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의미에서 이런 문학은 이상향의 문학(근본적으로 잘못된 점이 없는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고, 따라서 주인공(건강하고 경제적 기반을 갖췄으며 매인 데가 없는 인물)이 가벼운 모험을 찾아 나설 수 있다. 이상향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자기 자신의 생각, 동료들의 성격,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주변 환경 정도다. 안타깝게도 이런 장거리 여행 전문 작가가 지루하지 않은 사유를 펼치는 경우는 별로 없고, 그 사람과 한블록을 함께 걷기가 지루하다면 그 사람이 6개월을 걸은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점이 멀리까지 걸어갔다는 사실뿐인 사람에게 걷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청해 듣는 것은 파이 먹기 대회에서 우승을 한 것이 유일한 이력인 사람에게 음식에 대한조언을 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양보다 질이다. 하지만 뮤어는 질도 뛰어나다.  - P208

자신을 둘러싼 자연계의 예리한 관찰자인 한편, 수시로 열광에빠지는 관찰자인 뮤어는 자기가 왜 걷는지에 대해 『멕시코 만까지 걸어서 1000마일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몸은 튼튼한데 돈은 없고, 내가 좋아하는 식물 연구를 실컷 하려면 걷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은 굳이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뮤어는 역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보행자 가운데 한 명이면서도 좀체 보행 그 자체를 주제로 삼지 않는다. 보행 수필과 자연 수필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자연 수필에서는 보행이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고 나온다고해도 기껏해야 배경, 즉 눈앞의 자연과 만나게 해준 수단일 뿐 주제로 다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육체과 영혼이 주변 환경 속으로 사라져 없어지는 것 같다고 할까. 다만 뮤어의 글에서는 뮤어의 육체가 다시 나타나는 때가 있다. 이상향 문학의 주인공이 누리는 행운이 고갈될 때, 돈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굶주릴 때, 그리고 나중에 중병에 걸렸을 때가 그 - P208

것이다. 소로의 보행 기록들은 보행 수필이라기보다는 자연 수필, 곧 자가를 둘러싼 자연과 그 속을 걷는 자기의 경험을 똑같이 과학적으로 관찰하는 종류의 글이다.
뮤어가 그렇게 걸은 지 17년이 지났을 때, 찰스 루미스(Charles F.Lammis)라는 또 한 명의 이십 대 청년이 더 먼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신시내티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미국의 떠돌이(TrampAlons the Continent)』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 걸어가? 기차 노선이 없는 것도 아니고, 풀만[Pullman, 안락한 설비가 갖춰진 특별 객차옮긴]도 많은데, 걸어갈 이유가 없잖아? 오하이오에서 캘리포니아까지 걸어가겠다는 나의 말에 정말 많은 친구들이 던진 질문이었다. 걷는 즐거움을 위한여행 중 기록상으로 가장 긴 이야기 앞에서 독자들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걷는 기쁨에 대한생각과 함께 친구들, 독자, 기록에 대한 생각이 있다는 뜻이다. - P209

하지만 그가 내놓는 대답은 좀 다르다. "내가 추구한 것은 시간이나 돈이 아니었다. 내가 추구한 것은 생명이었다. 그것은 건강 지상주의자가 추구하는한심한 생명이 아니라(나는 완벽하게 건강했고, 운동선수로서 체력이 단련돼 있다.), 좀 더 참된 의미의 생명, 좀 더 폭넓고 좋은 의미의 생명, 곧 사회의안타까운 장벽들을 넘어선 곳에서 완벽한 육체와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 느껴지는 그 용솟음치는 기쁨이었다. [………] 나는 미국인이지만 그때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잘 몰랐고, 잘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미국을 잘 모른다." 79쪽을 더 읽고 나면, 그가 잠시 동행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람은 긴 여행을 통틀어 내가 만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진짜 보행자였다. 그런 사람과 함께수 킬로미터를 걸으며 얼어붙은 길을 이야기로 녹이는 일에는 얼얼한 묘 - P209

