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공기‘는 일본 사회가 다른 어떤 집단보다 더 정교하고 순조롭게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해 구성원들이 발명해낸 ‘허구‘ 또는 ‘신화‘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 P9

 모두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자기도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는 겁니다. 단지 그걸 말로는 절대 표현하지 않는 거죠. 일본의 도덕은 자기가 실제로 하고 있는 행동의 규범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금하고 있고, 그걸 말하면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말했다는 것을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거지요. 이게 일본의 도덕이에요. - P20

대단히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은 당시 기자가 거듭 언급했던 ‘공기‘라는 단어였다. 그는 정체 모를 ‘공기‘라는 것이 자기 의지의 결정을 속박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요컨대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과 논의한 결과로 도출된 결론이 아니라 ‘공기‘라는 것이었는데, 마치 사람이 진짜 공기로부터 도망칠 수 없듯이 그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가 결론을 내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논리적 결과라서가 아니라 ‘공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채택 여부는 ‘공기‘가 결정한다. 그러니까 뭔가가 ‘공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는 경우에는 반론할 방법도 마땅히 없다. 누구도 공기를 상대로 따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 P21

일본인은 통상의 논리적 판단의 기준과 공기적 판단의 기준이라는 일종의 이중 기준double standard에근거하여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보통 때는 논리적 판단의 기준에 따라 말하지만, 진정한 결단의 기초로 삼는 것은 ‘공기가 허락하지 않는다‘는 공기적 판단 기준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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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한국에 있어 하나의 거대한 지정학적 리스크 그 자체인 것이다. 중국의 모든 급속한 변화는, 그게 중국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에는 모두 부담스러운 도전과제일 수밖에 없다. - P250

 나는 중국의 발전 모델이 갖고 있는 독특함과 중국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순환패턴의 특성, 그리고 시진핑의 야망 등이 중국의 미래 불확실성을 더욱심화시켰다고 판단한다. - P251

이렇게 과거 냉전 시대처럼 미국과 중국이 각자 배타적 경제 블록을 쌓게 되면, 한국이 과거처럼 미국과 중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국익 극대화를 도모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한국은 상당한 비용이 수반되는 선택의 순간에 계속해서 놓이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각각의 선택으로 치러야 하는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그런 비용을 감내할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이뤄 나갈 것인지 등등의 문제가 이어질 것이다. 요컨대, 신냉전은 한국에 많은 시련과 도전을 안겨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련과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첫 단계는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시대가 지나갔으며, 훨씬 더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회적 인식의 확산이다. - P256

한국은 대다수의 국제기구에서 이미 논란 없는 선진국으로 분류되며, 지역의 강국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미 한국 스스로가 약소국으로 포지셔닝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주관적 인식은 객관적 환경의 변화 속도를 쫓아가지 못한다. 보통의 한국 사람들은 현재의 우리나라를 주변 강대국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희생양이자 약소국이었던 과거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하는 담론에 여전히 익숙하다.
이러한 과소평가된 자기 인식은 주변 강대국들의 엄포와 보복 협박에 대처하는 대응력을 약화시킨다. - 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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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채 문제는 오랜기간 쌓여 온 구조적 문제이며 과거에는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던 성공적 방식의 후유증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욱 해결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 P207

최근 이 토지사용권 매각이 크게 줄고 있다. 2021년 토지사용권 수입 감소의 경우 지방정부별로 차이는 있지만 많게는 35%에서 적게는 11.2%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중국 부동산 경기 침체와 개발 잠재력이 좋은 토지규모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중략) 이와 함께 개발 잠재력이 큰 매력적인 토지들은 이미 과거 수년간 판매가 완료되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로 분석된다. 이제 점점 위치나 입지가 좋지 않아 개발 매력이 크게 떨어지는 토지들만 토지사용권 경매 대상으로 오르게 된 점도 지방정부 토지 사용권 수입 급감의 원인이 된 것이다.
나아가 지방정부 관료들에 대한 잘못된 인센티브 또한 지방정부 재정 악화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 P208

