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 게리 올드만 외 출연 / UEK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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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먼저 읽고, 1979년판 BBC 드라마를 보고, 다시 원작을 한 번 더 읽고 나서야 나는 이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원작을 보지 않고 영화를 봤더라면 설명이 부족하다거나 이해하기 힘들다고 느낄 수도 있었겠구나. 하지만 원작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니 원작을 온전히 따라가지 않는 부분이 거슬릴 수밖에 없구나. 이것은 비단 이 작품 뿐만이 아니라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모든 영상물을 볼 때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딜레마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나 이 작품의 경우, BBC판 드라마가 워낙 원작을 충실하게 따라가며 재현해낸 수작이었기 때문에(물론 드라마의 경우 전체 7화짜리라 러닝타임 두 시간 남짓인 영화보다는 훨씬 자세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다) 나로서는 영화를 보면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더 많았을 수밖에 없었다.
자잘한 부분들-영화에서 생략된 세세한 장면들이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을 제외하고, 내가 감독의 각색 의도를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러니까 내게 있어 특히나 더 신경쓰이고 조금은 거슬리기도 했던 부분들을 중심으로 얘기해 보려고 한다.


1. 체코 스캔들
원작에서는 분량이 한참 지나서야 이 이른바 '체코 스캔들', 즉 '테스터파이 작전'에 관한 내용이 나오지만,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시간 순서상으로 거의 맨 처음에 위치하는 이 작전 장면을 맨 처음에 배치했다. 여하튼, 원작에서 테스터파이 작전이 수행되는 공간은 체코 프라하 외곽의 브루노라는 곳에 있는 안전가옥 앞의 숲 속이지만, 영화에서는 부다페스트의 노천 카페이다. 나는 이 작전 부분을 보면서 그저 어이가 없었다. 사정이 있어서 로케 촬영지를 체코가 아니라 헝가리로 바꿨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체 내용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 작전을 정말로 이렇게 대충 넘긴단 말인가?!
나중에 어느 블로그 포스팅에서 읽었는데, 작전 수행 장소를 체코가 아니라 헝가리로 바꾼 것은 헝가리에서 관세(세금?) 20% 감면 혜택을 주겠다고 해서였다고 한다. 그래, 언제나 이런 현실적인 조건이 문제가 될 것이다. '밀레니엄'에서 핀처가 후반부의 호주 로케 촬영을 생략한 것도, 모르긴 몰라도 결국은 뭐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작전을 그렇게 카페 앞 장면 하나로 넘겨 버리다니. 물론 드라마처럼 이삼십 분을 투자하여 작전을 자세히 묘사할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뭐, 리키가 파견된 곳이 원작에서는 홍콩이지만 드라마에서는 리스본이 되었다가 영화에서는 이스탄불이 되는 것 정도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2. 영화 속 사건의 시간대
원작에서, 서커스의 전 수장인 컨트롤의 지시로 짐 프리도가 테스터파이 작전을 수행했던 것은 10월의 일이었다. 컨트롤은 그 해 크리스마스 무렵에 사망했고, 조지가 은퇴하고 퍼시가 서커스의 새로운 수장이 된 후 리키 타르가 홍콩으로 파견되어 간 것은 이듬해 4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소설 속의 현재, 즉 조지 스마일리가 두더지(Mole) 색출을 위한 조사를 수행하고 있는 이 시점은 리키의 홍콩 출장으로부터 6개월 정도 후, 즉 10월쯤의 일이다. 짐이 모진 고초 끝에 영국으로 송환되어 등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하고 서스굿 사립학교로 부임한 것은 5월경의 일이며, 그 불과 얼마 전인 4월에 홍콩에서 리키를 만난 이리나는 서커스의 수장인 엘러라인을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서커스 당직실에 잠입한 피터는 리키가 전보를 보낸 4월분의 당직 일지를 확인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시간대가 다르다. 짐이 작전을 수행한 것은 11월(인가 10월인가;)로 되어 있으며, 조지는 피터를 시켜 서커스 문서 자료실에서 그 달의 당직일지를 빼내 오라고 지시한다.(원래 피터가 문서 자료실에서 확보해 오는 것은 테스터파이 작전 관련 서류지만.. 이런 세세한 건 그냥 넘어가고.) 이스탄불에서 리키를 만난 이리나는 서커스의 수장인 컨트롤(엘러라인이 아니라)을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영화 속의 사건의 시간대를 미처 다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리나가 컨트롤을 만나게 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을 본 나는 조금 당황했는데, 그 이후에 조지가 짐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에서 짐 앞에 이리나를 대려오는 회상 장면에서는 더욱 당황했다.(이리나가 영화에서는 비공식 항공편이 아니라 배를 타고 출국하는 것도 그냥 넘어가자.. 아놔 이런 세세한 거 다 따지다 보면 한도 끝도 없겠다.)
감독이 시간대를 이렇게 설정한 것은 무슨 의도일까? 하긴 원작에서는 각각의 사건들이 일어난 시간 간격이 워낙 길고 계속 회상을 통해서 서술되기 때문에 사건 순서를 파악하기 참 힘들긴 했다. 영화에서는 좀 축약하려고 했던 건가.

