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 열린책들 세계문학 27
에드몽 로스탕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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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드 벨주락'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좀 애매한 계기이기는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아주 좋아했던 게임인 소프트맥스 사의 '서풍의 광시곡'을 통해서였다. 게임의 주인공인 시라노 번스타인의 모델이 바로 시라노 드 벨주락이라고 게임의 설명서에 명시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과 문학 작품들을 참고하여 스토리를 구성한 그 게임은 내게 아직까지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게임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 벌써 십 년도 더 전이다.


언젠가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번역본을 찾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 책이 다시 기억난 것이 작년이었다. 당시 개봉한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라는 영화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당시 구입한 에코의 신작 소설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이 책을 다시 기억해내고 바로 주문해서 받아 보게 되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책을 차분히 정독하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시라노라는 인물은 첫 등장부터 독자를 사로잡을 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시라노와 크리스티앙, 그리고 록산 세 사람의 관계는 독자로 하여금 시종일관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쫓아가며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시라노의 달변, 그 속에 숨어 있는 록산에 대한 순수한 사랑, 하지만 그러한 사랑의 말들이 크리스티앙을 통해서만 록산에게 전해질 수 있다는 아이러니는 애수와 함께 묘한 웃음을 선사한다.

마지막에 찾아온 죽음 앞에서도 결코 '오래된 모든 적들'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강직함과 고결함은 시라노라는 인물의 매력을 한층 더해준다. "난 단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를 두 번씩이나 잃는구나"라는 록산의 말에 나는 결국 눈물짓지 않을 수 없었다.

열린책들의 완역본을 통해 이 유명한 희곡을 접할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했다. 책의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말을 통해서도 작가와 작품, 그리고 작품이 창작된 시기의 분위기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불어 원본을 읽을 수 있다면 역시 가장 좋겠지만 옮긴이가 최고의 정성을 기울여 번역했을 것이라는 데는 확실한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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