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갈리폴리 : 죽음 앞에 선 청춘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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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폴리 - [할인행사]
피터 위어 감독, 멜 깁슨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1914년 8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터키(투르크)는 처음의 중립정책을 포기하고 흑해의 러시아 항구를 공격했다. 이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 연합국은 즉시 터키에 선전포고를 한다. 당시 영국의 해군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영국정부에 전함으로 콘스탄티노플을 폭격해 터키를 굴복시킬 계획을 입안하여 추진한다. 1914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무렵까지는 많은 영국인들이 전쟁을 끝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이 전쟁이 훗날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될 끔찍하고 지루한 전쟁이 될 것이라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과 달리 전쟁은 교착상태가 되었고, 터키의 참전은 예로부터 "인도로 가는 길"을 가로막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대한 영국의 정복욕을 부추겼다. 더욱이 터키가 차지하고 있던 아랍은 영국이 필요로 하는 유전지대가 있는 20세기의 노른자위가 될 지역이었다.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었던 해군장관 처칠은 1915년 3월 18일 해군 참모총장 존 피셔를 비롯한 현역 해군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수한 육군 5천 명과 영국의 해군력이면 터키의 위협을 끝장낼 수 있다"며 갈리폴리 반도 침공을 개시했다.
대영제국 해군은 일찍이 에스파냐의 무적함대(Armada)를 격파한 이래, 나폴레옹의 군대을 무찌르고 승승장구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 신대륙에 걸쳐 식민지를 건설했고, 전세계 인구 중 4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유니온 잭 깃발 아래 살도록 만든 영국 제국주의의 원동력이었다. 갈리폴리 반도를 침공하는 영국 해군은 당시 세계 최강의 전함으로 알려진 퀸 엘리자베스를 기함으로 하여 드래드노트(Dreadnaught)급 신형 전함 22척을 동원하여 단숨에 노쇠한 터키를 제압하려고 했다. 영국은 아직도 과거의 영광이 재현될 것이라 믿었으며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세계의 어디에서든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갈리폴리를 지키는 터키군 지휘관은 훗날 아타 투르크라고 불리우게 될 케말 파샤였다. 위풍당당하게 다르다넬스 해협에 도착한 영국군은 작전 초반부터 예상치 못했던 터키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어려움에 봉착하자 갈리폴리에 대한 수륙양동작전을 통해 이 난관을 돌파하려고 했다. 그런 계획 하에 투입된 앤잭군과 영국군은 비좁은 상륙지점에 잘못 상륙하는 등 계속된 불운과 무능한 지휘관의 작전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며 8개월동안 고립되어 있어야 했다. 이 작전은 1915년 8월 다르다넬스 해협 작전에 투입된 12척의 연함군 전함 중 3척이 침몰하며 취소된다.
터키군은 케말 파샤의 탁월한 지휘 아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 전선에서 사용된 전술, 지긋지긋한 참호전을 펼치고 있었고, 호주군을 포함한 영국군은 악명높은 돌격 전술을 반복하고 있었다. 결국 1915년 8월초 영국군은 이스탄불에서 좀더 가까운 수블라만을 상륙지점으로 하는 새로운 작전을 구상하게 된다. 이때 터키군이 이들이 상륙할 수블라만에 대해 신경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교란 작전을 펼치도록 했다. 영국군 최고사령부는 호주와 뉴질랜드 군에게 앤잭 코브에 대한 정면 공격을 명령한다. 호주 제10경기병대는 물론 정예부대였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자살행위와 같은 것이었다.
이들의 작전이란 참호를 기어올라 터키군이 겨냥하고 있는 기관총을 향해 무인지대를 통과하여 돌격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희망이 있다면 정확히 오후 4시 30분에 있기로 한 맹렬한 포격뿐이었다. 포격이 있는 동안 터키군은 참호 속에서 머리를 못 들테니 그 사이에 참호를 뛰쳐나가 적진 가까이 달려나가야 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4시 30분에 있기로 한 포격이 23분부터 시작되었고, 그 포격조차 터키군 진지를 향해 이루어지지 못했다. 7분간의 정적이 흐르고 포격은 오히려 호주군의 작전 계획을 적에게 노출한 셈이 되고 말았다. 호주군은 예정대로 4시 30분에 공격 제1진을 참호 위로 올려 보냈다. 터키군은 조용히 참호에 앉아 참호를 기어오르는 호주군 병사들을 쏘아 죽이기만 하면 됐다. 그후로도 2분 간격으로 3차례나 공격을 시도했지만 호주군은 참호 위로 올라서기가 무섭게 학살당했다. 단 10분만에 호주군은 전 병력의 90%를 잃었다.
