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는 외로움을 독일어로 ‘verlassenheit‘라고 썼는데, 이는 버려진 상태 또는 버림받음을 뜻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사람은 인간으로서 행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새롭게 나아가지도 못한다. 전체주의는 사람들의 사유 능력 및 그들 자신과 맺는 관계를망가뜨려, 인간 사이에 있는 공간을 파괴한다. 내 생각에만 사로잡혀고립되면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외로움은 사유의 필수 조건인 고독의 공간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 P198
한나는 유럽의 새로자연의 색과 건축물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에 깊이 감동한 한나는풍경에 감탄해서 <프랑스 드라이브Drive through France〉라는 시를 블뤼허에게 써 보냈다.
땅은 곳곳에 시를 쓴다. 가지런히 나무를 땋아놓고 우리더러 나아가라고 한다. 이 세상 곳곳을.
활짝 핀 꽃은 바람을 맞으며 기쁨을 누리고 풀은 연하고 나긋한 바닥에 싹을 틔우며 하늘은 파란색으로 물들어 밝게 인사하고 태양은 부드러운 체인처럼 회전한다.
한껏 취한 사람들… 땅, 하늘, 햇살, 나무… 봄마다 새로 태어나 전지전능한 놀이 속에서 즐거워한다. - P199
미국에 돌아온 한나는 상원의원 매카시(극단적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열풍을 몰고 온 미국 정치가)가 한창 인기를 구가할 때 마르크시즘을 가르치고 강의했다. 지식인들이 냉담한 시선을 보내도 한나는 마르크시즘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반공산주의운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한나는 ‘전직 공산주의자‘라는 글을 발표해, 전직 공산주의자(공산주의국가를 건립했지만 독재자가 된 레닌과 스탈린을 지칭함)와 과거 공산주의자(칼마르크스 등을 지칭함)를 구분했다. 한나에 따르면 전직 공산주의자는 이데올로기는 바꿨으나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 즉 계급은 유지한 반면, 과거 공산주의자는 방식과 목표는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하필이면 매카시즘 열풍이 가장 뜨거울 때 이런 대담한 글을 발표하는 건 웬만한 용기로는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법무장관이 ‘국적이 다른 시민‘을 조사해 불온하다고 판단되면 추방하겠다고 선언한상황이었다. 하지만 한나는 결코 논쟁을 피하거나 이데올로기의 요구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 P200
1953년 가을, 한나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비평‘에 관한 크리스찬가우스 세미나(프린스턴대학교에서 연 2회 개최) 진행을 요청받았다. 지금껏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여성이 이 세미나를 진행한 적은 없었다. 교수진들과 학생들은 기존 분위기를 바꿀 여성 교수가 와서 기뻤지만 한나는 그런 식의 ‘마스코트‘ 취급이 불쾌했다. 쿠르트 블러멘펠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나는 말했다. "폐회식에서 조금 술에 취했지만, 점잔 떨면서 품위 있는 척하는 남자들에게 특별한 유대인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려줬어요. 그리고 내가 특별한 여성임을 이 자리에서 필연적으로 알게 됐다는사실을 똑똑히 전달하려고 애썼죠." 한나는 ‘특별한 유대인‘으로 취급받고 싶지도 않았고 ‘특별한 여성‘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 P201
한나는 하나의 정치 문제만 다루지 않았고, 정치철학을 논하지않았으며, 당대 정치 문제의 해결방법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삶의 필수 활동을 논하고 이 활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폈다. 시인 위스턴 휴 오든은 《인간의 조건》을 읽고 1959년 잡지 《인카운터 Encounter》에 비평을 게재했다. 여기서 그는 이 책이 특별히 그를위해서 씌어진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평생 기다려온 세상을 저자가 구현해준 느낌이다. ‘사유하게 하는‘ 책의 경우 내가 던진 질문에 스스로 정확한 답을 내놓은기분이다." 《인간의 조건》은 사유활동 그 자체를 보여주는 책이다. - P205
1950년대에는 자동화와 핵전쟁에 대한 공포로 미래가 암울한색채를 띠었다. "역사상 인간은 항상 미래를 불안해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내가 속한 계급이나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서도 하지만 지구상에서 현재와 미래를 위한 인간의 모든 노력이 지금처럼 이토록 많은 사람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적은 거의 없었다." 오든은 《인간의 조건》을 지구, 세상, 노동, 작업, 행위, 개인, 공공, 사회, 정치, 약속, 용서가 무엇인지 거의가 그 개념을 정의하는사전처럼 읽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그 기저에는 개념을 구별하는 장치가 있다. 이 장치는 한나가 인간의 조건으로 꼽는 세 가지 필수 활동, 즉노 - P205
