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열심히 근대화를 추진하고, 근대화의 추진력으로 서양의 모든 문명 사상 종교 등을 도입하는 데에 열심이었던 사회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단 하나의, 그러나 지극히 중대한 조건을 달았다. ‘국체에 저촉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는 조건이었다. - P90

천황의 이름으로 반포된 교육칙어는 봉건시대를 살아온 국민에게 매우 친숙한 유교적 통속 도덕을 이용해 권리 주장 및 요구에 대한 고삐를 죄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다.
메이지 레짐의 운영자들에게 국민의 권리 주장 및 요구는 일본이 근대국가를 자처하는 이상 공인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바로 ‘국체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공인돼야 하는 것이었으며, 그런 제약을 국민이 자발적으로 내면화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로서 도입된 것이 바로 교육칙어였다. - P95

한쪽에서는 헌법과 의회를 통해 입헌정체의 체재體裁를 구축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국민의 내면을 ‘천황의 국민으로 만들어 규범의 통제에 복종시키려는 시도가 이뤄졌다. 국가의 제도와 국민의 내면이라는 양면의 정비를 통해 메이지 레짐은 불안정한 시기를벗어나 확립됐다. 바꿔 말하면 메이지유신에서 20여 년이 지난 이 무렵부터 근대 전반의 ‘국체‘가 일단 확립됐던 것이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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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미국 품에 안긴 일본은 허구에 지나지 않지만, 정치나 경제영역을 보면 그런 관념의 토대 위에서 대미 종속 체제 내의 엘리트들이 결정한 방침이 실현되고, 그 프로파간다가 국민 사이에 널리 유통되고 있는 - 허구이기는커녕 이 관념이야말로 유일한 ‘현실주의 적인 국가 방침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 것은 현실이다.
바꿔 말하면, 허구가 현실을 대체하고, 그것이 ‘현실 속의 현실‘에 다다르고 싶다는 거센 충동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 P81

패전 직후, 헌법 개정을 심의하던 국회에서 헌법 담당 국무대신이었던 가나모리 도쿠지로 는 일본인에게 천황이 ‘동경의 중심‘이라고 적절하게 정의했다. 그리고 풍요의 빛을 눈부시게 발산하는 아메리칸 웨이 오브 라이프(American way of life, 미국식 생활)를 중심으로 한 아메리카니즘 또한 전후 사회에서 ‘동경의 중심‘이 됐다. - P82

전전까지 포함해서 근현대의 일본 사회에서 ‘근대화‘는 늘 지상 명제였고, 그때의 ‘근대성 이미지를 참조할 만한 모델로서 미국이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유력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전후에 비약적으로 강해진다. - P83

‘전후의 국체‘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정치사적 사실 차원에서는 국민 생활의 정신사적 사실 차원에서든 미국(적인 것)의 존재를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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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일 지위 협정에서 일본의 지위는 종종, 이를테면 명백한 미국의 괴뢰이자 수도 주변의 일부 지역만 실효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지위보다도 낮다. 또 아직도 북한과 전쟁 상태(휴전 중)에 있는 한국 정부보다도 낮다. 이런 상황이 특히 오키나와에서 미군 관계자들에 의한 중대 범죄가 빈번히,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음은 말할 것도없다. 이런 비교는, 일본의 대미 종속의 이유가 미일 간의 현실적인 격차(단적으로는 군사력의 격차)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군사적인 긴급함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 P66

일본의 대미 종속에서 달리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종속 사실이 보이지 않게 감춰져 있고 부인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같은 불가시성을 조장하기 위해 종속 사실은 ‘온정주의의 망상‘이라는 오블라투로 감싸여 있다. - P67

친미 보수 세력이 지배하는 정부와 그것을 돕는 미디어 기관은 단 하나의 명제를 국민에게 주입하려 하며,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을 사랑한다‘는 명제를, 물론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은 일개 동맹국에 지나지 않으며, 그런 명제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 P68

이런 ‘일본을 사랑하는 미국이라는 명제가 대일본제국의 천황과 국민의 관계를 정의한 명제와 닮은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일본제국은 ‘천황 폐하가 그 적자(백성) 인 신민을 사랑한다‘는 명제 위에 우뚝 서서 그 사랑에 응하는 것 - 거기에는 폐하가 결정한 전쟁‘에서 기꺼이 죽는 것도 포함된다 - 이 신민의 의무이고 명예이며 행복이라고 강변했다. 이런 이야기는 강력한 국민 동원 장치로 기능했으며, 동시에 파멸적인 전쟁 상황 아래서도 어떻게든 희생을 줄이려는 합리적인 발상을 날려버렸다.
그 끝에 찾아온 패전의 결과 대일본제국의 천황제는 폐지됐다. 아니, 폐지돼야 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현실에서 보고 있는 것은 ‘천황 폐하의 적자‘와 닮은꼴인 미국은 일본을 사랑한다‘는 이야기의 망령과 그 망령이 지금도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이상한 모양새다. ‘국체‘는 잔해로 변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국민의 정신과 생활을 강하게 규정하고 있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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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전전의 일본은 ‘천황제 국가였다‘고 다들 얘기한다. 그리고 전후의 민주화는 전전 일본의 이런 측면에 대한 부정을 의미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천황제는 상징 천황제로 바뀌어 존속됐다. - P62

천황의 의도에 따르기 위해 미일 안보조약이 현저하게 불평등한, 실질적으로는 점령의 지속을 규정하는 대체물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략)
쇼와 천황이 제시한 방향으로 전후 일본의 체제 존재 방식이 결정되면서 야기된 문제의 심각성이다. 그 지침에는 오키나와의 점령 상태를 장기간 지속시킬 것을 천황이 미국 쪽에 의뢰했던 1947년의 ‘오키나와 메시지‘도 중대한 요소로 포함돼 있다.
- P63

도요시타는 쇼와 천황이 적극적으로 미국을 맞아들인 가장 큰 동기가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혐오였다고 본다. 동서 대립이 격화하는 가운데 쇼와 친황은 나라 안팎에서 가해질 공산주의의 침투를 막는 수호신으로 미국의 군사적 주둔을 요청했다. - P64

요컨대 나는, 미일 안보 체제를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삼는 전후 일본의 대미 종속 체제(영속 패전 레짐)를 전전과의 연속성을 지닌 전후의 국체라고 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체‘는 사어가 됐을지언정 죽은 것은 결코 아니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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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의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이라는 슬로건과는 반대로, 자민당 정권이 하고 있는 것은 동서 냉전이라는 토대를 잃고 공중에 떠버린 레짐을 필사적으로 유지하는 일이다. 아베 신조가 자칭하는 ‘보수주의‘란, 이 우매한 자를 두 번이나 총리 지위에 앉힌 권력 구조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보수한다 (지킨다)‘는 지침에 지나지 않는다. - P57

여기에는 ‘아시아의 선진국은 일본뿐이어야 한다‘는, 전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밝은 비전 뒤에 감춰진 어두운 바람이 있다. 그것은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인들이 품어온 유럽과 미국을 향한 열등감과 다른 아시아 국가의 국민에 대한 인종차별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패전을 부인함으로써 그런 심정과 바람을 전후까지 연장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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