3. 레이콘의 저택에서의 회의
원래 순서는 이렇다. 복귀 예정일에 본부로 복귀하지 않아 탈주자의 신분이 되어 버린 리키 타르는 홍콩에서 말레이로 도피했다가 자신에 대한 추적을 눈치채고 비공식 루트를 통해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먼저 자신의 상관인 피터에게 연락하고, 피터는 다시 레이콘에게 연락하고, 레이콘은 피터를 시켜서 조지를 데려온다. 바로 이 부분에서, 피터는 조지의 집에 미리 들어와 기다리고 있다가 귀가한 조지를 만나 같이 출발한다.



 거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그는 그 문을 부드럽게 밀어서 더 열어젖혔다.
 「피터?」 그가 말했다.
 그는 열린 문틈으로 가로등 불빛에 비친 스웨이드 가죽 구두 한 켤레를 보았다. 게으르게 포개어진 그 구두는 소파 끝부분에 비죽 나와 있었다.
 「옷은 그대로 입고 있는 게 좋겠습니다, 조지, 올드 보이.」 다정한 목소리가 말했다. 「갈 길이 좀 멀어서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열린책들, 2005년, 49쪽

이 장면은 정말 인상적인 장면이며 특징적인 장면이라 뺄 수가 없다. 나는 영화에서 이 장면이 나오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을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서도 얼마나 인상적인 장면이었는데 이걸 그냥 넘기다니 싶었는데, 역시 나오기는 나오더라. 단, 도망자 리키 타르가 조지가 비워둔 집에 들어와 몇날 며칠을 살고 있던 걸 오랜만에 돌아온 조지가 발견했다-는 식으로 나온다.
리키 타르는 원작에서는 맨 처음 레이콘의 저택에서의 회의 후에 안전가옥으로 옮겨져 보호받고 있다. 도대체 이렇게 사건을 뒤섞어 놓은 것은 무슨 의도에서인가..

4. 샘 콜린스와 제리 웨스터비
로디 마틴데일이나 로더 스트릭랜드가 생략된 건 여기서 말할 필요도 없다. 원작에서 짐 프리도의 체코행에 동행하는 스캘프헌터 대원인 맥스가 생략되는 것은, 조지의 조사 단계에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인물이라 드라마에서도 빠졌으니 그냥 그렇다 치자. 그런데 원작에서 컨트롤의 요청을 받아 테스터파이 작전 당일에 당직을 섰던 것은 샘 콜린스이지 제리 웨스터비가 아니다. 제리 웨스터비는 신문기자로, 테스터파이 작전 후에 프라하에 방문하여 작전 당시 출동했던 체코 군인을 우연히 만나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조지에게 전해 주는 역할이다.
뭐.. 샘을 만나는 카지노 장면을 찍기가 여의치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제리도 술집에서 만날 게 아니라면 원작대로 샘으로 했어도 되는 거 아닌가?

5. 피터 길럼의 정체성
...그냥 이해가 안 간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다른 정체성이 아니라 성 정체성이다. 물론 다른 많은 분들도 언급하셨으리라 생각되지만.. 원작의 피터는 동성애자도 양성애자도 아니다. 피터는 이 조사 시작하기 바로 전에 여자를 만나서 자기 집에서 같이 살고 있단 말이지.. 아니 뭐 카밀라가 안 나오는 건 그렇다 치자. 어차피 카밀라가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리즈(가 맞나;)처럼 중요한 인물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도, 도대체 왜, 무슨 의도로 영화의 피터는 동성애자가 되어야 했던 것인가. 그래서 좋다 나쁘다 하는 게 아니라 굳이 원작의 설정을 바꾼 것이 그냥 이해가 안 간다. 의도를 모르겠다.

6. 그 밖의 세세한 부분들
조지가 수영하는 모습은 왜 나와야 했던 것이며..('천사와 악마' 영화판에서 톰 행크스의 첫 등장 장면을 봤을 떄와 비슷하게 당황스러운 느낌이었음)
토비 이스터헤이즈는 왜 난데없이 현상수배자가 되어서 비행기 앞에서 찌질하게 울어야 했던 것이며..(안전가옥에서 피터가 을러대는 거 보고 싶었는데!)
'멀린'의 안전 가옥(그러고보니 소스 멀린이란 말도 영화엔 안 나왔나?)의 신호는 어쩌다가 우유 두 병에서 환풍기로 바뀐 것이며.. 아니 이건 너무 사소한 부분이군.
...뭐, 여하튼 그런 것들. 원작의 그런 세세한 부분을 하도 들이파며 읽었더니 원작과 다른 것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이네.orz

