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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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 -내 자신에 대해서만-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경험했던 비극과 실패는 나를 파멸시킨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에게는 환상이라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역사를 창조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있다. 역사의 의지를 알 사람은 누구일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폭력을 뒤엎지 않으면 안 되는 피억압자뿐이다. 패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 일체의 새로운 세계를 최후의 전투에서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뿐이다. 억압은 고통이요, 고통은 의식이다. 의식은 운동을 의미한다. 인간 그 자체가 다시 태어날 수 있으려면 수백만이란 사람이 죽어야 하고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고통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 객관적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유혈과 죽음의 광경, 그리고 어리석음과 실패의 광경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한 나의 통찰력을 가로막지 않는다.

  인류 역사의 전통은 민주주의적이요, 이 전통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천부의 권리이다. 그러나 이 천부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들한테서 그것을 도둑질해 가는 자도 있다. 물은 사람을 빠뜨려 죽이기도 하고 구해주기도 한다. 오늘날 인간사회는 고요한 마을 연못이 아니라 성난 홍수이다. 사람은 반드시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14살 때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나는 결코 물에서 떠나본 적이 없다. 나는 몇 차례나 스스로를 포기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파괴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민중과의 계급관계를 유지하는 것. 왜냐하면 민중의 의지는 역사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민중은 깊고 어두우며 행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단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는 소곤거리는 소리와 침묵의 웅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개개인과 집단들은 큰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그리하여 그 때문에 큰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진실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되는 것이지 큰소리로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민중들이 이 목소리를 들을 때, 그들은 손에 총을 잡는다. 마을 노파 한 사람의 긴박한 속삭임만으로도 충분하다. 진정한 지도력은 날카로운 귀와 신중한 입을 필요로 한다. 민중의 의지에 따르는 것만이 승리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중략)

  비극은 인생의 한 부분이다. 억압을 딛고 일어서는 것은 한 인간의 영광이요, 굴복하는 것은 한 인간의 수치이다. 내게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제국주의전쟁 속에서 자신들의 생명을 맹목적으로 포기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비극이다. 그것은 낭비인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억누르는 데 이용당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내게는 비극이다. 그것은 어리석음이다. 자유를 위하여 그리고 자기들이 믿고 있는 것을 위하여 싸우다 의식적으로 죽는 것은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영광이요 장렬함인 것이다. 죽음은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니다. 또한 죽음은 무익한 것도 아니요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 믿고 있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싸우다 죽는 것은 행복한 죽음인 것이다. 나는 너무나 많은   인명의 낭비를 보아왔으며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마는 쓸데없는 희생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나의 경우에는 이것을 철학적으로 시인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만은 늘 기억하고 있다. 혁명가들은 자기의 희생 속에서 행복하게 죽어가는 것이요, 그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슬픔이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어떠한 권리도 요구하지 않는다.

  내 청년시절의 친구나 동지들은 거의 모두가 죽었다. 민족주의자, 기독교신자,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공산주의자 등등 수백 명에 이른다. 그러나 내게는 그들이 지금도 살아 있다. 그들의 무덤을 어디로 정해야 하는지 따위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전장에서, 사형장에서, 도시와 마을의 거리거리에서, 그들의 뜨거운 혁명적 선혈은 조선, 만주, 시베리아, 일본, 중국의 대지 속으로 자랑스럽게 흘러들어갔다. 그들은 눈앞의 승리를 보는 데는 실패했지만 역사는 그들을 승리자로 만든다. 한 사람의 이름이나 짧은 꿈은 그 뼈와 함께 묻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의 마지막 저울 속에서는 그가 이루었거나 실패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불사성(不死性)이며, 그의 영광 또는 수치인 것이다.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이 객관적 사실은 바꿀 수가 없다. 그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사람이 역사라고 하는 운동 속에서 점하는 자리를 빼앗을 수가 없다. 그 무엇도 사람을 빠져나가게 할 수가 없다. 유일한 그의 개인적 결정이라고는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후퇴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아니면 굴복할 것인가, 가치를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파괴할 것인가, 강해질 것인가 아니면 나약해질 것인가 하는 것밖에 없다.”