정원에서 자연으로미가 있었다." 허풍이 심한 루미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터프함이 서부의 총잡이도 이기고 방울뱀도 이기고 눈보라도 이긴다. 심각한 트웨인풍(風) 농담은 불발로 끝날 때가 많다. 반면에 남부 사람들과 땅에 대한커다란 애정, 그리고 자기를 깎아내리는 일화들은 장점에 속한다.(그 당시만 해도 남부에 애정을 표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여하간 이 책이 터프함과 길 찾기 능력과 적응력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인 것은 분명한다. 북미의 장거리 도보 여행은 신사들의 도보 유람과는 완전히 달랐다. 잉글랜드에서하루 종일 걷는다면 술집이나 여관(요즘은 호스텔)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계속 걷는다면 오지 한복판에서 밤을 보낼 가능성이 높고,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정도는 고속도로와 적대적인 도심 등 잉글랜드와는 스케일이 다르게 꺼림칙한 공간들을 맞닥뜨릴 것이다. - P210

이런 장거리 도보 여행은 세 가지 동기의 결합인 듯하다. 장소의 자연적·사회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기록을 세우는 것. 아주 긴 여행은 일종의 순례로 여겨질 때가 많다. 달리 말하자면, 장거리 여행이 영적 발견이나 실리적 발견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자 일종의 믿음 내지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기능하는 것이다. 또 여행이 흔해지면서 여행 작가들이 더 극단적인 경험, 더 멀리 있는 장소를찾아 나서기도 했다. 그런 유형의 글을 보면, 여행한 사람보다는 여행 자체가 이례적이어야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전제를 내포한다.(버지니아 울프는 연필을 사러 나갔던 런던의 어느 날 밤에 대한 뛰어난 수필을 썼고, 제임스 조이스는 어느 땅딸막한 광고업자가 더블린의 길거리를 걸어 다닌 이야기로 20세기 최고의 소설을 썼지만 말이다.) 작가에게 장거리 도보 여행은 내러티브의 연속성을 마련하는 쉬운 방법이다. 내가 이 책 앞부분에서 말했듯 한 번 걸어가는 길이 한 편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면, 계속 걸어가는 일은 일관성 있는 - P210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아주 오래 걸어가는 길은 긴 책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요즘에 나오는 책들의 논리인데, 아주 틀린 논리는 아니다. 걸을 때는눈앞에 나타난 것들을 그냥 뛰어넘기보다 자세하게 관찰하게 되고, 많은일을 온몸으로 겪게 되고, 현지 사람들이나 장소들과 접촉하게 되기 때문이다.한편 걷는 일 자체에 온 힘을 쏟아붓는 탓에 주위 환경에는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도보 여행자도 있다. - P211

 "매일 30킬로미터씩 날마다 몇달을 걸어가다보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나중에 되돌아보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것들이 있다. 일례로 나는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일과 만났던 모든 사람을 세세하고 선명하게 기억했다. 내가 나눴던 모든 대화 엿들었던 모든단어 하나하나가 기억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유년 시절까지 기억났다. 이런 식으로 나는 과거의 사건들을 정서적인 거리를 두고 돌아볼 수있었다. 마치 이런 일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나는오래전에 죽은, 잊고 있었던 사람을 다시 발견하고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행복했다. 행복했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그녀는 우리를 철학자의 영역, 걷기를 다루는 수필가의 영역으로데려가며 걷기와 정신의 관계를 알려준다. 그녀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거의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극단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 P213

캠벨이 걷는 이유는 많은 경우 명분 있는 모금을 위해서였다. 그 점에서는 걷기 마라톤 참가자들과 비슷한 데가 있다.(캠벨이 스태프 인건비, 홍보비 등 종종 크게 불어나는 여행경비 마련을 위해서 명분을 물색한 것이라고 말할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하루에 80킬로미터를 걷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또 그렇게 걷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음습한 날씨에 황량한 도로를 날마다 그렇게 걸어서 오스트레일리아 아웃백을 도파한다는 것은 지독한 일이다. 그 일을 캠벨은 해냈다. 95일 만에 5000킬로미터 오스트레일리아 횡단에 성공한 것은 세계 신기록이었다. 그녀의 두 다리는 목표를 향해서 가차 없이 매진하지만, 그렇게 걸은 후에 남는 것은 걸었다는 사실밖에 없다. 아름다운 풍경도, 즐거움도 없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거의 없다. 12만8000킬로미터를 걸어가는 그녀의 목표는 자신을 옥죄는 고통을 두 발로 털어내고 자기 자신을찾는 것이지만, 그녀가 자기의 가치를 설파하는 대목들은 걱정스러우리만치 불투명하다.  - P216

