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빗속에서 길거리를 걸어가는 ‘노숙자‘는 그렇게 걷고 또 걸어도,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끝없이 얽히고설킨 길거리들뿐이었다. 아니면 어쩌다가 길모퉁이에서 경찰 두 명이 잡담을 하는 모습이나 경위나 경사가 부하들을 둘러보는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밤에 누가 집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모습이 보일 때도 있었지만, 아주 드문 일이었다. 누군가 어느 문으로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걸보고 가까이 가보면 웬 남자가 어두운 문 앞에 뻣뻣하게 서 있었다. 특별히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 험상궂은 달과구름은 양심의 가책에 잠 못 드는 악인처럼 이리저리 뒤척였다. 런던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강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모습 그 자체가 악인의 답답한 몸부림 같았다." 하지만 어쨌든 디킨스는 런던의 공동묘지를 좋아하고 런던의 "수줍어하는 동네들"을 좋아하고 "목가적 런던(ArcadianLondon, 사교계가 한꺼번에 시골로 떠나고 런던 전체가 무덤 같은 평화 속에 잠기는계절을 가리키는 디킨스의 엉뚱한 표현)"을 좋아했듯, 런던의 그 고독한 밤거리"도 좋아했다. - P301

 한편 도시에서 사람이 고독한 이유는 낯선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인 낯선 사람이 되어보는 일, 비밀을 간직한 채로 말없이 걸어가면서스쳐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을 비밀을 상상하는 일은 더없는 호사 중 하나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은 가능성들 앞에 열려 있다는 것은 도시생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고,가족의 기대, 공동체의 기대에서 벗어나게 된 사람들, 하위문화 실험, 정체성 실험을 시도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해방적 상태이기도 하다. 아울러관찰자의 상태(냉정한 상태, 대상에 거리를 둔 상태, 예민한 감각을 발휘하는 상태)이기도 하고, 성찰해야 하는 사람, 창작해야 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상태이기도 하다. 약간의 우울, 약간의 고독, 약간의 내성은 삶의 가장 세련된 재미에 속한다. - P302

얼마 전에 들은 라디오 방송에 가수 겸 시인 패티 스미스(PattiSmith)가 나왔다. 사회자가 무대 공연을 앞두고 무슨 준비를 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답했다. "두세 시간 동안 길거리를 배회합니다. 그 짧은 대답은 그녀의 무법자적 낭만주의와 함께 그녀에게 길거리 배회가 의미하는 바를 잘 요약하고 있다. 길거리 배회는 그녀의 감성을 더 터프하고 날카롭게 만들어주고, 배회자의 고요한 상념을 깨뜨릴 수 있을 만큼 격렬한 노래와 절실한 노랫말의 자양분인 고독의 베일로 그녀를 휘감아준다.
미국의 수많은 도시(호텔 건물을 나가면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을 나가면 6차선 도로가 있을 뿐 인도는 찾아볼 수 없는 도시)에서는 그런 식의 길거리 배회가 성공하기 어려웠겠지만, 그녀의 발언은 뉴요커로서의 발언이었다. 한편 버지니아 울프가 1930년 수필 「길거리 떠돌기(Street Haunting)」에서 익명성을 근사하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런더너로서의 발언이었다. 뛰 - P302

어난 등산가 레슬리 스티(Leslie Stephen)을 아버지로 둔 그녀는 언젠가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산이니 등산이니 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낭만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방에는등산지팡이와 아버지가 정복한 봉우리가 모두 표시되어 있는 입체 지도가 있었잖아요? 내가 런던과 습지를 제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랍니다."「길거리 떠돌기가 나왔을 당시의 런던은 디킨스가 밤 산책을 다니던 때보다 두 배 이상 커져 있었고, 길거리가 다시 한 번 피난처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울프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 그 사람을 답답하게 옥죈다는 것을 언급하고, 집에 놓여 있는 물건들이 "우리가 경험한 것들의 기억을 굳히는 방식" 을 언급한 후, 연필을 사러 길을 나섰다. 겨울 저녁이었고, 젊지 않은 여자에게 안전과 정숙은 더 이상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행로의 기록(혹은 상상)인 길거리 떠돌기는 도시를 걸어 다니는 일을다룬 위대한 수필 가운데 하나다. - P303

길거리로 나선다는 것에 대해 "4시에서 6시 사이의 상쾌한 저녁에집을 나설 때는 내 친구들이 나라고 여기는 나의 껍데기를 벗으면서 익명의 떠돌이들로 구성된 거대한 공화국 군대의 일원이 된다. 방에 혼자있다가 그렇게 그들과 함께 있게 되면 참 기분이 좋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인생 속으로 어느 정도는 들어가 볼수 있었다. 한 사람이 하나의 정신에 붙들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환상, 다만 몇 분간이나마 다른 사람들의 정신이나 육체를 빌릴 수 있다는 환상을 품어볼 수는 있을 만한 정도였다. 세탁부도 될 수 있었고 술집 주인도될 수 있었고 거리의악사도 될 수 있었다." 이 익명성에 대해. "각자의 영혼은 다른 영혼들과 다른 모양으로 존재하기 위해 굴 껍데기 같은 외피를 만들어내는데, 그꺼끌꺼끌한 외피가 깨져 없어지면굴알맹이 같은 - P303

"통찰만 남는다. 거대한 눈알이라고 할까. 한겨울의 길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드러나 있으면서도 가려져 있는 곳. 울프는 한때 드퀸시와 앤이 걸었던 옥스퍼드 스트리트를 걸어 내려갔다. 상점 창문으로 들여다보이는 화려한 상품을 가지고 상상 속의 집, 상상 속의 삶을 장식해보는가하면, 그런 집과 삶을 내던지고 다시 현실 속의 길로 걸어 나오기도 했다.
울프의 언어는 주관의 언어워즈워스 등이 만들어내고 드퀸시와 디킨스 등이 더욱 발전시킨 언어)였다. 울프의 상상을 자극하는 것은 덤불에서 부스럭거리는 새들, 상점에서 구두를 신어보는 난쟁이 여자 같은 아주 작은 사건들이었다. 상상이 걷는 길은 두 발이 걷는 길보다 멀리 뻗어 나갔기에 현실 속의 거리로 돌아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거리를 걷는 일은 이런 글을 통해 지금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워즈워스, 드퀸시, 디킨스 등에게는 괴로움의 상태였던 고독과 주관이 울프에게는 즐거움의상태였고, 울프에게 길거리를 걷는 일은 자신의 짐스러운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울프의 보행이 현대적 의미의 보행인 것은 그 때문이다. - P304

휘트먼의 시를 보면, 그가 행복하게 애인 품에 안겨 있는 사람으로나오는 대목도 많지만, 그런 시보다는 그렇게 자기를 안아줄 애인을 찾아서 혼자 길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니는 사람(게이 크루징의 선구자)으로 나오는 대목이 더 정말처럼 들린다. 풀잎』최종판에 실린 「먼 훗날의 기록관들이여(Recorders Ages Hence)」라는 꽤 거창한 시에서는 자기를 "대개 홀로 걸으면서 소중한 친구들, 소중한 애인들을 생각하던" 사람으로 기록해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더 뒤쪽에 실린 또 한 편의 시는 "잔치가 벌어지는 도시, 걸어갈 길이 있는 도시, 기쁨을 주는 것들이 있는 도시여."라는 돈호법으로 시작된다." 이 시에서 휘트먼은 한 도시를 반짝이게 할수 있는 모든 것(건물, 기선, 퍼레이드 등등)을 열거한 후, 이런 것들 대신 길을걷는 경험("내가 지나갈 때, 오 맨해튼이여, 나를 사랑하겠다는 눈빛으로 반짝 또 반짝 또 반짝하는 너의 눈동자들"을 택한다. - P306

잔치를 즐기는 것보다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기쁨이고, 약속이 지켜지는 것보다는 약속이 맺어지는 것이 기쁨이라는 뜻이다. 휘트먼은 수많은 것들을 열거하고 다양한 것들을 묘사하는 탁월한 목록 작성자였고, 최초로 군중을 사랑한 작가 중 하나였다. 군중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연애의 가능성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적 이상, 드넓게 퍼지는 활기의 표현이었다. 잔치가 벌어지는 도시(City of Orgies)」 뒤에 실린 시 가운데 어느 낯선 사람에게 (To aStranger)」가 있다. "거기 지나가는 낯선 사람이여! 내가 당신을 얼마나 그 - P306

혼자 걷는 도시
"그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지 당신은 모른다. 휘트먼에게 스쳐 지나가는사람의 눈빛과 친밀한 사랑은 익명의 군중과 그의 강력한 자아의 관계처럼 상보적이었다. 이렇듯 휘트먼의 시는 맨해튼이라는 점점 넓어지는메트로폴리스에 대한 찬양, 대도시의 크기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가능성들에 대한 찬양이었다.
휘트먼이 죽은 1892년은 모두가 뉴욕을 찬양하기 시작할 때였다. 파리가 19세기의 수도였다면, 뉴욕은 20세기 중반까지의 수도였던것 같다. 급진파와 재벌 총수가 똑같이 도시에 사활을 걸고 희망을 걸었던 시절, 뉴욕은 호화 여객선이 입항하고 이민자가 엘리스 섬으로 밀려들어오는 도시, 그야말로 최고의 현대 도시였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OKeeffe조차 뉴요커 시절에는 뉴욕의 마천루 그림을 안 그릴 수 없었다. 1920년대에는 뉴욕 사람들을 위한 《뉴요커>라는 잡지가 나왔다. 그중 타운 토크(Talk of the Town)」라는 수필란 (18세기에 런던에서 나온 <스펙데이터》와 《램블러>의 전통을 잇는 지면에서는 필자들이 엮은 길거리의 작은 사건들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 P307

긴즈버그가 샌프란시스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실제로 긴즈버그가 시인으로서의 목소리를 찾은 곳은 1950년대의 샌프란시스코와 버클리였다. 하지만 그는 뉴욕의 시인이었고, 그의 시에등장하는 도시들은 크고 무정한 대도시다. 백인 중간층이 도시생활을뒤로하고 교외로 몰려가던 그때, 긴즈버그와 그 시대의 시인들은 열렬한도심 애호가들이었다.(다만 소위 비트 작가들 다수가 샌프란시스코로 몰려왔다고는 해도, 그들 대부분은 시에서 자기네들이 걸어 다니는 길거리를 다루기보다는 좀더 개인적인 내용, 또는 좀 더 일반적인 내용을 다루었다. 그들에게 샌프란시스코라는도시는 아시아로 가는 관문, 또는 서부 풍경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긴즈버그의경우, 교외를 다룬 시가 없지는 않다. - P308

 "가까운 곳에 지하철이 있고, 음반 가게 같은, 사람들의 인생 유감이 진심이 아니라는 증거들이 있다. 그런 것이 없었다면 내가 풀잎 하나인들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불성실한 것일수록 믿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 저 구름은 저 모습그대로 관심의 대상이 되는데." 직장에 걸어가면서(Walking to Work)」라는 시는 이렇게 끝난다.


나는 길거리에녹아들고 있어.
당신은 누구를 사랑해?
나를?
빨간불인데 그냥 건널래."


역시 걸어가는 길을 그린 또 한 편의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속옷을 안 입고 다니는 일에 지치다가도
또 괜찮아져요
길을 걷다 보면
바람이 내 생식기로 살며시 불어와주니까" - P311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데서 입을 열어 말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 나중에 연필을 집어 들고 종이에 적어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장면들, 감정들이 풀려나왔다." "길거리에서 떨어져 나온 후"라는 표현은 길거리가 하나의 총체적 세계라는 점, 즉 길거리에 속한 사람들이 따로 있고, 길거리를 다스리는 법과 길거리에서 쓰이는 언어가 따로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트라우마를 낳은 집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은
"길거리"라는 집 밖 나라의 원주민이다.
오만과 편견이 거의 200년 전에 어느 시골 숙녀가 보행의 효용을기록한 깔끔한 연대기였다면, 칼들과 가까이 중 미국에서 퀴어로 산다는 것: 분열의 일기(Being Queer in America: A Journal of Disintegration)」라는 글은 1980년대 미국 도시에서 어느 퀴어 남자가 길거리의 효용을 기록한 『오만과 편견』 못지않게 깔끔한 연대기다. 보행은 우선 성애가 된 - P313

길거리에서다. "지금 내가 지나가는 복도의 창문은 느릿느릿 죽어가는 하늘을 몇 조각으로 깨뜨리고 있다. 그 애가 멀리 문 열 개 너머에서 갑자기 어느 문 안으로 들어간다. 조용한 바람이 따라 들어간다." 그도 그 방으로 따라들어가서 펠라치오한다. 왠지 모르지만 그가 전에 크루징하던 선창, 아니면 창고와 비슷한 방이다. 몇 페이지 뒤에서는 보행이 그의 친구이자에이즈로 죽은 사진작가 피터 후자(Peter Huiar)에 대한 애도가 된다. "그가 죽고 나서, 나는 길거리를 몇 시간씩 배회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차가 많아졌다. 몸뚱이들이 차도 가장자리에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었고,
문간의 개들은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들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빌딩 위의구름들에 녹색 테두리가 생기는 시간이었다. [……]  - P314

"풍경화였다가 숙소였다가" 발터 베냐민이 보행자의 파리 경험에 대해 쓴 구절이다. 도시를 연구하고 도시를 거니는 기술을 연구한 뛰어난 학자 중 하나인 베냐민은 파리의 매력에 이끌려 파리의 뒷골목들을 헤매는 신세로 전락한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이기도 했다. 파리라는 주제는 1940년에 세상을 떠난 그의 마지막 10년간의 모든 글 속에서 다른모든 주제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가 처음 파리를 여행한 1913년 이후로 그의 파리 여행 기간은 점점 길어졌고, 1920년대 말에 결국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 고향 베를린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펜 끝은 파리를향해서 걸었다. "도시에서 길을 잘못 찾는 일은 흥미로울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다. 길을 잘 모르기만 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도시를 헤매는 일, 마치 숲속을 헤매듯 도시를 헤매는 일에 필요한 훈련은 길을 찾는 일에 필요한 훈련과는 전혀 다르다. 도시를 헤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간판들, 도로의 이름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집들, 노점들, 술집들로부터 메시지를 듣는 방식은 숲속을 헤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자기 발에 밟힌 잔가지로부터,  - P318

 내게 이 배회의 기술을 가르쳐준 도시가 파리였다. 학창 시절의 공책 압지에 찍힌 미로 속에서 최초의 흔적을드러낸 나의 꿈을 실현해준 것도 파리였다." "그는 세기 전환기에 모범적 독일인 아이로 교육받은 결과 산과 숲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릴 때 사진 중에는 등산용 지팡이를 들고 알프스 산맥이 그려진 배경 앞에 서 있는 사진도 있고,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덕분에 슈바르츠발트나스위스로 긴 휴가를 다녀오는 일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의 사랑이 향하는 곳은 도시였다. 그의 도시 사랑은 자연 경외 따위의 케케묵은 낭만주의에 대한 거부이면서 동시에 모더니즘의 도시주의를 향한 열정이었다. - P319

베냐민에게 도시는 매혹적 구성물이었다. 연대기가 깔끔한 직선의시간적 구성물이라면, 도시는 배회하지 않고서는 지각할 수 없는 공간적 구성물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베를린 연대기에서 그는 자기의 인생이 지도나 미로 같은 것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적 구성물이 아닌 공간적 구성물이라고 하면서 그 깨달음을 얻은 곳이 파리의 한 카페라고 말한다. "파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곳의 담벼락과 강둑길, 포장도로, 박물관과 쓰레기, 창살과 광장, 아케이드와 노점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언어는 그토록 특별하기에 ----- 58 모스크바 일기는 그의 인생을 모스크바라는 도시에 대한 설명과 뒤섞은 글이고, 『일방통행로』는 도시를 흉내 내는 형식의 책이다. 이 책은 「주유소」, 「건설 현장」, 「멕시코 대사관,「최고급 가구가 딸린 방 열칸짜리 집」, 「중국 골동품」 등 도시의 특정한장소나 안내문을 연상시키는 소제목의 짤막한 구절들을 이어 붙인 전복적 몽타주다. 이야기 한 편이 쭉 이어진 길 하나라면, 일방통행로』의 짧은 이야기들은 뒤엉킨 골목길들이다. - P319

베냐민 자신부터가 뛰어난 배회자였다. 베냐민의 친구 하나는 그가 어떻게 걸었는지를 말해준다. "그 사람이 머리를 치켜세우고 걷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걸음걸이,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더듬어 나가는 듯한 걸음걸이였다. 근시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근시가 심한 베냐민과 근시가 더 심한 또 한 명의 망명자 제임스 조이스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조이스는 파리에 1920년부터 1940년까지 살았다. 더블린 거리를 배회하는한 유대인에 대한 막연한 정보로 점철된 다층적 소설을 쓴 가톨릭 망명자 조이스와, 파리 거리를 거닐고 또 시로 쓴 가톨릭 신자(샤를 보들레르)에 관한 서정적 역사를 기록하면서 파리 거리를 배회하는 베를린 출신유대인 망명자 베냐민 사이에는 모종의 대칭이 존재한다.  - P320

