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가 끝난 뒤 올리버를 만나러 무대 위로 올라갔다. 나를 찾고 있었다더니 정작 내 앞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함께 미술관의 이집트관을 구경하다가 어느 석관 앞에 잠시 멈춰섰을 때, 올리버는 오늘 자신이 "아우팅"당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시력을 상실했음을 공개적으로 말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올리버는 몹시 슬퍼 보였고, 나는 그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한편으로는 올리버가 "아우팅"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 의아했다. 올리버가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고, 혹시 그것이 올리버가 품은 또 하나의 비밀은 아닐지 궁금했다.
올리버처럼 나도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 공개했고, 그 결과 치부가 노출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시인 내 눈에대해 말할 때마다 어린 시절에 느낀 수치심과 굴욕감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올리버가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할 때 양가감정을 느끼는 이유도 이해가 갔다. 눈 근육을 수술받은 뒤 대다수 사람은 내가 사시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올리버는1996년에 있었던 댄의 첫 우주선 탑승 기념 파티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언급하기도 전에 내 눈이 사시임을 간파했다. 나의 비밀은 처음부터 올리버에게 들통나 버렸고, 결국 나는 올리버의 격려에 힘입어 그 비밀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 P207

이제 부엌 타이머를 맞춰 놓고 10분간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가능했다. 비록 그러고 나서는 내내집 안을 천천히 돌아다니거나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나는 올리버의 체력과 끈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글쓰기와 원고 수정도 멈추지 않았다. 헤어지면서 올리버는 곧 출간될 《마음의 눈》 가운데 본인 이야기가 담긴 챕터의 원고를 내게 들려 보냈다.
그날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던 길이 기억에 남아 있다. 올리버의 글을 읽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칸을 옮겨 다니며 표를 회수하는 승무원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크리스마스엔 집에돌아갈 거예요)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무원의 기쁨 앞에서 올리버가 자신의 상실을 묘사한 글을 읽고 있자니, 나는 점점 더 슬퍼졌다. 이제 올리버는 오른쪽의 넓은 공간을 볼수도, 심지어 인식할 수도 없었고, 오로지 꿈을 꾸거나 약에 취했을 때만 세상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올리버는 대마초를 언제나 학명인 카나비스cannabis 라고 칭했다). 꿈과 약. 이 두 가지가내 흥미를 자극했다. 나도 처음 입체시를 경험했을 때 환각 상태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고, 최근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9년 12월 28일 자의 다음번 편지에 이렇게 썼다. - P259

헉슬리의 《지각의 문》을 읽다가, 그가 메스칼린에 취한상태에서 다양한 사물을 묘사한 부분을 보고 정말깜짝 놀랐습니다. 헉슬리가 묘사한 사물들이, 제가처음 3차원으로 보고 크게 충격받은 사물들과 정확히일치해서요. 헉슬리는 꽃병에 담긴 꽃, 의자의 다리,
바지의 접힌 자국을 이야기합니다. 저도 식물과 꽃의단단함, 의자가 공간 속에 놓인 모습, 가족들의 겨울코트에 남은 풍성한 주름과 홈에 매료되었었지요. - P260

비슷한 무렵인 2010년 6월 21일, 케이트가 《마음의 눈>원고를 보내며 검토를 부탁했다. 줄표와 점들 사이에서 다양한생각이 이어지는 올리버의 편지와 달리 원고는 물론 완전한 문장으로 쓰여 있었다. 그러나 검토를 하다 보니 쉼표가 없어도 되는 부분에 들어가 있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이 점을 지적하자 케이트는 올리버가 그 쉼표들을 넣길 고집했다고 말해 주었다. 쉼표가 있어야 독자가 읽기를 잠시 멈출 수 있고, 그렇게 쉼표가 생각을 구획 짓는다는 것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이 유독 인상 깊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시각적 심상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수준에서 실제처럼 생생한 수준까지 매우 다양하다는 내용이었다. 그건 시력을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라서, 2010년 여름에 나와 올리버는 자신에게 어떤 시각적 심상이 보이는지, 혹은 보이지 않는지에 관해 편지 - P284

로 대화를 나누었다. 예를 들어, 나는 주기율표를 상상할 때 머릿속에서 표준 화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과 같은 열과 행이 보이고, 집중하면 30번까지 해당 칸에 원소의 약칭을 채울 수 있다. 암산을 할 때는 머릿속 칠판에 숫자가 쓰인 것이 보인다. 그러나 올리버는 이런 그림을 떠올리지 않았다.
"주기율표에 관해서, 저는 주기와 족, 전자껍질에 전자가 채워지는 주기성(2, 8, 8, 18, 32 등) 같은 논리적인 그림이 보이는 것같습니다... 암산은 순식간에 하는 편인데, ‘머릿속 칠판‘은 보이지 않고 ‘내면의 말‘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걸까, 아니면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같지만 각자의 의식에 나타날 때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걸까?
- P285

