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론


백석을 모르는 사람이 백석론을 쓰는 것도 일종 흥미있는 일일 것이다. 하나 시집 『사 이외에는 그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 그를 논한다는것은 더욱이 제한된 매수로서 그를 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일 수 없다. 남을 완전히 안다는 것도 결국은 자기 견해에 비추어가지고 남을 이해하는 것인 만큼 불완전한 것인데 더욱이 그의 시만을 가지고 그의 전 인간을 논하는 것은 대단 불가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백석론은 씨의 작품을 통하여서 본 씨 자신의 인간성과 생활을 논위함이라고변해를 해야만 된다.
백석 씨의 『사슴은 어떠한 의미에서는 조선 시단의 경종이었다. 그는 민족성을 잃은 지방색을 잃은 제 주위의 습관과 분위기를 알지 못하고 그저 모방과 유행에서 허덕거리는 이곳의 뼈 없는 문청들에게 참으로 좋은 침을 놓아준 사람의 가장 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것은 백석의 자랑이 아니라 한편 조선 청년들의 미제라블한 정경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일이다.
나 보기의 백석은 시인이 아니라 시를 장난(즉 향락)하는 한 모던 청년에 그쳐버린다. 그는 그의 시집 속 ‘얼룩소 새끼의 영각‘ 안에 「가즈랑집」, 「여우난골족」, 「고방」, 「모닥불」, 「고야(古夜)」와 같은 소년기의 추 - P213

억과 회상을, ‘돌덜구의 물‘ 안에 ‘초동일(初冬日)」, 「하답(夏畓)」, 「적경(寂景)」, 「미명제(未明界)」, 「성외(城外)」, 「추일산조(秋日山朝)」, 「광원(曠原)」, 「흰 밤」과 같은 풍경의 묘사와 죄그만 환상을 코닥크에 올려놓았고, ‘노루‘와 ‘국수당 넘어‘에도 역시 추억과 회상과 얕은 감각과 환상을 노래하였다.
그는 조금도 잡티가 없는 듯이 단순한 소년의 마음을 하여가지고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에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와 돌나물김치에 백설기 먹는 이야기, 쇠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타는 모닥불, 산골짜기에서 소를 잡아먹는 노나리꾼,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 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 안에 고래등 같은 집 안에 조마구 나라 새까만 조마구 군병, 이러한 우리들이 어렸을 때에 들었던 이야기와 그 시절의 생활을 그리고 기억에 남는 여행지를 계절의 바뀜과 풍물의 변천되는 부분을 날치있게 붙잡아다 자기의 시에 붙여놓는다. 그는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고 해도 앞에 지은 그의 작품만으로는 스타일만을 찾는 모더니스트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그는 시에서 소년기를 회상한다. 아무런 센티도 
나타내지는 않고 동화의 세계로 배회한다. 그러면 그는 만족이다. 그의 작품은 그 이상의 무엇을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그는 앞날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자기의 감정이나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인즉슨 그는 이러한 필요가 없을는지도 모른다. 근심을 모르는 유복한 집에 태어나 단순한 두뇌를 가지고 자라났으면 단순히 소년기를회상하며 그곳에 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자기 하나만을 위하여서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니까. 다만 우리는 그의 향락 속에서 우리의 섭취할 영양을 몇 군데 발견함에 지나지 아니할 뿐이다. - P214

하나 우리는 이것을 곧 시라고 인정한 몇 사람 시인과 시인이라고 믿는 청년들과 및 칭찬한 몇 사람 시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을 그냥 변화시키지 않고 흡수하기 쉬운 자연계의 단편이 있다. 가령 제주도에는 탱자나무에도 귤이 열린다 하고 평안도에서는 귤나무에서 탱자가 열린다 하자. 물론 이것을 아름다웁게 수사한다면 모르거니와 그냥 기술한다고 하여도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평안도의 탱자열매가 시가 될 수 있고 평안도 사람에게는 큰 귤이 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백석의 추억과 감각에 황홀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자기네들의 생활과 습관을 잊어버린 또는 알지 못하는 말하자면 너무나 자신과 자기 주위에 한한 소치임을 여실히 공중 앞에 표백하는 것이다. 만일에 이상의 내 말을 독자가 신용한다면 백석 씨는 얼마나 불명예한 명예의 시인 칭호를 얻은 것인가. 다시 그를시인으로 추대하고 존중한 독자나 평가(家)들은 얼마나 자기네들의무지함을 여지없이 폭로시킨 것인가!
이렇게 말하면 내 의견을 반대하는 사람은 신문학이니 새로운 유파이니 하며 그의 작품을 신지방주의나 향토색을 강조하는 문학이라고 명칭하여 옹호할 게다. 하나 그러면 그럴수록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의 무지를 폭로하는 것이라고밖에 나는 볼 수가 없다. 지방색이니 어니 하는미명하에 현대 난잡한 기계 문명에 마비된 청년들은 그 변태적인 성격으로 이상한 사투리와 뻣뻣한 어휘에도 쾌감과 흥미를 느끼게 된다. 하나 이것은 결국 그들의 지성의 결함을 증명함이다. 크게 주의가될 수 없는 것을 주의라는 보호색에 붙이어가지고 일부러 그것을 무리하게 강조하려고 하는 데에 더욱 모순이 있다.
그리하여 외면적으로는 형식의 난잡으로 나타나고 내면적으로는 인식 - P215

