속의 세계에 훨씬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 P32

필자는 더 행복한 상태를 바라는 사람들의 욕망이 결과적으로 감시와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중국에서 발생하는 현상과 선진국에서 발생하는 현상, 나아가 <멋진 신세계>와 같은 SF소설 작품이 암시하는 미래상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 P33

최근에는 기술 발전에 따른 감시사회화는 멈출 수 없는 움직임이라고 인정하고, 대기업과 정부의 빅데이터 관리·감시를 시민(사회)이 어떻게 점검할지에 대한 논의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공산당 일당지배가 이어지는 현대 중국에서 ‘정부 감시를 대상으로 한 시민의 감시‘ 같은 메커니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편 현대인들이 감시사회를 받아들인 배경에, 서로 맞교환 관계인 편리성 · 안전성과 개인 프라이버시(인권) 사이에서 전자를 더 우선시하는 공리주의적인 자세가 존재한다면, 감시사회를 수용하는 데 중국과 서양 선진국들 사이에 명확히 선을 그을 수는 없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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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럽 인터내셔널 어소시에이션이 2020년 3월에 세계 30개국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러스의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인권을 어느 정도 희생해도 괜찮다" 라는 생각에, 이탈리아에서는 93%, 프랑스에서는 84%, 전체로는 75%의 응답자가 찬성했다.
- P6

고쿠가쿠인대학의 나지현 교수는 저서 <번호를 창조하는 권력>에서 ‘집‘을 단위로 인원을 파악하는 호적 제도가 메이지 시대 일본이 근대화를 목표로 가부장(호주)에게 징병 면제나 참정권 등의 권리를 부여하는 대신, 호적 편성이나 징세·징역의 운용을 말단에서 담당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점을 짚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호적 제도는 ‘집‘ 보다 더 작은 ‘세대 단위의 제도로 바뀌었지만, 국가가 ‘개인‘을 직접 파악하는 데 계속 장애가 되었다. - P8

일본에서 감시사회화가 진행되지 않는 이유로는 사회 내부에 낡은 공동체적인 점이 남아 있거나, 개인정보 관리 체계 도입이 늦는 점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국가에 정보를 건네주기 두렵다는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점이 크다. 그 원천은 20세기 전반에 아시아및 태평양을 무대로 일본이 일으킨 전쟁, 그리고 패전 후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P9

후지타에 따르면, 현대의 전체주의는 다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 번째는 ‘전쟁으로서의 전체주의, 두 번째는 ‘정치 지배로서의 전체주의, 그리고 현재는 ‘생활양식으로서의 전체주의‘, 즉 ‘안락을 향한 전체주의다. - P10

2010년 전후, ‘중국판 트위터‘라고도 불리는 웨이보로 대표되는 SNS가 보급되면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이용한 사회운동이 중국 사회를 변화시키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을 당국이 완전히 봉쇄해 버렸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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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는 자신과 정치적 지지자들에게 일본이 단지 미국의 부하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일이라면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었다. - P591

핵심적인 문제는 일본이 계속해서 과거를 청산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신화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거짓 신화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동중국해와 동해 너머로부터 일본을향해 날아오는 위협과 비난이,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모를 막연한 증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 P598

아베와 그의 무리도 진짜로 전쟁을 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이 수반하는 것들을 갈망한다. 사람들 사이의 열광, 목적의식, 명확함, 위계질서, 경의가 생겨나기를 원하고, 의심과 거리낌과 비판을 일소하기를 바란다. 이런 갈망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사회 전체가 빠르게 노화되고 있는 갸루와 초식남과 오타쿠의 시대에, 수백만의 젊은이가 천황을 위해 죽지 못해 안달이던 1930년대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 없다. - P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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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원죄‘......
마음이 복잡해진다.