황량한 들판과 사막. 아치(마크 리)는 달리기에 자신의 모든 꿈을 걸고 있다. 그는 마치 영화 <불의 전차>에 나오는 젊은이들처럼 달리고 또 달린다.(이 달리기 장면이 첫 장면부터 사용되는 이유는 이 영화 전체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앞서 말했던 다른 전쟁 영화 <특전 U-보트>의 시험 잠행 장면, <멤피스벨>의 폭격기 귀환 때 앞바퀴가 나오지 않아 결국 착륙에 실패하는 장면과 함께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의 전체를 암시하고 있다. 게다가 아치와 프랭크의 경주 장면, 그리고 젊은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향해 얼마든지 달려갈 수 있음에도 전쟁에서는 결국 죽음을 향한 질주가 될 수밖에 없다는 비참한 상징으로서도 중요하게 쓰인다.) 호주 서부 오지에서 목장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돕고 있는 아치 해밀턴(Archy, 마크 리)은 단거리 경주가 뛰어나 당시 유명한 단거리 선수인 해리 라살즈의 기록과 대등하다. 큰아버지뻘인 잭 아저씨(Uncle Jack: 빌 커 분)의 권유로 아치는 집을 떠나 킴벌리 컵 대회에 출전해 우승한다.
잭: "너의 다리는 뭐지?"
아치: "용수철"
잭: "그걸로 뭘하지?"
아치: "달릴거에요"
잭: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지?"
아치: "표범보다 빨리 달릴수 있어요."
(이 대사는 그가 죽어갈 때 다시 그의 귓가를 맴돈다.)
이때 만난 프랭크(Frank Dunne: 멜 깁슨) 역시 단거리에 자신있어 20파운드를 걸고 출전하지만 발에 상처까지 있는 아치에게 지고 만다. 프랭크는 가진 돈을 모두 날린 다음 여관을 몰래 빠져나온다. 아치와 프랭크는 그 인연으로 이내 친해지고, 아치는 결국 잭 아저씨를 두고 군 입대 모집에 나서지만 18세 밖에 되지 않는 나이 때문에 연령 미달로 떨어지고 만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군에 입대하고 싶은 아치는 프랭크와 함께 퍼스(Perth)로 향하지만 기차를 잘못 타 사막을 건너는 모험을 한다. 이때 두 사람은 탐광업자(探鑛業者)를 만나는데 그는 두 사람의 행선지를 묻는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의 암살 소식과 벨기에 침공 소식을 모르고 있던 이 탐광업자는 전쟁이 터졌다는 말에, "전에 독일인 한 사람을 알았던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이 오스트레일리아와 무슨 상관이 있길래 두 사람이 그렇게 입대를 못해서 안달이 났는지 묻는다. 이에 두 청년은 "우리가 그곳에서 독일군을 막지 못하면 이곳까지 쳐들어 올 것이기 때문이죠."라고 대답한다. 두 사람의 대답에 탐광업자는 광활한 불모지를 천천히 둘러보며 말한다. "그놈들이 여기까지 온다면 환영받겠구먼."
퍼스에 도착해 나이가 든 것처럼 꾸민 아치는 프랭크와 함께 기병에 응모하지만 말을 탈 줄 모르는 프랭크는 떨어져 보병이 되고, 아치는 제10경기병대에 입대한다. 아치와 헤어진 프랭크는 그곳에서 예전 친구들을 스노우이(Snowy: 데이비드 아궈), 바니(Barney: 팀 맥켄지 ), 빌리(Billy: 로버트 그루브) 등과 다시 만나게 된다. 1915년 6월 이집트 카이로의 호주군 훈련소. 친구들과 이집트의 상인들 등과 재미있는 나날을 보내던 프랭크는 보병과 기병 훈련 모의 교전 중에 아치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피라미드에 올라 '프랭크와 아치 1915년 호주군'이라 새겨놓는다. 아치와 함께 가고 싶었던 프랭크는 사정상 이집트에 말을 두고 가게된 탓에 기병대로 옮겨가게 되고 이들은 함께 갈리폴리로 출정한다.
