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몽테뉴의 <에세>를 읽고 싶어졌다.



몽테뉴


언젠가 바르르뒤크에서 몽테뉴는 시칠리아 왕 르네가 자신을 그린 초상화를 보고 물었다. <왜 이런 식으로 모든 사람이 크레용으로 하듯 펜으로 자신을 그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까? > 대뜸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용될 뿐 아니라 그보다 더 쉬운 일도 없으리라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모습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 - P11

은 친숙하기 그지없으니까 어디 한번 시작해 보자. 하지만착수해 보면 금방 펜을 내려놓게 된다. 그것은 심오하고 신비하고 압도적인 어려움을 내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문학사 전체에 걸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펜으로 자신을 그리는 일에 성공했을까? 기껏해야 몽테뉴, 피프스‘ 그리고 아마 루소‘ 정도일 것이다. 『의사의 신앙ReligioMedici』은 질주하는 별들과 기이하고 혼란스러운 영혼이어렴풋이 비쳐 보이는 채색 유리와도 흡사하다. 보즈웰이쓴 유명한 전기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어깨 사이로 언뜻언뜻내다보는 그의 얼굴이 잘 닦인 거울 속에 비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자기 기분에 따라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기영혼의 무게와 빛깔과 둘레를 그 혼돈과 다양성과 불완전함가운데 전부 펼쳐 보이는 것은 기술이 필요한 일이며, 그 기술을 온전히 구사하는 이는 오직 한 사람 몽테뉴뿐이다.  - P12

마치 유령이 정신을 휙 스쳐 지나가 미처 그 꼬리에 소금을 뿌릴 틈도 없이 창밖으로 나가 버리는 것만 같다. 또는 떠도는 빛처럼 깊은 어둠을 잠시 비추고는 천천히 가라앉아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도같다. 그래도 말로 할 때는 얼굴과 목소리, 말투가 부족한 점을 채워 주기도 한다. 하지만 펜이란 유연성이 없는 도구이다. 펜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으며, 또 펜에는 그 나름의 습관과 격식이 있다. 펜은 독재자처럼 군림하여 보통사람들을 예언자로 만드는가 하면, 통상 머뭇거리게 마련인인간의 언어를 엄숙하고 당당한 행진으로 바꿔 놓는다. 몽테뉴가 뭇 망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단연 생생하게 두드러지는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그의 책이 그 사람 자신이라는것을 우리는 단 한순간도 의심할 수 없다. 그는 가르치기를거부했고 설교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똑같다고 거듭 말한다. 그의 모든 노력은 자기 자신을 글로쓰고 전달하고 진실을 말하려는 것이었으며, 바로 그것이<보기보다 거친 길>이다. - P14

 학문적 성취에 무슨유익이 있겠는가? 그는 항상 똑똑한 사람들과 어울렸고, 그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그는 그들이 나름빛나는 순간이 있고 열렬히 비전을 제시할때도 있지만, 가장 똑똑한 이들도 자칫 어리석음에 빠질 수있음을 목격했다. 당신 자신을 관찰해 보라. 한순간 기세가오르지만 다음 순간 유리가 깨진 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서고 만다. 모든 극단이 위험하다. 길에서는 아무리 진창이더라도 바퀴 자국이 패인 복판으로 가는 것이 최상이다. 글을쓸 때는 평범한 단어를 고르고 비약이나 웅변은 피할 일이다. 하지만 물론 시는 감미롭다. 최상의 산문은 시로 가득 차있다. - P18

 내적인 삶이 있고 그것을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기는 우리에게는 짐짓 꾸미는 태도만큼 의심쩍은 것이 없다.
저항하고 점잔을 빼며 법칙을 정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망한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살게 된다. 우리는 공직에 봉사하는 이들을 존경하고 명예를 부여해야 하며 그들이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허용할 때는 민망히 여겨야 하지만,
우리 자신은 일체의 명성이나 명예, 다른 사람에게 매이게될 직무들을 피하기로 하자. 우리 자신의 속을 알 수 없는 가마솥, 매혹적인 혼란과 뒤죽박죽인 충동들과 끊임없는 기적으로 들끓는 솥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영혼은 매 순간 경이로운 것들을 솟구쳐 내니 말이다. 운동과 변화는 우리 존재의 본질이며, 경직은 죽음이다. 순응은 죽음이다. 그러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말하고, 했던 말을 또 하고, 자가당착을 범하고, 황당한 헛소리를 쏟아내자. 세상이 뭐라 생각하든 말하든 개의치 말고 기발한 생각들을 밀고 나가자 사는것 말고는 달리 중요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질서도 필요하다. - P20