조이스는 생전에 최고의 명성을 얻었지만, 베냐민은 그 명성을 한참 나중에야 얻게 된다. 독일에서 그의 작업을 재발견한 것은 1960년대와 1970년대였고, 영어권에서는 더 나중이었다. 지금 그는 문화연구의 수호성인으로 자리 잡았고, 그의 글은 지금까지 수백 권이 넘는 논문과 저서를 낳고 있다. 베냐민을 해석하는 글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것은 그의 글이 혼종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베냐민의 글은 주제 면에서는 학술적이지만 아름다운 아포리즘과 창조적 비약으로 가득하고, 정의를 내리는 연구가 아니라 영감을불러일으키는 연구다. 그중 특히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파리에 관한 연구였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베냐민이 책을 쓰기 위해 작성한 방대한 분량의 인용과 메모다. 보들레르, 파리, 파리의 아케이드, 플라뇌르(Hâneur)라는 일련의 주제를 다루었을 연구였다. 파리를 "19세기의 수도"
라고 부른 사람이 바로 베냐민이고, 플라뇌르를 20세기 말의 학문적 주제로 만든 사람도 바로 베냐민이다. - P320

베냐민에게 처음 아케이드에 관심을 갖게 해준 작가, 보행을 문화적 행위로 성좌(星座)화할 가능성을 포착하게 해준 작가는 보들레르가 아니라 베냐민의 동시대인들이었다. 같은 베를린 출신이자 친구였던 프란츠헤셀(Franz Hessel)과 초현실주의 작가 루이 아라공(Louis Aragon)이 그들이다. 아라공의 『파리의 농부(Paysan de Paris)』(1926)를 읽고 너무 흥이 났던 베냐민은 "저녁마다 침대에서 읽었는데, 두세 장 읽으면 책을 내려놔야 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더 읽어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노트가 처음 나온 것이 실은 그때였습니다. 헤셀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우정의 제일 멋진 부분을 길러나간 것은 베를린으로 돌아온 이후였습니다."  - P333

아라공의 『파리의 농부』는 1920년대 후반에 출간된초현실주의3대 저서 중 하나다. 나머지 둘은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의 『나자』와 필리프 수포(Philippe Soupault)의 『파리의 마지막밤들 (Les Dernières nuits deparis)』이다. 세 작품 모두 파리를 배회하는 남자를 일인칭으로 서술하고있고, 매우 구체적인 지명과 장소 묘사를 제시하고 있고, 창녀를 주요 목적지로 설정하고 있다. 초현실주의가 중시한 것은 꿈에 나온 것들, 무의식적·비(非)자의식적 정신의 자유 연상, 충격적 병치, 요행과 우연, 일상의 시적 가능성 등이었다. 도시를 배회하는 것은 이런 모든 것에 관여하는 이상적 방법이었다. 브르통도 그 점을 지적했다. "산책의 탁월한 동행이 되어주었던 아라공이 눈에 선하다. 그에게서는 파리에서 가장 재미없는 곳을 더없이 흥미진진한 곳으로 만드는 마술적이고 몽상적인 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이야기가 막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야기가 폭발하는 데는 길모퉁이 하나 도는 것, 아니면 상점 창문 한 번 보는 것만으로충분했다." - P334

베냐민은 자기를 가리켜 "악어 아가리를 지렛대로 비틀어 열고 거기 들어가 사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문학을 제일 좋아했고 거의 일평생을 프랑스 문학에 나오는 조연들처럼 배회하면서 살았다. 그를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바로 프랑스 문학인 것 같기도 하다. 파리를 탈출할 시기를 놓친 것이 프랑스 문학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말년에 제3제국의 어두운 그림자를 헤쳐 나가는 데는 프랑스 문학보다는 소년 모험소설이나 탐험일지 같은 것이 좀 더 유익하지 않았을까 싶다. 1939년9월에 전쟁이 발발했을 때 프랑스에 있던 다른 독일인들과 함께 검거된 - P339

그는 억류자로 분류되어 수용소가 있는 느베르까지 남쪽으로 150킬로미터가 훌쩍 넘는 길을 걸어가야 했다. 살이 찌고 심장에 병이 생긴 탓에파리의 길거리에서도 몇 분에 한 번씩 걸음을 멈추어야 했던 그는 수용소로 가는 길에 여러 번 정신을 잃기도 했지만, 세 달 가까이 되는 수용소 억류 기간 중에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다. 담배 몇 개비를 수업료로철학 강의를 열기도 했다. 국제펜클럽의 도움으로 석방되어 파리로 돌아온 후에는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이어나가면서 비자를 받고자 애썼다.
통렬하게 서정적인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를 쓴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나치의 프랑스 점령 후 남유럽으로 도망친 그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에스파냐의 포르트부까지 걸어갔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는 가파른 도주로였지만, 그는 무거운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원고가 그 안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사 급한 포도밭 구간에서는걸음을 옮기지 못할 만큼 지친 그를 동행자들이 부축해주어야 했다. 그의 동행자 중 하나였던 구를란트 부인이라는 여자에 따르면 "길을 아는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네 발로 기어서 넘은 구간도 있었다. - P340

에스파냐당국이 요구한 것은 프랑스 출국 비자였다. 베냐민의 친구들이 마지막순간에 마련해준 미국 입국 비자로는 통과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그 험난한 산길을 걸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기의 처지를비관한 베냐민은 에스파냐 국경에서 모르핀을 과다 복용했고, 1940년 9월 26일에 사망했다. 한나 아렌트가 쓴 글에 따르면 "그의 자살로 마음이 움직인 출입국관리 공무원들은 그의 동행자들이 포르투갈에 입국하는 것을 허가했다." 그의 서류 가방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같은 글에서 아렌트는 자기도 1960년대에 파리에 산 적이 있다고말했다. "파리에서 외국인이 고향 같은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파리라 - P340

는 도시 전체가 내 방 같기 때문이다. 집을 안락한 곳으로 만드는 방법이집을 그저 자고 먹고 일하는 곳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집에 마음을 붙이고 사는 것이듯, 도시에 마음을 붙이고 사는 방법은 아무 정처 없이, 아무목적 없이 도시를 마냥 걸어 다니는 것이다. 그러니 파리에서 체류를지탱해주는 것은 무수한 카페들이다. 길거리에는 그런 카페들이 줄지어늘어서 있고, 보행자들은 카페들 앞을 지나가면서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대도시 중에서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이제 파리뿐이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로부터 활기를 얻는 도시는 단연 파리다."내가 1970년대 말에 가출해서 파리로 왔을 때만 해도 (일부 파리 남자들의 하찮은 색욕과 무례를 무시한다면) 파리는 보행자의 천국이었다. 돈 없고 어렸던 나는 어디든 몇 시간씩 걸어 다녔고 박물관에 잘 들락거렸다. - P341

평일의 걷기는 혼자 걷기 (기껏해야 두어 명이 함께 걷기)이고, 보도 걷기이다. 평일의 큰길은 운송 공간이다. 기념일(역사적, 종교적 사건을 기리는 공휴일, 또는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만드는 특별한 날)의 걷기는 다 함께 걷기다. 그런 날의 큰길은 그날의 의미를 두 발로 다지는 공간이다. 걷기는 기도도될 수 있고 섹스도 될 수 있고 땅과의 교감도 될 수 있고 사색도 될 수 있으니, 그런 날의 걷기는 발언이 된다. 많은 역사가 시민의 발걸음으로 만들어졌다. 자기 도시를 걸어서 헤쳐 나가는 일은 정치적·문화적 신념의육체적 표현이자 비교적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적 표현 형태 중 하나다. 공동의 고지를 향해서 함께 걷는다는 의미에서는 행군이라고 할 수있지만, 행군하는 군인들은 개체성을 포기한 존재들인 반면, 행진하는시민들은 개체성을 간직하고 있다.  - P350

그로부터 몇 년 앞서 일어난 또 다른 반란에서도 광장이 무대가 되었다. ‘5월 광장의 어머니회‘의 무용담은 이 여자들이 경찰서와 정부청사 이곳저곳에서 서로를 알아보면서 시작됐다. 1987년에 정권을 장악한잔인한 군부 요원들에 의해 ‘실종‘당한 자식들을 찾아다녔지만 모두가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했다. 마게리트 구츠만 부바르(Marguerite GuzmånBouvard)에 따르면 "숨기기는 군부가 벌인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의특징이었다. [……] 아르헨티나에서는 정상화라는 허울 아래 유괴 사건들이 자행되었다. 항의는 불가능했고, 유괴당한 사람들의 가족조차도끔찍한 실상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112 대부분 교육받은 적이 거의 없고 정치적 경험도 전혀 없는 전업주부였던 여자들은 자기네가 그 비밀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대의를 위해 싸우면서 자기의 안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1977년 4월 31일, 열네 명의 어머니가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의 5월 광장으로 갔다. 1810년에 아르헨티나가 독립을 선언한 곳이었고, 후안 페론이 대중주의 연설들을 한 곳이었다. 나라의 심장 같은 광장이었다. 거기 앉아 있는 - P362

것은 불법 집회나 마찬가지라고 한 경찰이 소리쳤다. 그래서 그들은 광장한복판에 있는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걷기 시작했다.
군부가 최초의 전투에 패하고 5월 광장의 어머니회가 자기들의 정체성을 발견한 것은 바로 그때 그곳에서였다고 한 프랑스인은 말하기도했다. 그 광장이 그들에게 이름을 주었고, 금요일마다 광장을 걸은 일이그들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부바르에 따르면 "언젠가부터 그들은 그렇게 걷는 일을 행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자기들이 목적 없이 한곳을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걸어 나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금요일마다 걸었다. 5월 광장의 어머니회의 수가 점점 불어나면서 경찰은 상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대형경찰차에서 쏟아져 나온 경찰들이 폭언과 폭행을 퍼부으며 그들을 강제해산시켰다.  - P363

개들에게 공격당하고 곤봉으로 구타당하고 체포당하고심문당하면서도 그들은 또 나와서 또 걸었다. 그렇게 수년간 걸음으로써그들은 기억하면서 걷는다는 이 단순한 행동을 의례로, 나아가 역사로만들었다. 그리고 이 광장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행진하면서 그들은 실종된 아이의 사진을 정치 플래카드처럼 막대기에 붙이거나 목에 걸기도 했고, 아이의 이름과 실종된 날짜를 수놓은 흰 손수건을 머리에 쓰기도 했다. 수놓인 글자가 "살아 돌아와라(Aparición con Vida)"로 바뀐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그들과 함께 걸은 시인 마저리 아고신(Marjorie Agosin)에 따르면 "행진하는 동안에는 아이들과 아주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그들은내게 말했다.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망각이 허용되지 않는 이 광장에서는 기억이 원래의 의미를 회복한다." 국가의 트라우마를 행진으로 표출하는 이 여자들이 수년 동안 가장 공공연한 반체제 세력이었다. 1980년 - P363

대에 이르면 그들은 전국적 규모의 어머니 네트워크를 만들어낸다. 1981년, 그들은 첫 번째 인권의 날 기념 연례 24시간 행진을 시작했고, 아울러전국 곳곳의 종교 행렬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 무렵은 5월 광장의 어머니회의 행진이 큰 관심을 얻은 후였다. 5월 광장은 계엄 상황 속에서 중년여성들이 행진을 이어나가는 기이한 현상을 취재하러 온 외신 기자들로북적거렸다" 군사정권이 몰락한 1983년, 5월 광장의 어머니회는 새로선출된 대통령 취임식의 국빈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어머니들은 매주5월 광장의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걷는 일을 계속해나갔고, 그 전까지두려움 때문에 동참하지 못했던 수천 명이 어머니들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들은 매주 목요일에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 P364

하지만 영원히 영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라앉는다는 것은 혁명의 본질이다. 가라앉는 것은 실패하는 것과는 다르다. 혁명은 낡은 기성 제도들의 무지몽매함을 조명하고 새로운 가능성을계시하는 번갯불이다. 혁명의 빛을 받았던 것을 예전 그대로 바라보기란불가능하다.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모종의 절대적 자유, 혁명이 극에 달했을 때 내가 하는 행동과 내가 품는 희망 속에서만 생겨나는자유를 위해서다. 혁명으로 독재자를 몰아낸 경우도 있지만, 또 다른 독재자가 나타나서 인민을 협박하고 예속하는 다른 방법을 들여오는 경우도 있다. 혁명으로 모두가 투표권을 확보하기도 하고 식량과 정의를 아쉬운 대로 확보하기도 하지만, 그 후에는 다시 자동차들이 도로를 뒤덮고포스터는 자취를 감추고 혁명가들은 주부나 학생이나 청소부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내 마음은 다시 사사로워진다. - P369

1870년에 영국의 채텀에서 열아홉 살의 캐럴라인 와이버그는 선원과 산책을 나갔다. 산책은 이미 오래 전에 구애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산책은 돈이 안 들고, 연인들에게 공원에서든 광장에서든 큰길에서든 샛길에서든 부분적인 사적 공간을 마련해준다.(연인의 오솔길 같은 으슥한 곳은 완전한 사적 공간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행진은 한 집단이 연대를 확인하고조성하는 방법인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나란히 걷는다는 이 섬세한 행위는 두 사람이 감정적, 육체적으로 한 편이 되는 방법인 것 같다. 두 사람이 처음 한 쌍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그렇게 함께 저녁을 보내고 함께 거리를 지날 때, 그렇게 함께 세상을 누빌 때인 것 같다. 함께 걷는 행위,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는 다르면서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가장 비슷한 그 행위를 통해서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 필요나 대화를 피하게 해주는 다른 일에 열중할 필요도 없이 함께 있음을 한껏 누릴 수 있다.  - P3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런 의미에서 이런 문학은 이상향의 문학(근본적으로 잘못된 점이 없는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고, 따라서 주인공(건강하고 경제적 기반을 갖췄으며 매인 데가 없는 인물)이 가벼운 모험을 찾아 나설 수 있다. 이상향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자기 자신의 생각, 동료들의 성격,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주변 환경 정도다. 안타깝게도 이런 장거리 여행 전문 작가가 지루하지 않은 사유를 펼치는 경우는 별로 없고, 그 사람과 한블록을 함께 걷기가 지루하다면 그 사람이 6개월을 걸은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점이 멀리까지 걸어갔다는 사실뿐인 사람에게 걷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청해 듣는 것은 파이 먹기 대회에서 우승을 한 것이 유일한 이력인 사람에게 음식에 대한조언을 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양보다 질이다. 하지만 뮤어는 질도 뛰어나다.  - P208

자신을 둘러싼 자연계의 예리한 관찰자인 한편, 수시로 열광에빠지는 관찰자인 뮤어는 자기가 왜 걷는지에 대해 『멕시코 만까지 걸어서 1000마일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몸은 튼튼한데 돈은 없고, 내가 좋아하는 식물 연구를 실컷 하려면 걷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은 굳이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뮤어는 역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보행자 가운데 한 명이면서도 좀체 보행 그 자체를 주제로 삼지 않는다. 보행 수필과 자연 수필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자연 수필에서는 보행이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고 나온다고해도 기껏해야 배경, 즉 눈앞의 자연과 만나게 해준 수단일 뿐 주제로 다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육체과 영혼이 주변 환경 속으로 사라져 없어지는 것 같다고 할까. 다만 뮤어의 글에서는 뮤어의 육체가 다시 나타나는 때가 있다. 이상향 문학의 주인공이 누리는 행운이 고갈될 때, 돈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굶주릴 때, 그리고 나중에 중병에 걸렸을 때가 그 - P208

것이다. 소로의 보행 기록들은 보행 수필이라기보다는 자연 수필, 곧 자가를 둘러싼 자연과 그 속을 걷는 자기의 경험을 똑같이 과학적으로 관찰하는 종류의 글이다.
뮤어가 그렇게 걸은 지 17년이 지났을 때, 찰스 루미스(Charles F.Lammis)라는 또 한 명의 이십 대 청년이 더 먼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신시내티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미국의 떠돌이(TrampAlons the Continent)』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 걸어가? 기차 노선이 없는 것도 아니고, 풀만[Pullman, 안락한 설비가 갖춰진 특별 객차옮긴]도 많은데, 걸어갈 이유가 없잖아? 오하이오에서 캘리포니아까지 걸어가겠다는 나의 말에 정말 많은 친구들이 던진 질문이었다. 걷는 즐거움을 위한여행 중 기록상으로 가장 긴 이야기 앞에서 독자들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걷는 기쁨에 대한생각과 함께 친구들, 독자, 기록에 대한 생각이 있다는 뜻이다. - P209

하지만 그가 내놓는 대답은 좀 다르다. "내가 추구한 것은 시간이나 돈이 아니었다. 내가 추구한 것은 생명이었다. 그것은 건강 지상주의자가 추구하는한심한 생명이 아니라(나는 완벽하게 건강했고, 운동선수로서 체력이 단련돼 있다.), 좀 더 참된 의미의 생명, 좀 더 폭넓고 좋은 의미의 생명, 곧 사회의안타까운 장벽들을 넘어선 곳에서 완벽한 육체와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 느껴지는 그 용솟음치는 기쁨이었다. [………] 나는 미국인이지만 그때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잘 몰랐고, 잘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미국을 잘 모른다." 79쪽을 더 읽고 나면, 그가 잠시 동행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람은 긴 여행을 통틀어 내가 만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진짜 보행자였다. 그런 사람과 함께수 킬로미터를 걸으며 얼어붙은 길을 이야기로 녹이는 일에는 얼얼한 묘 - P209

