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경우 여자들로부터 듣는 사고 경위는 대략 이러했다 지나가던 남자가, 처음 만난 남자가, 연인이나 남편이 술을 마시고 때리고, 제정신으로 칼로 찔렀다. 여자를 잡아 던지고 가구를 들어 여자에게 던졌다. 가구 모서리는 여자의 약한 몸을 짓이기고 들어가 내부 장기를 찍어내며 터뜨렸다. 그럴 때 오로지 제일 질긴 신체 조직인 피부만이 온전히 붙어 있다. 폭력의 강도는 점차 세졌으나, 서서히 끓어가는 물 온도에 익숙해져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 개구리처럼 여자들은 앞으로 더 맞고 살이 썰려 나갈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가벼운 사랑싸움이라는 말에 구역질이 난다. 십중팔구는 점차 더 심하게 맞겠지만 당사자는 그것을 짐작조차 못해 유감스러웠다. 그러면서도 함께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인내를 높이 볼 수도 없었다.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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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죽다 살아난 중증외상 환자들이 사고 전과 달리 좋은 방향으로 인성 변화를 보일 때마다 나는 궁금했다. 선한 의지와 함께 기증된 선한 이들의 좋은 피가 수혈받은 사람에거 정서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88쪽

스승이었던 임대진 교수는 말하곤 했다. 밥벌이의 종결은 늘 타인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그때까지는 버티는 것이 나은 법이며, 나 스스로 판을 정리하려는 노력조차 아까우니 힘을 아끼라는 그의 말이 나는 틀리지 않다고 여겼다.
-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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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란 건, 오해라는 걸 인식했을 때는 이미 오해가 시작된 이후인 경우가 많다.
-p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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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물고기 묘보설림 4
왕웨이롄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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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는 예술은 언어의 예술이지만 절대로 언어의 공중누각이 아니며 소설과 문화의 관계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류의 모든 성숙한 문명이 그 발전의 후기에 이르렀을 때 약속이라도 한 듯 소설이라는 예술을 택해 자신을 서술했다는 사실에 경악하곤 한다. 예컨대 시를 문학의 정통으로 삼았던 중국 문명도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그토록 많은 위대한 소
‘설을 탄생시키지 않았던가.
-pp.227 후기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우리는 시대의 저 흩어진 모래알들을 한 사람의 형상으로 응집시킬 수 있을까? 우리는 문명의 저 깊은 곳에서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런 물음들이 바로 오늘날의 소설이 직면한 전대미문의 도전이다.
-p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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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제야 진정한 말은 한 사람이 세상을 향해 내뱉는 소리가 아니라 두 사람 이상이 주고받는, 마치 규칙이 느슨한 보드게임 같은 상호 호응임을 인식했다.
pp.11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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