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다‘는 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는 것이 출현할 때 쓴다. ‘돌아오다‘는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온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새롭다‘와 ‘돌아오다‘는 같이 쓸 수없다. 새로운 것은 돌아올 수 없다. 다만 나타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침이 돌아왔다. 라고 하고, 봄이 돌아왔다. 라고쓴다. 더 직접적으로, 새아침이 돌아왔다, 새봄이 돌아왔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순이다. 오늘 맞이하는 아침은 어제 아침과 같은 아침이 아니다. 올해 봄은 지난해 봄의 복사본이 아니다. 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던 것이 다시 올 수 없다. 이전에 있었던 어떤 것만 다시 올 수 있다. 돌아올 수 있다. - P112

그렇지만 우리의 시간 인식은 이 문장에서 모순을 느끼지못한다. 있어본 적 없는, 전혀 새로운 시간이 다시 돌아온다. 오늘 아침은 지금까지 있어본 적 없는 새것이지만, 그러나 또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번달 5일은 우리 인생에서 처음 맞이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또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우주의 시간은 직선으로 곧장 흐르지만, 그래서 같은 물에 두 번 발을담그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끝없이 반복하고되풀이하며 흐른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시간에 수없이 자주발을 담근다. 추억이 영원하고, 놓친, 잃어버린 기회를 다시잡는 것이 가능한 것이 그 때문이다. - P112

그렇지만 그 모든 일은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기다리면서 하는 일이다. 기다리기 위해 하는 일이다. 기다림의수단으로 하는 일이다. 기다림이 그들의 일이다. 그 모든 것이기다리는 일의 일부이다. 기다리는 것 말고 그들이 정말로 하는 일은 없다.
류옌스가 오지 않을 거라면 기다릴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는 올 것이다. 온다고 했으니 올 것이다. 그는 5일에 올 것이고, 그러니 펑위는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말한다. 남편은 이미 왔다. 저이가 류옌스다. 그러나 그녀는 말한다. 남편은 5일에 온다. 5일에 오는 이가 그이다. 류옌스가 5일에 온다는 것 말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 역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은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기다리면서 하는 일이다. 기다리기 위해 하는 일이다. 기다림의 수단으로 하는 일이다. 기다림이 그녀의 일이다. 그녀가 하는 모든 것이 기다리는 일의 일부이다. 기다리는 것 말고 그녀가 정말로 하는 일은없다. - P115

그의 기다림은 죽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죽음을 앞둔 시점이 되어서야 그는 힘들게 묻는다. "나 말고는 이 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없으니 어쩐 일이지요?" 그 사람이 곧 임종하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문지기는 대답한다. "이 문은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곧 문이 닫힌다. 그의 기다림은 죽음에 이르러 끝난다. 삶이 곧 기다림이라는 사실을이보다 더 잘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산다. 사람은 자기에게 허락된 기다림을 산다. - P118

이 세상에 대한 절망이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을 꾸게 한다.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을 꾸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마지막을 먼저 선언해야 한다. 그 광야의 동굴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이미 마지막 시간을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곳에서마지막을 기다렸다. 마지막을 살면서 마지막을 기다렸다. 그들이 기다리는, 와야 할 마지막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마지막을 기다리며 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성경 필사였다. 그들은 양피지에 성경을 필사했다. 그것이 그들의 믿음의 표현이었고, 기다림의 방법이었다.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헤매던 한 베두인 목동에 의해 1947년 처음 모습을드러낸 이들의 거주지에서 원본 그대로 보존된 성경 사본 두루마리가 다수 발견되었다. 물론 다른 것도 있었다. 여러 개의물 저장소와 수로, 창고, 작업장, 그리고 무덤 등이 나왔다. 그들은 그곳에서 ‘살았다‘. 삶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살았다. 물을끌어들이고, 농사를 짓고, 성경을 필사하고, 무엇보다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살았다. 기다림에는 ‘제때‘가 따로 없으니까, 언제든 지연되고 연기될 수 있으니까, 그것이 기다림의 속성 - P125

