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사시 치료법에 관한 논문 한편을 읽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브록이 쓴 이 문장을 보고 제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세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시 환자가 실제로 입체시를경험하기 전에는 그 어떤 행동과 말로도 환자에게양안시의 실제 감각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환자는 반드시 자신이 2차원 그림을 보고 있다고 믿어야하며, 화들짝 놀라면서 이 그림에 입체적 특징이 있음을발견하는 일은 환자의 몫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식으로, 오로지 이런 식으로만, 환자가 실제로 입체시를습득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일단 이 새로운 감각을 - P136

경험하면, 환자는 양안시가 확실히 자리 잡을 때까지 이 능력을 몇 번이고 다시 쓰고 싶어 할 것이다"
아니, 너무 익숙하게 들리지 않나요! 제 경험, 그리고 제가 인터뷰한 과거 입체맹이었던 사람들의 경험과 정확히 일치하는 설명이었습니다.
...
브록 박사는 여러 방식으로 환자들의 지각 능력을 테스트하며 지금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관찰하고 함께 논의하면서 치료법과 도구를 개발했고요. 그는 환자들의 겉모습을 관찰하는 데 만족하지않았습니다. 《화성의 인류학자》에도 언급된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처럼, 브록은 환자들의 머릿속에 들어가고싶어 했어요.
박사님의 책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는 몽테뉴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하지요. "... 진정한 의사가되려면, 자신이 치료하고자 하는 질병을 전부 경험해봐야 한다..." 하지만 환자들이 사시가 있고 입체시가 약한 안과의를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대다수 사시인은 이런 증상을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의사에게 - P137

치료받는 것이지요. 브록 박사의 경우는 어땠을까요? 그의 통찰력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이쯤이면 이미 그답을 파악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록 박사는 과거에 간헐성 외사시‘가 있는 사시인이었습니다. 브록이 치료한 첫 번째 환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어요.


올리버의 답장은 언제나처럼 형용사와 괄호로 가득한 생동감 있는 문체였지만, 2007년 1월 6일에 쓰인 이 편지에는그의 시력에 관한 불안한 소식도 담겨 있었다.


지적인 에너지와 열정이 타오르는 멋진 편지 (12/29)고맙습니다. 브록의 이야기는 아주 중요하고, 시대를 앞서간 것처럼 보이는군요- 사실상 거의 알려지지 않은듯하고요. 교수님의 작업은 브록의 발견 (그리고 브록 본인)을 발굴하고 되살려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겁니다. 언젠가 따로 에세이를 한 편 써도 좋겠고, 교수님책의 한 챕터를 할애할 수도 있겠고요. 말씀하신 걸 보니거의 다 쓰신 것이나 다름없네요! - P138

교수님은 의사/과학자는 무엇을 직접 경험해야하는가‘라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제기해 주셨습니다. 곧 출간될 제 음악 책의 강점ㅡ어떤 의미에서는 한계이기도하지만ㅡ은, 주로 환청을 듣는 사람, 실음악증amusia이
있는 사람, 공감각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증언으로이루어져 있다는 겁니다. 이들은 직접 경험을 통해 이런상태가 어떤 것인지 잘 알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는 객관적으로 자기 상태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만약 환청(또는 다른 증상)이 있는 사람이 전문 과학자나 의사, 연구자라면 그건 무적의 조합일 겁니다. 물론 교수님이 바로 그런 사례지요. 여러 시각적 장애와 혼선을 겪고있는 저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요즘 뒤틀린 세상을 살아가고있습니다. 이러한 꼬임과 틀어짐을 왼눈이 완전히 교정하지못해서, 점점 오른눈을 감거나 왜곡되고 손상된 오른쪽 시력을(어떻게든) ‘억압‘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탈구심성 환각에취약해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경험을 아주 흥미로워하며꼼꼼하게 기록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론 내게 이런 일이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 P139

지금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가 열심히, 꾸준히,
의욕적으로, 또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쳐서 나가떨어질 정도지요. 17일쯤부터 며칠간(수명하면서)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교수님의 연구가 더욱 흥미진진하게 확장된 것을 다시 한번 축하하며, 모두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리버는 내가 얻은 입체시를 잃어 갈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왜곡된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 둘 다 회복의 힘을 굳게 믿었기에, 몇 달 뒤 나는 한쪽눈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훈련 도구를 커다란 상자에 한가득 담아서 보냈다. 올리버는 방대한 분량의 《뮤지코필리아》를 쓰느라 바쁜 와중에도 내 성의에 감사를표했다. 나는 그때, 그리고 훗날에도 여러 번, 어떤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 나가는 올리버의 능력에 크게 감탄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열심히, 꾸준히, 의욕적으로, 또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P140

이 글에서 올리버는 앞을 보지 못하고 뇌성마비가 있는 매들린 J.라는 중년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매들린은 지적 능력이 뛰어났지만 평생 일거수일투족을 도움받았기에 두 손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 손을 쓸모없는 "진흙 덩어리"로 여겼다. 올리버는 매들린의 두 손 감각이 정상임을 파악한 뒤, 담당 간호사에게매들린이 손을 뻗어 움켜쥘 수 있도록 베이글을 살짝 멀리 놔 달라고말했다. 매들린은 손으로 베이글을 붙들었고, 그러면서 베이글뿐만아니라 자기 손의 존재를 발견했다. 촉각을 통해 세상을 탐험하기 시작한 매들린은 점토를 달라고 부탁해 조소를 시작하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예술적 재능을 드러냈다. 올리버는 이렇게 썼다. "보통생후 수개월 내에 습득하는 기본적인 지각 능력을 제때 습득하지 못한 사람이 60세의 나이에 그 능력을 습득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P142

그러나 이 편지에서도 나는 마냥 솔직하지 못했다. 올리버의 표현을 살짝 바꿔서 말하자면, 우리는 어린 시절을 빠져나오지만 결코 그 시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어렸을 때 나는 내가 실패자라고 생각했다. 눈이 사시였고, 그 탓에글 읽기와 자전거 타기, 운전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든 경험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올리버에게 하소연하고싶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깨어남》에 나온 것처럼 수십 년간 신체와 정신이 마비된 환자들을 돌본 사람이니까. 사시가 내평생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지라도 그들에 비하면 내가겪은 어려움은 사소해 보였다.
《3차원의 기적》을 쓰면서 마침내 어린 시절에 겪은 어려움을 되돌아보았다. 초고에서 학교 다닐 때 힘들었던 일들을 넌지시 - P151

언급하자, 편집자는 이 주제를 더 확장해 보라고 했다. 한 문단을 추가했지만 편집자는 만족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전부 다 털어놓았다. 책이 인쇄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내가 과장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다른 사시인들에게서 자기 이야기인 줄 알았다는 이메일이 쏟아졌다.
《3차원의 기적》은 2009년 5월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아마존닷컴 에디터가 선정한 2009년 최고의 과학책 10권에 이름을 올렸고, 여덟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나는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유럽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책을 통해 사시와 양안시 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정보와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쓴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였다. 자료를 조사하며 테레사 루지에로 박사와 행동 및 발달 검안사 공동체‘, 수많은 과학자에게 아낌없는도움과 조언을 받았다. 그러나 올리버의 지지와 격려가 없었다면 아마 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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