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내린다는 건 틀린 표현이다.
들이붓고 있다.
천둥의 위력은 대단하다.
아직 ‘버지니아 울프‘에 빠져있지만 좀 가벼운 책을 읽고 싶었다.
비 탓이다.
그런데
역시 가볍지 않다.

여행을 왜 즐기지 않느냐면,

어렸을 때 아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때까지 소아 뇌전증을 앓았다. 부모님은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갔을 때 내가 발작을 일으킬까 봐 걱정하시곤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알려지지 않길 바라셨던 듯한데, 이렇게 두 번째 챕터에서 시원하게말해버린다. 문학 출판계에 들어와 가장 좋았던 건 사람들이 아팠던이야기, 아픈 이야기를 무척 아름다운 방식으로 마구마구 해버린다는 점이었다. 첫 회사에서 한 시인의 인터뷰 자리에 갔던 적이 있는데 나와 같은 소아 뇌전증을 앓으셨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셔서 듣고 있다가 놀라움과 해방감을 느꼈다. 말해도 되는구나. 왜 말하면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약한 부분을 햇볕 아래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전 연령대에서 천 명에 네다섯 명은 뇌전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머릿속에서 전기 신호가 다르게 달린다는 - P13

이유로 맞닥뜨려야 하는 위험과 오해는 남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혹시 같은 병을 앓았거나 앓는 분이 이 책을 읽는다면지지하는 마음을 보내고 싶다.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것은 내가 쓰는글들이 다소 엉뚱하고 기괴하다 보니 혹 오해를 더할까 하는 걱정때문이었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쓰러지는 발작이 가장 위험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나의 경우 잠들었을 때 부분 발작을 일으켰다. 숨을 쉴 수 없어서 깼다. 마치 거인이 내 목을 밟고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숨을 쉬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 아슬아슬할 정도로 위험한 시점에 다시 호흡이 돌아왔다. 오류가 난 컴퓨터를 억지로 껐다 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때로 얼굴 일부나 한쪽 팔이 마비되기도 했다. 누워 있을때 발작을 일으키는 것은 상대적으로 부상의 가능성이 적었지만, 늦은 밤 혼자 겪으며 내면이 천천히 조각되었다. 치료를 위해 계절마다 대학병원의 층층을 엄마 손을 잡고 오락가락했다. 피프티 피플』을 쓴 것은 친지 중에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이가 많아 인터뷰 대상자를 소개받기 쉬워서였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뇌파검사를 위해 머리카락 속에 풀을 잔뜩 바르면 프랑켄슈타인」에나올 만한 헤어스타일이 되었고, MRI 기계 속은 몸이 굳도록 추웠다. 그런 유년의 기억들이 내 안에 남아 있어서 병원 이야기를 쓰게된 것 같다. 혼자 느끼는 외로움도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친밀감도 - P14

극대화되는 공간을 소설 안에 세워본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 낯선 상황에서 피곤하면 발작이일어나곤 했으므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피했다. 치료를받고 성장하며 발작은 사라졌고 다행히 아직 재발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재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렇게 돌아오는 발작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뉴스에 그렇게 사망한 이의 사례가 보도되면 먼 나라의 모르는 사람인데도 슬퍼진다. 얼마 전에는 할리우드의 배우 캐머런 보이스가 겨우 스무 살의 나이에 뇌전증으로 인한수면 중 발작으로 사망했다. 할리우드의 배우라서 알려진 것이지, 비슷한 죽음은 지구 곳곳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현대사회에서도 모두가 평균수명을 누릴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똑바로 마주 본 사람들이 인생에서중요한 선택을 더 잘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에 ‘만약 내가 4년 후에 죽는다면 후회할까? 8년 뒤라면?‘
하고 가정해보는 것만으로도 한결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아팠던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미래완료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꿈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처럼 70대에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며 50권까지쓰는 것이지만, 충분한 수명을 누리지 못한다 해도 요절한 사람이아니라 열한 살에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지 않고 있는 힘껏 살았던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뵐 때마다 무병장수를 빌어주시는 독자분 - P15

들께 부응하기 위해 건강검진을 열심히 받고 있긴 하다.
어쨌든, 발작을 빼도 딱히 건강한 젊음이었던 적은 없다. 박카스광고나 국토대장정 포스터에 좀처럼 이입을 못 하는 그룹의 일원으로, 의학의 혜택 속에 살아왔다. 전근대에 태어나지 않아 행운이었다고 안도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여행에 대한 욕망이 약했다. 여행은건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고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는선에서 큰 기쁨을 느끼는 나머지 여행까지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큰 결심을 하고 여행을 갈 때는 바탕화면에 유서에 가까운 지시 사항을 남기고, 담당 편집자님께 그때까지 쓴 원고를 예약 메일로 전송해두기도 했다. 매번 살아 돌아와서 잘 취소했지만………..

생각해보면 살아 있는 상태가 너무 신기하지 않은지? 꼭 개인적 얘기, 사람들 얘기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그렇다. 지구가 초속30킬로미터로 빙글뱅글 날아가고 있는데 그 위에서 온갖 동식물이 38억 년 동안 생겨났다 멸종했다 하며 보글보글 지내왔다는 것이……. 우주는 죽어 있는 게 더 자연스러운 상태인데 어떻게 다들 살아 있지? 거의 매일 놀란다. 심장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뛰었다니? 신경을 쓰지 않는데 호흡이 계속된다니? 산책만 나가도 흥미로운 발견을 하고 화분에 새잎이 나면 기분 좋은 충격을 받는다.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환경주의자가 된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아팠던 - P16

청소년이 쉽게 경이로워하는 어른으로 자란 것이다. 경이의 스위치가 반발력 없이 딸깍딸깍 눌리고 말아서, 다른 아팠던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얼마나 비슷한 성향일지 궁금해진다. 나의 노래 부르며 행진하는 스머프 같은 성격이 (특히 동료 작가들에게) 좀 부담스럽다는 평을 들을 때도 있는데, 나름의 맥락이 있다. 어둡고 죽어 있는 우주에서 기적 같은 지구에 산다는 것이 신기해, 냉소와 절망에 빠졌다가도 빨리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보편적인 개념의 여행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여행을좋아하는 것에 가까웠다. 잘 쓰인 여행 책, 화질 좋은 여행 프로그램,
친구들이 다녀와서 들려주는 이야기와 보여주는 사진들을 즐기며충분히 만족해버리는 편이어서 스스로 여행을 떠나는 편이 아니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지 않다면 말이다. - P17

물론 여행 초기의 뉴욕은 좀 위압적이었다. 일단 그 여행을 위해 일부러 구비한 미러리스 카메라를 처음 며칠은 들고 나가지 못했다. 내가 가방에서 큰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관광객이다! 저기 관광객이 있다!" 하고 표적으로 삼을 것만 같았다. 오래된 똑딱이 카메라만 들고 일단 가까운 소호를 걷기 시작했다. 거리 곳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설치 작품이 있었고, 설치 작품인가 싶어서 보면 그냥 누가 버린 가구이기도 했다.
많이 걸은 탓에 밤에 누우면 발이 뜨거워서 피곤한데도 금방 잠들지 못했다. 그래도 그 뜨거움은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수족냉증같은 건 몇 년이고 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뜨거움이었다. - P33

 리스트를짜는 데는 뉴욕의 특별한 미술관(권이선·이수형 지음, 아트북스, 2012)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트앤드 디자인 뮤지엄• 
●모건 도서관 /미술관
●휘트니 뮤지엄
●구겐하임 뮤지엄
●프릭 컬렉션
●메트로폴리탄
●모마
●뉴욕 도서관 부속 갤러리
●첼시의 갤러리들 - P36

 작품과 상호작용하며 의미를 생산하는 짧은 소설들을 쓰며 소원이 생각보다 일찍 이루어진 것을 벅차했다. 생뚱맞은 소원인 줄알았는데 오래 품고 마음을 기울이고 있으면 가닿고 싶은 대상 쪽에도 신호가 가나 보다. 다른 영역의 아티스트들을 사랑한다. 책은 남의 책, 예술도 남의 예술이 최고…………. 생산자인 것도 좋지만 향유자일때 백배 행복하다. 향유라는 단어 자체가 입 안에서 향기롭다. - P39

애잔한 경영대 캠퍼스 커플이여, 당신들의 딸은 물건너갔습니다………. 그래도 대충 그럴 거라고 말하고 넘어간다.
어쨌건 좋아하는 것을 열렬히 좋아하는 편이고, 새로 좋아할 만한 것을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기도 해서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뭔가 힘든 일을 만나 마음이 꺾였을 때 좋아할 만한 대상을 찾으려고 하면 이미 늦은 감이 있다. 괜찮은 날들에 잔뜩 만들어두고 나쁜 날들에 꺼내 쓰는 쪽이 낫지 않나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끔 누가 "백억이 생긴다면? 천 억이 생긴다면?" 하고 가정하는 질문을 던지면 작업을 쭉 따라가고 있는 동시대 작가의 전시회에 가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제가 수집할게요" 하고 말하는 상상을 해버린다. 그리고 그 작품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전시관을 짓고 도서관도 하나 짓고 기왕 지은 김에 공연장까지………. 규모가 커지는 데몇 초 걸리지 않으니 포부만큼은 CEO처럼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 P41

그러니 사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최악을 각오하고 여행하는지도 모른다. 예민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조금 더 신경이 굵은 사람들은 무의식 깊이 묻어놓았겠지만. 아름다운 해변에도 맹독성 해파리들이 있고, 환한 잔디밭에서도 흉기가 칼집에서 빠져나온다. 세계는, 인류는, 문명은 순식간에백 년씩 거꾸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럴 때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견뎌야만 한다.
같은 장소에서 언제나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지금이 그리 좋지 않은 시대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어디선가 다정한 대화들이 계속되고 있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버릴 수가 없다. - P47

시민으로 기능하는 남성 캐릭터를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두는 전략은 나이브하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확실히 나에겐 물러 터진 구석이있는 것 같다. 현실 약간 옆 안전한 공기층을 만드는 방식의 작가라서 그런 것이겠지 싶다. 그래도 10년 넘게 소설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이 픽션 속의 캐릭터를 생각보다 자주 닮고 싶어 하고 또그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사실 남성 창작자들이 해야 하는 것인데 하는 사람이 적은 것 같기도 하다. 남성성의 이미지를 함께 살아가고 싶은 모델 쪽으로 슬쩍 옮기는 것이 효과가있을지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다른 전략을 써야겠지만, 세상을 바꾸는 데는 늘 찌르는 전략과 녹이는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고믿어왔다. 그리고 나는 녹이는 걸 잘하기에, 자꾸 친구들의 좋아하는 면을 소설 속에 녹인다. 참혹한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다음을 상상하기 위해서. S도 피프티 피플]에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이름이 들어가 있다. 물론 직업도 배경도 다 다르고 그저 큰 눈으로 잘 울면서 묘하게 꼿꼿한 데가 있는 성격만 빌렸지만 말이다. - P65

언젠가 메트로폴리탄에 세 번째로 간다면, 두 번째로 갔을 때와마찬가지로 비 오는 날에 가고 싶다. 전시관과 전시관 사이 빗물이흐르고 공원이 내다보이는 유리창이 아름다워 낮게 한숨 쉬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어떤 풍경에 반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한숨을아는지? 그런 한숨이었다. 일기예보가 아주 어긋난다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도입부에 나오는 도나 타트의 소설 황금방울새를 들고가 읽다가 걷다가 해도 좋을 듯하다. 결국 박물관은 ‘한 번 봤으면됐다‘ 하는 장소가 아니라 몇 번이고 재방문하고 싶은 장소여야 하나 보다. 더하여, 뉴욕을 다룬 책들에는 입을 모아 메트로폴리탄의현대미술 파트가 별로라고 쓰여 있었는데 물론 모마보다 규모는 작지만 인상적인 작품들이 알차게 들어차 있어 빠뜨리면 안 될 듯하다. 여행 책들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박물관의 폐장 시간에 한꺼번에 밀려나온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걸으며 만드는 행렬에 슬쩍 동참해본 것도 좋았다. 그 물결 속에서걷고 있자니 청어라든지 정어리라든지 떼로 다니는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 P72

돌바닥에 누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기 누워 있으니30분쯤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지구는 45억 년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결국 항성과 행성의 수명이 다하면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을텐데, 우리는 짧은 수명으로 온갖 경이를 목격하다가 가는구나 싶었다. 경이를 경이로 인식할 수만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특별해질 것이다. 덧없이 사라진다 해도 완벽하게 근사한 순간들은 분명히 있다. 자연사 박물관에 갔던 날이 나에게 그랬다. - P75