《마음의 눈》 2장 ‘부활‘을 읽으면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회복과 재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생각했다. 실어증에걸린 올리버의 환자 팻은 결국 말 없이 소통하는 방법을 익혔지만, 팻을 격려하며 그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헌신적인 딸들이 없었다면 아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이장을 읽고 온종일 그 내용에 대해, 특히 너무나 다정하고 배려심넘치는 팻의 딸들에 대해 생각했다. 당시 나는 아버지를 돌보고있었는데, 내가 늘 최선을 다해 애쓰며 헌신하고 있다는 생각은들지 않았다. 그래서 2010년 7월 19일이었던 그날 저녁, 자리에앉아 아버지를 돌보는 일에 관해 에세이를 한 편 썼다. - P285

아버지


84세 생일을 맞이하고 이틀이 지난 2006년 7월 14일아침, 아버지는 몹시 우울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몇 년 전 아버지는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실버타운에 입주했고, 그날 아침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활기차게 지내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돌아가셨을 때의 격렬한 슬픔은 지나간 뒤였다. 아버지는 새 친구를 사귀었고, 커다란 캔버스를 만들 재료와 물감을 사러 정기적으로 차를 몰고 목재상과 화방을 찾았다.
아버지가 강렬한 감정과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리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예술가인 그는 늘 치열한 삶을 살았다. 성마르게 화를 내고, 터무니없을 만큼 창의적이며, 열정적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더 점잖고 보수적인 친구 아빠들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아빠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제 자신감을 전부 잃은 것 같았다.
어르고 달래야 겨우 침대에서 빠져나왔고, 갈수록 세상과 멀어졌다. 아버지가 말을 거는 드문 사람 중 한명이 나였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전화해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아버지를 모시고 이런저런 병원과 정신과를 찾아갔지만 의사들은 별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아버지는 정신과 의사를 싫어했다. - P286

나는 지쳤고 분노와 무력감을 느꼈으며 아버지에게 거부당한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말년에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늘 어머니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었다. 아니면 어머니 덕에 내가 그럴 수 있다고믿었거나. 반면 아버지는 내게 미소 한번 지어 주지않았다.
"아버지 때문에 내 삶이 망가지고 있어?" 나는 댄에게 이 말을 하고 또 했다. 댄은 실용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매주 금요일 오후 아버지를 모시고 바람을 쐬러 나가는 식으로 나를 도와주려 애썼다. 그러나 내가 끊임없이 불만을 곱씹자, 한때 재활의학과 의사였던 댄은 나를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상황이 호전되지 않았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절히 대처하는 법을 익히는 편이 나았다. 내가 아버지 일로 하소연하면 댄은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나는 격분했다. 어떻게 그렇게 무정하고 냉담할 수 있지? 하지만 댄의 방식이 현명하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내 삶은 전반적으로 풍요롭고 만족스러웠고, 댄은 내가 더 균형잡힌 시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우려 하고 있었다.
2년 전 어느 날 아침, 동네 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왔다. 아버지가 그날 아침 복통을 호소하며 앰뷸런스를 불렀다는 것이었다. 의사들이 꼼꼼히 진찰했지만 - P287

가벼운 변비 외에는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다 해진 잠옷을 입고 응급실에 앉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얇고 성긴 머리카락이 지처분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아버지에겐 신발도,
지갑도, 안경도 없었다. 나는 우선 아버지를 자동차에 태우고 병원을 출발한 뒤 분노를 터뜨렸다. 아버지 집에 도착했는데 아버지에게 집 열쇠가 없어서 실버타운 관리소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열쇠를 들고 와서조심스럽게 아버지를 집 안으로 모셨다. "혼자 걸을수 있으세요?" 나는 직원에게 퉁명스레 말하며 내 못난 모습에 비참함을 느꼈다. 집에 아무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뒤 나는 서둘러 돌아가려 했다. "오늘이 네 생일이냐?"
그때 아버지가 물었다. 내가 내일이라고 하자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좋은 생일 보내라"
2주 뒤, 여동생 생일 하루 전날에 실버타운 수간호사가 내 직장 메일 주소로 이메일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 침대에서 나오기를 거부하시면서 자살하겠다고 협박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자살하지 않으리라는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원래도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일이 잦았고 극적인 상황을 잘 연출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의 이런 반응은 도와달라는 외침이었고, 내게는 아버지의 고통을 다룰 기술이나 경험이 없었다. 수간호사는 - P288

조앤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노인 사례 관리자"로 고용해보라고 권했다. 조앤은 매우 유능하고 지식이 풍부했으며 적극적이었다. 나는 조앤 덕분에 아버지의 보호자역할에서 벗어나 다시 아버지의 딸이 될 수 있었다.
다양한 약물을 써 봤지만 아버지의 우울은 좀처럼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분노는 사라졌고, 그와 함께 나의 분노도 사라졌다. 아버지를 찾아가는 날이 다시 기대되기 시작했다. 나는 늘 밀크쉐이크를 챙기고 (아버지의 몸무게는 겨우 52킬로그램이다) 그날 같이 할 일을 준비해 간다. 어떤 날은 화집을 가져가서 매끄럽게 인쇄된 그림을 같이 감상한다. 또 어떤 날은 조각이 커다란 직소 퍼즐을 준비한다. 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퍼즐의 모양을 확인하고 제자리에 놓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부모 앞에서 도대체 몇 번이나 비통해질 수 있는지,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를 찾아뵙지 못한 날들을 몇 번이나 자책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 우리는 종종 소파에 나란히 앉아 바흐의 바이올린 파르티타 악보를 보며 음악을 듣는다. 아버지는 두 손을 들어 지휘를 하는데, 마치 허공에서 음표를 뽑아내는 것 같다. 그런 순간들은 다정함과 인자함으로 흘러넘친다. "제가 많이 사랑해요?" - P289

헤어질 때 나는 아버지의 볼에 입을 맞추며 이렇게말한다.
"나도 많이 사랑한단다."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고, 우리는 둘 다 평화롭다.