중앙정부에서 각 지방정부 관료들에 대한 인사고과는 주로 해당 지역의 경제성장률과 고용창출 같은 경제지표를 기준으로 삼았다. 당연히 재임시 수많은 건설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할수록 단기간에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할수록 높은 인사고과 점수를 받고 더 높은 위치로 승진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각 프로젝트 개발 이후 수익성에 대한 객관적이고 엄밀한 평가는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해당 프로젝트가 완성되어 운영될 때는 해당 지역 관료는 대부분 이미 승진하여 타 지역이나 중앙정부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에 뒷감당은 후임자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완공이 되었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아파트와 유령 공원, 유령 도로, 유령 복합시설, 유령 신도시 등 중국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난개발의 참혹한 결과의 배경에는 이러한 잘못된 인센티브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용자가 없는 실패한 개발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손실은 그대로 지방정부의 악성 채무가 되며 운이 나쁜 후임자의 업무로 남겨지게 된다. - P209

민간기업은 중국 GDP의 60%, 전체 고용의 80%를 창출하고 있지만, 은행 대출에서는 고작 전체 대출 규모의 4분의 1밖에 얻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는 방만하게 운영되는 국영기업의 몫이다. 중국 국영기업들이 워낙 낮은 금리로 쉽게 돈을 조달하다 보니 빌린 돈을 다른 민간기업들에게 2차로 빌려주는 ‘돈놀이‘까지 나서고 있다. 소위 ‘그림자 금융‘은 이러한 관행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중략)
시진핑 들어서 민간기업에 대한 견제와 국영기업에 대한 우대 분위기가 강화되면서 금융 자원이 더욱 국영 부문에 쏠리게 되고, 이는 국영기업 경영의 도덕적 해이와 방만한 경영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중국이 관치금융을 완화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한 부채 문제의 해결이 요원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 P211

투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일반적인 모범 답안은 경제에 대한 정부 간섭을 줄이는 것이다. 즉, 은행에 대한 정부 통제를 포기하여 자본이 가장 효율적인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금융의 시장화 조치를 진행하고, 동시에 인위적 경기 부양을 억제하며 한계 기업과 은행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일종의 구조개혁을 단행하는 것이다.
(중략)
하지만 이러한 시장개혁 조치는 곧 경제와 사회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통제 약화, 그리고 지방에 대한 중앙의 영향력 약화를 의미한다. 또한 민간부문과 시장이 결정하는 영역이 커지는 건 국가가 간섭하고 결정하는 영역이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는 다원화되어 가는 사회에 대한 당의 통제 강화, 지방에 대한 중앙의 권력 강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간섭 강화를 선호하는 시진핑의 세계관과 당연히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 P213

하이실리콘의 극적인 추락을 살펴보면 중국 반도체 굴기가 가진 취약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이실리콘이 미국 정부의 제재 조치 한 방에 무너진 건, 현재의 중국 반도체 산업조차 미국이 구축한 글로벌 반도체 기술 생태계에 대한 의존도가 얼마나 큰지를 그리고 그 기술 생태계가 가진 장벽의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를 극명하게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 P221

미국은 이러한 각종 제재와 기술 접근 차단을 통해서 중국에 미국이 만든 산업 질서에 계속 머물 것을, 기존처럼 선진 제조국가의 하청 공장 역할에 만족하고 그 이상의 고부가가치 산업 진입과 산업 패권을 욕심내지 말 것을 요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P223

저런 막대한 규모의 나랏돈이 그처럼 허술한 사기극에 집행되는 게 정부 내부의 부패한 협조자 없이 과연 가능했을까? 나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아마도 이러한 사기성 프로젝트가 HSMC 하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중국에서는 중앙 단위, 지방 단위, 회사 단위로 눈먼 돈들이 중구난방으로 집행되는 게 현실이며, 이것을 중앙정부가 실시간으로 꼼꼼하게 체크하고 감시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크고 복잡하다. - P232

시진핑 정권 입장에서는 이 모든 어려운 난제와 복잡한 리스크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카드가 하나 있다. 바로 대만 침공을 통해 대만의 반도체 생태계를 일거에 장악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중국내 리스크는 중국이 외부로 투사하는 리스크로 연결된다. 그리고 중국의 대만 침공은 사실 내가 생각하는 중국 내부의 마지막 리스크와도 직결된다. 바로 현 중국 국가주석이자 중국 공산당 총서기인 시진핑 본인이 그 리스크다. - P233

