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9일 저녁, 올리버가 《마음의 눈》 출간 기널 파티를 열어 뉴욕의 친구들(작가, 신경학자, 올리버와 밀접하게협업하는 음악치료사, 올리버의 물리치료사와 피아노 선생님, 양치식물광 동료 등등)을 초대했다. 케이트가 내게 연락해 이 책의 등장인물 중 한 명으로서 몇 마디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날 아침 일찍 맨해튼행 열차에 올라 그리니치 빌리지와 트라이베카를 걸어 다니며 내 짧은 연설을 중얼중얼 외웠다. 그리고 파티에서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다음 연설문을 암송했다.


2002년, 제 시력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평생 사시인이자 입체맹인으로 살았지만 48세에 시력 훈련을 받으면서 두 눈의 초점을 한곳에 맞추고 - P291

3차원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제 세상이더 길고 넓고 질감이 풍부하고 세밀해 보이고, 사물사이의 빈 공간이 눈에 들어옵니다. 무척 기쁘지만 다른사람들에게 이 변화를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입체시는 유아기의 결정적 시기에만 발달할수 있고 그 시기가 지나면 결코 발달할 수 없다는 것이반세기간 정설로 이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제게는매우 심오하고 기쁘고 계시적인 이 경험을 과학자와의사가 불가능한 것으로 취급할까 봐, 제가 미쳤거나너무 순진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과장이 심한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3년간 입을 다물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2004년 12월 말의 어느 날 밤, 제 이야기가 몸 밖으로터져 나올 것만 같았고, 결국 일필휘지로 올리버에게 보내는 기나긴 편지를 썼습니다. 당시 올리버와저는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고 올리버가 입체영상을좋아한다는 사실도 몰랐지만 그의 책은 여러 권 읽은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쓴 글을 믿을 수 있다면, 그가 자기환자의 말에 귀 기울였듯 제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줄지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올리버는 제 편지를 읽고답장을 보내 저를 만나러 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어쩜 좋지? 올리버 색스가 나를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 P292

찾아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올리버를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저는 올리버가 어떤인물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의 책들을 다시 읽었고, 무엇보다 저희 집 손님이 될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싫어하는지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올리버가찾아왔을 때 저는 함께 수영을 하러 갔고, 갈색으로푹 익은 바나나를 비롯해 올리버가 좋아하는 음식을대접했습니다.
올리버는 저의 입체시를 검사하려고 입체그림 장치와 도구를 잔뜩 이고 지고 왔습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올리버는 그저 제시력이 얼마나좋은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3차원 세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러한 변화가 더넓은 세상에서의 제 자아 감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올리버는 호기심을보이며 저를 면밀히 살폈지만, 그와 동시에 늘 친절했고 종종 재미있었습니다. 저를 대상화하거나 내려다보는일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올리버는 저를비롯한 많은 사람의 이야기에서 본질에 가 닿을 수있었습니다. 이 점은 《마음의 눈》이나 올리버의 다른책들을 읽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지난 5년간 우리의 관계는 작가와 글감에서 친구로 - P293

바뀌었습니다. 올리버는 훌륭한 스승이자 멘토이기도합니다. 올리버, 실제로 당신은 저의 엉클 텅스텐입니다. 당신이 실제로 만난 적 없는 열성적인 독자들, 그리고 다른 수많은 사람에게 그러하듯이요.
멋진 책이 또 한 권 나온 것을 축하드리며, 다음 책도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엉클 텅스텐은 올리버가 가장 좋아했던 삼촌의 별명이다. 엉클 텅스텐은 올리버를 화학의 세계로 인도했고, 올리버는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회고록에 《엉클 텅스텐》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마지막에 올리버가 나의 엉클 텅스텐이라고 말했을 때 누군가의 탄성이 들렸고, 나는 연설을 마친 뒤 주위를둘러보며 올리버를 찾았다. 올리버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인생에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드물긴 하지만 내 우주에 있는모든 별과 행성이 나란히 정렬하는 것 같은 때. 이날도 그런 순간이었다.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소리 높여 말했다. - P294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2011년 3월 17일, 올리버가 사무실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졌다. 수술이 필요해서 다시 병원에 입원해야 했지만 그의 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입원기간에 올리버는 척추 마취가 자기 몸에 미치는 영향을 꼼꼼하게 기록했고, 새 책 《환각》에 들어갈 수백 단어 분량의 원고를썼으며, 《롤링스톤》과 인터뷰를 했다. 나는 온라인에 있는 복고풍 장난감 가게에서 발견한 태엽 장난감 여러 개를 그에게 보냈다. 올리버는 특히 스테고사우루스 장난감을 좋아했는데, 힘겹게어기적어기적 걷는 모습이 꼭 자기 같다고 했다. - P301

덕분에 병원에 입원하고 처음 며칠간 큰 위로를받았습니다. ㅡ얼마 전부터는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수영도 못하고 체육관에도 못 가고 혼자서 산책도 못하는 이 답답한 회복기를 글을 쓰며 버틸 수 있겠지요.
...
제 어머니가 78세에 돌아가셔서, 저는 78세라는 제나이에 어떤 미신적인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운명의여신들이 부디 고관절 골절에 만족했으면 좋겠습니다.