올리버의 책을 읽고 쓴 것이기에 나는 이 글을 올리버에게 보냈고, 그는 가슴이 뭉클했다는 감상을 전했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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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사시 치료법에 관한 논문 한편을 읽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브록이 쓴 이 문장을 보고 제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세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시 환자가 실제로 입체시를경험하기 전에는 그 어떤 행동과 말로도 환자에게양안시의 실제 감각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환자는 반드시 자신이 2차원 그림을 보고 있다고 믿어야하며, 화들짝 놀라면서 이 그림에 입체적 특징이 있음을발견하는 일은 환자의 몫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식으로, 오로지 이런 식으로만, 환자가 실제로 입체시를습득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일단 이 새로운 감각을 - P136

경험하면, 환자는 양안시가 확실히 자리 잡을 때까지 이 능력을 몇 번이고 다시 쓰고 싶어 할 것이다"
아니, 너무 익숙하게 들리지 않나요! 제 경험, 그리고 제가 인터뷰한 과거 입체맹이었던 사람들의 경험과 정확히 일치하는 설명이었습니다.
...
브록 박사는 여러 방식으로 환자들의 지각 능력을 테스트하며 지금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관찰하고 함께 논의하면서 치료법과 도구를 개발했고요. 그는 환자들의 겉모습을 관찰하는 데 만족하지않았습니다. 《화성의 인류학자》에도 언급된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처럼, 브록은 환자들의 머릿속에 들어가고싶어 했어요.
박사님의 책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는 몽테뉴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하지요. "... 진정한 의사가되려면, 자신이 치료하고자 하는 질병을 전부 경험해봐야 한다..." 하지만 환자들이 사시가 있고 입체시가 약한 안과의를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대다수 사시인은 이런 증상을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의사에게 - P137

치료받는 것이지요. 브록 박사의 경우는 어땠을까요? 그의 통찰력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이쯤이면 이미 그답을 파악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록 박사는 과거에 간헐성 외사시‘가 있는 사시인이었습니다. 브록이 치료한 첫 번째 환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어요.


올리버의 답장은 언제나처럼 형용사와 괄호로 가득한 생동감 있는 문체였지만, 2007년 1월 6일에 쓰인 이 편지에는그의 시력에 관한 불안한 소식도 담겨 있었다.


지적인 에너지와 열정이 타오르는 멋진 편지 (12/29)고맙습니다. 브록의 이야기는 아주 중요하고, 시대를 앞서간 것처럼 보이는군요- 사실상 거의 알려지지 않은듯하고요. 교수님의 작업은 브록의 발견 (그리고 브록 본인)을 발굴하고 되살려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겁니다. 언젠가 따로 에세이를 한 편 써도 좋겠고, 교수님책의 한 챕터를 할애할 수도 있겠고요. 말씀하신 걸 보니거의 다 쓰신 것이나 다름없네요! - P138

교수님은 의사/과학자는 무엇을 직접 경험해야하는가‘라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제기해 주셨습니다. 곧 출간될 제 음악 책의 강점ㅡ어떤 의미에서는 한계이기도하지만ㅡ은, 주로 환청을 듣는 사람, 실음악증amusia이
있는 사람, 공감각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증언으로이루어져 있다는 겁니다. 이들은 직접 경험을 통해 이런상태가 어떤 것인지 잘 알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는 객관적으로 자기 상태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만약 환청(또는 다른 증상)이 있는 사람이 전문 과학자나 의사, 연구자라면 그건 무적의 조합일 겁니다. 물론 교수님이 바로 그런 사례지요. 여러 시각적 장애와 혼선을 겪고있는 저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요즘 뒤틀린 세상을 살아가고있습니다. 이러한 꼬임과 틀어짐을 왼눈이 완전히 교정하지못해서, 점점 오른눈을 감거나 왜곡되고 손상된 오른쪽 시력을(어떻게든) ‘억압‘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탈구심성 환각에취약해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경험을 아주 흥미로워하며꼼꼼하게 기록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론 내게 이런 일이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 P139

지금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가 열심히, 꾸준히,
의욕적으로, 또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쳐서 나가떨어질 정도지요. 17일쯤부터 며칠간(수명하면서)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교수님의 연구가 더욱 흥미진진하게 확장된 것을 다시 한번 축하하며, 모두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리버는 내가 얻은 입체시를 잃어 갈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왜곡된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 둘 다 회복의 힘을 굳게 믿었기에, 몇 달 뒤 나는 한쪽눈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훈련 도구를 커다란 상자에 한가득 담아서 보냈다. 올리버는 방대한 분량의 《뮤지코필리아》를 쓰느라 바쁜 와중에도 내 성의에 감사를표했다. 나는 그때, 그리고 훗날에도 여러 번, 어떤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 나가는 올리버의 능력에 크게 감탄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열심히, 꾸준히, 의욕적으로, 또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P140