의 천박이 표시가 된다. 모씨와 모씨 등은 이 시집 속에 글귀글귀가 얼마나 아담하게 살려졌으며 신기하다는 데에 극력 칭찬을 하나 그것은단순히 나열에 그치는 때가 많고 단조와 싫증을 면키 어렵다. 미숙한 나의 형용으로 말한다면 백석 씨의 회상시는 갖은 사투리와 옛이야기, 연중행사의 묵은 기억 등을 그것도 질서도 없이 그저 곳간에 볏섬 쌓듯이그저 구겨넣은 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백석 씨는 시인도 아니지만 지금은 또 시도 쓰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또 백씨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 위엣말은 많은 착오도 있을 줄 안다. 하나 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는 백석 씨만은 가급적으로 음미를 하여보았다.
백씨와 나와는 근본적으로 상통되지 않은지는 모르나 나는 백씨에게서 많은 점의 장점과 단처()를 익혀 배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백씨에게 감사하여 마지않는다.
‘시인‘이란 칭호가 백석에게는 벌써 흥미를 잃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참으로 백석을 위하여 그리고 내가 씨에게 많은 지시를 받은 감사로서도 씨가 좀더 인간에의 명석한 이해를 가지고 앞으로 좋은 작품을 써주지 않는 이상, 나는 끝까지 그를 시인이라고 불러주고 싶지 않다. 그것은다른 범용한 독자와 같이 무지와 무분별로써 시를 사주고 싶지는 않은참으로 백석 씨를 아끼는 까닭이다.  - P216

8월 15일의 노래


기폭을 쥐었다.
높이 쳐들은 만인의 손 위에 
깃발은 일제히 나부낀다.

"만세!"를 부른다. 목청이 터지도록
지쳐 나서는
군중은 만세를 부른다.

우리는 노래가 없었다.
그래서
이처럼 부르짖는 아우성은
일찍이 끓어오던 우리들 정열이 부르는 소리다.

아 손에 손에 깃발들을 날리며
큰길로 모이는 사람아
우리는 보았다.
이곳에 그냥 기쁨에 취하고, 함성에 목메인 겨레를…… - P251

그리고
뒤끓는 환희와 깃발의 꽃바다 속에
무수히 따라가는 아동과 근로하는 이들의 행렬을……

춤추는 깃발이여!
나부끼는 마음이여!
이들을 지키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너희들 가슴으로
해방이 주는 노래 속에서
또 하나의 검은 쇠사슬이 움직이려 하는 것을......
(1945. 8. 16.)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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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서리


깊은 산골짜구니에
숯 굽는 연기,
구름과 함께 사라지다
구름과 함께

얕은 집 울안에
장대를 들어 과일 따는 어린애
날마다 사다리 놓고
지붕 위에 올라가더니

홍시 찍어먹는 가마귀, 검은 가마귀
가 소년을 부른다.
무서리 내린 지붕 위에
멀고 먼 하늘이 있다
구름이 있다.
- P192

여정 (旅程)


또 한 번 멀리 떠나자.
거기
항구와 파도가 이는 곳,
오후만 되면 회사나 관청에서 물밀듯 나오는 
사람
나도 그 틈에 끼어 천천히 담배를 물고
뒷골목에 빠끔빠끔 내다보는
소매치기, 행려병자, 어린 거지를 다려다보며
다만 떠내려가는 널판쪽 모양 몸을 맡기자.

거기,
날마다 드나드는 이국선과 해관(海關)의 창고가 있는 곳
나도 낯설은 거리에 서서
항구와 물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회사원이나 관청 사람과 같이
우정 그네들을 따라가 보자.
그러면,
항상 기계와 같이 돌아가는 계절 가운데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지나 - P193

고향에서는 눈 속에 파묻힌 보리 이랑이 물결치듯 소곤대며 머리를들고
강기슭 두터운 얼음장이 터지는 소리,
이때의 나는 무엇이 제일 그리울 거냐.