뼈가 부러진 사람은 올리버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2011년11월 22일에 진창이 된 언덕을 걸어 내려가다 미끄러져서 오른팔 요골이 부러졌다. 그리고 올리버의 선례를 따라, 부러진 팔의회복 과정을 나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하는 과학 연구로 삼기로했다.
팔이 부러진 날, 초등학생이 주로 사용하는 흑백 표지 공책을하나 사서 회복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내 부상은 요골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팔이 부러지고 5일 후에 나는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상처 입은 동물이 된 것 같다. 깁스가 내 팔을 숨기고 보호하듯이 나도 안으로 숨어드는 느낌이다. 감각이 달라졌다. 냄새가 달라졌다. 몸이 으슬으슬하고 속이 메스껍다." - P302

올리버에게,

저는 지금 왼손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손)으로 이 편지를쓰고 있습니다. 11월 22일에 걷다가 넘어져서 오른팔요골이 부러진 이후로 계속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있어요. 글씨가 불안정하고 어린아이 같긴 하지만 이방식이 꽤 마음에 듭니다. 글씨를 천천히 쓸 수밖에없어서 결과적으로 생각도 더 천천히 하게 되고 마음도더 편안해지거든요. 지난주에는 제 책의 스페인어판 출간기념회에 참석하러 마드리드에 갔는데요. 왼손 서명을익히고 가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사인을 엄청 많이 해야했는데, 아마 오른손만으로는 다 못 했을 거예요.
팔이 부러지고 6주간 깁스를 했고, 그사이 요골은알아서 붙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붙지는 않았어요. 요골과 그 위에 있는 손목뼈가 전처럼 완벽하게 정렬되지않습니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는데, (재활의학과 의사였던)댄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의사도 이에 동의해서 먼저재활을 해 보고 별 효과가 없으면 나중에 수술을 받기로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재활 훈련은 무척 즐겁습니다. - P313

수에게,
2015년 2월 5일

슬픈 소식이 있습니다. 지난달에 저의 안구 (포도막)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암은원래 잘 전이되지 않는 편이지만, 저는 이 괴물이몸에 퍼지기 전에 9년간 좋은 (그리고 생산적인) 나날을보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전이된 암은치료가 쉽지 않은데, 몇몇 처치로 속도를 지연시킬수는 있습니다-아마도 ‘생존‘ 기간을 6~9개월에서15~16개월로 늘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늘린 몇 달이좋은 시간이라면, 그 동안에 글을 쓰고(일부 또는 거의 다 - P360

쓴 책이 여러 권 있습니다), 친구를 만나고, (조금) 여행을다니고, (철없이 군다거나 하면서 인생을 즐길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ㅡ 제가 이 상황에 ‘적응‘하고,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과 대상에게 ‘작별‘을 고하고, 내인생을 ‘마무리‘하면서 이 갑작스러운 ‘시간의 끝‘ 앞에서 평정심을 구할 수 있다면 말이지요. 지난 삶을 돌아보는 짧고 굵은 에세이 (제목은 <나의 생애>>를 쓸 생각입니다. 흄이 (1775년에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음을 깨닫고 하루만에 쓴 글처럼요.
이 일이 닥치기 전에 자서전을 완성할 수 있어서정말 다행입니다. 출판사 측에서도 상황을 이해하고출간일을 9월에서 5월 1일로 앞당겨 주었습니다. 조만간 ‘가제본‘(사진이나 인덱스 등이 없는 미수정 원고)을 받으면이 편지와 함께, 또는 추후에 한 권 보내 드릴 예정입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이래 교수님은 언제나 저의 중요한 (그리고 애정하는) 친구 (그리고 멘토)였습니다. 앞으로 몇 달간 교수님을 (자주) 만나 뵐 수 있기를바랍니다.
- P361

올리버가 현재 읽고 있는 책을 내게 보여 주었다. 파블로프에 관한 커다란 벽돌책이었다. 그는 등을 대고 누워 책을 높게 치켜든 자세로 독서하는 것을 좋아해서, 몇몇 책을 여러 덩이로 자른 뒤 각각을 바인더 클립으로 고정해 놓았다.
함께 녹차를 마시면서 올리버에게 연말에 교직에서 은퇴할예정이라고 말했다.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올리버는 (프로이트의 말을 빌려) 일과 사랑이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라고쓴 적이 있다. 글쓰기는 올리버의 일에서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했다. 나와 알고 지낸 10년간 그는 연이은 외상에도 굴하지 않고 굵직한 책을 네 권이나 집필했다. 우리가 처음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을 때 올리버는 IBM 셀렉트릭 타자기로 두 손가락을이용해 편지를 썼다. 그리고 이것이 힘들어지자 손으로 직접 편지를 썼다. 말년의 몇 주간은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받아쓰게 했 - P369

다. 그는 한 번도 일과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편하게 쉬려는 게 아니라 글을 더 많이 쓰기 위해 은퇴하는 것이라고 황급히 덧붙였다. 실제로 충격받은 올리버의 얼굴이 내내 잊히지 않아서 그 기억을 원동력 삼아 내 두 번째 책 《내게 없던 감각》을 완성했다.
헤어지며 포옹을 나눌 때가 되자, 나는 양팔을 벌리고 올리버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올리버의 귀가 안 좋았기 때문에) 아주 큰목소리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올리버도 알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소리 내어 직접 말하고 싶었다. - P370