대만 통일이라는 공약을 전제로 덩샤오핑 이래로 자리잡은 권력 승계 원칙까지 어기고 권력 집중과 장기 집권을 용인해 주었는데,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하면 시진핑의 평가는 역대 최악의 지도자로 간주될 것이며 심지어 퇴임 후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측도 덧붙였다.
즉, 시진평의 권력은 대만 통일이라는 중국 인민과의 공약으로 실현되고 유지되는 것이며, 이 공약이 지켜지지 못할 경우 시진핑 정권은 즉시 붕괴될 개연성이 높다는 게 S의 결론이었다. (중략) 이는 곧 중국 인민들의 시진핑에 대한 ‘조건부 지지‘는 시진핑의 권력 기반이 사실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강고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 P236

중국은 집단지도체제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최고 지도자 일인권력 집중으로 권력 시스템을 변경했으나, 이제는 그 바뀐 시스템에 의한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는 중이다. 중국의 권력 구조가 어떻게 바뀌든 간에 이와 같은 문제들이 정치적 불안정성과 맞물려 터져 나오는 근본적 원인은 헌법과 법률에 의거한 법치가 아니라 혈통과 능력에 기반을 둔, 공산당 엘리트에 의한 인치가 가진 제도적 취약점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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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 따르면 신흥 강대국은 파워가 계속 확장할 때에는 중국 덩샤오핑의 ‘도광양회‘처럼, 패권국에 맞먹을 수 있을 때까지 ‘대결‘을 미룬다. 그러나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고, 패권국과 동맹 세력에 포위되어 쇠퇴기를 앞둔 시점에 이르면, 신흥 강대국은 더 늦기 전에 현재 움켜쥘 수 있는 것을 확보하려 들어 ‘전쟁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 P169

 150조원 가까이 되는 사교육 시장을 하루 아침에 없애버리거나, 경기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에 대한 온갖 제재를 가하는 등의 급진적 조치를 시행하는 배경에는 시진핑의 복고적인 정치 신념뿐 아니라 이러한 심각한 인구구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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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시진핑은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대해 철저하게 침묵을 지키고, 자기 주장을 숨겼으며, 대세를 추종했다. 튀는 걸 극도로 꺼렸기 때문에 특별히 적도, 경계하는 사람도 없었고 누구에게든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두 총서기가 전임자 입장에서 보기에는 영향력을 행사하며 조종하기 쉬워 보였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무개성‘과 ‘무색무취‘가 시진핑이 중국 최고 권력가의 유력한 후계자로 선택된 이유였다는 것이었다. - P125

중국 경제의 반등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세계경제가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특히 미국의 경기부양책이 2009년 2월 말에 간신히 통과되고 미국 금융기관들의 정상화 기틀이 마련되는 스트레스테스트 결과가 그해 5월 나오기 전까지, 그 기간 동안 세계 경제의 경기침체 하방 압력을 사실상 중국 혼자서 방어하는 형국이었다. 당시 세계GDP 성장의 절반을 중국이 담당할 정도로 중국의 기여는 절대적이었다. 미국의 경기부양 규모가 여야 간 당파싸움으로 계속 확정이 지연되다가 처음 계획안보다 크게 줄어 간신히 통과한 것에 비해, 중국이 막대한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재빠르게 결정하고 집행한 모습은 마치 미국정치의 비효율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중국 공산당의 유능함이 더욱 강조되는 듯해 보였다. - P127

중국이 도광양회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생각과 야심에 대해 거침없이 외부에 표출하기 시작한 게 이즈음부터였다. 금융위기 발발한 후 중국은 공식적으로 미국 달러화 패권에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고, 중국 관영 언론들은 전 세계가 중국과 미국을 대등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호들갑을 떨며 앞다투어 보도했다.(중략)
중국은 미국이 내세운 극단적 자유방임의 신자유주의가 무너지는 걸 지켜보며 무조건적인 시장화가 만능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는 미국 모델의 대안으로 시장경제와 강력한 정부의 적극적 시장 개입의 혼합형인 중국형 경제모델을 세계에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때를 기점으로 중국은 더 이상 자신들의 속내를 억누르며 조용히 힘을 키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경제가 정치보다 우선이라는 외교 원칙도 이때부터 깨지기 시작한다. - P129

