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단. 하. 다.
버지니아 울프는 1920년대에 이런 글을 쓰고, 신문에 기고하고, 논쟁하고, 강연을 했다니...
문학도 문학이지만 여성주의에 관한 확고한 철학과 일관된 논리라니...
결론적으로 2022년도인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환경은 <집 안의 천사 죽이기>는 진행되어야 한다.




여러분 협회의 간사가 이 자리에 나를 초대하면서 제안했습니다. 여러분이 여성의 고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나 자신의 직업상 경험에 관해 뭔가 말해 달라고요. 내가 여자인 것도 사실이고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과연 어떤 직업상의 경험을 해온 것일까요? 선뜻 말하기 어렵네요. 내 직업은 문학입니다. 이 분야에는 여성의 경험, 다시 말해, 여성만이 갖는 경험이라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는 편 - P11

입니다. 아마도 무대 예술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분야에서보다 더 그럴 것입니다. 길은 일찍부터 나 있었지요. 패니버니 애프라 벤, 해리엇 마티노, 제인오스틴, 조지 엘리
‘엇‘ 같은 많은 유명한 여성들과 이름 없이 잊혀 간 훨씬 더많은 여성들이 나보다 오래전에 그 길을 평탄하게 닦아내걸음을 순조롭게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내가 글을 쓰게 되었을 때 내 앞길에 실질적인 장애물은 별로 없었습니다. 글쓰기는 점잖고 무해한 일거리지요. 펜을 긁적인다고 해서 집안의 평화가 깨지지도 않고, 가계에 부담이 되지도 않으니까요. 10실링 6펜스어치 종이만 사던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전부 쓰기에 충분합니다.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지요. 작가에게는 피아노도, 모델도, 파리, 빈, 베를린으로의 유학도,
스승도 필요치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종잇값이 싸다는 것이여성이 다른 어떤 직업에서보다 먼저 작가로서 성공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 P12

그러다 문득 큰돈 들지 않는 손쉬운 일을 해보자는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즉, 그렇게 쓴 종이 몇 장을 봉투에 넣고 그 한구석에 1페니 우표를 붙여, 그 봉투를 길모퉁이에있는 빨간 우체통에 떨구어 보자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나는 저널리스트가 되었고, 내 수고는 다음 달 초하루에 ㅡ내게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날이었지요 - 편집자로부터 온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1파운드 10실링 6펜스 수표로 보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내가 직업여성이라 불릴 자격이 얼마나 적은지, 그런 삶의 투쟁과 난관에 대해 얼마나아는 것이 없는지를 보여 드리기 위해, 한 가지 인정해야겠습니다. 나는 그 돈을 빵과 버터, 집세와 신발과 양말, 또는푸줏간 외상값 등에 쓰는 대신, 나가서 고양이를 한 마리 샀습니다. 멋진 페르시아고양이였는데, 얼마 안 가 이 고양이때문에 이웃들과 심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지요. - P13

 내가 서평을 쓰고 있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괴롭행복와 종이 사이에 끼어들곤 하던 것이 바로 그녀였습니다. 그녀는 나를 귀찮게 하고 내 시간을 허비하고 나를 하도 괴롭혔으므로, 마침내 나는 그녀를 죽여버렸습니다. 젊고 행복한 세대인 여러분은 아마 그녀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고, 〈집안의 천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것입니다. 가능한한 간략히 그녀를 묘사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아주 정이 많습니다. 아주 매력적이고 자기 욕심이라고는 없습니다. 가정생활의 어려운 일들을 척척 해냈지요. 날마다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닭고기를 먹을 때면 다리를 집었고, 외풍이 들면 바람막이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녀는 자기 몫의 생각이나소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항상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소원에 공감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ㅡ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그녀는 정숙했습니다. 정숙함이야말로 그녀의 주된 아름다움으로 여겨졌지요. 부끄러워낯을 붉히는 모습이 더없이 우아하다고들 했습니다.  - P14

소설책 한권을 평하려 해도 자기만의 생각을 가져야 하며, 인간관계와 도덕과 성에 대해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집안의 천사>에 따르면, 여성은 이 모든 문제를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다룰 수가없다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성공하려면 매력적이라야 하고환심을 사야 한다. 요컨대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내 종이 위에 그녀의 날개 그림자나 후광의 광채가 느껴질 때마다 잉크병을 집어 그녀에게 던졌습니다. 그녀는 좀처럼 죽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허구적인 존재라는 것이 그녀를 도왔지요. 유령을 죽이기란 실재하는 존재를 죽이기보다 훨씬 어려우니까요. 그녀는 내가 쫓아 버렸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기어 나왔습니다. 결국은 그녀를 죽여 버렸다고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주 질긴 싸움이었고,
차라리 그리스어 문법을 배우든지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데 썼더라면 좋았을 만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경험, 그 시절의 모든 여성 작가에게 닥칠수밖에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집 안의 천사>를 죽이는 것은여성 작가가 해내야 할 일의 일부였습니다. - P16

<집 안의 천사> 죽이기는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 육체로서의 나 자신의 경험에 대해 솔직히 말하기는 해결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어떤 여성도 해결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녀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여전히 막강하고, 그러면서도 분명히파악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겉보기에는, 책을 쓰는 것만큼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겉보기에는, 글을 쓰는 데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장애가 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안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그녀는 여전히 많은유령과 싸워야 하고, 많은 편견을 극복해야 합니다. 여성이죽여 버려야 할 유령이나 깨뜨려 버려야 할 암초를 만나지않고 그저 앉아서 글을 쓰기까지는, 정말이지 앞으로도 오랜시간이 걸리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성에게 가장 개방된 직업인 문학에서 이러하다면, 여러분이 처음으로 진입하려 하는 새로운 직업들에서는 어떻겠습니까? - P20

만일 여성들이 하나의 성(性)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라면,
그 나라는 세계의 주요한 발견들을 이룩하는 데 별로 기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여성들에게 울적한 결론일까? 왜꼭그래야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우리 대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나 렘브란트가 되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으며, 여성들이 경주에서 2등이나 3등은커녕 6등이나 7등만해도 충분히 만족한다.
면105쪽에는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베넷 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계속해서 주장하는 바이다. 이 대단히 진보한 시대에도 여성이라는 성은 지배당하기를 좋아하며, 영원까지는 아니라 해도 적어도 향후 몇천 년 동안은 여전히 지배당하기를 좋아하리라고 말이다. 이처럼 지배당하려는 욕망 그자체가 지적인 열등함의 증거이다. 몇몇 분야에서는 최근의진보적 사건들이 신비로운 방식으로 여성의 지적인 열등함에 종지부를 찍은 듯한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여성의 명백한 특징으로 남아 있다.>  - P27

교육과 자유의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요. 간단히 말해, 다른 성을 폄하하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겠지만, 자신들의논거에 그토록 확신을 가지고 빠져들다니 베넷 씨와 <상냥한 매>는 다소 다혈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여성들로서는 남성의 지성이 갈수록 저하되어 가고 있다고 믿을 만한모든 이유가 있지만, 대규모 전쟁과 평화가 제공하는 이상의증거가 나오기까지는 그것을 사실로 공표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겠지요. 만일 <상냥한 매>가 진심으로 위대한 여성 시인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그는 왜 『오디세이아』의 저자가 여성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슬쩍 넘어가고 마는지요? 당연히 나는 베넷 씨나 <상냥한 매>가 아는 만큼 그리스어를 안다고주장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포는 여성이었는데 플라톤 - P31

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녀를 호메로스나 아르킬로코스와함께 자신들의 가장 위대한 시인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베넷 씨가 사포보다 나은 남성 시인의 이름을 50명이나 들 수 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놀라운일입니다. 만일 그가 그 이름들을 지면에 발표한다면, 나는여성에게 그토록 소중하다는 순종의 실천으로서 그들의 저작을 구매할 뿐 아니라,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 그 이름들을외울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 P32

그와 별도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 사람의 위대한 뉴턴이 나오기 위해서는 상당수의 그보다 못한 뉴턴들이 있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라플라스, 패러데이, 허셜 등의경력을 조사하고, 아퀴나스와 테레사 성녀의 생애 및 업적을비교하고, 존 스튜어트 밀과 그의 친구들 중 어느 쪽이 밀 부인에 대해 잘못 생각했는지 밝히느라 귀지의 지면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냥한 매>로부터 비겁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동의하리라 생각되는 사실은, 아주 이른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 인구 전체를 낳은 것은 여성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많은 시간과 수고를 요구합니다. 또한 이 일이야말로 여성을 남성에게 - P39

종속시켜 왔고, 그러면서 그녀들 안에 인류의 가장 사랑스럽고 훌륭한 자질을 함양해 왔습니다. 나와 <상냥한 매>가 다른 것은 그가 현재 남녀의 지적 평등성을 부정한다는 점이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베넷 씨와 더불어 여성의 정신은 교육이나 자유를 누려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여성의 정신은 최고의 성취를 이룩할 수 없다고, 여성의 정신은 지금과같은 처지에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여성이 발전해 왔다는 사실은 <상냥한 매>도 이제는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녀들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는 사실을 나는 거듭 말해야겠습니다. 119년도 아닌 19세기에 왜 여성들의 발전에 한계를 두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은 교육만이 아닙니다.
여성들은 경험의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여성들은 자신이 남성들과 다를 때(나는 여성과 남성이 사실상 같다는 <상냥한매>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두려움 없이 자신의 차이를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 P40

 만일 장래에도 그런 견해가 횡행한다면, 우리는 반쯤 문명화된 야만 가운데 남게 되리라고고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편의 영원한 지배와 다른 한편의 영원한 예속을, 적어도 나는 그렇게 정의합니다. 왜냐하면 노예 상태로의 타락과 맞먹는 것은 주인 노릇으로의 타락밖에 없으니까요.