2015년 5월의 만남은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아니었다.
2015년 7월 9일, 82세 생일을 맞이한 올리버는 늘 그래왔듯 자기 아파트에서 생일 파티를 열었다. 이번이 올리버의 마지막 생일임을 본인도 알고 우리도 모두 알았지만, 그는 연민의 대상이되거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올리버와 케이트는 언제나처럼 훈제 연어와 초밥을 준비했고, 이내 스물다섯명의 손님들이 식사를 하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올리버와 나는 우리의 우정이 피어난 주제, 바로 시력에 관해이야기했다. 그가 거실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나를 데려가서 멸종한 절지동물인 삼엽충 화석을 보여 주었다. 5억 4천만 년 전에생성된 이 삼엽충 화석들은 눈으로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는 동물의 존재를 명백하게 드러낸 최초의 화석이었다. 비록 7주 뒤세상을 떠났지만 이날 올리버는 다음에 무엇을 쓸지 여전히 고 - P372

민하고 있었고, 여러 동물이 세상을 보는 다양한 방식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는 성게의 경우 수많은 관족에 빛을 감지하는 세포가 있다고 신난 듯이 말했다. 그러면서 성게로서 세상을 보는 것은 어떤 경험일지 궁금해했다.
한번은 문어를 관찰하는데, 지능이 대단히 높은 생명체인 문어가 자신이 문어를 관찰하듯 똑같이 집중해서 자신을 뜯어보는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올리버는 문어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처럼 커다란 전방향 눈을 가진 여우원숭이에게도 친근감을 느꼈다. 실제로 그는 그다음 주에 여우원숭이 센터를 방문하러 노스캐롤라이나로 떠날 예정이었다.
이 대화를 나눈 직후 댄과 나는 시간이 늦기도 했고 올리버가다른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어서 조용히 아파트에서 나왔다. 올리버는 눈물 젖은 작별 인사를 원하지 않았다.
올리버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 자신이 동물을 관찰했던 경험을 돌이켜보았다. 나는 과연 동물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마음까지 읽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이틀 뒤 그에게 다음 편지를보냈다. - P373

편지는 "수에게"가 아니라 "친애하는 수에게"라는 말로 시작했다. 이 인사말을 보니 2009년 12월에 올리버와 나눈 대화가떠올랐다. 그때 올리버는 "친애하는"이라는 말로 편지를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친애하는"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쓸 수 있는 일반적인 인사말이 아니라, 자신이정말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만 쓰는 표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올리버가 "친애하는 수에게"라는 말로 운을 뗐을때, 나는 여기에 진심이 담겨 있음을 알았다.
사실 이 편지는 내가 호르헤 이야기를 전한 편지보다 9일 앞서 쓰였지만, 2015년 8월 30일에 세상을 떠난 올리버의 이 편지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었다.


친애하는 수에게,
2015년 8월 9일

2004년에 교수님의 일지를 발췌한 첫 번째 편지를 받았을때, 우리의 첫 만남에서 이렇게 돈독한 우정이 피어나게될 줄은 저도 교수님도 몰랐습니다. 그 우정은 점점크기를 넓혀 댄까지 아우르게 되었지요. 지난달 제 생일파티에서 두 분을 만날 수 있어서 무척 기뻤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한 달간 제 상태가 급속도로 - P381

악화되었습니다. 몸이 극도로 허약해졌고 매일 복수가1리터 이상 차서 아침저녁으로 빼내고 있습니다. 허나큰 불편은 없고, 케이트와 빌리가 이루 말할 수 없이헌신적으로 지원해 주는 덕분에 힘닿는 한 활발하게지내며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 생활에관한 글을 포함해 진행 중인 여러 프로젝트를 과연 끝낼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손님을 맞이하거나 전화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너무나도멋진 조그만 그림들이 들어 있는) 교수님의 편지는 늘즐겁게 받아 보고 있습니다.
이 편지가 마지막 작별 인사는 아니지만, 그날이 점점가까워지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이번 달을 넘길 수있을지 모르겠어요.
그간 교수님과 나눈 깊고 고무적인 우정은 지난 10년간제 삶에 추가로 주어진 뜻밖의 멋진 선물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을 가득 담아,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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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끝난 뒤 올리버를 만나러 무대 위로 올라갔다. 나를 찾고 있었다더니 정작 내 앞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함께 미술관의 이집트관을 구경하다가 어느 석관 앞에 잠시 멈춰섰을 때, 올리버는 오늘 자신이 "아우팅"당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시력을 상실했음을 공개적으로 말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올리버는 몹시 슬퍼 보였고, 나는 그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한편으로는 올리버가 "아우팅"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 의아했다. 올리버가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고, 혹시 그것이 올리버가 품은 또 하나의 비밀은 아닐지 궁금했다.
올리버처럼 나도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 공개했고, 그 결과 치부가 노출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시인 내 눈에대해 말할 때마다 어린 시절에 느낀 수치심과 굴욕감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올리버가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할 때 양가감정을 느끼는 이유도 이해가 갔다. 눈 근육을 수술받은 뒤 대다수 사람은 내가 사시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올리버는1996년에 있었던 댄의 첫 우주선 탑승 기념 파티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언급하기도 전에 내 눈이 사시임을 간파했다. 나의 비밀은 처음부터 올리버에게 들통나 버렸고, 결국 나는 올리버의 격려에 힘입어 그 비밀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 P207