정원에서 자연으로미가 있었다." 허풍이 심한 루미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터프함이 서부의 총잡이도 이기고 방울뱀도 이기고 눈보라도 이긴다. 심각한 트웨인풍(風) 농담은 불발로 끝날 때가 많다. 반면에 남부 사람들과 땅에 대한커다란 애정, 그리고 자기를 깎아내리는 일화들은 장점에 속한다.(그 당시만 해도 남부에 애정을 표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여하간 이 책이 터프함과 길 찾기 능력과 적응력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인 것은 분명한다. 북미의 장거리 도보 여행은 신사들의 도보 유람과는 완전히 달랐다. 잉글랜드에서하루 종일 걷는다면 술집이나 여관(요즘은 호스텔)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계속 걷는다면 오지 한복판에서 밤을 보낼 가능성이 높고,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정도는 고속도로와 적대적인 도심 등 잉글랜드와는 스케일이 다르게 꺼림칙한 공간들을 맞닥뜨릴 것이다. - P210

이런 장거리 도보 여행은 세 가지 동기의 결합인 듯하다. 장소의 자연적·사회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기록을 세우는 것. 아주 긴 여행은 일종의 순례로 여겨질 때가 많다. 달리 말하자면, 장거리 여행이 영적 발견이나 실리적 발견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자 일종의 믿음 내지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기능하는 것이다. 또 여행이 흔해지면서 여행 작가들이 더 극단적인 경험, 더 멀리 있는 장소를찾아 나서기도 했다. 그런 유형의 글을 보면, 여행한 사람보다는 여행 자체가 이례적이어야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전제를 내포한다.(버지니아 울프는 연필을 사러 나갔던 런던의 어느 날 밤에 대한 뛰어난 수필을 썼고, 제임스 조이스는 어느 땅딸막한 광고업자가 더블린의 길거리를 걸어 다닌 이야기로 20세기 최고의 소설을 썼지만 말이다.) 작가에게 장거리 도보 여행은 내러티브의 연속성을 마련하는 쉬운 방법이다. 내가 이 책 앞부분에서 말했듯 한 번 걸어가는 길이 한 편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면, 계속 걸어가는 일은 일관성 있는 - P210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아주 오래 걸어가는 길은 긴 책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요즘에 나오는 책들의 논리인데, 아주 틀린 논리는 아니다. 걸을 때는눈앞에 나타난 것들을 그냥 뛰어넘기보다 자세하게 관찰하게 되고, 많은일을 온몸으로 겪게 되고, 현지 사람들이나 장소들과 접촉하게 되기 때문이다.한편 걷는 일 자체에 온 힘을 쏟아붓는 탓에 주위 환경에는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도보 여행자도 있다. - P211

 "매일 30킬로미터씩 날마다 몇달을 걸어가다보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나중에 되돌아보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것들이 있다. 일례로 나는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일과 만났던 모든 사람을 세세하고 선명하게 기억했다. 내가 나눴던 모든 대화 엿들었던 모든단어 하나하나가 기억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유년 시절까지 기억났다. 이런 식으로 나는 과거의 사건들을 정서적인 거리를 두고 돌아볼 수있었다. 마치 이런 일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나는오래전에 죽은, 잊고 있었던 사람을 다시 발견하고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행복했다. 행복했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그녀는 우리를 철학자의 영역, 걷기를 다루는 수필가의 영역으로데려가며 걷기와 정신의 관계를 알려준다. 그녀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거의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극단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 P213

캠벨이 걷는 이유는 많은 경우 명분 있는 모금을 위해서였다. 그 점에서는 걷기 마라톤 참가자들과 비슷한 데가 있다.(캠벨이 스태프 인건비, 홍보비 등 종종 크게 불어나는 여행경비 마련을 위해서 명분을 물색한 것이라고 말할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하루에 80킬로미터를 걷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또 그렇게 걷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음습한 날씨에 황량한 도로를 날마다 그렇게 걸어서 오스트레일리아 아웃백을 도파한다는 것은 지독한 일이다. 그 일을 캠벨은 해냈다. 95일 만에 5000킬로미터 오스트레일리아 횡단에 성공한 것은 세계 신기록이었다. 그녀의 두 다리는 목표를 향해서 가차 없이 매진하지만, 그렇게 걸은 후에 남는 것은 걸었다는 사실밖에 없다. 아름다운 풍경도, 즐거움도 없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거의 없다. 12만8000킬로미터를 걸어가는 그녀의 목표는 자신을 옥죄는 고통을 두 발로 털어내고 자기 자신을찾는 것이지만, 그녀가 자기의 가치를 설파하는 대목들은 걱정스러우리만치 불투명하다.  - P216

캠벨은 우리에게 그냥 걷기만 하는 순수한 보행이 어떤 것인지를보여준다. 보행을 중요한 행위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불순함이다. 보행이 풍경, 생각, 만남과 불순하게 뒤섞일 때, 걸음을 옮기는 육체는 마음과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그럴 때 세상이 마음에 스며든다. 이런 책은 역설적으로 보행이라는 주제가 다른 주제로 미끄러지기쉽다는 것, 걷는 것 자체에 집중하면서 다른 것들을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걸어가는 사람의 성격, 걸어가면서 만난 사람들, 걸어갈 때 보이는 자연, 걸어가는 길에 해낸 일 등을 담고 있는 보행에 대한글은 다른 어떤 것에 대한 글일 때가 많다. 보행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는 글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을 걸어 다니는 이유들의 역사, 또한 구불구불 이어져온 200년의 역사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보행 수필과 여행 문학의 정전들로 구성되어 있다.  - P217

보행 문화가 이렇게 걸어왔다면, 우리 셋은 숲을 벗어나서 시내가흐르는 아름다운 고원들을 가로질렀다. 1968년에 시에라 클럽의 마지막등반 여행 몇 건을 이끈 것이 마이클과 발레리였다. 전설적인 등산가이자괴팍한 ‘산속의 노인‘ 노먼 클라이드(Norman Clyde)가 아직 참여하는시기였지만, 단체 캠핑과 단체 등산의 여파가 시에라 클럽을 곤혹스럽게만들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했다. 등반 여행 전통이 막을 내린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우리 셋이 모노 패스로 가는 길에 본 들꽃은 내가 그지점에서 500킬로미터 미만 거리에 있는 마린 헤드랜즈에서 3월에 보았던 것과 같은 종류였다. - P251

즐거움을 위해 걷는 일은 인간의 가능성을 구성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되었고, 그 가능성의 실현을 경험한 사람들 가운데 몇몇이 세상을 바꾸는 작업에 나섰다. 그 결과로 세상은 일종의 정원, 요컨대 모두가 출입할수 있는 담장 없는 정원이 되었다. 보행 단체들이 발로 그린 땅은 나라마 - P272

다 다른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다. 미국에는 곳곳에 조성된 국립공원들과 함께 광범위한 정치운동으로 만들어진 지형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지좋은 21개국으로 퍼져나가는 수백 개의 숙소와 함께, 각양각색의 환경주의 취향을 가진 50만 명 이상의 야외 애호가들이 만들어냈다. 영국의 지좋은 2만 2500킬로미터의 산길과 함께 지주를 대하는 공격적 태도로 이루어져 있다. 보행이 지금의 세상을 형성해온 세력 중 하나라고 할 때, 보행이라는 세력은 경제 세력에 맞서는 경우가 많았다. - P273

자유롭게 걸을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또 있었다. 이 장에서는 오직 자연과 시골 공간을 위해 싸운 사람들을 주로 다루었지만,도심의 공원 조성과 관련해서도 풍요로운 역사가 있다. 예컨대 센트럴 파크는 뉴욕을 떠날 만한 여유가 없는 도심 주민에게 전원의 미덕을 선사한다는 민주적·낭만적 기획이었다. 한편 자유로운 육체는 자유로운 시간이나 자유롭게 걸을 장소에 비해서 미묘한 주제다. 초창기 시에라 클럽에서 샤프롱을 동반하지 않은 여자들이 반바지를 입고 등산을 하거나 솔가지를 모아 침대로 삼았듯, 캘리포니아에서는 육체의 자유를 위해 걸었다기보다 걸음으로써 육체가 자유로워졌다. 의복이 여자를 얕은 호흡, 좁 - P273

은 보폭, 불안정한 균형이라는 예의범절 안에 가두어두는 감옥의 역할을하는 빅토리아 시대였기 때문이다. 또 초창기 독일과 오스트리아 야외활동 단체들의 나체주의에서도 알 수 있듯, 어떤 사람들에게는 산에 가는 일이 에로스를 포함한 자연스러움 전체를 받아들이는 포괄적 기획의일부였다. 나체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옷은 몸이 드러나는 편한 반바지였다. 한편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활보할 권리를 위해 투쟁했는지는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영국 노동자계급의상태를 읽어보기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공장 노동자들의육체에 기형과 질병을 초래할 정도로 처참한 생활환경과 노동환경을 고발한다. 요컨대 자연 속을 걷는 일은 중류층의 육체를 집과 사무실에 갇혀 있는 시대착오적 물건으로 변형시키는 환경, 노동자의 육체는 공장의기계 부품으로 변형시키는 환경에 대한 거부반응이었다.
자연으로 걸어 나간 이 역사가 시작하는 지점에서 루소와 워즈워스라는 두 작가는 사회적 자유와 자연에 대한 사랑을 연결시켰다. 이후의 보행 문화는 보이스카우트, 야외장비 산업 등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지만, 다행히도 루소와 워즈워스는 거기까지 내다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보행 단체들은 보행의 이상이 자연 속을 막힘없이 자유롭게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 이상을 심어주었다. - P274

오랫동안 뉴멕시코의 시골에서 살던 나에게는 샌프란시스코가 낯설게느껴졌다. 그해 봄의 풍요로움까지도 도회적으로 느껴졌다. 화려한 도시불빛의 유혹을 노래하는 모든 컨트리 음악을 그제야 비로소 이해할 수있었다. 5월의 향기로운 낮과 밤을 여기저기 걸어 다니면서 보냈다. 산책이 수많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문 밖을 나서기만 하면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전율하기도 했다. 모든건물 입구, 모든 가게 입구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출구인 듯했다. 다양한인생의 가능성이 압축돼 있는 곳, 다양함이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일본의 시, 멕시코의 역사, 러시아의 소설이 아무렇게나 꽂힐 수있는 책꽂이처럼, 내가 사는 도시의 건물들에는 선(禪) 연구소, 오순절교회, 문신 시술소, 채소 가게, 부리토 가게, 극장, 딤섬 가게가 들어차 있었다. 더없이 평범한 것들이 내게는 신기해 보였고, 길거리의 사람들은나의 삶과 아주 비슷하기도 하고 전혀 다르기도 한 삶의 단면들을 무수히 엿보게 해주었다. - P277

면서 바구니를 만들 만한 줄기가 있는지 살펴보듯이, 도시 보행자는 늦게까지 문을 여는 식료품 가게나 구두 수선 가게 같은 곳을 기억해둘 수도 있고, 먼 길을 돌아서 우체국에 들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시골 보행자는 흔히 전체 풍경, 전체적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되고 그때의 풍경은완만하게 변화하는 연속체로 펼쳐진다. 예컨대 멀리서 산을 바라보면서걷다가 그 산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나, 숲에서 나무가 듬성듬성해지다가 어느새 초원이 될 때의 풍경처럼 말이다. 반면 도시 보행자는 특정한 것들(기회들, 사람들, 필요한 물건들을 찾아다니게 되고 그때의 풍경은 급한 변화 속에 펼쳐진다. 물론 도시가 원시생활과 더 비슷하다는말에는 부정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인간이 아닌 포식자의 개체 수가 북아메리카에서는 급격히 감소했고 유럽에서는 아예 멸종했지만, 그런 지역에서도 도시 보행자는 인간 포식자가 나타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이 계속 (최소한 특정 시간과 특정 장소에서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 P282

고향으로 돌아와서 처음 몇 달 동안 모든 것에 너무 매료된 나는 산책 일기를 써나갔다. 그 멋진 여름의 어느 날, 나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일곱 시간 동안 거의 꼬박 책상 앞에 앉아 있었음을 갑자기 깨달음.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등은 굽고. 필모어 스트리트 위쪽 클레이 극장에 갈까 하고 집을 나옴. 가는 길에 브로더릭 스트리트에서 처음 보는 길 하나를 발견함. 임대주택 단지 근처인데, 예쁜 단층집들이 옛날 빅토리아 시대풍이었음. 너무 잘 아는 장소에서 모르는 장소가 튀어나올 때 언제나그렇듯 기분이 좋았음. 「각자의 고양이를 찾아서(Chacun cherche son chat)」라는 영화를 봄. 바스티유 광장 동네에서 혼자 사는 젊은 파리지엔느가사라진 고양이를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웃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 P282

이야기. 평범한 사건들,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관계들, 건물의 옥상들, 불분명하게 발음되는 속어들로 가득 극장을 나오니 들뜬 기분. 검은밤, 진주색 안개. 빠른 걸음으로 돌아오는 길. 일단 캘리포니아 스트리트를 따라 걸으면서 한 쌍의 남녀를 지나감. 여자는 평범, 남자는 고급 갈색양복 차림에 오다리. 한동안 다리에 부목을 댔었나. 그렇게 버스를 그냥보냄. 디비자데로 스트리트에서 또 그 버스를 그냥 보냄. 어느 골동품 가게 진열창 앞에서 걸음을 늦추고 커다란 꽃병을 구경함. 꽃병은 크림색,
꽃병에 그려진 중국 현자들은 파란색. 길을 좀 더 내려오다 보니 어느 가게 앞에서 머리가 벗겨진 중국 남자가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진열장 높이로 안아 올림. 가게 안에 있는 여자가 진열창 너머로 아이와 장난침, 내가 너무 웃어 보였는지 그 사람들이 당황함. 밤 산책의 인공적 조명과 자연적 어둠이 낮의 연속체를 연극 속 활인화, 비네트, 세트피스로 탈바꿈시키는 방식들. 가로등을 하나하나 지나가는 나의 그림자가 커졌다 작아졌다 할 때의 어두운 설렘. 길을 건너갈 때 신호등이 바뀌길래 차를 피하느라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달리다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단숨에 몇블록을 더 뛰어감. 더워지는 것이 단점. - P283

디비자데로 스트리트를 쭉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들, 문 연 곳들을주시(주류판매점, 담배 가게), 내가 사는 스트리트와 만남. 교차로에 서 있는데 젊은 흑인 남자(와치캡, 검은 옷)가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내려오길래 만약을 위해서 주위를 둘러봄. 무슨 편견 때문이 아니라 그가 빅토리아 여왕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나한테 질주해왔다면 신경이 쓰였을것 같음. 그는 내가 주춤주춤하는 것을 보더니 더없이 상냥한 청년의 목소리로 ‘쫓아온 거 아니고요, 약속에 늦어서.‘라고 말하면서 달려가고,
나는 ‘조심해서 가요.‘라고 말함. 그가 내가 가는 길로 앞서 가고 나도 생 - P283

각을 정리할 여유가 생겨서, ‘의심하는 사람같이 보였으면 미안한데, 너무 빨리 달려와서.‘라고 말함. 그가 웃고 나도 웃음. 그러고 나니까 최근에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마주쳤던 일들이 다 떠오름. 그냥 인사해오는 것을 보고 말썽을 일으키려는 줄로 오해할 뻔 했던 일들. 이제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게 된 데 뿌듯함을 느낌. 그러면서 고개를 들었는데 어느 건물 꼭대기 층 창문에 붙어 있는 만 레이 ((Man Ray)의 동정을살필 시간 (A Pheure de Pobservatoire: les Amoureux)」(해 지는 하늘에 길쭉한 붉은색 입술이 떠 있는 그림)의 포스터가 보임. 어젯밤인가 그젯밤에 시내 어느 다른 건물 창문에서 본 그림과 똑같음. 오늘밤에 본 그림이 더 큼. 오늘밤이 더 활기참, 「동정을 살필 시간을 두 번 보다니 신기함. 집에 오는 데 20분도 안걸림." - P284

길거리는 건물이 없는 빈 공간이다. 집 한 채는 빈 공간이라는 바다에 떠있는 섬이다. 도시보다 앞서 존재한 소읍은 그저 그 바다에 떠 있는 군도였다. 그러나 건물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군도는 육지가 되었고, 바다였던 빈 공간은 넓은 땅 사이로 흐르는 강, 운하, 개울이 되었다. 예전 사람들이 시골 땅이라는 바다를 아무렇게나 지나다녔다면, 이제 사람들은거리를 따라 지나다니게 되었다. 물길의 폭이 줄어들면 물살의 강도와속도가 늘어나듯, 빈 공간이었던 곳이 거리가 되면 보행자들의 흐름이방향과 세기를 갖게 된다. 대도시에서는 장소뿐 아니라 공간도 설계 대상이다. 실내에서 먹거나 자거나 신발을 만들거나 사랑을 하거나 음악을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걷거나 주변을 둘러보거나 공공장소에서 시간을보내는 것이 주요한 설계 목적이라는 뜻이다.  - P2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시대의 과학자들은자신의 조상이 아프리카인이라는 것도 싫었고, 뇌는 작으면서 두 다리로 서서 걸어 다닌 때가 있다는 증거, 즉 우리가 머리가 좋아진 게 진화의초기가 아니라 후기였으리라는 증거를 받아들이기도 싫었던 것이다. 인간의 머리뼈 하단에는 척수와 뇌를 연결하는 큰구멍 (foramen magnum)이있는데, 타웅 아이는 그 큰구멍이 원숭이처럼 뒤쪽에 있지 않고 지금 우리처럼 머리뼈 중간에 있다. 이러한 사실은 타웅 아이가 직립보행을 했으리라는 증거, 곧 머리가 척추에 매달려 있지 않고 척추 위에 세워져 있었으리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신 유인원의 머리뼈가대개 그렇듯이, 타운 아이의 머리뼈도 현대인이 보기에는 균형이 안 맞는 건물 같다. 예를 들면 눈썹과 턱의 돌출부에 해당하는 포치는 엄청나게 튀어나와 있고, 오늘날 뇌가 커진 공간에 해당하는 다락방은 아예 없다. 대부분의 초기 진화론자들은 보행, 생각, 창조와 같은 우리의 인간적 속성들이 같은 시기에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인간성의 한 부분만 갖고 있는 생물체를 상상하는 일이 어렵거나 불쾌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 P65