보시라이 정변 사태는 덩샤오핑이 만든 집단지도체제의 취약점이 극대화되어 발생한 정치적 위기이며, 후진타오 계파와 장쩌민 계파 간에 벌어졌던 치열한 권력 다툼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132

중국의 광역행정 단위인성은 면적과 인구 규모가 웬만한 유럽국가들과 엇비슷하거나 심지어는 더 크다. 여기에 중앙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후진타오 정권의 취약성까지 가미되자 당시 권력과의 연줄이나 배경이 있는 일부 성 정부의 최고 책임자는 사실상 지방 영주나 제후에 가까운 권한을 누리기까지 했다. 그랬기 때문에 상하이방에 속한 첸량위 상하이시 당서기가 중앙정부에 맞서며 노골적으로 갈등을 벌이다 숙청된 사건 같은 게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당시 중국의 정치권력은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며 자칫 중심까지 형해화될 수 있는 상황까지 치닫고 있었다.
중국 역사를 살펴보면 이렇게 수도에서 먼 지방에 권력 공백이 생길 때마다 반복적으로 생기는 어떤 패턴이 발견된다. 바로 해당 지역을 장악한 야심가가 강력한 지역 기반을 근거로 약해진 중앙 권력에 도전했던 역사 속에 ‘반란‘ 혹은 ‘정변‘으로 기록됐던 사건들의 반복 말이다. 후진타오 정권 말기의 중국 정치 상황은 이러한 지역 기반 야심가를 낳기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했고, 실제 그런 야심가가 정말 등장하여 엄청난 정치 스캔들을 일으킨다. 그 야심가가 바로 보시라이 당시 충칭시 당서기였다.

중국 최대 직할시 충칭시 당서기로 온 보시라이는 소위 ‘충칭 모델‘로 불리는 몇 가지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며 세간의 큰 관심을 받게 된다. 충칭 모델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농민들에게 도시 후커우를 개방하고, 공공 임대주택을 대대적으로 건설하며, 국영기업을 통한 대대적인정부 투자로 도농간 균형 발전과 빈부 격차 완화를 추구하는 모델이다. 그리고 정치·사회적 측면에서는 지역 조직폭력 집단 등을 강력한 공권력으로 소탕하며 공공질서와 치안을 강화하고, 마오쩌둥 찬양과 과거 홍군 혁명가 부르기, 문혁 시기 하방 체험하기 등을 통해서 미화된 과거의 정치적 추억을 자극해 복고적 유행을 불러일으키는, 한마디로 말해서 ‘관 주도 사회 기강 잡기 캠페인‘이었다. - P136

자칫하면 체제까지 흔들 뻔했던 쿠데타 사태에 대한 구조적 원인으로는 명목상 최고지도자의 허약한 리더십과 계파 간 권력 분점이 지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취약함을 노출시켰던 집단지도체제는 그 효용을 다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 P148

개혁개방 이전은 마오쩌둥 시대를 뜻하는 것이며, 개혁개방 이후는 덩샤오핑부터 후진타오 시기까지를 뜻한다. 시진핑이 보기에 마오쩌둥 시대와 덩샤오핑 시대는 서로 충돌하는 게 아니다. 두 시대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중국은 마땅히 두 시대의 유산 모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시진핑의 생각이다. 자신은 개혁개방으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집권했으니, 사실상 그동안 푸대접을 받아 온 개혁개방 이전 마오쩌둥 시기를 재평가하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진핑이 개혁개방 전후 30년 모두 계승해야 한다면서 마오쩌둥의 유산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한 저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시진핑 집권 직전 중국 공산당은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을 맞이했고, 정파와 이념과 노선에 따라 심각하게 분열되었으며, 내부 분열 심각도에 따라 통치에 안정성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시진핑은 이 모든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위기가 개혁개방 30년 시기의 후유증 및 부작용과 당의 지속적이고 지나친 우경화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개연성이 크다. 그리고 해이해진 당의 군기를 다시금 잡고 고삐를 쥐어야 하며, 그 작업을 위한 수단으로는 자신의 정치적 아버지이자 본인의 정치적 정체성을 만들어 준 마오쩌둥 사상과 마오쩌둥 시기를 다시금 소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으리라.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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