동labour, 작업 work, 행위action에 초점을 맞춘다. 이 세가지 필수 활동을 한가지 기본 조건으로 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생명을 부여받는다. 노동이란 인간의 조건은 생명유지 활동 그자체이며 인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한다. 작업이란 인간의 조건은 세속적인 성질로 인간이 존재하는 데 자연스러운 성질은 아니다. 다시 말해 작업은 인위적인 것이다. 그리고 "다원성은 인간 행위의 조건이다. 그 이유는 우리인간이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 살았던, 지금 살고있는, 그리고 앞으로 태어나 살아갈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없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이 똑같다는 말이다"." 노동, 작업, 행위,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각각의 조건들은 "태어나고 죽는 것, 즉 탄생과 죽음이라는 실존적이고 근본적인 조건들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 P206
이러한 구별에서 우리는 한나가 ‘조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다양한 방식을 볼 수 있다. 한나는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들을 언급하는데,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우리를 어떻게 조건 짓는지, 우리가접하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 곧 인간 실존의 조건이 되는지 사유한다 한나는 노동, 작업, 행위를 서로 구분했을 뿐 아니라 개인, 사회,공공을 공간적으로 구분했다. 우리가 넘나드는 삶의 각기 다른 영역들로서 이 공간들을 생각해보려 함이었다. 한나는 이 공간들을 독일어로 raumen 또는 ‘rooms‘라고 번역했다(raumen과 room은 ‘방‘을 뜻하는 단어들), 현시대에 인간의 조건은 자유에 달렸다. 자유를 위해서는삶의 각기 다른 영역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현대사회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다양한 활동과 그에 상응하는 각각의 공간들이 더 이상 구 - P206
분되지 않았다. 이는 우리가 더 이상 삶의 다양한 영역들을 자유롭게오가지도, 인간 활동에 참여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것이사회적인 것으로 전락했고 모든 활동이 단지 소비를 위한 노동 활동이 되어버렸다. 대중사회가 등장하고 그것이 어떻게 모든 일을 노동으로 전환시키는지 지켜보며 한나는 ‘현대사회의 세계소외‘라는 하나의 개념을만들었다. 이를 인간이 지구에서 우주로 도피하고 세계를 떠나 자기자신에게로 도피하는 이중 도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사회화, 소비사회의 시작, 공유지 상실은 모두 부의 축적을통해서 일어난다. 부의 축적을 위해 "인간의 세계와 바로 그 세계성이 제물이 된다" - P207
<전체주의의 기원>이 사람들을 한곳에 가두어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드는 전체주의라는 철의 속박ironband을 자세히 다룬다면 <인간의 조건》은 사회적인 것의 부상으로 인해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공적영역과 사적영역간) 이동의 자유가 상실되고 있는지 살핀다. 현대 대중사회가 출현하면서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을 구분하는능력이 약화되었고, 그에 따라 상식이 무너지고 서로 공유하는 세계가 사라졌다. 한나는 장자크 루소의 <고백록》(1782)과 르네 데카르트의 <명상록》(1641)을 바탕으로 현대화가 어떻게 인간을 내면으로 도피시켜 새로운 유형의 개인주의를 만들어냈는지 분석했다. 이런 생각의 변화는 인간에게 자신의 감각적 세상 경험을 더 이상 믿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 대신 사람들에게는 세계가 인식 가능하고, 정량화 - P207
할 수 있고, 복제 가능한 대상으로 변모했다. 인간 조건의 기본 특징인 다원성은 일원화되었고, 공유하는 세상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의미가 있을 수 없으며, 나를 나타내고 인정받을 수 있는 공적영역이 없기 때문에 기억도 있을 수 없다. 한나가 말하길,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더 이상 위대함이나 영속성을 추구하지 않고 인간의 조건에서 완전히 벗어나려고 안간힘을쓴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이 온전하게 존재하기 위해서는공적영역에 나아가 타인 앞에 서야 하고, 사유라는 걸 하기 위해서는고독 속에서 사유하는 사적영역을 가져야 한다. 그 고독의 공간 안에서만 세속의 일들을 내적 경험으로 치환할 수 있다. ‘이 내적 경험은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리고 그 진실의 일부는 우리가 함께지구에 살고 공동으로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 P208
현대사회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자유와 정치적 행위다.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사회화는 자유를 위해 필요한, 이 두 영역을 구분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뜻한다. 이로 인해 자유롭게 이동하는 능력도 상실되었다. 모든 게 사회적인 것이 될 때 혹은 모든 게 정치적인 것이 될 때 움직일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한나는 자유를 바다에 나타나는 섬이나 사막의 오아시스로 표현했다. 5한나는 1956년 4월 시카고대학교에서 ‘마르크시즘의 전체주의적 요소‘를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서 일련의 강의를 진행했는데, 《인간의 조건》은 이 강의들에서 탄생했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한나는 전체주의 출현 이전의 철학적 사상의 변천 과정을 다루었고, 20세 - P208
