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남자 이름이지만 엄연히 여자. 광고회사 TBW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자주 책을 읽고, 때때로 글을 쓰고, 매번 떠나고 싶어 한다. 《모든 요일의 기록>, <하루의 취향>, <치즈: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등을 썼다.


"나는 나의 빛을 기록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 빛은 나를 고스란히드러내는 빛이었기에 미처 몰랐던 취향이, 애써 외면했던 게으름이,
펼칠 수 없는 모범생적인 습관이, 난데없는 것에 폭발하곤 하는 성질머리가, 또 어지간한 것들은 무턱대고 긍정적으로 해석해버리는 단순합이 여행의 빛 아래에서 드러났다. 여행을 통해 나는 나에 대해 진지하게 배웠다. 여행이 내게 나를 말해주었다."


(모든 요일의 기록>을 통해 일상에서 아이디어의 씨앗을 키워가는 카피라이터의 시각을 보여줬다면 <모든 요일의 여행>은 ‘여행자‘가 된 카피라이터만의 시각을 보여준다.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 도시의 바깥을 꿈꾸지만 결국 남는 건 사진밖에 없는 천편일률적인 여행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유명하다는 그곳‘을 향해 여행지에서조차 분주한 사람들. 그들에게 이 책은 작지만 확고한 나만의 여행을 직조해가는 즐거움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 과정은 잃어버린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고, 진짜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이 말은 뻔하다. 굳이 종이를 낭비해가면서까지 쓸 필요는 없는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왜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가.‘
갑자기 문장은 풍성해지기 시작한다. 다른 햇살이 스며든다. 공기의 질감까지 부드러워진다. 심장 어딘가가 간질간질해진다. 오후다섯 시의 그 하늘을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한낮 차가운 와인을 마신 듯한 기분이 되기도 한다. 낯선 골목이 노래로 가득 차기도 하고,
낯선 얼굴이 두둥실 떠오르기도 한다. 유난히 작았던 숙소가 문득 - P10

다정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비바람에 고립되었던 그 아찔했던 순간은 인생의 모험으로 포장된다. 폭포 앞에 서는 사람도, 골목 끝에서는 사람도, 끝없는 시골길 위에 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나간연인의 얼굴이 겹쳐지는 사람도 있고, 유독 높았던 웃음소리가 덧입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장 하나 바꿨을 뿐인데 저마다의 여행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빛나기 시작한다. 좀처럼 바래지 않는 빛을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 P11

각자의 여행엔 각자의 빛이 스며들 뿐이다. 그 모든 여행 끝에내가 내린 결론이다. 분명 같은 곳으로 떠났는데 우리는 매번 다른곳에 도착한다. 나의 파리와 너의 파리는 좀처럼 만나지지 않는다. 나의 보석은 너의 보석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연 여행지의 문제인 걸까. 여행을 떠나는 시기의 문제인 걸까. 우연히 만나는사람들의 문제인 걸까. 어쩌면 나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했다. 결국 나는 내 깜냥만큼의 여행을 할 수 있을 뿐이니까.

그러니 나는 나의 빛을 기록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 빛은 나를고스란히 드러내는 빛이었기에 미처 몰랐던 취향이, 애써 외면했던게으름이, 떨칠 수 없는 모범생적인 습관이, 난데없는 것에 폭발하곤 하는 성질머리가, 또 어지간한 것들은 무턱대고 긍정적으로 해석 - P11

해버리는 단순함이 여행의 빛 아래에서 드러났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런 걸 못 견디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런걸 위해서는 다른 모든 걸 포기해버릴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 나는저런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등등 여행을 통해 나는 나에 대해 진지하게 배웠다. 여행이 내게 나를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여행에 대해 말해줄 차례다. 그 어떤 여행기도 여행보다 위대할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하여 결국 실패로 돌아갈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말해볼 생각이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굳이 종이를 낭비해가면서까지 쓸 필요는 없는 말이지만, 나는 여행을 좋아하니까.

2016년 7월
김민철 - P12

무턱대고 닛포리 지하철 역에 내렸다. 관광책자에는 없는 곳이했다. 낡은 골목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마음에 드는 골목을 따라 한없이 들어가다 보면 고양이가 나타나 나를 또 다른 골목으로 이끌었다. 누군가의 집 옆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정적이 흐르는 그 골목길엔 고양이와 나만 있었다. 4월 햇살에 고양이는 눈을가늘게 떴다. 나도 가늘게 눈을 뜨고 가만히 있노라면 생과 사의경계가 희미해지는 느낌이었다. 공동묘지 옆으로 우체부 아저씨가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나를 다른 골목으로 이끌었다. 골목마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고요히 나를 스쳐지나갔다. 생명을 가진 것들도, 생명을 가진 적이 없었던 것들도 모두 고요했다.
그렇게 낯선 골목을 네 시간 동안 헤맸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밥을 먹으러 들어간 카페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커피‘라는 말도 못 알아듣는 주인장에게 식사를 주문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읽지도 못할 메뉴판은 덮고 "코히"라고 짧게 주문했다. ‘기묘하지만 마음에 드는 동네다‘라고 메모를 했다. 이제 그만 여기를 - P22

빠져나갈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풍경이 말을 거는 동네였다. 아까와는 또 다른 자전거, 또 다른 화분과 꽃, 또 다른 골목이 펼쳐지는 동네였다. 유명한 것 하나 없었지만, 그것 말고는 모든 것이있는 동네였다. 화분과 꽃과 낡은 골목길과 함께 느긋해져도 좋았다. 딱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꼭 가야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일상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나온 여행에서 나는 또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어딘가에 가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머리를 양쪽으로 흔들어 그 생각을 떨쳐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줬다. 괜찮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기는 서울이 아니라고. 오롯이 너의 시간이라고. - P24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걸어 다녔다. 지하철 역에서 다시 친구를 만났다. 집 근처에서 저녁을 사먹고, 마트에 들러서 찬거리를샀다. 매실 장아찌도 사고 연어도 사고 캔맥주도 여러 개 샀다. 일본식 아침을 해먹자며 친구와 낄낄댄다. 그러다 문득, 이 순간을 찾아내가 도쿄까지 왔다는 걸 알아버렸다. 이 순간이 서울에서 내가 그토록 원하던 일상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회사 갈 걱정에 이불 속에서부터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되는 일상. 이른 아침 단박에 깰 수 있고, 왠지 억울한 심정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일상. 출근길에 삼각김밥이나 우유를 입에 쑤셔 넣지 않아도 되는 일상. 집에 들어오기 전 - P24