그렇다면 여기, 모든 모순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무엇이 있다. 이 에세이들은 영혼과 소통하려는 시도이다. 적어도 이 점에서 그의 뜻은 명백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명성이 아니며, 장차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장터에 조각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영혼을 다른사람들과 소통하기를 바랄 뿐이다. 소통이 건강이며, 소통이진실이고, 소통이 행복이다. 함께 나누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고, 가장 병들어 있는 은밀한 생각들에까지 내려가 그것들을빛 가운데 드러내는 것,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아무것도 위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우리가 무지하다면 그렇다고말하는 것, 벗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 P23

이 에세이들이 그 마지막에 이를 때, 아니 힘껏 달려 절정에 이를 때에 점점 더 분명히 떠오르는 것은 삶이다. 죽음이다가올수록 삶은 점점 더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자신의 자아와 영혼과 삶의 모든 측면이 더 소중해진다. 여름과겨울에비단 양말을 신는 것, 포도주에 물을 섞는 것, 저녁 식사 후에 머리를 손질하는 것, 물 마실 유리잔을 갖는 것, 평생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 큰 소리로 말하는 것, 한 손에 휘추리를 들고 다니는 것, 혀를 깨무는 것, 발을 가만두지 못하는 것, 툭하면 귀를 긁는 것, 숙성시킨 고기를 좋아하는 것.
냅킨으로 이를 닦는 것(감사하게도 이빨이 튼튼한 것!), 침대에는 커튼을 달아야 하는 것, 기묘하게도 순무를 좋아했다.
가 싫어하고 또다시 좋아하게 되는 것. 어떤 사실도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게 내버려 둘 만큼 사소하지 않다. 또한 사실들 자체의 흥미로움 외에도 우리에게는 상상력으로 사실들을 변모시키는 신기한 힘이 있다. 영혼이 어떻게 항상 자신의 빛과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관찰해 보라.  - P26

어떻게 실질적인 것을 텅 빈 것으로, 연약한 것을 실질적인 것으로 만드는가를, 백주 대낮을 꿈으로 채우는가를, 현실뿐 아니라 환영(幻影)에도 설레는가를 죽음의 순간에도 사소한 일로 옷을수 있는가를. 또한 그 이중성과 복잡성을 관찰해 보라. 영혼은 친구의 부음을 듣고 깊이 애도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사람들의 슬픔에서 심술궂은 기쁨의 달콤 쌉쌀함을 느낀다.
영혼은 믿지만, 동시에 믿지 않는다. 온갖 인상들에 대한 그놀라운 민감성을, 특히 젊은 날의 민감성을 관찰해 보라. 부유한 남자가 도둑질을 하는 것은 소년 시절에 아버지가 돈을넉넉히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벽을 짓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집짓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영혼은 그 모든 행동에 영향을 주는 신경과 공감 들로 짜여 있다. 하지만 1580년 당시에도 영혼이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아무도 분명히 알지 못한다. 우리는 너무나 겁쟁이이고 관습적인 방식에 안주하기를 좋아하니 말이다. 영혼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것이고, 우리의자아가 세상에서 사장 큰 괴물이요 기적이라는 것밖에는 모른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알아보고 하면 할수록, 내 기형적인 꼴에 놀라며 나 자신을 알 수 없어진다. 관찰하라. 끊임없이 관찰하라. - P27

여기 살아간다는 위태로운 과업에 성공한 한사람이 있다. 자신의조국에 봉사하고 은퇴한 삶을 살았던, 영주요 남편이 아버지였던, 왕들을 대접하고 여자들을 사랑하고 홀로 오래된 채들과 함께 오래 생각에 잠겼던 이가 있다. 그는 극히 미묘한것들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관찰함으로써 마침내 인간의 영혼을 이루는 모든 부조화한 부분들을 기적적으로 짜 맞추기에 이르렀다. 그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움켜쥐었다. 그는 행복을 성취했다. 만일 다시 살아야 한다면 똑같은 삶을 다시살리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우리 눈 아래서 한 영혼이 내적인 삶을 펼쳐 가는 매혹적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즐거움이 모든 것의 궁극인가? 그렇다면 영혼의 본질에 대한 이 압도적인 관심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이 욕망은? 이세상의 아름다움으로 족한가? 아니면 이 신비에 대한 어떤 - P28

설명이 다른 곳에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이 있을 수 있을까? 없다. 단지 질문이 한 가지 더 있을 뿐이다.
Quesais-je (나는 무엇을 아는가)?  - P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