찾아온 발길이 아주 맥히는 바닷가에서
그때, 나의 떠나온 도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신개지(新開地) 비인 터전에
새로이 포장 치는 곡예단의 쇠망치 소리.
내가 무에라 흐렁흐렁 울어야는지,
우두머니 그저 우두머니 
밤과 낮, 둘밖에 없는 세상에
어째서 나 홀로 집을 버렸나. 집을 버렸나. - P194

연화시편(蓮花詩篇)


곡식이 익는다. 풀섶에 벌레가 운다. 이런 때 연잎은 지는 것이다. 차고 쓸쓸한 꽃잎 하나 줄기에 붙이지 않고 연잎은 지는 것이다. 
일년 가야 쇠동 맑은 적 없는 시꺼먼 시궁창 속에 거북은 보는 게었다.
봄철 갈라지는 얼음장, 여름 찾아 점벙대던 개구리 새끼. 모든 것이 침전하였다. 모든 게 오직 까라앉을 뿐이었었다.
연잎이 시들면, 연잎이 시들면, 심심한 수면 위에 또 한 해의 향기는 스미어들고

물속에 차차로 가라앉는 오리털,
이 속에 손님이 오는 것이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아무런 기맥도 없이 밤이슬은 내리어 서리가 된다.
소 몰고 돌아가는 저녁길, 저녁길의 논두렁 위에 푸뜩푸뜩 풍장치며 흩어지는 농사꾼.
오곡이 익은 게었다. 곡식이 익은 게었다.

웅덩이에는 낙엽이 한 겹 물 위에 쌓이더니 밤마다 풀섶에는 가을벌레가 울고, 낙엽이 다시 모조리 가라앉는 날, 죄그만 어족들은 보드라운 - P195

진흙 속에 연뿌리 울타리 하여 길고 긴 겨울잠으로 빠지는 것이었었다.
한때는 그 넓은 이파리에 함촉 이슬을 받들었을 연잎조차 잠자는 미꾸리와 거머리의 등을 덮는 것이나, 두 눈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기인 거북이의 등 위엔, 거북이의 하늘 위엔 살얼음이 가고 그것이 차차로 두꺼워질 뿐.
까만 머리 따 늘이는 밤하늘에도 총총하던 별 한 송이, 별 한 송이 비최지 않고 희부연 얼음장에는 붉은 물 든 감잎이 끼어 있을 뿐.
한겨울은 다시 얼어붙은 웅덩이에 눈싸리를 쌓아 얹으나 어둠 속에 가라앉은 거북이는, 목을 늘여, 구정물 마시며, 반년 동안 밤이 이읏는 아라사의 옥창(獄窓)과 같이, 맛없는 울음에 오! 맛없는 울음에 보드라운 회한의 진흙구덩이 깊이 헤치며 뜯어먹는 미꾸리와 거머리.
두꺼운 얼음장 밖으로 연이어 연이어 깜깜한 어둠이 흐른다 해도, 구름 속에 상현달이 오른다 해도 거북이의 이고 있는 하늘엔 희부연 얼음장이 깔려 있을 뿐, 한 사리 싸락눈이 쌓여 있을 뿐. - P196

귀촉도(歸蜀途)
정주(廷柱)에 주는 시


파촉(巴蜀)으로 가는 길은 
서역 삼만리.
뜸부기 울음 우는 논두렁의 어둔 밤에서
길라래비 날려보는 외방 젊은이,
가슴에 깃든 꿈은 나래 접고 기다리는가.

흙먼지 자욱히 이는 장거리에
허리끈 끄르고, 대님 끄르고, 끝끝내 옷고름 떼고
어두컴컴한 방구석에 혼자 앉아서
창 너머 뜨는 달, 상현달 바라다보면 물결은 이랑 이랑
먼 바다의 향기를 품고,
파촉의 인주빛 노을은, 차차로, 더워지는 눈시울 안에ㅡ

풀섶마다 소해자(小孩子)의 관들이 널려 있는 뙤의 땅에는,
너를 기다리는 일금 칠십원야의 샐러리와 죄그만 STOOL이 하나
집을 떠나고, 권속마저 뿌리이치고,
장안 술 하룻밤에 마시려 해도 - P197

그거사 안 되지라요 그거사 안 되지라요

파촉으로 가는 길은
서역 하늘 밑.
둘러보는 네 웃음은 용천병의 꽃 피는 울음
굳이 서서 웃는 검은 하늘에
상기도 날지 않는 너의 꿈은 새벽별 모양,
아 새벽별 모양, 빤작일 수 있는 것일까.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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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하나, 열린


오월 빛깔, 서늘한, 시간
이제는 부를 수 없는 것, 뜨겁게
입안에서 들린다.