이에 대해 <상냥한 매>는 짧게 답했다. 
<만일 내 견해를 표명함으로써 여성의 자유와 교육이 저해된다면, 나는 더 이상 논의하지않겠다.> - P41

소설은 희곡이나 시보다 훨씬 쉽게 들었다 놓을 수 있다. 조지 엘리엇은 작품을 쓰다 말고 아버지를 간호했다. 샬럿 브론테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감자싹을 도려냈다. 여성은 공용의 거실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던 만큼, 인물을 관찰하고 성격을 분석하는 데 눈이 뜨였다. 그녀가 받은 훈련은 시인이 아니라 소설가가 되기에 적합한 것이었다.
19세기에도 여성은 거의 전적으로 집에서, 자신의 감정속에서만 살았다. 19세기 소설들은 그 탁월함에도 불구하고그것을 쓴 여성들이 자신의 성별 때문에 어떤 종류의 경험들에서는 배제되었다는 사실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작가의 경험이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가령 콘래드"의 소설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은 만일 그가선원이 될 수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또는 톨스토이에게서 그가 군인으로서 전쟁에 대해 아는 것, 부유한 청년으로서 교육을 받고 온갖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인생과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을 제거한다면, 『전쟁과 평화』는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해질 것이다.
- P54

 전쟁이나 항해나 정치나 사업에 대한 어떤 직접적 경험도 그녀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들의 정서적인 삶조차도 법과 관습으로 엄격히 규제되었다. 조지 엘리엇이 루이스 씨"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채 동거하기 시작하자 여론이 들끓었다. 그 압박때문에 그녀는 교외로 칩거했고, 이 일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작품에 가장 나쁜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청해서 만나러 오겠다고 하지 않는 한 자기 쪽에서는 결코 그들을 초대하지 않는다고 썼다. 같은 시기에 유럽의 반대편에서는 톨스토이가 군인으로서 모든 계층의 남녀와 더불어 자유로운 삶을 살았지만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고, 그 경험으로부터 그의 소설들은 놀라운 폭과 힘을 끌어냈다. - P55

 여성 작가는 외적 요인으로 인한 분심 없이 자신의 비전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때 천재성과독창성이 있어야만 도달할 수 있었던 초연함을 이제야 평범한 여성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평균적인 여성 작가의 소설도 1백 년 전, 아니 50년 전에 비하더라도 훨씬 더 참신하고 흥미로워졌다.
하지만 여성은 여전히 자신이 쓰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쓸 수 있기까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야 한다. 우선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것은 겉보기에는 극히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곤혹스러운 문제이다. 즉, 문장 형태 자체가 여성에게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남성들이 만든 문장이라, 여성이 쓰기에는 너무 헐겁고 너무 무겁고 너무 위세를 부린다. 소설에서는 워낙 넓은 범위가 다루어지는 만큼 독자를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손쉽고 자연스럽게 실어 나를 평범하고 통상적인 유형의 문장을 채택해야 하는데, 이런 문장을여성은 스스로 만들어내야만 한다. 현재 쓰이는 문장을 바꾸고 맞춰 가면서, 자기 생각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부서뜨리거나 찌그러뜨리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을 찾아내야만 - P57

 하지만 또한 그것들은 또 다른 질서,
즉 인습이 부과하는 질서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인습의 심판관은 남성들이고, 그들이 인생의 가치 체계를 수립해왔으니, 소설 또한 크게는 인생에 기초해 있는 만큼 소설에서도 이런 가치들이 만연하게 된다.
그러나 인생에서나 예술에서나 여성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남성들의 가치와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여성이 소설을쓰게 되면 기존의 가치관을 바꾸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남성에게는 하찮게 보이는 것을 진지하게 만들고, 그에게 중요한 것을 시시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비판을 받을 터이니, 남성 비평가는 현재의 가치 체계를 바꾸려는 시도에 진심으로 놀라고 의아해하며, 그것이 단순히 다른 시각이 아니라 약하고 사소하고 감상적인시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의 시각과 다르니까. - P58

여기서도 극복해야 할 어려움들이 보인다. 왜냐하면일반화해도 좋다면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손쉽게 관찰되지 않으며, 그녀들의 삶은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 훨씬 덜 검토되고 검증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하루에서는 이렇다 하게남는 것이 없을 때가 많다. 요리한 음식은 먹어 없어졌고, 키워 놓은 자식들은 세상으로 나가 버렸다. 어디에 강조점을둘 것인가? 소설가가 포착할 만한 두드러진 점은 무엇인가?
말하기 어렵다. 그녀의 삶은 극도로 곤혹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익명성을 지닌다. 처음으로 이 미답의 영역이 소설에서탐사되기 시작하고 있으며, 동시에 여성도 직업의 문호 개방 - P59

과거에는 여성의 글쓰기가 갖는 미덕이 지빠귀 노래의 미덕처럼 그 신성한 자발성에 있었다. 그것은 배움 없이, 그저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수다와 재잘거림, 종이위에 쏟아놓아 여기저기 얼룩지며말라 갈 잡담에 지나지 않았다. 장차 여성이 시간과 책과 집안의 작은 공간을 누리게 된다면, 문학은 남성에게 그런 것처럼 여성에게도 갈고닦을 예술이 될 것이다. 여성의 재능은훈련되고 강화되어야 한다. 소설은 개인적 감정의 토로를 넘어, 지금보다 훨씬 더, 다른 어느 예술 못지않은 예술 작품이될 것이며, 그 자원과 한계가 탐사될 것이다.
그런 단계에서부터 좀 더 세련된 예술, 지금까지 여성들이 거의 실천하지 못했던 장르인 에세이나 비평, 역사, 전기를 쓰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 그 자체로 보더라도 그것은 이익이 될 터이니, 그런 글쓰기는 소설의 질을 개선할 뿐 아니라, 마음은 달리 놓여 있는데도 그저 접하기 쉽다는 이유로 소설에 모여들던 객들을 제 갈 길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소설은 우리 시대에 그 - P62

것을 그토록 볼품없게 만들던 역사와 사실이라는 혹을 떼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예언하건대, 여성은 장차 소설은 덜 쓰되 더 훌륭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뿐 아니라 시와 비평과 역사를 쓸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것도, 여성이 자신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거부되었던 것, 즉 여가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는 황금시대, 저 전설적인 시대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 P63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총기가 천부적인 것임을 입증한다. 그녀는 워낙 총명하여 외부의 도움을 괴로워했으며, 워낙 정직하여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른 모든 사람을 따돌릴 만한 철학 체계를 세우기로 한 것은, 완전한 무지의 들판,
그녀 자신의 의식이라는 경작지 않은 땅으로부터였다는것이다. 그 결과가 전적으로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워낙광대한 체계를 세우려다 보니, 첫 책에서 매브 여왕과 요정나라에 대해 매혹적인 글을 쓰게 했던 그녀의 타고난 재능,
신선하고 섬세한 상상력은 얼마 못가 거덜이 나 버렸다. - P75

영문학 작품을 읽는 여느 독자라도 때때로 그런 느낌이들 것이다. 영문학에도 마치 우리 전원의 이른 봄과 같이 살풍경한 시절이 있구나 하고 말이다. 나무들은 벗은 가지들을드러내고 언덕은 아직 녹색으로 덮이지 않았으니, 그 무엇도땅이나 나뭇가지의 윤곽을 감싸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6월의 설렘과 웅성임을 떠올려 본다. 그때는 아주 작은 숲도 움직임으로 가득하고, 가만히 서 있노라면 덤불 속에서분주히 돌아다니는 날쌔고 호기심 많은 동물들의 속삭임과재잘거림이 들려오기 마련이다. 그렇듯 영문학에서도 헐벗은 풍경이 소란과 떨림으로 가득 차려면,  - P81

오빠의 역정과 템플의 질투에 더하여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어서 조용히 죽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템플이 그녀의 주저와 오빠의 반대를 이겨 냈다는 것은 그의 성품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로서는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템플과 결혼한 후 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편지를 쓰지않았으니 말이다. 편지는 곧바로 그쳤다. 도러시가 존재하게했던 세계 전체가 꺼져 버렸다. 그제야 우리는 그 세계가 얼마나 풍성하고 사람들로 북적이며 활기찼던가를 깨닫게 된다. 템플에 대한 애정 덕분에 그녀의 펜에서는 딱딱함이 사라진 터였다. 아버지 곁에서 반쯤 졸면서, 묵은 편지 뒷면에서찾아낸 백지 위에 그녀는 레이디 다이애나에 대해, 아이념가사람들에 대해, 집안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왔다가 어떻게 갔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들이 지루했는지 웃겼는지 매력적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평소대로였는지에 대해, 항상 그 시대 특유의 위엄을 가지고서도 편안한말투로 써나갔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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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木馬와 淑女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生涯와

  木馬를 타고 떠난 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木馬는 主人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像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少女는

  庭園의 草木 옆에서 자라고

  文學이 죽고 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木馬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靑春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雜誌의 表紙처럼 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木馬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 시집[목마와 숙녀 <槿域書齋 1976>]중에서


그러나 결국 하룻밤이 무엇이란 말일까?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특히 어둠이 빨리 옅어지고, 그렇게나 일찍 새가 노래하고, 수탉이 울고, 혹은 파도의 희미한 녹색 골이, 색깔이 변하는 이파리처럼 생기를 띨 때는 그러하다. 하지만 밤은 밤으로이어진다. 겨울은 밤들을 한 묶음 움켜쥐고는, 지칠 줄 모르는손가락으로 똑같이 공평하게 나눠 준다. 밤들이 길어진다. 밤들이 어두워진다. 어떤 밤들은 밝은 행성을, 환히 빛나는 금속판을 높이 치켜든다. 비록 황량해졌지만 가을 나무들은 차가운 성당 어두운 구석에서 환히 빛나는, 갈가리 찢어진 전승 깃발처럼 섬광을 띤다. 그 구석의 대리석에 황금으로 새긴 글자들은 전장에서의 죽음과 멀리 인도의 모래 속에서 하얗게 변색되고 바싹 마른 뼈들을 묘사한다. 가을 나무들은 추수철 노란 달빛 속에서 어렴풋이 빛나고, 그 빛은 노동의 에너지를 숙 - P206

성시키고, 그루터기를 매만지고, 파도를 몰아와서 새파랗게해안에 철썩이게 한다.
이제 인간의 참회와 그 온갖 노고에 감동을 받은 듯, 성스러운 선(善)이 커튼을 열고 그 너머에 홀로 우뚝 곧추선 토끼 같은 형체, 부서지는 파도, 흔들리는 배를 드러내는 듯하다. 우리에게 자격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은 언제나 우리 것이어야 하리라. 하지만 슬프게도, 신성한 선은 끈을 홱 잡아당겨 커튼을닫아 버린다. 그 광경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쏟아지는 우박으로 자기 보물을 덮어서 부수고 뒤죽박죽으로 해 놓아서, 보물이 혹시라도 무사히 돌아오거나 우리가 그 파편들로완전한 전체를 만들어 내거나 혹은 어수선하게 흩어진 조각들에서 진실의 명료한 글자들을 읽는 일은 있을 수 없어 보인다.
우리의 참회는 그저 흘끗 봐줄 만한 가치밖에 없으니까. 우리의 노고는 그저 잠시 유예해 줄 만한 가치밖에 없으니까.
- P207

그렇게 아름다움이 그리고 정적이 지배했고, 더불어 아름다움 그 자체의 형상을 만들었다. 삶이 떠나 버린 형상이었다.
그것은 기차 창문에서 내다보인, 멀리 떨어져 있는 저녁나절의 연못처럼 고적했다. 저녁 무렵 어슴푸레한 그 연못은 너무나 빨리 사라져 버려서 비록 한 번 보였을 뿐이지만 그 고적감을 잃지 않았다. 아름다움과 정적이 침실에서 손을 맞잡았고,
엿보기 좋아하는 바람과 끈적끈적한 바닷바람의 부드러운 코가, 덮개를 씌운 주전자들과 시트에 덮인 의자들 사이를 문지르고 킁킁거리면서 거듭 질문("이 색깔이 바랠까? 부서져 버릴까?")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 질문에 우리는 계속 남아 있을거라고 대답할 필요가 거의 없는 듯, 그 평화로움과 무심함,
순수히 응집된 공기는 거의 방해받지 않았다. - P210

