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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겐 2
나카자와 케이지 글.그림, 김송이.이종욱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0년 8월
평점 :

나카자와 케이지의 [맨발의 겐] 2권을 다 읽고난 후_ 제일 인상적인 대목은 복숭아 관련 에피소드. 죽은 아들의 시체를 부여안고 자 아가 엄마가 너 좋아하는 복숭아를 이렇게 가져왔단다, 먹어보렴, 하고 껍질도 까지 않은 복숭아를 아들의 시체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는 장면. 수많은 파리떼들을 쫓아보내려는 겐을 막으면서 하지 마라, 이 파리떼가 내게는 죽은 아들의 혼처럼 느껴지니, 라고 말리며 여성은 복숭아 하나를 겐에게 내민다. 고맙구나 먹으렴, 하고. 허기에 당장 그 복숭아를 입 속에 넣고 싶은 마음을 꾸역꾸역 참으면서 우리 엄마 갖다 줘야지, 우리 엄마 이 복숭아 먹으면 젖도 생길 테고 그럼 이제 막 태어난 내 여동생도 배불리 젖을 먹을 수 있으니, 라고 겐은 생각하며 기뻐한다. 그리고 우연히 죽은 친누나와 닮은 이를 만나 누나 누나 반가워하다가 친누나가 아닌 걸 알아챈다. 아 맞아 내 누나는 내 눈앞에서 불타 죽었지, 하지만 친누나와 너무 닮은 모습에 아픈 소녀를 외면하지 않고 데리고 구호소까지 간다. 물을 간절하게 찾는 소녀에게 잠깐 주저하다가 누나 물 대신 이 복숭아라도 먹어요, 라고 복숭아를 내민다. 소녀는 고마워하며 복숭아를 감사히 먹는다. 엄마 줘야 했는데 하지만 이 누나도 목말라하니. 아직 2권까지만 읽었으나 비정한 이 세상, 비정한 이 세상 사람들, 이라는 어린 겐의 한탄 어린 말이 자주 나온다. 비정한 이 세상에서 겐은 다정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겐을 살려주는 이들도 낯선 다정한 이들이다. 원폭 투하로 인해 히로시마에는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어마어마하게 생기고. 그 고아들은 자기네들끼리라도 살아보겠다고 뭉쳐서 떼거지로 다니며 힘을 행사한다. 달구지를 끌고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길을 떠나는 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고아들은 중얼거린다. 좋겠다, 네게는 엄마가 있어서. 그러니까 다시 복숭아. 사랑을 많이 받고 살면 사랑을 많이 주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을 동생 진이와 자주 하곤 하지만 기질도 한몫 한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허기에 내 배와 등이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는 지경에 얻은 복숭아를 다른 이에게 선뜻 내밀 수 있는 성정이라는 건 어떤 건가 싶어서. 효자 겐의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스승이 떠오르는데 스승도 어머님에 대한 애정이 그득하다.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삶이지만 내 엄마를 위해서 수천 번, 수만 번 어쩔 수 없이 인간으로 태어나야 한다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어, 라는 말이 꽤 인상 깊어 엄마에게 그 말을 한 적 있다. 물론 아내에 대한 사랑도 자식들에 대한 사랑도 대단하겠지만 내 엄마를 위해서 수만 번, 영겁의 시간 동안 비천한 인간의 삶을 굴레처럼 보낸다 해도 그럴 수 있어, 라고 한다면 역시 어머님에 대한 마음이 제일 깊은 게 아닐까 싶다. 모두 다 같은 사랑이고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유일한 사랑은 유일하고 가장 지극한 마음은 오직 한 사람에게로 향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니 나의 스승이 그리워지는군. 다시 겐에게로 돌아가서_ 계속 읽어보고. 5년 전 이맘때에도 복숭아를 먹으면서 복숭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앤드레 애치먼의 소설을 읽고 있었다. 올해 여름은 나카자와 케이지의 복숭아, 비정한 세상 속에서 돌고 도는 복숭아, 분홍빛 사랑, 다정하고 그득해 바다처럼 넘실거려 사람들에게 정을 베풀면서 유쾌하게 삶을 짓누르는 고통을 과감하게 이겨내려는 겐, 이 아이가 낯선 이에게 내밀던 복숭아로 기억에 남겠군. 복숭아는 내게 삶을 가르쳐준다. 이 매개체가 남은 내 삶에서 얼마나 자주 등장할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기대된다. 달콤하면서도 아름다운 그 과육을 내 입 속으로 집어넣으면 어느 것이 내 혀이고 복숭아인지 모르겠다. 마치 사랑하는 이와 키스를 하는 느낌이기도 하고. 그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거칠게 나를 안고 미친듯 입을 맞출 때 복숭아를 먹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혼자 쿡쿡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