드디어 전선에 도착했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건 해안을 따라 불어닥치는 회색먼지의 물결과 식수난, 섭씨 42.5도에 이르는 무더운 날씨와 이질이었다. 지축을 울리는 포화가 작렬하는 진짜 전쟁터에서 프랭크는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대해 걱정스런 표정이지만 아치는 신이 나 있다. 그 무렵 영국군의 상륙이 계획되고 있어 그 상륙을 가능케 하자면 호주군이 터키의 진지를 공격해 주어야 한다. 프랭크는 갈리폴리에 뒤따라 상륙한 친구들과 다시 만난다. 공격이 시작되고 바톤 소령(Major Barton: 빌 헌터)의 호주군은 터키군의 기관총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프랭크의 친구들도 죽거나 부상당해 돌아온다. 이때 아치는 그 빠른 걸음때문에 연락병으로 차출되지만 싸우고 싶었기 때문에 그 자리를 프랭크에게 내준다.
포격으로 인해 통신이 두절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치는 시합에 참가하기 전 용기를 북돋아 주던 잭 아저씨의 말을 마음속으로 프랭크에게 내뱉는다. "넌 타조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고 했어, 넌 바람처럼 달릴 수 있다고 했어. 달려라, 제발. 타조보다 빨리, 바람보다 빨리." 이미 죽음을 예견한 병사들은 자신의 유품을 하나씩 사랑하는 애인에게, 가족에게 남기기 위해 참호벽에 칼을 꽂고 걸어놓기도 하고 그 자리에 유서와 함께 돌로 눌러놓거나, 또는 신에게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옆의 동료와 절절한 마지막 포옹을 나누기도 하면서 죽음을 준비한다.
이제 이 영화의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가보자. 앞에서 이미 갈리폴리에서 벌어졌던 실제 역사를 말했듯이 참호에서 몇 미터도 나가지 못하고 터키군의 기관총 세례에 병사들이 쓰러지고 있는 상황을 전혀 모르는 로빈슨 대령(Colonel Robinson: 존 모리스)은 참호 속에 웅크린 병사들에게 계속해서 무조건 공격 명령을 내린다. 이 때문에 전멸할 처지에 이르자 바톤은 장군에게 불가능함을 알리고 프랭크로 하여금 공격 명령 취소를 받아오게 한다. 프랭크는 동료들의 환호를 등 뒤로 하고 빗발치듯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 숨이 차도록 지휘 본부로 달려간다. 겨우 상황을 알리지만 대령은 "영국군이 상륙해야 하니, 어떤 일이 있어도 점령하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프랭크는 사령관에게 보고하기로 하고 더 먼 곳으로 달려간다. 사령관은 상황을 파악하고 돌격명령을 철회한다. 프랭크는 기쁜 마음에 한달음으로 진지를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그 사이 통신선은 복구되었고, 대령은 소령에게 왜 명령을 이행하지 않느냐고 호통친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남은 3열에게 돌격 준비 명령을 내린다. 죽을 힘을 다해 달려오는 프랭크, 멀리 보이는 진지에서는 전부 돌격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돼. 안돼."라고 외치며 달려오는 프랭크. 하지만 무정한 돌격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죽음을 향해 뛰쳐나가는 호주군인들. 그중엔 아치도 있었다.
"난 타조보다 빨리, 바람보다 빨리 달린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리는 프랭크, 철모를 다시 고쳐쓰고 총검을 꽂으며 일어서는 병사들. 쓰러질 듯 달려오는 프랭크, 그러나 대령은 명령을 재촉하고 바톤 소령은 드디어 공격을 명령이 내려진다. 호주군들은 용감히 진격하고 무참히 울려대는 적군의 기관총 소리와 함께 모두 쓰러진다. 누구보다 앞장 서 달려가던 아치 역시 무수한 총탄을 맞으며 무참히 쓰러지고 만다. 슬로우 모션으로 병사들의 처참한 죽음이 클로즈업되고 동시에 유품들만 가득한 참호로 프랭크가 뛰어든다. 처절하게 "안돼!"라고 외치는 그의 모습과 함께 화면은 정지되고 태양만이 무심히 전장을 비춘다. 수없이 많은 젊은이의 꽃같은 청춘이 이렇게 떨어지고 만 것이다. 아치는 결국 프랭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은 죽음의 총구 앞에 나섰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