이 글에서 올리버는 앞을 보지 못하고 뇌성마비가 있는 매들린 J.라는 중년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매들린은 지적 능력이 뛰어났지만 평생 일거수일투족을 도움받았기에 두 손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 손을 쓸모없는 "진흙 덩어리"로 여겼다. 올리버는 매들린의 두 손 감각이 정상임을 파악한 뒤, 담당 간호사에게매들린이 손을 뻗어 움켜쥘 수 있도록 베이글을 살짝 멀리 놔 달라고말했다. 매들린은 손으로 베이글을 붙들었고, 그러면서 베이글뿐만아니라 자기 손의 존재를 발견했다. 촉각을 통해 세상을 탐험하기 시작한 매들린은 점토를 달라고 부탁해 조소를 시작하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예술적 재능을 드러냈다. 올리버는 이렇게 썼다. "보통생후 수개월 내에 습득하는 기본적인 지각 능력을 제때 습득하지 못한 사람이 60세의 나이에 그 능력을 습득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P142

그러나 이 편지에서도 나는 마냥 솔직하지 못했다. 올리버의 표현을 살짝 바꿔서 말하자면, 우리는 어린 시절을 빠져나오지만 결코 그 시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어렸을 때 나는 내가 실패자라고 생각했다. 눈이 사시였고, 그 탓에글 읽기와 자전거 타기, 운전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든 경험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올리버에게 하소연하고싶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깨어남》에 나온 것처럼 수십 년간 신체와 정신이 마비된 환자들을 돌본 사람이니까. 사시가 내평생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지라도 그들에 비하면 내가겪은 어려움은 사소해 보였다.
《3차원의 기적》을 쓰면서 마침내 어린 시절에 겪은 어려움을 되돌아보았다. 초고에서 학교 다닐 때 힘들었던 일들을 넌지시 - P151

언급하자, 편집자는 이 주제를 더 확장해 보라고 했다. 한 문단을 추가했지만 편집자는 만족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전부 다 털어놓았다. 책이 인쇄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내가 과장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다른 사시인들에게서 자기 이야기인 줄 알았다는 이메일이 쏟아졌다.
《3차원의 기적》은 2009년 5월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아마존닷컴 에디터가 선정한 2009년 최고의 과학책 10권에 이름을 올렸고, 여덟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나는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유럽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책을 통해 사시와 양안시 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정보와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쓴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였다. 자료를 조사하며 테레사 루지에로 박사와 행동 및 발달 검안사 공동체‘, 수많은 과학자에게 아낌없는도움과 조언을 받았다. 그러나 올리버의 지지와 격려가 없었다면 아마 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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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0년에 올리버의 책 《마음의 눈》을 읽고 나서야 이 몇주간 있었던 일들의 시간 순서를 알게 되었다. 소철 입체사진을동봉한 나의 12월 편지와 새로운 시각적 발견을 묘사한 1월의편지는 올리버가 안구흑색종을 진단받고 겨우 몇 주 뒤에 도착했다. 그때 올리버는 눈의 종양을 없애기 위한 방사능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1월 5일 자 편지에서는 이런 힘든 상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이 편지의 맺음말이 올리버에게 어떤의미였는지를 그제야 깨달았다. "올해는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2006년은 과연 어떤 해가 될까요?"
2006년 2월 16일, 올리버는 내가 그날 <스테레오 수) 교정쇄의 어느 표현에 관해 질문한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왔다. 쉼표 하나의 위치가 잘못되어 문장 전체의 의미가 달라져 있었다. 이번TON VAHIND에도 올리버는 암에 걸린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보다 커다란 글씨로 전부 대문자만 사용해서 편지를 타이핑했다. - P107

2006년 3월 10일, 댄 그리고 사촌들과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려고 맨해튼에 갔다. 그리고 공연 전에 그리니치 빌리지에있는 올리버의 사무실, 즉 내가 늘 편지를 보내는 바로 그 주소로 찾아갔다. 먼저 건물 안내원이 위층에 내가 도착했다고 알렸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리버의 사무실로 올라가자 그날 처음만난 케이트가 현관에서 나를 반겨 주었다. 그러고 나서 커다란목소리로 올리버에게 내가 왔다고 소리쳤고, 올리버는 안쪽에있는 문 뒤에서 매우 수줍어하며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이처럼내 도착을 거듭 알리는 절차가 꼭 필요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몇 년 후에야 깨달았다. 올리버는 2010년에 출간한 《마음의 눈》에서 설명했듯 평생 사람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면실인증을 앓았던 터라, 우리가 최근 두 번 만났어도 나를 못 알아볼 수 있었다. - P111