타임스스퀘어가 나타났다.
찾아간 게 아니라 나타난 거라서 흥분하고 말았다. 화려한 전광판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타임스스퀘어가 ‘여러 겹‘을 가진 공간이라서 벅찼던 것 같다. 지금 눈에 보이는 한 겹뿐 아니라 그동안 매체에서 접해왔던 겹들이 있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마차를 탔던 시대까지 가도 타임스스퀘어는 언제나 타임스스퀘어기에 형성된 겹겹 말이다. 여러 겹을 겹쳐 만드는 인쇄용 필름처럼, 접었다 펼쳤다 할 수 있는 부채처럼 겹겹………. 나만 흥분한 게 아니어서 사방에서 탄성이 들렸다. 그 흥분을 모르는 사람들과 나누기도했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두 여성과 신나게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여행 계획을 물어보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벌어지는 공간이었다. 따지고보면 그냥 전광판들 사이의 길쭉한 광장일 뿐인데도, 월리를 찾아서』의 한 장처럼 구석구석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학생이 친구들과 함께 ‘나랑 졸업 무도회에같이 가주겠니?"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한 사람은 꼭 거꾸로 든다) - P85

기준을 세우는 데는 두 가지 해석이 필요했다. 나는 ‘두고 가다‘
를 흘리듯 잃어버린 것, 쓰고 버린 것에 다 적용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아주 제멋대로, 주관적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매일의 산책에서도, 여행지에서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런 물건들을 만날 수 있었고 기뻐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제 3백 장 정도를 가지고 있다. 따로폴더를 만들어두고 며칠에 한 번씩 열어본다. 그 가지각색의 사진들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목표가 없어야 취미가 즐거운 것 같다. 찍을 때의 원칙은 하나, 절대로 물건에 손대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예뻐도 가져오지 않는 건 물론이고, 연출을 위해 건드리지도 않는다.
(딱 한 번 떨어져 있는 트럼프 카드의 앞면이 궁금해서 뒤집어본 적은 있다.) 꼭필요한 원칙이라기보단 재미를 위해서다. - P93

을 해야 하는 것 같다. ‘나 홀로 채식‘ ‘샤이 채식‘의 한계를 넘어보려고 책에 슬그머니 써보는데 이러면 업무 미팅이 채식 레스토랑, 채식 카페에서 더 잡히지 않을까? 이 책을 함께 만들고 있는 위즈덤하우스 편집부 분들도 언제나 채식 레스토랑에서 미팅을 잡아주셔서기쁘다. 요즘 변화가 가속화되는 중인 듯해 다가올 날들을 설레며기다린다.
어쨌든 근사한 조화를 이루는 샐러드나 유난히 맛있는 과일은입 안에서 불꽃놀이 같은 느낌을 일으켜서 즐겁다. 연근 스테이크와애호박 만두를 처음 먹었을 때의 충격도 근사했다. 다시 뉴욕에 간다면 채식 레스토랑 투어를 해보고 싶다. 모르긴 몰라도 채식 요리도 뉴욕이 제일 맛있지 않을까?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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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몽테뉴의 <에세>를 읽고 싶어졌다.



몽테뉴


언젠가 바르르뒤크에서 몽테뉴는 시칠리아 왕 르네가 자신을 그린 초상화를 보고 물었다. <왜 이런 식으로 모든 사람이 크레용으로 하듯 펜으로 자신을 그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까? > 대뜸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용될 뿐 아니라 그보다 더 쉬운 일도 없으리라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모습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 - P11

은 친숙하기 그지없으니까 어디 한번 시작해 보자. 하지만착수해 보면 금방 펜을 내려놓게 된다. 그것은 심오하고 신비하고 압도적인 어려움을 내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문학사 전체에 걸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펜으로 자신을 그리는 일에 성공했을까? 기껏해야 몽테뉴, 피프스‘ 그리고 아마 루소‘ 정도일 것이다. 『의사의 신앙ReligioMedici』은 질주하는 별들과 기이하고 혼란스러운 영혼이어렴풋이 비쳐 보이는 채색 유리와도 흡사하다. 보즈웰이쓴 유명한 전기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어깨 사이로 언뜻언뜻내다보는 그의 얼굴이 잘 닦인 거울 속에 비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자기 기분에 따라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기영혼의 무게와 빛깔과 둘레를 그 혼돈과 다양성과 불완전함가운데 전부 펼쳐 보이는 것은 기술이 필요한 일이며, 그 기술을 온전히 구사하는 이는 오직 한 사람 몽테뉴뿐이다.  - P12

마치 유령이 정신을 휙 스쳐 지나가 미처 그 꼬리에 소금을 뿌릴 틈도 없이 창밖으로 나가 버리는 것만 같다. 또는 떠도는 빛처럼 깊은 어둠을 잠시 비추고는 천천히 가라앉아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도같다. 그래도 말로 할 때는 얼굴과 목소리, 말투가 부족한 점을 채워 주기도 한다. 하지만 펜이란 유연성이 없는 도구이다. 펜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으며, 또 펜에는 그 나름의 습관과 격식이 있다. 펜은 독재자처럼 군림하여 보통사람들을 예언자로 만드는가 하면, 통상 머뭇거리게 마련인인간의 언어를 엄숙하고 당당한 행진으로 바꿔 놓는다. 몽테뉴가 뭇 망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단연 생생하게 두드러지는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그의 책이 그 사람 자신이라는것을 우리는 단 한순간도 의심할 수 없다. 그는 가르치기를거부했고 설교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똑같다고 거듭 말한다. 그의 모든 노력은 자기 자신을 글로쓰고 전달하고 진실을 말하려는 것이었으며, 바로 그것이<보기보다 거친 길>이다. - P14

 학문적 성취에 무슨유익이 있겠는가? 그는 항상 똑똑한 사람들과 어울렸고, 그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그는 그들이 나름빛나는 순간이 있고 열렬히 비전을 제시할때도 있지만, 가장 똑똑한 이들도 자칫 어리석음에 빠질 수있음을 목격했다. 당신 자신을 관찰해 보라. 한순간 기세가오르지만 다음 순간 유리가 깨진 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서고 만다. 모든 극단이 위험하다. 길에서는 아무리 진창이더라도 바퀴 자국이 패인 복판으로 가는 것이 최상이다. 글을쓸 때는 평범한 단어를 고르고 비약이나 웅변은 피할 일이다. 하지만 물론 시는 감미롭다. 최상의 산문은 시로 가득 차있다. - P18

 내적인 삶이 있고 그것을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기는 우리에게는 짐짓 꾸미는 태도만큼 의심쩍은 것이 없다.
저항하고 점잔을 빼며 법칙을 정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망한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살게 된다. 우리는 공직에 봉사하는 이들을 존경하고 명예를 부여해야 하며 그들이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허용할 때는 민망히 여겨야 하지만,
우리 자신은 일체의 명성이나 명예, 다른 사람에게 매이게될 직무들을 피하기로 하자. 우리 자신의 속을 알 수 없는 가마솥, 매혹적인 혼란과 뒤죽박죽인 충동들과 끊임없는 기적으로 들끓는 솥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영혼은 매 순간 경이로운 것들을 솟구쳐 내니 말이다. 운동과 변화는 우리 존재의 본질이며, 경직은 죽음이다. 순응은 죽음이다. 그러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말하고, 했던 말을 또 하고, 자가당착을 범하고, 황당한 헛소리를 쏟아내자. 세상이 뭐라 생각하든 말하든 개의치 말고 기발한 생각들을 밀고 나가자 사는것 말고는 달리 중요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질서도 필요하다. - P20

그렇다면 여기, 모든 모순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무엇이 있다. 이 에세이들은 영혼과 소통하려는 시도이다. 적어도 이 점에서 그의 뜻은 명백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명성이 아니며, 장차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장터에 조각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영혼을 다른사람들과 소통하기를 바랄 뿐이다. 소통이 건강이며, 소통이진실이고, 소통이 행복이다. 함께 나누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고, 가장 병들어 있는 은밀한 생각들에까지 내려가 그것들을빛 가운데 드러내는 것,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아무것도 위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우리가 무지하다면 그렇다고말하는 것, 벗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 P23

이 에세이들이 그 마지막에 이를 때, 아니 힘껏 달려 절정에 이를 때에 점점 더 분명히 떠오르는 것은 삶이다. 죽음이다가올수록 삶은 점점 더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자신의 자아와 영혼과 삶의 모든 측면이 더 소중해진다. 여름과겨울에비단 양말을 신는 것, 포도주에 물을 섞는 것, 저녁 식사 후에 머리를 손질하는 것, 물 마실 유리잔을 갖는 것, 평생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 큰 소리로 말하는 것, 한 손에 휘추리를 들고 다니는 것, 혀를 깨무는 것, 발을 가만두지 못하는 것, 툭하면 귀를 긁는 것, 숙성시킨 고기를 좋아하는 것.
냅킨으로 이를 닦는 것(감사하게도 이빨이 튼튼한 것!), 침대에는 커튼을 달아야 하는 것, 기묘하게도 순무를 좋아했다.
가 싫어하고 또다시 좋아하게 되는 것. 어떤 사실도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게 내버려 둘 만큼 사소하지 않다. 또한 사실들 자체의 흥미로움 외에도 우리에게는 상상력으로 사실들을 변모시키는 신기한 힘이 있다. 영혼이 어떻게 항상 자신의 빛과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관찰해 보라.  - P26

어떻게 실질적인 것을 텅 빈 것으로, 연약한 것을 실질적인 것으로 만드는가를, 백주 대낮을 꿈으로 채우는가를, 현실뿐 아니라 환영(幻影)에도 설레는가를 죽음의 순간에도 사소한 일로 옷을수 있는가를. 또한 그 이중성과 복잡성을 관찰해 보라. 영혼은 친구의 부음을 듣고 깊이 애도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사람들의 슬픔에서 심술궂은 기쁨의 달콤 쌉쌀함을 느낀다.
영혼은 믿지만, 동시에 믿지 않는다. 온갖 인상들에 대한 그놀라운 민감성을, 특히 젊은 날의 민감성을 관찰해 보라. 부유한 남자가 도둑질을 하는 것은 소년 시절에 아버지가 돈을넉넉히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벽을 짓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집짓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영혼은 그 모든 행동에 영향을 주는 신경과 공감 들로 짜여 있다. 하지만 1580년 당시에도 영혼이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아무도 분명히 알지 못한다. 우리는 너무나 겁쟁이이고 관습적인 방식에 안주하기를 좋아하니 말이다. 영혼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것이고, 우리의자아가 세상에서 사장 큰 괴물이요 기적이라는 것밖에는 모른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알아보고 하면 할수록, 내 기형적인 꼴에 놀라며 나 자신을 알 수 없어진다. 관찰하라. 끊임없이 관찰하라. - P27

여기 살아간다는 위태로운 과업에 성공한 한사람이 있다. 자신의조국에 봉사하고 은퇴한 삶을 살았던, 영주요 남편이 아버지였던, 왕들을 대접하고 여자들을 사랑하고 홀로 오래된 채들과 함께 오래 생각에 잠겼던 이가 있다. 그는 극히 미묘한것들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관찰함으로써 마침내 인간의 영혼을 이루는 모든 부조화한 부분들을 기적적으로 짜 맞추기에 이르렀다. 그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움켜쥐었다. 그는 행복을 성취했다. 만일 다시 살아야 한다면 똑같은 삶을 다시살리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우리 눈 아래서 한 영혼이 내적인 삶을 펼쳐 가는 매혹적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즐거움이 모든 것의 궁극인가? 그렇다면 영혼의 본질에 대한 이 압도적인 관심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이 욕망은? 이세상의 아름다움으로 족한가? 아니면 이 신비에 대한 어떤 - P28

설명이 다른 곳에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이 있을 수 있을까? 없다. 단지 질문이 한 가지 더 있을 뿐이다.
Quesais-je (나는 무엇을 아는가)?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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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의 천사 죽이기>에서 많은 글들에 매료되었지만 단연 압권은 [여성 노동자 조합의 추억]편이다. 이 분, 매력이 어디까지 일지 짐작도 못하겠다. 1920년대에 여성 노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저런 소신있는 판단이라니, 멋지다.


하지만 여기 인쇄된 그 글들이 그 얼굴들과 음성들을 떠올리며 읽을 수 없는 이들에게 그 모든 것을 의미하기란 어려운 일이겠지요. 여기 모아 놓은 챕터들이 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문학으로서는 많은한계를 갖는 글들이지요. 문학 비평가라면 글쓰기에 객관성과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할 거예요. 여성들 자신도 다양성과특색이 부족하고요. 여기에는 깊은 성찰도 없고, 인생 전체에 대한 조망도 없으며,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고 그는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나 소설은 그녀들의 지평 너머에 있는 것만 같습니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기 전, 자기 교구 밖으로는 나가 본적 없고,
자기 나라 말밖에는 모르며, 오죽잖은 어휘를 어색하게 구사하며 어렵사리 글을 썼던 이름 없는 작가들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글쓰기란 삶에서 크게 영향받는 복잡한 예술이므로 여기 실린 글들은 문학으로서도 식자들이 부러워할 만한자질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령 펠트 모자를 만드는 스콧부인의 말을 들어 보세요. <나는 날린 눈이 3 피트, 어떤 데는6피트가 넘게 쌓여 있는 고개를 넘어갔습니다. 헤이필드에서는 눈보라를 만나 도저히 길모퉁이까지도 갈 수 없을 것만같았지요. 하지만 그런 것이 황야에서의 삶이었어요. 나는모든 풀잎을 다 아는 것만 같았고, 어디서 꽃이 피는지도 알고 있었지요. 모든 시냇물이 내 친구들이었어요. 그녀가 옥스피드에서 문학 박사가 되었다 해도 이보다 더 잘 말할 수있었을까요? 또한 레이턴 부인이 베스널 그린의 성냥 통 공장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또 자신이 울타리 사이로 <그늘에앉아 뭔가 신기한 작업을 하고 있는> 세 명의 여성을 보았던일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보세요. 거기에는 디포의 묘사를방불케 하는 정확성과 명료함이 있습니다. 