이제 부엌 타이머를 맞춰 놓고 10분간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가능했다. 비록 그러고 나서는 내내집 안을 천천히 돌아다니거나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나는 올리버의 체력과 끈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글쓰기와 원고 수정도 멈추지 않았다. 헤어지면서 올리버는 곧 출간될 《마음의 눈》 가운데 본인 이야기가 담긴 챕터의 원고를 내게 들려 보냈다.
그날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던 길이 기억에 남아 있다. 올리버의 글을 읽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칸을 옮겨 다니며 표를 회수하는 승무원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크리스마스엔 집에돌아갈 거예요)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무원의 기쁨 앞에서 올리버가 자신의 상실을 묘사한 글을 읽고 있자니, 나는 점점 더 슬퍼졌다. 이제 올리버는 오른쪽의 넓은 공간을 볼수도, 심지어 인식할 수도 없었고, 오로지 꿈을 꾸거나 약에 취했을 때만 세상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올리버는 대마초를 언제나 학명인 카나비스cannabis 라고 칭했다). 꿈과 약. 이 두 가지가내 흥미를 자극했다. 나도 처음 입체시를 경험했을 때 환각 상태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고, 최근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9년 12월 28일 자의 다음번 편지에 이렇게 썼다. - P259

헉슬리의 《지각의 문》을 읽다가, 그가 메스칼린에 취한상태에서 다양한 사물을 묘사한 부분을 보고 정말깜짝 놀랐습니다. 헉슬리가 묘사한 사물들이, 제가처음 3차원으로 보고 크게 충격받은 사물들과 정확히일치해서요. 헉슬리는 꽃병에 담긴 꽃, 의자의 다리,
바지의 접힌 자국을 이야기합니다. 저도 식물과 꽃의단단함, 의자가 공간 속에 놓인 모습, 가족들의 겨울코트에 남은 풍성한 주름과 홈에 매료되었었지요. - P260

비슷한 무렵인 2010년 6월 21일, 케이트가 《마음의 눈>원고를 보내며 검토를 부탁했다. 줄표와 점들 사이에서 다양한생각이 이어지는 올리버의 편지와 달리 원고는 물론 완전한 문장으로 쓰여 있었다. 그러나 검토를 하다 보니 쉼표가 없어도 되는 부분에 들어가 있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이 점을 지적하자 케이트는 올리버가 그 쉼표들을 넣길 고집했다고 말해 주었다. 쉼표가 있어야 독자가 읽기를 잠시 멈출 수 있고, 그렇게 쉼표가 생각을 구획 짓는다는 것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이 유독 인상 깊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시각적 심상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수준에서 실제처럼 생생한 수준까지 매우 다양하다는 내용이었다. 그건 시력을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라서, 2010년 여름에 나와 올리버는 자신에게 어떤 시각적 심상이 보이는지, 혹은 보이지 않는지에 관해 편지 - P284

로 대화를 나누었다. 예를 들어, 나는 주기율표를 상상할 때 머릿속에서 표준 화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과 같은 열과 행이 보이고, 집중하면 30번까지 해당 칸에 원소의 약칭을 채울 수 있다. 암산을 할 때는 머릿속 칠판에 숫자가 쓰인 것이 보인다. 그러나 올리버는 이런 그림을 떠올리지 않았다.
"주기율표에 관해서, 저는 주기와 족, 전자껍질에 전자가 채워지는 주기성(2, 8, 8, 18, 32 등) 같은 논리적인 그림이 보이는 것같습니다... 암산은 순식간에 하는 편인데, ‘머릿속 칠판‘은 보이지 않고 ‘내면의 말‘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걸까, 아니면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같지만 각자의 의식에 나타날 때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걸까?
- P285

《마음의 눈》 2장 ‘부활‘을 읽으면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회복과 재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생각했다. 실어증에걸린 올리버의 환자 팻은 결국 말 없이 소통하는 방법을 익혔지만, 팻을 격려하며 그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헌신적인 딸들이 없었다면 아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이장을 읽고 온종일 그 내용에 대해, 특히 너무나 다정하고 배려심넘치는 팻의 딸들에 대해 생각했다. 당시 나는 아버지를 돌보고있었는데, 내가 늘 최선을 다해 애쓰며 헌신하고 있다는 생각은들지 않았다. 그래서 2010년 7월 19일이었던 그날 저녁, 자리에앉아 아버지를 돌보는 일에 관해 에세이를 한 편 썼다. - P285

아버지


84세 생일을 맞이하고 이틀이 지난 2006년 7월 14일아침, 아버지는 몹시 우울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몇 년 전 아버지는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실버타운에 입주했고, 그날 아침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활기차게 지내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돌아가셨을 때의 격렬한 슬픔은 지나간 뒤였다. 아버지는 새 친구를 사귀었고, 커다란 캔버스를 만들 재료와 물감을 사러 정기적으로 차를 몰고 목재상과 화방을 찾았다.
아버지가 강렬한 감정과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리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예술가인 그는 늘 치열한 삶을 살았다. 성마르게 화를 내고, 터무니없을 만큼 창의적이며, 열정적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더 점잖고 보수적인 친구 아빠들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아빠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제 자신감을 전부 잃은 것 같았다.
어르고 달래야 겨우 침대에서 빠져나왔고, 갈수록 세상과 멀어졌다. 아버지가 말을 거는 드문 사람 중 한명이 나였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전화해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아버지를 모시고 이런저런 병원과 정신과를 찾아갔지만 의사들은 별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아버지는 정신과 의사를 싫어했다. - P286

