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가 끝난 뒤 올리버를 만나러 무대 위로 올라갔다. 나를 찾고 있었다더니 정작 내 앞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함께 미술관의 이집트관을 구경하다가 어느 석관 앞에 잠시 멈춰섰을 때, 올리버는 오늘 자신이 "아우팅"당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시력을 상실했음을 공개적으로 말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올리버는 몹시 슬퍼 보였고, 나는 그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한편으로는 올리버가 "아우팅"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 의아했다. 올리버가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고, 혹시 그것이 올리버가 품은 또 하나의 비밀은 아닐지 궁금했다. 올리버처럼 나도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 공개했고, 그 결과 치부가 노출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시인 내 눈에대해 말할 때마다 어린 시절에 느낀 수치심과 굴욕감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올리버가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할 때 양가감정을 느끼는 이유도 이해가 갔다. 눈 근육을 수술받은 뒤 대다수 사람은 내가 사시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올리버는1996년에 있었던 댄의 첫 우주선 탑승 기념 파티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언급하기도 전에 내 눈이 사시임을 간파했다. 나의 비밀은 처음부터 올리버에게 들통나 버렸고, 결국 나는 올리버의 격려에 힘입어 그 비밀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 P207
이제 부엌 타이머를 맞춰 놓고 10분간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가능했다. 비록 그러고 나서는 내내집 안을 천천히 돌아다니거나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나는 올리버의 체력과 끈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글쓰기와 원고 수정도 멈추지 않았다. 헤어지면서 올리버는 곧 출간될 《마음의 눈》 가운데 본인 이야기가 담긴 챕터의 원고를 내게 들려 보냈다. 그날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던 길이 기억에 남아 있다. 올리버의 글을 읽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칸을 옮겨 다니며 표를 회수하는 승무원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크리스마스엔 집에돌아갈 거예요)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무원의 기쁨 앞에서 올리버가 자신의 상실을 묘사한 글을 읽고 있자니, 나는 점점 더 슬퍼졌다. 이제 올리버는 오른쪽의 넓은 공간을 볼수도, 심지어 인식할 수도 없었고, 오로지 꿈을 꾸거나 약에 취했을 때만 세상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올리버는 대마초를 언제나 학명인 카나비스cannabis 라고 칭했다). 꿈과 약. 이 두 가지가내 흥미를 자극했다. 나도 처음 입체시를 경험했을 때 환각 상태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고, 최근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9년 12월 28일 자의 다음번 편지에 이렇게 썼다. - P259
헉슬리의 《지각의 문》을 읽다가, 그가 메스칼린에 취한상태에서 다양한 사물을 묘사한 부분을 보고 정말깜짝 놀랐습니다. 헉슬리가 묘사한 사물들이, 제가처음 3차원으로 보고 크게 충격받은 사물들과 정확히일치해서요. 헉슬리는 꽃병에 담긴 꽃, 의자의 다리, 바지의 접힌 자국을 이야기합니다. 저도 식물과 꽃의단단함, 의자가 공간 속에 놓인 모습, 가족들의 겨울코트에 남은 풍성한 주름과 홈에 매료되었었지요. - P260
비슷한 무렵인 2010년 6월 21일, 케이트가 《마음의 눈>원고를 보내며 검토를 부탁했다. 줄표와 점들 사이에서 다양한생각이 이어지는 올리버의 편지와 달리 원고는 물론 완전한 문장으로 쓰여 있었다. 그러나 검토를 하다 보니 쉼표가 없어도 되는 부분에 들어가 있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이 점을 지적하자 케이트는 올리버가 그 쉼표들을 넣길 고집했다고 말해 주었다. 쉼표가 있어야 독자가 읽기를 잠시 멈출 수 있고, 그렇게 쉼표가 생각을 구획 짓는다는 것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이 유독 인상 깊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시각적 심상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수준에서 실제처럼 생생한 수준까지 매우 다양하다는 내용이었다. 그건 시력을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라서, 2010년 여름에 나와 올리버는 자신에게 어떤 시각적 심상이 보이는지, 혹은 보이지 않는지에 관해 편지 - P284
로 대화를 나누었다. 예를 들어, 나는 주기율표를 상상할 때 머릿속에서 표준 화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과 같은 열과 행이 보이고, 집중하면 30번까지 해당 칸에 원소의 약칭을 채울 수 있다. 암산을 할 때는 머릿속 칠판에 숫자가 쓰인 것이 보인다. 그러나 올리버는 이런 그림을 떠올리지 않았다. "주기율표에 관해서, 저는 주기와 족, 전자껍질에 전자가 채워지는 주기성(2, 8, 8, 18, 32 등) 같은 논리적인 그림이 보이는 것같습니다... 암산은 순식간에 하는 편인데, ‘머릿속 칠판‘은 보이지 않고 ‘내면의 말‘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걸까, 아니면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같지만 각자의 의식에 나타날 때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걸까? - P285
《마음의 눈》 2장 ‘부활‘을 읽으면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회복과 재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생각했다. 실어증에걸린 올리버의 환자 팻은 결국 말 없이 소통하는 방법을 익혔지만, 팻을 격려하며 그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헌신적인 딸들이 없었다면 아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이장을 읽고 온종일 그 내용에 대해, 특히 너무나 다정하고 배려심넘치는 팻의 딸들에 대해 생각했다. 당시 나는 아버지를 돌보고있었는데, 내가 늘 최선을 다해 애쓰며 헌신하고 있다는 생각은들지 않았다. 그래서 2010년 7월 19일이었던 그날 저녁, 자리에앉아 아버지를 돌보는 일에 관해 에세이를 한 편 썼다. - P285
아버지