에 내일 먹을 음식을 간단하게 장볼 수 있고, 피곤하다며 멍하게 TV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되는 일상. 이것도 해야 하는데, 저것도 해야하는데, 라며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일상. 정직하게 몸을 움작이고, 머리는 잠시 쉬게 만들 수 있는 일상. 피곤해진 몸 덕분에, 끊임없이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머릿속 덕분에 이른 시간에 잠을 청하게 되고 그리하여 다시 일찍 일어날 수 있는 일상. 일상을 벗어나여행을 하러 온 곳에서 나는, 비로소 원하던 일상의 리듬을 찾는 중이었다. 어쩌면 원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충분히 증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인간으로서 내가 맡은 일을 다 했다. 내가 종일토록 기쁨을 누렸다는 사실이 유별난 성공으로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행복해진다는 것만을 하나의 의무로 삼는 인간 조건의 감동적인 완수라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 P25

‘떠난다‘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도착한다‘라는 말에 도착한다. 어떤 곳에도 도착하지 않는 유목민은 없는 것처럼, 끊임없이떠나기만 하는 여행자도 없다. 우리는 떠난다. 그리고 반드시 어딘가에 도착한다. 그것이 여행자의 숙명이다. 문제는, 어디에 도착하느냐는 것이다. 나는 여행을 떠났지만 여행지에 도착하고 싶지 않았다. 일상에 도착하고 싶었다. 그것이 얼마나 매혹적인 일인지 이미도쿄에서 깨달아버렸다. 일상을 떠났으면서 다시 일상에 도착하고싶다는 이 모순. 이것이 내가 풀어야 하는 숙제였다. 어느새 내 여행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방법부터 달라져야 했다. - P29

가장 먼저 내가 바꾼 것은 숙소였다. 분명 호텔의 미덕이 있다. 하얀 시트와 깨끗하게 정리된 방과 푸짐하게 차려낸 아침. 일상에서는 만나기 힘든 말끔한 얼굴들. 누군가는 호텔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이미 여행이 시작된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서울이나 파리나 도쿄나 다 같은 얼굴을 한 호텔방이 아니었다. 하얀호텔방의 익명성이 아니었다. 멸균된 그 공간을 거치지 않고 속살로직행하고 싶었다.
답은 집을 빌리는 것이었다. 단 며칠짜리 집이라도 우리 집이 필요했다. 비슷하지만 하나도 비슷하지 않은 도시마다의 시장에 갔다가 돌아올 골목이 필요했다. 양손 가득 낯설고 궁금한 재료들을 사서 돌아올 대문이 필요했다. 서툰 실력을 뽐내며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부엌이 필요했다. 신기한 맛의 음식을 두고 술 한잔할 테이블이필요했다. 그 음식보다 더 맛있을 창밖 풍경도 필요했다. 너무 좋은집은 부담스러웠다. 너무 비싼 집도 필요 없었다. 그런 집은 나의 일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깨끗해야 했다. 남의 허물까지 치우고싶진 않았으니까. 아무리 일상을 꿈꾸어도 이건 여행이니까. - P30

좋은 숙소는 중요하다. 좋은 식사만큼이나 여행에서 중요하다. 다만 좋은 숙소가 꼭 비싼 숙소는 아니다. 지금 내게 좋은 공간. 내가 편안해지는 공간, 샤워기는 좀 불편해도, 화장실이 좀 좁아도, 컵들은 하나같이 짝이 안 맞아도, 나무 바닥이 삐걱거려도, 매트리스가 좀 딱딱해도, 나에게 좋은 숙소란 나의 일상 같은 숙소였다. 완벽해 보이진 않지만, 내 몸을 구겨 넣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숙소. 지금 막 도착했지만, 며칠은 산 것처럼 순식간에 익숙해지는 숙소.
긴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편안하게 한숨을 내쉴 수 있는 숙소,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겐 완벽한 숙소. 수많은 집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 집들에 도착하기 위해 다시 여행을 떠날지도 모르겠다고 종종 생각한다.


함께 브리악에 있는 우리 집에 머물던 때가 생각난다. 시간은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자기를 낮춘 채 밖에 서 있었다. 시간이 어찌나 잘 훈련되어 있던지 마을에 간 그녀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아야 비로소 짖어대기 시작했다.
로맹 가리, 《여자의 빛>, 마음산책, 2013 - P34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어서 그대가 길을 가다가 만나는 거지처럼 순간마다 그대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어찌하여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그대가 꿈꾸던 행복이 ‘그런 것‘
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대의 행복은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한다면-그리고 오직 그대의 원칙과 소망에 일치하는 행복만을 인정한다면 그대에게 불행이 있으리라.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민음사, 2007 - P48

내가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처럼 결단에 가득 찬 인물이었다거나, 혹은 결단을 늘 행동으로 옮기고야 마는 성공수기들의 주인공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이탈리아 소도시에서 빨래를 널다 들어와서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브라질 오지를 탐험하면서 수첩에 이 글을 끄적이고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일요일 오후에 겨우 빨래를 널고, 다음 날 출근을 괴로워하며 이 글을 쓰는 중이다. 나는 지극히 소심하고, 어설픈 확신 따위에 인생을 거는 치기를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으므로, 나는 ‘만일‘이라는 가정법에 인생을 송두리째 걸수 있는 인간형이 아니므로, 스물한 살이 아니라 서른일곱 살쯤이되고 나면 자기 자신에 대해 그 정도는 알게 된다. 동시에 결국 이곳이 나의 고향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매일을 살아가는 이곳이 고향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도 고향은 없다는 것을. - P57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바뀔 수 없는 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사는 이곳이 고향인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끝없이 여행을 꿈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다른 생 하나를 준비하는 것처럼 여행을 준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여행 때마다 여기서 살아보면 어떨까 꿈꾼다. 이 음식이, 이 햇살이, 이 공기가, 이 나른함이, 이 매혹이, 그러니까 마주치는 이 모든 것이 일상이 되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혹시 여기가 나의 고향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깨지 않는 꿈은 없듯이, 끝나지 않는 여행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 P58