나는 지쳤고 분노와 무력감을 느꼈으며 아버지에게 거부당한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말년에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늘 어머니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었다. 아니면 어머니 덕에 내가 그럴 수 있다고믿었거나. 반면 아버지는 내게 미소 한번 지어 주지않았다.
"아버지 때문에 내 삶이 망가지고 있어?" 나는 댄에게 이 말을 하고 또 했다. 댄은 실용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매주 금요일 오후 아버지를 모시고 바람을 쐬러 나가는 식으로 나를 도와주려 애썼다. 그러나 내가 끊임없이 불만을 곱씹자, 한때 재활의학과 의사였던 댄은 나를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상황이 호전되지 않았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절히 대처하는 법을 익히는 편이 나았다. 내가 아버지 일로 하소연하면 댄은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나는 격분했다. 어떻게 그렇게 무정하고 냉담할 수 있지? 하지만 댄의 방식이 현명하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내 삶은 전반적으로 풍요롭고 만족스러웠고, 댄은 내가 더 균형잡힌 시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우려 하고 있었다.
2년 전 어느 날 아침, 동네 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왔다. 아버지가 그날 아침 복통을 호소하며 앰뷸런스를 불렀다는 것이었다. 의사들이 꼼꼼히 진찰했지만 - P287

가벼운 변비 외에는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다 해진 잠옷을 입고 응급실에 앉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얇고 성긴 머리카락이 지처분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아버지에겐 신발도,
지갑도, 안경도 없었다. 나는 우선 아버지를 자동차에 태우고 병원을 출발한 뒤 분노를 터뜨렸다. 아버지 집에 도착했는데 아버지에게 집 열쇠가 없어서 실버타운 관리소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열쇠를 들고 와서조심스럽게 아버지를 집 안으로 모셨다. "혼자 걸을수 있으세요?" 나는 직원에게 퉁명스레 말하며 내 못난 모습에 비참함을 느꼈다. 집에 아무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뒤 나는 서둘러 돌아가려 했다. "오늘이 네 생일이냐?"
그때 아버지가 물었다. 내가 내일이라고 하자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좋은 생일 보내라"
2주 뒤, 여동생 생일 하루 전날에 실버타운 수간호사가 내 직장 메일 주소로 이메일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 침대에서 나오기를 거부하시면서 자살하겠다고 협박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자살하지 않으리라는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원래도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일이 잦았고 극적인 상황을 잘 연출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의 이런 반응은 도와달라는 외침이었고, 내게는 아버지의 고통을 다룰 기술이나 경험이 없었다. 수간호사는 - P288

조앤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노인 사례 관리자"로 고용해보라고 권했다. 조앤은 매우 유능하고 지식이 풍부했으며 적극적이었다. 나는 조앤 덕분에 아버지의 보호자역할에서 벗어나 다시 아버지의 딸이 될 수 있었다.
다양한 약물을 써 봤지만 아버지의 우울은 좀처럼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분노는 사라졌고, 그와 함께 나의 분노도 사라졌다. 아버지를 찾아가는 날이 다시 기대되기 시작했다. 나는 늘 밀크쉐이크를 챙기고 (아버지의 몸무게는 겨우 52킬로그램이다) 그날 같이 할 일을 준비해 간다. 어떤 날은 화집을 가져가서 매끄럽게 인쇄된 그림을 같이 감상한다. 또 어떤 날은 조각이 커다란 직소 퍼즐을 준비한다. 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퍼즐의 모양을 확인하고 제자리에 놓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부모 앞에서 도대체 몇 번이나 비통해질 수 있는지,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를 찾아뵙지 못한 날들을 몇 번이나 자책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 우리는 종종 소파에 나란히 앉아 바흐의 바이올린 파르티타 악보를 보며 음악을 듣는다. 아버지는 두 손을 들어 지휘를 하는데, 마치 허공에서 음표를 뽑아내는 것 같다. 그런 순간들은 다정함과 인자함으로 흘러넘친다. "제가 많이 사랑해요?" - P289

헤어질 때 나는 아버지의 볼에 입을 맞추며 이렇게말한다.
"나도 많이 사랑한단다."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고, 우리는 둘 다 평화롭다.