 

  ‘아리랑’의 결말에 해당하는 이 부분 몇 페이지를 몇 번이고 읽으면서 한 혁명가의 웅변에 숙연해진다. 읽을 때마다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사람을 향한 신뢰가 저토록 확고하게 읽히는 문장들이 뒤에서 따라오는 어떤 걸음처럼 거칠고도 뚜벅뚜벅 집요하다. 오래토록 따라올 발자국소리다. 고개를 돌리면 확신에 차있는 결연한 그 눈빛에 마음까지 읽힐 것만 같아 허둥지둥 내 걸음은 서툴고 두렵다. 이 피둥피둥한 세월이 미안하다.

  “김산(본명 장지락)”

  왜 그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그에게도, 그와 그의 동지들이 온 몸으로 살아냈던 시절의 역사에게도, 내가 그동안 배워 온 역사에게도 안타깝고 죄스럽다.

  그동안 무엇을 배운 것일까? 그동안 무엇을 읽은 것일까? 우리의 역사는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친 것인가? 먹먹하게 아프다.

  역사는 결국 사람의 역사인 것을.

  실패한 역사도 역사인 것을.

  그들을 승리자로 만들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는 대체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싶어 부끄럽다. 우리의 혁명가 한 사람도 제대로 바로보지 못했으면서 로마인 이야기에 코를 박고 감탄해온 내 얄팍한 앎이 두고두고 부끄러운 것이다.

  

 “그들은 눈앞의 승리를 보는 데는 실패했지만 역사는 그들을 승리자로 만든다. 한 사람의 이름이나 짧은 꿈은 그 뼈와 함께 묻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의 마지막 저울 속에서는 그가 이루었거나 실패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불사성(不死性)이며, 그의 영광 또는 수치인 것이다.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이 객관적 사실은 바꿀 수가 없다. 그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사람이 역사라고 하는 운동 속에서 점하는 자리를 빼앗을 수가 없다. 그 무엇도 사람을 빠져나가게 할 수가 없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 고뇌와 투쟁을 통해 조선인 혁명가로 거듭나는 삶을 님 웨일즈의 기록으로 만나는 그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혁명가의 모습을 지금 이 시대의 어떤 명망 있는 지도자에게서도 볼 수가 없다는 애석함에 그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사람을 향한 뜨거운 신뢰와 애정, 끊임없는 독서와 성찰, 빠른 결단과 행동, 톨스토이를 향한 애정, 잭 런던의 평가, 업튼 싱클레어에 대한 견해, 등등....... 한 마디로 으악! 이다. 생존이 곧 투쟁일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그것도 존재의미도 미미해질 이국의 땅에서, 이 혁명가의 자신만만한 태도는 한결같은 자세로 생을 꿋꿋이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리라.

  아리랑을 읽는 내내 그 후 시대를 산 위화의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내용들이 마구 떠다녔다. 열 개의 단어로 본 중국인의 초상이, 마오의 사상이, 문화 대혁명 시절의 인민들의 삶이, 또한 루쉰의 글들도. 한편으로는 그 당시의 동아시아의 역사를 한 조선인 혁명가의 시선으로 투쟁의 기록으로 읽어나가는 일은 자부심이었다가 부끄러움이었다가 안타까움이었다가 분노였다가 다시 무기력함까지....... 결국은 우리 내면의 역사를 바라보는 일이 되었다. 그는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생각들을 행동으로 실천했는데, 우리는 거기서 한발도 더 나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두워진다.