다시금, 그 누구의 목소리도 없고,

아파오는 안구의 밑바닥.
눈꺼풀은
가로막지 않고, 속눈썹은
들어오는 것을 헤아리지 않는다.

눈물 반 방울,
한층 도수 높은 렌즈, 흔들리며,
너에게 모습들을 전해 준다.



눈 하나: Ein Auge. 첼란의 시에서 빈번히 나오는 고통의 심상이다. 외눈, 감기지 못한 눈, 뜬 채로 굳어진 눈, 생명의 물기를 잃어버린 눈, 본 것이 준고통이 각막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지층에 총총히 박혀 있는 눈등. 이 시는 「언어창살』에 수록되어 있다. - P17




돌.
내가 따라갔던 공중의 돌.
돌처럼 멀어 버린 너의 눈.

우리는
손이었다
어둠을 남김없이 퍼냈다. 찾았다
여름을 타고 올라온 단어.
꽃.

꽃ㅡ맹인의 단어.
너의 눈과 나의 눈이
물을
마련한다.

성장(成長).
마음의 벽이 한 꺼풀 한 꺼풀
떨어져 내린다.

이런 단어 하나 더, 그러면 종추(鐘錘)들이
트인 곳에서 흔들린다.



- P18

꽃: 경직된 이미지로 가득한 시집 『언어창살』에 수록된 시다. 서정시의 대표적인 대상, 혹은 시 자체의 은유로서의 꽃의 이미지는 시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굴곡을 겪어 왔지만, 이 시에서 그려지는 꽃은 시사(詩史)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경직된 의식에는 역사의 고통이 서려 있고("돌처럼 멀어 버린 너의 눈), 그 가운데서 인식된 사물은 활성화된 언어 (꽃=말)로 전이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눈물로 키운 꽃, 어렵게 찾은 소중한 언어, 허물어지는 마음의 벽,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의 꿈 역시 이 시에 담겨 있다.
종추들이 트인 곳에서 흔들린다: 얽매임 없이 울리는 여러 개의 종소리를 나타낸 표현이다. - P19

언어창살


창살 사이의 안구(眼球).

섬모충 눈꺼풀이
위로 노 저어 가
시선 하나를 틔워 준다.

유영하는 아이리스, 꿈 없이 우울하게,
심회색(心灰色) 하늘이 가깝구나.

갸름한 쇠 등잔 속, 비스듬히,
천천히 타는 희미한 관솔 등화(燈火).
빛 감각에서
너는 영혼을 알아본다.

(내가 너 같았으면. 네가 나 같았으면.
우리 한 무역풍 아래
서 있지 않았던가?
지금은 낯선 이들인 우리.) - P20

타일들. 그 위에
바싹 붙어 있다. 두 개의
심회색 물줄기.
두 개의
입안 가득한 침묵.




언어창살: Sprachgitter. 원래 중세 수도원 면회실의 창살문을 가리키며 이것을 사이에 두고 수도 중인 사람과 외부 면회자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를 ‘언어창살‘로 직역한 것은, 그 창살문의 이미지가 여기서는 소통과 단절의 기능을 동시에 가지는 언어와 접목되었기 때문이다. 가까우면서도("타일들. 그 위에 바싹 붙어 있다. 두 개의 / 심회색 물줄기.") 낯설고 단절된("두 개의 / 입안 가득한 침묵.") 인간관계가 현미경적 이미지들로 포착되어 있다. 이 시는 『언어창살』에 수록되어 있다.

아이리스: 무지개의 여신. 눈의 홍채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안구의 홍채와 안구의 홍채 속을 헤엄치는 아이리스를 동시에 보여 준다. - P21

무덤 근처


남녘 만(灣)의 물은 아직 알고 있을까요,
어머니, 당신에게 상처를 남긴 파도를?

한가운데 물방아들이 있는 벌판은 알까요,
얼마나 나직하게 당신의 가슴이 당신의 천사들을 견뎠는지?

어떤 은(銀)포플러도 어떤 수양버들도, 이제는
당신의 근심을 거둬 가지 못하지요, 위안을 드리지 못하지요?

그런데 신은, 꽃봉오리 피어나는 지팡이를 짚고
언덕으로, 언덕 아래로, 가지 않나요?