기 대재앙을 초래하는 데 기여했을지도 모를 마르크스 작품들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했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으면서 그가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 서구 전통철학을 바탕으로 글을 썼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나는 그 누구도 마르크스를 전체주의의 아버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 이전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기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서구의 정치철학 전통을 깨고 전체주의라는새로운 장을 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구의 정치철학 전통이 결코그런 상황을 위한 게 아니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가 그 전통의 끈을 끊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 P209
한나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카를 야스퍼스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야스퍼스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한 에세이를 학술지 <모나트Der Monat》에 발표한 직후였다. 이 에세이의 맥락이 야스퍼스의 전작이자 마르크스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진리에 대하여 Von derWahrheit〉와 같다고 생각한 한나는 야스퍼스에게 말했다. "선생님 앞에서 마르크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싶어요. 선생님이 틀렸다는 건 아닙니다."" 정의와 자유에 대해 한나와 야스퍼스는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야스퍼스와 한나의 남편 블뤼허는 마르크스의 계획이 정의가 아닌 노동해방과 관련된다고 생각했다. 한나는 마르크스를 칸트와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고자 했는데, 마르크스의 계획이 정의사회 구현이었다고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P209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에서 열한번째 테제leveth Thesis를 통해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할 뿐이고, 핵심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나가 마르크스를 비판한 주된 이유는 마르크스가 노동 활동을인간 조건의 근본적 활동으로 격상시켰다는 것이었다. "노동은 인간의 창조자다." 마르크스의 이 한 문장은 한나에게 모든 걸 말해주었다. 한나는노동, 작업, 행위라는 세 가지를 각각 구분하면서 우리를 자연 그리고우리의 동물 상태에 묶는 것이 노동이라고 가정한다. 한나에 따르면 좋은 삶이란 노동 활동만으로는 얻을 수 없으며, 노동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공적영역으로 나아가 말과 행동으로 타인 앞에 모습을드러낼 때 비로소 가능하다. - P211
한나는 《인간의 조건》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제목을 ‘활동적삶 또는 행동하는 삶에 대해‘로 바꾸었다. 한나는 지금까지 활동적삶의 근간이 되는 활동들이 주로 관조하는 삶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왔다고 주장했다. 한나는 더 나아가 전문 사상가들의 전통적 일로서의 관조하는 삶과 어떤 전문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의 정신의삶 사이의 구분을 이끌어낸다. 한나의 연구 일부는 세상속에서의 인간 경험과 활동이라는 관점에서 활동적 삶을 고려하는 것이었다. - P211
<인간의 조건》 서문 말미에서 한나는 이렇게 조언했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10이 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내 발밑의 세계가 아닌 우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향한 비난이며, 잠시 멈추고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인간 조건의 활동에 대한 생각에 다가갈 수 있을지 고려하라는 간청이다. 한나의 1955년 8월 사유 일기를 보면 첫 부분에 이런 글이 있다. "하이데거는 틀렸다. 인간은 ‘세상에‘ ‘던져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간은 지구상에서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은 던져진 게 아니라 정확하게 나아갈 방향을 갖고 있는 존재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그의 지속성이 생겨나고 그가 속해 있는 길이 드러난다." - P212
한나는 하이데거의 ‘던져짐‘ 개념을 자포자기로 보고 거부했다. 세상에 존재한다는 건 함께 있다는 뜻이며 이는 정확히 하이데거가오랫동안 제시하지 못한 생각이다. 어떤 면에서 《인간의 조건》은 하이데거의 사유 개념에 대한 거부이자 비판으로, 한나는 마지막 저서에서 다시 한번 똑같이 비판했다. - P212