캠벨은 우리에게 그냥 걷기만 하는 순수한 보행이 어떤 것인지를보여준다. 보행을 중요한 행위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불순함이다. 보행이 풍경, 생각, 만남과 불순하게 뒤섞일 때, 걸음을 옮기는 육체는 마음과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그럴 때 세상이 마음에 스며든다. 이런 책은 역설적으로 보행이라는 주제가 다른 주제로 미끄러지기쉽다는 것, 걷는 것 자체에 집중하면서 다른 것들을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걸어가는 사람의 성격, 걸어가면서 만난 사람들, 걸어갈 때 보이는 자연, 걸어가는 길에 해낸 일 등을 담고 있는 보행에 대한글은 다른 어떤 것에 대한 글일 때가 많다. 보행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는 글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을 걸어 다니는 이유들의 역사, 또한 구불구불 이어져온 200년의 역사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보행 수필과 여행 문학의 정전들로 구성되어 있다.  - P217

보행 문화가 이렇게 걸어왔다면, 우리 셋은 숲을 벗어나서 시내가흐르는 아름다운 고원들을 가로질렀다. 1968년에 시에라 클럽의 마지막등반 여행 몇 건을 이끈 것이 마이클과 발레리였다. 전설적인 등산가이자괴팍한 ‘산속의 노인‘ 노먼 클라이드(Norman Clyde)가 아직 참여하는시기였지만, 단체 캠핑과 단체 등산의 여파가 시에라 클럽을 곤혹스럽게만들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했다. 등반 여행 전통이 막을 내린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우리 셋이 모노 패스로 가는 길에 본 들꽃은 내가 그지점에서 500킬로미터 미만 거리에 있는 마린 헤드랜즈에서 3월에 보았던 것과 같은 종류였다. - P251

즐거움을 위해 걷는 일은 인간의 가능성을 구성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되었고, 그 가능성의 실현을 경험한 사람들 가운데 몇몇이 세상을 바꾸는 작업에 나섰다. 그 결과로 세상은 일종의 정원, 요컨대 모두가 출입할수 있는 담장 없는 정원이 되었다. 보행 단체들이 발로 그린 땅은 나라마 - P272

다 다른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다. 미국에는 곳곳에 조성된 국립공원들과 함께 광범위한 정치운동으로 만들어진 지형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지좋은 21개국으로 퍼져나가는 수백 개의 숙소와 함께, 각양각색의 환경주의 취향을 가진 50만 명 이상의 야외 애호가들이 만들어냈다. 영국의 지좋은 2만 2500킬로미터의 산길과 함께 지주를 대하는 공격적 태도로 이루어져 있다. 보행이 지금의 세상을 형성해온 세력 중 하나라고 할 때, 보행이라는 세력은 경제 세력에 맞서는 경우가 많았다. - P273

자유롭게 걸을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또 있었다. 이 장에서는 오직 자연과 시골 공간을 위해 싸운 사람들을 주로 다루었지만,도심의 공원 조성과 관련해서도 풍요로운 역사가 있다. 예컨대 센트럴 파크는 뉴욕을 떠날 만한 여유가 없는 도심 주민에게 전원의 미덕을 선사한다는 민주적·낭만적 기획이었다. 한편 자유로운 육체는 자유로운 시간이나 자유롭게 걸을 장소에 비해서 미묘한 주제다. 초창기 시에라 클럽에서 샤프롱을 동반하지 않은 여자들이 반바지를 입고 등산을 하거나 솔가지를 모아 침대로 삼았듯, 캘리포니아에서는 육체의 자유를 위해 걸었다기보다 걸음으로써 육체가 자유로워졌다. 의복이 여자를 얕은 호흡, 좁 - P273