그런데 견디시겠어요, 어머니, 아 언젠가, 집에서처럼,
이 나직한, 이 독일어의, 이 고통스러운 
운(韻)을? 
- P22

독일어: 첼란은 복합적인 이유로 여러 언어를 뛰어나게 구사하였다. 그러나 극한의 체험(「죽음의 푸가」 해설 참조.) 이후 모든 사람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첼란은, 독일어로 시를 쓰기로 결심한다. 독일어는 그에게 오로지 고통만을 가져다준 나라의 언어, ‘살인자들의 언어‘였지만, 동시에 모국어(‘어머니의 말(Muttersprache)‘)이자 무엇보다 비명에 간 어머니와 어린시절 함께 즐겁게 읽었던 문학의 언어였던 것이다. 첼란의 어머니의 사망시기나 장소는 불명이지만, 유대인들이 송치되었던 흑해변 드네프르 강 연안(‘남녘 만‘)으로 추정된다. 이 시는 첼란이 한정판으로 냈다가 회수한 첫시집 『유골 항아리에서 나온 모래』에 수록되어 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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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

1918년 충청북도 보은 출생.
1931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입학. 정지용으로부터 시를 배울1933년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을 발표함으로써 작품 활동 시작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지산(智山)중학교에 전입.
1936년 지산중학교 수료. 「낭만』,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가.
1937년 명(明)대학 전문부에 입학. 자오선」 동인으로 참가.
제1시집 『성벽』(풍림사) 발간..
1938년 명치대학 전문부를 중퇴하고 귀국.
1939년 제2시집 「헌사』 (남서방) 발간.
1945년 해방 후 시작(詩作) 재개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활동. 「예세닌 시집』 (동향사)번역 출간. 제4시집 「병든 서울』 (정음사) 발간.
1947년 제3시집 『나 사는 곳』(헌문사) 발간. 월북.
1948년 산문집 『남조선의 문학예술』 발간. 병 치료차 모스크바로 감.
1949년 모스크바를 떠나 귀국함.
1950년 소련 기행 시집 「붉은 기』 발간.
1951년 지병인 신장병으로 사망. - P-1

황혼(黃昏)


직업소개에는 실업자들이 일터와 같이 출근하였다. 아무 일도 안 하면 일할 때보다는 야위어진다. 검푸른 황혼은 언덕 알로 깔리어오고 가로수와 절망과 같은 나의 긴 그림자는 군집(群集)의 대하(大河)에 짓밟히었다.

바보와 같이 거무러지는 하늘을 보며 나는 나의 키보다 얕은 가로수에 기대어 섰다. 병든 나에게도 고향은 있다. 근육이 풀릴 때 향수는 실마리처럼 풀려나온다. 나는 젊음의 자랑과 희망을, 나의 무거운 절망의 그림자와 함께, 뭇사람의 웃음과 발길에 채이고 밟히며 스미어오는 황혼에 맡겨버린다.

제 집을 향하는 많은 군중들은 시끄러이 떠들며, 부산히 어둠 속으로 흩어져버리고, 나는 공복의 가는 눈을 떠, 희미한 노등(路燈)을 본다. 띄엄띄엄 서 있는 포도위에 잎새 없는 가로수도 나와 같이 공허하고나.

고향이여! 황혼의 저자에서 나는 아리따운 너의 기억을 찾아 나의 마 - P22

음을 전서구(傳書鳩)와 같이 날려보낸다. 정든 고샅. 썩은 울타리. 늙은 아베의 하얀 상투에는 몇 나절의 때묻은 회상이 맺혀 있는가. 우거진 송림 속으로 곱게 보이는 고향이여! 병든 학이었다. 너는 날마다 야위어가는......

어디를 가도 사람보다 일 잘하는 기계는 나날이 늘어나 가고, 나는 병든 사나이. 야윈 손을 들어 오랫동안 타태(惰怠)와, 무기력을 극진히 어루만졌다. 어두워지는 황혼 속에서,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보이지 않는 황혼 속에서, 나는 힘없는 분노와 절망을 묻어버린다. - P23

화원(花園)


꽃밭은 번창하였다. 날로 날로 거미집들은 술막처럼 번지었다. 꽃밭을 허황하게 만드는 문명. 거미줄을 새어나가는 향그러운 바람결. 바람결은머리카락처럼 간지러워∙∙∙∙∙∙ 부끄럼을 갓 배운 시악시는 젖통이가 능금처럼 익는다. 줄기째 긁어먹는 뭉툭한 버러지. 유행치마 가음처럼 어른거리는 나비 나래. 가벼이 꽃포기 속에 묻히는 참벌이. 참벌이들. 닝닝거리는 울음. 꽃밭에서는 끊일 사이 없는 교통사고가 생기어났다. - P34

북방(北方)의 길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친다 - P68

불길한 노래


나요 오장환이요. 나의 곁을 스치는 것은, 그대가 아니요. 검은 먹구렁이요 당신이요.
외양조차 날 닮았다면 얼마나 기쁘고 또한 신용하리요.
이야기를 들려요. 이야길 들려요
비명조차 숨기는 이는 그대요 그대의 동족뿐이요.
그대의 피는 거떻다지요 붉지를 않고 거멓다지요.
음부 마리아 모양, 집시의 계집애 모양,

당신이요 충충한 아구리에 까만 열매를 물고 이브의 뒤를 따른 것은 그대 사탄이요
차디찬 몸으로 친친이 날 감아주시요. 나요 카인의 말예(末裔)요 병든 시인이요. 벌(罰)이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능금을 따먹고 날 낳았소.