<스테레오 수>가 발표된 후 올리버와의 우정이 서서히바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올리버는이미 내 삶에서 끊임없이 자극과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흥미진진한 것을 접하거나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면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게 올리버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고, 이런 생각들은 종종 실제 종이 위의 글로 흘러나오곤 했다. 나는 멈추지 못하고 뻔질나게 편지를 보냈고, 올리버는 자신의 생각이나 쓰고있던 원고의 초안을 담은 답장을 보내 주었다.
게다가 <스테레오 수>에 쏟아진 반응은 내가 기대하거나 상상한 이상이었다. 올리버가 내게 안겨 준 새 이름과 정체성을, 나는 1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지니고 있다. 내 이야기로 사시인한 명만 도울 수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력 조건이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받은 이메일이 지금까지 천 통이 넘 - P125

는다. 그 당시 나는 이 글이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영향력을 누구보다 먼저 이해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미국공영라디오의 한 저널리스트였다. - P126

신스케 박사와 점심을 같이했다니 저도 기쁩니다ㅡ그가교수님에게 젓가락을 내려놓고 포크를 쓰라고 권했다는부분을 읽고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나와 처음 만났을때도 박사는 율레스를 아주 존경한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그에게서 연구의 마법이 사라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글쎄요, 어쩌면 조금은 사라졌을수도 있겠지요ㅡ어쩌면 어느 한 문제에 집중할 때는사라졌다가, 문제가 해결되어 모든 것을 더 넓은/깊은관점으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되돌아오는 것은아닐까요. 어쨌건 교수님에게는 입체시의 마법이 전혀사라지지 않은 것이 분명하군요ㅡ그러니 (교수님의 모든편지에서 그렇듯이 마법이 교수님 책 전체에 열정을 불어넣을 겁니다.


올리버는 어떤 질병이나 장애를 이해하려면 과학과 심리학, 역사, 철학을 폭넓게 아우르며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책을 통해 내게 알려 주었다. 물론 사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눈이 정렬되지 않은 사람들은 심각한 인지적 문제 - P133

에 직면한다. 두 눈이 각자 다른 지점을 향하고 있기에 뇌에서로 연관성 없는 정보가 입력된다. 이렇게 상충하는 정보에서 어•떻게 하나의 세계상을 끌어낼 수 있을까? 모든 사시인은 저마다적응과 보상을 적절히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니 사시를 이해하려면 양안시에 관한 과학적 연구 결과뿐만 아니라, 사시인들이 문제에 대처하거나 시력을 회복하는 다양한 방법까지조사해야 했다.
올리버가 우리 집을 찾아왔듯이 나도 여러 안과의를 찾아가의사 및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잘 알려지지 않은 학술지인 《주간 검안학 The OptometricWeekly》에서 사시에 관한 탁월한 글을 발견했다. 검안사 프레더릭 W. 브록이 이 잡지의 연재 기사에서 사시인을 위한 시력 훈련 프로그램을 소개한 것이다. 나는 브록과 그의 작업에 마음을완전히 빼앗겼고, 2006년 12월 29일에 올리버에게 편지를 보내이 모든 내용을 설명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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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는 입체시가 생기기 전에도 내가 3차원으로 세상을 본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3차원 세상에서 움직였고 원근과 음영, 그림자, 사물의 중첩 (뒤에 있는 사물이 앞에 있는 사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처럼 한쪽 눈으로도 깊이를 지각할 수 있는 단서들을 통해 거리를 파악했다. 그러나 입체시가 생기자 나의 공간감은 질적으로 달라졌다.
이제 거울을 들여다보면 거울 속의 반사된 공간에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입체맹이었을 때는 내 모습이 거울 표면 위에 있었다. 반사된 내 모습과 거울 표면 사이의 빈 공간을 인식하지 못했기에, 거울 유리에 묻은 얼룩은 마치 내 몸 위에 있는것처럼 보였고, 나는 옷에서 그 얼룩을 닦아 내려 했다. 요즘은거울을 보다가 잠시 한쪽 눈을 감아도 거울 속의 반사된 공간에있는 내가 보인다. 입체시가 생기자 한쪽 눈으로 보는 방식까지달라진 것이다. 그러니 평소에 늘 입체시가 있던 사람이 한쪽 눈을 감는다고 해서 늘 입체맹이었던 사람처럼 세상이 납작해 보이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평생 쌓아 온 입체시의 경험으로 입체 정보가 사라진 빈 공간을 채운다.
입체시로 세상을 보자 물체 사이의 공간이 손에 만져질 듯 뚜렷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새로움이 무척이나 놀랍고 기뻤다.  - P45

수에게,


12일에 보내신 놀라운 편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방금 읽었는데, 완전히 빨려들어서 끝까지 집중해서읽었습니다(그래도 수차례 재독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번 편지 이후로 논문 찾는 거며 연락 취하는 거며조사를 엄청 많이 하셨더군요- 그리고 생각도 무척이나많이 하셨고요. 어느 프랑스인의 말마따나, 교수님(그리고다른 사람들도)의 경험이 과연 "생각의 폭풍"을 일으켰나봅니다.
어렸을 때 받았던 수술 정보와 단안시가 된 
의사의 흥미로운 사례를 전해 주신 이전 편지에 제가 감사를 표했는지 잘 모르겠네요(요즘 집을 자주 떠나 있었습니다).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뒤늦게나마 지금이라도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4월 12일자의) 새 편지도 밥 와서먼과 랠프에게 한 부 복사해서보내겠습니다(며칠 뒤 직접 만날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마저리 리빙스턴과 주고받은 편지였습니다-최근 뉴욕과학아카데미모임에서 허블과 비셀을 만나 (두 사람은 전에도 만난 - P73