은 보폭, 불안정한 균형이라는 예의범절 안에 가두어두는 감옥의 역할을하는 빅토리아 시대였기 때문이다. 또 초창기 독일과 오스트리아 야외활동 단체들의 나체주의에서도 알 수 있듯, 어떤 사람들에게는 산에 가는 일이 에로스를 포함한 자연스러움 전체를 받아들이는 포괄적 기획의일부였다. 나체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옷은 몸이 드러나는 편한 반바지였다. 한편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활보할 권리를 위해 투쟁했는지는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영국 노동자계급의상태를 읽어보기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공장 노동자들의육체에 기형과 질병을 초래할 정도로 처참한 생활환경과 노동환경을 고발한다. 요컨대 자연 속을 걷는 일은 중류층의 육체를 집과 사무실에 갇혀 있는 시대착오적 물건으로 변형시키는 환경, 노동자의 육체는 공장의기계 부품으로 변형시키는 환경에 대한 거부반응이었다.
자연으로 걸어 나간 이 역사가 시작하는 지점에서 루소와 워즈워스라는 두 작가는 사회적 자유와 자연에 대한 사랑을 연결시켰다. 이후의 보행 문화는 보이스카우트, 야외장비 산업 등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지만, 다행히도 루소와 워즈워스는 거기까지 내다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보행 단체들은 보행의 이상이 자연 속을 막힘없이 자유롭게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 이상을 심어주었다. - P274

오랫동안 뉴멕시코의 시골에서 살던 나에게는 샌프란시스코가 낯설게느껴졌다. 그해 봄의 풍요로움까지도 도회적으로 느껴졌다. 화려한 도시불빛의 유혹을 노래하는 모든 컨트리 음악을 그제야 비로소 이해할 수있었다. 5월의 향기로운 낮과 밤을 여기저기 걸어 다니면서 보냈다. 산책이 수많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문 밖을 나서기만 하면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전율하기도 했다. 모든건물 입구, 모든 가게 입구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출구인 듯했다. 다양한인생의 가능성이 압축돼 있는 곳, 다양함이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일본의 시, 멕시코의 역사, 러시아의 소설이 아무렇게나 꽂힐 수있는 책꽂이처럼, 내가 사는 도시의 건물들에는 선(禪) 연구소, 오순절교회, 문신 시술소, 채소 가게, 부리토 가게, 극장, 딤섬 가게가 들어차 있었다. 더없이 평범한 것들이 내게는 신기해 보였고, 길거리의 사람들은나의 삶과 아주 비슷하기도 하고 전혀 다르기도 한 삶의 단면들을 무수히 엿보게 해주었다. - P277

면서 바구니를 만들 만한 줄기가 있는지 살펴보듯이, 도시 보행자는 늦게까지 문을 여는 식료품 가게나 구두 수선 가게 같은 곳을 기억해둘 수도 있고, 먼 길을 돌아서 우체국에 들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시골 보행자는 흔히 전체 풍경, 전체적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되고 그때의 풍경은완만하게 변화하는 연속체로 펼쳐진다. 예컨대 멀리서 산을 바라보면서걷다가 그 산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나, 숲에서 나무가 듬성듬성해지다가 어느새 초원이 될 때의 풍경처럼 말이다. 반면 도시 보행자는 특정한 것들(기회들, 사람들, 필요한 물건들을 찾아다니게 되고 그때의 풍경은 급한 변화 속에 펼쳐진다. 물론 도시가 원시생활과 더 비슷하다는말에는 부정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인간이 아닌 포식자의 개체 수가 북아메리카에서는 급격히 감소했고 유럽에서는 아예 멸종했지만, 그런 지역에서도 도시 보행자는 인간 포식자가 나타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이 계속 (최소한 특정 시간과 특정 장소에서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 P282

고향으로 돌아와서 처음 몇 달 동안 모든 것에 너무 매료된 나는 산책 일기를 써나갔다. 그 멋진 여름의 어느 날, 나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일곱 시간 동안 거의 꼬박 책상 앞에 앉아 있었음을 갑자기 깨달음.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등은 굽고. 필모어 스트리트 위쪽 클레이 극장에 갈까 하고 집을 나옴. 가는 길에 브로더릭 스트리트에서 처음 보는 길 하나를 발견함. 임대주택 단지 근처인데, 예쁜 단층집들이 옛날 빅토리아 시대풍이었음. 너무 잘 아는 장소에서 모르는 장소가 튀어나올 때 언제나그렇듯 기분이 좋았음. 「각자의 고양이를 찾아서(Chacun cherche son chat)」라는 영화를 봄. 바스티유 광장 동네에서 혼자 사는 젊은 파리지엔느가사라진 고양이를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웃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 P282