시작은 스물두 살 때였다. 혼자서 전국 일주를 하겠다며 서해를따라 내려가다가 남해 땅끝마을을 거쳐 보길도로 들어갔었다. 중간에 친척들이 있는 곳에 들러 용돈을 두둑하게 받은 터라 여행은 점점 더 길어지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여행의 종착역은, 여수였다. 대구에 사는 고등학교 동창에게 연락을 했다. 여수로 오라고. 같이 여수를 여행하고 같이 대구로 돌아가자고 말을 했다. 게으름뱅이인 친구는 어쩐 일인지 순순히 수락했다.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여수를갔다. 처음으로 향일암에 갔고, 처음으로 남해에서 떠오르는 해를봤고, 놀랐다. 남해도, 산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일출을 보는 것도처음이라 놀랐다. 산 위에서 해를 정면으로 받고 앉아 눈을 가늘게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우리 둘은 한참이나 앉아 있다가 대구로 돌아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해마다 여수에 갔다. 사람들은 물었다. "또 여수에 가?"라고.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겨울이니까요"였다. 푸른 잎이 해를 향해 고개를 돌리듯 겨울이 오면 나는 여수를 향해 길게 목을 뺐다. 빼곡한 달력에 틈을 벌려 겨우 여수에 내려갔다. 그때마다 친구도 대구에서 - P72

여수로 왔다. 그녀도 나도 왜 여수에 끌리는지 이야기한 적은 없다.
그냥 겨울이면 여수에서 만났다.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춥다. 여수는 맨날 춥네"라며 시장 밥집으로 향했다. 언젠가 시장에서 귤 파는 아주머니가 알려준 밥집이었다. 이름도 잘 모르고, 그냥 시장 안쪽으로 쭉 들어와서 과일 경매장을 지나 양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기가 밥집이었다. 추운 겨울에 주인할머니의 온돌방에 앉아 밥상을 받았다. 할머니의 장롱에 등을 기대고 뜨끈한 바닥에 엉덩이를 지지고 앉아 갓 지은 밥에 갓 만든 반찬으로 가득한 백반을 먹고있노라면 이상한 위로가 내 입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 밥상은10년 동안 삼천원이었다가, 사천 원이 되었다가, 오천 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밥상이 주는 위로의 가격은 언제나 측정 불가였다. - P73

할머니의 온돌방에서 누룽지까지 잘 얻어먹고 난 후에는 언제나오동도로 향했다. 실은 오동도보다 우리가 좋아한 것은 오동도 입구의 놀이공원이었다. 놀이기구가 서너 개 남짓 있는 그 놀이공원에는늘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한겨울에 바이킹을 타며 소리를 지르는 정신 나간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고운 여수에 정신 나간 사람은우리 둘로도 충분했으니까. 각자의 남자친구까지 데리고 여수에서만난 날에는 네 명이서 같이 바이킹을 탔다. 바이킹에서 내려와 멀쩡한 사람은 나와 친구뿐이었다. 남자들은 확실히, 약했다. 이게 뭐라고. 그깟 바이킹에 무너져 내리는 남자들이라니. 우리는 쯧쯧 소 - P73

리를 내며 한심하다는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이제 과거형이 되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영원한 과거. 놀이공원은 어느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실은 오동도든 놀이공원이든 돌산대교든 굴찜이든 게장이든 회든 뭐든, 여수의 유명한 그 무엇도 우리에겐 큰 상관이 없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였기 때문이다. 향일암. 처음으로 우리가 여수와 사랑에 빠진 곳, 바닷가 절벽에 서서 해를 향해 있는 암자. 자주 보던 동해나 서해가 아니라 남해를 향해 있는 암자. 파란색 바다가 아니라 은색과 하늘색과 연두색이 미묘하게 섞여 빛나는 남해를 향해 있는 향일암. 그 향일암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였다. - P74

코스는 늘 같았다. 향일암 밑에 있는 민박집 아무 데나 들어가서 하루를 자고, 다음 날 새벽이면 헉헉거리며 향일암에 오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여수 공식이었다. 향일암을 등지고 서면 바다와 절벽에 매달린 붉은 나뭇가지들이 눈에 같이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향일암나무, 이름도 모르는, 알려고 한 적도 없는 그 나무는 나에게 향일암 나무였다. 보는 순간 가슴이 찌르르한 향일암의 증거였다. 선배와 같이 향일암에 갔던 어느 해에는, 선배에게 그 나무에 대해 고백했다.
"선배, 고백할게 있어요."
"뭔데?" - P74

"실은, 여수 그렇게 많이 외봤으면서도 나는 이 나무들 끝에 잎이 돋아난 걸 본 적이 없어요. 늘 겨울에 왔거든요. 그래서 푸른향일암은 상상도 못하는 거지. 그건 거짓말이라고 혼자서 생각해버리는 거지."
"그게 뭐꼬."
"그니까 말이야. 그러면서 서울에서라도 이 나무가 보이면, ‘아, 남해다!‘라면서 좋아해요."
"이게 무슨 나문데?"
"나도 몰라요."
늘 같이 간 친구도 몰랐을 것임에 틀림없다. 향일암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일방적이고, 모호하고, 단편적이었다. 겨울이 아닌 향일암은 알지도 못하고, 좋아한다면서 무슨 나무인지도 알지 못했다. 전형적인 짝사랑의 징후였다. 일방적으로 마음을 정해버리고, 알아서 상대방을 해석해버리고, 나만의 상대방을 만들어버리는. 나는 향일암을 짝사랑했다. 친구도 나도 향일암을 깊이깊이 짝사랑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향일암이 불탔다. - P75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언니에게도연락이 왔다. 회사 사람들도 문자를 보내왔다. 나의 여수 사랑을 아는 모두가 연락을 해왔다. 향일암이 불탔다고. 너 괜찮냐고. 괜찮을리가 없었다. 향일암이 없는 여수라니, 붉은 그 나무가 무사하지 않은 향일암이라니, 그래서였다. 해마다 내려가던 여수에 안 내려가기시작한 것은 도저히 향일암을 볼 자신이 없었다. 새 페인트칠로 번쩍번쩍한 향일암을 마주하면 내 과거까지 이상한 색으로 채색될 것같았다. 다만 무사하길 빌었다. 피해가 크지 않길 빌었다. 나의 여수가, 향일암이 온전히 회복되길 빌었다. - P76