적이 있습니다) 간략하게 교수님 이야기를 전했더니, 둘다 크게 관심을 보이며 저더러 더 자세히 알아보라고하더군요. 교수님 말처럼 정설이 자리 잡았을지는몰라도, 둘은 생각이 활짝 열린 사람입니다.. 교수님께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부터 줄곧 이 사안을 널리 (그리고현명하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지금으로선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지, 누가 그 일을 맡아야 할지 잘모르겠네요. 입체적인 안부를 전하며. - P74

자신의 경험이 일반적인 믿음이나 확고한 정설과 반대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자기 경험을 편향적이고 결함 있는것으로 치부해 버릴까, 아니면 권위에 의문을 제기할까? 올리버가 내 편지를 더없이 진지하게 받아 준 덕분에, 나는 자신감을가지고 내 경험을 신뢰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올리버와 나의 공통점은 집요한 성격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둘 다 글을 쓸 때 생각이 가장 잘 풀렸다. 올리버가 나를 주인공으로 글을 써서 발표한 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올리버에게편지를 보냈다. 내 이야기를 검토하고 정리하고 결국 책으로 낼수 있었던 건 올리버와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은 덕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환자에서 주체로, 다시 저자로 변신했다. 하지만 너무 앞서나가진 말자. 그전에 먼저 "스테레오 수"가 있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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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Oliver Sacks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 퀸스칼리지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베스에이브러햄병원, 컬럼비아대학, 뉴욕대학 등에서 신경과 의사, 교수로 활동했다.
독특한 신경학적 문제를 겪는 환자들의 사연을 따뜻한 시선과 아름다운 언어로 담아 낸<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화성의 인류학자> <뮤지코필리아> 등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증상과 병명으로 환자를 분류하기보다, 그들 각자가 세상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고유한 방식을 포착하고자 한 색스의 기록은 인간 뇌에 관한 현대의학의 이해를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뉴욕타임스》로부터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록펠러대학에서 탁월한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토머스상을 수상했다.
2015년 안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0여 년간 친구이자 동료 과학자인 수전 배리와 이 책에 실린 편지들을 주고받았다. - P-1

수전 배리 Susan Barry

프린스턴대학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시건대학 재활의학과 조교수를 거쳐 마운트홀리요크칼리지 생물학 및 신경과학 교수로 재직했다. 어릴 때 사시 교정 수술을 받았으나, 48세에 시력 훈련을 받고서야 난생처음 입체시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이 경이로운 시각적 모험을 글로 써서 올리버 색스에게 보내면서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 싹텄다.
입체시는 유년기의 ‘결정적 시기‘에만 발달할 수 있다는 의학계의 통념을 무너뜨린 배리의 이야기는 색스의 글 <스테레오 수>와 배리 자신의 저서 《3차원의 기적>을 통해 널리알려졌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에릭 캔델은 《3차원의 기적》에 대해 "한 편의 시이자 과학이며,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마법 같은 책"이라고 극찬했다. - P-1

우리의 눈알은 동그랗다. 허나 눈 뒤편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망막은평평하다. 사물이 내뿜는 빛은 망막을 통해 뇌에 2차원으로 전송될 수밖에없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는 3차원이다. 그래서 뇌는 움직이는2차원의 정보로 3차원의 입체를 만들어 낸다. 태양빛은 항상 위에서쏟아져서 명암이 지고, 눈은 두 개라서 위치를 미묘하게 다르게 볼 수 있기때문이다.
<디어 올리버>의 발신자 수는 어렸을 때 사시가 있었다. 두 눈의 초점이맞지 않으므로 수의 뇌는 한쪽 눈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그래서수는 사물이 2차원으로 보이는 입체맹이 되었다. 뇌의 입체맹은 특정시기가 넘으면 극복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수는 마흔여덟살에 훈련을 통해 기적적으로 입체맹을 극복했다. 학계에 보고된 바가없었던 이 사례는 올리버 색스와의 교류를 통해 <스테레오 수〉라는 불후의 칼럼이 된다. 수가 바라보는 세상이 평면에서 입체(스테레오)로 변모하는일대기가 이 서간에서 생생하다. - P-1

이후에도 그들의 지적 교류는 멈추지 않는다. 수는 신경생물학자기도했다. 두 사람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각으로 화두를 돌리고,
서간을 통해 그들의 시야는 점차 넓고 깊어진다. 감각, 감정, 정신을다루는 문장의 영민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리 주변에 흔히 존재하는모든 생명체가 그들의 펜 끝에서 특별하게 변모한다. 둘은 150통의 편지를주고받으며 지적 존재에 대해 가장 깊이 이해한 두뇌의 교류를 보여 준다.
그럼에도 그들의 육체는 인간의 것이기에 점차 시들어 간다. 심지어색스 박사는 암 진단을 받고 시력을 점차 상실해 간다. 정신은 스스로를분석하고 진보하지만 결국 육신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 P-1

없다. 투병 중에도 다정함을 잃지 않고 지적 항해를 계속하는 색스박사와 슬픔에만 침잠하지 않는 위로를 보내는 수의 우정이 눈부시다.
마지막으로, 영면에 드는 순간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을 탐구했던 올리버 색스를 애도한다.