일본의 원죄는 스스로를 아시아에서 분리시키려고 했다는 데 있다.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죄이지만 그 여파는 끔찍했다. - P584

그 결과로 자리 잡은 현상 중 하나는 일본인 거의 모두가 일본을 아시아와 별개의 나라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아시아라고 말하면 그것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를 뜻한다. 서양에서 온 사람들은 일본의 지인이 자기는 아시아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놀라곤 한다. 리버럴하고 상식적인 일본인들조차 서양인이 일본을 중국이나 한국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라도 하면 일본이 그 나라들과 얼마나 다른지 즉각 지적하려 든다. 그러나 일본의 미래를 생각하면 일본이 다시 아시아의 일원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을 것이다. 경제 협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 협력은 이미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보다는 일본과 그 운명이 아시아 지역의 운명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 P585

일본의 과거에 대한 답은 일본인들 스스로가 구해야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일본이, 일본의 독립성을 파괴하며 해외에서 일본이라는 단어를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광기의 대명사로 만든 사람들의 손에 장악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말이다. 아베가 하는 것처럼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진실을 순수하고 고결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로 묻어 버리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일본이 비슷한 일을 다시 벌일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 P586

인간이기에 지지를 수 있는 실수와 죄악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마주하지 못하는 애국심, 진짜 세상의 논쟁으로부터 온실 속의 꽃처럼 보호되어야만 하는 애국심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아이들 사이에서만 통할 애국심이다. 아베와 시모무라 같은 이들은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을 어린아이처럼 여기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하는 일을 보면 어린아이와 같은 국민의 나라를 다스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정치체제로는 앞으로 일본에 닥칠 최대의 도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반일 감정을 국가적 구호로 채택한 채 빠르게 부상하는 호전적인 초강대국 중국이라는 도전 말이다. 중국 또한 고분고분하고 단합된 자국민을 배양하려는 뚜렷한 목적을 위해 국가적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 막대한 에너지를 쓰고 있다. - P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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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 이후 일본의 외교 정책은 본질적으로 한 가지 목표를 최우선으로 했다. 아시아 대륙에서 특정 국가가 패권국으로 재등장하는 것을 막겠다는 목표였다. 처음에 일본은 러시아가 곧 그 국가가 아닐까 엄려했다. 하지만 1911년 쑨원의 신해혁명이 있고 나서부터는 대륙에서 일본의 군사 외교 정책은 중국에서 통일된 독립국가가 출현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점점 더 초점이 맞춰졌다. - P577

일본은10세 소년의 전략적 지능을 가진 국수주의 과격파들의 손에 나라의 외교와 안보를 넘겨주고 말았다. 그렇게 전쟁에 패하고 미국에 점령당한 일본이 강력하고 위협적인 이웃 국가 중국의 등장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외부 국가의 힘을 이용해 ‘힘의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지난 한 세대에 걸쳐, 일본에 아무런 발언권이 없던 형태에서 일본이 자발적으로 미국의 말에 따르는 형태로 천천히 바뀌어왔다.
일본 우익 중 일부는 마침내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벗어버리고 스스로 충분히 위협적인 나라가 되어, 중국이 일본의 요구에 맞추어 협상하지 않을 수 없는 날을 꿈꾸기도 한다. 혹은 최소한 일본이 베트남과 필리핀 같은 나라들과 동맹을 맺어 중국을 포위하는 형세를 만드는 것을 꿈꾼다. 한 세기 전이었다면 실행해볼 만한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런 일을 벌였다가는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왔던 1914년 유럽의 자멸적 행동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에게는 현실적으로 오로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중국과 어떤 식으로든 합의를 이루어 공존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품 안으로 더욱 파고드는 것이다. 일본이 왜 후자를 더 선호하는지 수긍이 가기는 한다. 하지만 길게 내다보면 그것이 더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다.
- P578

미국의 엘리트 지도층은 일본을 미국의 군사적 자산, 미국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미국의 꿈은 미국의 품안으로 들어가 중국과 직접 맞대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민당의 꿈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무모하다. 그 꿈이란 미국이 역사적으로 북미 대륙에서 아무런 잠재적 위협도 없고 아무런 잠재적 도전도 받지 않던 상황을 어떻게든 전 세계로 확대하고 싶은 것이다. 망상에 빠진 미국의 군사 전략가들은 이런 상태를 ‘전방위 지배‘라고 부른다.
- P579

아시아에 머물고 싶어하는 미국의 바람보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떠나기를 원하는 중국의 바람이 훨씬 더 강하다. 중국은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많은 것을 걸고 장기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이것은 중국만큼이나 일본에도 운명이 걸린 일이 될 것이나, 대부분의 미국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 사실이 명확해지는 날 미일 ‘동맹‘은 무너지고 일본은 외롭게 홀로 남겨질 것이다. - P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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