이번 겨울, 용기를 내서 여수에 다녀왔다. 바다도 그대로고 산도그대로고 붉은 나무도 그대로였다. 번쩍번쩍하지 않고 조용히 복원된 향일암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향일암도 그대로였다. 감사하다고, 정말로 감사하다고 나도 모르게 말하고 있었다. 다시 해마다 여수에 올 용기가 생겼다. 다시 여수를 짝사랑해도 좋겠다는 확신까지 들었다. 잠깐 사랑했다가 잊어버리는 것보다는, 오래도록 한 도시를 오해하며 바라보는 짝사랑도 꽤 괜찮지 않은가?
그제야 다시 친구의 전화가 생각났다. 처음 그 노래를 들었을 때의 뭔가 빼앗겨버린 듯한 기분도 생각났다. 여수가 내 것도 아닌데 빼앗겨버린 듯한 기분이라니. 아니, 누군가 빼앗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빼앗겨버린 듯한 기분이라니. 나조차도 황당했던 그 기분이, - P76

다시 아름다워진 향일암을 앞에 두고 눈 녹듯이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 좋아하는 그 도시에 대해 유명한 가수가 노래를 발표해주는 것도 꽤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확신이 들었다. 처음 그노래를 들었을 때의 그 기분은 오간데 없었다.
그 겨울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수에 왔다고. 향일암은무사하다고. 우리 다시 여기 와도 괜찮겠다고. 이 여행은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겠다고. 그리고 내내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시도 때도없이. 누가 쳐다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수 밤바다~" - P77

딱 한 걸음 차이가
결정적 차이가 된다.

한 걸음만 가까이.
한순간만 천천히.

다리 위 난간에 앉은
이 여자처럼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천천히.

그녀는 오래도록
이 햇빛을 기억할 것이다.
이 바람을 잊을 리 없다.
이 순간이 잊힐 리 없다.

그제야 사태는 선명해졌다. 우리는 그의 삶의 관광객이었다. 잠깐 들렀다 멀리 떠나는 관광객. 순간을 영원이라 생각해버리고, 파편을 전부라 착각해버리는 관광객. 단골술집이라며 우리가 아무리 친한 척해봐도 변하는 사실은 없었다. 우리는 누노의 일상이 될 수없었다. 그에게는 다른 일상이 있었던 것이다. 별일이 있어도, 별일이 없어도 수시로 그곳을 들락날락거리며 안부를 묻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그의 일상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그 사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3년 전 그 밤은 이미 신화가 되어버렸다. 내가 그 밤을 신화로 만들어버렸다. 3년 전 그 밤을 소중히 하고, 닦고, 글로 쓰고, 사 - P95

진을 찍고, 책에 싣고 자랑하면서. 하지만 누노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에게 그 밤은 평범한 밤 중 하나였으니까. 그것은 누노의 일상이었으니까.
호르헤의 충격을 소화하고, 누노의 충격까지 꾸역꾸역 소화하며 앉아 있다 보니 명확한 것이 생겼다. 그제야 나의 이기심에 나조차 너털웃음이 났다. 나는 그들이 유적이 되길 바랐던 건가. 움직이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백 년 전에도 백 년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일 유적지의 돌덩이가 되길 바랐던 건가. 지나간 과거만 쓸고 닦아 애타게 기억하는 박물관이 되길 바랐던 건가. 나는 3년 동안 이토록이나 변했으면서 그들의 변화에는 왜 이토록 매정한 것인가. 나는 수많은 것들을 다 잊어버렸으면서 그들은 왜 나를 잊으면 안 되는 건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바랐던 건가. - P95

"진실이 항상 비극은 아니야."

진실이 항상 비극은 아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을 맞닥뜨렸다. 그리고 이 진실이 나는 마음에 든다. 상상보다 훨씬 더 풍성한 진실이었다. 새 생명과 눈물이 흐르는진실이었다.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모르는 진실을 찾기 위해 끝없이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원히여행자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진실이다. 그리고 나는 이 진실이 진실로 마음에 든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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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은 내가 해야 한다. 내 꿈은 내가 꾸어야 한다. 내 꿈을누군가에게 대신 꾸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자기 주권을 내주는 것과 같다. 꿈을 맡기는 순간, 꿈이 아니라 삶이 지배당한다. 내 꿈을 대신 꾼 자가 내 꿈만 아니라 내인생도 통제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꿈을 맡기지 말아야한다. 꿈이 아니라 삶을 살아야 한다. - P146

꿈은 텍스트이다. 해석을 기다리는 것이 텍스트의 운명이다. 모든 텍스트는 그 처지가 꿈과 같다. 해석가의 입장이나 시각, 심지어 이해관계에 따라 텍스트가 요동친다. 나쁜 것도 좋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해몽가의 입이다. 해몽이 있기전까지 꿈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기보다, 무엇을 말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해석이 나올 때까지 텍스트는 그저 기다린다. 해몽가가 좋게 말하면 좋은 꿈이되고, 그가 나쁘게 말하면 나쁜 꿈이 된다.  - P151

그러니 꿈에 붙들리지 말 것. 꿈으로 삶을 재단하려 하지 말것. 꿈의 해석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말 것. 꿈이 창의적으로, 자의적으로, 그러니까 우연에 의해 해석된다는 사실을 인지할것. 꿈은 내가 꾸어도 그 꿈의 실현이 나의 뜻과 무관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것. 삶의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을 인정할 것.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에는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죽는 사람도 나온다. 꿈을 꾸어 다른 사람을 죽게 하기도 하지만, 꿈을 꾸었기 때문에 죽기도 한다. 내 의지가 작동했다고 할 수없는 꿈을 꾼 것도 내가 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 P152

것이 아니라 꾸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내가 잠을 자는 동안 나에게 들이닥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꿈 때문에 죽기도 하다니.
우리는 꿈에 대해 속수무책이고, 속수무책인 채 그 꿈에 지배당한다. 인생이 약간 덜 변덕스러운 꿈이라고 했던 파스칼의문장은 수정되어야 한다. 인생은 더 변덕스러운 꿈이다.