키드 양 -세상 짐을 혼자 진 듯하던, 타자 치던 어두운 자주색 옷차림의 여성 - 이 보내온 편지의 일부도 있습니다. <내가 열일곱살 때였습니다. 당시 내 고용주였던 지체 높은 신사가 어느날 밤 나를 자기 집으로 불렀습니다. 겉으로는 책 꾸러미를 가져오라는 것이었지만, 실제 의도는 전혀 달랐지요. 내가 그 집에 가보니 식구들은 모두 멀리 나가 있었고, 그는 나를 굴복시키고서야 보내 주었어요. 열여덟 살에 나는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문학인지 아닌지 나는 감히 말할 수없지만, 그것이 많은 것을 설명해 주고 드러내 준다는 점은확실합니다. 당신의 편지들을 타자하며 앉아 있던 그 어두운모습을 찍어 누르던 짐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 침울하고 굴하지 않는 충성심으로 당신의 문을 지키면서 그녀가품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기억들이었어요.
하지만 더는 인용하지 않으렵니다. 이 글들은 단편들에지나지 않아요. 이 음성들은 이제야 침묵을 뚫고 나와 더듬거리기 시작한 터이니까요. 이 삶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깊은어둠에 덮여 있습니다. 여기 표명된 것을 표명하는 것만도상당한 노고가 필요한 어려운 일이었지요. 이 글들은 부엌에서, 어쩌다 틈이 날 때마다, 온갖 방해와 정신 시끄러운 일들가운데서 쓰인 것이에요. 그녀들이 당신한테 보내온 편지들을 놓고서, 내가 일하는 여성들의 삶의 고단함을 새삼스레강조할 필요는 없겠지요. 당신과 릴리언 해리스는 가장 좋은시절을 바치지 않았던가요. 하지만 쉿! 당신은 내가 이 문장을 끝까지 말하게 두지 않겠지요. 그러므로 오랜 우정과 찬탄의 메시지를 보내며, 이만 맺겠습니다. p224~ 228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그러니까 프랑스 혁명은 그녀의 외부에서 일어난 일개 사건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핏속에 있는 활성제였다. 그녀는폭정에 대해, 법에 대해, 인습에 대해. 그평생 항거했다녀의 내부에는 개혁가다운 인류애가 끓어올랐으며, 그것은사랑만큼이나 증오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발발은 그녀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이론과 신념이 일부 표출된 것이었으니, 그녀는 그 특별한 순간의 열기 속에서 두권의 웅변적이고 과감한 책 『버크에 대한 답변과 여성의권리 옹호』를 내놓았다. 이 책들은 너무나 지당한 내용이라지금 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일 정도로, 그 독창성은우리의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파리에서 혼자 커다란집을 빌려 살면서, 자신이 경멸하던 왕이 국민위병들에게 호송되어 지나가는 것을 직접 목도했을 때는, 그가 의외로 위엄을 잃지 않는 모습에 그녀도 이유를 알 수 없이〉 눈물이난다면서 <이제 자러갑니다. 평생 처음으로 촛불을 끌 수가 - P99

없습니다>라는 말로 편지를 맺고 있다. 세상일이 그리 간단치는 않았으니, 그녀는 자신의 감정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가장 소중히 하던 신념들이 실행에 옮겨지는 것을 보면서도 눈물이 났다니 말이다. 그녀는 명성과독립과 자신의 삶을 살 권리를 얻었지만, 뭔가 다른 것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여신처럼 사랑받기를 원치 않으며, 다만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그녀는 편지에썼다. 그 편지의 수신인이었던 매력적인 미국인 임레이가 그녀에게 아주 다정히 대해 준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그녀는 그를 열렬히 사랑했다. 하지만 사랑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원칙 중 하나였다. 상호간의 애정이 결혼이며, 만일 사랑이 죽는다면, 사랑이 죽은 후까지 결혼이라는유대가 구속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유를원하는 동시에 확실성을 원했다. 그녀는 이런 말도 썼다. 〈나는 애정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그것은 무엇인가 습관적인 것을 뜻하니까요> - P100

 여성의 고난이라는 책도 쓸 예정이었다. 그녀는 교육을 개혁할 예정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는 날도 그녀는 저녁식사를 하러 내려올 예정이었다. 그녀는 해산 때 의사가 아니라 산파를 고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실험이었다. 그녀는 분만중에 죽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그토록 강렬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더없이 비참한 가운데서도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나 자신을 잃는다는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아니, 내가 존재하기를 그친다는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외쳤던 그녀가 36세의 나이에 죽었다. 하지만 그녀는 원을 풀었다. 그녀가 땅에 묻힌 후130년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었고 잊혀 갔지만, 우리는여전히 그녀의 편지들을 읽으며 그녀의 주장에 귀 기울인다.
우리가 그녀의 실험을, 무엇보다도 가장 큰 결실을 맺은 실험, 즉 고드윈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때, 그리고 그녀가 인생의 핵심을 파고들어 간 도도하고 열정적인 태도를 실감할때, 분명 그녀는 일종의 불멸성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여전히 살아 숨쉬며, 주장하고, 실험한다. 우리는 그녀의 음성을 듣고, 지금도 산 자들 가운데 미치는 그녀의 영혼을 뒤쫓는다. - P107

세라 콜리지


그래도 젊은 커플은 그 순간의 부주의에 대해 넘치는 보상을 한 셈이 되었다. 남은 평생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어야했으니 말이다. 그들의 첫아이 세례식에서 콜리지는 무려 여섯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헨리는 근면하면서도섬세하고 사교적이고 즐겁게 지내는 성격이었는데, 샘 숙부의 주문에 걸려 평생 아내의 일을 도왔다. 주석을 달고 편집을 하고 그 경이로운 음성이 하던 말을 기억할 수 있는 한 기록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원고를 편집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세라의 몫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말대로 그 어질러진 궁전의 집사였다. 아버지가 읽은 것을 읽고, 그의 인용을 재확인하고, 그의 성품을 옹호하고, 무수한 행간에 적힌 말들을해독했으며, 원고 꾸러미들을 공략하여 시작만 해놓은 글머리들을 한데 모으고 결말은 아니라 해도 그 계속되는 부분들을 찾아냈다. 하루 온종일 바친 일이 물거품이 되기도 했다. 14 신문사에 보내는 택시 요금이 늘어났고, 비서를 둘 여유가 없이 일하다 보면 눈이 피곤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애매한 구석이 남아 있는 한, 불분명한 날짜나 검증되지 않는 출전, 반증되지 않은 비방이 있는 한, <불쌍하게도 지칠 - P115

줄 모르는 세라>라는 것이 워즈워스 부인의 말이었다
그녀가 한 작업의 상당 부분은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게 완벽하며, 편집자들은 여전히 그녀가 놓은 기초 위에 서 있다.
그 일은 자기희생이라기보다는 자기실현이었다. 그녀는그 뒤죽박죽의 원고 더미에서 육신의 아버지에게서는 알지못했던 아버지를 발견했고, 그 아버지가 곧 자기 자신이라고느꼈다. 그녀는 단순히 그의 원고를 정서할 뿐 아니라 그의주장에 함께하며 그가 되었다. 종종 그녀는 그의 생각이 마치 자신의 생각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다음을 이어 가기도 했다. 그녀는 걸을 때도 아버지와 꼭 마찬가지로 좌우로 조금비칠거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자기 시간의 절반은 그 사라진 광휘를 되비추는 데 쓴다 하더라도, 나머지 절반은 일상의 빛 가운데서, 리젠트 파크의 체스터 플레이스에서 보내야했다. 아이들이 태어났고 그중 몇은 죽었다." 건강이 악화되어 아버지처럼 신경 쇠약에 걸렸고, 아버지처럼 아편을 써야했다. 단 3년만이라도 출산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바랐다니 안쓰러운 일이다. 그러다 헨리가 특유의 명랑함으로 그녀를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끌어내 주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주석들을 쓰다 만 채, 두 자녀와 얼마 안 되는 돈과 미처다 쓸어 주지 못한 샘 숙부의 고대광실을 남긴 채로 말이다. - P116

시절부터 머리칼을 짧게 자른 터였다 - <건조하고 거칠고 윤기 없는 것이, 짧고 뭉툭한 것이 짚북데기 같았다.> 어머니의 거친 가발과 아버지의 고매한 이마를 그녀는 모두 이해했다. 그녀가 교훈을 건너뛸 수만 있었다면 그 이상한 결혼에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을 것인가. 그녀는 자신의 지나온 삶에 대해 쓰려 했지만, 중단되고 말았다.
유방에 멍울이 생겼던 것이다. 그녀를 진찰한 닥터 길먼은암 진단을 내렸다. 그녀는 죽고 싶지 않았다. 아직 아버지의저작을 정리하는 일도 마치지 못했고, 자기 작품은 쓰지도못한 터였다. 그녀 역시 <불완전하게 완성하는 것>을 참을수 없어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흔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처럼 말없음표로 가득 찬 빈 종이를, 그리고 이 두 줄의 시를 남겼다.

아버지, 어떤 아마란스 꽃도 제 이마를 장식하지 못할거예요.
지금 아버지 무덤가에 피어 있는 것으로 족하니까요. - P120

제인 오스틴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요람을 굽어보는 요정 중 하나가 그녀를 데리고 날아다니며 온 세상을 구경시켜 주었음에 틀림없다. 요람에 다시 뉘였을 때, 그녀는 이미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었을뿐 아니라 자신의 영토를 골라 놓은 터였다. 만일 그 영토를
"다스리게 된다면 다른 어떤 영토도 탐내지 않겠다고 동의한터였다. 그리하여 열다섯 살 때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거의 환상을 갖지 않았으며,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환상도 없었다. 그녀가 쓰는 것은 무엇이나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아버지의 목사관이 아니라 온 세상에 대한 관계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비개인적이며 속을 알 수가 없다. 작가 제인 오스틴이 책에서 더없이 탁월한 스케치로 그려 낸 그레빌영부인의 대화 내용을 보면, 목사의 딸 제인 오스틴이 한때홀대받았던 데 대한 분노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녀의 시선은 곧장 표적을 향하며, 우리는 인간 본성의 지도위에서 그 표적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 P126

소문에 의하면 제인오스틴은 <뻣뻣하고 까다롭고 과묵하다고,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부지깽이>라고 한다. 이 점을 알아볼 수 있는 흔적들도 있다. 그녀는 충분히 무자비할수 있으니, 문학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일관된 풍자가 중 한사람이다. 왓슨가사람들』의 딱딱한 처음 몇 챕터는 그녀의 천재성이 다변에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그녀는 가령 에밀리브론테처럼 문만 열면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지는 못했다. 겸손하고 명랑하게, 그녀는 둥지를 지을 잔가지들과지푸라기들을 모아다가 깔끔하게 한데 부려 놓았다. 잔가지와 지푸라기 자체는 좀 푸석거리고 먼지투성이였다. 큰 집도있었고 작은 집도 있었다. 티파티와 디너파티, 가끔은 피크닉도 있었고, 인생은 유익한 인간관계와 적절한 수입의 범위로 한정되었다. 진창길에서는 발이 젖었고, 젊은 여성들은쉬이 지쳤으며, 오죽잖은 원칙이, 오죽잖은 결과가, 시골에사는 중상류층 가정들이 공통적으로 누리는 교육이 그 세계를 지탱했다. 악덕과 모험과 정열은 그 바깥에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산문적이고 사소한 것에도 불구하고,  - P131

 어떤 로맨스도 모험도 정치나 음모도 그녀가 바라보는 시골 저택의 계단 장면에 빛을 더해 줄 수 없었다. 정말이지 섭정공과 그의 도서관장은 대단히 골치 아픈 장애물에 부딪혔으니, 그들은 매수할수 없는 양심을 매수하고 틀림없는 분별력을 흩트리려 한 셈이었다. 열다섯 살 때 이미 그처럼 세련된 문장을 썼던 소녀는 결코 그런 문장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섭정공이나 그의도서관장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해 글을 썼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부과하는 관성의 기준이 높은 작가로서 자신의 재능이 어떤 소재를 다루는 데 적합한지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녀의 영역 밖에 놓인 인상들, 아무리기를 쓰고 공을 들여도 자신의 재주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없는 감정들도 있었다. 예컨대 그녀는 젊은 아가씨가 군대의깃발이나 예배당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하게 할 수는 없었다.
또 낭만적인 순간에 전심으로 몰입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녀는 온갖 수단을 써서 정열적인 장면을 피해 간다.  - P136

