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Oliver Sacks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 퀸스칼리지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베스에이브러햄병원, 컬럼비아대학, 뉴욕대학 등에서 신경과 의사, 교수로 활동했다.
독특한 신경학적 문제를 겪는 환자들의 사연을 따뜻한 시선과 아름다운 언어로 담아 낸<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화성의 인류학자> <뮤지코필리아> 등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증상과 병명으로 환자를 분류하기보다, 그들 각자가 세상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고유한 방식을 포착하고자 한 색스의 기록은 인간 뇌에 관한 현대의학의 이해를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뉴욕타임스》로부터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록펠러대학에서 탁월한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토머스상을 수상했다.
2015년 안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0여 년간 친구이자 동료 과학자인 수전 배리와 이 책에 실린 편지들을 주고받았다. - P-1

수전 배리 Susan Barry

프린스턴대학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시건대학 재활의학과 조교수를 거쳐 마운트홀리요크칼리지 생물학 및 신경과학 교수로 재직했다. 어릴 때 사시 교정 수술을 받았으나, 48세에 시력 훈련을 받고서야 난생처음 입체시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이 경이로운 시각적 모험을 글로 써서 올리버 색스에게 보내면서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 싹텄다.
입체시는 유년기의 ‘결정적 시기‘에만 발달할 수 있다는 의학계의 통념을 무너뜨린 배리의 이야기는 색스의 글 <스테레오 수>와 배리 자신의 저서 《3차원의 기적>을 통해 널리알려졌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에릭 캔델은 《3차원의 기적》에 대해 "한 편의 시이자 과학이며,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마법 같은 책"이라고 극찬했다. - P-1

우리의 눈알은 동그랗다. 허나 눈 뒤편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망막은평평하다. 사물이 내뿜는 빛은 망막을 통해 뇌에 2차원으로 전송될 수밖에없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는 3차원이다. 그래서 뇌는 움직이는2차원의 정보로 3차원의 입체를 만들어 낸다. 태양빛은 항상 위에서쏟아져서 명암이 지고, 눈은 두 개라서 위치를 미묘하게 다르게 볼 수 있기때문이다.
<디어 올리버>의 발신자 수는 어렸을 때 사시가 있었다. 두 눈의 초점이맞지 않으므로 수의 뇌는 한쪽 눈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그래서수는 사물이 2차원으로 보이는 입체맹이 되었다. 뇌의 입체맹은 특정시기가 넘으면 극복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수는 마흔여덟살에 훈련을 통해 기적적으로 입체맹을 극복했다. 학계에 보고된 바가없었던 이 사례는 올리버 색스와의 교류를 통해 <스테레오 수〉라는 불후의 칼럼이 된다. 수가 바라보는 세상이 평면에서 입체(스테레오)로 변모하는일대기가 이 서간에서 생생하다. - P-1

이후에도 그들의 지적 교류는 멈추지 않는다. 수는 신경생물학자기도했다. 두 사람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각으로 화두를 돌리고,
서간을 통해 그들의 시야는 점차 넓고 깊어진다. 감각, 감정, 정신을다루는 문장의 영민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리 주변에 흔히 존재하는모든 생명체가 그들의 펜 끝에서 특별하게 변모한다. 둘은 150통의 편지를주고받으며 지적 존재에 대해 가장 깊이 이해한 두뇌의 교류를 보여 준다.
그럼에도 그들의 육체는 인간의 것이기에 점차 시들어 간다. 심지어색스 박사는 암 진단을 받고 시력을 점차 상실해 간다. 정신은 스스로를분석하고 진보하지만 결국 육신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 P-1

없다. 투병 중에도 다정함을 잃지 않고 지적 항해를 계속하는 색스박사와 슬픔에만 침잠하지 않는 위로를 보내는 수의 우정이 눈부시다.
마지막으로, 영면에 드는 순간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을 탐구했던 올리버 색스를 애도한다.

남궁인 의사, 작가 - P-1

내가 처음으로 올리버 색스의 책을 접한 지 거의 이십 년이 흘렀지만, 그는여전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를 통해 배운 것들이너무 많은데, 그중 하나는 다른 사람을 알고 싶다면, 말을 건네야 한다는점이다. 이를테면, 당신, 어디가 아파요? 라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참, 이 단순해 보이는행위가 왜 그리도 어려운지! 올리버 색스는 바로 이 단순하고도 어려운행위의 대가였다.
어쩌면 이 책은 ‘입체맹‘이었던 수전이 입체시를 찾은 후 올리버와 함께이 세계의 모습을 새롭게 탐험한 여정의 기록이자, 그토록 이 세계의구석구석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던 올리버가 시력을 잃어 가는 동안에도,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행위를 멈추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기록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삶은 지긋지긋한 고난의 연속"일지도 모르지만, 그 고난을 이겨 내게하는 건, 서로를 꽉 끌어안는 힘이다. 남들은 무심코 지나쳐 버린 것을위해 기꺼이 멈추어 서고, 타인을 바라보기 위해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 그런 식으로 타인의 행복과 슬픔과 기쁨과 상실⋯을 알아보는 것. 그렇게 탄생하는 방대한 세계, 그리고 그 세계의 연결, 연결들, 고동치는위로와 사랑, 누구든지 도달하고 싶은 눈부시게 새로운 세상이 이 책 안에,
수전과 올리버의 문장 속에 다 있다.