다른 사람의 꿈이 나를 취조하는 근거로 작용할 때, 누가 꾼것인지 모르는 꿈에 대한 해석이 나의 삶을 휘저으려고 할 때, 외부의 꿈들과 바깥의 해석들이 내부를 흔들려고 할 때, 필요한 것은 귀를 닫는 것이다. 그 현장에서 달아나는 것이다.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해석자의 입‘이 내 삶의 영역으로 파동하며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무용하다고 할지라도. 그런 몸부림 때문에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P153

롤랑 바르트는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아토포스atopos라는단어를 사용했다. 장소를 뜻하는 topos에 부정을 뜻하는 a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다. 구체적이고 특정한 자리를 가리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여줄 땅‘은 아토포스이다. ‘보여줄‘ 땅에는 지금 아브람의 가족이 살고 있는 땅, 고향, 하란, 장소로서의 땅이 확보하고 있는 물리적 확실성이 없다. 하란은 어디인지 분명하다. 그곳은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아브람이 가야 하는 땅은 어디라고 단정해서 말할수 없다. 그렇다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은 뜻은 아니다. ‘보여줄‘ 땅은 보여주는 순간 ‘보일‘ 것이다. 보여주는 순간까지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보여줄‘ 땅은 현재는 보이지 않는 땅이다.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보여줄‘, ‘보이지 않는‘의 특징이다. - P176

카페에 마주앉아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손가락을 움직이는 연인을 본다. 간혹 얼굴에 엷은 웃음이 번지지만 그 웃음은 마주앉은 사람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향하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은 물리적으로 같은 장소에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곳에 접속해 있다.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 마주앉아 있지만 다른 사이트에 접속하여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채팅을 하고 있다. 신체적으로 옆에 있는 연인의 마음이 실제로 어디에, 혹은 누구 옆에 가 있는지 말할 수 없다. 물리적 접촉이 만남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물리적 공간의 점유가 친밀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 같은 공간에 있는 이 두사람이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P181

신의 일부가 되어 있는 한 나는 신에게 갈 수 없다. 나의 일부가 되어 있는 신은 나를 찾아올 수 없다. 신에게 가기 위해서는 내가 신의 일부가 아니어야 한다. 타자여야 한다. 신이나에게 오기 위해서도 신은 타자여야 한다. 흡수와 예속은 인간을 대하는 신의 방법이 아니고 신을 대하는 인간의 방법도아니다. 인간이 신에게 흡수되어버릴 때 인간의 행동은 신의행동과 같은 것이 된다. 인간의 어떤 과오도 인간의 책임이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그럴 때 인간은 신을 이용하거나 신을 이용하는 이들에게, 혹은 모든 책임을 신에게 떠넘기는 자신에게 이용당한다. - P183

모든 개혁은 근본적으로 강요된 것이다. 강요는 항상 외부에서 온다. 코로나19 상황은 사람의 모든 삶에 대한 개혁을 요구했다. 우리는 이제까지와 다른 삶을 주문받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집합 금지와 비대면 예배는, 어떤 점에서 강요된 종교개혁이다. 개혁은 흔히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의 발명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의 회복을 통해 완수된다. 익숙해진 것은 낯설어져야 한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한다. 보이는, 장소로서의 땅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대체할 수없는 ‘한 명‘의 고유한 존재로서, 규정되지 않고 규정될 수 없는 신비인 신과 마주해야 한다. 인간의 탐욕과 욕망의 대체재가 되어 있는 신을 구해야하고, 전체의 부분으로 예속, 흡수시키는 맹신으로부터 인간을 구해야 한다. - P185

물론 그 선택이 순수하게 독자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는 고립적인 존재가 아니니까. 그에게는 나름의 사정이 있을것이다. 그 선택에 관여한 요소들을 언급하는 것은 작가를 둘러싼 내적, 외적 조건들을 공개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 선택은 때로 의식적이지만 더 자주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완전무결한 신이 아니고 고립되어있지 않으며 감정의 진공 상태에 있지도 않다. 개인의 욕망이투사되거나 시대의 공기가 스며드는 걸 피할 수 없다. 실은 사람과 시대의 욕망이 가장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이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누가 썼는지 모르거나 수없이많은 사람이 거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야기에 관여한, 관여했을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소득 없는일이기도 하다. 시대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넘어가는 편이 차라리 현명할지 모르겠다. - P189

"삶을 구성하는 힘은 현재에는 확신Uberzeugungen보다는 ‘사실 Fakten‘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그는 ‘사실‘이 한번도, 어느 곳에서도 어떤 확신/신념을 뒷받침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는 이른바 ‘확신‘
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확신/신념은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한 번도 어느 곳에서도 그런 적이 없었다. ‘한 번도,
어느 곳에서도………. 없었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을 직격한다.
인간은 사실보다 확신을 선호한다. 인류 역사를 이끌어오고인간 사회를 물들인 수없이 많은 이런저런 확신/신념들 가운데 사실의 뒷받침을 받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니!
벤야민은 확신 Uberzeugung의 복수형 Überzeugungen을 썼다. 신념은 신념들이다. 여러 개다. 여러 개인 신념들은 다양성이 아니라 대결, 갈등, 혼란을 예정한다. 복수의 신념들은 사실과 무관하고 진리와 멀다. - P199

사실의 토대 없이 신념이 만들어지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를 묻는 것은 순진한 일이다. 에드거 앨런 포를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사람들은 사실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실을 말하면 죽는다. 사실은 사람을 짜증나게 하고화나게 한다. 그래서 사실을 부정한다. 사실을 공격한다. 사실을 직시하면 자신들의 신념을 반성하고 교정하게 할 가능성이높은데 (왜냐하면 그들의 확신은 사실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것이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은 확신에 따라 살아온 이제까지의 그들의 삶을 부정해야 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 P200

십여 년 전에 영국에서 일 년을 지냈는데, 우리나라와 주행방향과 운전석의 위치가 다른 것 때문에 애를 먹었다. 따로 주행 연수를 받았는데도 운전대를 잡으면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 앞에 차가 있으면 뒤따라가면 되니까 그나마 다행이지만 내 앞에 차가 없을 때는 특히 조심해야 했다. 나는 내 운전에자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실수를 한 적이있다. 사거리에 멈춰 있다가 신호등이 바뀌어 출발할 때 반대차선으로 들어간 것이다. 곧 실수한 걸 깨닫고 후진해서 나왔지만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뒤따라오는 차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보다 다행인 것은 진입하자마자 내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역주행을 계속했을지, 그러다 무슨 사고를 냈을지 누가 알겠는가. - P202

확신하는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다. 확신이 만들어제공한 ‘사실‘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구태여 다른 ‘사실‘을 찾을 이유가 없고, 그러니 의심할 리 없다. 확신하는 사람은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다. 잘못 가는 사람이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 혹은자기가 잘못 가고 있지 않은지 의심하는 사람이 반성한다. 잘못 갈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람에게만 반성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자기를 의심하는 사람만이 반성한다. 자기를 의심하지않는 사람은 절대로 반성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는 반성이라는 옵션이 없다. 그들은 반성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 자기와 다른 쪽으로 가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바로 가는 많은 사람을 비난한다. 바로 가는 많은 사람을 잘못 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투철할수록 더 심하게 비난한다. - P203