그녀는 아름다운 밤을 묘사하면서도 달에 대해서는 단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구름 한점 없는밤의 한함과 숲속의 깊은 그늘의 대조>에 관한 형식적인 몇구절만 읽고도, 그 밤은 그녀가 그냥 그렇다고 말하는 대로<엄숙하고 아늑하고 아름다웠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녀의 재능은 드물게 완벽한 균형을 갖추고 있다. 그녀의완성된 소설 중에는 실패작이 없으며, 그 수많은 챕터 중에다른 것에 비해 현저히 수준이 떨어지는 챕터도 거의 없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그녀는 마흔두 살에 능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죽었다. 그녀에게는 여전히 변모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으니, 때로 그런 변모는 작가의 생애 중 말기를 가장 흥미로운 시기로 만들기도 한다. 활달하고 억제할 수 없으며 생생한창의성을 지닌 그녀였으니,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더 많은작품을 써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런 작품들은 좀 다르게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고 싶은 유혹도 든다. 물론 경계선은 뚜렷하며, 달이니 산이니 성이니 하는 것은 그 너머에 있다. 하지만 그녀도 때로는 잠깐 그 경계선을넘어가 보고 싶지 않았을까? 특유의 명랑하고 감탄할 만한방식으로 자그마한 발견을 위한 여행을 고려하기 시작하지않았을까? - P137

<설득>에는 독특한 아름다움과 독특한 지루함이 있다.
그 지루함은 다른 두 시기 사이의 과도기에 종종 나타나는것이다. 작가는 다소 싫증이 나 있다. 그녀는 자기가 그려 내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너무 친숙해져서, 더 이상 그것이 참신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코미디에 나타나는신랄함은 그녀가 더 이상 월터 경의 허영이나 엘리엇 양의속물주의에 재미를 못 느끼고 있음을 시사한다. 풍자는 가혹하며 코미디는 거칠다. 그녀는 더 이상 일상생활의 재미를신선하게 의식하지 못하며, 대상에 온전히 집중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제인 오스틴이 전에도 이런 일을 했고 더 잘했었다고 느끼는 한편, 그녀가 전에 시도해 본 적 없는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설득』에는 새로운 요소가, 아마도 휴웰 박사‘를 흥분시키고 그것이야말로 <그녀의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주장하게 했던 무엇인가가 있다. 그녀는 세상이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고 더 신비로우며 더 로맨틱하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그녀가 앤에 대해 이렇게 말할 때 - <그녀는 젊은 시절에 신중하도록 강요당했으나, 나이가 들면서 로맨스를 알게 되었다. 부자연스러운 시작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 P138

 그녀는 인물에 대해 알려 주기 위해 대화에 좀 덜의지하고(이 점은 『설득』에서도 이미 엿보인다) 성찰에 좀더 의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단 몇 분간의 수다로 우리가 크로프트 제독이나 머스그로브 부인에 대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요약해 버리는 저 놀랍도록 간결한 대화나, 여러 챕터 분량의 분석과 심리학을 담고 있는, 임기응변식의 기술은 그녀가 이제 인간 본성의 복잡성에 대해 파악한 모든 것을 담기에는 너무 조잡해졌을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방법을, 늘 그렇듯 명쾌하고 차분하지만 더 깊고 더 시사적인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말하는 것뿐 아 - P140

니라 말하지 않는 것까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뿐 아니라인생이 무엇인지까지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인물들로부터 한층 더 멀찍이 서서, 그들을 개인보다는집단으로서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풍자는 전보다덜 빈번하지만 더 가혹하고 준엄해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헨리 제임스‘나 프루스트의 선구자가 되었을 것아, 그쯤 해두자. 이런 사변이 무슨 소용이랴. 여성 중에 가장 완벽한 예술가, 불멸의 책들을 쓴 작가는 자신의 성공에대해 자신감을 느끼기 시작할 바로 그즈음에> 죽었다. - P141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이것은 황야 그 자체만큼이나 스러지지 않는, <길고 구슬픈 바람>만큼이나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세계이다. 이런 고양감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내몰아 단번에책을 읽어 치우게 만들며, 우리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것은 물론 책에서 눈을 들 겨를도 허락하지 않는다. 어찌나깊이 몰두했는지, 누가 방안에서 움직인다면, 그 움직임은이 방안이 아니라 저 멀리 요크셔에서 일어나는 듯이 느껴질 정도이다. 작가는 우리의 손을 꼭 잡고 자기 길로 끌고 가며, 자신이 보는 것을 자신이 보는 방식으로 보게 만든다. 그녀는 단 한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며, 우리가 자기를 잊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마침내 우리는 샬럿 브론테의 천재성과 격정과 분노에 속속들이 젖어 들고 만다. 주목할 만한 얼굴들, 뼈마디가 굵고 다부진 모습들이 우리 눈앞을 스쳐 가지만, 우리가 그들을 본 것은 그녀의 눈을 통해서이다. - P145

제인 에어가 된다는 것의 문제점은 멀리서 찾을 필요도없다. 언제나 가정 교사이고 언제나 사랑에 빠져 있다는 것은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는 심각한 제약이다. 그에 비하면 제인 오스틴이나 톨스토이의 인물들은 훨씬 다면적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통해 사실성과 복잡성을 획득하며,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그들은 자신을 만들어 낸 창조자가 지켜보든 말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그들이 사는 세계는 일단만들어진 후에는 우리 스스로 찾아가 볼 수도 있는 독립된세계처럼 보인다. 토머스 하다는 그의 개성이 갖는 힘이나시야의 편협함에서 샬럿 브론테와 좀 더 가깝다. 하지만 차이는 엄청나다. 『이름 없는 주드』를 읽을 때는 결말을 향해돌진하게 되지 않으며, 인물들 주위에 그들 자신이 대개 의식하지 못하는 질문과 암시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일련의사님을 따라, 우리도 텍스트에서 벗어나 멍하니 떠돌며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 P146

왜냐하면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작가들에게는, 좀 더 보편적이고 폭넓은 정신을 지닌 작가들에게는 없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받는 인상은 그들의 좁은 벽들 사이에 빽빽이 쟁여지고 뚜렷이 각인된다. 그들의 정신에서는 자신으로 각인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작가들로부터 거의 배우지 못하며, 설령 다른 이들의 것을 채택하더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하디도 샬럿 브론테도 자기 문체를 뻣뻣하고 격식 차린 언론의 문체에서 얻은 것만 같다. 하지만 두 사람 다근면함과 더없이 집요한 성실성으로, 모든 생각을 그것이 언어를 굴복시키기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자신의 정신을 온전히 본뜨는 산문을 주조해 냈고, 거기에 덤으로 그 나름의 아름다움과 힘과 날렵함마저 갖추었다.  - P147

많은 책을 읽은 데에 전혀 힘입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직업적인 작가의 매끈함, 속을 채워 넣고 언어를 뜻대로 구사하는 힘 등은 그녀가 배워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나는 남자든여자는 강하고 신중하며 세련된 정신과 교류하게 되면 처음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라고, 그녀는 지방 신문의 논설위원이나 쓸 것 같은 글투로 쓰지만, 점차 열정과 속도를 더해가면서 자신만의 목소리가 되어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인습적인 조심성의 장벽을 넘어서고 신뢰의 문턱을 지나, 그들의마음속에 노변(爐邊)이라 할 만한 곳을 얻고야 말았다.> 그녀는 바로 그곳에 자리 잡는다. 그녀의 문면을 비추는 것은심장의 불꽃에서 나오는 붉게 팔락이는 빛이다. 달리 말해,
우리가 샬럿 브론테를 읽는 것은 인물에 대한 절묘한 관찰때문도 아니고(그녀의 인물들은 건강하고 단순하다), 유머때문도 아니며(그녀의 유머는 음울하고 투박하다), 인생에대한 철학적 견해 때문도 아니라(그녀의 인생관은 시골 목사 딸의 인생관이다), 그녀의 시(詩) 때문이다.  - P148

작품의 의미란, 일어나는 일이나 말해진 것과는 별도로다양한 사물들이 작가와 맺어온 모종의 관계 속에 있을 때가 많으므로, 파악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브론테 자매처럼 작가가 시적이고 그가 뜻하는 바가 그의 언어와 불가분일때, 그리고 그 자체가 특정한 고찰이라기보다 기분에 가까울때는 특히 그렇다. 『폭풍의 언덕』은 『제인 에어』보다 한층더 이해하기 어려운 책인 것이, 에밀리가 샬럿보다 더 위대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샬럿은 자기 글에서 웅변적이고 장려하고 열렬한 어조로 〈나는 사랑한다>, <나는 미워한다>, <나는 괴로워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경험은 좀 더 강렬할지는모르지만 어떻든 우리와 같은 수준에 있다. 하지만 『폭풍의언덕에는 <나>가 없다. 가정 교사도 없고 고용주도 없다. 사랑은 있지만, 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다. 에밀리에게영감을 준 것은 좀 더 일반적인 개념이었다.  - P150

문장은 마무리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그녀가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그 할 말을 우리에게 느끼게 한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 그것은 캐서린 언쇼의 앞뒤없는 말 가운데 차츰 드러난다. <다른 모든 것이 사라져도 그가 남는다면, 나는 여전히 살아갈 거야. 다른 모든 것이 남고그가 없어진다면, 온 우주가 낯설어지고 나는 더 이상 그 일
‘부가 아니게 될 거야. 그것은 망자의 앞에서도 또다시 터져나온다. <나는 지상도 지옥도 깨뜨릴 수 없는 안식을 보며,
끝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내세를, 그들이 들어간 영원을 확신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삶이 무한히 지속되며, 사랑은 그공감 안에서, 기쁨은 그 충만함 안에서 영원할 것이다.〉 이작품이 다른 소설들 가운데서 우뚝 솟아오르는 것은 인간본성이라는 불가사의를 떠받치며 그것을 위대함의 면전으로 들어 올리는 이런 힘에 대한 암시 때문이다. 하지만 에밀리 브론테는 몇 줄의 서정적인 문장을 쓰고, 한마디 외침을내고, 신조를 표명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 P151

하워스



개스켈 부인이 쓴 샬럿 브론테의 『전기』‘를 보면, 하워스 와 브론테 일가는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워스는 브론테를, 브론테는 하워스를 나타내는것이, 마치 달팽이와 그 껍데기처럼 서로 들어맞는다. 환경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는 새삼스레 물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피상적으로 말하더라도 그 영향은 대단할 것이다. 하지만 그 유명한 목사관이런던의 슬럼에 있었다 해도, 화이트채플의 빈민굴이 외딴요크셔 황야와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품어 볼 만하다. 하여간, 하워스를 여행하는 내 구실은 단한 가지였다. 말이 안 될지도 모르지만, 얼마 전에 요크셔를여행한 주된 동기 중 하나가 하워스를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줄지은 이름들이 짧은 간격을 두고 차례로 세상을 떠났음을 보여 준다. 어머니 마리아, 딸 마리아,
엘리자베스 브랜웰, 에밀리, 앤, 샬럿, 그리고 마지막으로이들 모두보다 더 오래 살았던 늙은 아버지. 에밀리는 겨우서른 살에 죽었고, 샬럿도 그보다 아홉 살밖에 더 먹지 못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것이 그들의 이름 아래쪽에 새겨진 구절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싸움이 아무리 험했다 하더라도, 에밀리는, 그리고 누구보다도 샬럿은, 그 싸움에서 승리했으니말이다. - P162

조지 엘리엇



조지 엘리엇을 주의 깊게 읽다 보면, 그녀에 대해 아는것이 얼마나 적은지 깨닫게 된다. 또한 그녀에 대한 빅토리아 후기의 시각을 별생각 없이, 다분히 심술궂게 받아들였던 어수룩함도 돌아보게 된다. 그런 시각에 따르면, 그녀는 미망에 빠진 여인으로 자신보다 한층 더 미망에 빠진대중에게 허망한 지배력을 휘둘렀다는 것인데, 그녀의 그런 마력이 힘을 잃은 것이 딱히 언제였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그녀의 『전기』가 출간되면서였다고도 한다.  - P163

 그 진지한 일요일 오후들에 대한추억이 그의 유머 감각을 자극했던 것을 넌지시 비치곤 했다. 그는 나지막한 의자에 앉은 그 근엄한 여성 때문에 잔뜩긴장했고, 뭔가 지적인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아 초조했었다.
고 한다. 분명 대화는 아주 진지한 것이었던 듯, 위대한 소설가의 친필로 된 편지가 이를 증언한다. 월요일 아침에 쓴 것.
으로 되어 있는 이 편지에서 그녀는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크고서 언뜻 마리의 이름을 잘못 말했다고 하지만 듣는 이가 이미 제대로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하여간 어느 일요일 오후 조지 엘리엇과 더불어 마리보에 대해 이야기하던 추억은 그다지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다. 세월이 가면서바래기는 했어도 좀처럼 근사해지지 않았다. - P165