팻의 오두막집을 떠나는 날 아침, 나는 국립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출발 지점은 팻이 암벽등반을 가르치고 있는 곳이었고, 보행 속도는 더위나 갈증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갈 때 보이는 풍경과 올 때 보이는 풍경이 전혀 다르니까 가는 길에 수시로 뒤돌아보면서 오는 길에 보일 풍경을 미리 봐놓아야 한다. 나에게 이 말을 해준 사람은 팻이다. 팻에게 이말을 해준 사람은 팻의 아버지다. 암벽들이 돌섬이나 돌무더기처럼 촘촘하게 뭉텅이져 있는 그 헷갈리는 풍경 속에서는 과연 좋은 충고다. 각각의 암벽이 고층 건물만 하고, 실제로 고층 건물처럼 시야를 가로막는다. 다른 사막에서라면 길을 찾을 때 멀리 보이는 풍경에 의지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때그때 지형지물을 알아놓아야 한다. 아침 해를 왼쪽으로 두고 남쪽으로 향한 나는 큰길을 가로지르게 될 샛길로 들어섰다. 이샛길 한복판에서는 풀이 자라고 있었다. 작은 도마뱀들이 나를 피해 덤불로 푸드덕 뛰어들자 응달 곳곳에서 신록의 풀들이 바스락거렸다. 두세 - P80

주 전에 폭우가 쏟아진 후로 더욱 뾰족해진 풀잎들이었다. 남서쪽으로휘어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큰길로 이어질 샛길을 벗어나 길없는 거대한 사막을 느릿느릿 가로질렀다. 참으로 오랜만에 구속을 벗어난 느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을 맛보았다. 사막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걷다가 사유지에 길이 막힌 나는 둥그렇게 돌아가는 길로 들어섰다. 왔던 길은 아니지만 팻이 있던 암벽 뭉텅이로 이어지는 길일 것 같았다. 그러다가 길을 잃게 되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지평선에서산맥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굽잇길이었다. 어느새 아까 벗어났던 그샛길이 나타났다. 지난 며칠 동안 그 길로 지나간 이들의 희미한 발자국위로 내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나는 한 시간 전의 내가 지나갔던 흔적을 거꾸로 되짚어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다. - P81

보행의 시작에 아프리카, 진화, 필요가 있었다면, 보행의 끝에는 온갖 것이 있다. 보행이 보통 무언가를 찾으러 떠나는 행위라고 할 때, 순례라는보행은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찾으러 떠나는 행위다. 우리는 순례중이었다. 잣나무와 노간주나무 사이로 이어진 붉은 흙길에서는 석영 자갈과 운모 조각, 매미들이 17년의 시간을 보낼 땅속으로 들어가며 벗어놓은 허물이 한데 섞여 반짝거리고 있었다. 돌과 매미 허물로 포장된 이상한 길, 뉴멕시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화로우면서 누추한 길이었다.
그날은 ‘성(聖)금요일‘이었고, 우리는 치마요로 가는 길이었다. 그날의 치마요행(行) 크로스컨트리 모임의 여섯 명 중에서 나는 최연소 참가자이자유일한 외부인 참자가였다. 모임은 며칠 전, 나를 포함해서 몇 사람이 그레그에게 동행을 부탁하면서 결성되었다. 그중 두 명은 그레그의 암 생존자 모임 사람들 (측량기사와 간호사)였고, 한 명은 내 친구 메리델이 데려온 이웃사람 데이비드(목수)였다. - P82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이 점을 포착하고 있다. 마리아 공주는 자기 집 앞으로 지나가는 무수한 러시아 순례자들에게 먹을 것을내주면서 모종의 열망을 느낀다. "그녀는 순례자들에게 이야기를 청해들을 때가 많았다. 그들의 소박한 말투, 그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하지만 그녀의 귀에는 깊은 의미로 가득한 것처럼 들리는 그 말투에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했던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길을 나설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럴 때 이미 그녀는 누더기를 걸친 차림으로 보따리와 지팡이를 들고 흙먼지 자욱한 길을 걸어가는 자기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단 한 곳의 목적지를 향해 명료하고 검소하고 강렬하게 나아가는 고상한 은둔자의 삶을 상상한다. 순례자의 발걸음은 단순 명료함의 표현이자 목적의식의 표현이다.  - P91

낸시 프레이(NancyFrey)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의 긴 순례길에 대해 이렇게말한다. "순례자가 걷기 시작하는 순간 세계를 느끼는 방식 몇 가지가 한꺼번에 변하는데, 그 변화는 여정 내내 이어진다. 시간 감각이 바뀌고, 오감이 예민해지고, 자기 몸과 자기 몸을 둘러싼 자연경관에 대한 새로운인식이 생긴다. [......] 그것을 한 독일 청년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했다. ‘걷는 경험 속에서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사유가 된다. 자신으로부터도피하기란 불가능하다." 순례길에 나선다는 것은 가족 관계, 애착 관계, 지위, 의무와 같은자신의 복잡한 세속적 자리를 뒤로하고 일개 순례자로서 걸어간다는 뜻이다. 순례자들 사이에는 서열이 없다. 은총과 헌신의 서열이 있을 뿐이다. 터너 부부는 순례를 경계선 상태(liminality)라 말한다.  - P91

나는 몇 달 째 냉장고에 맷 헤론(Matt Heron)이 찍은 1965년 셀마 몽고메리 행진 사진을 붙여놓고 있다. 행진의 감동을 잘 보여주는 이 사진에서 행렬은 서너 명씩 한 줄 한 줄 안정적으로 이어지며 사진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여나간다. 사진 속의 사람들이 구름 낀 하늘 쪽으로높이 솟아 있는 것을 보면, 땅에 엎드려서 찍은 사진임을 알 수 있다. 사진속 사람들은 자신이 변화를 향해 걸어 나가고 있음을, 그러면서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 크게 내딛는 발걸음, 높이들어 올린 손, 자신 있는 자세는 역사와 마주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있다. 그들은 이 행진에서 역사를 견디는 대신 역사를 만들어내는방법을, 자신들의 힘을 가늠해보고 자유를 시험해보는 방법을 발견했다. 마틴 루서 킹의 우렁차고 호매한 연설에서 메아리치는 운명의 감각과 사명감이 사진의 움직임에 표현되어 있다. - P104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먼저 간 사람의 해석을받아들인다는 것, 학자나 탐정이나 순례자처럼 먼저 간 사람의 뒤를 밟는다는 것이다.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떤 중요한 일을 똑같이 따라한다는 것이다. 같은 공간을 같은 방식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같은 생각을 하는 방법, 같은 사람이 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따라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행동을 흉내내는 연기가 아니라, 그 누군가의 영혼을 닮기 위한 노력이다. 순례가 다른 모든 보행과 다른 점은 이렇게 반복과 모방을 강조한다는 데 있다. 신을 닮기란 불가능하지만, 신이 걸어간길을 똑같이 걸어가는 일은 가능하다. 예수가 인류의 실족(Fall)을 대속하는 과정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 발을 헛디디고 진땀을 흘리고 상처입고 세 번 넘어지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14처에서다. 하지만 이 14처가 어느 성당에서나, 아니, 아무 데서나 볼 수있는 일련의 그림이 되면서, 신도들이 따라가는 것은 이제 수난의 장소가 아니라 수난 이야기가 되었다. 성당에 그려진 14처는 신도들이 예루살렘으로 걸어 들어가는 통로,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속으로들어가는 통로이다. - P117

이렇듯 한 편의 이야기와 한 번의 여행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 이야기가 있는 글을 쓰는 일이 걷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도 그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은 상상의 영토에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일, 혹은 익숙한 길 위에서 새로운 면들을 가리켜 보이는 일이다. 글을 읽는 일은 저자라는 가이드를 따라가는 일이다. 우리가 그의 말에 항상 동의하거나 그를 항상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이드가 우리를 어딘가로데려다주리라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 내가 쓰는 모든 문장들이 한 줄로멀리까지 이어지면서 글이 곧 길이고 독서가 곧 여행임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실제로 계산을 해본 적도 있었는데, 실이 둘둘 말려 있는 실타래처럼 글이 빽빽이 차 있는 책을 한 줄로 쭉 풀면, 내가 쓴 책 한권의 길이는 6킬로미터가 넘는다). 펼치면서 읽는 중국 족자에는 이런 의미도 담겨 있지 않을까. 풍경과 이야기 사이의 융합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는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노랫길(songline)이다. 노래는 깊은 사막 한복판에서 길을 찾는 내비게이션이고, 사막 속 풍경은 노래 속 이야기를 떠 - P122

올리는 기억 증진 장치다. 한마디로, 노래는 지도요 풍경은 이야기다.
이야기가 여행이고 여행이 이야기인 것은 그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상징적 길을 비롯해서 모든 길이 이런 울림을 갖는 이유는 우리가인생 그 자체를 여행으로 그려보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란 어떤 것인지를 그려보기가 어려운 것처럼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영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려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을 공간상에 존재하는 물리적 대상에 비유하게 된다. 그렇게 대상과 물리적, 공간적 관계를 맺게 되면, 대상을 향해 나아가거나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시간을 공간으로 보게 되면,인생이라는 시간도 여행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살면서 실제로 여행을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 같은 것은 상관없다. 보행과 여행은 우리가 하는생각과 우리가 쓰는 언어에서 너무나 중요한 비유로 자리 잡은 탓에 이제는 그것이 비유라는 것을 깨닫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 P123

우리에게 할당된 시간, 혹은 삶 그 자체를 여행에 비유할 때 가장자주 떠오르는 이미지는 걷는 여행, 혹은 개인사의 풍경을 가로지르는순례자의 역정이다. 나 자신을 상상할 때 자주 떠오르는 이미지도 내가걸어가는 모습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이승을 걷는 것(walk the earth)‘이고, 직업은 ‘이승의 행보(walk of life)‘이고, 전문가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walking encyclopedia)‘이다. 구약성서는 은총을 받은 상태를 "하느님과함께 걸었다(he walked with God)"고 묘사한다. 걷는 사람, 즉 한곳에 머물 - P124

기보다 혼자 한 발 한발 앞으로 나가는 사람의 이미지는, 초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유인원이든 시골길을 어기적어기적 걸어 내려오는 사뮈엘베케트(Samuel Beckett)의 등장인물이든 인간의 의미를 강력하게 시사한다. 걷는다는 비유가 비유이기를 그칠 때는 우리가 실제로 걸을 때다. 삶이 여행이라면, 우리가 실제로 여행할 때 우리 삶은 실제의 삶(도착이 가능한 목표 지점, 확인이 가능한 진행 과정, 이해가 가능한 평가 결과가 수반되는 삶이된다. 비유가 행동과 하나가 된다고 할까. 미로를 걸으면서, 순례에 나서면서, 산을 오르면서, 어떤 분명하고 바람직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할당된 시간을 글자 그대로의 길(오감을 통해서 영적차원에 접근하는 길)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걸어가는 것, 여행하는 것이 살아가는 것의 중요한 비유라면, 모든 걷기와 모든 여행을 통해(그중에서도특히 십자가의 길과 미로를 통해) 우리는 모종의 상징 공간으로 걸어 들어갈수 있다. - P125

두 사람이 북부 잉글랜드의 페나인 산맥을 걸어서 넘었다는 것, 그리고그 전에도, 그 후로도 또 다른 여러 곳을 걸었다는 것은 참 특별한 일이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특별한 일이었는지를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걸어서 여행한 사람은 전에도 있었다. 더 먼 길도 있었고 더 험한 길도있었다. 영국 시골 지역에서 가장 험한 풍경들(산맥, 벼랑, 황야, 폭풍, 바다, 그리고 폭포)이 경탄의 대상이 된 것은 이 시인 남매가 태어나기 거의 30년전부터였다.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도 등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중이었다. 누군가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정인 몽블랑 정상에 처음 오른 것은 19세기가 시작되기 14년 전이었다. 많은 평자들은 워즈워스와 그의동행들이 보행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그 무엇으로 만들었고, 이로써수많은 일들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제1세대 낭만주의자들이 보행 그 자체를 위한 보행, 즉 자연 속을 걷는 즐거움의 계보를 만들었다는것, 이로써 문화적 행위로서의 보행과 예술적 경험으로서의 보행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 P137

보행의 역사는 이렇듯 보행의 공간을 만든 또 다른 역사 속에 감추어져 있다. 18세기 내내 보행의 공간은 점점 더 넓어졌고, 아울러 보행의 문화적 의미는 점점 더 커졌다. 또보행의 역사는 취향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난 역사를 반영하기도 한다. 격식에 맞는 것, 양식화된 것을 선호하는취향이 격식 없는 것, 자연 그대로의 것을 선호하는 취향으로 바뀐 것이다. 그 변화의 기원은 나태한 귀족계급과 그들의 건축에 일어난 변화라는 하찮은 역사에 불과하지만, 그 변화의 결과로 그 시대에 가장 전복적이면서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장소들과 관행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렇듯 보행 취향과 자연 취향이 트로이의 목마 같은 역할을 담당하면서, 많은 의미 있는 공간들이 민주화되기에 이르렀고, 20세기에는 귀족영지들을 에워싸고 있던 장벽들이 그야말로 허물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 P143

도보 여행 내내 냉대받는 기분을 느꼈던 독일인 여행자 모리츠는 사실노상에서 무수한 보행자들을 만났다. 그들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기는오늘날 그의 글을 읽는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그리니치에서 런던까지 걸어가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모리츠는 그들에 대해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런던의 세인트 제임시즈 공원에서 걷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겼다. "이 공원의 별볼일 없음을크게 상쇄해주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다.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날씨가 좋으면 사람들이 모여든다. 우리 나라에서는 한여름의 가장 멋진보행로라고 해도 사람들이 이 정도로 모여들지는 않는다. 이렇게 모여든사람들은 대부분 잘 차려입었고 잘생겼다. 그런 사람들과 자유롭게 한데 섞이는 짜릿한 기쁨을 나는 오늘 저녁 처음으로 경험했다."사실 이글에서 모리츠는 영국이 독일에 비해 보행, 특히 공공장소에서의 보행을더 품위 있는 취미로 간주한다는 걸 말하고 있다. - P155

『오만과 편견』의 어디를 보나 걷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주인공은걸을 수 없는 상황만 아니면 온갖 곳에서 걷는다. 이 책에서는 결정적 만남이 성사되거나 결정적 대화가 오가는 순간이 두 등장인물이 함께 걷는 동안일 때가 많다. 이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 점잖은 사람들(오스틴의 등장인물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걷는 일은 일상의 근간이었다. 잉글랜드에서 18세기 내내, 그리고 19세기 이후까지 보행은 특히 여자들에게 중요한 일상이었다. 도시 워즈워스가 1792년에 쓴 편지에 따르면
"그들은 시골 숙녀이기에, 보행이라는 시골 숙녀의 취미생활을 즐기는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보행은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남자들이 쓴 글을 보면, 정원을 설계하고 감상하는 내용이 많지만, 실제로정원을 걷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글은 대개 여자들이 쓴 편지나 소설이다. 아마도 여성들이 일상을 더 세밀하게 다루기 때문이기도 하고, 잉글랜드 여자들(특히 귀부인들)이 걷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때문이기도 하다. 『오만과 편견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이 자신의 - P160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시간 사이사이에 한 일은 다량의 독서, 편지 쓰기, 약간의 바느질, 그런대로 들어줄 만한 피아노 연주, 그리고 걷기였다.
소설이 시작되고 얼마 후, 제인 베넷이 말을 타고 구혼자 빙리 씨의저택이 있는 네더필드로 가면서 감기에 걸린다. 동생 엘리자베스는 언니를 간호하기 위해 네더필드까지 걸어간다. 걸어가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였기도 있지만(엘리자베스는 "말 타는 여자"가 아니고, 마차를 타고 가려면 두마리의 말이 필요한데 남은 말은 한 마리뿐이다.) 용감한 활기가 매력적인 여주인공답게 걷기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걸어가면 되잖아요.
가야 한다면 멀든 가깝든 상관없어요. 겨우 3마일인 걸요." 그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그녀의 비인습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첫 번째 신호다. 그녀는 그 거리를 걸어감으로써 자기 계급 여자들이 지켜야 할 예법을 위반한다. - P161

