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본에 비해 많은 것이 뒤처졌던 시절에 일본은 "밉지만 배워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잃어버린 30년‘ 속에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제 그런 정서도 많이 옅어졌다. 특히 젊은 세대는 과거에 일본을 본보기로 삼았다는 사실 자체를 의아해한다. - P282

선진국론은 서구 우월주의 시각에서 국가의 서열화를정당화하는 논리에 가깝다. 세계의 여러 나라를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나누고 끊임없이 줄을 세우려는 불온한 의도가 숨어 있다. 김종태는 <선진국의 탄생>에서 "선진국에 대한 열등감은 곧 후진국에 대한 우월감"을 뜻한다며, "선진국 담론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과 유사한 인식체계"라고 지적한다. - P283

그러나 과거에 앞서갔다는 사실이 문제를 앞서 해결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앞선 장에서 보았듯이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생겼던, 그리고 원래부터 일본 사회가 갖고 있던 수많은 모순과 과제를 적당히 봉합한 채로 지나쳤다. 효율과 속도를 지나치게 중시한 탓이리라.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산적한 문제를 미뤘다. 계속된 전쟁과 불황이라는 위기를 핑계로고 고도성장의 풍요로움도 초점을 흐렸다. 전근대적인 관행도 ‘일본의 전통‘ 이라며 옹호했다. 결국 인권 문제와 젠더 문제 등이 계속 곪다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 P284

일본은 "유쾌하지 않은 근대화의 매개자"였다. 우리는 일본이 번역한 서구를 다시 번역했다. 우리에게 서구화는 중역, 즉 이중번역 과정이었다.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자의 반 타의 반 일본의 시스템을 학습하고 모방했다. 해방 전 일제강점기에는 대부분 ‘선택지가 없는 타의‘였다면, 해방 후에는 ‘선택지가 적은 자의‘  였다. 일본을 따라간 덕분에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었지만, 압축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후유증은 지금도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는 질곡이 되고 있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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