  그래도, 그래도 그런 혁명가를 가진 우리의 역사를, 우리에게도 이념이나 권력에 굴복하지 않은 멋진 ‘체’가 있음이 자랑스럽다.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 -내 자신에 대해서만-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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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브레드 - 집에서 쉽게 만드는 영양만점 우리밀 통밀빵 54가지 natural Life 4
이언화 지음 / 다빈치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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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힐링 브레드 (이언화)]는 집에서 쉽게 만드는 우리밀 통밀빵 54가지란 부제가 붙은 책이 있습니다. 빵을 굽지도 못하고 그러려고 생각지도 않지만 배고픈 새벽, 가끔씩 아무 페이지나 열어봅니다. 먹지 못하는 책 속의 빵이 흐뭇합니다. 빵을 만드는 그녀를 알 듯도 모를 듯도 해서 더 평온해지고 촉촉해지는 그런 빵입니다. 이웃인 [월인정원]의 책입니다. 지리산과 섬진강의 햇살과 바람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담긴 그녀의 [힐링 브레드]는 나누고 싶고 먹고 싶은 우리 밀로 만든 빵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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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정지아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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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정지아의 [봄빛]을 읽고서 [빨치산의 딸1,2], [행복]을 연거푸 읽었습니다. [봄빛] 속에서도 그랬지만 단편 [무녜기]를 읽고, 해를 바라보는 시선을 이 작가가 다 써버려서 누구도 영영 쓸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빛에 관한 그녀의 묘사는 투명하게 건너온 빛이 마음까지 투시할 듯 강렬하고 매혹적이었습니다. 스토리를 전개해가는 탄탄함속에 먼 시공을 질러온 한 줄기 빛 같은 삶이 스며있어 좋았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다음 작품들도 책꽂이에 쭈욱 꽂히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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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부터 읽으려 했던 김훈의 [풍경과 상처]를 구했다. 200쪽 얇은 분량은 단숨에 읽어치울 것 같았지만 미려한 김훈의 문장은 언제나 나를 숨 막히게 한다.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속에서 살아간다. 상처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갈 때, 이 세계는 내 상처 속에서 재편성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때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언어는 마치 쑥과 마늘의 동굴 속에 들어앉은 짐승의 울음처럼 아득히 우원(迂遠) 하여 세계의 계면(界面) 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이 세계가 그 우원한 언어의 외곽 너머로 펼쳐져 있는 모습이 내 생애의 불우(不遇) 의 풍경이다.
  나는 모든 일출(日出) 과 일몰 (日沒) 앞에서 외로웠고 뼈마디가 쑤셨다. 나는 시간 속에서 내 자신의 존재를 비벼서 확인해 낼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몽롱한 언어들이 세계를 끌어들여 내 속으로 밀어 넣어주기를 바랬다.‘

책의 서문에서 여기까지를 읽고 책을 덮고 말았다. 내게 풍경이 어떤 것인지 준비하지 않고는 책을 계속 읽는다는 것이 무의미했다. 현란한 수사 앞에서 내가 가진 문장의 한계는 여실했고, 거칠 것 없이 뿜어져 나오는 그의 어투에 휘둘려서 나는 탈진하듯 소진해가곤 하기 때문이다.