편지 중간에 나오는 이 구절에 한나는 ‘우울한 작업‘ 중이라고덧붙였다. 먼저 세상을 떠난 두 친구 헤르만 브로흐와 발데마르 구리안(러시아 출신 유대인 정치학자)의 작품 소개글을 쓰는 중이었다. 이 말을 통해 한나가 친구의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였는지 엿볼수 있다. 그런 커다란 상실을 겪으면서도 이 세계를 사랑한다는 건어떤 의미일까? 한나가 ‘정치 이론의 역사‘를 주제로 강의했던 시절의 강의 노트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정치를 논하는 작가는 이 세계를, 인간사pragmata ton athropon뒤얽힌 이 세계를 사랑한다." 이 세계를 사랑한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혹은 한나의 표현에 따르면 "실제로 벌어진일들을 똑바로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모르 문디는 한나가 《인간의 조건》 서문에 적은 "멈추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구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P214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한쪽으로 비켜서서 균형감과 사유를 위한 고독의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각안에서 자아 성찰의 한 형태를 볼 수 있다. 이 세계를 사랑하려면 먼저 이 세계를 살펴야 한다한나에게 그것은 나의 경험을 들려주려면그 경험과 약간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 P215
카프카의 ‘He‘에게 전쟁터는 바로 지구상의 인간 세상이다. 한나는 이를 물리적 전쟁터가 그 자체로 형이상학적 전쟁터에 자리를내준 것으로 이해했다. 한나는 카프카를 이용해 존재와 의미를 융합하는 형이상학의 오류를 바로잡고 있다. 경험 세상과 가까이 있기 위해서는 경험을 바탕으로 사유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이상학적 추측에 빠질 위험이 있다. 한나는 "사유는 직접 겪은 사건들에서 생겨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 알려주는 유일한 이정표인 이 사건들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사유할 때만 비로소 스토리텔링이라는행위를 통해 그들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한나는 사유를 ‘하나 안의 둘‘ 대화, 즉 나 자신과 대화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사유함으로써 자의식이 양심에 호소할 수 있고, 타인이바라보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으며,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 P219
한나의 주장은 《인간의 조건》에서 강조한 사회와 정치의 구분에 기초한다. 한나는 정치적 변화는 힘이 아닌 설득을 통해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나가 이해하는 설득은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설득과 달랐기에, 오해를 불렀다. 한나는 진보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아니었다. 설득에 대한 한나의 이해는 야스퍼스의 철학과 칸트의 판단력비판》에 뿌리를 두고있다. 한나가 이해하는 설득은, 언어의 차이와 다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타인이 바라보는 세상을 자유롭게free 상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할도덕적 의무가 있다. - P222
재판은 처음부터 실망스러웠다. 한나는 재판에서 아이히만이저지른 잔학행위를 다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나가 마주한 건유리 케이지 안에 갇힌 광대였고 "형편없는 연극"" 공연이었다. 끝날 때까지도 아이히만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고, 재판은 이 악인에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유대인의 슬픔에 대한 일종의 역사적 실태 조사"에 가까웠다. 한나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싶었지만 막상 그러지는 못했다. 혹시라도 뭔가를 놓칠지 몰라서다." 1961년 12월 15일 재판이 끝났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에게 저지른 만행‘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후 아이히만 측에서항소를 제기했으나 이스라엘 항소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1962년6월 1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 P232
한나는 1963년 2월 15일부터 3월 16일까지 이 재판에 대한 보고서를 잡지 《뉴요커》에 5회의 시리즈로 실었다. 그해 5월 이 보고서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책으로출간되었다. 한나는 책 말미에 재판부가 내린 판단과 판결을 거부하고 스스로 아이히만에게 판결을 내렸다. - P232
정치는 탁아소 같은 게 아니다. 따라서 정치에서 복종과 지지는같은 말이다. 그리고 유대인 및 다른 수많은 민족과 이 지구를 공유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피고가 지지하고 실행했듯이, 설령 피고와 피고의 상관에게 이 지구에 누가 살고 살 수 없는지 결정할 권한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우리 인류 구성원 가운데 그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상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원치 않음을 밝힌다. 이게당신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할 이유, 바로 유일한 이유이다.