이니까. 여분의 충분한 기름이 필요하다는 걸 그들은 알았다.
그들은 그것으로 그들이 ‘이미‘ 온 마지막을 살면서 ‘아직‘ 오지 않은 마지막을 기다리는 사람들임을 증명했다. 기다림은삶이었고, 삶은 기다림이었다. 기다림과 삶은 구분되지 않았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기다릴 필요를 느끼지 않는사람들이 있다.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은‘ 사람들이다.
내일에 미리 도착한 사람들이다. 내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의시간이다. 일어나면 현재가 되는 그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시간에 붙여진 이름이 내일이다. 기다림이 완성되면 내일은현재가 된다. 내일을 현재로 만든 사람들, 내일을 현재로 만들어 내일을 없앤 사람들, 내일을 기다리지 않고 현재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메시아가 필요하지 않다. 기다림을제거한 이들, 그들은 기다리지 않고/못하고 만끽한다. - P126

누구에게나 예기치 않은 순간에 죽음은 온다. 죽음은 게으르고, 동시에 즉흥적이다. 요컨대 종잡을 수 없다. 죽음은 올 때까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늦어져도 언젠가는 온다. 늦어질 뿐 철회되지는 않는다. 죽음은 신실해서 온다는 약속을 파기하지 않는다. 다만 오는 시간을 우리가 모를 뿐이다. 신랑은 올 것이다. 늦더라도 오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언제 올지 모를 뿐이다. 고도는 올 것이다. 그러나 오기 전까지는 오지 않는다. - P129

고도는 신랑은, 메시아는, 류옌스는, 죽음은, 아마 내일 올것이다. 우리는 내일을 기다릴 수 없다. 내일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일 올 고도, 신랑, 메시아, 류옌스, 죽음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이들이 오편 내일은 현재가 될 것이다. 내일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일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확정되어 있지도 않다. 내일은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하다. 한없이 늘어나기도 하고 느닷없이 닥치기도 한다. 우리는 그 멀기와 가깝기를 가늠할 수 없다. 우리는 내일의 주민이 아니다.


우리는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우리가 기다린 것이 실은 - P129

죽음이었음을. 죽음이라는 것을 몰랐을 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고도를 기다리는 이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모른다. 고도가누구인지 모른 채로 고도를 기다린다. 요새의 군인들은 그들이 기다리는 타타르인들에 대해 모른다. 모른 채 타타르인들을 기다린다. 고도가, 타타르인들이 언제 올지 모르는 것처럼, 모를 뿐만 아니라,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모른 채로, 기다린다. 모른 채로 그들을 기다린 줄 안다. 그들이 기다린 고도가, 타타르인이 실은 죽음이라는 걸 모른다. 몰랐다는 걸족음 앞에서야 깨닫는다. - P130

법의 문 앞에서, 법으로 들어가려고 평생을 기다린 사람이정말로 기다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늙고 쇠약해져 잘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된 이 사람의 마지막에 대한 카프카의 서술은 이러하다.


그런데 이제 어둠 속에서 그는 분명하게 알아본다. 법의 문들로부터 꺼지지 않고 비쳐나오는 사라지지 않는 한줄기 찬란한 빛을.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때까지의 모든 경험이, 그가 지금껏 문지기에게 던져보지 못한 하나의 물음으로 집약된다. - P130

시력이 약해져 잘 볼 수 없게 된 그의 눈에, ‘어둠 속에서이제야 비로소 법의 문들로부터 비쳐나오는 한줄기 찬란한 빛이 보인다. 그 빛은 직전까지 보이지 않았다. 없던 빛이 갑자기 나타났는지 전부터 있었는데 보지 못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그동안 보지 못했거나 볼 수 없었던 빛을 보게 되는 어떤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을그가 마침내 맞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구리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지만,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완전하게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바울은 말했다. 깨달음이 그렇게 갑자기, 비로소 온다.  - P1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