올리버의 책을 읽고 쓴 것이기에 나는 이 글을 올리버에게 보냈고, 그는 가슴이 뭉클했다는 감상을 전했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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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사시 치료법에 관한 논문 한편을 읽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브록이 쓴 이 문장을 보고 제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세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시 환자가 실제로 입체시를경험하기 전에는 그 어떤 행동과 말로도 환자에게양안시의 실제 감각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환자는 반드시 자신이 2차원 그림을 보고 있다고 믿어야하며, 화들짝 놀라면서 이 그림에 입체적 특징이 있음을발견하는 일은 환자의 몫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식으로, 오로지 이런 식으로만, 환자가 실제로 입체시를습득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일단 이 새로운 감각을 - P136

경험하면, 환자는 양안시가 확실히 자리 잡을 때까지 이 능력을 몇 번이고 다시 쓰고 싶어 할 것이다"
아니, 너무 익숙하게 들리지 않나요! 제 경험, 그리고 제가 인터뷰한 과거 입체맹이었던 사람들의 경험과 정확히 일치하는 설명이었습니다.
...
브록 박사는 여러 방식으로 환자들의 지각 능력을 테스트하며 지금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관찰하고 함께 논의하면서 치료법과 도구를 개발했고요. 그는 환자들의 겉모습을 관찰하는 데 만족하지않았습니다. 《화성의 인류학자》에도 언급된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처럼, 브록은 환자들의 머릿속에 들어가고싶어 했어요.
박사님의 책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는 몽테뉴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하지요. "... 진정한 의사가되려면, 자신이 치료하고자 하는 질병을 전부 경험해봐야 한다..." 하지만 환자들이 사시가 있고 입체시가 약한 안과의를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대다수 사시인은 이런 증상을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의사에게 - P137

치료받는 것이지요. 브록 박사의 경우는 어땠을까요? 그의 통찰력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이쯤이면 이미 그답을 파악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록 박사는 과거에 간헐성 외사시‘가 있는 사시인이었습니다. 브록이 치료한 첫 번째 환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어요.


올리버의 답장은 언제나처럼 형용사와 괄호로 가득한 생동감 있는 문체였지만, 2007년 1월 6일에 쓰인 이 편지에는그의 시력에 관한 불안한 소식도 담겨 있었다.


지적인 에너지와 열정이 타오르는 멋진 편지 (12/29)고맙습니다. 브록의 이야기는 아주 중요하고, 시대를 앞서간 것처럼 보이는군요- 사실상 거의 알려지지 않은듯하고요. 교수님의 작업은 브록의 발견 (그리고 브록 본인)을 발굴하고 되살려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겁니다. 언젠가 따로 에세이를 한 편 써도 좋겠고, 교수님책의 한 챕터를 할애할 수도 있겠고요. 말씀하신 걸 보니거의 다 쓰신 것이나 다름없네요! - P138

교수님은 의사/과학자는 무엇을 직접 경험해야하는가‘라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제기해 주셨습니다. 곧 출간될 제 음악 책의 강점ㅡ어떤 의미에서는 한계이기도하지만ㅡ은, 주로 환청을 듣는 사람, 실음악증amusia이
있는 사람, 공감각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증언으로이루어져 있다는 겁니다. 이들은 직접 경험을 통해 이런상태가 어떤 것인지 잘 알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는 객관적으로 자기 상태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만약 환청(또는 다른 증상)이 있는 사람이 전문 과학자나 의사, 연구자라면 그건 무적의 조합일 겁니다. 물론 교수님이 바로 그런 사례지요. 여러 시각적 장애와 혼선을 겪고있는 저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요즘 뒤틀린 세상을 살아가고있습니다. 이러한 꼬임과 틀어짐을 왼눈이 완전히 교정하지못해서, 점점 오른눈을 감거나 왜곡되고 손상된 오른쪽 시력을(어떻게든) ‘억압‘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탈구심성 환각에취약해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경험을 아주 흥미로워하며꼼꼼하게 기록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론 내게 이런 일이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 P139

지금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가 열심히, 꾸준히,
의욕적으로, 또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쳐서 나가떨어질 정도지요. 17일쯤부터 며칠간(수명하면서)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교수님의 연구가 더욱 흥미진진하게 확장된 것을 다시 한번 축하하며, 모두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리버는 내가 얻은 입체시를 잃어 갈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왜곡된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 둘 다 회복의 힘을 굳게 믿었기에, 몇 달 뒤 나는 한쪽눈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훈련 도구를 커다란 상자에 한가득 담아서 보냈다. 올리버는 방대한 분량의 《뮤지코필리아》를 쓰느라 바쁜 와중에도 내 성의에 감사를표했다. 나는 그때, 그리고 훗날에도 여러 번, 어떤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 나가는 올리버의 능력에 크게 감탄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열심히, 꾸준히, 의욕적으로, 또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P140

이 글에서 올리버는 앞을 보지 못하고 뇌성마비가 있는 매들린 J.라는 중년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매들린은 지적 능력이 뛰어났지만 평생 일거수일투족을 도움받았기에 두 손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 손을 쓸모없는 "진흙 덩어리"로 여겼다. 올리버는 매들린의 두 손 감각이 정상임을 파악한 뒤, 담당 간호사에게매들린이 손을 뻗어 움켜쥘 수 있도록 베이글을 살짝 멀리 놔 달라고말했다. 매들린은 손으로 베이글을 붙들었고, 그러면서 베이글뿐만아니라 자기 손의 존재를 발견했다. 촉각을 통해 세상을 탐험하기 시작한 매들린은 점토를 달라고 부탁해 조소를 시작하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예술적 재능을 드러냈다. 올리버는 이렇게 썼다. "보통생후 수개월 내에 습득하는 기본적인 지각 능력을 제때 습득하지 못한 사람이 60세의 나이에 그 능력을 습득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P142

