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패전도 아닌 무참하기 짝이 없었던 패전은 ‘국체‘가 지니고 있던 내재적 결함, 바로 그 독특한 사회구조가 불러온 것이었다. - P6

현대 일본이 처한 기괴한 핍색 상태를 설명해주는 유일한 개념이 ‘국체‘다.
‘국체‘가 전전 일본과 전후 일본을 관통하는 ‘무언가‘를 가리킬 수 있는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전전과 전후를 가른 1945년의 패전에 뒤따랐던 사회개혁으로 ‘국체‘가 표면적으로는 폐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실은 재편된 형태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 P6

이 책의 테제는 전후 천황제의 작동(기능) 방식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화(菊花, 일본 천황가의 상징-역주)와 성조기(미국)의 결합을 ‘전후 국체의 본질로, 즉 전후 일본의 특이한 대미 종속이 구조화된 필연성의 핵심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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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카를라 3부작 1
존 르카레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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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The boy stared at Smiley as if he were mad.˝
그럼 당연히 ‘이 사람이 무슨 미친 소릴 하나‘ 하고 쳐다봤다는 건데, 그러면 ˝소년은 마치 미친 사람이라도 보는 양 스마일리를 쳐다보았다˝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
이건 오역이 아니라 걍 성의없는 번역 ㅇㅇ...

한 소년이 부르고뉴 포도주병을 마치 인도 곤봉처럼 흔들면서 나타났다. 「이봐, 술병도 좀 숨 쉴 여유를 주어야 하지 않나?」 스마일리가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은 마치 미친 사람인 양 스마일리를 쳐다보았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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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메이지 150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서는 지방의 쇠퇴, 계급격차의 확대와 더불어 엄청난 수의 헐벗은 백성이 버려지고 있다. 잡티 없는 순수성은 이들을 포섭하지 않는다. 국민 통합에 균열이 생기자 그 자리에서 순수성만을 강조하는 국수적 배외주의가 다시 피어올랐다. - P207

국가의 무오류성은 무모한 전쟁을 통해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패전은 국가가 만능이 아님을 드러냈다. - P208

전후 민주주의는 ‘평화국가‘의 기치를 내걸고 개인의 인권과 함께 인간다운 ‘문화생활‘을 보장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일본은 마치 국가를 위하여 국민이 존재하는 것처럼 도착된 상태였다. 국민 없는 국가주의만 팽창했다. - P214

화혼양재라는 슬로건은 국가주의의 분위기를 앞으로도 유지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지금도 ‘화혼양재‘인지 질문하지않으면 안 된다. - P214

화혼과 양재를 나눌 수 있다는 발상은, 밖애서 수입한 지식과 기술을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과는 상관없는 계획이나 대의의 도구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간주한 데서 나왔다. 지식과 기술은 단순히 도구나 수단, 테크닉이 아니라 가치와 태도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메이지 국가 이래 일본은 지식과 기술을 탈착 가능한 장치로 간주하고, 그것에 목적과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화혼, 즉 국체라 인식했다. - P216

이제 ‘지식인의 종언‘이 기정사실화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때에 근대적 지식인의 부흥을 말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일지도 모른다. - P219

이 책 속의 이야기는 그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차를 두고 태어난 쌍둥이처럼 비슷한 한일 두 나라의 과거는 그저 우연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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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가 되면서 재일 외국인 중 중국 국적자의 수가 재일 한국인 · 조선인을 웃돌게 되었다. 재일 외국인의 국적이 다양해지면서 자이니치가 재일 한국인 · 조선인을 가리키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 P196

일본은 나태, 불령, 시기, 의심, 빈곤, 무지, 몽매, 열등, 범죄, 불결 등 이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속성을 자이니치 1세에게 덮어씌웠다. 그들을 뿌리로 하면서도 민족의 언어와 문화, 전통, 풍습을 물려받지 못한 자이니치 2세에게 부모는 이율배반적 존재였다. 부정과 긍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애증이 자이니치 2세의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정체성‘을 남겼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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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이래 일본의 근대화는 전근대적인 것을 근대적인 것으로 바꾸었다기보다는 근대화를 추진하면 할수록 혈연과 지연 같은 전근대적 연대가 더욱 강조되었다. 이것이 부국강병과 식산흥업의 발판이 되었다는 사실을 볼 때, 키메라 같은 재벌의 역사가 근대화 그 자체이자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 P182

그들은 정치에 달라붙지도,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았다. 총력전 상황에서도 미쓰이나 야스다와 달리 미쓰비시는 그들의 사람을 정치권에 앉히지 않았다. - P184

"국가 수급 사업을 대상으로 하는 큰 사업을 하라" 라는 미쓰비시의 사훈은 이 회사가 ‘정치 불관여‘의 원칙을 관철하면서도 철저하게 국가와 발을 맞춰온 역사를 웅변한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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