  책방에 나가니 여러 종류의 신간들이 쏟아져 나와 있었다. 여전히 여행서들 앞에서 오래 시간을 끈다. 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여행] 앞에서 망설이고, 전경린의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앞에서 책장을 펄럭인다. 신현림의 [굿모닝 레터]를 반쯤 읽고 [길에서 시와 소설을 만나다] 라는 임동헌의 책 속에서 사진들을 오래 들여다본다. 나에게 오랫동안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생각하게 해 주던 박이문의 산문집 [길]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결국 마지막에 내가 선택한 책은 정끝별 시인의 [여운] 이었다. 내 마음에 길게 여운을 남겨줄 것 같은 예감에 젖어서 돌아온 그 걸음에 읽기 시작하여 며칠 동안 틈만 나면 책 속에 코를 박았다. 집에 가서 읽으려던 계획은 컴때문에 번번히 깨지고 말지만 돌아올 땐 어김없이 가방에 챙겨 넣고 다니기만 했다. 일하는 짬짬히 읽는 책은 갈증만 더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저자의 시선을 따라 여행을 하는 산문집은 그런 조급을 누를 수 가있다. 일하는 동안 앞에 읽은 글속풍경을 상상으로 고스란히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여행을 하면서 쓰는 시‘가 있는가하면 ’여행을 망각하면서 쓰는 시’ 가 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읽는 시’가 있는가 하면 ‘여행을 하게 만드는 시’가 있습니다. 저는 이 두 문장중 후자 쪽에 자리 잡고 있는 시들을 좋아합니다. 시인 스스로가 여행을 망각하면서 쓴 시, 그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여행을 하게 만드는 시들 말입니다. 여행을 망각하면서 쓰는 시는 내면에 각인된 단 하나의 풍경을 위해 배경으로서의 풍광을 지워버리는 시입니다. 여행을 하게 만드는 시는 단 하나의 풍경에 시인의 전 존재가 내던져지고 녹아드는 시입니다.....바람풍과 햇빛경이 어우러진 ‘풍경’ 그 풍경이 바로 자기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서문이 시작된 책은 소제목 하나로도 전체적인 느낌을 미리 맛보게 했다.
  ’눈물처럼 후두둑 지고말 선운사 동백꽃‘ ’저무는 봄날, 등명에 서다.‘ ’생생한 우포늪의 시간들‘ ’운주사 비전秘傳 속에 비전vision이 있었네‘ ’한 번은 있을 법한 사랑의 남해 금산‘ ’격렬비열도!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사랑과 기다림으로 이어진 부석사 가는 길‘ 들이 치장하지 않은 사진들과 시들 속에 풍경이 살아서 내게로 왔다. 기행으로서의 단순한 풍광이 아니라 시 로서 풍경들이 잠겨오는 느낌은 일몰이 나를 서서히 채워갈 때를 바라보는 그런 경이였다.

  [여운]을 읽으면서 비로소 [풍경과 상처] 속의 글들을 바로 할 수 있었다. 두 책을 번갈아 가면서 소제목이 주는 이미지의 다름과 소설가와 시인의 다름을 알았고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보는 다른 시선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소 제목의 느낌부터 단호하게 다르면서도 닮아있었다.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 -전군가도’ ‘돌 속의 사랑 -남해 금산’ ‘악기의 숲 무기의 숲 -담양 수북’ ’오줌통 속의 형이상학 -질마재‘ ‘억새 우거진 보살의 나라 -운주사’
미당의 질마재 신화가 시인의 눈에는 눈물처럼 지는 동백으로 담겨 왔다면 소설가의 눈에는 오줌통속에서도 공동체를 꿈꾸는 모두 선인이 되는 세상을 그려냈다는 걸알 수 있었다. 내가 보았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까지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두 사람 다 남해 금산을 얘기하는데 이성복 시인의 남해금산에서, 사랑의 돌 속 여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하! 풍경은 그런 것이다. 먼저 봤든 나중에 봤든 탁월한 시선으로 그 풍경을 노래한 그 언어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여태까지 나는 나만 그런 줄 알고 지독한 열등에 시달려왔다. 두 책 출간 사이에 놓여있는 10년의 시간은 풍경에 중요하지 않다. 책 속의 풍경은 책 속에서만 존재할 뿐, 실제로 내가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여행 산문이 여행안내기와 다른 점은 거기에 있었다. 작가 내면의 풍경이고 그것을 건너오는 상처의 여운일 뿐. 풍경은 내 것이 아니었다.