그와 결합한 직후부터 나오기 시작한 그녀의 책들은 개인적 행복과 함께 찾아온 크나큰 해방감을 십분 보여 준다. 그책들은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풍성한 향연을 제공한다. 하지만 문학적 경력의 문턱에서 그녀의 마음이 자기 자신과 현재로부터 벗어나 과거로, 시골 마을로, 조용하고 아름답고 단순한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향했던 사정의 일단은 그녀의 삶의 정황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녀의 첫 책이 미들마치』가아니라 『목사 생활의 정경Scenes of Clerical Life』이었던 데는이유가 있는 것이다. 루이스와의 결합은 그녀를 애정으로 감쌌지만, 상황과 관습에 비추어 보면 그녀를 고립시키기도 했다. 1857년에 그녀는 이렇게 썼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만, 저로서는 제게 초대를 요청하지 않은 이상 아무에게도저를 만나러 와달라고 초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세상이라 불리는 것으로부터 단절되었다고 훗날 말했지만,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 P170

<아득한 과거의 세계 속에서 자유를구가하며 퍼져 나가는 드넓고 성숙한 정신을 느끼노라면, 상귀실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부적절해 보인다. 그런 정신에게는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다. 모든 경험이 층층의 지각과 성찰을 통해 걸러져서 정신을 한층 더 풍부하고 견실하게 한다.
그녀의 생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아는 것에 비추어 소설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평하려 할 때 우리가 기껏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흔히 배우기 어려운, 특히 젊은 시절에 배우기는어려운 몇 가지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그녀에게 가장 깊이 각인된 것은 인내라는 서글픈 미덕이었다. 그녀의 공감은 일상적인 삶을 향하며, 평범하고 소박한 기쁨과 슬픔을 지켜보는 데서 가장 훌륭하게 발휘된다. 그녀에게는 만족시킬 수도 억누를 수도 없는 자기만의 개성을 의식하고 세상이라는 배경 위에 그 윤곽을 선명히부각시키고자 하는 낭만적 걱정이라고는 없다.  - P171

엘리엇이 어느 한 인물이나 장면마다 추억과 유머의 홍수를 쏟아부어 옛 영국 농촌의 정경전체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은 자연의 과정과도 너무나 흡사하여, 도무지 비판할 것이 있다는 의식조차 들지 않게 한다.
우리는 그저 받아들이고, 위대한 창조적 작가들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감미로운 온기와 정기의 발산을 느낀다. 여러해 만에 다시 펼쳐 보아도 그 책들은 기대를 벗어날 만큼 여전한 힘과 열기를 지니고 있어서, 우리는 붉은 과수원 담장에 반사되는 햇볕 속에서처럼 그 따사로움에 감싸인 채 게으름을 부리고 싶어진다. 그렇듯 잉글랜드 중부 지방의 농부와그 아내의 유머에 굴복한다는 데 대책 없는 방기의 요소가들어 있다 해도, 그 상황에는 그조차도 합당하다.  - P172

 일찍이 그것들을 움켜쥐어 본 여성이얼마나 되련만, 그녀는 그것들을 움켜쥐고서 자기 몫의 유산- 견해 차이, 기준 차이 -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고, 합당치않은 보상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녀를그 기억할 만한 모습을 보게 된다―과도한 칭송을 받고, 자신의 명성으로부터 움츠러들어 의기소침해져서, 오직 그곳에만 만족과 정당화가 있다는 듯 사랑의 품안으로 물러나는모습, 그러면서도 <까다롭지만 굶주린 야심>으로 인생이 자유롭고 탐구하는 정신에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향해 손 뻗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여성적인 열망들을 남성들의 실제 세계와 맞대면시키는 모습을 그녀가 만들어 낸 인물들은 어떠했든 간에, 그녀 자신의 결말은 승리에 찬 것이었다. 그녀가도전하고 성취했던 모든것을 돌아볼 때, 그녀가 어떻게 성별, 건강, 인습 등 온갖 장애물에 맞서 그 이중의 짐에 짓눌린몸이 소진하여 가라앉을 때까지 더 많은 지식과 자유를 구했던가를 돌아볼 때,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그녀의 무덤에 월계수와 장미를 바치지 않을 수 없다. - P180

캐서린 맨스필드


단편소설 작가로서 캐서린 맨스필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데 영국의 저명한 단편소설 작가들이 모두 동의했다고 머리 씨는 말한다. 그녀만 한 작가는 다시없으며, 일찍이어떤 비평가도 그녀의 특질을 정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일기를 읽는 독자는 그런 문제들에 개의치 않아도 좋다. 우리가 그녀의 일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녀가 뛰어나고 유명한 작가라서가 아니라 마음의 정경, 인생의 8년동안 차례로 스쳐 간 우연한 인상들이 한 끔찍하게 민감한 - P181

마음에 남긴 흔적들 때문이다. 그녀에게 일기는 신비로운 벗이었다. <아직 본 적 없는 미지의 벗이여, 함께 이야기하자>라고 그녀는 새 공책의 서두에 썼다. 일기 안에 그녀는 날씨며 약속 같은 사실들도 적어 두었고, 장면들을 스케치하고,
자신의 성격을 분석하고, 한 마리 비둘기나 꿈이나 대화를묘사하기도 했다. 그보다 더 단편적이고 사적인 글도 없을것이다. 우리는 자신과 단둘이 마주한 마음, 청중을 의식하지 않은 나머지 이따금 자기만의 속기법을 사용하는 마음을보게 된다. 마음은 홀로 있을 때 흔히 그러듯 둘로 나뉘어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캐서린 맨스필드가 캐서린 맨스필드에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 P182

다시금 순간 그 자체가 갑작스러운 중요성을 띠고, 그녀는 그 순간을 붙잡아 두려는 듯 그 윤곽을 그린다. <비가 내리고 있지만, 공기는 온화하고 흐릿하고 따스하다. 굵은 빗방울들이 나른한 나뭇잎들을 두들기고, 담배 꽃들은 고개가기운다. 담쟁이덩굴 속에서 뭔가 바스락거린다. 이웃집 정원에서 윙리가 나오더니 담장에서 뛰어내린다. 그러고는 우아하게 앞발을 들고 귀를 쫑긋거리며 큰 물살에 휩쓸릴까 잔뜩겁이 난 듯, 호수 같은 푸른 풀밭을 건너간다. > 나사렛 수녀회의 수녀는 <핏기 없는 잇몸과 변색된 큼직한 이빨을 드러내며 돈을 요구했다. 너무 말라서 몸이 말뚝 네 개에 얹어둔 새장>처럼 깡마른 개가 길거리를 달려간다.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그 마른 개가 곧 길거리 그 자체라고 느낀다. 이런대목들은 마치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들 같다. 어떤 것은 시작이고 어떤 것은 결말이다. 그저 단어들을 엮어 두르기만하면 완성될 것 같다. - P183

 그녀보다 더 글쓰기를 중요하게여긴 이는 없었다. 본능적이고 빠른 필치로 써 내려간 그녀의 일기 어디를 펼쳐 보아도, 자기 일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감탄할 만하다. 건전하고 치밀하고 엄격하다. 문단의 뒷담화도 허영심도 질투도 없다. 생애의 마지막 몇 해 동안에는 자신이 성공한 것을 분명 알고 있었겠지만, 그 점에 대한 언급도 없다. 자기 작품에 대한 그녀의 논평은 항상 예리하고 통렬하다. 자신의 작품은 풍부하지 못하고 깊이도 없다, 자기는 <그저 표면을 훑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사물을 적절하고 예민하게 표현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것은 표현되지 않은 무엇인가에 기초해야하며, 그 무엇인가는 견고하고 온전한 것이라야 한다.  - P184

여성 노동자 조합의 추억


그렇듯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지성이 힘차고 활동적인지성이라는 사실이 곧 명백해졌습니다. 1913년 6월에 그 지성은 이혼법의 개혁에 대해, 토지 가치세 부과에 대해, 최저임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모성 보호에 대해, 임금위원회 법에 대해, 14세 이상 청소년의 교육에 대해 관심을갖고 있었고, 정부가 성인의 선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만장일치로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온갖 종류의 공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건설적으로, 투쟁적으로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애크링턴은 핼리팩스와, 미들즈브러는 플리머스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논쟁과 반대가있었고,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자 수정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치켜든 손들이 검(劍)처럼 빳빳했고, 아침나절은 종소리에따라 정확히 5분 길이로 잘렸습니다. - P204

그런데 - 17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런던과 그 밖의 지역으로부터, 연설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으러 왔던 당신의 손님들의 마음속에 오갔을 생각들을 정리해 봅시다 —그 회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여자들은 이혼과 교육과 투표권을 요구했고 다 좋은 일들이었습니다. 그녀들은 또한 임금 인상과 근무시간 단축을 요구했으니, 그보다 더 지당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토록 지당한데도, 그중 상당부분은 설득력이 있고 어떤 부분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했는데도, 당신의 방문객들의 마음속에는 묵직한 불편함이 생겨나 이리저리 요동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질문이 - 아마도 이것이 그 바닥에 있었을 텐데 -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중요한 위생과 교육과 임금 문제, 1실링을 더 달라는요구, 학교에서 1년을 더 배우게 해달라는 요구, 카운터나방앗간에서 아홉 시간 대신 여덟 시간을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내게는 전혀 피와 살로 와닿지 않았던 것입니다.  - P205

확실히 그런 이야기는 뉴캐슬의 연사들의 얼굴에서 보았던 힘과 강인함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원고들을
‘계속 읽어 나가다 보니, 인간정신의 엄청난 활기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징후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자식을 많이 낳고 빨래를 많이 해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 저 타고난 힘은 과월호 잡지에까지 뻗쳐서, 그녀들은 디킨스를 읽고 번스의 시를 베껴 접시 뚜껑에 기대 놓고 요리를 하면서 읽었답니다. 식사 때도 읽었고, 방앗간에 가기 전에도 읽었지요. 디킨스도 읽고 스콧‘도 읽고 헨리 조지‘와 불워 리턴‘ 엘라 휠러 윌콕스‘와 앨리스 메이넬도 읽었으며, <프랑스 혁명사책을 한 권 구했으면, 하지만 칼라일의 것은 말고〉라는 소원을 말하는가 하면, 중국에 대해서는 버트런드 러셀을 읽었 - P221

고, 윌리엄 모리스와 셀리와 플로렌스 바클리, 그리고 새뮤얼 버틀러의 『노트북Note Books」도 읽었어요. 그녀들은 굶주림에서 나오는 무차별적인 식욕으로 과자와 소고기와 파이와 식초와 샴페인을 한입에 삼켜 버리듯이, 그렇게 왕성한지식욕을 가지고서 읽어 댔습니다. 당연히 그런 독서는 토론으로 이어졌지요. 젊은 세대는 빅토리아 여왕이라 해도 자식들을 떳떳이 키워 낸 정직한 잡역부 여성보다 나을 게 없다.
고 말할 만큼 대담해졌어요. 그녀들은 남성 모자의 테두리에똑바른 바늘땀을 박아 넣는 것이 여성의 삶에서 유일한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를 느낄 만큼 용감해졌습니다.
그녀들은 토론을 시작했고, 공장 마룻바닥에 모여 초보적인토론 모임을 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 든 <테두리박기 > 여공들도 지금까지의 신념에 회의를 품고 세상에는똑바른 바늘땀을 박는 일과 빅토리아 여왕 외에 다른 이상들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실로 낯선 사상들이그녀들의 머릿속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이지요.  - P222

조합은 남편과 자식이 있는 나이 든 여성들에게, 한때 베스널 그린의 소녀에게 깨끗한 흙이 주었던, 또는 모자 공장의 소녀들에게 언덕 위로 해 뜨는 광경이 주었던 것과 같은 것을 주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우선 조합은 그녀들에게 무엇보다도 갖기 힘든 것을, 그녀들이 끓는 냄비나 우는 아이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차분히 앉아 생각할 수 있는 방을주었습니다. 이윽고 그 방은 거실이자 회의실일 뿐 아니라,
한데 머리를 두고 자신들의 집과 삶을 개조하고 이런저런 개혁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작업장이 되었습니다. 회원 수가 늘어 20~30명의 여성이 매주 모이게 되자, 아이디어가 늘어나고 관심의 폭도 커졌습니다. 그녀들은 자신의 수도꼭지와자신의 싱크대와 자신의 긴 작업 시간과 적은 급료에 대해토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라 전체의 교육과 조세와 노동조건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지요. 1883년 애클랜드 부인의거실로 쭈뼛거리며 모여들어 바느질을 하며 조합 간행물을소리 내어 읽던> 여성들이 시민 생활의 제반 문제에 대해 대담하고 권위 있게 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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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단. 하. 다.
버지니아 울프는 1920년대에 이런 글을 쓰고, 신문에 기고하고, 논쟁하고, 강연을 했다니...
문학도 문학이지만 여성주의에 관한 확고한 철학과 일관된 논리라니...
결론적으로 2022년도인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환경은 <집 안의 천사 죽이기>는 진행되어야 한다.