손보미  소설가 - P-1

올리버 색스가 이 편지를 내게 썼을 무렵, 우리는 이미 2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종이 위에 써서 봉투에 넣고 미 우편국을 통해 보낸 실물 편지였다. 편지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50대였고 올리버는 70대였다. 나는 마운트홀리요크칼리지의 신경생물학과 교수였고, 올리버는 신경학 병례집으로 이름을 떨친 신경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우리의 발걸음이 우편함앞에 멈춰 설 때마다 만년의 우정이 한 뼘씩 자라났다. 우리는 전부 합쳐서 150통이 넘는 편지를 썼고, 마지막 편지는 올리버가 세상을 떠나기 3주 전에 주고받았다.


누구나 살면서 중요한 갈림길을 만난다. 그중 어떤 것은 직업이나 거주지를 선택할 때처럼 명명백백하다. 그러나 어떤 것은 저멀리서 꺾이는 우회로처럼 당시에는 사소해 보였다가 나중에야 인생을 바꾼 중요한 결정이었음이 드러난다. 색스 박사에게 ‘정말이지 놀라웠던 그 첫 번째 편지‘를 보낼 때만 해도, 나는 이 편지가 내 생각과 일, 심지어 정체성에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영향 - P14

을 미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그 편지를 부치지 않을 뻔했다.
원래 그 편지는 내 ‘시력 일지‘에 적은 글이었다. 나는 마흔여덟 살까지 사시‘에 입체맹이었다. 대다수 사람은 두 눈의 초점을한곳에 맞춘 다음, 양쪽 눈에 입력된 정보를 뇌에서 통합해 단일한 3차원 이미지를 본다. 그러나 내 눈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 대신 나는 한쪽 눈으로만 보고 다른 한쪽의 정보는 무시했다. 그래서 3차원으로 볼 수 없었다. 입체시가 없을 때세상은 어수선하고 납작해 보인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몇 달간시력 훈련을 받은 끝에 결국 두 눈의 초점을 한곳에 맞춰 입체의깊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내 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고, 나는 이 놀라운 변화를 일지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이 시력 일대기를 올리버 색스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태로 정리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색스 박사를 그의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고, 환자에게 깊이 공감하는 통찰력 있는 글에 감탄했다. 게다가 그를 직접 만난적도 있었다. 9년 전쯤 우주비행사인 내 남편 댄이 존슨우주센터에서 색스 박사와 만나 안면을 텄다. 그 뒤로 첫 우주선 탑승을 기념하는 행사에 색스 박사를 초대했고, 그가 초대에 응했다 - P15

는 소식에 나는 무척이나 기뻤다. 행사 때 우리는 고작 5분간 대화했을 뿐이지만, 그날 색스 박사가 내게 던진 질문은 이후로도 계속 내 뇌리에 박혀 있었다. 나는 시력 훈련을 통해 시각적인 깨달음의 순간을 잇달아 경험하면서 점점 더 자신감 있게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되었고, 머릿속에서 색스 박사와 몇 번이고대화를 나누었다. 이 일지는 그 내적 대화의 연장선이었다. - P16

잭스 박사님께,
우리는 1996년 1월 10일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제 남편댄 배리가 우주왕복선을 타고 첫 임무를 떠나기 전날밤이었어요. 우리가 만난 플로리다의 케네디우주센터에서저는 우주선 발사를 구경하러 온 손님들을 대접하고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양한방식으로 세상을 지각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저는제 지각 방식이 보통 사람들과 다소 다르다고, 그건 늘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사시였고, 오로지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박사님은 양쪽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상상할 수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상상할 수 있다고답했고요. 어쨌든 저는 마운트홀리요크칼리지의 - P-1