한나는 전쟁범죄를 법적 테두리를 넘어, 인간끼리 지구를 공유하는 문제로 다루었다. 아이히만이 저지른 짓들은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기에 아이히만은 죽어 마땅했다. 즉 아이히만은 인간 조건의 기본 원칙인 다원성을 위반했다. - P234
한나의 판결은 법에 따른 판결이 아니라 아이히만과 그의 재판과정에 대해 스스로 내린 판결이었다. 한나는 정의를 판결의 문제라생각했고 전후 재판이 보여주기식 재판에 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식의 재판에서는 정의를 주장하면서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저지른 범죄를 제대로 따지지 않는다. 한나가하고 싶었던 말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판결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재판 자체는 기록을 제공하고 개인에게 증언 기회를 주려는 목적에서 이용되었다. 증거와 법 위반을 증명하는 증언을통해 개인과 개인의 행동들을 심리하는 것이 전후 재판의 목적이라면아이히만의 재판은 실패했다. 아이히만은 엄밀히 말해서 어떠한 법도 위반하지 않았다. 그저 생기지 말았어야 할 법을 따랐던 것뿐이다. - P234
한나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광대였다. 우스운 모습 때문이 아니라 분별력이 없고 폭넓게 생각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한나는 "악마의 거대함, 악마의 힘에 대한 전설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한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를 인용했다. 브레히트는 "최악의정치범들은 특히 웃음에 노출되고 또 노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에는 비극보다 코미디가 고통을 덜 심각하게 다룬다는 뜻이 숨어 있다. 한나는 "이런 상황에서 고결함을 지키려면" 이 말을 기억하고, 아이히만이 얼마나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든 그를 늘 광대로 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웃음은 나의 자주권을 지키는 수단이 되고악인에게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 방법이 된다. - P239
한나는 법적 문제와 도덕적 문제를 구분했다. 둘은 다르지만 판단력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법적 문제와 도덕적 문제의 구분은 한나가 사유와 판단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중요했다. 엄밀히 말해 나치 정권 아래 자행된 모든 일은 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을 지키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아이히만은 일반적으로 기소될 만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한 행동은 명백히 잘못이었다. 잘못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법적 판단이 아니라 도덕적 판단의 문제다. 법이 아닌 도덕규범을 위반한 사람에게 어떻게 개인의 책임을 물어야 할까? - P240
전체주의 이전의 도덕적 판단 범주는 전체주의가 등장하면서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에 한나의 판단으로는, 아이히만은 사회의 규범적 도덕 질서를 위반한 것이 아니다. 한나는 개인의 책임과정치적 책임을 더욱더 구분하면서 유럽에서 개인적 판단이 전반적으로 어떻게 불가능해졌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선에서 어떻게 모두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한나는 타인의 잘못에 내가 책임을 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즉 내가 하지 않은 일에 죄책감을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잘못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죄책감을 느끼고, 아이히만처럼 모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전혀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 P240
한나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가담한 자들과 저항을 선택한 자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대답은 ‘사유‘였다. 가담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스스로 사유라는 것을 했다. 그들이 그렇게할 수 있었던 것은 더 나은 가치체계를 가졌거나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전체주의 이전의 판단 척도를 여전히 따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들은 어떤 행위를 저지른 후 지금처럼 평화로울 수 있을지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 ‘문이다. ‘동행‘을 거부한 사람들은 스스로 사유한 사람들이었다. - P241
한나는 빈곤 같은 사회 문제는 정치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회 문제는 경제 분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에 대해 읽으면서 사회 문제를 정치로 해결하려 드니폭력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프랑스혁명, 쿠바혁명, 헝가리혁명을 살펴본 한나는 "빈곤 타파는 그 절박함 때문에 언제나 자유 실현보다 우선한다"는 성질을 발견했다. <인간의 조건>에서도 말했듯이의식주가 충족돼야만 자유를 생각할 여력이 생긴다. 한나는 프랑스혁명과 달리 미국혁명은 경제적 불평등에 발목 잡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미국혁명을 이끈 사람들은 평등이 아니라 자유라는 정치 문제를 목표로 삼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혁명적‘이란 단어는 목적이 자유인 혁명에만 붙일 수 있다." - P251