  ‘여운’을 덮으면서 나의 여행 산문집에 대한 편력은 어느 정도는 마감을 고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책방엘 가면 그 코너 앞에서 오래 서있게 되겠지만 내 안에서 어떤 한 시기가 지나가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운은 강력한 것이어서 ‘생생한 우포늪’으로 당장 달려가서 노랑어리연꽃위로 해가 저무는 광경을 보고 싶다. 본적이 없어서 도대체가 가늠도 안 되는 광활한 늪지의 물비린내가 코를 간지럽힌다. 역시 상상으로도 떠올라지지 않는 가시연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문득문득 환각처럼 보인다. 이름도 격렬한 저 ‘격렬비열도’로 달려가 장석남 시인처럼 라라크래카를 먹으며 드뷔시를 들으면서 파도를 바라보고 싶어 내가 파도가 되어 밤이면 부딪쳐 섬에 점점 가까이 간다.
  풍경과 상처를 읽으면서 부터는 ‘가을 섬진강’으로 달려가고 싶은 강열한 유혹 속에 있다. 비가 내리면 비 내리는 들판들이 걱정되고 어쩌다 해 저무는 풍경을 만날 때면 도심의 콘크리트 건물대신 억새가 나붓대는 섬진강에 현란한 산들이 담겨진다.
  하지만 몸살로 뒤척인다고 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 한 줄로, 사진 한 컷으로, 지도 한 장으로, 나는 그 곳에 자주 더 자주 가고 어느 새 그 속에 담겨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오래 되어 빛바랜 사진처럼 퇴색될 때 풍경은 비로소 내 것이 되고 상처는 나만의 것이 될 것이다. 천상병의 풍경을 남겨두고 ‘풍경과 상처' 를 책꽂이에 꽂는다. 미완 (未完)인 채로 남겨 둔 책은 거친 들판에 엎드린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꽃으로 피어나는 날까지 미욱한 내 문장들을 지켜보리라. 나를 비추는 거울이되어. 

 

                                                                 2003. 9. 17.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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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였을까? 책을 사다보면 한 두 권쯤 꼭 여행기가 포함되어 있다. 시작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였을것이다. 당시 책방을 하면서 내 것으로 욕심내어 가진 1호가 된 책이다. 읽고나서 그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회한에 가슴이 벅차올라 그 책에 반했다. 딴에는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난 그저 눈뜬장님에 불과했다는 회한과 그저 스치고 지나친 무수한 절집들, 탑들, 풍경들이 오롯이 살아서 다시 담기는 데에 감동이었다.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이 그저 국보 몇 호, 보물 몇 호에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표현으로 길들여진 내 머리에, 거기 어떤 사연이 담겨있는지, 어떤 조형으로 아름다운지, 새로운 눈으로 새롭게 언어들로 가득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알고 본 것은 그저 국어사전 속의 낱말들을 아는 것과 같았다. 그 낱말들이 이루어내는 문장의 묘미를 그 책을 통해서 비로소 알아가기 시작했다. 전문가를 위한 문장의 나열이 아닌 나 같은 얼치기의 눈에도 뭔가가 보이게 기록된 답사기, 그 책들을 끼고 참 많이 돌아다니며 더 많은걸 알았고 보았고 깨달아갔다. 아직 그 책 속에 있는 곳 절반도 안 돌아봤지만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곳도 그 책안에는 있어서 가끔 어딘가를 떠나고 싶을 때 다시 꺼내 읽는다. 저자와 다른 시선으로도 이제는 볼 줄 알고 저자의 역사적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생길만큼 이젠 나만의 사관도 생겼다. 책에도 유행이라는 것이 있어서 [나의 문화...]의 판매성공은 우후죽순으로 많은 답사기들을 세상에 나오게했지만 아직 그 책만큼 맘에 드는 책을 만나지 못해 내가 가진 답사기는 그 시리즈뿐이다. 그의 말 그대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길을 떠나보면 알게 된다. 보이는 만큼 느낌도 커지고 마음을 열면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을 나는 길 위에서 배워가는 중이다.