남궁인 의사, 작가 - P-1

내가 처음으로 올리버 색스의 책을 접한 지 거의 이십 년이 흘렀지만, 그는여전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를 통해 배운 것들이너무 많은데, 그중 하나는 다른 사람을 알고 싶다면, 말을 건네야 한다는점이다. 이를테면, 당신, 어디가 아파요? 라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참, 이 단순해 보이는행위가 왜 그리도 어려운지! 올리버 색스는 바로 이 단순하고도 어려운행위의 대가였다.
어쩌면 이 책은 ‘입체맹‘이었던 수전이 입체시를 찾은 후 올리버와 함께이 세계의 모습을 새롭게 탐험한 여정의 기록이자, 그토록 이 세계의구석구석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던 올리버가 시력을 잃어 가는 동안에도,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행위를 멈추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기록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삶은 지긋지긋한 고난의 연속"일지도 모르지만, 그 고난을 이겨 내게하는 건, 서로를 꽉 끌어안는 힘이다. 남들은 무심코 지나쳐 버린 것을위해 기꺼이 멈추어 서고, 타인을 바라보기 위해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 그런 식으로 타인의 행복과 슬픔과 기쁨과 상실⋯을 알아보는 것. 그렇게 탄생하는 방대한 세계, 그리고 그 세계의 연결, 연결들, 고동치는위로와 사랑, 누구든지 도달하고 싶은 눈부시게 새로운 세상이 이 책 안에,
수전과 올리버의 문장 속에 다 있다.

손보미  소설가 - P-1

올리버 색스가 이 편지를 내게 썼을 무렵, 우리는 이미 2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종이 위에 써서 봉투에 넣고 미 우편국을 통해 보낸 실물 편지였다. 편지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50대였고 올리버는 70대였다. 나는 마운트홀리요크칼리지의 신경생물학과 교수였고, 올리버는 신경학 병례집으로 이름을 떨친 신경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우리의 발걸음이 우편함앞에 멈춰 설 때마다 만년의 우정이 한 뼘씩 자라났다. 우리는 전부 합쳐서 150통이 넘는 편지를 썼고, 마지막 편지는 올리버가 세상을 떠나기 3주 전에 주고받았다.


누구나 살면서 중요한 갈림길을 만난다. 그중 어떤 것은 직업이나 거주지를 선택할 때처럼 명명백백하다. 그러나 어떤 것은 저멀리서 꺾이는 우회로처럼 당시에는 사소해 보였다가 나중에야 인생을 바꾼 중요한 결정이었음이 드러난다. 색스 박사에게 ‘정말이지 놀라웠던 그 첫 번째 편지‘를 보낼 때만 해도, 나는 이 편지가 내 생각과 일, 심지어 정체성에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영향 - P14

을 미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그 편지를 부치지 않을 뻔했다.
원래 그 편지는 내 ‘시력 일지‘에 적은 글이었다. 나는 마흔여덟 살까지 사시‘에 입체맹이었다. 대다수 사람은 두 눈의 초점을한곳에 맞춘 다음, 양쪽 눈에 입력된 정보를 뇌에서 통합해 단일한 3차원 이미지를 본다. 그러나 내 눈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 대신 나는 한쪽 눈으로만 보고 다른 한쪽의 정보는 무시했다. 그래서 3차원으로 볼 수 없었다. 입체시가 없을 때세상은 어수선하고 납작해 보인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몇 달간시력 훈련을 받은 끝에 결국 두 눈의 초점을 한곳에 맞춰 입체의깊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내 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고, 나는 이 놀라운 변화를 일지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이 시력 일대기를 올리버 색스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태로 정리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색스 박사를 그의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고, 환자에게 깊이 공감하는 통찰력 있는 글에 감탄했다. 게다가 그를 직접 만난적도 있었다. 9년 전쯤 우주비행사인 내 남편 댄이 존슨우주센터에서 색스 박사와 만나 안면을 텄다. 그 뒤로 첫 우주선 탑승을 기념하는 행사에 색스 박사를 초대했고, 그가 초대에 응했다 - P15

는 소식에 나는 무척이나 기뻤다. 행사 때 우리는 고작 5분간 대화했을 뿐이지만, 그날 색스 박사가 내게 던진 질문은 이후로도 계속 내 뇌리에 박혀 있었다. 나는 시력 훈련을 통해 시각적인 깨달음의 순간을 잇달아 경험하면서 점점 더 자신감 있게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되었고, 머릿속에서 색스 박사와 몇 번이고대화를 나누었다. 이 일지는 그 내적 대화의 연장선이었다. - P16

잭스 박사님께,
우리는 1996년 1월 10일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제 남편댄 배리가 우주왕복선을 타고 첫 임무를 떠나기 전날밤이었어요. 우리가 만난 플로리다의 케네디우주센터에서저는 우주선 발사를 구경하러 온 손님들을 대접하고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양한방식으로 세상을 지각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저는제 지각 방식이 보통 사람들과 다소 다르다고, 그건 늘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사시였고, 오로지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박사님은 양쪽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상상할 수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상상할 수 있다고답했고요. 어쨌든 저는 마운트홀리요크칼리지의 - P-1