그러나 이 편지에서도 나는 마냥 솔직하지 못했다. 올리버의 표현을 살짝 바꿔서 말하자면, 우리는 어린 시절을 빠져나오지만 결코 그 시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어렸을 때 나는 내가 실패자라고 생각했다. 눈이 사시였고, 그 탓에글 읽기와 자전거 타기, 운전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든 경험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올리버에게 하소연하고싶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깨어남》에 나온 것처럼 수십 년간 신체와 정신이 마비된 환자들을 돌본 사람이니까. 사시가 내평생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지라도 그들에 비하면 내가겪은 어려움은 사소해 보였다.
《3차원의 기적》을 쓰면서 마침내 어린 시절에 겪은 어려움을 되돌아보았다. 초고에서 학교 다닐 때 힘들었던 일들을 넌지시 - P151

언급하자, 편집자는 이 주제를 더 확장해 보라고 했다. 한 문단을 추가했지만 편집자는 만족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전부 다 털어놓았다. 책이 인쇄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내가 과장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다른 사시인들에게서 자기 이야기인 줄 알았다는 이메일이 쏟아졌다.
《3차원의 기적》은 2009년 5월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아마존닷컴 에디터가 선정한 2009년 최고의 과학책 10권에 이름을 올렸고, 여덟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나는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유럽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책을 통해 사시와 양안시 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정보와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쓴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였다. 자료를 조사하며 테레사 루지에로 박사와 행동 및 발달 검안사 공동체‘, 수많은 과학자에게 아낌없는도움과 조언을 받았다. 그러나 올리버의 지지와 격려가 없었다면 아마 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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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0년에 올리버의 책 《마음의 눈》을 읽고 나서야 이 몇주간 있었던 일들의 시간 순서를 알게 되었다. 소철 입체사진을동봉한 나의 12월 편지와 새로운 시각적 발견을 묘사한 1월의편지는 올리버가 안구흑색종을 진단받고 겨우 몇 주 뒤에 도착했다. 그때 올리버는 눈의 종양을 없애기 위한 방사능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1월 5일 자 편지에서는 이런 힘든 상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이 편지의 맺음말이 올리버에게 어떤의미였는지를 그제야 깨달았다. "올해는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2006년은 과연 어떤 해가 될까요?"
2006년 2월 16일, 올리버는 내가 그날 <스테레오 수) 교정쇄의 어느 표현에 관해 질문한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왔다. 쉼표 하나의 위치가 잘못되어 문장 전체의 의미가 달라져 있었다. 이번TON VAHIND에도 올리버는 암에 걸린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보다 커다란 글씨로 전부 대문자만 사용해서 편지를 타이핑했다. - P107

2006년 3월 10일, 댄 그리고 사촌들과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려고 맨해튼에 갔다. 그리고 공연 전에 그리니치 빌리지에있는 올리버의 사무실, 즉 내가 늘 편지를 보내는 바로 그 주소로 찾아갔다. 먼저 건물 안내원이 위층에 내가 도착했다고 알렸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리버의 사무실로 올라가자 그날 처음만난 케이트가 현관에서 나를 반겨 주었다. 그러고 나서 커다란목소리로 올리버에게 내가 왔다고 소리쳤고, 올리버는 안쪽에있는 문 뒤에서 매우 수줍어하며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이처럼내 도착을 거듭 알리는 절차가 꼭 필요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몇 년 후에야 깨달았다. 올리버는 2010년에 출간한 《마음의 눈》에서 설명했듯 평생 사람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면실인증을 앓았던 터라, 우리가 최근 두 번 만났어도 나를 못 알아볼 수 있었다. - P111

<스테레오 수>가 발표된 후 올리버와의 우정이 서서히바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올리버는이미 내 삶에서 끊임없이 자극과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흥미진진한 것을 접하거나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면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게 올리버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고, 이런 생각들은 종종 실제 종이 위의 글로 흘러나오곤 했다. 나는 멈추지 못하고 뻔질나게 편지를 보냈고, 올리버는 자신의 생각이나 쓰고있던 원고의 초안을 담은 답장을 보내 주었다.
게다가 <스테레오 수>에 쏟아진 반응은 내가 기대하거나 상상한 이상이었다. 올리버가 내게 안겨 준 새 이름과 정체성을, 나는 1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지니고 있다. 내 이야기로 사시인한 명만 도울 수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력 조건이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받은 이메일이 지금까지 천 통이 넘 - P125

는다. 그 당시 나는 이 글이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영향력을 누구보다 먼저 이해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미국공영라디오의 한 저널리스트였다. - P126

신스케 박사와 점심을 같이했다니 저도 기쁩니다ㅡ그가교수님에게 젓가락을 내려놓고 포크를 쓰라고 권했다는부분을 읽고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나와 처음 만났을때도 박사는 율레스를 아주 존경한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그에게서 연구의 마법이 사라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글쎄요, 어쩌면 조금은 사라졌을수도 있겠지요ㅡ어쩌면 어느 한 문제에 집중할 때는사라졌다가, 문제가 해결되어 모든 것을 더 넓은/깊은관점으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되돌아오는 것은아닐까요. 어쨌건 교수님에게는 입체시의 마법이 전혀사라지지 않은 것이 분명하군요ㅡ그러니 (교수님의 모든편지에서 그렇듯이 마법이 교수님 책 전체에 열정을 불어넣을 겁니다.