워즈워스라는 거대한 존재에 대해서 대부분의 다음 세대 시인들은 존경심과 적대감이 뒤섞인 감정을 가졌다. 그것은 토머스 드퀸시(Thomas DeQuincey)도 마찬가지였다. "두 다리에 일가견이 있는 모든 여성들이 그의두 다리에 신랄한 비난을 가했다. [……. 심하게 흉하게 생긴 것은 아닐뿐더러 평균치 인간의 다리에 비해서 많은 일을 해낸 다리였다. 믿을 만한자료를 토대로 계산해본 결과 워즈워스는 바로 이 다리로 28만2000~29만 킬로미터를 답파했다. 포도주나 독주 같은 것으로 혈기를 얻는 다른사람들과 달리 워즈워스는 이렇게 몸을 움직이면서 혈기를 얻었다. 워즈워스 자신이 구름 한점 없이 행복한 인생을 영위해온 것도, 우리 독자들이 워즈워스의 글 중에서도 아주 탁월한 글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것도그 덕분이다."38 사람들은 워즈워스 이전에도, 이후에도 걸었다. 다른 낭만주의 시인들 중에서도 걸어서 여행한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워즈워스만큼 걷는 일을 인생과 예술의 중심에 놓은 이는 그 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 P171

그의 보행을 이해하려면 쾌적한 장소를 잠시 거닌다는 뜻의 ‘산책‘개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동시에 낭만주의적 보행을 장거리 도보 여행이라고 규정하는 현대 저작물들의 또 다른 정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에게 보행은 여행하는 방법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법이었다. 스물한 살에 걸어서 3000킬로미터를 여행했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50년 동안은 시를 쓰기 위해 작은 정원 테라스를 왔다 갔다 했다. 그에게는 둘 다중요한 보행이었다. 파리와 런던의 길거리를 쏘다니고 산을 올라가는 것도, 여동생 혹은 친구들과 함께 거니는 것도 모두 중요한 보행이었다. 이모든 보행이 그의 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앞서 보행을 사유의 과정으로 창안한 철학적 작가들을 다룬 장이나, 뒤에서 대도시 보행의 역사를다룰 장에서 그의 보행을 함께 다룰 수도 있었지만, 워즈워스 자신은 보행을 전적으로 새롭고 강력한 방식으로 자연, 시, 가난, 부랑과 연결 지었다. 도시보다 시골에 훨씬 가치를 두었음은 물론이다. - P172

 이 시가 그 모든 이탈과 우회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걷는 사람의 이미지가 되풀이되는 덕이다. 이 시의 독자는 워즈워스를 천로역정』의 크리스천 같기도 하고 「신곡」의 단테 같기도 한 형상, 다시 말해 두 발로 걸어서 온 세상을 여행하는 작은 형상으로 그려보게 된다. 단, 시에 나오는세상은 호수들, 춤들, 꿈들, 책들, 우정들, 그리고 많고 많은 장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서곡은 한 시인이 성장하기까지 어떤 곳을 거쳐 갔는가(이 도시는 어떤 역할을 했나, 저 산은 어떤 역할을 했나.)를 보여주는 지도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 이 시에서는 장소가 사람보다 중요하게 등장한다. 드퀸시가 워즈워스의 두 다리에 존경 어린 독설을 던졌듯, 수필가 월리엄 해즐릿(William Hazlitt)도 비슷한 어조의 재담을 던졌다. "그의 눈에보인 것은 우주, 그리고 자기 자신뿐이었다. - P174

워즈워스는 이렇게 길을 걷고, 이런 사람들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문체를 찾아나갔다. 그가 아주 초기에 쓴 시들은 고고하고 애매모호하면서 관습적 이미지들이 가득하다는 점에서 톰슨의 『사계절 양식인 데 비해, 그 후 혁명적 열정, 가난한 사람들과의 공감적 동일시가 생겨나면서 그런 이류 풍경 시인의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도러시의 글이 존슨 박사(Samuel Johnson)나 제인 오스틴 같은 심오한 아포리즘을 벗어나 묘사의 생생함과 현실성을 얻으면서, 비슷하게 변한 것도 1790년대 10년동안이었다.) 소재와 문체 둘 다 변화했다. 워즈워스가 서정 가요집 (LyricalBelds)』 (워즈워스와 콜리지가 1789년에 함께 낸 획기적 시집)을 되돌아보면서 쓴서문에 따르면, "요컨대 이 시들을 쓸 때 중요시했던 원칙은 서민 생활에서 펼쳐지는 사건이나 장면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 서민들이 실제로 쓰는 언어를 선별해 사건은 최대한 철저히 서술하고 장면은 최대한 철저히묘사해야 한다는 것, - P181

그러면서도 그 서술과 묘사에 상상의 빛깔을 가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미천하고 조야한 이들의 삶을 주로 택했던이유는 그런 상태에 있을 때라야 근원적 희로애락이 더 나은 토양에서[......] 더 소박하고 더 강력한 언어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그는 풍경에 대해서 말할 때 거창하게 일반화하거나 고전을 인유하는 대신 구체적으로 묘사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할 때도 그들이 우화 속의 등장인물인 양 미덕과 연민을 설교하는 대신 그들의 현실을 그려 보이고자 했다. 그가 더 소박한 언어를 택한 것은 정치적 행동이었고, 바로이 정치적 행동이 스펙터클한 예술적 결실로 이어졌다. - P181

워즈워스에게 보행은 시의 주제이기도 했지만, 시를 쓰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 방식이란 주로 걸으면서 소리내어 이야기하는 것이었던 듯하다. 같이 걷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이야기했고, 혼자 걸을 때는혼잣말을 했다. 그것 때문에 종종 우스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 그래스미어에 사는 사람들이 그를 좀 이상하게 보기도 했다. "딴 사람들한테는말을 많이 안 했는데 혼자서 그렇게 말을 많이 했더라고. 입모양을 보면알지. "머리는 앞으로 내밀고 두 손은 뒤로 하는 거야. 그 자세로 슬슬걷는 거야. 걷다가 걷다가 또 걷더니 딱 서는 거야. 그러고는 또 걷다가 걷다가 길 끝까지 쭉 걸어가는 거야. 그러더니 어디 앉아서 종이를 꺼내 뭘쓰는 거야."『서곡』에서 그는 자기가 데리고 다니는 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걸어갈 때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면 개가 그에게 입을 다물라는신호를 보내서 그가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는 것을 막아준다는 이야기이다.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였던 워즈워스는 예전에 보았던 장면의 시각적 디테일과 감정적 생생함을 그릴 수 있었고, 자기가 존경하는 시인들의긴 시구를 인용하거나, 걸으면서 머릿속으로 쓴 시를 나중에 글로 옮길수 있었다.  - P1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솔닛의 글쓰기를 훔치고 싶었다. 현장에서 길어 올린 용감한 언어, 오래들여다본 자의 통찰, 성실함으로 쌓아올린 단단한 지성, 행간마다 일몰처럼 번지는 수려한 감성으로 빚어낸 글에 나는 매번 압도당했다. 걷기의 인문학』을 읽고 나니, 그 비결이 조금은 짐작된다. "몸을 통해 세계를인식하고 세계를 통해 몸을 인식"하는 걷기가 그 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직 몸으로 밀고 나가는, 걷기라는 곡진한 행위는 어떤 사람을 환경운동가로, 철학자로, 페미니스트로, 예술가로, 명상가로 만들어줄 수 있음을 이 팽창하는 텍스트는 증명한다. 그것을 증명하면서 솔닛은 그 모든 존재가 된다.
이 책은 때로 척척하고 울퉁불퉁한 길로 이끈다. 친절하거나 익숙하지 않다. 이대로 걷다 보면 어디가 나올지 힌트를 주지 않고 그렇기에‘우연한 발견‘이라는 기쁨을 선사한다. 이 얼마나 고마운가. 자신을 ‘다른자리‘에 데려다놓는 사람을 만나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음을 알기에, 나는 솔닛의 지적 여정에,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잡는 걷기에 기꺼이 함께할작정이다."
-은유(작가)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바라볼 때가 있다. 봉우리나 지평선과 같은 곳을 바로 내가 걷고 있을 때다. 아무리 높고 멀리 있다 해도 걸어가는 한,바라볼 수밖에 없다. 덕분에 걷는 일은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학적으로 걸어왔다. 그들의 걸음 덕분에 이 세계는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오게 됐다. 리베카 솔닛이 말하는 걷기란 바로 그처럼 이 세계를 좀 더 높고, 먼 곳으로 보내는 일, 즉 ‘진보‘를 뜻한다. 이 책에서 소개한 걷기의 달인들, 그러니까 장 자크 루소, 워즈워스 남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개리 스나이더, 존 무어, 발터 베냐민 등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모두, 진보주의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걸어간 길의 끝에서 인류는 다시 걸음을내딛는다.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은 인종과 남녀의 차별을 메우기 위해걷고 있다. 걷기의 역사를 말하는 리베카 솔닛의 목소리에서 희망의역사를 듣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김연수(소설가)

"요리를 예찬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보라. 그럼 당신이 누군지 말해주겠다‘는 문장을 믿지만, 걷기를 예찬하는 리베카 솔닛은 아마도 ‘당신이 어디를 걸었는지 말해보라. 그럼 당신이 누군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에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멋진 무기가 있음을 깨닫는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걸으면서 나 아닌 다른 것과의 소통을 꿈꾸는 나, 걸으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걸음으로써 걷기 전과는 분명 달라진 나. 리베카 솔닛은 이책을 통해 눈부시게 증언한다. 더 많이, 더 오래, 더 깊이 생각하며 걸을때마다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인간의 힘을."
-정여울(작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힘의 경험


지난해 한국사람들이 부정한 정권에 맞서 뭉치는 모습은 감동적이고 경이로웠습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습니다. 공적 공간으로 걸어 나오는 비무장 시민들이 엄청난 힘이라는 것, 때로 자치의 힘이기도 하고 때로 압제 정권, 불량정권을 막아내는 힘이기도 하다는 것은 이 책의 주제 중 하나입니다. 혁명을생각할 때 흔히 폭력, 군대 등을 떠올리지만, 많은 중요한 일을 해내는 것은 사실 폭력이 아니라, 군대나 군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시민사회입니다. 사람들의 의지에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공적으로 가시화될 때, 우리가 함께 모일 때 발휘됩니다.
의지에 내재된 힘을 발휘하는 데는 일상의 경험을 통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길을 걸으면서 자기 몸의 힘을 느끼는 경험, 집 밖에서 집처럼 편하게느끼는 경험, 스스로를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고 느끼는 경험, 낯선 사람들과 공존하는 경험입니다.
21세기 들어 우리는 이 힘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떨쳐 일어나는
- P9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네팔, 튀니지, 이집트, 폴란드, 아이슬란드,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에서 비무장의 시민들이 하나로 뭉쳐 정권에 맞섰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추상적으로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저투표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종종 일종의 경험입니다. 공적 공간에서 육체적으로 한데 모이는 경험, 눈으로 확인하는 경험,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경험, 목표에 도달할때까지 걸어가는 경험입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아름다운 힘의 경험입니다. 정의와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힘이반세계화 운동에서 최근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펼쳐지는 나라에서 이 책이 출간된다는 사실을 저자로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 P10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거의 20년 전입니다. 이 책이 담고있는 보행의 여러 가지 기쁨과 성과와 의미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도 거의 그대로통할 듯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도시와 시골의 모든 열린 공간에서 자유롭게 걸을 가능성, 그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점점 사적 공간에 틀어박히고, 점점 몸을 망각하고, 실리콘밸리가만들어낸 컴퓨터, 스마트폰, 온라인 기반의 여가 활동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됩니다.
나는 이 책에서 이런 현상이 지나치게 과도해질 때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삶의 기쁨, 삶의 역동, 그리고 그 밖의 삶의 중요한 것들에 대해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정신과 육체, 내면의 성찰과 사회의 결성,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도시와 시골, 개인과 집단. 이 양쪽은 대립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대립하는 듯한 두 항이 이 책에서는 보행을 통해하나로 연결됩니다.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 P10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2017년 8월
리베카 솔닛 - P11

어디에서 시작할까? 근육이 긴장한다. 한쪽 다리가 기둥처럼 땅과 하늘사이에서 몸을 지탱한다. 다른 쪽 다리가 뒤에서 휙 옮겨 온다. 발바닥이바닥에 닿는다. 몸무게가 앞쪽 발볼로 쏠린다. 엄지발가락이 바닥을 밀어내면, 몸무게는 또 한 번 미묘한 균형을 찾아간다. 두 다리가 위치를 바꾼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이 이어지면서, 탁, 탁,탁, 탁, 보행의 리듬이 생긴다. 더없이 자명하면서도 더없이 모호한 이 보행이라는 주제는 어느새 슬며시 종교, 철학, 풍경, 도시 정책, 해부학, 알레고리, 그리고 애통함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보행의 역사는 글로 쓰이지 않은 은밀한 역사다. 노래의 작은 패시지, 노상의 작은 패시지, 인생사의 작은 패시지, 그리고 책 속의 작은 패시지에서 그 역사의 편린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육체적 보행의 역사는 직립보행과 인체 해부의 역사다. 대부분 보행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데 필요한 대수롭지 않은 이동 수단으로서의 실용적 행동일 뿐이다. - P17

걸었기에 골목과 도로와 무역로가 뚫린 것이고, 걸었기에 현지의 공간 감각과 대륙 횡단의 공간 감각이 생겨난 것이고, 걸었기에 도시들, 공원들이 만들어진 것이고, 걸었기에 지도와 여행안내서와 여행 장비가 생긴 것이다. 멀리까지 걸어갔으니 걷는 이야기책들과 시들이 쓰인 것이며, 순례와 등산과 배회와 소풍을 기록한 방대한 분량의 책들이 쓰인 것이다. 역사의 풍경에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우리를 역사의 현장으로 돌려보내주는 것은 바로 그 이야기다.
걷기가 아마추어적 행동이듯 걷기의 역사는 아마추어적 역사다.
걸음의 비유를 쓰자면, 걷기의 역사는 허락 없이 남의 땅(해부학, 인류학,건축, 조경, 지리, 정치사와 문화사, 문학, 섹슈얼리티, 종교 연구)에 걸어 들어가지만 그중 어느 땅에도 머물지 않고 계속 먼 길을 걸어간다. 전문 영역이라는 땅을 진짜 땅(기름지게 경작되어 특정 농작물을 산출하는 반듯한 사각형의 농지)에 비유하면, 걷기라는 주제는 경계가 따로 없다는 점에서 진짜 걷기와 비슷하다. 걷기의 역사는 모든 땅의 일부이자 모두의 경험의 일부라는 점에서 무한한 역사다. - P18

걷기의 역사는 모두의 역사이며, 누가 쓰든 자기가 잘 다니는 길에 관해 쓸 수밖에 없다. 내가 따라가는 길이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느 봄날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걷기에 대한 글을 쓰려다가 말고다시 일어섰다. 책상 앞에서는 큰 생각을 할 수 없으니까 밖으로 나간 나는 골짜기 언덕을 올라 능선을 따라 걷다가 태평양 쪽으로 내려갔다. 버려진 군사기지가 드문드문 박혀 있는 골든게이트 북쪽 곳이었다. 유난히 습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 있었다. 언덕에는 내가 매년 잊었다가매년 다시 마주치는 기세등등한 풀빛이 가득했다. 비를 맞고 황금색에서흐린 회색으로 탈색된 작년의 풀들이 그 신록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활기찬 새 봄에 어울리는 색은 아니었다.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이 대륙의 반대편에서 나보다 훨씬 더 활기차게 걸으면서 그곳 길에대해 썼다. "완전히 새로운 전망을 발견하는 것은 큰 행복이다. 지금도 나는 이 행복을 언제라도 맛볼 수 있다. 두세 시간의 오후 산책은 언제나 나를 낯선 나라로, 내가 평생 가볼 수 있는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낯선 나라로 데려다준다. 처음 가본 외딴 농가 하나가 다호메이 왕국의 모든 영지를 합한 만큼이나 좋을 때가 있다. 반경 10마일, 즉 오후 산책 한 번의거리 안에 있는 풍경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과 70년이라는 사람의 한평 - P19

생 사이에는 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걷는 길도 도로와 샛길을 합쳐서 구불구불 얼추 10킬로미터가 된다. 나는 힘들었던 10년 전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 불안이떨쳐질까 해서였다. 그 후로도 나는 자꾸 이 길로 돌아왔다. 일을 쉬기 위해서일 때도 있었고 일을 하기 위해서일 때도 있었다. 생산 지향적 문화에서는 대개 생각하는 일을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아무일도 안 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 일도 안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무슨 일을 하는 척하는 것이고,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것이다. 인간의 의도적 행위 중에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숨을 쉬는 것, 심장이 뛰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보행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 P20

내 주위로 검은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기도 하고, 날개를 파닥거리기도 했다. 검은 나비들을 보니 또 옛날 어느 때가 떠올랐다. 장소를 넘나들다 보면, 시간을 넘나드는 일이 더 쉬워지는 것 같다. 계획에서 추억으로 넘어가고, 거기서 또 관찰로 넘어가고.
보행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가는 일은 생각 속을 지나가는 일의 메아리이면서 자극제이다. 마음의 보행과 두 발의 보행이 묘하게 어우러진다고 할까. 마음은 풍경이고, 보행은 마음의풍경을 지나는 방법이라고 할까.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마음이 지나는풍경의 한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일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어딘가를 지나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보행의 역사가 생각의 역사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두 발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가능하잖은가 말이다. 걷는 일은 곧 보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 P21