 그런 거울들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구름들이 끊임없이 바뀌고 그림자가 생기는 불안정한 물웅덩이들에, 꿈들은끈질기게 남아 있었다. 갈매기, 꽃, 나무, 남자와 여자, 그리고흰 대지가 스스로 선언하는 것 같았던(그러나 의문을 제기하면즉시 철회하는 듯했던) 선이 승리하고, 행복이 만연하고, 질서가 지배하리라는 기이한 암시에 도무지 저항할 수 없었다. 혹은 어떤 절대적인 선이나 수정 같은 강렬함을 찾아서, 익히 아는 쾌락이나 미덕과는 무관하고 가정생활의 일상적인 과정과도 동떨어진 것, 소유한 사람에게 안정감을 줄 모래 속 다이아몬드처럼 홀로 확고하고 밝게 빛나는 것을 찾아서 이리저리방랑하려는 특이한 충동에도 도무지 저항할 수 없었다. 더욱이, 부드럽게 다가온 봄은 벌들이 윙윙거리고 각다귀들이 춤추는 가운데 온몸을 망토로 휘감고 눈을 베일로 가리고는 고개를 돌렸고, 지나가는 그림자들과 흩날리는 빗줄기 속에서인간의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 P216

하지만 혼수상태에서 잠을 자고 있어도 그 여름의 후반이되자 망치를 펠트 위에 규칙적으로 내리치는 듯이 무디고도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반복되는 충격으로 숄이 더 풀렸고 찻잔들에 금이 갔다. 마치 어떤 거인이 고뇌에 차서 큰 비명을 질러 대는 바람에 찬장 안에 늘어선 컵들이 흔들리는 듯이 이따금 찬장 속에서 유리잔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나면 다시 정적이 감돌았고, 그런 다음에는 밤마다, 때로는 장미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고 햇빛이 벽 위에 선명한 형체를 드러내는 평범한 대낮에도, 무언가 떨어지는 쿵 소리가 이정적 속으로, 이 무심함 속으로, 이 완전무결함 속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 P217

그 계절에 바닷가로 내려가 거닐면서 바다와 하늘에게 어떤 전갈을 알려 주었느냐고 혹은 어떤 환영을 확인했느냐고물었던 사람들은 흔히 드러나는 신의 은총들(바다 위 석양, 새벽의 어슴푸레한 빛, 떠오르는 달, 달을 배경으로 떠 있는 고기잡이배들, 풀을 한 움큼씩 쥐고 서로에게 던지는 아이들) 가운데서 이명랑함이나 평온함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주시해야 했다. 가령 잿빛 배가 고요한 유령처럼 왔다가 떠나갔다. 바다의 잔잔한 표면에는 그 밑에서 뭔가 보이지 않게 끓어오르다가 피를흘린 듯이 자줏빛 얼룩이 져 있었다. 더없이 숭고한 사색을 유도하고 더없이 안온한 결론으로 이끌어 가리라고 기대되는풍경에 이처럼 침입해 들어온 것들 때문에 그들은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덤덤하게 보아 넘기거나, 그것들의 의미를 그 풍경에서 지워 버리는 건 어려웠다.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외부의 아름다움이 내면의 아름다움을 반영하고 있다고 계속 경이를 느끼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 P218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여자 혼자서 하기에는 일이 너무 많았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기는 아이들 방이었지. 아, 너무 축축해서 회반죽이 떨어져 나가고 있구나. 그런데 대체 무엇 때문에 저기에 짐승의 두개골을 걸어 놓은 것일까? 그 두개골에도 곰팡이가 슬었다. 다락방마다 쥐들이 들꿇고, 빗물이 새어 들어왔다. 하지만 램지 가족은 사람을 보내지도 않았고, 직접 와보지도 않았다. 자물쇠 몇 개가 떨어져나가서 문들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녀는 어스름 속에서그 집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여자 혼자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나치게 할 일이 많았다. 움직일 때마다 다리가 삐걱거렸고,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녀는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고는 열쇠를 자물쇠에 넣고 돌렸고, 그 집을 닫히고 잠긴채로 내버려 두었다. - P225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그 소리는 귓전에 닿았다가 잦아들었다. 개 짖는 소리와 양 울음소리는 산발적으로 들렸지만 어쩐지 서로 연결되었고, 곤충이 윙윙거리는 소리와 잘린 풀들이떨리는 소리도 서로 제각각이었지만 어쩐지 조화를 이루었으며, 귀에 거슬리는 풍뎅이의 붕붕 소리와 삐걱거리는 바퀴 소리도 시끄럽고 나지막하지만 신비롭게 결합되었다. 귀를 기울여 모아 들을 때, 늘 조화를 이룰 듯한 이 소리들은 분명히들리는 법도 없고, 결코 완전한 조화를 이루지도 않는다. 이윽고 저녁이 되어 하나씩 둘씩 소리들이 사라지고, 조화는 비틀거리며 스러지고, 정적이 드리운다. 해가 지면서 선명한 윤곽이 사라지고,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정적이 솟아오르고 고요함이 퍼져 나가고 바람이 잦아들었다. 나뭇잎들 사이에 가득퍼진 녹색과 창가에 핀 흰 꽃들에 어린 어슴푸레한 색을 제외하면 여기 빛 한 줄기 없는 어두운 곳에서 세상은 느즈러지게몸을 흔들고는 잠이 든다. - P232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이 모두가 무엇을 뜻할수 있을까? 릴리 브리스코는 혼자 남겨진 후 커피 한 잔을 더가지러 부엌에 가야 할지 아니면 그곳에서 기다려야 할지를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어느 책에선가 보았던 이 말이 그녀의 생각을 막연히 드러냈다. 램지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된 첫날 아침에 그녀는 자신의감정을 간결하게 정리할 수 없었고, 그저 공허한 망상들이 잦아들 때까지, 텅 빈 마음을 감추도록 그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없었다. 실로 긴 세월이 지나고, 램지 부인이 죽은 후에 돌아와서 그녀가 느끼는 것이 무엇일까?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 P239

 왜 느끼지도 않는감정을 끌어내려고 늘 애써야 할까? 불경스러운 일이야. 고작해야 메마르고, 시들어 빠지고, 소진되어 버릴 뿐이야. 이들이나를 초대하지 않았어야 했어. 나는 오지 않았어야 했어. 마흔네 살이나 되어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체하는 것을 혐오했다. 투쟁과파멸, 혼돈의 세계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붓밖에 없으므로, 일부러라도 붓을 들고 장난을 쳐서는 안 된다. 그녀는그런 일을 몹시 싫어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당신이 줄 때까지는 당신의 캔버스에 손을 댈 수 없소, 그녀에게 접근하며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그가 다시 탐욕스럽고도 얼빠진 듯한 얼굴로 다가왔다. 자, 그렇다면 그 일을 끝내는 편이 차라리 더 수월하겠군, 릴리는 오른손을 툭 떨어뜨리며 절망적으로 생각했다.  - P246

 그는 삼켜 버릴 대상을 찾는 사자 같았으며, 그의 얼굴에는 절박한 기색, 과장하는 기색이 어려 있어서그녀를 놀라게 했고 치맛자락을 그러모으게 했다. 그러고 나면 갑자기 그의 활력이 살아났고, 갑자기 빛이 타올랐으며 (그녀가 그의 구두를 칭찬했을 때) 일상적인 인간사에 대한 활기와관심이 되살아났다. 이런 상태도 지나가고 변하면서(그는 늘변하고 있고,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으므로) 마지막 단계로 나아갔다. 그 단계는 그녀로서는 처음 보는 새로운 것이었으며 자신의 과민한 반응을 부끄러워하게 만들었다고 그녀는 인정했다. 그는 근심이나 야망을 다 떨쳐 버린 것 같았고, 공감에 대한 기대와 칭찬에 대한 욕구는 다른 영역에 들어섰으며, 손에닿지 않는 그 작은 행렬의 선두에 서서 마치 호기심에 이끌린듯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과 말없이 나누는 대화에 빠져든것 같았다. 얼마나 특별한 얼굴인가! 대문이 큰소리를 내며닫혔다. - P256

그래, 그들이 갔어. 이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안도와 실망의한숨을 쉬었다. 휘어졌던 가시나무가 다시 튕겨서 그녀의 얼굴에 부딪히듯이 그녀의 공감이 자기 얼굴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자신이 분열된 느낌이었다. 그녀의 한 부분은 저기로 이끌려 간 것 같았다. 안개가 낀 고요한 날이었고,
오늘 아침 등대는 무한히 멀게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부분은 집요하게, 확고하게 여기 잔디밭에 붙어 있었다. 그녀는마치 캔버스가 둥실 떠올라 비타협적인 하얀 화폭을 눈앞에펼쳐 놓은 듯이 캔버스를 보았다. 그것은 냉정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온갖 조급함과 동요, 어리석음과 감정낭비에 대해서 꾸짖는 듯했다.  - P257

 죽을 때까지 폭정에 저항하기로 약속했음을. 그들은 불만감에 짓눌렸다. 그들은 강요받고, 명령을 받았다. 아버지는자신의 침울한 분위기와 권위로 또다시 자식들을 짓눌렀고,
자기가 원했기에 이맑은아침에 자신의 명령에 따라서 이 꾸러미를 들고 등대에 가도록 강요했고, 자기 나름의 만족감을위해서 죽은 사람을 기념하는 의식에 동참하도록 했다. 그들은 이것이 싫었기에 그의 뒤에서 꾸물거렸다. 그날의 즐거움은 이미 다 망가지고 말았다.
산들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고 있었다. 보트는 한쪽으로 쏠리고 물결은 예리하게 갈라지면서 작은 녹색 폭포와물거품, 큰 폭포를 일으키며 멀어져 갔다. 캠은 물거품을 내려다보았고, 온갖 보물을 간직한 바닷속을 들여다보았다. 그 속도에 그녀는 매료되었다. 그녀와 제임스의 유대가 조금 약해졌다. 약간 느슨해졌다. 그녀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척 빨리가는구나. 우리는 어디를 가는 걸까? 캠이 움직임에 매료되어있는 동안, 제임스는 돛과 수평선에 눈을 고정한 채 꿈쩍도 않고 키를 조종했다. - P270

 누군가 그에게 손을 내밀던 것을. 여자들이란늘 이렇다고 그는 생각했다. 여자들의 흐리멍덩한 마음은구제 불능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그녀 (자기 아내)도 그랬었다. 여자들은 그 무엇에 대해서도 명료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캠에게 화를 낸 것은 잘못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여자들의 이런 모호함을 다소좋아하지 않았던가? 이는 여자들이 지닌 특이한 매력의 한 부분이었다. 그는 이 아이가 자신에게 미소를 짓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딸은 겁에 질려 보였고,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는 손가락들을 꽉 움켜쥐고, 이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동정과 찬사를 이끌어 내도록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었던 자신의목소리와 얼굴, 표현이 풍부한 신속한 몸짓을 차분히 가다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짓게 할 것이다. 딸에게 건넬 단순하고 편안한 이야깃거리를 찾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야깃거리가 있을까?  - P273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한밤중에 분노로 몸을 떨면서 잠에서 깨었고, "이걸 해라.", "저걸 해라." 하는 그의 명령과 오만, "내게 복종해라." 하는 그의 지배를 기억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평화의 망토에 감긴해안을 슬픈 눈으로 끈질기게 바라보았다. 마치 해안가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서 연기처럼 자유롭게, 유령처럼 자유롭게오갈 수 있는 것 같았다. 저기서는 사람들이 고통을 겪지 않아. 그녀는 생각했다. - P277