 



 

 

 

 

 

 

 

 

 

 

 

 

 

 

  그 다음, 나를 사로잡은 건 '바람의 딸, 한비야'다. 대체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그렇지만 책에서도 좋아하거나 맘에 드는 작가의 책은 거의 섭렵을 하는 편이라서 그의 책은 전부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시리즈부터 [중국 견문록] 까지 다 가지고 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여행자의 숨결을 느끼고 그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휴머니티에 늘 감동한다.  그의 글을 통해 세계의 변방과 소수민족, 알려지지 않은 같은 지구인의 아름다운 사연들을 알게 되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내 안에만 눈이 머물러 지구 어디쯤에 전쟁의 상처에 신음하면서도 희망을 갖고 사는 이들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 자신들만의 색깔과 습성으로 종족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의 길을 따라 시작했던 도보여행도 이제 나만의 방식대로 할줄 알게되었다. 그책의 인기는 정말 많은 베낭 여행책들을 양산하게 했고 서점 한 켠을 장식하게 만들었지만 여전히 그의 책이 가장 잘 팔리고 있는 것 같다. 몇 권 아류의 베낭 여행기를 나도 샀지만 실망감을 떨쳐버릴 수 없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아직도 씁쓸하게 남아있다. 

 


 

 

 

 

 

 

 

 

 

 

 

  다음은 많은 여행 산문집들.
  작가들의 여행 산문집을 좋아한다. 지금 갖고 있지는 않지만 곽재구의 [내가 사랑한 세상, 내가 사랑한 사람]이 그랬고 강석경의 [인도 기행] [능으로 가는 길]들이 그랬다. 시나 소설속이 아니라 일상을 떠나 여행지에서 느끼는 작가의 시선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하는 듯 했다.
  신영복의 [더불어 숲]을 읽을 때는 날마다 여행지에서 엽서 한 장씩을 받아드는 느낌이었다. 세상의 격리에서 비로소 자유로운 한 지식인의 고뇌가 명징하게 각인되는 한 장의 엽서를 받는 느낌이 그런 것이리라. 가슴 아파하던 그 새벽 희부윰한 안개 내음으로 남아있는 책이다.
  김윤식의 [문화기행]은 읽는 동안 내내 지식이 짧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신현림의 [시간 창고로 가는 길]은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박물관들이 어디에 있는지, 한 사람의 열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작은 박물관을 만들고 지키는 사람들을 통해서 알게 해 주었다.
  건조한 문체로 읽고나면 언제나 마른 모래가 서걱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소설가 윤대녕의 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은 말랑말랑한 빵처럼 부드럽게 나를 사로잡으며 여행자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오래 그의 곁에 앉아서 최면에 빠지듯 얘기를 듣고 싶은 느낌이 남는 책이어서 그를 따라 10번 국도를 오래 헤매고 걸으면서 그의 음성으로, 내 눈으로 감탄을 하며 본 풍경이며 느낌은 오롯하게 내 것으로 담겼다.
  이화이 시인의 [어쩌면 마지막 일지도 모르는 여행]은 제목 그대로 연민어린 시선이 얹어진 풍경을 내게 보여주었다. 특히 해미읍성의 회화나무를, 나희덕 시에서의 느낌을 구체적으로 내게 보여 주었다. 사실 아무런 생각도 감흥도 없이 그 나무 앞에 오래 서있다 온 적이 있는데 그런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나를 가장 강력한 끌림으로 사로잡은 책은 구본형의 [떠남과 만남] 이다. 정말 이 책에 반했다. 다 덮기가 아까워서 마지막 한 장을 남겨둔 채로 며칠씩 갖고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책을 고르는데 나만의 원칙 같은 게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우선순위고 출판사도 선택 하는데 한몫을 한다. 대부분 어떤 책을 구입할지 메모해두었다가 책방에 나가면 앞 뒷 표지를 보고 특히 뒷면을 자세하게 본다. 사람도 그 뒷모습이 진솔하듯이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에. 다음은 발문이 누군지, 서문도 읽어보고 내용을 쫘르륵 훑어보고 살까를 결정하는 것이 순서다. 딴에는 까탈스럽게 그렇게 골라도 실망하는 책들이 더러 있으니 그 방법이 꼭 옳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 알고 있는 책을 골라서 살 때보다 책방에서 우연히 고르게 된 책일 때 책방을 나서는 순간 정말 뿌듯한 기대감이 크다. 책은 읽을 때도 그렇지만 고를 때의 기대감도 책만이 내게 줄 수 있는 선물 같은 것이다. 요즘은 찜해 놓았다 한꺼번에 인터넷구매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책방에서 빈손으로 나오는 법은 없다. 알고 있는 작가도 아니었는데 그 책을 펼쳐본 것은 좋아하는 작가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 빠져있을 때여서 같은 출판사라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펼쳤을 때, 사진이 한 눈에 나를 사로잡았다. 읽는 동안 내내 그의 유려한 문장, 현실을 직시한 시선, 무거운 베낭에 담긴 많은 느낌들에 반했다. 또한 사진들은 그가 말하지 않은 것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내게 주었다. 내 고향 남도의 서정과 색깔들, 내 그리움의 길들이 거기 살아서 담겨있었다. 오래 그 책을 끌어안고 다니다 까맣게 밑 줄 그어가며 읽었던 첫 번째 책은 오랫만에 만났는데 선물할게 없던 친구에게 가있다. 그것을 시작으로 참 많이 그 책을 선물했는데 요즘은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출판사로 문의를 해볼까 생각 중이다. 그 책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책이기 때문이다. 여행이 호사가의 취미가 아닌 자기 충전의 내면의 시간이 된다는 것을 그 책으로 얘기해 주고 싶다. 
 