올리버는 어떤 질병이나 장애를 이해하려면 과학과 심리학, 역사, 철학을 폭넓게 아우르며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책을 통해 내게 알려 주었다. 물론 사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눈이 정렬되지 않은 사람들은 심각한 인지적 문제 - P133

에 직면한다. 두 눈이 각자 다른 지점을 향하고 있기에 뇌에서로 연관성 없는 정보가 입력된다. 이렇게 상충하는 정보에서 어•떻게 하나의 세계상을 끌어낼 수 있을까? 모든 사시인은 저마다적응과 보상을 적절히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니 사시를 이해하려면 양안시에 관한 과학적 연구 결과뿐만 아니라, 사시인들이 문제에 대처하거나 시력을 회복하는 다양한 방법까지조사해야 했다.
올리버가 우리 집을 찾아왔듯이 나도 여러 안과의를 찾아가의사 및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잘 알려지지 않은 학술지인 《주간 검안학 The OptometricWeekly》에서 사시에 관한 탁월한 글을 발견했다. 검안사 프레더릭 W. 브록이 이 잡지의 연재 기사에서 사시인을 위한 시력 훈련 프로그램을 소개한 것이다. 나는 브록과 그의 작업에 마음을완전히 빼앗겼고, 2006년 12월 29일에 올리버에게 편지를 보내이 모든 내용을 설명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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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는 입체시가 생기기 전에도 내가 3차원으로 세상을 본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3차원 세상에서 움직였고 원근과 음영, 그림자, 사물의 중첩 (뒤에 있는 사물이 앞에 있는 사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처럼 한쪽 눈으로도 깊이를 지각할 수 있는 단서들을 통해 거리를 파악했다. 그러나 입체시가 생기자 나의 공간감은 질적으로 달라졌다.
이제 거울을 들여다보면 거울 속의 반사된 공간에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입체맹이었을 때는 내 모습이 거울 표면 위에 있었다. 반사된 내 모습과 거울 표면 사이의 빈 공간을 인식하지 못했기에, 거울 유리에 묻은 얼룩은 마치 내 몸 위에 있는것처럼 보였고, 나는 옷에서 그 얼룩을 닦아 내려 했다. 요즘은거울을 보다가 잠시 한쪽 눈을 감아도 거울 속의 반사된 공간에있는 내가 보인다. 입체시가 생기자 한쪽 눈으로 보는 방식까지달라진 것이다. 그러니 평소에 늘 입체시가 있던 사람이 한쪽 눈을 감는다고 해서 늘 입체맹이었던 사람처럼 세상이 납작해 보이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평생 쌓아 온 입체시의 경험으로 입체 정보가 사라진 빈 공간을 채운다.
입체시로 세상을 보자 물체 사이의 공간이 손에 만져질 듯 뚜렷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새로움이 무척이나 놀랍고 기뻤다.  - P45

수에게,


12일에 보내신 놀라운 편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방금 읽었는데, 완전히 빨려들어서 끝까지 집중해서읽었습니다(그래도 수차례 재독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번 편지 이후로 논문 찾는 거며 연락 취하는 거며조사를 엄청 많이 하셨더군요- 그리고 생각도 무척이나많이 하셨고요. 어느 프랑스인의 말마따나, 교수님(그리고다른 사람들도)의 경험이 과연 "생각의 폭풍"을 일으켰나봅니다.
어렸을 때 받았던 수술 정보와 단안시가 된 
의사의 흥미로운 사례를 전해 주신 이전 편지에 제가 감사를 표했는지 잘 모르겠네요(요즘 집을 자주 떠나 있었습니다).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뒤늦게나마 지금이라도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4월 12일자의) 새 편지도 밥 와서먼과 랠프에게 한 부 복사해서보내겠습니다(며칠 뒤 직접 만날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마저리 리빙스턴과 주고받은 편지였습니다-최근 뉴욕과학아카데미모임에서 허블과 비셀을 만나 (두 사람은 전에도 만난 - P73

적이 있습니다) 간략하게 교수님 이야기를 전했더니, 둘다 크게 관심을 보이며 저더러 더 자세히 알아보라고하더군요. 교수님 말처럼 정설이 자리 잡았을지는몰라도, 둘은 생각이 활짝 열린 사람입니다.. 교수님께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부터 줄곧 이 사안을 널리 (그리고현명하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지금으로선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지, 누가 그 일을 맡아야 할지 잘모르겠네요. 입체적인 안부를 전하며. - P74

자신의 경험이 일반적인 믿음이나 확고한 정설과 반대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자기 경험을 편향적이고 결함 있는것으로 치부해 버릴까, 아니면 권위에 의문을 제기할까? 올리버가 내 편지를 더없이 진지하게 받아 준 덕분에, 나는 자신감을가지고 내 경험을 신뢰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올리버와 나의 공통점은 집요한 성격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둘 다 글을 쓸 때 생각이 가장 잘 풀렸다. 올리버가 나를 주인공으로 글을 써서 발표한 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올리버에게편지를 보냈다. 내 이야기를 검토하고 정리하고 결국 책으로 낼수 있었던 건 올리버와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은 덕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환자에서 주체로, 다시 저자로 변신했다. 하지만 너무 앞서나가진 말자. 그전에 먼저 "스테레오 수"가 있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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