이야기. 평범한 사건들,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관계들, 건물의 옥상들, 불분명하게 발음되는 속어들로 가득 극장을 나오니 들뜬 기분. 검은밤, 진주색 안개. 빠른 걸음으로 돌아오는 길. 일단 캘리포니아 스트리트를 따라 걸으면서 한 쌍의 남녀를 지나감. 여자는 평범, 남자는 고급 갈색양복 차림에 오다리. 한동안 다리에 부목을 댔었나. 그렇게 버스를 그냥보냄. 디비자데로 스트리트에서 또 그 버스를 그냥 보냄. 어느 골동품 가게 진열창 앞에서 걸음을 늦추고 커다란 꽃병을 구경함. 꽃병은 크림색,
꽃병에 그려진 중국 현자들은 파란색. 길을 좀 더 내려오다 보니 어느 가게 앞에서 머리가 벗겨진 중국 남자가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진열장 높이로 안아 올림. 가게 안에 있는 여자가 진열창 너머로 아이와 장난침, 내가 너무 웃어 보였는지 그 사람들이 당황함. 밤 산책의 인공적 조명과 자연적 어둠이 낮의 연속체를 연극 속 활인화, 비네트, 세트피스로 탈바꿈시키는 방식들. 가로등을 하나하나 지나가는 나의 그림자가 커졌다 작아졌다 할 때의 어두운 설렘. 길을 건너갈 때 신호등이 바뀌길래 차를 피하느라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달리다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단숨에 몇블록을 더 뛰어감. 더워지는 것이 단점. - P283

디비자데로 스트리트를 쭉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들, 문 연 곳들을주시(주류판매점, 담배 가게), 내가 사는 스트리트와 만남. 교차로에 서 있는데 젊은 흑인 남자(와치캡, 검은 옷)가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내려오길래 만약을 위해서 주위를 둘러봄. 무슨 편견 때문이 아니라 그가 빅토리아 여왕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나한테 질주해왔다면 신경이 쓰였을것 같음. 그는 내가 주춤주춤하는 것을 보더니 더없이 상냥한 청년의 목소리로 ‘쫓아온 거 아니고요, 약속에 늦어서.‘라고 말하면서 달려가고,
나는 ‘조심해서 가요.‘라고 말함. 그가 내가 가는 길로 앞서 가고 나도 생 - P283

각을 정리할 여유가 생겨서, ‘의심하는 사람같이 보였으면 미안한데, 너무 빨리 달려와서.‘라고 말함. 그가 웃고 나도 웃음. 그러고 나니까 최근에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마주쳤던 일들이 다 떠오름. 그냥 인사해오는 것을 보고 말썽을 일으키려는 줄로 오해할 뻔 했던 일들. 이제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게 된 데 뿌듯함을 느낌. 그러면서 고개를 들었는데 어느 건물 꼭대기 층 창문에 붙어 있는 만 레이 ((Man Ray)의 동정을살필 시간 (A Pheure de Pobservatoire: les Amoureux)」(해 지는 하늘에 길쭉한 붉은색 입술이 떠 있는 그림)의 포스터가 보임. 어젯밤인가 그젯밤에 시내 어느 다른 건물 창문에서 본 그림과 똑같음. 오늘밤에 본 그림이 더 큼. 오늘밤이 더 활기참, 「동정을 살필 시간을 두 번 보다니 신기함. 집에 오는 데 20분도 안걸림." - P284

길거리는 건물이 없는 빈 공간이다. 집 한 채는 빈 공간이라는 바다에 떠있는 섬이다. 도시보다 앞서 존재한 소읍은 그저 그 바다에 떠 있는 군도였다. 그러나 건물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군도는 육지가 되었고, 바다였던 빈 공간은 넓은 땅 사이로 흐르는 강, 운하, 개울이 되었다. 예전 사람들이 시골 땅이라는 바다를 아무렇게나 지나다녔다면, 이제 사람들은거리를 따라 지나다니게 되었다. 물길의 폭이 줄어들면 물살의 강도와속도가 늘어나듯, 빈 공간이었던 곳이 거리가 되면 보행자들의 흐름이방향과 세기를 갖게 된다. 대도시에서는 장소뿐 아니라 공간도 설계 대상이다. 실내에서 먹거나 자거나 신발을 만들거나 사랑을 하거나 음악을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걷거나 주변을 둘러보거나 공공장소에서 시간을보내는 것이 주요한 설계 목적이라는 뜻이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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