보면서 동시에 본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이미 알고 있는것 속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느긋한 관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색하는 사람에게 걷는 일이 특별히 유용한 이유도 그 때문일것이다. 여행의 경이와 해방과 정화를 얻자면, 세계를 한 바퀴 돌아도 좋겠지만 한블록을 걸어갔다 와도 좋다. 걷는다면 먼 여행도 좋고 가까운 여행도 좋다. 아니, 여행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제자리를 건는 것도 가능하고, 좌석벨트에 묶인 채 전 세계를 도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보행의 욕구를 만족시키자면 자동차나 배, 비행기의 움직임으로는부족하다. 몸 자체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마음속에서 일이 일어나려면 몸의 움직임과 눈의 볼거리가 필요하다. 걷는 일이 모호한 일이면서 동시에 무한히 풍부한 일인 것은 그 때문이다. 보행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며, 여행인 동시에 목적지다. - P21

걷는 사람에게는 모든 곳이 연결돼 있다. 걷는 사람이 실내와실내 사이의 공간을 점하는 방식은 실내에 있는 사람이 실내를 점하는방식과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은 세계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이런저런 실내가 아니라, 그런 실내들을 모두 포함하는 세계 그 자체다.
샛길은 오르막으로 휘면서 끝났고, 거기서부터는 유도미사일 발사장으로 올라가는 군용도로였다. 샛길을 벗어나 도로를 밟으면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보인다. 일본까지 이어지는 바다. 이렇게 샛길과 도로의 경계를 넘어서 바다를 마주할 때마다 기쁨의 충격이 나를 엄습한다. 아주맑은 날은 은박지처럼 빛나고, 흐린 날은 녹색이 되고, 비가 많이 오는 겨울에는 강의 상류에서 흘러내려오는 흙탕물 때문에 갈색이 되고, 비가갠 날은 유백색이 섞인 청색이 되는 바다. 다만 안개가 자욱한 날은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날 바다의 변화를 알려주는 것은 대기에 배어 있는 소금 냄새뿐이다. 그날의 바다는 온통 청색이었고, 흐린 수평선의은 안개가 푸른 바다와 구름 없는 하늘의 경계를 지우고 있었다.  - P27

바로 그때 뱀이 나타났다. 검은색 몸통에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 가터뱀이었다. 작은 뱀은 구불구불 물결 모양으로 길을 가로질러 길가 풀숲으로 사라졌다. 넋을 잃고 바라보던 나는 소스라쳤다기보다는 퍼뜩 정신을 차렸고, 겨우 생각에서 빠져나와 나를 둘러싼 것들에게로 관심을돌렸다. 버드나무에는 꼬리꽃차례가 달려 있었고, 바다에는 남실남실하는 파도가 있었고, 길 위에는 어른거리는 잎 그림자가 있었다. 그리고 길을 걷는 내가 있었다. 수 킬로미터를 걸은 후에 비로소 생겨난 리듬을 따라서 팔다리는 느슨한 대각선으로 움직이고 몸통은 길게 뻗어나가는 느낌, 유연한 한 마리 뱀이 된 느낌이었다. 곶 산책이 끝날 참이었고, 나는무엇을 써야 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대략 10킬로미터를 - P31

4걷기 전에는 없었던 깨달음, 순간적 에피파니가 아닌 점진적 확신이었다.
공간이 파악되듯이 의미가 파악되었다. 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장소로 돌아가면 그 씨앗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은 마음을 두루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 - P32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고백록』에 나오는 말이다. 보행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보다도 길다. 하지만보행을 단순히 수단으로 보는 대신 모종의 의식적 문화 행위로 본다면,
보행의 역사는 불과 몇 세기 전에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원에 루소가 있다. 그 역사는 18세기 다양한 사람들의 발로 만들어졌지만, 그중에서도 좀 더 학예적인 사람들은 보행의 기원을 고대그리스에서 찾음으로써 보행의 위대한 전통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스의습속들을 기쁜 마음으로 숭배하고 왜곡하던 시대였다. 영국의 혁명가겸 작가 텔월(John Thelwall)은 소요자(The Peripatetic)』라는 두껍고 따분한책을 쓰기도 한 별난 인물인데, 바로 이 책에서 텔월은 그 가짜 전통(보행의 기원이 고대 그리스에 있다는 생각과 루소적 낭만주의를 결합했다.  - P33

고대인들이 사유하기 위해 걸었다는 것은 건축과 언어의 우연한 일치에서 비롯된 믿음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 학당을 세우겠다고 하자, 아테네 시에서 작은 땅을 내주었다. 그라이에프(Felix Grayeff)는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역사를 쓰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그 학당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곳에는 아폴로 신전과 뮤즈 신전이 있었다. 다른 작은 건물들도 있었을 것이다. [……] 기둥이 늘어선 지붕 덮인 통로가아폴로 신전까지 이어져 있었고, 아폴로 신전에서 뮤즈 신전까지 이어지는 길이었을 수도 있다. 원래 있었던 길인지 아니면 학당을 지을 때 새로세워진 길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열주 회랑(peripatos)이 바로 이 학파의 이름이 되었다. 적어도 학당 설립 초기에는 학생들과 선생들이 이 길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배우고 가르쳤던 것 같다. 훗날 아리스토텔레스가 걸어 다니면서 가르쳤다는 말이 나온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 P34

아리스토텔레스와 소요학파 철학자들이 항상 걸어 다니면서 철학을 이야기했는지를 이제 와서 밝히기란 불가능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사색과 보행이 만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고대 그리스 건축양식이 사교 및 대화와 직결된 행동으로서의 보행에 적합했던 것도 사실이다. 소요학파라는 명칭이 아테네 학당의 열주 회랑에서 왔듯, 스토아학파(Stoics)라는 명칭 또한 아테네의 스토아(stoa), 즉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었다고 하는, 금욕과는 거리가 먼 색깔로 칠해진 열주 통로에서 왔다. 그 후 오랫동안 걷는 일과 사색하는 일 사이의연상이 널리 확산되면서, 나중에는 중부 유럽에서 그 연상을 반영하는지명들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하이델베르크에는 헤겔이 걸었던 것으로유명한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 있고, 쾨니히스베르크에는 칸트가 날마다 산책한 (지금은 기차역이 들어선) 철학자의 길(Philosophen-damm)‘
이 있다. 키르케고르(Sören Kierkegaard)는 코펜하겐에서 ‘철학자의 길‘을걸었다.‘ - P36

몸이 허약했던 칸트는 날마다 식후 산책으로 (그저 운동삼아) 쾨니히스베르크 외곽을 걸었다. 칸트에게 사색의 시간은 걸을 때가 아니라 난롯가에 앉아 창밖으로 교회 탑을 바라볼 때였다. 청년 니체는 "나에게 세 가지 오락이 있으니, 첫째는 나의 쇼펜하우어, 둘째는 슈만의 음악, 마지막은 혼자만의 산책"이라고 했다. 더할 나위 없이평범한 말이다. 20세기에는 러셀(Bertrand Russell)이 친구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이 어떻게 걸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는 한밤중에내 거처로 찾아오곤 했고,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이제 돌아가면 바로 자살하겠다고 선언하곤 했다. 그러고는 우리에 갇힌 호랑이처럼 몇 시간씩왔다 갔다 하곤 했다. 그랬으니 나는 졸음이 쏟아지기는 해도 그를 돌려보낼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두 시간의 완벽한 침묵 끝에 그에게 물었다. ‘비트겐슈타인, 자네는 논리에 대해서 생각하고있나, 아니면 자네의 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나?‘ 그는 ‘둘다‘라고 대답하더니 다시 침묵 속에 빠졌다. 많은 철학자들이 걸었다. 하지만 걷는일을 사유한 철학자는 드물었다. - P37

독창적으로 사유했다기보다는 대담하게 사유했던 루소는 기존의갈등을 가장 과감한 언어로 폭로하고, 새로 출현하는 감성을 가장 열렬한 언어로 찬양한 논객이었다. 신과 군주와 자연이 모두 같은 편이라는주장이 점점 근거를 잃어가는 시대였다. 중하층 계급의 원한, 왕과 가톨릭교에 대한 스위스 칼뱅주의자로서의 의심, 세상에 충격을 주고 싶은욕망,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의 소유자였던 루소는 멀리서 들려오는 불화를 특정 정치 사안으로 만들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루소는 학문과 예술은 물론이고 심지어 인쇄술 그 자체가 개인과 문화를 타락시켰다고 외쳤다. "고금을 통틀어 사치와 방탕, 예속은 영원한 지혜가 우리에게 내준 행복한 무지를 벗어나겠다는 오만한 노력에 가해진 형벌이었잖은가." 학문과 예술은 행복이나자기 인식으로 가는 길이기는커녕 혼란과 타락으로 가는 길일 뿐이라는것이 루소의 주장이었다. - P38

루소는 수시로 자신을 보행자로 그리면서 이상적인 선사시대 보행자의 후예를 자처했고, 실제로 평생에 걸쳐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는데,그 유랑 인생은 어느 일요일에 시골 산책을 마치고 제네바 성문 앞에 도착했을 때 시작되었다. 이미 굳게 닫혀 있는 성문 앞에서 순간의 충동에휩쓸린 열다섯 살의 루소는 고향을 떠나자, 견습직을 그만두자, 종교를버리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제네바를 뒤로하고 스위스를 떠나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여러 직업과 후원자와 친구들을 전전하면서 정처없이부유하던 그의 젊은 날은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서 자기의 사명을 발견한 그날로 끝났다. 하지만 젊은 날의 태평한 유랑생활을 되살리려는 그의 노력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던 것 같다.  - P40

하지만 루소가 걸을기회를 놓치는 법은 없었다. "그 정도로 사색하고 그 정도로 존재하고 그정도로 경험하고 그 정도로 나다워지는 때는 혼자서 걸어서 여행할 때밖에 없었던 것 같다. 두 발로 걷는 일은 내 머리에 활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할까, 몸이 움직여야 마음도 움직인다고 할까. 시골 풍경, 계속 이어지는 기분 좋은 전망, 신선한 공기, 왕성한 식욕, 걷는 덕에 좋아지는 건강, 선술집의 허물없는 분위기, 내 예속된 상태와 열악한 상황을 생각하게 하는 것들의부재. 바로 이런 모든 것이 내 영혼을 속박에서 풀어주고, 사유에 더 많은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나를 존재들의 광활한 바다에 빠지게 해준다. 그덕분에 나는 그 존재들을 아무 불편함이나 두려움 없이 마음껏 결합하고 선택하고 이용할 수 있다.13 여기에서 루소가 그려 보이는 보행은 물론 이상적인 보행, 즉 건강한 사람이 쾌적하고 안전한 길에서 자발적으로선택한 보행이다. 나중에 루소의 무수한 상속자들이 행복, 자연과의 조화, 자유, 미덕의 표현이라고 여기게 되는 보행도 바로 이런 보행이다. - P41

홀로 걷는 사람은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 홀로 걷는 사람의 존재 방식은 노동자나 거주자나 한 집단 구성원의 유대감보다는 여행자의 무심함에 가깝다. 걷는 동안 루소는 사유와 몽상 속에 살며 자족할 수 있었고, 자기를 배반한 것 같은 세상을 이길 수 있었고, 그런 이유에서 걷는 것을 아예 자신의 존재 방식으로 선택했다. 루소는 걸음으로써 그야말로 발화의 형식을 얻었다. 논문 같은 엄격한 형식,또는 전기문이나 역사서 같은 연대기적 형식과는 달리, 여행기는 탈선과 연상을 장려한다. 루소가 세상을 떠나고 거의 한 세기반 후, 마음의작동 방식을 그려내고자 한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문체를 발전시킨다. 조이스의 소설『율리시스』와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서 주인공들의 머릿속에뒤죽박죽 뭉쳐 있는 생각들, 기억들은 그들이 길을 걸을 때 가장 잘 풀려나온다. 바꾸어 말하면, 보행이라는 비분석적, 즉흥적 행위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유는 이런 비체계적, 연상적 유형의 사유다.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바로 사유와 보행의 이러한 관계를 그려 보여주는 최초의 그림 중 하나다.
- P44

루소의 글이 철학적 보행을 다루는 문헌의 효시라면, 그것은 루소가 자기의 사색이 어떤 정황 속에 행해지는지를 상세히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최초의 저술가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루소가 과격파였다면, 루소의 가장 과격한 행동은 (보행, 고독, 자연 등을 기반으로 조성되는) 개인적, 사적 경험의 가치를 재평가한 일이었다. 루소가 다양한 혁명, 이를테면 정치조직의 혁명뿐 아니라 상상의 혁명과 문화의 혁명을 고취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루소에게 혁명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런 사적 경험의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루소가 자신의 지성을 십분 발휘해 가장 강력한 주장을 펼칠 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드높이고있는 정신 상태와 생활 방식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였다. - P45

루소가 일흔다섯 살에 「열 번째 산책을 미완성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 때, 에름농빌 영지의 소유주였던 지라르댕 후작(marquis de Girardin)은 포플러 나무가 무성한 영지 내의 작은 섬에 루소의 무덤을 만들면서 감상적인 루소신도들을 위한 순례 코스도 함께 만들었다. 덕분에 루소의 무덤을 찾아온 사람은 무덤까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뿐 아니라 그 길로 가면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도 배울 수 있었다. 루소의 사적 저항이 후대의공적 문화로 자리 잡는 과정이었다.


키르케고르도 보행과 사유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철학자 중 한명이다. 키르케고르의 경우에는 걸으면서 인간을 연구할 장소로 도시, - P46

정확히 말하면 코펜하겐이라는 한 도시를 선택했다. 다만 그는 도시를걸으면서 인간을 연구하는 일을 시골에서 식물을 채집하는 일에 비유했다. 그렇게 보면, 그가 마주치는 사람들은 그가 수집하는 식물표본이었다. 키르케고르가 태어난 때는 루소가 태어나고 100년 후였고, 키르케고르가 태어난 곳은 루소가 태어난 곳과 마찬가지로 프로테스탄트의 도시였다. 하지만 키르케고르의 삶은 몇 가지 면에서 루소의 삶과는 완전히달랐다. 루소가 방종한 생활을 한 것과 달리 키르케고르는 스스로 부과한 엄격한 금욕적 기준을 따랐고, 루소가 유랑 생활을 한 것과는 달리 키르케고르는 평생 고향과 가족, 자기 종교를 떠나지 않았다.(물론 다툼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철학자 사이에는 대단히 흡사한 면도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았다는 것, (문학적이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한) 무수한 저작들을 쏟아냈다는 것, 자의식에 시달렸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부유하면서도 무서울 정도로 경건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키르케고르는거의 평생 동안 물려받은 유산으로 살면서 아버지의 손에 휘둘렸다.  - P47

키르케고르는 저술 활동 초기인 1837년의 한 일기에서 이미 소음이 사유를 돕는다는 말을 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내가 가장 창의적이 되는 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혼자 앉아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혼란과 소음에 맞설 때다. 그렇게 적당한 환경을 찾지 못할 경우, 내 사유는 막연한 사념을 붙잡아보려는 피로한 노력 끝에 죽음을 맞는다." 그로부터 10년 이상 지난 후의 한 일기에서는 길거리에서 그런 소음을 찾을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정신에 긴장이 심한 나 같은 사람은 이완이 필요하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사람을 만나는 일은 이완에 도움이 된다. 몇몇 사람과 따로 만나는 일은 이완에는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20 주위가 소란스러울 때 생각이 잘 되고, 주변이 조용할 때보다는 주변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쓸 때 집중이더 잘 된다고 키르케고르는 주장한다. 어느 일기에서는 도시생활의 시끌벅적함이 실은 즐겁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거리의 악사가 손풍금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멋지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우연하고 사소한 것들이다." - P49

루지는 않지만, 보행을 철학의 주제로 다루는 방법과 관련해서 한 가지 힌트를 주고 있다. 길을 걷는 몸은 상처 입고 아파하고 부서질수 있는 본래적 한계로 되돌아가지만, 길을 걷는 일 그 자체는 마치 몸을연장하는 도구처럼 세계로 열린다. 길은 걷는 일의 확장이고, 걷기 위해만든 공간들은 걷는 일의 기념비들이며, 길을 걷는 일은 세계속에 존재 - P56

하면서 세계를 생산하는 일이다. 길을 걷는 몸은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들에 흔적을 남긴다. 거리와 공원과 보도는 길을 걷는 상상, 길을 걷고 싶은 욕망의 흔적들이다. 지팡이와 신발, 지도, 물통, 배낭은 그 욕망의 물질적 산물들이다. 몸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통해 몸을 인식한다는 것, 그것이 보행과 생산적 노동의 공통점이다. - P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나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가담한 자들과 저항을 선택한 자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대답은 ‘사유‘였다. 가담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스스로 사유라는 것을 했다. 그들이 그렇게할 수 있었던 것은 더 나은 가치체계를 가졌거나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전체주의 이전의 판단 척도를 여전히 따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들은 어떤 행위를 저지른 후 지금처럼 평화로울 수 있을지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동행‘을 거부한 사람들은 스스로 사유한 사람들이었다. p241

한나는 외로움을 독일어로 ‘verlassenheit‘라고 썼는데, 이는 버려진 상태 또는 버림받음을 뜻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사람은 인간으로서 행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새롭게 나아가지도 못한다. 전체주의는 사람들의 사유 능력 및 그들 자신과 맺는 관계를망가뜨려, 인간 사이에 있는 공간을 파괴한다. 내 생각에만 사로잡혀고립되면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외로움은 사유의 필수 조건인 고독의 공간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 P198

한나는 유럽의 새로자연의 색과 건축물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에 깊이 감동한 한나는풍경에 감탄해서 <프랑스 드라이브Drive through France〉라는 시를 블뤼허에게 써 보냈다.


