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160
메리 셸리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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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실 이전에 이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영화도 본 적이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원작을 읽은 적은 없어도 영화로 먼저 접한 경험이 있을 테지만 나는 영화조차 본 적이 없다. 이 정도로 유명한 책들-예를 들어 이 책 말고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라든가 '드라큘라' 같은 책들-은 사실은 제대로고 대충이고 읽은 적이 없지만 왠지 언젠가 한 번은 읽어 본 것만 같고 이야기를 얼추 아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자마자 나는 내가 이 이야기를 전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익숙했던 것은 그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괴하게 생긴 거구의 괴물,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체라는 이미지일 뿐이었다.


 이 소설은 액자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다. 바깥 액자는 월턴이라는 탐험가가 북극을 탐험하며 자신의 누이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태로 서간체의 형식을 가지고 있고, 안쪽의 액자가 바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그가 만들어낸 생명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안쪽 액자에서 전개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회상이 워낙 인상적인 터라 이 소설에서 바깥 액자는 별로 의미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인류에게 이로운 발견을 하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극지방을 탐험하는 월턴과 순수하게 과학적 지식에 대한 갈망에서 출발하여 생명의 원리를 찾아내려 했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서로 상당 부분 닮아 있다. 바로 이런 유사성 때문에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생면부지의 사람인 월턴에게 자신의 과거를 그렇게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의미를 발견하기 이전에 서간체라는 형식에 더 집중하게 되어, 유사한 형식으로 이야기의 서두를 시작했던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떠올라 그 소설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책의 맨 처음 부분에 수록된 1831년판 서문에서 셸리는 자신이 꿈을 꾸면서 느꼈던 오싹하고 두려운 느낌을 독자에게 전달하려 했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 이야기를 읽는 현대의 독자인 나는, 특히나 이미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미지가 지극히 보편화된 지금에 와서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나는 셸리가 느낀 만큼의, 그리고 의도한 만큼의 공포를 느끼지는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무섭지는 않았고, 오히려 소설의 여러 부분에서 상당히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과학적인 지식에 대한 탐구심은 물론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정도가 지나쳐 생명의 신비를 파헤쳐 생명체를 직접 만들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이라든가, 그렇게 창조해낸 생명체를 보자마자 혐오감을 느껴 자신의 피조물을 그렇게나 쉽게 버렸다는 것이라든가, 그 피조물이 창조주인 자신에게 호소하는 말들을 전혀 믿거나 받아들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들이 훨씬 더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태어나자마자 어버이이자 창조주인 박사에게 버려지고 사람들에게 배척당해 잔인해진 괴물을 동정하고 그에게 공감하게 되었고, 박사의 무책임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실망하게 되었다. 나는 박사가 괴물의 청을 한 번 거절했을 때부터, 아니, 그 이전에 박사가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을 버리고 떠나 버린 그 순간부터 박사의 주변에 차례차례 일어난 비극은 예정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었을, 창조주의 정성어린 인도를 받았다면 고귀한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를 괴물의 불행한 일생을 나는 박사의 불행보다 더 동정하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괴담'이라는 작가의 처음 의도와는 다른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책의 서두에 두 가지 판본의 서문을 전부 실어 주어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모티프가 된 분위기를 알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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