여러분 협회의 간사가 이 자리에 나를 초대하면서 제안했습니다. 여러분이 여성의 고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나 자신의 직업상 경험에 관해 뭔가 말해 달라고요. 내가 여자인 것도 사실이고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과연 어떤 직업상의 경험을 해온 것일까요? 선뜻 말하기 어렵네요. 내 직업은 문학입니다. 이 분야에는 여성의 경험, 다시 말해, 여성만이 갖는 경험이라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는 편 - P11

입니다. 아마도 무대 예술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분야에서보다 더 그럴 것입니다. 길은 일찍부터 나 있었지요. 패니버니 애프라 벤, 해리엇 마티노, 제인오스틴, 조지 엘리
‘엇‘ 같은 많은 유명한 여성들과 이름 없이 잊혀 간 훨씬 더많은 여성들이 나보다 오래전에 그 길을 평탄하게 닦아내걸음을 순조롭게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내가 글을 쓰게 되었을 때 내 앞길에 실질적인 장애물은 별로 없었습니다. 글쓰기는 점잖고 무해한 일거리지요. 펜을 긁적인다고 해서 집안의 평화가 깨지지도 않고, 가계에 부담이 되지도 않으니까요. 10실링 6펜스어치 종이만 사던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전부 쓰기에 충분합니다.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지요. 작가에게는 피아노도, 모델도, 파리, 빈, 베를린으로의 유학도,
스승도 필요치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종잇값이 싸다는 것이여성이 다른 어떤 직업에서보다 먼저 작가로서 성공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 P12

그러다 문득 큰돈 들지 않는 손쉬운 일을 해보자는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즉, 그렇게 쓴 종이 몇 장을 봉투에 넣고 그 한구석에 1페니 우표를 붙여, 그 봉투를 길모퉁이에있는 빨간 우체통에 떨구어 보자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나는 저널리스트가 되었고, 내 수고는 다음 달 초하루에 ㅡ내게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날이었지요 - 편집자로부터 온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1파운드 10실링 6펜스 수표로 보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내가 직업여성이라 불릴 자격이 얼마나 적은지, 그런 삶의 투쟁과 난관에 대해 얼마나아는 것이 없는지를 보여 드리기 위해, 한 가지 인정해야겠습니다. 나는 그 돈을 빵과 버터, 집세와 신발과 양말, 또는푸줏간 외상값 등에 쓰는 대신, 나가서 고양이를 한 마리 샀습니다. 멋진 페르시아고양이였는데, 얼마 안 가 이 고양이때문에 이웃들과 심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지요. - P13

 내가 서평을 쓰고 있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괴롭행복와 종이 사이에 끼어들곤 하던 것이 바로 그녀였습니다. 그녀는 나를 귀찮게 하고 내 시간을 허비하고 나를 하도 괴롭혔으므로, 마침내 나는 그녀를 죽여버렸습니다. 젊고 행복한 세대인 여러분은 아마 그녀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고, 〈집안의 천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것입니다. 가능한한 간략히 그녀를 묘사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아주 정이 많습니다. 아주 매력적이고 자기 욕심이라고는 없습니다. 가정생활의 어려운 일들을 척척 해냈지요. 날마다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닭고기를 먹을 때면 다리를 집었고, 외풍이 들면 바람막이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녀는 자기 몫의 생각이나소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항상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소원에 공감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ㅡ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그녀는 정숙했습니다. 정숙함이야말로 그녀의 주된 아름다움으로 여겨졌지요. 부끄러워낯을 붉히는 모습이 더없이 우아하다고들 했습니다.  - P14

소설책 한권을 평하려 해도 자기만의 생각을 가져야 하며, 인간관계와 도덕과 성에 대해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집안의 천사>에 따르면, 여성은 이 모든 문제를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다룰 수가없다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성공하려면 매력적이라야 하고환심을 사야 한다. 요컨대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내 종이 위에 그녀의 날개 그림자나 후광의 광채가 느껴질 때마다 잉크병을 집어 그녀에게 던졌습니다. 그녀는 좀처럼 죽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허구적인 존재라는 것이 그녀를 도왔지요. 유령을 죽이기란 실재하는 존재를 죽이기보다 훨씬 어려우니까요. 그녀는 내가 쫓아 버렸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기어 나왔습니다. 결국은 그녀를 죽여 버렸다고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주 질긴 싸움이었고,
차라리 그리스어 문법을 배우든지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데 썼더라면 좋았을 만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경험, 그 시절의 모든 여성 작가에게 닥칠수밖에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집 안의 천사>를 죽이는 것은여성 작가가 해내야 할 일의 일부였습니다. - P16

<집 안의 천사> 죽이기는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 육체로서의 나 자신의 경험에 대해 솔직히 말하기는 해결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어떤 여성도 해결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녀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여전히 막강하고, 그러면서도 분명히파악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겉보기에는, 책을 쓰는 것만큼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겉보기에는, 글을 쓰는 데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장애가 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안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그녀는 여전히 많은유령과 싸워야 하고, 많은 편견을 극복해야 합니다. 여성이죽여 버려야 할 유령이나 깨뜨려 버려야 할 암초를 만나지않고 그저 앉아서 글을 쓰기까지는, 정말이지 앞으로도 오랜시간이 걸리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성에게 가장 개방된 직업인 문학에서 이러하다면, 여러분이 처음으로 진입하려 하는 새로운 직업들에서는 어떻겠습니까? - P20

만일 여성들이 하나의 성(性)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라면,
그 나라는 세계의 주요한 발견들을 이룩하는 데 별로 기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여성들에게 울적한 결론일까? 왜꼭그래야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우리 대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나 렘브란트가 되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으며, 여성들이 경주에서 2등이나 3등은커녕 6등이나 7등만해도 충분히 만족한다.
면105쪽에는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베넷 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계속해서 주장하는 바이다. 이 대단히 진보한 시대에도 여성이라는 성은 지배당하기를 좋아하며, 영원까지는 아니라 해도 적어도 향후 몇천 년 동안은 여전히 지배당하기를 좋아하리라고 말이다. 이처럼 지배당하려는 욕망 그자체가 지적인 열등함의 증거이다. 몇몇 분야에서는 최근의진보적 사건들이 신비로운 방식으로 여성의 지적인 열등함에 종지부를 찍은 듯한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여성의 명백한 특징으로 남아 있다.>  - P27

교육과 자유의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요. 간단히 말해, 다른 성을 폄하하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겠지만, 자신들의논거에 그토록 확신을 가지고 빠져들다니 베넷 씨와 <상냥한 매>는 다소 다혈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여성들로서는 남성의 지성이 갈수록 저하되어 가고 있다고 믿을 만한모든 이유가 있지만, 대규모 전쟁과 평화가 제공하는 이상의증거가 나오기까지는 그것을 사실로 공표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겠지요. 만일 <상냥한 매>가 진심으로 위대한 여성 시인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그는 왜 『오디세이아』의 저자가 여성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슬쩍 넘어가고 마는지요? 당연히 나는 베넷 씨나 <상냥한 매>가 아는 만큼 그리스어를 안다고주장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포는 여성이었는데 플라톤 - P31

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녀를 호메로스나 아르킬로코스와함께 자신들의 가장 위대한 시인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베넷 씨가 사포보다 나은 남성 시인의 이름을 50명이나 들 수 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놀라운일입니다. 만일 그가 그 이름들을 지면에 발표한다면, 나는여성에게 그토록 소중하다는 순종의 실천으로서 그들의 저작을 구매할 뿐 아니라,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 그 이름들을외울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 P32

그와 별도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 사람의 위대한 뉴턴이 나오기 위해서는 상당수의 그보다 못한 뉴턴들이 있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라플라스, 패러데이, 허셜 등의경력을 조사하고, 아퀴나스와 테레사 성녀의 생애 및 업적을비교하고, 존 스튜어트 밀과 그의 친구들 중 어느 쪽이 밀 부인에 대해 잘못 생각했는지 밝히느라 귀지의 지면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냥한 매>로부터 비겁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동의하리라 생각되는 사실은, 아주 이른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 인구 전체를 낳은 것은 여성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많은 시간과 수고를 요구합니다. 또한 이 일이야말로 여성을 남성에게 - P39

종속시켜 왔고, 그러면서 그녀들 안에 인류의 가장 사랑스럽고 훌륭한 자질을 함양해 왔습니다. 나와 <상냥한 매>가 다른 것은 그가 현재 남녀의 지적 평등성을 부정한다는 점이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베넷 씨와 더불어 여성의 정신은 교육이나 자유를 누려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여성의 정신은 최고의 성취를 이룩할 수 없다고, 여성의 정신은 지금과같은 처지에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여성이 발전해 왔다는 사실은 <상냥한 매>도 이제는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녀들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는 사실을 나는 거듭 말해야겠습니다. 119년도 아닌 19세기에 왜 여성들의 발전에 한계를 두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은 교육만이 아닙니다.
여성들은 경험의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여성들은 자신이 남성들과 다를 때(나는 여성과 남성이 사실상 같다는 <상냥한매>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두려움 없이 자신의 차이를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 P40

 만일 장래에도 그런 견해가 횡행한다면, 우리는 반쯤 문명화된 야만 가운데 남게 되리라고고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편의 영원한 지배와 다른 한편의 영원한 예속을, 적어도 나는 그렇게 정의합니다. 왜냐하면 노예 상태로의 타락과 맞먹는 것은 주인 노릇으로의 타락밖에 없으니까요.


이에 대해 <상냥한 매>는 짧게 답했다. 
<만일 내 견해를 표명함으로써 여성의 자유와 교육이 저해된다면, 나는 더 이상 논의하지않겠다.> - P41

소설은 희곡이나 시보다 훨씬 쉽게 들었다 놓을 수 있다. 조지 엘리엇은 작품을 쓰다 말고 아버지를 간호했다. 샬럿 브론테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감자싹을 도려냈다. 여성은 공용의 거실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던 만큼, 인물을 관찰하고 성격을 분석하는 데 눈이 뜨였다. 그녀가 받은 훈련은 시인이 아니라 소설가가 되기에 적합한 것이었다.
19세기에도 여성은 거의 전적으로 집에서, 자신의 감정속에서만 살았다. 19세기 소설들은 그 탁월함에도 불구하고그것을 쓴 여성들이 자신의 성별 때문에 어떤 종류의 경험들에서는 배제되었다는 사실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작가의 경험이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가령 콘래드"의 소설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은 만일 그가선원이 될 수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또는 톨스토이에게서 그가 군인으로서 전쟁에 대해 아는 것, 부유한 청년으로서 교육을 받고 온갖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인생과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을 제거한다면, 『전쟁과 평화』는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해질 것이다.
- P54

 전쟁이나 항해나 정치나 사업에 대한 어떤 직접적 경험도 그녀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들의 정서적인 삶조차도 법과 관습으로 엄격히 규제되었다. 조지 엘리엇이 루이스 씨"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채 동거하기 시작하자 여론이 들끓었다. 그 압박때문에 그녀는 교외로 칩거했고, 이 일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작품에 가장 나쁜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청해서 만나러 오겠다고 하지 않는 한 자기 쪽에서는 결코 그들을 초대하지 않는다고 썼다. 같은 시기에 유럽의 반대편에서는 톨스토이가 군인으로서 모든 계층의 남녀와 더불어 자유로운 삶을 살았지만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고, 그 경험으로부터 그의 소설들은 놀라운 폭과 힘을 끌어냈다. - P55

 여성 작가는 외적 요인으로 인한 분심 없이 자신의 비전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때 천재성과독창성이 있어야만 도달할 수 있었던 초연함을 이제야 평범한 여성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평균적인 여성 작가의 소설도 1백 년 전, 아니 50년 전에 비하더라도 훨씬 더 참신하고 흥미로워졌다.
하지만 여성은 여전히 자신이 쓰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쓸 수 있기까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야 한다. 우선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것은 겉보기에는 극히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곤혹스러운 문제이다. 즉, 문장 형태 자체가 여성에게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남성들이 만든 문장이라, 여성이 쓰기에는 너무 헐겁고 너무 무겁고 너무 위세를 부린다. 소설에서는 워낙 넓은 범위가 다루어지는 만큼 독자를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손쉽고 자연스럽게 실어 나를 평범하고 통상적인 유형의 문장을 채택해야 하는데, 이런 문장을여성은 스스로 만들어내야만 한다. 현재 쓰이는 문장을 바꾸고 맞춰 가면서, 자기 생각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부서뜨리거나 찌그러뜨리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을 찾아내야만 - P57

 하지만 또한 그것들은 또 다른 질서,
즉 인습이 부과하는 질서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인습의 심판관은 남성들이고, 그들이 인생의 가치 체계를 수립해왔으니, 소설 또한 크게는 인생에 기초해 있는 만큼 소설에서도 이런 가치들이 만연하게 된다.
그러나 인생에서나 예술에서나 여성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남성들의 가치와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여성이 소설을쓰게 되면 기존의 가치관을 바꾸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남성에게는 하찮게 보이는 것을 진지하게 만들고, 그에게 중요한 것을 시시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비판을 받을 터이니, 남성 비평가는 현재의 가치 체계를 바꾸려는 시도에 진심으로 놀라고 의아해하며, 그것이 단순히 다른 시각이 아니라 약하고 사소하고 감상적인시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의 시각과 다르니까. - P58