혁명은 자유를 위한 정치 공간을 만들고,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동등한 시민으로 서로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정치 개념은 한나가 이해하는 다원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나가 말하는 다원성은인간 실존 그 자체이며, 행위를 위한 필수 조건인 동시에 차별과 평등을 모두 경험하게 한다. 그런데 행위를 위한 필수 조건인 이 다원성은 사회 평등이 대두되면서 위협받게 되었다.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부상은 사적이익을 공적영역에서 추구하도록 해 정치가 경제적이익과 직결되면서 정치 제도의 붕괴를 이끌었다. 오늘날 무언가를 혁명이라 칭하려면, 한나가 말하길 그 무언가는 혁신적이어야 하고, 정부 및또는 사회의 전체 기본 구조를 변화시킬 만큼 급진적이야 한다. - P251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기꺼이 증언하려는 사람 없이는 어떤 영속성도, 인내도 존재할 수 없고, 어떠한 것도 품을 수 없다."10아이히만 논란은 이해하고 싶은 수많은 질문을 한나에게 불러왔다. 진실의 본질은 무엇인가? 진실이 공공의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을때 정치영역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치영역에서 진실이 무력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크라테스 이래 진실을 말하는 자들은 정치영역 바깥에 서 있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비정치적이고, 권력자에게 도전하는 일이기에 위험하다. 정치에서는 의견만 존재할 수 있다. - P257
주어진 문제를 관찰하며 마음속에서 더 많은 사람의 관점을 떠올릴수록, 내가 그 사람들 처지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지 더자세히 상상할수록, 타인을 대변하는 나의 사고 능력이 더 강해질수록 타당한 결론, 즉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
끝없는 거짓말은 내 발밑의 땅을 앗아가 내가 설 땅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논문은 "진실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답하며 끝난다. "개념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진실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은유적으로 표현하면, 진실은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이고 내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이다."12진실은 이 세상에서 내게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항상 움직이는땅과 하늘과도 같다. - P258
한나는 3월 4일 바젤에서 치른 장례식에 참석해 그를 추도하면서 "야스퍼스의 삶과 글에 관해, 즉 철학자이자 한 시민으로서의 야스퍼스"에 관해 되돌아보았다.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는건 오직 그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뿐입니다. 우리는 그의글들에 의지했지만 잘 아시다시피 그 글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않습니다. 떠난 그가 이 세상에 남긴 것들이지요. 이 세상은 그가오기 전부터 존재했고 그가 떠난 지금도 여전히 제자리에 있습니다. 그가 남긴 글들이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맞을지는 이 세상에 달렸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글들이 한때 살아 있는 삶이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을 모릅니다. 그러기에 잊힐 위험이 있습니다. 그는 가장 무상하고 가장 위대했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말과 유일무 - P268
이했던 행동은 그가 떠남으로써 사라졌지만 그래서 우리가 필요합니다. 그를 생각하는 우리가 그를 생각함으로써 그와의 관계가되살아나고, 그 관계에서 그에 대한 대화가 샘솟고 이 세상에 다시울려 퍼질 겁니다. 떠난 자와의 관계, 우리는 이 관계를 배워야 합니다. 그 시작으로 우리는 지금 여기서 함께 슬픔을 나눕니다.
한나는 야스퍼스의 죽음을 애도하며 자신만의 개인적 시바 Shiva(유대교에서 사별한 부모나 배우자를 위해 일주일간 애도하는 기간)를 가졌다. 애도 기간 내내 한나는 검은색 옷을 입고 밝은색 스카프를 걸쳤다. 친구이자 멘토였던 야스퍼스의 죽음은, 단지 육체의 사라짐만 의미할뿐이었다. - P269
1968년 집필을 시작한 《정신의 삶》에서 한나는 ‘하나 안의 둘‘대화에 대해 말한다. 이는 내면의 대화로서 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한나가 주장하길, 사유라는 행위를 할 때 나는 절대 혼자가 아니다. 키케로(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만큼 더 활동적일 때가 없고, 혼자 있을 때만큼 덜 외로울때가없다"고 했다. 한나에게 《정신의 삶》은 1933년에 떠나온 전통 철학으로의 회귀였다. 한나에겐 이 책이 악인 자체와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왜 사람들은 악을 저지를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직접 대면할 기회였다. 총 3부작으로 된 《정신의 삶》은 한나의 인생 최고의 걸작이 되었다. - P283
사랑은, 거기에 없는 것을 갈망함으로써 그것과 관계를 맺는다. 이 관계를 드러내어 만천하에 알리고자 사람들은 연인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 관계에대해 이야기한다. 탐구는 사랑과 갈망의 일종이므로 사유의 대상은 오직 사랑스러운 것들, 즉 아름다움과 지혜, 정의 등일 수밖에없다.