 

 

 

 

 

 

 

 

 

 

 

 

 

  곽재구의 [포구기행] 사진속의 색깔들은 나를 한없이 바다에 가고 싶게 불러댄다. 그 유혹은 강열한 것 이어서 그 책을 품고 기차를 탔다가 그의 문장들이 바다 속보다 더 깊이 끌어내려 나를 익사시키곤 한다. 나는 아직도 자맥질을 반복하면서 그의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멸치 한 마리다.

  얼마 전에 읽은 공선옥의 [마흔에 길을 나서다]는 기대치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땅의 변방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끌고 걸어가는 행상 할머니 보따리 속에 담긴 삶의 애환이다. 굽은 등으로 그의 머리에 인 고단한 생의 보따리를 펼치면 고작해야 하룻저녁 술값에도 못 미치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이 담겨있다. 슬프지만 외면할 수 없는 끈적끈적한 진창의 이야기들이 책을 덮고난 며칠동안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가장 밑바닥에서 자신들의 충일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그 어떤 고고한 지성의 향기보다 나를 취해 흔들리게 했던것이다. 사람들속에서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알아가는 여행이 이 시대의 진정한 여행일지도 모른다. 

                                                                    2003. 9. 14.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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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7-26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과 여행서에 대한 산 님의 글이 마음속 깊이 와 닿네요. 저도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산 님께서 이 글에 담아 소개해 주신 수많은 책들을 보고 나니, 나는 그동안 어떤 책들을 읽으며 여행을 다녔나 싶은 생각도 슬쩍 드네요.(저는 소개해 주신 책들 가운데 유홍준 님의 책과 한비야님의 책 몇 권만 읽은 것 같아요.) 아무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14-07-27 01:05   좋아요 0 | URL
에궁 이런~ 여기까지 걸음하셨군요.
제가 좋아하는 장르이지요.
여행도 결국은 사람 사는 모습의 한 단면일 테니까요.
까마득하게 오래전의 글이라 저도 다시 읽어 보았네요.
ㅎ~ 십년도 전에 썼네요.
제가 썼나 싶을 만큼... 색깔을 감출 수는 없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