84세 생일을 맞이하고 이틀이 지난 2006년 7월 14일아침, 아버지는 몹시 우울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몇 년 전 아버지는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실버타운에 입주했고, 그날 아침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활기차게 지내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돌아가셨을 때의 격렬한 슬픔은 지나간 뒤였다. 아버지는 새 친구를 사귀었고, 커다란 캔버스를 만들 재료와 물감을 사러 정기적으로 차를 몰고 목재상과 화방을 찾았다. 아버지가 강렬한 감정과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리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예술가인 그는 늘 치열한 삶을 살았다. 성마르게 화를 내고, 터무니없을 만큼 창의적이며, 열정적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더 점잖고 보수적인 친구 아빠들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아빠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제 자신감을 전부 잃은 것 같았다. 어르고 달래야 겨우 침대에서 빠져나왔고, 갈수록 세상과 멀어졌다. 아버지가 말을 거는 드문 사람 중 한명이 나였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전화해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아버지를 모시고 이런저런 병원과 정신과를 찾아갔지만 의사들은 별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아버지는 정신과 의사를 싫어했다. - P286
나는 지쳤고 분노와 무력감을 느꼈으며 아버지에게 거부당한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말년에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늘 어머니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었다. 아니면 어머니 덕에 내가 그럴 수 있다고믿었거나. 반면 아버지는 내게 미소 한번 지어 주지않았다. "아버지 때문에 내 삶이 망가지고 있어?" 나는 댄에게 이 말을 하고 또 했다. 댄은 실용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매주 금요일 오후 아버지를 모시고 바람을 쐬러 나가는 식으로 나를 도와주려 애썼다. 그러나 내가 끊임없이 불만을 곱씹자, 한때 재활의학과 의사였던 댄은 나를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상황이 호전되지 않았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절히 대처하는 법을 익히는 편이 나았다. 내가 아버지 일로 하소연하면 댄은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나는 격분했다. 어떻게 그렇게 무정하고 냉담할 수 있지? 하지만 댄의 방식이 현명하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내 삶은 전반적으로 풍요롭고 만족스러웠고, 댄은 내가 더 균형잡힌 시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우려 하고 있었다. 2년 전 어느 날 아침, 동네 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왔다. 아버지가 그날 아침 복통을 호소하며 앰뷸런스를 불렀다는 것이었다. 의사들이 꼼꼼히 진찰했지만 - P287
가벼운 변비 외에는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다 해진 잠옷을 입고 응급실에 앉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얇고 성긴 머리카락이 지처분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아버지에겐 신발도, 지갑도, 안경도 없었다. 나는 우선 아버지를 자동차에 태우고 병원을 출발한 뒤 분노를 터뜨렸다. 아버지 집에 도착했는데 아버지에게 집 열쇠가 없어서 실버타운 관리소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열쇠를 들고 와서조심스럽게 아버지를 집 안으로 모셨다. "혼자 걸을수 있으세요?" 나는 직원에게 퉁명스레 말하며 내 못난 모습에 비참함을 느꼈다. 집에 아무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뒤 나는 서둘러 돌아가려 했다. "오늘이 네 생일이냐?" 그때 아버지가 물었다. 내가 내일이라고 하자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좋은 생일 보내라" 2주 뒤, 여동생 생일 하루 전날에 실버타운 수간호사가 내 직장 메일 주소로 이메일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 침대에서 나오기를 거부하시면서 자살하겠다고 협박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자살하지 않으리라는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원래도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일이 잦았고 극적인 상황을 잘 연출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의 이런 반응은 도와달라는 외침이었고, 내게는 아버지의 고통을 다룰 기술이나 경험이 없었다. 수간호사는 - P288
조앤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노인 사례 관리자"로 고용해보라고 권했다. 조앤은 매우 유능하고 지식이 풍부했으며 적극적이었다. 나는 조앤 덕분에 아버지의 보호자역할에서 벗어나 다시 아버지의 딸이 될 수 있었다. 다양한 약물을 써 봤지만 아버지의 우울은 좀처럼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분노는 사라졌고, 그와 함께 나의 분노도 사라졌다. 아버지를 찾아가는 날이 다시 기대되기 시작했다. 나는 늘 밀크쉐이크를 챙기고 (아버지의 몸무게는 겨우 52킬로그램이다) 그날 같이 할 일을 준비해 간다. 어떤 날은 화집을 가져가서 매끄럽게 인쇄된 그림을 같이 감상한다. 또 어떤 날은 조각이 커다란 직소 퍼즐을 준비한다. 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퍼즐의 모양을 확인하고 제자리에 놓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부모 앞에서 도대체 몇 번이나 비통해질 수 있는지,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를 찾아뵙지 못한 날들을 몇 번이나 자책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 우리는 종종 소파에 나란히 앉아 바흐의 바이올린 파르티타 악보를 보며 음악을 듣는다. 아버지는 두 손을 들어 지휘를 하는데, 마치 허공에서 음표를 뽑아내는 것 같다. 그런 순간들은 다정함과 인자함으로 흘러넘친다. "제가 많이 사랑해요?" - P289
헤어질 때 나는 아버지의 볼에 입을 맞추며 이렇게말한다. "나도 많이 사랑한단다."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고, 우리는 둘 다 평화롭다.
올리버의 책을 읽고 쓴 것이기에 나는 이 글을 올리버에게 보냈고, 그는 가슴이 뭉클했다는 감상을 전했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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