확신이 사람을 당당하게 만든다. 확신에 찬 사람은 우물쭈물하지 않는다. 눈치보지 않는다. 자신감은 주체적 자아의 표상이라고 선전된다. 말을 할 때도 글을 쓸 때도 거침없고 어디에도 막히지 않는다. "짐이 곧 국가다"라고 말한 사람은 절대군주 루이 14세였다고 알려져 있다. 루이 14세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내가 세계의 중심이다. 자신감이 권장되면서 자만심을 흡수했다. 미국 힙합 문화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 플렉스 Flex 현상이 과도한 자기 과시의 형태로 나타나면서 현대인이 동경하는 존재 방식이 되었다. 타인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를 의심하는 것이므로 타당하지 않다. 자신감의 결여, 비굴함으로 치부되므로 해롭다. 해로운 것,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옳지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옳지 않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 확신은 일종의 처세의 갑옷 같은 것이 되었다. 확신의 갑옷 없이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 그러니 누구나 어떤 갑옷인가를 착용하려고 한다. - P204

너무 지나치게 사람을, ‘자아‘를 부추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주행 운전자의 그처럼 투철한 확신이 면허 취소 수준의음주에서 비롯했다는 건 꽤 의미심장하다. 그는 만취했고, 분별력을 잃었고, 혹시 자기가 잘못 가고 있는지 돌아볼 (의심해볼) 여유를 빼앗겼고, 오직 맹목의 확신에 사로잡혔다. 자기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다. 만취한 사람과 같다. 제어 불능의 이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정상이 아닌데 다반사가 되었다. - P205

"이념은 저항에 굴복하지 않는 광신자, 저항을 염두에 두지않는 광신자를 필요로 한다"라는 문장으로 본회퍼는 예수의가르침을 따르는 삶에 대해 말하면서 지나친 자기 확신의 위험을 경고했다. (『나를 따르라』) 어떤 선한 뜻도, 그것이 설령진리라고 하더라도 강요의 방법으로 이루어선 안 된다고 그는가르친다. 그럴 때 그 진리는 이념이 되고 만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념은 이념들이고, 결국 진리에서 떨어져나간다. 광신자가 된다. 그에 의하면 광신은 종교적 행동이 아니라 이념, 즉신념의 행동이다. 광신은 사실을 묻지 않고 성찰도 의심도 하 - P205

지 않는다. 광신자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이념이다. 광신이라는 종교적 열정에 의해 유지되는 것은 이념이다. 종교는 아니다. 그것은 신이 광신적 믿음을 요구하지 않기때문이다. 광신적 믿음을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만든 신념이다.


종교는 자기 확신과 아무 관계가 없다. 오히려 종교는 자기확신의 부재, 자기를 의심하고 자기를 믿지 못하는 자의 믿음이다. "신앙은 의심을 제거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자기 안에 있는 하나의 요소로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을 정복하는 용기다."(폴 틸리히) 이념은 반대다. 이념은 의심하지 않는, 의심을용납하지 않는, 의심이 끼어들 틈이 없는,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투철한, 무분별한 믿음의 체계이다. 이념은 투철한 확신을가진 광신자들을 만들어내고, 그런 광신자들에 의해 막강해진다. - P206

많은 경우 종교는 이념에 이용당한다. 이념이 제 일을 하기위해 종교적 명분을 앞세우거나 종교로 위장하는 일은 드물지않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진리가아니라 이념이 하는 일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상의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라도 말씀을 강요하려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이념으로 만드는 셈이 될 것이다."
종교가 그렇게 할 때 종교는 이념이 되고 만다. 자기가 바르게가는지 반성하지 않고 자기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을 비난하는 데만 열정을 쏟게 된다. 술 취한 사람과 다름없게 된다. 종교의 탈을 쓴 광신자들의 집단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 그런 집단의 우두머리를 선동꾼이라면 모를까, 종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


광신자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지나치게 종교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전혀 종교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 P207

"설득aberzeugen은 비생산적인 것이다"라고 벤야민은 말한다. 신념과 신념이 부딪칠 때의 곤란함에 대한 말이다. 신념이나 설득으로는 안 된다. 확신 앞에 사실이 놓여야 한다.
물론 입장과 의견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특히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입장과 의견 없는 단순한사실의 나열은 지루하고 무의미하니까. 그러나 그 의견이 사실에 바탕하지 않았거나 진실과 거리가 있을 때, 확신이 제공한 허구일 뿐일 때 그 의견은 단지 확증편향의 다른 이름이므로 폐기되는 것이 마땅하다.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확신은홍기와 같아서 사람을 해친다. 벤야민은 현재가 확신보다는 ‘사실‘에 기반한 사유가 힘을 발휘하는 시대라는 문장을 한 세기 전에 (일방통행로」는 1928년에 출판되었다) 썼지만, 우리의현재는 여전히 확신이 사실을 삼키고 있는 시대이다. 사실이 어떤 곳에서도 한 번도 확신을 뒷받침한 적 없다는 그의 두번째 문장이 여전히 유효한 ‘현재‘이다.
현재가 어느 시대보다 더 확신에 지배되는 시대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시대 못지않은 확신의 시대라는 건 확실하다.
‘사실을 말하는 자는 죽는다.‘ 에드거 앨런 포의 경고가 탄식처럼 들리는 이유이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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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는,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다고대답한다. ‘당신만을 위한 삶‘은 없다. 오직 ‘당신만을 위한 죽음‘이 있을 뿐이다.


5일마다 되풀이되는 마중의 어느 순간에, 그녀 역시, 법의문 앞의 그 사람이 그런 것처럼, 문득 "꺼지지 않고 비쳐나오는 사라지지 않는 한줄기 찬란한 빛을 볼 것이다. 아마 그럴것이다. 요새를 떠나 허름한 시골 여관에 누운 드로고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새로운 생각이, 분명하고 무서운 생각이 " 불쑥 떠오르는 경험을 할 것이다, 라고 우리는 예언할 수 있다. 삶의 모든 경험을 통해 그녀가 기다린 것이 죽음이었음을 모를 수 없을 거라고. - P132

그런데 그 빛 가운데 드러난 분명한 얼굴인 죽음은 커다란•질문, 삶의 온 경험이 뭉쳐 이루어진 하나의 큰 의문부호여서, ‘환한 어둠‘ 가운데 자리한다. 죽음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그 질문은 환한 어둠에 의해 드러난다. 환한 어둠이라니! 눈앞이 캄캄해도 볼 수 없지만, 눈앞이 하얘도 볼 수 없다. 불가지론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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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라


지난 겨울밤, 나는 물었고 딸애는 대답했다

규연이는 무슨 색깔이 좋아? 응, 청보라
청보라는 새벽에 별이 깔려 있는 색깔이라 좋아

도라지꽃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던 밤이 떠올라
나는 칠월 도라지꽃밭으로 딸애를 데리고 
갔다

봐, 도라지꽃에도 청보라가 있지?
도라지꽃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래
와, 예쁘다 정말 청보라네
아빠 근데, 사랑은 원래부터 영원한 거 
아니야?