기생충이요. 추억이요. 독한 버섯들이요.
다릿한 꿈이요. 번뇌요. 아름다운 뉘우침이요.
손발조차 가는 몸에 숨기고, 내 뒤를 쫓는 것은 그대 아니요 두엄자리에 반사(半死)한 점성사(占星師), 나의 예감이요. 당신이요. - P76

견딜 수 없는 것은 낼룽대는 혓바닥이요. 서릿발 같은 면도날이요.
괴로움이요. 괴로움이요. 피 흐르는 시인에게 이지(理智)의 프리즘은 현기로웁소
어른거리는 무지개 속에, 손꾸락을 보시요 주먹을 보시요.
남빛이요 ㅡ빨갱이요. 잿빛이요. 잿빛이요. 빨갱이요. - P77

초봄의 노래


내가 부르는 노래
어데선가 그대도 듣는다면은
나와 함께 노래하리라.
"아 우리는 얼마나
기다렸는가......" 하고

유리창 밖으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한겨울
나는 아무 데도 못 가고
부질없는 노래만 불러왔구나.

그리움도 맛없어라
사무침도 더디어라

언제인가 언제인가
안타까운 기약조차 버리고 - P85

한동안 쉴 수 있는 사랑마저 미루고
저마다 어둠 속에 앞서던 사람

이제 와선 함께 간다.
함께 간다.
어디선가 그대가 헤매인대도
그 길은 나도 헤매이는 길

내가 부르는 노래
어데선가 그대가 듣는다면은
나와 함께 노래하리라.
"아 우리는 얼마나
기다렸는가......" 하고 - P86

붉은 산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이따금 솔나무숲이 있으나
그것은
내 나이같이 어리고나.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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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들은 자국 문화의 우월함과 프랑스어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으므로 원문 충실성은 크게 신경을 안 쓰고 프랑스 미녀를 탄생시키는 데 집중했다. 그렇지만 독일 문학가들의 입장은 달랐다. 슐라이어마허는 「번역의 다른 방법에 대하여」(1813)에서 프랑스처럼 길들일 게 아니라 번역 과정에서 낯선 것들이 독일어에 들어오게 하여 독일어가 더욱 풍부해지게 하자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번역에 골몰하던 횔덜린도 "번역이 마치 체조처럼 독일어에 좋은 영향을 준다. 아름답고 위대한 외국어의 변덕에 억지로 적응하다 보면 아름답게 유연해진다"고 말한 바 있다. 횔덜린은 충실성을 극단으로 추구하다가 체조를 넘어 곡예에 이르렀는지 존경하는 실러에게 비웃음을 사고 말았으나. 이후 20세기에 "원문이 투명하게 비쳐 보이게"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 벤야민도 같은 입장이다. 벤야민은 시를 있는 그대로 번역해야 번역에 영향을받아 언어가 자란다고 하며 그 낯섦과 버석거림을 ‘산통(birthpangs)‘이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주로 언어와 문학의 관점에서 낯설게 
하기의 장점과 효용을 역설했으나, 20세기 후반에 와서 번역 이론이 탈식민주의 연구와 결합하며 낯설게 하기는 더욱 강력한 설득력을 얻게된다.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은 지금까지의 번역 연구가 서로 - P140

다른 언어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중대한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로 식민화 과정에서 번역이 지배자의 세계관이나 통치 체계를 강제하고 식민지의 언어와 문화를왜곡하거나 삭제하는 등의 역할을 했음에도 번역 연구는 그 점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식민 권력은 성경을 토착어로 번역해 서구의 종교와 세계관을 식민지인에게 전파하는 것에서 시작해, 지배자의 언어로 원주민의 설화와 역사 등을 번역해 원주민 문화를 연구하고 통제했다. 이렇게 언어적·문화적 침투가 이루어진 후에 실용적 · 통치적 필요에 따라 지배자의 언어를 강요하기도 했다. 그렇게 식민지인들은 언어와 문화적 정체성을 잃고 자신을 드러낼 목소리를 잃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우리도 직접경험으로 아는 일이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일제가한국어 사용을 금지하여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를 파괴하는 잔인한 식민지 정책을 펼치면서 우리말도 커다란 위기를 겪었다. - P141