땅은 곳곳에 시를 쓴다.
가지런히 나무를 땋아놓고
우리더러 나아가라고 한다.
이 세상 곳곳을.

활짝 핀 꽃은 바람을 맞으며 기쁨을 누리고
풀은 연하고 나긋한 바닥에 싹을 틔우며
하늘은 파란색으로 물들어 밝게 인사하고
태양은 부드러운 체인처럼 회전한다.

한껏 취한 사람들…
땅, 하늘, 햇살, 나무…
봄마다 새로 태어나
전지전능한 놀이 속에서 즐거워한다. - P199

미국에 돌아온 한나는 상원의원 매카시(극단적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열풍을 몰고 온 미국 정치가)가 한창 인기를 구가할 때 마르크시즘을 가르치고 강의했다. 지식인들이 냉담한 시선을 보내도 한나는 마르크시즘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반공산주의운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한나는 ‘전직 공산주의자‘라는 글을 발표해, 전직 공산주의자(공산주의국가를 건립했지만 독재자가 된 레닌과 스탈린을 지칭함)와 과거 공산주의자(칼마르크스 등을 지칭함)를 구분했다. 한나에 따르면 전직 공산주의자는 이데올로기는 바꿨으나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 즉 계급은 유지한 반면,
과거 공산주의자는 방식과 목표는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하필이면 매카시즘 열풍이 가장 뜨거울 때 이런 대담한 글을 발표하는 건 웬만한 용기로는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법무장관이 ‘국적이 다른 시민‘을 조사해 불온하다고 판단되면 추방하겠다고 선언한상황이었다. 하지만 한나는 결코 논쟁을 피하거나 이데올로기의 요구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 P200

1953년 가을, 한나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비평‘에 관한 크리스찬가우스 세미나(프린스턴대학교에서 연 2회 개최) 진행을 요청받았다.
지금껏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여성이 이 세미나를 진행한 적은 없었다. 교수진들과 학생들은 기존 분위기를 바꿀 여성 교수가 와서 기뻤지만 한나는 그런 식의 ‘마스코트‘ 취급이 불쾌했다.
쿠르트 블러멘펠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나는 말했다.
"폐회식에서 조금 술에 취했지만, 점잔 떨면서 품위 있는 척하는 남자들에게 특별한 유대인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려줬어요.
그리고 내가 특별한 여성임을 이 자리에서 필연적으로 알게 됐다는사실을 똑똑히 전달하려고 애썼죠."
한나는 ‘특별한 유대인‘으로 취급받고 싶지도 않았고 ‘특별한 여성‘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 P201

한나는 하나의 정치 문제만 다루지 않았고, 정치철학을 논하지않았으며, 당대 정치 문제의 해결방법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삶의 필수 활동을 논하고 이 활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폈다.
시인 위스턴 휴 오든은 《인간의 조건》을 읽고 1959년 잡지 《인카운터 Encounter》에 비평을 게재했다. 여기서 그는 이 책이 특별히 그를위해서 씌어진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평생 기다려온 세상을 저자가 구현해준 느낌이다. ‘사유하게 하는‘ 책의 경우 내가 던진 질문에 스스로 정확한 답을 내놓은기분이다."
《인간의 조건》은 사유활동 그 자체를 보여주는 책이다. - P205

1950년대에는 자동화와 핵전쟁에 대한 공포로 미래가 암울한색채를 띠었다.
"역사상 인간은 항상 미래를 불안해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내가 속한 계급이나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서도 하지만 지구상에서 현재와 미래를 위한 인간의 모든 노력이 지금처럼 이토록 많은 사람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적은 거의 없었다."
오든은 《인간의 조건》을 지구, 세상, 노동, 작업, 행위, 개인, 공공, 사회, 정치, 약속, 용서가 무엇인지 거의가 그 개념을 정의하는사전처럼 읽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그 기저에는 개념을 구별하는 장치가 있다. 이 장치는 한나가 인간의 조건으로 꼽는 세 가지 필수 활동, 즉노 - P205

동labour, 작업 work, 행위action에 초점을 맞춘다. 이 세가지 필수 활동을 한가지 기본 조건으로 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생명을 부여받는다.
노동이란 인간의 조건은 생명유지 활동 그자체이며 인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한다. 작업이란 인간의 조건은 세속적인 성질로 인간이 존재하는 데 자연스러운 성질은 아니다. 다시 말해 작업은 인위적인 것이다. 그리고 "다원성은 인간 행위의 조건이다. 그 이유는 우리인간이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 살았던, 지금 살고있는, 그리고 앞으로 태어나 살아갈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없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이 똑같다는 말이다"." 노동, 작업, 행위,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각각의 조건들은 "태어나고 죽는 것, 즉 탄생과 죽음이라는 실존적이고 근본적인 조건들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 P206

이러한 구별에서 우리는 한나가 ‘조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다양한 방식을 볼 수 있다. 한나는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들을 언급하는데,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우리를 어떻게 조건 짓는지, 우리가접하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 곧 인간 실존의 조건이 되는지 사유한다
한나는 노동, 작업, 행위를 서로 구분했을 뿐 아니라 개인, 사회,공공을 공간적으로 구분했다. 우리가 넘나드는 삶의 각기 다른 영역들로서 이 공간들을 생각해보려 함이었다. 한나는 이 공간들을 독일어로 raumen 또는 ‘rooms‘라고 번역했다(raumen과 room은 ‘방‘을 뜻하는 단어들), 현시대에 인간의 조건은 자유에 달렸다. 자유를 위해서는삶의 각기 다른 영역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현대사회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다양한 활동과 그에 상응하는 각각의 공간들이 더 이상 구 - P206

분되지 않았다. 이는 우리가 더 이상 삶의 다양한 영역들을 자유롭게오가지도, 인간 활동에 참여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것이사회적인 것으로 전락했고 모든 활동이 단지 소비를 위한 노동 활동이 되어버렸다.
대중사회가 등장하고 그것이 어떻게 모든 일을 노동으로 전환시키는지 지켜보며 한나는 ‘현대사회의 세계소외‘라는 하나의 개념을만들었다. 이를 인간이 지구에서 우주로 도피하고 세계를 떠나 자기자신에게로 도피하는 이중 도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사회화, 소비사회의 시작, 공유지 상실은 모두 부의 축적을통해서 일어난다. 부의 축적을 위해 "인간의 세계와 바로 그 세계성이 제물이 된다" - P207

<전체주의의 기원>이 사람들을 한곳에 가두어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드는 전체주의라는 철의 속박ironband을 자세히 다룬다면 <인간의 조건》은 사회적인 것의 부상으로 인해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공적영역과 사적영역간) 이동의 자유가 상실되고 있는지 살핀다.
현대 대중사회가 출현하면서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을 구분하는능력이 약화되었고, 그에 따라 상식이 무너지고 서로 공유하는 세계가 사라졌다. 한나는 장자크 루소의 <고백록》(1782)과 르네 데카르트의 <명상록》(1641)을 바탕으로 현대화가 어떻게 인간을 내면으로 도피시켜 새로운 유형의 개인주의를 만들어냈는지 분석했다. 이런 생각의 변화는 인간에게 자신의 감각적 세상 경험을 더 이상 믿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 대신 사람들에게는 세계가 인식 가능하고, 정량화 - P207

할 수 있고, 복제 가능한 대상으로 변모했다. 인간 조건의 기본 특징인 다원성은 일원화되었고, 공유하는 세상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의미가 있을 수 없으며, 나를 나타내고 인정받을 수 있는 공적영역이 없기 때문에 기억도 있을 수 없다.
한나가 말하길,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더 이상 위대함이나 영속성을 추구하지 않고 인간의 조건에서 완전히 벗어나려고 안간힘을쓴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이 온전하게 존재하기 위해서는공적영역에 나아가 타인 앞에 서야 하고, 사유라는 걸 하기 위해서는고독 속에서 사유하는 사적영역을 가져야 한다. 그 고독의 공간 안에서만 세속의 일들을 내적 경험으로 치환할 수 있다. ‘이 내적 경험은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리고 그 진실의 일부는 우리가 함께지구에 살고 공동으로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 P208

현대사회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자유와 정치적 행위다.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사회화는 자유를 위해 필요한, 이 두 영역을 구분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뜻한다. 이로 인해 자유롭게 이동하는 능력도 상실되었다. 모든 게 사회적인 것이 될 때 혹은 모든 게 정치적인 것이 될 때 움직일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한나는 자유를 바다에 나타나는 섬이나 사막의 오아시스로 표현했다.
5한나는 1956년 4월 시카고대학교에서 ‘마르크시즘의 전체주의적 요소‘를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서 일련의 강의를 진행했는데, 《인간의 조건》은 이 강의들에서 탄생했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한나는 전체주의 출현 이전의 철학적 사상의 변천 과정을 다루었고, 20세 - P208

기 대재앙을 초래하는 데 기여했을지도 모를 마르크스 작품들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했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으면서 그가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 서구 전통철학을 바탕으로 글을 썼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나는 그 누구도 마르크스를 전체주의의 아버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 이전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기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서구의 정치철학 전통을 깨고 전체주의라는새로운 장을 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구의 정치철학 전통이 결코그런 상황을 위한 게 아니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가 그 전통의 끈을 끊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 P209

한나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카를 야스퍼스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야스퍼스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한 에세이를 학술지 <모나트Der Monat》에 발표한 직후였다. 이 에세이의 맥락이 야스퍼스의 전작이자 마르크스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진리에 대하여 Von derWahrheit〉와 같다고 생각한 한나는 야스퍼스에게 말했다.
"선생님 앞에서 마르크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싶어요. 선생님이 틀렸다는 건 아닙니다.""
정의와 자유에 대해 한나와 야스퍼스는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야스퍼스와 한나의 남편 블뤼허는 마르크스의 계획이 정의가 아닌 노동해방과 관련된다고 생각했다. 한나는 마르크스를 칸트와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고자 했는데, 마르크스의 계획이 정의사회 구현이었다고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P209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에서 열한번째 테제leveth Thesis를 통해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할 뿐이고, 핵심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나가 마르크스를 비판한 주된 이유는 마르크스가 노동 활동을인간 조건의 근본적 활동으로 격상시켰다는 것이었다.
"노동은 인간의 창조자다."
마르크스의 이 한 문장은 한나에게 모든 걸 말해주었다. 한나는노동, 작업, 행위라는 세 가지를 각각 구분하면서 우리를 자연 그리고우리의 동물 상태에 묶는 것이 노동이라고 가정한다. 한나에 따르면 좋은 삶이란 노동 활동만으로는 얻을 수 없으며, 노동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공적영역으로 나아가 말과 행동으로 타인 앞에 모습을드러낼 때 비로소 가능하다. - P211

한나는 《인간의 조건》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제목을 ‘활동적삶 또는 행동하는 삶에 대해‘로 바꾸었다. 한나는 지금까지 활동적삶의 근간이 되는 활동들이 주로 관조하는 삶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왔다고 주장했다. 한나는 더 나아가 전문 사상가들의 전통적 일로서의 관조하는 삶과 어떤 전문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의 정신의삶 사이의 구분을 이끌어낸다. 한나의 연구 일부는 세상속에서의 인간 경험과 활동이라는 관점에서 활동적 삶을 고려하는 것이었다. - P211

<인간의 조건》 서문 말미에서 한나는 이렇게 조언했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10이 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내 발밑의 세계가 아닌 우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향한 비난이며, 잠시 멈추고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인간 조건의 활동에 대한 생각에 다가갈 수 있을지 고려하라는 간청이다.
한나의 1955년 8월 사유 일기를 보면 첫 부분에 이런 글이 있다.
"하이데거는 틀렸다. 인간은 ‘세상에‘ ‘던져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간은 지구상에서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은 던져진 게 아니라 정확하게 나아갈 방향을 갖고 있는 존재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그의 지속성이 생겨나고 그가 속해 있는 길이 드러난다." - P212

한나는 하이데거의 ‘던져짐‘ 개념을 자포자기로 보고 거부했다.
세상에 존재한다는 건 함께 있다는 뜻이며 이는 정확히 하이데거가오랫동안 제시하지 못한 생각이다. 어떤 면에서 《인간의 조건》은 하이데거의 사유 개념에 대한 거부이자 비판으로, 한나는 마지막 저서에서 다시 한번 똑같이 비판했다. - P212

편지 중간에 나오는 이 구절에 한나는 ‘우울한 작업‘ 중이라고덧붙였다. 먼저 세상을 떠난 두 친구 헤르만 브로흐와 발데마르 구리안(러시아 출신 유대인 정치학자)의 작품 소개글을 쓰는 중이었다. 이 말을 통해 한나가 친구의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였는지 엿볼수 있다. 그런 커다란 상실을 겪으면서도 이 세계를 사랑한다는 건어떤 의미일까? 한나가 ‘정치 이론의 역사‘를 주제로 강의했던 시절의 강의 노트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정치를 논하는 작가는 이 세계를, 인간사pragmata ton athropon뒤얽힌 이 세계를 사랑한다."
이 세계를 사랑한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혹은 한나의 표현에 따르면 "실제로 벌어진일들을 똑바로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모르 문디는 한나가 《인간의 조건》 서문에 적은 "멈추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구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P214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한쪽으로 비켜서서 균형감과 사유를 위한 고독의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각안에서 자아 성찰의 한 형태를 볼 수 있다. 이 세계를 사랑하려면 먼저 이 세계를 살펴야 한다한나에게 그것은 나의 경험을 들려주려면그 경험과 약간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 P215

카프카의 ‘He‘에게 전쟁터는 바로 지구상의 인간 세상이다. 한나는 이를 물리적 전쟁터가 그 자체로 형이상학적 전쟁터에 자리를내준 것으로 이해했다. 한나는 카프카를 이용해 존재와 의미를 융합하는 형이상학의 오류를 바로잡고 있다.
경험 세상과 가까이 있기 위해서는 경험을 바탕으로 사유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이상학적 추측에 빠질 위험이 있다. 한나는
"사유는 직접 겪은 사건들에서 생겨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 알려주는 유일한 이정표인 이 사건들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사유할 때만 비로소 스토리텔링이라는행위를 통해 그들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한나는 사유를 ‘하나 안의 둘‘ 대화, 즉 나 자신과 대화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사유함으로써 자의식이 양심에 호소할 수 있고, 타인이바라보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으며,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 P219

한나의 주장은 《인간의 조건》에서 강조한 사회와 정치의 구분에 기초한다. 한나는 정치적 변화는 힘이 아닌 설득을 통해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나가 이해하는 설득은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설득과 달랐기에, 오해를 불렀다.
한나는 진보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아니었다. 설득에 대한 한나의 이해는 야스퍼스의 철학과 칸트의 판단력비판》에 뿌리를 두고있다. 한나가 이해하는 설득은, 언어의 차이와 다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타인이 바라보는 세상을 자유롭게free 상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할도덕적 의무가 있다. - P222

재판은 처음부터 실망스러웠다. 한나는 재판에서 아이히만이저지른 잔학행위를 다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나가 마주한 건유리 케이지 안에 갇힌 광대였고 "형편없는 연극"" 공연이었다. 끝날 때까지도 아이히만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고, 재판은 이 악인에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유대인의 슬픔에 대한 일종의 역사적 실태 조사"에 가까웠다. 한나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싶었지만 막상 그러지는 못했다. 혹시라도 뭔가를 놓칠지 몰라서다."
1961년 12월 15일 재판이 끝났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에게 저지른 만행‘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후 아이히만 측에서항소를 제기했으나 이스라엘 항소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1962년6월 1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 P232

한나는 1963년 2월 15일부터 3월 16일까지 이 재판에 대한 보고서를 잡지 《뉴요커》에 5회의 시리즈로 실었다. 그해 5월 이 보고서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책으로출간되었다.
한나는 책 말미에 재판부가 내린 판단과 판결을 거부하고 스스로 아이히만에게 판결을 내렸다. - P232

정치는 탁아소 같은 게 아니다. 따라서 정치에서 복종과 지지는같은 말이다. 그리고 유대인 및 다른 수많은 민족과 이 지구를 공유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피고가 지지하고 실행했듯이, 설령 피고와 피고의 상관에게 이 지구에 누가 살고 살 수 없는지 결정할 권한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우리 인류 구성원 가운데 그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상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원치 않음을 밝힌다. 이게당신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할 이유, 바로 유일한 이유이다.