신경생물학 교수니까요. 시각 처리와 양안시, 입체시에관한 논문을 그간 수없이 많이 읽었지요. 저는 그렇게얻은 지식으로 제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어요.
뛰어난 검안사의 조언에 따라 새 안경을 맞추고 매일시력 훈련을 거듭한 덕분에, 지난 2년간 저는 비로소 두눈을 함께 사용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시각의 변화는 정말 대단했어요. 이제 세상은 더 둥글고, 더 넓고, 더깊고, 더 질감이 살아 있고, 더 세밀합니다. 가장 놀라운점은 물체 사이의 빈 공간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시력은 계속해서 바뀌며 나날이 제게 새로운 기쁨과 놀라움을 안겨 줍니다. 이러한 변화를 경험했다고 말하는사람을 본 적이 없는 터라,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상세히 풀어놓으려 합니다. - P17

잿빛만 보다가 갑자기 총천연색을 볼 수 있게 된 사람을 상상해 보세요. 그 사람은 아마 이 세상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갈 겁니다. 그가 보는 것을 멈출 수 있을까요?
매일 저는 강렬한 3차원의 감각을 느끼려고 꽃이나 제 손가락, 수도꼭지 같은 평범한 사물을 빤히 쳐다봅니다. 밤에는 침대에 누워서 입체경을 들여다봐요. 거의 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새로운 시력이 놀랍고 즐겁습니다.
어느 겨울날 저는 후딱 점심을 해치우려고 강의실에서 매점으로 서둘러 이동하고 있었어요. 강의실 건물에서겨우 몇 발짝 걸어 나왔을 때, 저는 돌연 멈춰 섰습니다. 커다랗고 촉촉한 눈송이들이 제 주위로 나풀나풀 떨어지고있었어요. 이제 눈송이 사이사이의 공간을 볼 수 있었고, 모든 눈송이가 아름다운 3차원의 춤을 추는 것 같았습니다.
옛날 같았다면 눈은 제 바로 앞에 펼쳐진 한 겹의 막 속에서 평평하게 떨어졌을 거예요. 마치 그와 동떨어진 곳에서 눈을 건너다보는 것처럼 느껴졌을 테죠. 하지만 그날 저는 떨어지는 눈 속에, 눈송이 사이에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점심 먹는 것도 잊고 한참 동안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눈은 대단히 아름다울수 있습니다. 눈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요. - P24

다음 날 댄에게 글을 보여 주자 댄은 색스 박사에게 보내 보라고 부추겼다. 나는 망설였다.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것 같았다. 평생을 사시로 살다가 마흔여덟 살의 나이에 입체시를 얻었다는 이야기는 시각 발달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반세기간의 연구결과를 뒤집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입체시는 오직 유아기에만 발달할 수 있었다. 나는 마운트홀리요크칼리지의 생물학 및 신경과학 교수로서 이 연구들을 잘 알았고, 수업 시간에 이 결정적 시기에 대해 수차례 가르치기도 했다. 실제로 지금 내가 3차원을 보고 있다고 스스로 납득하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렸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납득시킨단 말인가?
게다가 색스 박사가 내 말을 믿어 준다고 해도, 내 시력에 일어난 변화가 얼마나 새롭고 경이로운지 과연 그가 이해할 수 있을까? 힘겹게 새로 얻은 입체시는 내게 너무나도 소중했다. 다른 사람이 내 경험을 심하게 부풀린 과장으로, 더 나아가 망상으로 치부하는 건 견딜 수 없었다. 내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올리버 색스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
색스 박사의 저서 《깨어남》을 읽고 받은 첫인상을 다시 떠올렸다. 그 책에서 그는 중증 파킨슨병으로 수십 년간 움직임과 생각이 얼어붙은 사람들을 묘사했다. 색스 박사가 엘도파를 투약 - P25

하자 환자들이 되살아났다. 그들은 움직이고, 말하고, 머릿속에생각이 밀려들었다. 색스 박사는 이 환자들을 관찰하고 그들의말에 귀 기울였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파킨슨병을 앓는다는 것, 엘도파를 투약받는다는 것, 그리고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상상하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색스박사는 환자들을 연민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공감했다.
물론 나의 시력 변화는 이 환자들의 변화만큼 파란만장하진않았지만 어쨌든 인생을 바꾼 뜻밖의 사건이었다. 어쩌면 색스박사는 세상이 내게 얼마나 달라 보이고, 다르게 느껴지는지를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망설이면서도 희망을 품고, 또 댄의 격려에 힘입어, 일지에 기록한 편지를 색스 박사에게 보내기로 했다. 편지 마지막에 짧은 글과 서명을 덧붙였다.


여기까지가 저의 이야기입니다. 시간과 의향이 있을 때 박사님의 의견을 보내주신다면 무척 감사하겠습니다. 아, 저는 물론 박사님의 다음 책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마음을 담아,
Sue Barry

그리고 용기를 잃기 전에 편지를 얼른우체통에 집어넣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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