그러니 번역이란 순수하게 언어적이거나 문학적인 행위일 수 없고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사이의 불평등한 지위와 권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화적·언어적 자신감이나 우월감의 유무에 따라, 바깥으로부터의 문화적 수혜를 바라는지 아니면 자국의 문화를 지키기를 바라는지에 따라 번역 태도는 달라진다.
이를테면 에드워드 피츠제럴드는 원문을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생각 없이 낯선 것을 자기에게 맞게 바꾸어 흡수했다. 피츠제럴드는 오마르 하이얌의 시들을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이는 작업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친구에게 편지로 이렇게전했다. "이 페르시아인들을 마음껏 자유롭게 번역하는 것이즐거워. (내 생각에는) 페르시아인들은 대단한 시인이 아니라서 이렇게 거리낌 없이 일탈할 수 있어. 아무래도 예술적으로좀 만져줄 필요가 있으니까."(강조는 원문)  피츠제럴드의 자유로운 번역을 문화적 우월감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피츠제럴드에게는 오마르의 시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었고 오마르를 ‘내 소유물(my property)‘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피츠제럴드가 남달리 오만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당시 일반전이 관념이 그랬다.  - P142

2016년 데버라 스미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TheVegetarian 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뒤에 번역 논쟁이뜨겁게 벌어졌다. 최근에 구체적인 사례를 두고 이만큼 열띤논쟁이 벌어진 일은 없었을 듯하다. 처음 수상 소식이 들려왔을 때 (한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한국인들은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쾌거라며 들떠서 축하하고 칭찬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인터넷에 The Vegetarian의 오역 의심 사례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번역 작품을 원본과 비교해본 국내 번역가들은 다들 나처럼 아연했을 듯싶다. 데버라스미스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로운 번역을 했던 것이다.  만약 국내 번역가가 외국의 유명한 작품을그렇게 번역했다면 곧 오역 논쟁에 휩싸였을 것이고 영원히 출판계에 발을 붙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 P145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논리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첫 번째논문에서 의미 충실성을 따지는 것이 국수적 민족주의라고 본것은 아무리 봐도 과잉 해석이다. 또 두 번째 논문에서 남성 인물이 더 가부장적일수록, 여성 인물이 더 독립적일수록 더 페미니스트적인 텍스트라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 아닌가? 아니, 아시아 여성의 텍스트에 페미니스트적 인식이 부족하다고보고 서구 독자의 수준에 맞추어서 관점을 강화하는 번역을했다면 그 자체가 문제적이지 않나?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을옹호하려면, 원문 충실성보다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개별 문학작품으로서 이룬 성취에 초점을 맞춰야 할 텐데, 이 논문에서는 번역의 장점을 다시 원문과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다. 번역을 원문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스미스의 번역을 정당화하는 데 실패한다. 번역이 원문과 비교해서 ‘더 가부장적‘이고 ‘더 이기적‘이고 ‘더 독립적‘이 - P149

라고 주장한다면, 원문과 비교해서 덜한 것들도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조재룡은 같은 번역에 대한 비평에서 "단호하고 폭력적이고 단순한 남편은 […] [번역에서] 우유부단하고 고민에 휩싸인 남편이 된다"거나 "번역은 원문의 수동적인 아내에게 능동성을 부여하고, 원문의 폭력적인 남편에게는 인내심과 합리성을 선사한다고 평가하고, 이런 점을 번역이 "남성 중심주의 전반의 구조적 문제나 남성 편향적 가족 이데올로기의 폭력성, 직장의 위계와 권력의 횡포, 남성의 종속성과 비굴함 전반을 지워버리는 사례로 지적한다." 그렇다면 TheVegetarian은 채식주의자』에 비해 더 페미니스트적인가, 아닌가? 뭘 얻었고 뭘 잃었는지를 견주어서는 결론이 날 수가 없다. The Vegetarian 이 부정한 미녀로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원문에 대한 비교 우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작품 자체의 성취로 인정받아야 한다. - P150