한나는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듯이 사유를 하면 악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건 오직 선뿐이며, 나는 내가 사유하는 대로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악은 선이 아니어서 우리가 사유할 수도 없는 것이다. 정치 및 도덕 관련 사안에 사유하지 않는 것은사회에서 주어진 시간에 정해진 행동 규칙이 무엇이든 맹목적으로따르라고 사람들을 가르칠 위험이 있다. 우리는 규칙에 익숙하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하는 데 익숙지 않다. - P285
<의지>는 가장 쓰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사유와 달리 의지는 자기 결정이며 자율적이다. 의지는 사고력을 갖춘 상태에서 탈감각의사유 대상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의지는 사유 및 판단모두에서 독립적이다. ‘사유‘는 ‘하나 안의 둘‘이라는 조화의 필요성이 특징인 반면 ‘의지‘는 부조화가 특징이다. 의지 활동은 경쟁을 요구하며, 자아를 둘 이상의 부분으로 나누고 분열된 자아를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긴다. 이 같은 의지는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힘을 만들어내는데 개인의 자아가 하나로 회복되고 세상에 나가 행동하는 것은의지가 정지되어야만 가능하다. 부터 1974년 5월 애버딘대학교에서 ‘의지‘를 주제로 두 번째 시리즈의 기포드 강연을 할 무렵, 한나는 부쩍 피곤함을 느꼈다. 블뤼허가세상을 떠난 후에도 애도로 지쳤을 뿐 전혀 피곤하지 않다던 한나였다. 단시간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고, 미국 정치는 한순간도 조용할날이 없었으며, 강의와 강연 일정으로 한나는 늘 바빴다. - P297
《정신의 삶> 마지막 편 제목 ‘판단‘이 적혀있었다. 두 가지 문구도 적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루카누스(에스파냐 태생로마 시대 시인의 내전기>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사이에 벌어진 내전에 관해 쓴 서사시)에 등장하는 인물카토에 관한 구절이었다. "VictrixCausa diis placuit sed victa Catoni", 즉 "승리의 대가는 신의 기쁨이었으나 패배의 대가는 카토의 기쁨이었다"라는 뜻이다. 한나는<사유> 마지막 부분에 이 구절을 추신으로 덧붙인 바 있다. 두 번째는 괴테 《파우스트> 2부 5막에서 가져온 구절이었다.
내 길에서 마법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리고 모든 마법의 주문을 완전히 잊는다면, 자연이여, 나는 단지 한 인간으로 그대 앞에 서고 싶소. 그렇다면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 보람이 있을 거요. - P301
한나의 책을 출판한 출판인 윌리엄 요바노비치는 한나를 다음과같이 기억했다.
한나는 정의를 믿는 사람들만큼이나 그리고 자비를 믿는 사람들이 응당 그래야 하듯이 열정적이었다. 폭력은 싫어해도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불복종은 지지했다. 진지하게 탐구할 일에는언제나 서슴없었다. 혹여 적을 만들었다면 그건 결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내 둘도 없이 소중한 친구…. 한나 덕분에 나는 인간인 게 그나마 덜 수치스러웠다. - P302
매카시는 한나를 한 명의 ‘물리적 존재‘로 묘사했다.
한나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사람의 마음을 끄는 여성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또렷한 눈동자는 마치 지성의 광선이 뿜어져 나오기라도 하듯이 반짝였지만 그 내면에는 캄캄하고 깊은 웅덩이가 자리했다. 한나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건 생각에 잠긴 듯한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다. - P302
한나의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두 눈을 관뚜껑이 가리고, 고결한 이마 위로는 잔잔한 꽃무늬 천을 드리웠다. 한나는 더 이상 한나가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누워 있는 18세기 철학자였다. 나는 예배당에서 위험이 풍기는 이 낯선 사람을 차마 만지지 못했다. 부드럽지만 주름이 깊게 팬, 한때 공공의 머리였던 것이 그녀 목에서 휴식 중이었다. 나는 그 목을 향해서만 작별의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그해 봄 한나는 한 줌 재가 되어 뉴욕 애넌데일ㅡ온ㅡ허드슨의 바드대학교 공동묘지에 안장된 블뤼허 곁에 묻혔다. 인간사의 영역안에서 주어진 모든 찬사와 위로를 뒤로하고 한나는 흔치 않은 드높은 위업을 이루었다. 그건 바로 한나가 《인간의 조건》에서 격조 높게묘사한 불멸이었다. - P304
한나는 명성이 사회적 현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절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파마가 축복을 가져다줄지 저주를 퍼부을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한나가 남긴 유산은 파마의두 가지 힘이 모두 발휘된 결과물이다. 한나는 살아생전 삶과 연구를두고 끊임없이 루머와 반쪽짜리 진실에 시달렸으나 죽어서는 불후의명성을 얻었다. 한나를 철학자나 정치 이론가로 생각하는 건 무리다. 한나의 업적을 설명하다 보면 일련의 모순과 맞닥뜨린다. 한나는 시를 썼지만시인이 아니었다. 대신 시인 같은 사상가였다. 철학에 몰두했지만 철학자도 아니었다. 인간의 조건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여러 전기를 썼지만 전기 작가도 아니었다. 또한 조금씩 몸담은 적은 있어도기자, 비평가, 수필가, 문학평론가, 편집자, 정치운동가도 아니었다. 긍정적으로 접근하면, 이를테면 메리 매카시가 그랬듯 위대한 사상가의 표상으로서 소크라테스와 카를 야스퍼스의 대열에 한나를 합류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나라면 이 역시 거부했을 것이다. - P306