여기서도 극복해야 할 어려움들이 보인다. 왜냐하면일반화해도 좋다면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손쉽게 관찰되지 않으며, 그녀들의 삶은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 훨씬 덜 검토되고 검증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하루에서는 이렇다 하게남는 것이 없을 때가 많다. 요리한 음식은 먹어 없어졌고, 키워 놓은 자식들은 세상으로 나가 버렸다. 어디에 강조점을둘 것인가? 소설가가 포착할 만한 두드러진 점은 무엇인가?
말하기 어렵다. 그녀의 삶은 극도로 곤혹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익명성을 지닌다. 처음으로 이 미답의 영역이 소설에서탐사되기 시작하고 있으며, 동시에 여성도 직업의 문호 개방 - P59

과거에는 여성의 글쓰기가 갖는 미덕이 지빠귀 노래의 미덕처럼 그 신성한 자발성에 있었다. 그것은 배움 없이, 그저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수다와 재잘거림, 종이위에 쏟아놓아 여기저기 얼룩지며말라 갈 잡담에 지나지 않았다. 장차 여성이 시간과 책과 집안의 작은 공간을 누리게 된다면, 문학은 남성에게 그런 것처럼 여성에게도 갈고닦을 예술이 될 것이다. 여성의 재능은훈련되고 강화되어야 한다. 소설은 개인적 감정의 토로를 넘어, 지금보다 훨씬 더, 다른 어느 예술 못지않은 예술 작품이될 것이며, 그 자원과 한계가 탐사될 것이다.
그런 단계에서부터 좀 더 세련된 예술, 지금까지 여성들이 거의 실천하지 못했던 장르인 에세이나 비평, 역사, 전기를 쓰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 그 자체로 보더라도 그것은 이익이 될 터이니, 그런 글쓰기는 소설의 질을 개선할 뿐 아니라, 마음은 달리 놓여 있는데도 그저 접하기 쉽다는 이유로 소설에 모여들던 객들을 제 갈 길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소설은 우리 시대에 그 - P62

것을 그토록 볼품없게 만들던 역사와 사실이라는 혹을 떼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예언하건대, 여성은 장차 소설은 덜 쓰되 더 훌륭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뿐 아니라 시와 비평과 역사를 쓸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것도, 여성이 자신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거부되었던 것, 즉 여가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는 황금시대, 저 전설적인 시대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 P63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총기가 천부적인 것임을 입증한다. 그녀는 워낙 총명하여 외부의 도움을 괴로워했으며, 워낙 정직하여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른 모든 사람을 따돌릴 만한 철학 체계를 세우기로 한 것은, 완전한 무지의 들판,
그녀 자신의 의식이라는 경작지 않은 땅으로부터였다는것이다. 그 결과가 전적으로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워낙광대한 체계를 세우려다 보니, 첫 책에서 매브 여왕과 요정나라에 대해 매혹적인 글을 쓰게 했던 그녀의 타고난 재능,
신선하고 섬세한 상상력은 얼마 못가 거덜이 나 버렸다. - P75

영문학 작품을 읽는 여느 독자라도 때때로 그런 느낌이들 것이다. 영문학에도 마치 우리 전원의 이른 봄과 같이 살풍경한 시절이 있구나 하고 말이다. 나무들은 벗은 가지들을드러내고 언덕은 아직 녹색으로 덮이지 않았으니, 그 무엇도땅이나 나뭇가지의 윤곽을 감싸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6월의 설렘과 웅성임을 떠올려 본다. 그때는 아주 작은 숲도 움직임으로 가득하고, 가만히 서 있노라면 덤불 속에서분주히 돌아다니는 날쌔고 호기심 많은 동물들의 속삭임과재잘거림이 들려오기 마련이다. 그렇듯 영문학에서도 헐벗은 풍경이 소란과 떨림으로 가득 차려면,  - P81

오빠의 역정과 템플의 질투에 더하여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어서 조용히 죽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템플이 그녀의 주저와 오빠의 반대를 이겨 냈다는 것은 그의 성품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로서는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템플과 결혼한 후 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편지를 쓰지않았으니 말이다. 편지는 곧바로 그쳤다. 도러시가 존재하게했던 세계 전체가 꺼져 버렸다. 그제야 우리는 그 세계가 얼마나 풍성하고 사람들로 북적이며 활기찼던가를 깨닫게 된다. 템플에 대한 애정 덕분에 그녀의 펜에서는 딱딱함이 사라진 터였다. 아버지 곁에서 반쯤 졸면서, 묵은 편지 뒷면에서찾아낸 백지 위에 그녀는 레이디 다이애나에 대해, 아이념가사람들에 대해, 집안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왔다가 어떻게 갔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들이 지루했는지 웃겼는지 매력적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평소대로였는지에 대해, 항상 그 시대 특유의 위엄을 가지고서도 편안한말투로 써나갔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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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木馬와 淑女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生涯와

  木馬를 타고 떠난 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木馬는 主人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像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少女는

  庭園의 草木 옆에서 자라고

  文學이 죽고 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木馬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靑春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雜誌의 表紙처럼 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木馬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 시집[목마와 숙녀 <槿域書齋 1976>]중에서


그러나 결국 하룻밤이 무엇이란 말일까?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특히 어둠이 빨리 옅어지고, 그렇게나 일찍 새가 노래하고, 수탉이 울고, 혹은 파도의 희미한 녹색 골이, 색깔이 변하는 이파리처럼 생기를 띨 때는 그러하다. 하지만 밤은 밤으로이어진다. 겨울은 밤들을 한 묶음 움켜쥐고는, 지칠 줄 모르는손가락으로 똑같이 공평하게 나눠 준다. 밤들이 길어진다. 밤들이 어두워진다. 어떤 밤들은 밝은 행성을, 환히 빛나는 금속판을 높이 치켜든다. 비록 황량해졌지만 가을 나무들은 차가운 성당 어두운 구석에서 환히 빛나는, 갈가리 찢어진 전승 깃발처럼 섬광을 띤다. 그 구석의 대리석에 황금으로 새긴 글자들은 전장에서의 죽음과 멀리 인도의 모래 속에서 하얗게 변색되고 바싹 마른 뼈들을 묘사한다. 가을 나무들은 추수철 노란 달빛 속에서 어렴풋이 빛나고, 그 빛은 노동의 에너지를 숙 - P206

성시키고, 그루터기를 매만지고, 파도를 몰아와서 새파랗게해안에 철썩이게 한다.
이제 인간의 참회와 그 온갖 노고에 감동을 받은 듯, 성스러운 선(善)이 커튼을 열고 그 너머에 홀로 우뚝 곧추선 토끼 같은 형체, 부서지는 파도, 흔들리는 배를 드러내는 듯하다. 우리에게 자격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은 언제나 우리 것이어야 하리라. 하지만 슬프게도, 신성한 선은 끈을 홱 잡아당겨 커튼을닫아 버린다. 그 광경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쏟아지는 우박으로 자기 보물을 덮어서 부수고 뒤죽박죽으로 해 놓아서, 보물이 혹시라도 무사히 돌아오거나 우리가 그 파편들로완전한 전체를 만들어 내거나 혹은 어수선하게 흩어진 조각들에서 진실의 명료한 글자들을 읽는 일은 있을 수 없어 보인다.
우리의 참회는 그저 흘끗 봐줄 만한 가치밖에 없으니까. 우리의 노고는 그저 잠시 유예해 줄 만한 가치밖에 없으니까.
- P207

그렇게 아름다움이 그리고 정적이 지배했고, 더불어 아름다움 그 자체의 형상을 만들었다. 삶이 떠나 버린 형상이었다.
그것은 기차 창문에서 내다보인, 멀리 떨어져 있는 저녁나절의 연못처럼 고적했다. 저녁 무렵 어슴푸레한 그 연못은 너무나 빨리 사라져 버려서 비록 한 번 보였을 뿐이지만 그 고적감을 잃지 않았다. 아름다움과 정적이 침실에서 손을 맞잡았고,
엿보기 좋아하는 바람과 끈적끈적한 바닷바람의 부드러운 코가, 덮개를 씌운 주전자들과 시트에 덮인 의자들 사이를 문지르고 킁킁거리면서 거듭 질문("이 색깔이 바랠까? 부서져 버릴까?")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 질문에 우리는 계속 남아 있을거라고 대답할 필요가 거의 없는 듯, 그 평화로움과 무심함,
순수히 응집된 공기는 거의 방해받지 않았다. - P210

 그런 거울들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구름들이 끊임없이 바뀌고 그림자가 생기는 불안정한 물웅덩이들에, 꿈들은끈질기게 남아 있었다. 갈매기, 꽃, 나무, 남자와 여자, 그리고흰 대지가 스스로 선언하는 것 같았던(그러나 의문을 제기하면즉시 철회하는 듯했던) 선이 승리하고, 행복이 만연하고, 질서가 지배하리라는 기이한 암시에 도무지 저항할 수 없었다. 혹은 어떤 절대적인 선이나 수정 같은 강렬함을 찾아서, 익히 아는 쾌락이나 미덕과는 무관하고 가정생활의 일상적인 과정과도 동떨어진 것, 소유한 사람에게 안정감을 줄 모래 속 다이아몬드처럼 홀로 확고하고 밝게 빛나는 것을 찾아서 이리저리방랑하려는 특이한 충동에도 도무지 저항할 수 없었다. 더욱이, 부드럽게 다가온 봄은 벌들이 윙윙거리고 각다귀들이 춤추는 가운데 온몸을 망토로 휘감고 눈을 베일로 가리고는 고개를 돌렸고, 지나가는 그림자들과 흩날리는 빗줄기 속에서인간의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 P216

하지만 혼수상태에서 잠을 자고 있어도 그 여름의 후반이되자 망치를 펠트 위에 규칙적으로 내리치는 듯이 무디고도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반복되는 충격으로 숄이 더 풀렸고 찻잔들에 금이 갔다. 마치 어떤 거인이 고뇌에 차서 큰 비명을 질러 대는 바람에 찬장 안에 늘어선 컵들이 흔들리는 듯이 이따금 찬장 속에서 유리잔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나면 다시 정적이 감돌았고, 그런 다음에는 밤마다, 때로는 장미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고 햇빛이 벽 위에 선명한 형체를 드러내는 평범한 대낮에도, 무언가 떨어지는 쿵 소리가 이정적 속으로, 이 무심함 속으로, 이 완전무결함 속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 P217

그 계절에 바닷가로 내려가 거닐면서 바다와 하늘에게 어떤 전갈을 알려 주었느냐고 혹은 어떤 환영을 확인했느냐고물었던 사람들은 흔히 드러나는 신의 은총들(바다 위 석양, 새벽의 어슴푸레한 빛, 떠오르는 달, 달을 배경으로 떠 있는 고기잡이배들, 풀을 한 움큼씩 쥐고 서로에게 던지는 아이들) 가운데서 이명랑함이나 평온함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주시해야 했다. 가령 잿빛 배가 고요한 유령처럼 왔다가 떠나갔다. 바다의 잔잔한 표면에는 그 밑에서 뭔가 보이지 않게 끓어오르다가 피를흘린 듯이 자줏빛 얼룩이 져 있었다. 더없이 숭고한 사색을 유도하고 더없이 안온한 결론으로 이끌어 가리라고 기대되는풍경에 이처럼 침입해 들어온 것들 때문에 그들은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덤덤하게 보아 넘기거나, 그것들의 의미를 그 풍경에서 지워 버리는 건 어려웠다.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외부의 아름다움이 내면의 아름다움을 반영하고 있다고 계속 경이를 느끼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 P218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여자 혼자서 하기에는 일이 너무 많았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기는 아이들 방이었지. 아, 너무 축축해서 회반죽이 떨어져 나가고 있구나. 그런데 대체 무엇 때문에 저기에 짐승의 두개골을 걸어 놓은 것일까? 그 두개골에도 곰팡이가 슬었다. 다락방마다 쥐들이 들꿇고, 빗물이 새어 들어왔다. 하지만 램지 가족은 사람을 보내지도 않았고, 직접 와보지도 않았다. 자물쇠 몇 개가 떨어져나가서 문들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녀는 어스름 속에서그 집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여자 혼자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나치게 할 일이 많았다. 움직일 때마다 다리가 삐걱거렸고,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녀는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고는 열쇠를 자물쇠에 넣고 돌렸고, 그 집을 닫히고 잠긴채로 내버려 두었다. - P225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그 소리는 귓전에 닿았다가 잦아들었다. 개 짖는 소리와 양 울음소리는 산발적으로 들렸지만 어쩐지 서로 연결되었고, 곤충이 윙윙거리는 소리와 잘린 풀들이떨리는 소리도 서로 제각각이었지만 어쩐지 조화를 이루었으며, 귀에 거슬리는 풍뎅이의 붕붕 소리와 삐걱거리는 바퀴 소리도 시끄럽고 나지막하지만 신비롭게 결합되었다. 귀를 기울여 모아 들을 때, 늘 조화를 이룰 듯한 이 소리들은 분명히들리는 법도 없고, 결코 완전한 조화를 이루지도 않는다. 이윽고 저녁이 되어 하나씩 둘씩 소리들이 사라지고, 조화는 비틀거리며 스러지고, 정적이 드리운다. 해가 지면서 선명한 윤곽이 사라지고,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정적이 솟아오르고 고요함이 퍼져 나가고 바람이 잦아들었다. 나뭇잎들 사이에 가득퍼진 녹색과 창가에 핀 흰 꽃들에 어린 어슴푸레한 색을 제외하면 여기 빛 한 줄기 없는 어두운 곳에서 세상은 느즈러지게몸을 흔들고는 잠이 든다. - P232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이 모두가 무엇을 뜻할수 있을까? 릴리 브리스코는 혼자 남겨진 후 커피 한 잔을 더가지러 부엌에 가야 할지 아니면 그곳에서 기다려야 할지를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어느 책에선가 보았던 이 말이 그녀의 생각을 막연히 드러냈다. 램지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된 첫날 아침에 그녀는 자신의감정을 간결하게 정리할 수 없었고, 그저 공허한 망상들이 잦아들 때까지, 텅 빈 마음을 감추도록 그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없었다. 실로 긴 세월이 지나고, 램지 부인이 죽은 후에 돌아와서 그녀가 느끼는 것이 무엇일까?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 P239

