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 전전의 일본은 ‘천황제 국가였다‘고 다들 얘기한다. 그리고 전후의 민주화는 전전 일본의 이런 측면에 대한 부정을 의미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천황제는 상징 천황제로 바뀌어 존속됐다. - P62
천황의 의도에 따르기 위해 미일 안보조약이 현저하게 불평등한, 실질적으로는 점령의 지속을 규정하는 대체물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략) 쇼와 천황이 제시한 방향으로 전후 일본의 체제 존재 방식이 결정되면서 야기된 문제의 심각성이다. 그 지침에는 오키나와의 점령 상태를 장기간 지속시킬 것을 천황이 미국 쪽에 의뢰했던 1947년의 ‘오키나와 메시지‘도 중대한 요소로 포함돼 있다. - P63
도요시타는 쇼와 천황이 적극적으로 미국을 맞아들인 가장 큰 동기가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혐오였다고 본다. 동서 대립이 격화하는 가운데 쇼와 친황은 나라 안팎에서 가해질 공산주의의 침투를 막는 수호신으로 미국의 군사적 주둔을 요청했다. - P64
요컨대 나는, 미일 안보 체제를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삼는 전후 일본의 대미 종속 체제(영속 패전 레짐)를 전전과의 연속성을 지닌 전후의 국체라고 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체‘는 사어가 됐을지언정 죽은 것은 결코 아니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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