 그래, 그녀의 저런 모습을 틀림없이 본 적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는 회색 옷이 아니었고, 그렇게 고요하지도, 그렇게 젊지도, 그렇게 평화롭지도 않았다. 그 모습은 쉽사리 떠올랐다.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월리엄이 말했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름다움에는 이런 형벌이 있다. 아름다움은 너무 쉽사리 다가오고,
송두리째 고스란히 다가온다. 그것은 삶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얼어붙게 한다. 붉게 물들거나 창백하게 질린 얼굴빛, 기묘한 찡그림, 스쳐 가는 빛이나 그림자 같은 동요된 기색은 잊히고 만다. 한순간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하지만 이후에는 언제나 보이는 독특한 면모를 이루는 것들. 이 모든 것을 아름다움으로 덮어 숨기는 일은 훨씬 더 간단했다. 그러나 그녀가 사냥 모자를 홱 눌러썼을 때, 혹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달려갔을때, 혹은 정원사 케네디를 꾸짖었을 때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릴리는 궁금했다. 누가 내게 말해 줄 수 있을까? 누가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 P289

여기저기서 이는 실오라기 같은 바람을 제외하면 너무나맑은 아침이어서 바다와 하늘이 온통 한 폭의 천을 펼쳐 놓은것처럼 보였다. 돛들은 하늘 높이 꽂혀 있고 구름들은 바닷속으로 내려앉은 듯했다. 바다 저 멀리에서 기선 한 척이 거대하게 소용돌이치는 연기를 공중에 뿜어대자, 연기는 장식적인곡선을 그리고 빙빙 돌면서 공중에 머물렀다. 마치 올이 고운망사천처럼 공기가 무언가를 붙잡아서 망사 안에 포근히 간직하다가 이리저리 살살 흔들어 대는 듯이. - P297

그러나그 순간 돛이 서서히 빙 돌더니 점차 부풀었고, 배는 몸을 흔들며 잠에 취한 상태에서 반쯤 깨어나 출발하려는 듯하더니그런 다음에는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파도를 가르며 내달렸다. 그 순간의 안도감은 엄청났다. 그들 모두 서로에게서 다시떨어져 나와 편안해진 것 같았고 낚싯대들이 팽팽히 뱃전 너머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아버지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남몰래 교향곡을 지휘하듯이 신비스럽게도 오른손을 공중 높이 치켜들었다가 다시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 P306

 그의 주머니 속에서 모서리들이 말려 올라간 그 책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들은 알지못했다. 그러나 그는 책에 몰두해 있었다. 그래서 그가 지금그러듯이 잠시 올려다보아도, 그 행동은 무엇을 보려는 것이아니라, 어떤 생각을 더욱 명확히 정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그의 마음은 다시 날아서 책으로 돌아갔고 독서에빠져들었다. 그는 무언가를 인도하는 듯이, 혹은 많은 양 떼를얼러서 몰아가듯이, 혹은 좁은 오솔길에서 밀어제치면서 올라가듯이 책을 읽는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때로 그는 곧바로덤불에 뛰어들어 재빨리 헤치고 나아갔고, 때로는 나뭇가지에 찔리거나 가시나무에 눈이 멀 것 같았지만, 그런 것 때문에패배를 자인하지는 않으리라. 그는 이어지는 낱장들 너머로흔들리면서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그녀는 침몰하는 배에서탈출하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갔다.  - P311

그녀는 다시 바다를, 섬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나뭇잎 같은섬의 뚜렷한 윤곽이 사라지고 있었다. 섬은 무척 작았고, 무척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제는 바다가 해안보다 더 중요했다. 그들 주위에는 온통 일었다 가라앉는 파도뿐이었고, 어느 파도에 실려 온 통나무가 뒹굴었으며, 갈매기 한 마리가 다른 파도를 타고 있었다. 이 근방에서 배 한 척이 침몰했다고 그녀는손가락으로 물을 튀기면서 생각했고, 몽롱한 상태로 꿈꾸듯이 중얼거렸다. 우리는 각자 홀로 죽어 갔지. - P312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서 뭔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들은 층계에서 마주치거나 하면 하늘을올려다보고 날이 맑겠다든가 하고 서로 중얼거렸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도 사람들을 아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세부적인 것들이 아니라 윤곽을 아는 것. 정원에 앉아서 멀리 히스가 만발한 풀밭으로 흘러내리는 자줏빛 언덕 비탈들을 바라보는 것. 그녀는 이런 식으로 그를 알았다. 그가어딘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의 시를 단 한 줄도 읽은 적이 없었지만, 천천히 낭랑한 시구로 이어지고 있음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의 시는 감미롭고 부드러웠다. 사막과낙타, 종려나무와 석양에 대한 시였다. 그의 시는 개인적 감정을 극도로 억제했다. 죽음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했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초연한 면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거의 필요로하지 않았다.  - P318

창문도 선명하게 보였다.
하얗게 칠해진 창문 하나와 바위 위 작은 녹색 덤불도 볼 수있었다. 어떤 남자가 나와서 안경 너머로 그들을 바라보다가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등대가 저런 거였군. 제임스는 생각했다. 이 긴 세월 동안 만 건너편에서 보아 온 등대, 그것은 살풍경한 바위 위에 서 있는 견고한 탑이었다. 그는 그것에 만족했다. 그 모습은 자신의 성격에 대한 모호한 감정을 확인해 주었다. 노부인들이 정원에서 자기들 의자를 끌고 다녔지. 그는 집의 정원을 생각하면서 생각했다. 예컨대 늙은 벡위스 부인은인생이 매우 멋있고 무척 감미로우며 그들은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무척 행복해야 한다고 늘 말했다. 하지만 사실 제임스는 바위 위에 서 있는 등대를 보면서 인생이 저 등대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리를 꼭 웅크린 채 맹렬하게 책을 읽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들 두 사람은 그것을 알았다. "돌풍 앞에서 질주하고 있다. 우리는 틀림없이 침몰할 것이다."
아버지가 이 말을 했을 때와 똑같이 그도 반쯤 소리 내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P331

거기 있는 무언가에 의해 불현듯 생각이 난 듯 그녀는 재빨리 캔버스로 몸을 돌렸다. 거기 그녀의 그림이 있었다. 그래,
초록색과 푸른색 선들이 올라가고 가로지르면서 무언가를 시도했지. 이건 다락방에 걸릴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결국은파괴되고 말겠지. 하지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녀는 붓을다시 잡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는 층계를 바라보았다.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캔버스를 보았다. 흐릿했다. 갑자기강렬하게, 마치 찰나의 순간 그것이 선명히 보인 듯이, 그녀는그 한가운데 선을 하나 그었다. 완성했어. 끝났어. 그래, 그녀는 극도의 피로감이 밀려오는 가운데 붓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이제 그것을 보았어.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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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는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림은 엉망이었다. 형편없었다. 더할 나위 없이 형편없었다! 분명 다르게 그릴 수도 있었을 텐데. 색깔을 연하고 흐릿하게 칠할 수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폰스퍼트 씨라면 바로 그렇게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녀는 강철골조 위에서 선명하게 타오르는 색깔을 보았고, 성당 아치 위에 앉은나비의 날개 빛깔을 보았다. 그 모든 것들 중에서 캔버스에 되는대로 그어 놓은 흔적 몇 개만이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 그림은 결코 남들이 보지 못할 것이다. 벽에 걸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이렇게 속삭이는 탠슬리 씨도 있었다. "여자들은 그림을 그릴 수없어요. 여자들은 글을 쓸 수 없어요…….…." - P81

하지만 이 그림을 다른 사람이 본 것이다. 그림은 이미 그녀에게서 떠난 것이다. 이 남자는 그녀와 깊은 교감을 나눈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램지 씨에게 고마워하고, 그것과 그 시간과그 장소에 대해서 램지 부인에게 고마워하고, 예상치 못했던힘이 이 세상에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래서 그 긴 난간을 더는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팔짱을 끼고 걷게 되었다는 생각(그무엇보다도 기묘하면서도 가장 활기를 북돋워 주는 감정)에 그녀는 그림물감 상자의 걸쇠를 필요이상으로 단단히 맞추었다.
그 소리는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서 물감 상자와 잔디밭, 뱅크스 씨, 돌진하듯 지나간 거친 말괄량이 캠을 영원히 둘러싸는것 같았다. - P89

아, 하지만 제임스가 하루라도 더 나이 먹는 것은 결코 바라지 않았고, 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두 아이가 지금과똑같이 장난꾸러기나 기쁨의 천사로 영원히 남아서, 다리가긴 괴물로 커 가는 것을 보지 않는다면 좋을 텐데. 그 손실은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었다. 이제 제임스에게 "그리고 큰북과 트럼펫을 가지고 수많은 군인들이 몰려왔어요."라고 읽어주고 어두워지는 아이의 눈빛을 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왜아이들은 자라나면서 이 모든 것을 잃어야 할까? 제임스는 그녀의 자식들 가운데 가장 재능 있고 가장 예민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도 모두 유망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프루는 다른사람들에게 더없이 완벽한 천사였고, 요사이 특히 밤에 볼 때면 그 미모에 흠칫 놀랄 정도였다. 앤드루의 수학에 대한 재능은 심지어 남편도 특출하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낸시와 로저는 요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온종일 시골을 뛰어다녔다. 로즈는 입이 좀 큰 편이지만 손재주가 놀라웠다. 아이들이 변장놀이를 하면, 로즈가 옷뿐 아니라 모든 것을 만들었다. 로즈는 식탁을 차리고 꽃꽂이를 하고 무엇이든 매만지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재스퍼가 새를 사냥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저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 P96

 삶이 그녀의 눈앞에펼쳐졌다. 삶, 삶이라. 그녀는 생각했지만, 생각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그녀는 삶을 바라보았다. 아이들과도, 남편과도 나누지 않은 실재하는 어떤 것, 은밀한 어떤 것이 있음을 분명히느꼈으니까. 한쪽 편에 놓인 그녀와 다른 쪽에 있는 삶 사이에서 일종의 거래가 진행되었고, 삶이 그녀를 이기려고 했듯이그녀도 늘 삶을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써 왔다. 이따금 그녀는(혼자 앉아 있을 때) 삶과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대단한 화해를 이룬 장면들이 있었음을 그녀는 기억했다. 그러나 대체로는 무척 묘하게도, 그녀가 삶이라고 부른 이것이 무시무시하고, 적대적이며, 기회를 주기만 하면 재빨리 덤벼들 거라고 느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통이나 죽음, 가난처럼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들도 있었다. 심지어 여기에도 암으로 죽어 가는 여자가 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너희들 모두 겪을 일이란다. 여덟 아이에게 그녀는 무자비하게도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온실 수리에 필요한 비용은 50파운드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사랑과야심, 비참한 곳에서 홀로 고통을 겪으리라는 것) - P98