한나는 전쟁범죄를 법적 테두리를 넘어, 인간끼리 지구를 공유하는 문제로 다루었다. 아이히만이 저지른 짓들은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기에 아이히만은 죽어 마땅했다. 즉 아이히만은 인간 조건의 기본 원칙인 다원성을 위반했다. - P234

한나의 판결은 법에 따른 판결이 아니라 아이히만과 그의 재판과정에 대해 스스로 내린 판결이었다. 한나는 정의를 판결의 문제라생각했고 전후 재판이 보여주기식 재판에 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식의 재판에서는 정의를 주장하면서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저지른 범죄를 제대로 따지지 않는다.
한나가하고 싶었던 말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판결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재판 자체는 기록을 제공하고 개인에게 증언 기회를 주려는 목적에서 이용되었다. 증거와 법 위반을 증명하는 증언을통해 개인과 개인의 행동들을 심리하는 것이 전후 재판의 목적이라면아이히만의 재판은 실패했다. 아이히만은 엄밀히 말해서 어떠한 법도 위반하지 않았다. 그저 생기지 말았어야 할 법을 따랐던 것뿐이다. - P234

한나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광대였다. 우스운 모습 때문이 아니라 분별력이 없고 폭넓게 생각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한나는 "악마의 거대함, 악마의 힘에 대한 전설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한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를 인용했다. 브레히트는 "최악의정치범들은 특히 웃음에 노출되고 또 노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에는 비극보다 코미디가 고통을 덜 심각하게 다룬다는 뜻이 숨어 있다.
한나는 "이런 상황에서 고결함을 지키려면" 이 말을 기억하고,
아이히만이 얼마나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든 그를 늘 광대로 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웃음은 나의 자주권을 지키는 수단이 되고악인에게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 방법이 된다. - P239

한나는 법적 문제와 도덕적 문제를 구분했다. 둘은 다르지만 판단력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법적 문제와 도덕적 문제의 구분은 한나가 사유와 판단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중요했다. 엄밀히 말해 나치 정권 아래 자행된 모든 일은 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을 지키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아이히만은 일반적으로 기소될 만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한 행동은 명백히 잘못이었다. 잘못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법적 판단이 아니라 도덕적 판단의 문제다. 법이 아닌 도덕규범을 위반한 사람에게 어떻게 개인의 책임을 물어야 할까? - P240

전체주의 이전의 도덕적 판단 범주는 전체주의가 등장하면서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에 한나의 판단으로는, 아이히만은 사회의 규범적 도덕 질서를 위반한 것이 아니다. 한나는 개인의 책임과정치적 책임을 더욱더 구분하면서 유럽에서 개인적 판단이 전반적으로 어떻게 불가능해졌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선에서 어떻게 모두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한나는 타인의 잘못에 내가 책임을 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즉 내가 하지 않은 일에 죄책감을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잘못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죄책감을 느끼고, 아이히만처럼 모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전혀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 P240

한나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가담한 자들과 저항을 선택한 자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대답은 ‘사유‘였다. 가담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스스로 사유라는 것을 했다. 그들이 그렇게할 수 있었던 것은 더 나은 가치체계를 가졌거나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전체주의 이전의 판단 척도를 여전히 따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들은 어떤 행위를 저지른 후 지금처럼 평화로울 수 있을지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
‘문이다. ‘동행‘을 거부한 사람들은 스스로 사유한 사람들이었다. - P241

한나는 빈곤 같은 사회 문제는 정치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회 문제는 경제 분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에 대해 읽으면서 사회 문제를 정치로 해결하려 드니폭력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프랑스혁명, 쿠바혁명, 헝가리혁명을 살펴본 한나는 "빈곤 타파는 그 절박함 때문에 언제나 자유 실현보다 우선한다"는 성질을 발견했다. <인간의 조건>에서도 말했듯이의식주가 충족돼야만 자유를 생각할 여력이 생긴다. 한나는 프랑스혁명과 달리 미국혁명은 경제적 불평등에 발목 잡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미국혁명을 이끈 사람들은 평등이 아니라 자유라는 정치 문제를 목표로 삼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혁명적‘이란 단어는 목적이 자유인 혁명에만 붙일 수 있다."  - P251

혁명은 자유를 위한 정치 공간을 만들고,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동등한 시민으로 서로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정치 개념은 한나가 이해하는 다원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나가 말하는 다원성은인간 실존 그 자체이며, 행위를 위한 필수 조건인 동시에 차별과 평등을 모두 경험하게 한다. 그런데 행위를 위한 필수 조건인 이 다원성은 사회 평등이 대두되면서 위협받게 되었다.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부상은 사적이익을 공적영역에서 추구하도록 해 정치가 경제적이익과 직결되면서 정치 제도의 붕괴를 이끌었다.
오늘날 무언가를 혁명이라 칭하려면, 한나가 말하길 그 무언가는 혁신적이어야 하고, 정부 및또는 사회의 전체 기본 구조를 변화시킬 만큼 급진적이야 한다.  - P251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기꺼이 증언하려는 사람 없이는 어떤 영속성도, 인내도 존재할 수 없고, 어떠한 것도 품을 수 없다."10아이히만 논란은 이해하고 싶은 수많은 질문을 한나에게 불러왔다. 진실의 본질은 무엇인가? 진실이 공공의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을때 정치영역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치영역에서 진실이 무력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크라테스 이래 진실을 말하는 자들은 정치영역 바깥에 서 있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비정치적이고, 권력자에게 도전하는 일이기에 위험하다. 정치에서는 의견만 존재할 수 있다. - P257

주어진 문제를 관찰하며 마음속에서 더 많은 사람의 관점을 떠올릴수록, 내가 그 사람들 처지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지 더자세히 상상할수록, 타인을 대변하는 나의 사고 능력이 더 강해질수록 타당한 결론, 즉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


끝없는 거짓말은 내 발밑의 땅을 앗아가 내가 설 땅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논문은 "진실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답하며 끝난다.
"개념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진실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은유적으로 표현하면, 진실은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이고 내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이다."12진실은 이 세상에서 내게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항상 움직이는땅과 하늘과도 같다. - P258

한나는 3월 4일 바젤에서 치른 장례식에 참석해 그를 추도하면서 "야스퍼스의 삶과 글에 관해, 즉 철학자이자 한 시민으로서의 야스퍼스"에 관해 되돌아보았다.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는건 오직 그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뿐입니다. 우리는 그의글들에 의지했지만 잘 아시다시피 그 글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않습니다. 떠난 그가 이 세상에 남긴 것들이지요. 이 세상은 그가오기 전부터 존재했고 그가 떠난 지금도 여전히 제자리에 있습니다. 그가 남긴 글들이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맞을지는 이 세상에 달렸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글들이 한때 살아 있는 삶이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을 모릅니다. 그러기에 잊힐 위험이 있습니다. 그는 가장 무상하고 가장 위대했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말과 유일무 - P268

이했던 행동은 그가 떠남으로써 사라졌지만 그래서 우리가 필요합니다. 그를 생각하는 우리가 그를 생각함으로써 그와의 관계가되살아나고, 그 관계에서 그에 대한 대화가 샘솟고 이 세상에 다시울려 퍼질 겁니다. 떠난 자와의 관계, 우리는 이 관계를 배워야 합니다. 그 시작으로 우리는 지금 여기서 함께 슬픔을 나눕니다.


한나는 야스퍼스의 죽음을 애도하며 자신만의 개인적 시바 Shiva(유대교에서 사별한 부모나 배우자를 위해 일주일간 애도하는 기간)를 가졌다. 애도 기간 내내 한나는 검은색 옷을 입고 밝은색 스카프를 걸쳤다. 친구이자 멘토였던 야스퍼스의 죽음은, 단지 육체의 사라짐만 의미할뿐이었다.
- P269

1968년 집필을 시작한 《정신의 삶》에서 한나는 ‘하나 안의 둘‘대화에 대해 말한다. 이는 내면의 대화로서 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한나가 주장하길, 사유라는 행위를 할 때 나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키케로(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만큼 더 활동적일 때가 없고, 혼자 있을 때만큼 덜 외로울때가없다"고 했다.
한나에게 《정신의 삶》은 1933년에 떠나온 전통 철학으로의 회귀였다. 한나에겐 이 책이 악인 자체와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왜 사람들은 악을 저지를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직접 대면할 기회였다.
총 3부작으로 된 《정신의 삶》은 한나의 인생 최고의 걸작이 되었다. - P283

사랑은, 거기에 없는 것을 갈망함으로써 그것과 관계를 맺는다.
이 관계를 드러내어 만천하에 알리고자 사람들은 연인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 관계에대해 이야기한다. 탐구는 사랑과 갈망의 일종이므로 사유의 대상은 오직 사랑스러운 것들, 즉 아름다움과 지혜, 정의 등일 수밖에없다.


한나는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듯이 사유를 하면 악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건 오직 선뿐이며, 나는 내가 사유하는 대로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악은 선이 아니어서 우리가 사유할 수도 없는 것이다. 정치 및 도덕 관련 사안에 사유하지 않는 것은사회에서 주어진 시간에 정해진 행동 규칙이 무엇이든 맹목적으로따르라고 사람들을 가르칠 위험이 있다. 우리는 규칙에 익숙하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하는 데 익숙지 않다.  - P285

<의지>는 가장 쓰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사유와 달리 의지는 자기 결정이며 자율적이다. 의지는 사고력을 갖춘 상태에서 탈감각의사유 대상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의지는 사유 및 판단모두에서 독립적이다. ‘사유‘는 ‘하나 안의 둘‘이라는 조화의 필요성이 특징인 반면 ‘의지‘는 부조화가 특징이다. 의지 활동은 경쟁을 요구하며, 자아를 둘 이상의 부분으로 나누고 분열된 자아를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긴다. 이 같은 의지는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힘을 만들어내는데 개인의 자아가 하나로 회복되고 세상에 나가 행동하는 것은의지가 정지되어야만 가능하다.
부터 1974년 5월 애버딘대학교에서 ‘의지‘를 주제로 두 번째 시리즈의 기포드 강연을 할 무렵, 한나는 부쩍 피곤함을 느꼈다. 블뤼허가세상을 떠난 후에도 애도로 지쳤을 뿐 전혀 피곤하지 않다던 한나였다. 단시간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고, 미국 정치는 한순간도 조용할날이 없었으며, 강의와 강연 일정으로 한나는 늘 바빴다. - P297

 《정신의 삶> 마지막 편 제목 ‘판단‘이 적혀있었다.
두 가지 문구도 적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루카누스(에스파냐 태생로마 시대 시인의 내전기>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사이에 벌어진 내전에 관해 쓴 서사시)에 등장하는 인물카토에 관한 구절이었다. "VictrixCausa diis placuit sed victa Catoni", 즉 "승리의 대가는 신의 기쁨이었으나 패배의 대가는 카토의 기쁨이었다"라는 뜻이다. 한나는<사유> 마지막 부분에 이 구절을 추신으로 덧붙인 바 있다.
두 번째는 괴테 《파우스트> 2부 5막에서 가져온 구절이었다.


내 길에서 마법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리고 모든 마법의 주문을 완전히 잊는다면,
자연이여, 나는 단지 한 인간으로 그대 앞에 서고 싶소.
그렇다면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 보람이 있을 거요. - P301

한나의 책을 출판한 출판인 윌리엄 요바노비치는 한나를 다음과같이 기억했다.


한나는 정의를 믿는 사람들만큼이나 그리고 자비를 믿는 사람들이 응당 그래야 하듯이 열정적이었다. 폭력은 싫어해도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불복종은 지지했다. 진지하게 탐구할 일에는언제나 서슴없었다. 혹여 적을 만들었다면 그건 결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내 둘도 없이 소중한 친구…. 한나 덕분에 나는 인간인 게 그나마 덜 수치스러웠다. - P302

매카시는 한나를 한 명의 ‘물리적 존재‘로 묘사했다.


한나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사람의 마음을 끄는 여성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또렷한 눈동자는 마치 지성의 광선이 뿜어져 나오기라도 하듯이 반짝였지만 그 내면에는 캄캄하고 깊은 웅덩이가 자리했다. 한나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건 생각에 잠긴 듯한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다. - P302

한나의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두 눈을 관뚜껑이 가리고, 고결한 이마 위로는 잔잔한 꽃무늬 천을 드리웠다. 한나는 더 이상 한나가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누워 있는 18세기 철학자였다. 나는 예배당에서 위험이 풍기는 이 낯선 사람을 차마 만지지 못했다. 부드럽지만 주름이 깊게 팬, 한때 공공의 머리였던 것이 그녀 목에서 휴식 중이었다. 나는 그 목을 향해서만 작별의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그해 봄 한나는 한 줌 재가 되어 뉴욕 애넌데일ㅡ온ㅡ허드슨의 바드대학교 공동묘지에 안장된 블뤼허 곁에 묻혔다. 인간사의 영역안에서 주어진 모든 찬사와 위로를 뒤로하고 한나는 흔치 않은 드높은 위업을 이루었다. 그건 바로 한나가 《인간의 조건》에서 격조 높게묘사한 불멸이었다. - P304

한나는 명성이 사회적 현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절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파마가 축복을 가져다줄지 저주를 퍼부을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한나가 남긴 유산은 파마의두 가지 힘이 모두 발휘된 결과물이다. 한나는 살아생전 삶과 연구를두고 끊임없이 루머와 반쪽짜리 진실에 시달렸으나 죽어서는 불후의명성을 얻었다.
한나를 철학자나 정치 이론가로 생각하는 건 무리다. 한나의 업적을 설명하다 보면 일련의 모순과 맞닥뜨린다. 한나는 시를 썼지만시인이 아니었다. 대신 시인 같은 사상가였다. 철학에 몰두했지만 철학자도 아니었다. 인간의 조건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여러 전기를 썼지만 전기 작가도 아니었다. 또한 조금씩 몸담은 적은 있어도기자, 비평가, 수필가, 문학평론가, 편집자, 정치운동가도 아니었다.
긍정적으로 접근하면, 이를테면 메리 매카시가 그랬듯 위대한 사상가의 표상으로서 소크라테스와 카를 야스퍼스의 대열에 한나를 합류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나라면 이 역시 거부했을 것이다. - P306

한나는 사유를 ‘난간 없는 사유‘로 표현했다. 사유란 붙잡을 곳있는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다. 한나의 은유에 따그르면 붙잡을 곳 하나 없을지 몰라도 계단이라는 서 있을 곳은 주어진다. 자유롭게 밟고 디딜이 계단이야말로 한나에게 유서 없이 남겨진유산이었다.
한나는 단 한 번도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의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는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사를 논하는 공적영역에서 말과 행동으로 나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내가 누구인지는 그 자체로 내 존재를 나타내며 나의 세상경험에 달렸다. 하지만 내 정체성이 내 운명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 P307

한나가 살면서 딱 한 번 스스로 정체성을 밝힌 것은, 유대인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야 했을 때였다. 그리고 당시의 한나는 오로지 시오니즘만이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나가 시오니즘을 지지한 데는 어릴 때 들었던 어머니 말씀의 영향이 컸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놀림받았다면 유대인으로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한나는 민족에 대한 사랑은 알지 못했으며, 그러한 개념이 주는 이념적 자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P307

여성으로 그리고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도 한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게 세상이 말하는 그녀의 정체성이었다. 한나는 민족에대한 사랑이 없다는 게르솜 숄렘의 비난을 부인하지 않았다. 민족을사랑하라는 요구는 경험 세상은 보지 말라는 일종의 맹목적 사랑을요구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이러한 한나의 입장에 한가지 모순이 있다면, 한나처럼 비판하고 판단하려면 그 대상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한나가 말하는 세계 사랑에 숨은 뜻이기도 하다. 악을 못 본체하며 선만 취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한나의 생각과 행동이 그녀의 정체성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는데, 한나는 이런 말을 몹시 싫어했다. 한나의 삶을 잠깐만 들여다봐도, 어느 누구도 한나에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 말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P308

한나의 저서를 공공연하게 매도한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새커와토론할 때 그녀는 평소처럼 재치 있게 응수했다.
"어려운 건 질색인데, 제가 그런 사람일까봐 겁나요."
엘리자베스 영-브뤼엘이 쓴 《한나 아렌트 전기: 세계 사랑을 위하여》가 큰 인기를 끌면서 1980년대 초부터 한나의 유작과 편지가엄청나게 출간되고, 독자들은 이를 통해 한나의 삶과 사상에 가까워졌다. 번역서를 비롯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한나의 글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소문의 여신 파마의 야누스적 판단을 부채질한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끝없는 논쟁을 낳고, 새로운 독자들에게 아낌없는 영감을 주는 동시에 그만큼 분노를 샀다. - P308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한나의 말대로 우리는 새로운 현상이나타나는 21세기를 살아가면서 눈앞에 놓인 것과 똑바로 마주해야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한나가 살던 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한나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은, 이 세상을 끊임없이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이 한계를 설정하며, 다시 배열하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언어로 새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나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나무 책상 너머 파란 타자기 앞에 서서 손에는 커다란 은빛 가위와 스카치테이프를 든 채, 이해 욕구를 반짝이며 텍스트처럼 보이는무언가를 만드는 한나를 상상해보기 바란다. - P309

한나가 말했듯 글을 쓰려면 모습을 감추고 고독의 영역에 들어가야 한다. 나의 예고 없는 긴 부재를 참아준 가족과 친구들, 수전 길레스피Susan Gillespie, 마르크 구츠머 Mark Gutzmer, 클라라 즈위클KlaraZwickl, 부모님, 엘리 Eli, 스콧Scott, 알렉산드라 Alexandra, 리 Lee, 소피아Sophia, 잭슨 Jackson, 크리스토퍼 Christopher, 비비안vivian, 루스Ruth, 이자벨로즈 수더비 힐Isabel Rose Sutherby Hill에게 사랑의 말을 전한다.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너이길 바라는 것"이라는 한나의 통찰력은 토머스 루크 바트셰어 Thomas Luke Bartscherer, 당신을 위한 거야. - P3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