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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이 되고 민이가 마흔여덟 되는 기분은 어때? 라고 물어봐서 잠깐 곰곰 머리를 굴린다. 별 거 없다. 마흔셋 이후로는 나이에 더 이상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다. 마흔셋 이후로는 나이 세는 게 좀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라. 그러니 엄마는 마흔여덟이 되어도 뭐 별반 다를 바 없을듯 싶다. 더 어리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만 여기에서 더 어려지면 너에게 언니_라고 불러야 할 수도 있으니 이 에미 체면이 있으니 정신 연령은 그냥 17세로 유지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제가 곧 마흔여덟 아닙니까. 근데 정말 진심으로 17세 그때 그 망탈리떼 그대로입니다. 여기에서 하루도 더 나이 먹고 이런 게 안 생김. 17세에 제일 사랑하던 두 여성이 있는데 니체의 연인으로 유명한 루 살로메와 뒤라스 언니. 난 그때 언니들처럼 살고 싶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때 열일곱에 마음 먹었던 그런 것들과 그때 읽었던 그런 것들이 혼합되어서 형성된 망탈리떼가 30년이 흘러도 그대로인 게 아닐까 싶다. 철없이 살면 철없이 사는 즐거움이 있다. 주변인들이 좀 피곤해지긴 하지만. 내가 열일곱인지라 내 딸아이는 나를 우리 언니_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또 이런 식의 모녀 관계도 존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싶다. 둘이서 미친듯 이런저런 이야기할 때 두세 시간 훌쩍 지나가면 기분 엄청 좋다.
2023년은 내가 살고싶은대로 살겠다_고 정한 마음을 하나의 현실로 이룬 날들이었다. 의도치 않게 10키로 이상을 감량했고 스물셋 이래로 55 사이즈를 되찾았고 건강을 되찾았다. 1월 초 몸무게가 딱 64키로였다. 아 이러다가 65 넘겠구만 했고 가뿐하게 어느 날 과음과 과식을 하고난 후 65를 찍고 슬슬 다이어트를 하도록 하자 했다. 코로나 걸리기 전까지 열심히 운동을 했고 딱 58키로를 찍고 코로나에 걸려 다시 60을 찍고 아 이 몸으로 그냥 죽을 때까지 살도록 하자 싶어서 두 달 동안 운동도 쉬고 걷기도 쉬고 다시 침체 모드로 갔다가 날이 좋아지면서 다시 빨빨거리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고나니 조금씩 살이 빠졌고 먹는 건 여전히 많이 먹었다. 생각할거리가 많아서 한여름 미친듯 걷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내 사유 시간은 늘어났고 그러는 동안 발걸음은 빨라졌고 그렇게 매일 3시간 넘게 서울 거리를 돌아다녔고 53을 찍고나니 병든 거 아니냐?는 소리를 여기저기에서 들었다. 지네에게 물려서 나흘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처음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원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다. 민이 낳고난 후에도 딱 하루 병원에 있었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알았다. 나는 병원에서 죽기는 글렀구나 성격이 지랄맞아서. 이러다가 복장 터져 죽겠다. 답답해서. 당시 일기장에도 그렇게 써넣었다. 바디 프로필을 찍어 볼까, 나도_ 그런 생각을 했다가 관뒀다. 나는 역시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_는 걸 이번에 다시 알았기에. 그냥 스트레칭만 하고 걷고 막춤을 추는 걸 좋아하는구나 알았다. 마음은 열일곱이지만 육체는 그러하지 않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한다. 스트레칭 하루라도 건너뛰는 날에는 온몸이 아파 죽으려고 한다.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나는 필멸한다.
친구가 얼마 전에 쓴 글 있다. 그 글의 제목은 '나의 낙하를 받아줄 이'다. 2023년에 말 그대로 나는 투기를 했다. 돈 걸린 투기 아님. 난 그런 돈도 없고 돈 관련해서 헤아리는 일 자체를 하지 못한다. 능력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내 관심 영역 밖이다. 얼마 전에 엄마와도 이야기한 부분이지만_ 엄마는 왜 자꾸 돈 돈 돈 거려? 말하니 너는 왜 그렇게 돈에 무관심해? 그래서 둘 다 엄청 웃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다르게 살아갈 수 있으려나 회의적인 마음이 들긴 하지만. 다시 투기로_ 존재 자체를 던졌고 이렇게 내 존재를 통째로 던져버린다면 실존주의 방식에서 뜻하는 어떤 투기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했다.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건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던졌는데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으깨진 몸으로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렇게 해서 나는 온몸과 온마음을 던졌고 이전의 삶과는 다른 생의 방식을 맞이했다. 다른 페이지를 펼치도록 하자. 내 생의 챕터들이 몇 장으로 이루어질지는 노년이 되어 가봐야 알 일이지만 2023년은 내 생의 한 챕터가 끝났고 새로운 챕터를 펼칠 수 있는 나날들이었다. 두려움이 아주 없다고는 말 못한다. 그렇지만 친구의 글이 뜻하는대로 어떤 의미에서 '나의 낙하를 받아줄 이'는 궁극에 유일하니까. 다른 식으로는 2023년 마지막 날이 되어보니 내 곁에 여전히 있는 이들, 그리고 내 곁으로 새롭게 와준 이들 역시 나의 낙하를 받아준 이들이다. 주절주절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와서 소리없이 읽어주시는 이들_ 당신들 역시 나의 낙하를 받아준 이들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