나는 청보랏빛 도라지꽃을
보여주었을 뿐인데
너는 청보랏빛 별에 닿기도 하고
청보랏빛 별 전구를 켜기도 하겠지
그러다가는 또 새벽하늘에
청보라 도라지꽃을 끝없이 피워두기도 
하겠지

그래, 사랑이란 원래부터 끝이 없어야 할 테니까
잠이 아주 멀어진 늦여름 새벽,
청보랏빛 별 마당에 돗자리 깔고 누워
‘새벽에 별이 깔려 있는 색깔‘을 올려다본다

청보라 도라지꽃, 같은 말을 떠올려보다가
청보라 도라지꽃 꽃말 같은 사랑을 깜빡거려본다

정읍 칠보우체국 우체부 셋


정읍 칠보우체국 우체부 셋은 칠보면과 산외면과 산내면의 우편물을 담당한다


김현기
박새가 우리 집 편지함에 알을 낳았다 우체부 김현기는 알을 까고 나온 새끼 박새가 온전히 커서 날아갈 때까지 매번 우편물을 창틈에 끼워 넣고 가거나 직접 전해주고 갔다


김천수
택배가 왔지만 나는 외부에 있었다 혹시라도 내릴지 모를 비를 수화기 너머로 걱정하던 우체부 김천수는 택배 상자를 방수지에 꼼꼼하게도 싸서 처마 밑에 모셔두고 갔다


최길영
어제는 폭설이 쳤고 나는 김개남 장군의 생가터를 찾고있었다 마침 지나가는 우체부가 있어 길을 물었다 우체부 최길영은 오토바이로 눈길을 열어가며 앞장서 갔다

여름휴가


어제 비를 맞아서 그런가?
몸이 무겁고 머리가 띵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코로나 간이 검사를 해보니 양성이다

출근하자마자 퇴근이라니,
나는 사무실 책상에 올려두었던
가방을 챙겨 조용히 집으로 간다

집에 들러 한숨 돌리고는
가까운 병원에 가보니
역시나 코로나에 걸린 게 맞다
좀 아프다 말겠지,
약국에서 받아온 약봉지를 던져두고
그대로 잠이 들었던가

무슨 전화가 이렇게나 걸려 오지?
무슨 머리가 이렇게나 지끈거리지?
뭐라도 먹어야 약을 먹을 텐데

이불을 두르고 있어도 오한이 온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몰랐다

목에 불이 붙은 듯 화끈거리고
침이라도 삼킬라치면
목이 찢어지는 듯 아플 줄은

오늘은 그새 육일차,
방 구석구석을 몇번이나 쓸고
싱크대를 닦고 빨래를 돌리고
변기며 화장실 바닥을 박박 문지르고
베란다 물청소까지 마치고는

이 뜻밖의 여름휴가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궁리한다

두 김정자씨


언젠가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내 어머니도 ‘김정자‘고 내장모님도 ‘김정자‘다


정읍 골짝에 살던 어머니 김정자는 여전히 정읍 골짝에 살고 있고, 봉화 골짝에 살던 장모 김정자는 근래 들어 도회지아파트에 살고 있다 요새 이 두 김정자는 뭐 하면서 지내나?

정읍 김정자 집에 갔을 때였다 노모는 택배 상자에 지푸라기를 넣어 포장하고 있었다 아, 무신 지푸락을 다 택배로보낸다요? 야, 아파트 산디 지푸락을 어서 구하냐! 시골김정자는 도회지 김정자가 메주를 쑨다고 하니 메주 띄울지푸라기를 챙겨 보내고 있었던 것인데,

도회지 김정자가 시골김정자한테 보내는 택배도 별반 다를 건 없다 무신 봉다리가 요로코롬 많다요? 도회지 김정자는 마트에 다녀올 때 생기는 비닐봉지까지도 살뜰하게 모았다가 시골 김정자한테 보낸다 핫따매, 두 김정자 땜시 내가못 산당께요

둘 중 누가 보내든 ‘보내는 사람‘도 김정자고 ‘받는 사람‘ 도 김정자인 택배, 올해도 어김없이 참기름이며 옥수수감자, 마늘 같은 것이 보내질 것이고 염색약이며 샴푸세트며 간고등어, 꽃무늬 남방 같은 게 보내질 것인데, 올봄에도 일없이 두 김정자나 감나무 마당 집에서 만나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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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다‘는 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는 것이 출현할 때 쓴다. ‘돌아오다‘는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온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새롭다‘와 ‘돌아오다‘는 같이 쓸 수없다. 새로운 것은 돌아올 수 없다. 다만 나타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침이 돌아왔다. 라고 하고, 봄이 돌아왔다. 라고쓴다. 더 직접적으로, 새아침이 돌아왔다, 새봄이 돌아왔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순이다. 오늘 맞이하는 아침은 어제 아침과 같은 아침이 아니다. 올해 봄은 지난해 봄의 복사본이 아니다. 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던 것이 다시 올 수 없다. 이전에 있었던 어떤 것만 다시 올 수 있다. 돌아올 수 있다. - P112

그렇지만 우리의 시간 인식은 이 문장에서 모순을 느끼지못한다. 있어본 적 없는, 전혀 새로운 시간이 다시 돌아온다. 오늘 아침은 지금까지 있어본 적 없는 새것이지만, 그러나 또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번달 5일은 우리 인생에서 처음 맞이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또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우주의 시간은 직선으로 곧장 흐르지만, 그래서 같은 물에 두 번 발을담그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끝없이 반복하고되풀이하며 흐른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시간에 수없이 자주발을 담근다. 추억이 영원하고, 놓친, 잃어버린 기회를 다시잡는 것이 가능한 것이 그 때문이다. - P112

