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나는 입체시가 생기기 전에도 내가 3차원으로 세상을 본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3차원 세상에서 움직였고 원근과 음영, 그림자, 사물의 중첩 (뒤에 있는 사물이 앞에 있는 사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처럼 한쪽 눈으로도 깊이를 지각할 수 있는 단서들을 통해 거리를 파악했다. 그러나 입체시가 생기자 나의 공간감은 질적으로 달라졌다.
이제 거울을 들여다보면 거울 속의 반사된 공간에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입체맹이었을 때는 내 모습이 거울 표면 위에 있었다. 반사된 내 모습과 거울 표면 사이의 빈 공간을 인식하지 못했기에, 거울 유리에 묻은 얼룩은 마치 내 몸 위에 있는것처럼 보였고, 나는 옷에서 그 얼룩을 닦아 내려 했다. 요즘은거울을 보다가 잠시 한쪽 눈을 감아도 거울 속의 반사된 공간에있는 내가 보인다. 입체시가 생기자 한쪽 눈으로 보는 방식까지달라진 것이다. 그러니 평소에 늘 입체시가 있던 사람이 한쪽 눈을 감는다고 해서 늘 입체맹이었던 사람처럼 세상이 납작해 보이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평생 쌓아 온 입체시의 경험으로 입체 정보가 사라진 빈 공간을 채운다.
입체시로 세상을 보자 물체 사이의 공간이 손에 만져질 듯 뚜렷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새로움이 무척이나 놀랍고 기뻤다.  - P45

수에게,


12일에 보내신 놀라운 편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방금 읽었는데, 완전히 빨려들어서 끝까지 집중해서읽었습니다(그래도 수차례 재독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번 편지 이후로 논문 찾는 거며 연락 취하는 거며조사를 엄청 많이 하셨더군요- 그리고 생각도 무척이나많이 하셨고요. 어느 프랑스인의 말마따나, 교수님(그리고다른 사람들도)의 경험이 과연 "생각의 폭풍"을 일으켰나봅니다.
어렸을 때 받았던 수술 정보와 단안시가 된 
의사의 흥미로운 사례를 전해 주신 이전 편지에 제가 감사를 표했는지 잘 모르겠네요(요즘 집을 자주 떠나 있었습니다).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뒤늦게나마 지금이라도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4월 12일자의) 새 편지도 밥 와서먼과 랠프에게 한 부 복사해서보내겠습니다(며칠 뒤 직접 만날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마저리 리빙스턴과 주고받은 편지였습니다-최근 뉴욕과학아카데미모임에서 허블과 비셀을 만나 (두 사람은 전에도 만난 - P73

적이 있습니다) 간략하게 교수님 이야기를 전했더니, 둘다 크게 관심을 보이며 저더러 더 자세히 알아보라고하더군요. 교수님 말처럼 정설이 자리 잡았을지는몰라도, 둘은 생각이 활짝 열린 사람입니다.. 교수님께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부터 줄곧 이 사안을 널리 (그리고현명하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지금으로선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지, 누가 그 일을 맡아야 할지 잘모르겠네요. 입체적인 안부를 전하며. - P74

자신의 경험이 일반적인 믿음이나 확고한 정설과 반대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자기 경험을 편향적이고 결함 있는것으로 치부해 버릴까, 아니면 권위에 의문을 제기할까? 올리버가 내 편지를 더없이 진지하게 받아 준 덕분에, 나는 자신감을가지고 내 경험을 신뢰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올리버와 나의 공통점은 집요한 성격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둘 다 글을 쓸 때 생각이 가장 잘 풀렸다. 올리버가 나를 주인공으로 글을 써서 발표한 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올리버에게편지를 보냈다. 내 이야기를 검토하고 정리하고 결국 책으로 낼수 있었던 건 올리버와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은 덕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환자에서 주체로, 다시 저자로 변신했다. 하지만 너무 앞서나가진 말자. 그전에 먼저 "스테레오 수"가 있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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