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글샘 > 천 년 전의 라 퐁텐느 우화집

초등학교 3학년 때 고전읽기라는 미명하에 여름방학을 반납하고 이솝 이야기를 달달 외우던 때가 있었다. 그 때는 군사문화 시절이라 어린이들 모아놓고 고전읽기 경시대회를 했다. 난 우화를 읽으면 그 시절 생각이 난다. 더운 여름날 선생님과 오밀조밀 모여앉아 글을 읽고 선생님께서 문제를 내시면 사뭇 정신없는 이야기에서 답을 찾아 내던. 난 그 때 선생님이 예쁜 여선생님이어서 기분이 그닥 나쁘지 않았지만, 여름방학 내내 땀흘리며 대회에 나갔던 일은 지금도 기분이 별로다. 아무 생각없이 나간 부산시 대회에서 떨어진 건 당연한데, 아무 생각 없는 3학년인 내가 그 대회에 나간 것도 신기하고, 그 대회에서 상을 탄 다른 아이들도 신기하다. 어떻게 그 아이들은 상을 탈 수 있었던 것일까...

오랜만에 우화를 읽으면서 우화는 재미있는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우화는 풍자를 위하여 우의적으로 쓴 이야기라고 가르치는데, 우화의 핵심은 풍자에 있다. 지금 생각하면 노예였던 이솝이 주인에게 비꼬아댔던 풍자의 수준은 정말 대단했다. 프랑스의 라 퐁텐드의 우화는 조금 낯선 것도 있지만, 봉건시대의 지혜가 들어있다.

당나귀와 주인 ; 밭일을 하는 당나귀가 새벽이 오는 것을 보고 '수탉은 아침에 노래만 하면 되지만, 나는 늑장을 부릴 수 없어. 장에 내다 팔 야채를 싣고 가려면 언제나 새벽잠을 설쳐야 해.' 당나귀의 불평을 들은 주인은 구둣방 주인에게 당나귀를 넘겨 주었다. 무거운 가죽과 지독한 냄새는 불만투성이 당나귀에게 충격적이었다. '옛 주인이 그립구나. 머리만 돌려도 그를 따라갈 텐데. 그 곳에는 야채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로 지천이었는데. 이 주인은 회초리만 휘두르니.' 불쾌한 구둣방 주인은 당나귀를 숯장수에게 팔아 버렸다. 숯을 잔뜩 지고 가면서 그는 또 불평을 했다. 그러자 운명이 화를 냈다. "또 뭐야? 너 같은 불평은 유명하다는 군주들도 갖고 있어. 누구든 자기 처지에 만족하는 줄 아나. 나는 허구한 날 네 불평만 들어야 하니?"

운명이 옳다.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다. 우리는 만족하는 법이 없다. 현재를 늘 불평한다. 자신의 운명에 늘 불평하는 자는 어떤 상황이 되어도 만족하지 못한다.

늑대와 어린 양 : 어린 양이 목을 축이고 있었다. 먹을 것을 찾고 있던 배고픈 늑대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누가 내 물을 흐려 놓으라고 했지? 네 행동은 벌을 받아 마땅해." 늑대는 호통을 쳤다. "늑대님,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저는 늑대님의 옹달샘에서 스무 발자국이나 떨어진 곳에서 목을 축였어요. 제가 늑대님의 옹달샘을 흐려 놓다니요." 어린 양은 있는 힘껏 변명을 해댔다. "시끄러, 너는 작년에도 내 샘을 흐려 놓았어." 늑대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 저는 작년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이제 막 엄마 젖을 떼었단 말이에요." 어린 양은 계속 변명을 했다. "네가 아니었다면 네 형이 그랬겠지." 늑대는 좀처럼 믿지 않았다. "저는 형제가 없어요." "그렇다면 네 가족 중 누군가 그랬겠지. 게다가 너를 치는 목동이나 개들이 나를 얼마나 귀찮게 하는 줄 알아? 그 벌을 네가 대신 받아야겠어." 늑대는 어린 양의 설명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숲으로 물고 가 버렸다.

이유가 분분한 자가 이길까?

예리한 그림들과 함께 중세의 삶을, 그 팍팍하던 계급 사회를 잘 보여주는 우화들이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 꼭지들을 되씹으면서 역사는 발전하는가, 사람의 삶은 과연 나아지고 있기나 한 걸까? 하는 생각으로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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