그렇지만 그 모든 일은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기다리면서 하는 일이다. 기다리기 위해 하는 일이다. 기다림의수단으로 하는 일이다. 기다림이 그들의 일이다. 그 모든 것이기다리는 일의 일부이다. 기다리는 것 말고 그들이 정말로 하는 일은 없다.
류옌스가 오지 않을 거라면 기다릴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는 올 것이다. 온다고 했으니 올 것이다. 그는 5일에 올 것이고, 그러니 펑위는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말한다. 남편은 이미 왔다. 저이가 류옌스다. 그러나 그녀는 말한다. 남편은 5일에 온다. 5일에 오는 이가 그이다. 류옌스가 5일에 온다는 것 말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 역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은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기다리면서 하는 일이다. 기다리기 위해 하는 일이다. 기다림의 수단으로 하는 일이다. 기다림이 그녀의 일이다. 그녀가 하는 모든 것이 기다리는 일의 일부이다. 기다리는 것 말고 그녀가 정말로 하는 일은없다. - P115

그의 기다림은 죽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죽음을 앞둔 시점이 되어서야 그는 힘들게 묻는다. "나 말고는 이 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없으니 어쩐 일이지요?" 그 사람이 곧 임종하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문지기는 대답한다. "이 문은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곧 문이 닫힌다. 그의 기다림은 죽음에 이르러 끝난다. 삶이 곧 기다림이라는 사실을이보다 더 잘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산다. 사람은 자기에게 허락된 기다림을 산다. - P118

이 세상에 대한 절망이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을 꾸게 한다.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을 꾸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마지막을 먼저 선언해야 한다. 그 광야의 동굴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이미 마지막 시간을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곳에서마지막을 기다렸다. 마지막을 살면서 마지막을 기다렸다. 그들이 기다리는, 와야 할 마지막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마지막을 기다리며 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성경 필사였다. 그들은 양피지에 성경을 필사했다. 그것이 그들의 믿음의 표현이었고, 기다림의 방법이었다.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헤매던 한 베두인 목동에 의해 1947년 처음 모습을드러낸 이들의 거주지에서 원본 그대로 보존된 성경 사본 두루마리가 다수 발견되었다. 물론 다른 것도 있었다. 여러 개의물 저장소와 수로, 창고, 작업장, 그리고 무덤 등이 나왔다. 그들은 그곳에서 ‘살았다‘. 삶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살았다. 물을끌어들이고, 농사를 짓고, 성경을 필사하고, 무엇보다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살았다. 기다림에는 ‘제때‘가 따로 없으니까, 언제든 지연되고 연기될 수 있으니까, 그것이 기다림의 속성 - P125

이니까. 여분의 충분한 기름이 필요하다는 걸 그들은 알았다.
그들은 그것으로 그들이 ‘이미‘ 온 마지막을 살면서 ‘아직‘ 오지 않은 마지막을 기다리는 사람들임을 증명했다. 기다림은삶이었고, 삶은 기다림이었다. 기다림과 삶은 구분되지 않았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기다릴 필요를 느끼지 않는사람들이 있다.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은‘ 사람들이다.
내일에 미리 도착한 사람들이다. 내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의시간이다. 일어나면 현재가 되는 그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시간에 붙여진 이름이 내일이다. 기다림이 완성되면 내일은현재가 된다. 내일을 현재로 만든 사람들, 내일을 현재로 만들어 내일을 없앤 사람들, 내일을 기다리지 않고 현재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메시아가 필요하지 않다. 기다림을제거한 이들, 그들은 기다리지 않고/못하고 만끽한다. - P126

누구에게나 예기치 않은 순간에 죽음은 온다. 죽음은 게으르고, 동시에 즉흥적이다. 요컨대 종잡을 수 없다. 죽음은 올 때까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늦어져도 언젠가는 온다. 늦어질 뿐 철회되지는 않는다. 죽음은 신실해서 온다는 약속을 파기하지 않는다. 다만 오는 시간을 우리가 모를 뿐이다. 신랑은 올 것이다. 늦더라도 오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언제 올지 모를 뿐이다. 고도는 올 것이다. 그러나 오기 전까지는 오지 않는다. - P129

고도는 신랑은, 메시아는, 류옌스는, 죽음은, 아마 내일 올것이다. 우리는 내일을 기다릴 수 없다. 내일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일 올 고도, 신랑, 메시아, 류옌스, 죽음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이들이 오편 내일은 현재가 될 것이다. 내일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일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확정되어 있지도 않다. 내일은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하다. 한없이 늘어나기도 하고 느닷없이 닥치기도 한다. 우리는 그 멀기와 가깝기를 가늠할 수 없다. 우리는 내일의 주민이 아니다.


우리는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우리가 기다린 것이 실은 - P129

죽음이었음을. 죽음이라는 것을 몰랐을 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고도를 기다리는 이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모른다. 고도가누구인지 모른 채로 고도를 기다린다. 요새의 군인들은 그들이 기다리는 타타르인들에 대해 모른다. 모른 채 타타르인들을 기다린다. 고도가, 타타르인들이 언제 올지 모르는 것처럼, 모를 뿐만 아니라,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모른 채로, 기다린다. 모른 채로 그들을 기다린 줄 안다. 그들이 기다린 고도가, 타타르인이 실은 죽음이라는 걸 모른다. 몰랐다는 걸족음 앞에서야 깨닫는다. - P130

법의 문 앞에서, 법으로 들어가려고 평생을 기다린 사람이정말로 기다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늙고 쇠약해져 잘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된 이 사람의 마지막에 대한 카프카의 서술은 이러하다.


그런데 이제 어둠 속에서 그는 분명하게 알아본다. 법의 문들로부터 꺼지지 않고 비쳐나오는 사라지지 않는 한줄기 찬란한 빛을.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때까지의 모든 경험이, 그가 지금껏 문지기에게 던져보지 못한 하나의 물음으로 집약된다. - P130

시력이 약해져 잘 볼 수 없게 된 그의 눈에, ‘어둠 속에서이제야 비로소 법의 문들로부터 비쳐나오는 한줄기 찬란한 빛이 보인다. 그 빛은 직전까지 보이지 않았다. 없던 빛이 갑자기 나타났는지 전부터 있었는데 보지 못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그동안 보지 못했거나 볼 수 없었던 빛을 보게 되는 어떤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을그가 마침내 맞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구리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지만,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완전하게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바울은 말했다. 깨달음이 그렇게 갑자기, 비로소 온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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