그래, 아이들은 결코 잊지 않아. 그녀는 제임스가 잘라 놓은 것들(냉장고, 잔디 깎는 기계, 야회복을 입은 신사의 사진)을 그러모으며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가 무척 중요하고,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난 후에야 안도감이 드는 것이다. 그제야 누구에 대해서도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녀는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고,
홀로 있을 수 있었다. 이따금 필요하다고 느꼈던 건 바로 그것이었다. 생각에 잠기는 것. 글쎄, 생각에 잠기는 것도 아니었다. 말없이 있는 것. 홀로 있는 것. 모든 존재와 행위가 팽창하면서 반짝이고 시끌벅적하다가 흩어져 버린다. 그러면 사람은 엄숙함을 느끼며 오그라들어 본연의 자신이, 남들에게는보이지 않는 쐐기 모양 어둠의 응어리가 된다.  - P102

 밀착되어 있던 것들이 떨어져 나간 이 자아는 더없이 자유롭게 기이한 모험을 떠날 수 있었다. 삶이 잠시 침잠할 때, 경혐의 영역은 무한히 넓어 보였다. 그리고 누구나 이처럼 무한한 원천을 늘 느끼는 법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나 릴리,
오거스터스 카마이클, 모두들 제각기 자신의 환영, 자신을 알아볼 수 있게 해 주는 겉모습들이 유치할 따름이라고 느끼기마련이다. 그 환영의 밑바닥은 온통 어둡고, 사방으로 퍼져 있으며, 포착할 수 없이 깊다. 그러나 이따금 표면으로 솟구치는것이 남들에게 보이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녀의 지평은 끝이없어 보였다. 그녀가 가 보지 못한 곳들이 모두 그 안에 담겨있었다. 인도의 평원. 그녀는 로마의 한 성당에서 두터운 가죽커튼을 밀어젖히는 자신을 느꼈다. 이 어둠의 응어리는 누구도 볼 수 없기에 어디라도 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걸 막을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의기양양해했다.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반갑게도, 모든 것을 다 그러모아 확고한 기반 위에서 쉴 수 있었다.  - P103

그는 몸을 돌리고 그녀를 보았다. 아! 그녀는 아름다웠고,
지금은 전보다 더 아름답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그녀를 방해할 수 없었다. 제임스가 없고 마침내 그녀가 혼자 있었기에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이간절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자신의 아름다움, 자신의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녀를 그냥 내버려둘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여서 그녀에게 닿을 수 없고 그녀를 돕기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 옆을 지나갔다.
그는 또다시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지나치려고 했다. 바로 그순간 그가 결코 요청하지 않으리라고 짐작한 그녀가 자발적으로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더라면, 그를 부르고 액자에서 녹색 숄을 떼어 내어 어깨에 두르고 그에게 걸어가지 않았더라면, 그가 자신을 보호해 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있었던 것이다. - P107

암스테르담에 가 본 적이 있소. 뱅크스 씨는 릴리 브리스코와 풀밭을 거닐면서 말했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았소. 마드리드에도 갔지. 불행히도 성(聖)금요일이어서 프라도 박물관은 닫혀 있었소. 로마에도 가 본 적 있었소. 브리스코 양은 로마에 가 본 적이 없소? 아, 그렇다면 가 봐야 해요. 경이로운경험이 될 거요. 시스티나 성당이며 미켈란젤로, 조토의 벽화가 있는 파도바 성당이며, 내 아내가 여러 해 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제하면서 관광을 다녔소. - P117

 그래, 당신이 그러리라고 믿소. 뱅크스 씨가 말했다. 그들이 풀밭 언저리에 닿았을 때 그는 그녀가 런던에서 그림 소재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지를 물었고 그러면서 몸을 돌리자 램지 부부가 보였다. 그래, 저것이 결혼이라고 릴리는 생각했다. 공을 던지는 딸을 바라보는 한 남자와 한 여자. 저것이 바로 램지 부인이 전날 밤 내게 말하려던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녹색 숄을 두른 램지 부인이 남편과 나란히 붙어서서 캐치볼 놀이를 하는 프루와 재스퍼를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어떤 이유랄 것도 전혀 없이, 가령 지하 - P118

철에서 걸어 나오거나 현관 벨을 울릴 때 불시에 사람들을 찾아와서 그들을 무언가의 상징으로, 무언가의 표상으로 만드는 의미가 그들에게 드리웠고, 어스름 속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들을 결혼의 상징으로, 부부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잠시 후 그들과 마주했을 때 실제 인물을 초월하는 상징의 윤곽이 사라져 갔고, 그들은 다시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램지 부부로 되돌아와 있었다.  - P119

곧장 그녀에게 가서 말할 것이다. "해냈어요, 램지 부인. 당신덕분에." 그 집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에 들어서면서 그는 위층창문에서 움직이는 불빛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척 늦은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석찬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있었다. 집 전체에 불이 밝혀졌고, 어둠 속을 걸은 후 불빛이보이자 그의 눈에 빛이 충만한 것 같았다. 그는 현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아이처럼 속으로 빛이여, 빛이여,
빛이여 하고 중얼거렸고, 집 안에 들어서서도 눈이 부셔서 굳어 버린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며 빛이여, 빛이여, 빛이여 하고되풀이했다. 하지만 맙소사, 그는 넥타이를 매만지면서 속으로 말했다. 바보처럼 굴어서는 안 돼. - P128

 릴리 브리스코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의 말에 신경을 썼단 말인가? 여자들은글을 쓸 수 없다, 여자들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 그런 사람에게서 나온 이 말들이 대체 무슨 대수란 말인가? 그에게 이로울 이유만 없었더라면 그 말이 그에게도 진실이 아님이 분명하고, 사실 그 때문에 그가 그렇게 말했을 텐데. 왜내온 존재가 바람에 휘둘리는 곡식처럼 고개를 숙이고, 그 굴욕에서 다시 스스로를 일으키기 위해서 크나큰, 고통스러운 노력을 들여야 했던가? 다시 그림의 구도를 구상해 봐야지. 식탁보 위에 잔 나뭇가지가 있어. 내 그림이 있어. 나무를 한가운데로옮겨야 해. 이거야말로 중요한 일이고, 그 밖의 다른 것은 하등 상관없어. 내가 그 일에 줄기차게 매달릴 수 있을까? 화를내지 않고, 말다툼도 하지 않고 원한다면 그를 비웃어 줌으로써 복수를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 P141

걱정해야 할 미래가 없으니까. 그녀는 그들에게 일어난 일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다. 좋은 책을 다시 읽는 것 같았다. 이십년 전에 일어났으므로 이미 그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어디에서 흘러왔는지 모르지만 이 식당의 식탁에서도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 삶이 그곳에서는 밀폐되어 그 둘 사이의 잔잔한 호수처럼 누워 있으니까.  - P151

 그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그러했고, 그녀와 달랐다. 그러나 함께 보았다는 사실이 그들을 하나로 결합해 주었다.
이제 촛불이 모두 밝혀지자, 식탁 양쪽의 얼굴들이 촛불 빛으로 더욱 가까워졌고, 어둑했을 때와는 달리 식탁을 둘러싸고 한 무리를 이루었다. 이제 유리창이 바깥의 어둠을 차단했고, 바깥 세계를 정확히 보여 주기는커녕 그 세계에 너무나 기묘한 파문을 일으켜서, 여기 방 안은 질서정연하고 마른 땅 같았고, 저기 바깥은 물에 젖어 너울거리다가 사라지는 사물들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이내 어떤 변화가 실제로 일어난 듯이 그들 모두를 뚫고 지나갔다. 그들은 어떤 섬의 동굴에서 함께 일행을 이루고 있는느낌으로 저 바깥 세계의 유동성에 맞서 공동 전선을 폈다 - P157

이런 것이 사물의 복합성이었다. 특히램지가족과 머물면서 그녀는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을 동시에 격렬하게 느끼는일이 종종 있었다. 네가 느끼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이 서로 달랐고, 그 두 가지는 그녀 마음속에서 지금처럼 격렬하게 싸웠다. 그 사랑은 너무나 아름답고 자극적이어서 나는 그것을 마주하고는 몸을 떨면서 평소의 습관을 다 떨치고 바닷가에서브로치를 찾아보겠다고 제안한다. 또한 그 사랑은 더없이 어리석고 가장 야만적인 인간의 열정이라서, 보석처럼 매끄러운멋진 젊은이(폴의 옆모습은 정교했다.)를 마일엔드 로드에서쇠지레를 든 불한당(그는 으스대고 거들먹거렸다.)으로 바꿔 놓는다 - P164

그녀는 그 온갖 소란스러운 대화 이후에 잠시조용히 서서 어떤 특별한 것, 중요한 것을 찾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것을 떼어 내어 분리하고, 거기에 달라붙은 온갖 감정들과 잡다한 점들을 말끔히 씻어 내어 그것을 자기 앞에 놓고, 자신이 임명한 판사들이 둘러앉아서 은밀히 회의하는 법정으로 가져가서 결정하고 싶었다. 그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그게 옳은 걸까, 그른 걸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등등. 이렇게 그녀는 돌연히 물러난 이후에 자신을 바로잡았고,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어울리지 않게도 바깥의 느릅나무 가지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녀의 세계는변화하고 있었고 나무들은 정지되어 있었다. 갑자기 떨어져나올 때 그녀는 어수선한 움직임을 느꼈었다. 모든 것은 질서정연해야 한다. 그녀는 그 나무들의 기품과 정적, 이제 또다시 바람에 들려 (파도를 타고 솟구친 배의 이물처럼) 장려하게 솟아오른 느릅나무 가지들에 무의식적으로 감탄하면서, 그것을바로잡고 저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불고렇게 급히 가는사실 그녀가 뛰어가거나 서두른 것은 아니었다.  - P180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위대한 인물, 위대한 책, 명성……….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녀는그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남편의 태도였고, 진실성이었다. 예컨대 만찬에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절실히 바라고 있었다. 그가 말하기만 한다면! 그녀는 그를 완벽히 신뢰했다. 그녀는 물속에 뛰어들어 여기서 잡초를, 저기서 지푸라기를, 여기서는 물거품을지나치듯이 이 모든 것을 떨쳐 내면서, 더욱 깊이 침잠하면서,
홀에서 다른 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 여기서 내가 얻으려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딱히 알지 못한 채 그녀는 눈을 감고 더욱더깊이 빠져들었다.  - P189