7. 좋았던 부분들
#더 말할 것도 없는 사내 크리스마스 파티 장면. 원작에서는 조지가 코니를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 장면에서 회상이랄 것도 없이 잠깐 언급되며 지나가는 그 파티가 영화에서는 멋지게 영상화되었다. 앤과 빌의 불륜, 그리고 현재의 별거 상황에 대해 그 전까지 따로 설명이 나오지 않았지만(원작에선 조지를 만나는 사람마다 앤은 잘 지내냐고 떠보듯이 물어보는데!! 보는 내가 다 짜증나..) 크리스마스 파티 때의 두 사람의 시선 교환, 그리고 다음에 나오는 밀회 장면을 통해 앤과 빌의 관계, 그리고 빌과 조지의 껄끄러운 관계에 관해 설명한다.
짐과 빌의 관계 역시, 절친한 친구로 알려져 있으며 조지가 서류상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옥스포드 재학 당시 빌이 짐을 추천하여 정보부에 들어오게 했다든가 하는 원작의 설명은 영화에서는 충분히 나오지 않았지만 그 대신 크리스마스 파티에서의 모습을 통해 두 사람의 사이를 암시한다.

#그리고 앤. 앤은 영화 속에서 결코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파티 장면에서 두 번 등장하지만 두 번 다 뒷모습이 보일 뿐이다. DVD에 특전 영상으로 들어 있는 삭제된 장면 중에 제리 웨스터비가 조지의 집에 전화를 거는 장면이 있는데, 앤이 전화를 받는 그 장면에서도 앤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마지막에 집에 돌아온 앤의 모습 역시 벽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원작에서 카를라는 앤, 정확히는 조지의 앤을 가리켜 '환상 없는 사람의 단 한 가지 환상'이라고 표현하는데, 영화에서의 앤에 대한 접근은 정말로, 실체가 보이지 않는 환상 같은 느낌이다.

#컨트롤의 체스 말들. 조지가 피터를 대동하고 컨트롤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은 영화의 오리지널인데, 팅커, 테일러, 솔저, 푸어맨, 베거맨이라는 암호만으로도 이미 인상적이지만 그것을 체스 말에 암호와 사진을 함께 붙여 놓은 식으로 형상화한 것은 정말 상징적이고도 인상적이었다. 원작과 드라마에 나오는 마트료시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피터가 당직 일지(원작에서는 테스터파이 작전에 관한 서류)를 빼내는 장면에서, 긴장한 채로 서류를 바꿔치기하며 손이 덜덜 떨리는 연기도 물론 좋았지만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커스의 최상층-이른바 탑 테이블-로 올라가 회의에 참석하고 내려오다가 자기를 지나쳐 가는 로이 블랜드가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듣고 표정이 굳는 그 장면이었다. 멘델이 피터의 작전을 돕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멘델이 전화를 걸었던 자동차 정비소에서 울려퍼지던 노래와 같은 노래를 로이가 흥얼거리는 것을 듣고 그 전화가 도청당했구나, 정말로 조지의 말대로 나는 감시당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의 연기가 아주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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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gene 2012-09-03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터의 성정체성 부분이요

develgene 2012-09-03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은 게이 문화가 보편적이거든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여성보다 남성이 감상적 공감대 형성이 좀 무딘 경우가 많잖아요. 현재 영국의 사회적

develgene 2012-09-03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와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위한 하나의 장치인듯 합니다.

세류 2012-09-04 12:12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원작에 그런 요소가 없는 것도 아닌데(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나긴 하지만) 하필이면 원작에서는 그런 정체성과 거의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좋을 피터 길럼의 정체성을 그렇게 바꾼 것이 좀 이해가 안 갔어요.^^;
 

일관되게 심란한 취향..-_-

네 편까지는 고정되어 있는데 마지막 한 편이 가끔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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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조 판톨리아노 외 출연 / 엔터원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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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열린책들 세계문학 27
에드몽 로스탕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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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드 벨주락'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좀 애매한 계기이기는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아주 좋아했던 게임인 소프트맥스 사의 '서풍의 광시곡'을 통해서였다. 게임의 주인공인 시라노 번스타인의 모델이 바로 시라노 드 벨주락이라고 게임의 설명서에 명시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과 문학 작품들을 참고하여 스토리를 구성한 그 게임은 내게 아직까지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게임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 벌써 십 년도 더 전이다.