영어권에서는 번역이 별로 필요 없는 반면, 그 밖의 다른 언어권에서는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려면 혹은 상을 받으려면 일단 영어로 번역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 의해서도 번역 관행의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미국 책을 들여올 때는 경쟁이 붙는 경우가 많고 한국 출판사는 을이된다. 원문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원저작권자에게 번역자 약력과 번역 샘플, 번역서 표지, 제목 등을 미리보여주고 허락을 받아야만 번역서를 출간할 수 있을 때도 있다. 반면 미국 출판사에서 한국 책을 수입할 때는 상당히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입맛에 맞게 바꿀 수도 있고 번역도자유롭게 할 수 있다.
또 얼마나 낯선가에 따라 길들이는 정도의 차이가 난다. 평균적인 한국 독자가 미국 문화에 친숙감을 느끼는 정도와 평균적인 미국 독자가 한국 문화에 친숙감을 느끼는 정도는 크게다르다. 거리가 있을수록 많이 길들이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중심에서 변방으로 갈 때는 충실성을 지키며 번역할 수 있지만, 변방에서 중심으로 갈 때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들어올 때까지 길들여야 하기도 한다. - P154

2020년에 김초엽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부터 나는 소설을 쓸 때 ‘그녀‘를 되도록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인칭대명사를 둘러싼 논쟁을 접하면서 예전처럼 아무 입장 없이 ‘그너‘를 쓰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김초엽 소설가가 고민하는 지점은 이런 것이다.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파생된 존재라는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 언어는 남성을 기본형으로 간주하고그것에 슬그머니 ‘여‘를 덧붙여 여성을 보편에서 배제한다. 물론 소설에서 흔히 쓰이는 ‘그‘와 ‘그녀‘도 그런 혐의에서 무결하지 않다." 
내가 어렸을 때 들은 유명한 난센스 문제가 있다.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즉사하고, 아들은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런데 호출을 받고 온 외과 의사가 아들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난 이환자 수술 못 합니다. 이 애는 내 아들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일어난 걸까? 출생의 비밀은 아니고, 너무나 당연한 답이지만, 의사는 환자의 어머니였다. 요즘 사람들은 쉽게 답을 떠올리고왜 이게 난센스 문제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는 의사는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고정관념의 허를 찌르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런 고정관념의 흔적이 ‘여의사, 여경, 여배우‘ 등에 남아 있다(‘남의사, 남경, 남배우‘가 얼마나 어색하게 들리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그/그녀‘를 유럽어에서 받아들여 쓰게 되었는 - P174

데, 이제는 서양에서도 남녀를 구분하는 대명사를 불편하게여긴다. 자신이 이분법적 성별 체계에 속하지 않는 논바이너리(non-binary)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면서 ‘he/she‘ 대신 ‘they‘를 삼인칭 복수 겸 단수 대명사로 쓰는 경향이 눈에 뜨인다. 경칭으로도 ‘Ms‘나 ‘Mr‘ 대신 ‘Mx‘를 붙이기도 한다.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이렇게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한 학생을 임의로 ‘he/she‘로 지칭하면 차별이 될수 있어서 늘 신경 쓰고 조심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는 한국어에 성별 구분 대명사가 본디 없었고지금도 미미한 지위밖에 지니지 못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국어에 성별 표지가 없어서 번역을 거치며성별 정보가 지워지기도 하고 그게 손실로 느껴질 때가 없는건 아니다. 내가 리베카 솔닛의 [해방자 신데렐라]]를 번역할때도 손실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다. 해방자 신데렐라는 리베카 솔닛이 전래 동화 [신데렐라]를 세심하게 다듬어 오늘날 시대감각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고쳐 쓴 그림책이다. 다시 쓴 이야기에도 신데렐라가 흘리고 간 구두를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왕자가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장면이 있다. 이구두 주인이 여기 있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차례로 이렇게대답한다. - P175

나는 글에도 편하고 자연스러운 구어체를 쓰는 
편을 더 좋아해서 웬만하면 삼인칭대명사는 잘 넣지 않는다. 물론 삼인칭대명사 없이 번역하기가 불가능한 글도 있고, 삼인칭대명사든 뭐든 동원해서 문어적 느낌을 살려주어야 하는 글도 있으니 삼인칭대명사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 같은 것은 없다. 또 성별을 나타내는 삼인칭대명사를 쓰지 않음으로써 사라지는 정보가 있음도 생각해야 한다.
번역이 아무리 자연스럽고 편안한 한국어를 추구한다고할지라도 번역문에는 번역의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그 흔적이 번역문의 미덕이 된다. 타자의 언어와 나의 언어가포개어지고 간섭이 일어날 때 아롱거리는 무늬가 언어에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는다. 나는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을 흉내내려 하는데 번역가를 흉내 내어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이런교환과 충돌을 통해 언어의 가능성이 최대로 이끌어내어지기도 한다. 내가 쓰는 언어에도 지금까지 내가 읽고 번역한 무수한 글들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타자의 텍스트를 씹고 삼키고 흔적도 남지 않게흡수해버리는 번역도 있다. 다음 장에서는 길들이다 못해 잡아먹어버리는 식인주의 번역(Cannibalist Translation)을 다룬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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