글쎄, 이보다 더 잘 쓸 수 있으면 써보라고 해. 그 장(章)을다 읽고 나서 그는 생각했다. 그는 누군가와 논쟁을 벌이고 나서 상대를 이긴 것 같았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간에 그보다 더 잘 쓸 수는 없어. 자신의 입장이 더 확고해졌다. 연인들에 관한 묘사는 시시하기 짝이 없다고 그는 모든 것을 다시 마음속에서 정리하며 생각했다. 그것은 시시하기 짝이 없지만저것은 최고라고 그는 한 가지를 다른 것 옆에 놓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 책을 다시 읽어야 해. 그 책의 전체적인 형태를기억할 수 없으니, 판단을 유보해야지. 그래서 그는 다른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만일 젊은이들이 스콧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들은 자신의 저서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 P192

그녀는 읽었고, 그것을 읽으면서 꼭대기로, 절정으로 오르고 있다고 느꼈다. 얼마나 만족스러운가! 얼마나 평온한가!
그날 있었던 온갖 잡다한 일들이 이 자석에 달라붙어서, 그녀의 마음은 말끔히 일소되어 깨끗해진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아름답고 온당하며, 깨끗하고 완벽하게 갑자기 완전한 형체를 띠고 그녀 손에 들려 있었다. 삶에서 뽑아내져 여기 소네트에서 완성된 삶의 정수가. - P193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그가 자신을바라보고 있음을 알기에, 그녀는 말하는 대신에 양말을 든 채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면서 미소를짓기 시작했다. 그녀에게서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는 그녀가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부정할 수 없었다.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는 창밖을 내다보고(지상의 그 무엇도 이 행복에 비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내일은 비가 올 거예요."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미소를 띠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다시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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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물론이지. 내일 날이 맑으면 말이야." 램지 부인이말했다. "하지만 종달새가 지저귈 때 일어나야 할걸." 그녀가덧붙였다.
원정을 가는 것이 확정되기라도 한 듯, 어머니의 말은 아들에게 특별한 기쁨을 안겨 주었다. 어두운 밤을 보내고 한나절배를 타고 가기만 하면, 몇 년이나 지난 듯 오랜 시간 바라 마지않았던 그 놀라운 곳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섯 살 나이에도 그 아이에겐 이런저런 감정들을 서로 떼어 놓지 않고가까이 있는 현실에, 기쁘거나 슬픈 미래에 대한 예감을 덧씌우는 대단한 인간들의 속성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에겐 매우어린 시절에도 감정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어둠이나 광휘가발산되는 순간을 응결시켜 마음에 새겨 두는 능력이 있으므로, 마룻바닥에 앉아 아미 앤드 네이비 잡화점 상품 목록에 - P9

서 냉장고 사진을 오려 내고 있던 제임스 램지는 어머니의 말을 들은 순간 더없는 기쁨을 그 사진에 쏟아부었다. 그 사진에환희의 테두리가 둘러졌다. 손수레며 잔디 깎는 기계, 포플러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비 내리기 전에 하얗게 변하는 이파리들, 까악까악 울어 대는 떼까마귀, 부딪히는 빗자루, 사각거리는 드레스, 이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 또렷이 채색되고 각인되어 그 아이는 이미 내밀한 암호와 은밀한 언어를 만들어 냈다.
그렇지만 인간의 나약함이 드러난 광경에 절로 찌푸려지는넓은 이마와 한없이 정직하고 티 없이 맑은 푸른 눈 때문에 그아이는 타협할 줄 모르는 엄격함의 화신처럼 보였다. 그래서그의 어머니는 냉장고 사진을 가위로 말끔하게 오려 내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붉은 옷에 담비 가운을 두르고 판사석에 앉아 재판하거나 국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엄중하고 중대한 기획을 지휘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 P10

어느 모로 보아도 자신보다 만 배나 더 나은(제임스의 생각에는) 아내를 조롱하면서 즐거워하고, 또 자신의 정확한 판단력에 은밀히 자부심을 느끼면서 신랄하게 웃을 때 말이다. 램지 씨의 말은 옳았다. 그의 말은 언제나 옳았다. 그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누구(특히 자기 자식들)의 기쁨이나 편의를 봐주려고 사실을 임의대로 고치지도 않았고 불쾌한 말을 바꾸지도 않았다. 자기갈빗대에서 생겨난 자식들은 모름지기 삶이란 힘겨운 것이고, 사실이란 타협할 수 없는 것이며, 가장 빛나던 우리의 희망이 꺼지고, 부서지기 쉬운 우리의 배가 어둠 속에서 버둥거리며 전설적인 땅으로 나아가는 여정에는 (이 부분에서 램지 씨는 등을 똑바로 펴고, 작고 푸른 눈을 가늘게 뜨며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무엇보다도 용기와 진실, 인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알아야 한다. - P11

존재의 결, 그 속으로 뒤얽혀 들어가는 분쟁과 분열, 이견,
편견 들. 아, 그런 것들이 이렇게나 일찍부터 싹트다니. 램지부인은 탄식했다. 그녀의 아이들은 너무나 비판적이었다. 그들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가지 않으려 했던 제임스의 손을 잡고 식당에서 나왔다. 맹세코, 그러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미 서로 다른데, 그런데도 차이를 더 만들어내려는 것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같았다. 지금 존재하는 차이들만으로도 차고 넘칠 지경이라고 그녀는 응접실 창가에 서서 생각했다. 이 순간 그녀가 떠올린 것은 부자들과 빈자들, 지체가 높은 자들과 낮은 자들의 차이였다. 혈통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그녀는 내키지는 않더라도 혈통이 좋은 사람들을 존중하기는 했다. 자신의 핏줄에도약간 전설적이기는 하지만 대단히 고귀한 이탈리아 가문의피가 흐르고 있지 않았던가. 그 가문의 딸들은 19세기 영국의여러 응접실들에 흩어져서 매력적인 혀짤배기 소리를 냈고매우 자유분방하게 행동했다. 그녀의 재치와 몸가짐,  - P17

별안간 그는 깨달았다.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지금까지 본사람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것이다.
별빛이 빛나는 눈, 베일을 두른 머리칼에 꽂힌 시클라멘과야생 제비꽃…………. 이 무슨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부인은 적어도 쉰 살은 되었다. 자식이 여덟 명이나 있었다. 꽃들이 만발한 들판을 걸으면서 움튼 봉오리들과 갓 태어난 새끼 양들을 가슴에 품고, 별빛이 총총한 눈, 머리카락 사이로 지나는 바람………. 그는 그녀의 가방을 들었다.
"잘 있어요, 엘시." 그녀가 말했다. 그들은 거리를 따라 올라갔다. 그녀가 양산을 똑바로 들고 마치 모퉁이를 돌면 누군가를 만나리라고 기대하는 듯 걷는 동안, 찰스 탠슬리는 난생처음으로 유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하수구에서 땅을 파던 남자가 일을 멈추고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팔을 늘어뜨린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찰스탠슬리는 특별한 자부심을 느꼈다. 바람과 시클라멘과 제비꽃이 느껴졌다. 난생처음 아름다운 여자와 걷고 있었으니까. 그는 그녀의 가방을 꼭 잡았다. - P25

그러고 보면 9월이었고, 그것도 중순이었으며, 저녁 6시가 지난 시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평소에 다니던 대로 천천히 정원을지났고 테니스 코트를 지나 억새밭을 지나서는 울창한 산울타리가 갈라진 틈새로 갔다. 활활 타오르는 석탄 화로처럼 붉은 트리토마가 호위하고 서 있는 산울타리 틈새로 만의 푸른 물결은 전보다 더 파랗게 보였다.
그들은 어떤 필요에 이끌려 저녁마다 늘 그곳으로 산책을나갔다. 마치만의 물결이 마른 땅 위에서는 정체되어 있던 생각들을 띄워서 출항시키고, 그들의 몸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같았다. 처음에는 고동치는 푸른색이 만에 넘쳐흘렀고 그와더불어 마음이 확장되고 몸이유영했지만, 다음 순간에는 주름진 파도 위에 내려앉은 가시처럼 뾰족한 어둠으로 억제되고 냉각되었다. 그러고 나면 거대한 검은 바위 뒤에서 거의 저녁마다 하얀 물이 분수처럼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 P35

 배나무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지금, 이 두 남자에 대한 인상들이 강렬하게 밀려왔고, 그녀의생각은 너무 빨라서 연필로 받아 적기 힘든 목소리를 따르듯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그것은부정할 수 없고, 지속적이며, 상반되는 것들을 누가 일러 주지 않아도 줄줄이 늘어놓았으며, 그래서 배나무 껍질의 갈라진 틈과 옹이들마저 그 자리에서 돌이킬 수 없이 영원히 마음에 새겨졌다. 당신은 위대해요. 그녀는 속으로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램지 씨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는 마음이 좁고, 이기적이고, 허영심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에요. 그는 응석받이고, 폭군이에요. 그는 램지 부인을 죽도록 지치게 해요. 하지만 그에게는 당신에게 없는 것이 있어요 - P42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면서, 살아 있다는 것에 대체로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공감과 위스키, 자신의 고통스러운 모험담을 들어 줄 사람을 원한다 한들, 누가 그를 비난할 것인가? 누가 그를 탓할 것인가?
그 영웅이 갑옷을 벗고 창가에 멈춰 서서 자기 아내와 아들을쳐다본다면, 어느 누가 속으로 기뻐하지 않을 것인가? 처음에는 아득히 멀리 있지만 조금씩 가까워지고 마침내 입술과 책,
머리가 눈앞에 선명히 드러날 때까지, 자신의 치열한 고독과세월의 폐허와 별들의 소멸과 동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그 모습을 바라본다면. 그리고 마침내 파이프를 주머니에 넣고 자신의 당당한 머리를 그녀 앞에 숙이면서 세계의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한다면, 누가 그를 비난할 것인가? - P61

다가하지만 그의 아들은 그를 미워했다. 아버지가 가까이왔기에,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보았기에, 그를 미워했다. 자신과 어머니를 방해했기에 그를 미워했다. 그의 의기양양하고숭고한 몸짓 때문에, 그의 당당한 머리 때문에, 그의 가혹함과 자기중심적인 면모 때문에 (그가 서서 자기에게 관심을 기울이도록 명령했기에) 그를 미워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버지가자신의 들떠 있는 감정을 울리는 소리를 미워했다. 그 소리는그들 주위에서 진동하면서 그와 어머니의 더없이 소박하고평온한 관계를 어지럽혔다. 제임스는 책을 뚫어지게 바라봄으로써 아버지를 다른 곳으로 걸어가게 하고 싶었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가리키면서 어머니의 관심을 되돌리고 싶었다.
아버지가 걸음을 멈춘 순간 어머니의 관심이 흩어지는 것을느끼고 화가 났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어떻게 해도 램지 - P62