한나는 사유를 ‘난간 없는 사유‘로 표현했다. 사유란 붙잡을 곳있는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다. 한나의 은유에 따그르면 붙잡을 곳 하나 없을지 몰라도 계단이라는 서 있을 곳은 주어진다. 자유롭게 밟고 디딜이 계단이야말로 한나에게 유서 없이 남겨진유산이었다. 한나는 단 한 번도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의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는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사를 논하는 공적영역에서 말과 행동으로 나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내가 누구인지는 그 자체로 내 존재를 나타내며 나의 세상경험에 달렸다. 하지만 내 정체성이 내 운명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 P307
한나가 살면서 딱 한 번 스스로 정체성을 밝힌 것은, 유대인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야 했을 때였다. 그리고 당시의 한나는 오로지 시오니즘만이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나가 시오니즘을 지지한 데는 어릴 때 들었던 어머니 말씀의 영향이 컸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놀림받았다면 유대인으로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한나는 민족에 대한 사랑은 알지 못했으며, 그러한 개념이 주는 이념적 자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P307
여성으로 그리고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도 한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게 세상이 말하는 그녀의 정체성이었다. 한나는 민족에대한 사랑이 없다는 게르솜 숄렘의 비난을 부인하지 않았다. 민족을사랑하라는 요구는 경험 세상은 보지 말라는 일종의 맹목적 사랑을요구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이러한 한나의 입장에 한가지 모순이 있다면, 한나처럼 비판하고 판단하려면 그 대상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한나가 말하는 세계 사랑에 숨은 뜻이기도 하다. 악을 못 본체하며 선만 취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한나의 생각과 행동이 그녀의 정체성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는데, 한나는 이런 말을 몹시 싫어했다. 한나의 삶을 잠깐만 들여다봐도, 어느 누구도 한나에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 말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P308
한나의 저서를 공공연하게 매도한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새커와토론할 때 그녀는 평소처럼 재치 있게 응수했다. "어려운 건 질색인데, 제가 그런 사람일까봐 겁나요." 엘리자베스 영-브뤼엘이 쓴 《한나 아렌트 전기: 세계 사랑을 위하여》가 큰 인기를 끌면서 1980년대 초부터 한나의 유작과 편지가엄청나게 출간되고, 독자들은 이를 통해 한나의 삶과 사상에 가까워졌다. 번역서를 비롯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한나의 글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소문의 여신 파마의 야누스적 판단을 부채질한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끝없는 논쟁을 낳고, 새로운 독자들에게 아낌없는 영감을 주는 동시에 그만큼 분노를 샀다. - P308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한나의 말대로 우리는 새로운 현상이나타나는 21세기를 살아가면서 눈앞에 놓인 것과 똑바로 마주해야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한나가 살던 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한나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은, 이 세상을 끊임없이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이 한계를 설정하며, 다시 배열하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언어로 새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나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나무 책상 너머 파란 타자기 앞에 서서 손에는 커다란 은빛 가위와 스카치테이프를 든 채, 이해 욕구를 반짝이며 텍스트처럼 보이는무언가를 만드는 한나를 상상해보기 바란다. - P309
한나가 말했듯 글을 쓰려면 모습을 감추고 고독의 영역에 들어가야 한다. 나의 예고 없는 긴 부재를 참아준 가족과 친구들, 수전 길레스피Susan Gillespie, 마르크 구츠머 Mark Gutzmer, 클라라 즈위클KlaraZwickl, 부모님, 엘리 Eli, 스콧Scott, 알렉산드라 Alexandra, 리 Lee, 소피아Sophia, 잭슨 Jackson, 크리스토퍼 Christopher, 비비안vivian, 루스Ruth, 이자벨로즈 수더비 힐Isabel Rose Sutherby Hill에게 사랑의 말을 전한다.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너이길 바라는 것"이라는 한나의 통찰력은 토머스 루크 바트셰어 Thomas Luke Bartscherer, 당신을 위한 거야.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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