언젠가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번역본을 찾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 책이 다시 기억난 것이 작년이었다. 당시 개봉한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라는 영화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당시 구입한 에코의 신작 소설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이 책을 다시 기억해내고 바로 주문해서 받아 보게 되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책을 차분히 정독하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시라노라는 인물은 첫 등장부터 독자를 사로잡을 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시라노와 크리스티앙, 그리고 록산 세 사람의 관계는 독자로 하여금 시종일관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쫓아가며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시라노의 달변, 그 속에 숨어 있는 록산에 대한 순수한 사랑, 하지만 그러한 사랑의 말들이 크리스티앙을 통해서만 록산에게 전해질 수 있다는 아이러니는 애수와 함께 묘한 웃음을 선사한다.

마지막에 찾아온 죽음 앞에서도 결코 '오래된 모든 적들'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강직함과 고결함은 시라노라는 인물의 매력을 한층 더해준다. "난 단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를 두 번씩이나 잃는구나"라는 록산의 말에 나는 결국 눈물짓지 않을 수 없었다.

열린책들의 완역본을 통해 이 유명한 희곡을 접할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했다. 책의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말을 통해서도 작가와 작품, 그리고 작품이 창작된 시기의 분위기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불어 원본을 읽을 수 있다면 역시 가장 좋겠지만 옮긴이가 최고의 정성을 기울여 번역했을 것이라는 데는 확실한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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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놓고 한 번이라도 본 것들은 그냥 아끼는 DVD의 범주에 들어가는 듯-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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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시즌 1 (6disc)
리처드 J. 루이스 외 감독, 타라지 P. 헨슨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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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일부 장면 무암전 출시
데이빗 핀처 감독, 다니엘 크레이그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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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 SE (2disc)- 할인행사
밀로스 포만 감독, 톰 헐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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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초특가판] 인피니티 특별할인
첸 카이거 감독, 장국영 외 출연 / 인피니티(Infinity)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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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160
메리 셸리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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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실 이전에 이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영화도 본 적이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원작을 읽은 적은 없어도 영화로 먼저 접한 경험이 있을 테지만 나는 영화조차 본 적이 없다. 이 정도로 유명한 책들-예를 들어 이 책 말고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라든가 '드라큘라' 같은 책들-은 사실은 제대로고 대충이고 읽은 적이 없지만 왠지 언젠가 한 번은 읽어 본 것만 같고 이야기를 얼추 아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자마자 나는 내가 이 이야기를 전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익숙했던 것은 그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괴하게 생긴 거구의 괴물,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체라는 이미지일 뿐이었다.


 이 소설은 액자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다. 바깥 액자는 월턴이라는 탐험가가 북극을 탐험하며 자신의 누이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태로 서간체의 형식을 가지고 있고, 안쪽의 액자가 바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그가 만들어낸 생명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안쪽 액자에서 전개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회상이 워낙 인상적인 터라 이 소설에서 바깥 액자는 별로 의미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인류에게 이로운 발견을 하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극지방을 탐험하는 월턴과 순수하게 과학적 지식에 대한 갈망에서 출발하여 생명의 원리를 찾아내려 했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서로 상당 부분 닮아 있다. 바로 이런 유사성 때문에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생면부지의 사람인 월턴에게 자신의 과거를 그렇게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의미를 발견하기 이전에 서간체라는 형식에 더 집중하게 되어, 유사한 형식으로 이야기의 서두를 시작했던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떠올라 그 소설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책의 맨 처음 부분에 수록된 1831년판 서문에서 셸리는 자신이 꿈을 꾸면서 느꼈던 오싹하고 두려운 느낌을 독자에게 전달하려 했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 이야기를 읽는 현대의 독자인 나는, 특히나 이미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미지가 지극히 보편화된 지금에 와서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나는 셸리가 느낀 만큼의, 그리고 의도한 만큼의 공포를 느끼지는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무섭지는 않았고, 오히려 소설의 여러 부분에서 상당히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과학적인 지식에 대한 탐구심은 물론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정도가 지나쳐 생명의 신비를 파헤쳐 생명체를 직접 만들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이라든가, 그렇게 창조해낸 생명체를 보자마자 혐오감을 느껴 자신의 피조물을 그렇게나 쉽게 버렸다는 것이라든가, 그 피조물이 창조주인 자신에게 호소하는 말들을 전혀 믿거나 받아들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들이 훨씬 더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태어나자마자 어버이이자 창조주인 박사에게 버려지고 사람들에게 배척당해 잔인해진 괴물을 동정하고 그에게 공감하게 되었고, 박사의 무책임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실망하게 되었다. 나는 박사가 괴물의 청을 한 번 거절했을 때부터, 아니, 그 이전에 박사가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을 버리고 떠나 버린 그 순간부터 박사의 주변에 차례차례 일어난 비극은 예정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었을, 창조주의 정성어린 인도를 받았다면 고귀한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를 괴물의 불행한 일생을 나는 박사의 불행보다 더 동정하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괴담'이라는 작가의 처음 의도와는 다른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책의 서두에 두 가지 판본의 서문을 전부 실어 주어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모티프가 된 분위기를 알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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