씨는 꼼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거기에 서서 공감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들을 팔로 감싸고 느긋하게 앉아 있던 램지 부인은 마음을 다잡고 반쯤 몸을 돌려 애써 일어나며, 빗발치는 에너지를,
한 줄기 물보라를 공중에 곧바로 쏟아 내는 것 같았다. 동시에 자신의 온 에너지가 응집되어 환히 타오르는 힘이 솟아난듯(그녀는 다시 양말을 집어 들고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생기 있고 활기차게 보였다. 그리고 이 감미로운 풍요로움에, 이 생명의 샘과 물보라에, 남성의 치명적인 불모성이 메마르고 적나라한 놋쇠 부리처럼 파고들었다. 그는 공감을 원했다. 그는 실패작이라고 말했다. 램지 부인은 바늘을 반짝이며 뜨개질을계속했다. 램지 씨는 그녀의 얼굴에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고자신이 실패작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녀는 상대하지 않았다. - P63

그 즉시 램지 부인은 꽃잎 하나가 다른 꽃잎 속에 포개지듯온몸이 접히는 것 같았다. 기진맥진하여 무너져 내리면서 그녀는 극도의 피로감에 절묘하게 몸을 내맡겼고, 그림 형제의동화책28)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일 힘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창조를 이루어냈다는 황홀감이, 완전히 늘어났다가 이내부드럽게 멈춘 스프링의 진동처럼 그녀의 몸속에서 고동치며지나갔다.
그가 걸어가는 동안, 이진동이 울릴 때마다 그녀와 남편을 감싸고 그 두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것 같았다. 함께 울리는 높고 낮은 서로 다른 두 음조가 결합하면서 서로에게 주는 위안. - P65

자기들의 기호에 대해 품는 사랑이나 시인들이 자신들의 시구에 품는 사랑처럼 온세상에 퍼져 나가 인간을 향상하는 한부분이 될 수 있는 사랑이었다. 진정 그러했다. 그 부인이 왜그렇게 기쁨을 주었는지, 그녀가 아들에게 동화를 읽어 주는광경이 왜 과학 문제를 풀었을 때와 똑같은 희열을 자신에게주었는지를 뱅크스 씨가 말할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가 차분히 숙고해 보고 자신이 식물 소화기관에 관해서 확고한 사실을 입증해 보였을 때처럼 야만성을 순화하고 혼돈의 지배를 억제한 듯이 느꼈다고 말할 수 있었더라면, 세계는 틀림없이 그 기쁨을 공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환희(달리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때문에릴리 브리스코는 자기가 말하려던 것을 송두리째 잊어버렸다. 램지 부인에 대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이 환희, 이 말 없는 응시 옆에서 무색해졌고, 그 응시에 대해 그녀는 깊이 고마워했다. 그녀에게 이 숭고한 힘.
이 절묘한 선물은 그 무엇보다도 큰 위안을 주었고, 삶의 당혹스러움을 덜어 주었으며, 기적처럼 삶의 무거운 짐을 들어 주었다. 그 응시가 지속되는 한 그것을 방해하지 않으리라. 바닥을 가로질러 수평으로 내려앉은 한 줄기 햇살을 끊고 싶지 않듯이,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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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그 누구의 사유지도 아닙니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거기에는 국경도 전쟁도 없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없이 자유롭게 걸어 들어가, 자기 길을 스스로 발견합시다. 그럴 때에, 영국 문학은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아 구렁을 건널 것입니다. 우리 같은 평민이요 아웃사이더들이그 나라를 우리 자신의 나라로 만든다면, 책을 읽고 쓰는법을,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창조할지를 스스로 배울때 말입니다.

버지니아 울프


<전기라는 예술이라고 우리는 말하지만, 대번에 되묻게된다. <전기가 예술이야?> 이런 질문은 아마도 어리석고, 전기 작가들이 우리에게 제공했던 강렬한 즐거움에 비추어 보면 분명 편협한 것일 터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이 그렇게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그 뒤에 무엇인가 있음이 틀림없다. 새로운 전기가 펼쳐질 때마다 그것이 페이지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그 그림자 안에는 무엇인가 치명적인 것이 들어있는 듯하다. 수많은 전기가 쓰이지만, 살아남는 것은 그토록 적으니 말이다! - P165

여기서 우리는 해결하기 힘든 또 다른 문제에 접근하게된다. 즉, 어떤 책을 가리켜 예술 작품이라 하는 것은 무슨뜻인가? 아무튼 전기와 소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 양자는 재료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전기는친지들과 사실들의 도움을 빌려 만들어지고, 소설은 예술가가 스스로 좋게 여겨 따르는 제약 말고는 아무런 제약 없이만들어진다. 그것은 중요한 차이이며, 지난날의 전기 작가들은 그것을 아주 잔혹한 차이로 여겼다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근거가 있다. - P167

리턴 스트레이치는 운이 좋은 시기에 작가로 출발했다.
1918년 그가 첫 작품을 내놓았을 때, 전기는 여러 가지 새로운 자유가 허용되는 매력적인 장르가 되어 있었다. 그와 같은 작가, 즉 처음에는 시나 희곡을 쓰고 싶었지만 자신의 창조력에 회의하던 작가에게 전기는 유망한 대안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고인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것이 마침내 가능해졌으며, 빅토리아 시대의 고명한 인물들 중에는 덧씌워진 밀랍가면으로 심하게 변형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재창조하여 실제의 모습대로 보여 주는 것은 시인이나 소설가에 맞먹는 재능을 필요로 하되, 그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되던창의적 재능은 요구하지 않는 소임이었다. - P169

그렇지만 그런 결합은 실제로 불가능함이 드러났다. 사실과 허구는 뒤섞이기를 거부했다. 엘리자베스는 빅토리아 여왕이 리얼했다는 의미로는 결코 리얼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클레오파트라나 폴스타프‘가 허구라는 의미로 허구가되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알려진 사실이 너무 적어서 창작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알려진 사실들이 있었으므로창작에 제동이 걸린다는 데 있었다. 여왕은 그리하여 사실과허구 사이의 애매한 세계로 들어가, 육체가 있는 것도 없는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어딘가 빈틈이 있고 꾸며 내려 애쓴 티가 나며, 비극이지만 갈등이 없고 인물들은 서로 스쳐 가지만 정말로 만나지는 않는 것 같다. - P173

그리고이 모든 다양성으로부터, 혼란이 아니라 더욱 풍부한 통일성을 이끌어 낼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알려졌으므로, 이제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질문은 이런 것이다. 위인들의 생애만이 기록되어야 하는가?
하나의 삶을 살고 그 삶의 기록을 남긴 누구라도 전기의 주인공이 될 만하지 않은가? 성공뿐 아니라 실패도 유명한 사람들뿐 아니라 이름 없는 사람들도?" 위대함이란 무엇인가?
사소함이란 무엇인가? 전기 작가는 공덕에 대한 표준 자체를바꾸고, 우리가 찬미할 만한 새로운 영웅들을 제시해야 한다. - P177

예술가의 상상력은 최고조에 이르면 사실에서 소멸할 수 있는 것을 불살라 버리고, 영속적인 것을재료로 삼는다. 하지만 전기 작가는 소멸할 수 있는 것을 받아들여 그것을 재료 삼아 자기 작품을 짜나가야 한다. 많은것이 소멸하고, 살아남는 것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기술자이지 예술가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의 작품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그 중간에 끼인 무엇이다.
하지만 그 낮은 수준에서도, 전기 작가의 작품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우리는 그가 우리를 위해 해주는일에 대해 아무리 감사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전적으로상상력의 강렬한 세계에만 살 수는 없으니 말이다. 상상력이란 금방 지쳐 버리므로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한 기능이다. - P178

우리에게 참된 사실들을 말해 줌으로써, 자질구레한 것들을 큰 것들로부터 걸러냄으로써, 전체적인 윤곽을 알아볼수 있도록 전체의 형태를 잡아줌으로써, 전기 작가는 어떤시인이나 소설가보다 더 상상력을 자극한다. 물론 최고의 시인이나 소설가는 제외하고 말이지만, 우리에게 리얼리티를느끼게 하는 고도의 긴장을 제공할 수 있는 시인이나 소설가는 얼마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거의 어떤 전기 작가라도 사실들을 존중하기만 한다면 그저 잡학 지식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 그는 우리에게 창조적인 사실, 풍요로운 사실, 암시하고 배태하는 사실을 제공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증거가 있다. 전기를 읽고 나면 얼마나 자주 어떤 장면이나 인물이 마음속 깊이 살아남아, 우리로 하여금시나 소설을 읽을 때 마치 전에 알았던 무엇을 기억하기나하는 듯 소스라치며 알아보게 하는가 말이다. - P179

또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기차간의 맞은편 벽면에 이런말이 쓰여 있습니다. 창밖으로 몸을 내밀지 마시오.> 처음읽으면 유용한 의미, 표면적 의미가 전달되지만, 그 말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보면 얼마 안 가서 말들이 뒤섞이고 달라져서 이렇게 중얼거리게 되지요. <창문이라, 그래, 창문, 쓸쓸한 요정 나라에서, 위험한 바다의 거품을 향해 열린 마법의 창문………. 그러고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우리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맙니다. 이국의밀밭에서 눈물 흘리며 서 있는 룻을 보려고요. 그 대가는20파운드 벌금이거나 아니면 부러진 목이겠지요. - P183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용성을 거부하는지 보아 왔습니다. 말의 본질은 어느 한 가지 진술이아니라 천 가지 가능성을 표현하는 데 있습니다. 말은 그 점을 너무나 자주 보여 왔으므로, 우리도 그 사실을 직시하기시작했지요. 즉 또 다른 언어를 발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용한 진술을 표현하는 데 최적화된 언어, 기호 언어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빚지고 있는 이 언어의 살아 있는 대가,
그 이름 모를 작가 - 남자인지 여자인지 육신을 떠난 영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P184

말들은 서로서로 속해 있습니다. 물론, 위대한 작가만이 <담홍색>이라는말이 <무량무변의 바다>에 속한다는 것을 알겠지만요. 새로운 말을 오래된 말과 결합시키는 것은 문장의 구성에 치명적입니다. 새로운 말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새로운 언어를 발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새로운 언어의 발명도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지금 우리 관심사는 그게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현재 있는 그대로의 영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일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오래된 말들이 살아남아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진실을 말하게 하려면, 어떻게 그것들을새로운 질서에 결합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 하지만다. 말이란 별개의 독립체가 아니라 다른 말들의 일부라는명백하고도 신비로운 사실 때문입니다.  - P189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줄 수 있는어떤 영광의 관(冠)이라도 받을 만합니다. 만일 글쓰기의 기술을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모든 책, 모든 신문이 진실을 말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하지않겠습니까. 하지만 말 다루기를 가르치는 데는 방해가 장애물이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적어도 백 명의교수들이 과거의 문학에 관해 강의를 하고, 천 명의 비평가들이 현재의 문학에 대한 서평을 쓰고, 수백 명의 젊은 남녀가 영문학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얻고 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강의도 비평도 시험도 없던 4백 년 전보다 더잘 쓰거나 더 잘 읽습니까?  - P190