 왜 느끼지도 않는감정을 끌어내려고 늘 애써야 할까? 불경스러운 일이야. 고작해야 메마르고, 시들어 빠지고, 소진되어 버릴 뿐이야. 이들이나를 초대하지 않았어야 했어. 나는 오지 않았어야 했어. 마흔네 살이나 되어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체하는 것을 혐오했다. 투쟁과파멸, 혼돈의 세계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붓밖에 없으므로, 일부러라도 붓을 들고 장난을 쳐서는 안 된다. 그녀는그런 일을 몹시 싫어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당신이 줄 때까지는 당신의 캔버스에 손을 댈 수 없소, 그녀에게 접근하며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그가 다시 탐욕스럽고도 얼빠진 듯한 얼굴로 다가왔다. 자, 그렇다면 그 일을 끝내는 편이 차라리 더 수월하겠군, 릴리는 오른손을 툭 떨어뜨리며 절망적으로 생각했다.  - P246

 그는 삼켜 버릴 대상을 찾는 사자 같았으며, 그의 얼굴에는 절박한 기색, 과장하는 기색이 어려 있어서그녀를 놀라게 했고 치맛자락을 그러모으게 했다. 그러고 나면 갑자기 그의 활력이 살아났고, 갑자기 빛이 타올랐으며 (그녀가 그의 구두를 칭찬했을 때) 일상적인 인간사에 대한 활기와관심이 되살아났다. 이런 상태도 지나가고 변하면서(그는 늘변하고 있고,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으므로) 마지막 단계로 나아갔다. 그 단계는 그녀로서는 처음 보는 새로운 것이었으며 자신의 과민한 반응을 부끄러워하게 만들었다고 그녀는 인정했다. 그는 근심이나 야망을 다 떨쳐 버린 것 같았고, 공감에 대한 기대와 칭찬에 대한 욕구는 다른 영역에 들어섰으며, 손에닿지 않는 그 작은 행렬의 선두에 서서 마치 호기심에 이끌린듯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과 말없이 나누는 대화에 빠져든것 같았다. 얼마나 특별한 얼굴인가! 대문이 큰소리를 내며닫혔다. - P256

그래, 그들이 갔어. 이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안도와 실망의한숨을 쉬었다. 휘어졌던 가시나무가 다시 튕겨서 그녀의 얼굴에 부딪히듯이 그녀의 공감이 자기 얼굴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자신이 분열된 느낌이었다. 그녀의 한 부분은 저기로 이끌려 간 것 같았다. 안개가 낀 고요한 날이었고,
오늘 아침 등대는 무한히 멀게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부분은 집요하게, 확고하게 여기 잔디밭에 붙어 있었다. 그녀는마치 캔버스가 둥실 떠올라 비타협적인 하얀 화폭을 눈앞에펼쳐 놓은 듯이 캔버스를 보았다. 그것은 냉정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온갖 조급함과 동요, 어리석음과 감정낭비에 대해서 꾸짖는 듯했다.  - P257

 죽을 때까지 폭정에 저항하기로 약속했음을. 그들은 불만감에 짓눌렸다. 그들은 강요받고, 명령을 받았다. 아버지는자신의 침울한 분위기와 권위로 또다시 자식들을 짓눌렀고,
자기가 원했기에 이맑은아침에 자신의 명령에 따라서 이 꾸러미를 들고 등대에 가도록 강요했고, 자기 나름의 만족감을위해서 죽은 사람을 기념하는 의식에 동참하도록 했다. 그들은 이것이 싫었기에 그의 뒤에서 꾸물거렸다. 그날의 즐거움은 이미 다 망가지고 말았다.
산들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고 있었다. 보트는 한쪽으로 쏠리고 물결은 예리하게 갈라지면서 작은 녹색 폭포와물거품, 큰 폭포를 일으키며 멀어져 갔다. 캠은 물거품을 내려다보았고, 온갖 보물을 간직한 바닷속을 들여다보았다. 그 속도에 그녀는 매료되었다. 그녀와 제임스의 유대가 조금 약해졌다. 약간 느슨해졌다. 그녀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척 빨리가는구나. 우리는 어디를 가는 걸까? 캠이 움직임에 매료되어있는 동안, 제임스는 돛과 수평선에 눈을 고정한 채 꿈쩍도 않고 키를 조종했다. - P270

 누군가 그에게 손을 내밀던 것을. 여자들이란늘 이렇다고 그는 생각했다. 여자들의 흐리멍덩한 마음은구제 불능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그녀 (자기 아내)도 그랬었다. 여자들은 그 무엇에 대해서도 명료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캠에게 화를 낸 것은 잘못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여자들의 이런 모호함을 다소좋아하지 않았던가? 이는 여자들이 지닌 특이한 매력의 한 부분이었다. 그는 이 아이가 자신에게 미소를 짓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딸은 겁에 질려 보였고,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는 손가락들을 꽉 움켜쥐고, 이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동정과 찬사를 이끌어 내도록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었던 자신의목소리와 얼굴, 표현이 풍부한 신속한 몸짓을 차분히 가다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짓게 할 것이다. 딸에게 건넬 단순하고 편안한 이야깃거리를 찾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야깃거리가 있을까?  - P273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한밤중에 분노로 몸을 떨면서 잠에서 깨었고, "이걸 해라.", "저걸 해라." 하는 그의 명령과 오만, "내게 복종해라." 하는 그의 지배를 기억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평화의 망토에 감긴해안을 슬픈 눈으로 끈질기게 바라보았다. 마치 해안가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서 연기처럼 자유롭게, 유령처럼 자유롭게오갈 수 있는 것 같았다. 저기서는 사람들이 고통을 겪지 않아. 그녀는 생각했다. - P277

 그래, 그녀의 저런 모습을 틀림없이 본 적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는 회색 옷이 아니었고, 그렇게 고요하지도, 그렇게 젊지도, 그렇게 평화롭지도 않았다. 그 모습은 쉽사리 떠올랐다.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월리엄이 말했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름다움에는 이런 형벌이 있다. 아름다움은 너무 쉽사리 다가오고,
송두리째 고스란히 다가온다. 그것은 삶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얼어붙게 한다. 붉게 물들거나 창백하게 질린 얼굴빛, 기묘한 찡그림, 스쳐 가는 빛이나 그림자 같은 동요된 기색은 잊히고 만다. 한순간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하지만 이후에는 언제나 보이는 독특한 면모를 이루는 것들. 이 모든 것을 아름다움으로 덮어 숨기는 일은 훨씬 더 간단했다. 그러나 그녀가 사냥 모자를 홱 눌러썼을 때, 혹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달려갔을때, 혹은 정원사 케네디를 꾸짖었을 때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릴리는 궁금했다. 누가 내게 말해 줄 수 있을까? 누가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 P289

여기저기서 이는 실오라기 같은 바람을 제외하면 너무나맑은 아침이어서 바다와 하늘이 온통 한 폭의 천을 펼쳐 놓은것처럼 보였다. 돛들은 하늘 높이 꽂혀 있고 구름들은 바닷속으로 내려앉은 듯했다. 바다 저 멀리에서 기선 한 척이 거대하게 소용돌이치는 연기를 공중에 뿜어대자, 연기는 장식적인곡선을 그리고 빙빙 돌면서 공중에 머물렀다. 마치 올이 고운망사천처럼 공기가 무언가를 붙잡아서 망사 안에 포근히 간직하다가 이리저리 살살 흔들어 대는 듯이. - P297

그러나그 순간 돛이 서서히 빙 돌더니 점차 부풀었고, 배는 몸을 흔들며 잠에 취한 상태에서 반쯤 깨어나 출발하려는 듯하더니그런 다음에는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파도를 가르며 내달렸다. 그 순간의 안도감은 엄청났다. 그들 모두 서로에게서 다시떨어져 나와 편안해진 것 같았고 낚싯대들이 팽팽히 뱃전 너머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아버지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남몰래 교향곡을 지휘하듯이 신비스럽게도 오른손을 공중 높이 치켜들었다가 다시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 P306

 그의 주머니 속에서 모서리들이 말려 올라간 그 책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들은 알지못했다. 그러나 그는 책에 몰두해 있었다. 그래서 그가 지금그러듯이 잠시 올려다보아도, 그 행동은 무엇을 보려는 것이아니라, 어떤 생각을 더욱 명확히 정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그의 마음은 다시 날아서 책으로 돌아갔고 독서에빠져들었다. 그는 무언가를 인도하는 듯이, 혹은 많은 양 떼를얼러서 몰아가듯이, 혹은 좁은 오솔길에서 밀어제치면서 올라가듯이 책을 읽는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때로 그는 곧바로덤불에 뛰어들어 재빨리 헤치고 나아갔고, 때로는 나뭇가지에 찔리거나 가시나무에 눈이 멀 것 같았지만, 그런 것 때문에패배를 자인하지는 않으리라. 그는 이어지는 낱장들 너머로흔들리면서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그녀는 침몰하는 배에서탈출하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갔다.  - P311

그녀는 다시 바다를, 섬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나뭇잎 같은섬의 뚜렷한 윤곽이 사라지고 있었다. 섬은 무척 작았고, 무척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제는 바다가 해안보다 더 중요했다. 그들 주위에는 온통 일었다 가라앉는 파도뿐이었고, 어느 파도에 실려 온 통나무가 뒹굴었으며, 갈매기 한 마리가 다른 파도를 타고 있었다. 이 근방에서 배 한 척이 침몰했다고 그녀는손가락으로 물을 튀기면서 생각했고, 몽롱한 상태로 꿈꾸듯이 중얼거렸다. 우리는 각자 홀로 죽어 갔지. - P312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서 뭔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들은 층계에서 마주치거나 하면 하늘을올려다보고 날이 맑겠다든가 하고 서로 중얼거렸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도 사람들을 아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세부적인 것들이 아니라 윤곽을 아는 것. 정원에 앉아서 멀리 히스가 만발한 풀밭으로 흘러내리는 자줏빛 언덕 비탈들을 바라보는 것. 그녀는 이런 식으로 그를 알았다. 그가어딘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의 시를 단 한 줄도 읽은 적이 없었지만, 천천히 낭랑한 시구로 이어지고 있음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의 시는 감미롭고 부드러웠다. 사막과낙타, 종려나무와 석양에 대한 시였다. 그의 시는 개인적 감정을 극도로 억제했다. 죽음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했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초연한 면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거의 필요로하지 않았다.  - P318

창문도 선명하게 보였다.
하얗게 칠해진 창문 하나와 바위 위 작은 녹색 덤불도 볼 수있었다. 어떤 남자가 나와서 안경 너머로 그들을 바라보다가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등대가 저런 거였군. 제임스는 생각했다. 이 긴 세월 동안 만 건너편에서 보아 온 등대, 그것은 살풍경한 바위 위에 서 있는 견고한 탑이었다. 그는 그것에 만족했다. 그 모습은 자신의 성격에 대한 모호한 감정을 확인해 주었다. 노부인들이 정원에서 자기들 의자를 끌고 다녔지. 그는 집의 정원을 생각하면서 생각했다. 예컨대 늙은 벡위스 부인은인생이 매우 멋있고 무척 감미로우며 그들은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무척 행복해야 한다고 늘 말했다. 하지만 사실 제임스는 바위 위에 서 있는 등대를 보면서 인생이 저 등대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리를 꼭 웅크린 채 맹렬하게 책을 읽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들 두 사람은 그것을 알았다. "돌풍 앞에서 질주하고 있다. 우리는 틀림없이 침몰할 것이다."
아버지가 이 말을 했을 때와 똑같이 그도 반쯤 소리 내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P331

거기 있는 무언가에 의해 불현듯 생각이 난 듯 그녀는 재빨리 캔버스로 몸을 돌렸다. 거기 그녀의 그림이 있었다. 그래,
초록색과 푸른색 선들이 올라가고 가로지르면서 무언가를 시도했지. 이건 다락방에 걸릴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결국은파괴되고 말겠지. 하지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녀는 붓을다시 잡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는 층계를 바라보았다.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캔버스를 보았다. 흐릿했다. 갑자기강렬하게, 마치 찰나의 순간 그것이 선명히 보인 듯이, 그녀는그 한가운데 선을 하나 그었다. 완성했어. 끝났어. 그래, 그녀는 극도의 피로감이 밀려오는 가운데 붓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이제 그것을 보았어.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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