신경생물학 교수니까요. 시각 처리와 양안시, 입체시에관한 논문을 그간 수없이 많이 읽었지요. 저는 그렇게얻은 지식으로 제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어요.
뛰어난 검안사의 조언에 따라 새 안경을 맞추고 매일시력 훈련을 거듭한 덕분에, 지난 2년간 저는 비로소 두눈을 함께 사용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시각의 변화는 정말 대단했어요. 이제 세상은 더 둥글고, 더 넓고, 더깊고, 더 질감이 살아 있고, 더 세밀합니다. 가장 놀라운점은 물체 사이의 빈 공간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시력은 계속해서 바뀌며 나날이 제게 새로운 기쁨과 놀라움을 안겨 줍니다. 이러한 변화를 경험했다고 말하는사람을 본 적이 없는 터라,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상세히 풀어놓으려 합니다. - P17

잿빛만 보다가 갑자기 총천연색을 볼 수 있게 된 사람을 상상해 보세요. 그 사람은 아마 이 세상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갈 겁니다. 그가 보는 것을 멈출 수 있을까요?
매일 저는 강렬한 3차원의 감각을 느끼려고 꽃이나 제 손가락, 수도꼭지 같은 평범한 사물을 빤히 쳐다봅니다. 밤에는 침대에 누워서 입체경을 들여다봐요. 거의 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새로운 시력이 놀랍고 즐겁습니다.
어느 겨울날 저는 후딱 점심을 해치우려고 강의실에서 매점으로 서둘러 이동하고 있었어요. 강의실 건물에서겨우 몇 발짝 걸어 나왔을 때, 저는 돌연 멈춰 섰습니다. 커다랗고 촉촉한 눈송이들이 제 주위로 나풀나풀 떨어지고있었어요. 이제 눈송이 사이사이의 공간을 볼 수 있었고, 모든 눈송이가 아름다운 3차원의 춤을 추는 것 같았습니다.
옛날 같았다면 눈은 제 바로 앞에 펼쳐진 한 겹의 막 속에서 평평하게 떨어졌을 거예요. 마치 그와 동떨어진 곳에서 눈을 건너다보는 것처럼 느껴졌을 테죠. 하지만 그날 저는 떨어지는 눈 속에, 눈송이 사이에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점심 먹는 것도 잊고 한참 동안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눈은 대단히 아름다울수 있습니다. 눈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요. - P24

다음 날 댄에게 글을 보여 주자 댄은 색스 박사에게 보내 보라고 부추겼다. 나는 망설였다.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것 같았다. 평생을 사시로 살다가 마흔여덟 살의 나이에 입체시를 얻었다는 이야기는 시각 발달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반세기간의 연구결과를 뒤집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입체시는 오직 유아기에만 발달할 수 있었다. 나는 마운트홀리요크칼리지의 생물학 및 신경과학 교수로서 이 연구들을 잘 알았고, 수업 시간에 이 결정적 시기에 대해 수차례 가르치기도 했다. 실제로 지금 내가 3차원을 보고 있다고 스스로 납득하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렸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납득시킨단 말인가?
게다가 색스 박사가 내 말을 믿어 준다고 해도, 내 시력에 일어난 변화가 얼마나 새롭고 경이로운지 과연 그가 이해할 수 있을까? 힘겹게 새로 얻은 입체시는 내게 너무나도 소중했다. 다른 사람이 내 경험을 심하게 부풀린 과장으로, 더 나아가 망상으로 치부하는 건 견딜 수 없었다. 내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올리버 색스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
색스 박사의 저서 《깨어남》을 읽고 받은 첫인상을 다시 떠올렸다. 그 책에서 그는 중증 파킨슨병으로 수십 년간 움직임과 생각이 얼어붙은 사람들을 묘사했다. 색스 박사가 엘도파를 투약 - P25

하자 환자들이 되살아났다. 그들은 움직이고, 말하고, 머릿속에생각이 밀려들었다. 색스 박사는 이 환자들을 관찰하고 그들의말에 귀 기울였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파킨슨병을 앓는다는 것, 엘도파를 투약받는다는 것, 그리고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상상하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색스박사는 환자들을 연민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공감했다.
물론 나의 시력 변화는 이 환자들의 변화만큼 파란만장하진않았지만 어쨌든 인생을 바꾼 뜻밖의 사건이었다. 어쩌면 색스박사는 세상이 내게 얼마나 달라 보이고, 다르게 느껴지는지를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망설이면서도 희망을 품고, 또 댄의 격려에 힘입어, 일지에 기록한 편지를 색스 박사에게 보내기로 했다. 편지 마지막에 짧은 글과 서명을 덧붙였다.


여기까지가 저의 이야기입니다. 시간과 의향이 있을 때 박사님의 의견을 보내주신다면 무척 감사하겠습니다. 아, 저는 물론 박사님의 다음 책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마음을 담아,
Sue Barry

그리고 용기를 잃기 전에 편지를 얼른우체통에 집어넣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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