 말들은 사전이 아니라 마음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사전을 다시 보십시오. 그 안에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보다 더 장려한 희곡이 나이팅게일에게 바치는 송가보다 더 아름다운 시가, 『오만과 편견이나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아마추어의 습작으로나 보이게 만들 만한 소설이담겨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옳은 단어를 골라내어 옳은 순서로 늘어놓기만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말들이 사전이 아니라 마음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서어떻게 사느냐고요? 다양하게, 기발하게 살지요. 사람들이살듯이 꼭 그렇게요. 이리저리 쏘다니고, 사랑에 빠지고, 짝짓기를 하면서요. 사실 우리보다는 예식과 관습에 훨씬 덜얽매이지요. 왕실에나 어울릴 말들이 평민의 말들과 짝이 되니까요. 영어 단어가 프랑스어나 독일어 단어와 결혼하기도합니다. 그럴 마음만 있다면 인도 말, 흑인의 말과도요. 실로우리의 친애하는 모국어인 영어는 과거를 모르면 모를수록그 평판이 한층 더 높아지겠지요. 그녀는 정말이지 종잡을수 없는 떠돌이 아가씨였으니까요. - P191

보이고 그들리그것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어떤 사람에게 어떤 것을,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한 세대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다가, 다음 세대에는 명약관화한 것이 됩니다. 그들이 살아남는 것은 이 복잡성 덕분입니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에게 위대한 시인이나 소설가,
비평가가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말에게 자유를 주려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말들을 한 가지 의미, 유용한 의미, 기차를 제시간에 탈 수 있게 해주는 의미, 시험에합격하게 해주는 의미로만 못박습니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못 박히면 날개를 접고 죽어 버립니다. 끝으로, 이것이 가장중요한데, 말이 마음 편히 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 프라이버시가 필요합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은 우리가 그들을 사용하기 전에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의 무의식이 그들의 프라이버시이고, 우리의어둠이 그들의 빛이지요.  - P193

글을 쓰기 시작하는 젊은 남녀가 일반적으로 듣게 되는그럴싸하지만 전혀 실천할 수 없는 조언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가능한 한 짧고 분명하게,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정확히 말하려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쓰라는 것이다. 아무도 그런 경우에 정말로 필요한 한 가지, 즉<반드시 네 후원자를 현명하게 고르라>는 말은 해주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인데 말이다. 왜냐하면 책이란항상 누군가 읽을 사람을 위해 쓰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후원자는 단순히 돈을 대는 사람일 뿐 아니라 아주 미묘하고 음험한 방식으로 어떤 글이 쓰이도록 선동하고 고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바람직한 인간이라야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 P195

그러니 모든 작가는 글을 쓰면서 어떤 대중이든 의식하지않을 수 없다고 할 때, 눈 높은 작가라면 대중은 그가 쓰고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양순한 무리라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이론은 그럴싸하게 들릴지도「모르지만, 커다란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 작가는 자기 대중을 의식하되 대중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되는데, 이는 불편하고 불운한 조합이니, 새뮤얼 버틀러, 조지메러디스 헨리 제임스 등이 입증하는 바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대중을 경멸했고, 대중을 원했고, 대중을 얻는 데 실패했고, 자신의 실패를 대중의 탓으로 돌렸으며, 갈수록 더해가는 까다로움과 모호함과 허세로 대중과 담을 쌓았다. 후원자를 자신과 대등한 벗으로 여기는 작가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P197

 그는 단 한 송이일지라도 진짜 크로커스이기만 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우리에게 느끼게 해야 한다.
그는 가르침을 받아 더 고상해지거나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칼라일을 괴롭혀 악을 쓰게 하고 테니슨에게는 목가나 쓰게 하고 러스킨의 정신이 이상해지게만들어 미안하다고, 이제 자기주장을 그치고 작가들이 요구하는 대로 할 준비가 되었다고, 자신은 모성애보다 더한 끈으로 작가들과 결부되어 있다고, 작가와 자신은 한쪽이 흥하면 다른 쪽도 흥하고 한쪽이 죽으면 다른 쪽도 죽을 수밖에없는 쌍둥이와 같다고, 문학의 운명은 양자의 행복한 동맹에달려 있다고 -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입증하는바, 처음에 말했던 대로, 후원자의 선택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옳은 선택을 하나? 어떻게 글을 잘 쓰나? 그것이 문제이다. - P201

작가란 책상 앞에 앉아 무엇인가를 골똘히 응시하는 자입니다. 이 비유를 잠시 들여다보면 우리 길을 곧장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종이 한 장을 앞에 놓고 앉아자신에게 보이는 것을 모사하려고 애쓰는 예술가입니다. 그의 대상, 즉 모델은 무엇일까요? 화가의 모델처럼 ㅡ 꽃이담긴 화병이라든가, 나체라든가, 한 접시의 사과와 양파라든가 - 단순하지는 않지요. 아주 간단한 이야기라 해도 한인물, 한 시대를 넘어서기 마련입니다. 인물들은 젊었을 때시작하여 늙어 가며, 장면에서 장면으로, 장소에서 장소로돌아다닙니다. 작가는 움직이며 변화하는 모델, 단일한 대상이 아니라 무수한 대상을 지켜보아야 합니다. 작가가 바라보는 그 모든 것을 단 두 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의 삶> - P203

아마도 그 때문에 19세기가작가들은 유형이 아니라 개인인 인물들을 그렇게 많이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계층들 사이를 나누는 울타리를 보지 못하고 울타리 안에 사는 인간 존재들만을 보았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그는 표면을 뚫고 들어가 다면적인 인물들-페크스니프 베키 샤프 우드하우스 씨처럼‘ - 세월이 가고삶이 달라지면서 변화하는 인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제 우리에게는 그 울타리들이 보입니다. 우리는 그작가들 각자가 인간의 삶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다룰 수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새커리의 모든 인물은 중상류층 사람들이고 디킨스의 모든 인물은 하층 또는 중류층 출신입니다. 이제는 그것이 보입니다. 하지만 작가 자신은 자기가 한 유형, 작가자신이 태어난 계층에 의해 형성된 유형, 자신에게 가장 친숙한 유형만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무의식은 그에게 크나큰 이점입니다. - P211

작가도 그렇습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볼 수 있는한 보고, 느낄 수 있는 한 느끼고, 마음의 책 속에 무수한 메모를 해가며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작가는 - 가능하다면 - 무의식 상태가 됩니다. 실상 그의 정신의 위쪽이조는 동안 정신의 아래쪽은 전속력으로 일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잠시 후 베일이 걷히면, 거기 그것이 그가 글로 쓰고싶은 것이 단순해지고 틀이 잡힌 상태로 나타납니다. <고요함 가운데 회상되는 감정>에 관해서는 워즈워스의 유명한말이 있습니다만, 이 고요함이라는 말을 작가가 창작에 들어가기 전에 무의식 상태가 될 필요가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면 시인의 말을 곡해하는 것이 될까요. - P212

이 작가들이 저마다 다 다르기는 하지만, 그리고 영향이라는 문제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얕기는 하지만, 그들의 교육과업적 사이에는 분명 연관이 있다고 결론지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교육받은 소수의 계층이 그렇게 훌륭한 문학을 많이생산한 반면, 교육받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이 훌륭한 문학을거의 생산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저 우연일 수는 없습니다 - P216

노동자 계급이 영국 문학에 기여한 모든 것을 덜어 낸다 해도 문학은 거의 타격을 입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육받은 계층이 기여한 모든 것을 덜어낸다면, 영국문학은 거의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교육은 작가의일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정황이 이처럼 명백하고 보면, 지금껏 작가의 교육이 별로강조되지 않았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입니다. 아마도 그것은작가가 되기 위한 교육이 다른 교육보다 훨씬 덜 구체적이기때문일 것입니다. 읽기, 듣기, 대화하기, 여행, 여가 등 여러가지가 뒤섞여 있습니다. 삶과 책이 적당한 비율로 뒤섞여 흡수되어야 합니다. 서재에서 홀로 자란 소년은 책벌레가 되고,
들판에서 홀로 자란 소년은 흙벌레가 됩니다.  - P217

작가라는 나비를 키우기 위해서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서 3~4년 동안 일광욕을 하게 해야 한다고나 할까요. 어떤 식으로든 거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작가가 되기 위한 기술을 배웁니다. 그것도 분명 배워야 하는 기술이니까요. 아무래도 이상하게 들리나요? 아무도 화가가 그림 그리기를 배워야한다거나, 음악가, 건축가가 각기 자기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말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작가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글쓰기라는 기술도 적어도 다른 기술만큼은 어려우니까요. 아마 그 교육이 별로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하는 모양이지만,  - P217

우리가 실제로 기우는탑 위에 있다고 상상하고 우리 느낌을 기록해 봅시다. 우리의 느낌이 그 작가들의 시와 희곡과 소설에서 관찰되는 경향들과 일치하는지 보기로 합시다. 탑이 기운다고 느끼자마자우리는 우리가 탑 위에 있음을 날카롭게 의식하게 됩니다.
그 작가들도 날카롭게 탑을 의식했고, 자신이 중류층 출신임을, 그리고 값비싼 교육을 받았음을 의식했지요. 탑꼭대기로 올라가보면, 얼마나 기이한 조망인지요. 보이는 풍경이완전히 뒤집히지는 않았지만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것도 사탑 작가들의 특징입니다. 즉 그들은 어떤 계층도똑바로 마주 보지 못하고, 아래서 쳐다보거나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옆에서 비껴 봅니다.  - P221

물론우리는 - 우리는 평민이요 아웃사이더가 아닙니까? - 숱한 꽃을 짓밟고 유서 깊은 잔디밭을 망가뜨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한때 도보 여행가로 유명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한 고명한 인사가 보행자들에게 준 조언을 명심하기로 합시다.
<침입 금지라고 쓰인 팻말을 보거든 즉시 침입하라>고 말입니다.
즉시 침입합시다. 문학은 그 누구의 사유지도 아닙니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거기에는 국경도 전쟁도 없습니다.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걸어 들어가, 자기 길을 스스로 발견합시다. 그럴 때 비로소 영국 문학은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아구렁을 건널 것입니다. 우리 같은 평민이요 아웃사이더들이그 나라를 우리 자신의 나라로 만들 때, 책을 읽고 쓰는 법을,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창조할지를 스스로 배울 때 말입니다. - P242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은 이 선집의 제1권에 소개한 여성 노동자 조합의 추억Memories of aWorking Women‘s Guild」(1930) 말미에서도 시사된 바 있지만, BBC 방송에서 진행한 남편 레너드 울프와의 대담 너무 많은 책이 쓰이고 또 나오는 게 아닐까?Are Too ManyBooks Written and Published?」(1927)에서도 확인된다. <교육받은 남자>인 레너드는 아무나 책을 쓴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반면,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울프는 왜 그러면 안 되는가? 하고 반문하며 문학은 공유지임을 강변하는 것이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제도권으로부터자유로운 시각을 누리는 당당함이 있다. 이쯤 되고 보면 그녀는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녀는 자신이 열어 갈 길에 대해 이렇게 말한바 있다. - P271

나는 <유명해지거나 <위대>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계속 탐험하고, 변화하고, 마음과 눈을 열고, 규정당하거나 정형화되기를 거부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 주는 것,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자기 세계의 크기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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