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
우리가 시를 쓰는 건 잊지 않기 위해서예요. 돌아가시기 전날 아버지 눈빛이 어떠했는지… 꽃매미 날개를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것도 내 삶이 너무 허망하기 때문이에요. 시는 이제는 기억도 못 하는 숱한 상처들의 기록이에요. 그 속에는 내가 받은 상처뿐 아니라, 내가 준 상처도 포함돼 있어요. 길바닥의 개미를 보고 피하려고 조심하지만,
이미 내 구둣발 밑에 으깨어진 개미는 보이지도 않았을 테니…… -P147

202
글을 쓰나 안 쓰나 우리는 망하게 되어 있어요. 글로써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서 위로받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는 것뿐이에요.

203
시는 기도예요. 하느님한테 뭐 해달라고 조르는 기도가아니라, 어쩌든지 당신 뜻대로 살겠다는 약속이지요. 시는번제예요. 희생제물을 까맣게 태워 아무도 못 먹게 만드는 거예요. 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시는 비로소 안심이 되는 자리예요.

204
『주역의 수뢰 준‘ 괘는 물 밑에서 우레가 솟는 형상인데, 창조와 신생의 간난을 의미해요. 특히 이라는 글자는 어린 싹이 땅속에서 뒤틀리며 어렵게 올라오는 모습을 하고 있어요. 출구 없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살아 나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시도 그렇지 않을까해요. - P83

205
인간의 한계와 삶의 한계는 같은 것이고, 그것이 곧 시의 한계예요. 시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탐구와 모색이에요.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한 부정같은 시가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일이에요.

206
문학은 외줄 타는 광대의 막대기와 같아요. 막대기는 흔해빠진 것이지만, 줄타기하는 사람에게는 생명이에요.

207
문학은 허기로서 가 닿아야 해요. 허기진 얘기는 골백번들어도 늘 새로워요. 이 허기는 하느님도 못 건드려요. - P84

210
시는 고통스러운 거예요. 대상에 상처를 내고 그 맨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좋은 시는 실성한 사람의 헛소리에 가까워요. 여러 번 읽어도 잘 모르지만, 한번 읽고 나면두고두고 잊히지 않아요. - P85

230
시는 언제나 ‘젊은 시‘예요. 시의 깊이는 불화에서생기고, 시의 감동은 열정에서 나와요. 시가 만약 재능이라면, 우리가 무슨 수로 나비나 공작새를 따라갈 수 있겠어요.

231
파카 볼펜의 화살표시 아시지요. 쉽게 들어가지만 나올때는 도무지 안 빠지는 화살촉 같은 시를 써야 해요. - P92

239
시는 말하는 게 아니라, 말을 숨기는 거예요. 혹은 숨김으로써 말하는 거예요. 슬픔을 감추는 것이 슬픔이에요.
슬픔에게 복수하려면, 슬픔이 왔을 때 태연히 시치미를 떼야 해요. 그것이 시예요.

240
시인은 입을 닫고 보여주기만 할 뿐이에요. 입을 열더라도 헛소리만 할 뿐, 계속 딴전을 피워야 해요. 독자가 이해하는 순간, 시는 죽어버려요. - P95

276
모든 사연을 지워버리고 ‘그리고‘로 시작해보세요. 우리 안의 내밀한 상처, 미처 돌보지 않은 거친 것들이 올라올 거예요. 우리의 참 모습은 ‘그리고‘ 이후예요.

277
야단맞은 아이들 자면서도 훌쩍거리던 모습, 잊히지 않아요. 그렇게 풀어주지 못하고 떠나온 것들 참 많지요. 이번 가을 오고 또 가고, 내년에 다시 올 것 같지만 영영 안올 수도 있어요. 사랑을 못 받아도, 못 주어도 응어리가 남아요. 그 응어리를 뒤늦게 풀어주려는 게 시예요.

278
다친 새끼발가락, 이것이 시예요. - P108

280
우리의 일상은 얼다 녹다가 하는 일의 반복이에요. 이지루한 아름다움! 우리가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얼마 되지 않아요, 오직 견디는 것뿐. 위로 안 받기 위해,
좀더 강해지기 위해 우리는 시를 쓰는 거예요.

281
겨울에 오줌 누고 나면 몸을 살짝 떨게 돼요. 체온이 떨어졌기 때문이라 하지요. 시 읽고 나서도 잠깐 떨게 돼요.
사시나무 떨 듯 하는 건 아니고… 시도 오줌도 늘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나오기 때문이겠지요. - P109

286
시는 틈새 만들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우리는시가 만든 틈새만큼 숨 쉴 수 있어요. 그 틈새만큼이 인간의 자리예요.

287
삶을 바꾸는 대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려는 게글쓰기예요. 경상북도 속으로 대한민국이 쑥 빨려 들어가는 일은 글쓰기를 통해 언제나 가능해요. - P111

303
시는 나를 통과해 씌어지는 거예요. 생각이 뻗어나가도록 가만히 두세요. 시를 통해 이전의 관념에서 벗어나는순간, 이전의 ‘나‘는 사라져요. 한 편의 시를 쓸 때마다 내가 잘 죽어야 해요.

304
글을 쓸 때는 내가 글의 품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세요. 글은 내가 맺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맺어지게 돼 있어요. 글쓰기는 머리가 아니라, 말이 하는 거예요. 써나가다헛소리가 튀어나올까 봐 겁내지마세요. 너무 튀면 나중에 잘라주면 되니까요.
OR - P119

342
자기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게 중요해요. 자신이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가봐야 알아요. 스스로 통제할 수없는 데까지 나아가면, 비로소 고요하게 돼요. 그와는 달리, 뭔가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면 자기에게 속는 거예요.

343
시는 살아내려는 의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이 구멍저 구멍 기웃거리면 죽도 밥도 안 돼요. 재료를 최소한으로 쓰는 대신, 꺾임을 확실하게 하세요. 자기 몸에 붙여 쓰되,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달라야 해요. - P133

399
아름다움은 아름답게 하는 것이고, 더럽게 하는 것이더러운 거예요. 되도록 세상에 짐이 되지 않도록 하세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스쳐 지나가는 건 할 수있어요.

400
먹고 싶을 때 먹고, 싸고 싶을 때 싸면서 아름다울 수 있겠어요. 소중한 건 언제나 어렵게 얻어져요. 쉽게 만들고쉽게 보여주면, 쉽게 버림받아요. 물 안 줘도 시들지 않는꽃은 가짜 꽃이에요. 글쓰기는 한 번 할 때마다 한 번씩 죽는 거예요.

401
시의 아름다움은 말 자체가 아니라, 말하는 방식에 있어요. 시는 자세예요. 어떤 자세든 정신과 결부되지 않은 자세는 없어요.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건 아름다운자세밖에 없어요. - P154

414
테니스 칠 때 공을 앞에서 맞추라 하지요. 뒤에서 맞은공에는 힘이 실리지 않아요. 시 쓸 때도 전향적 사고를 해야 해요. 가령 아버지가 아들을 낳은 게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를 낳았다고 해보세요. 안 될 게 없잖아요. 삶이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은 사소한 생각의 전환에서 와요.

415
삶을 바꾸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 생각을 바꾸려면은유를 바꾸어야 해요. 믿을 수 없고 수긍할 수도 없지만,
글쓰기 외에 다른 천국이 없어요. - P159

418
시는 욕망의 꿈틀거림이고, 불화의 부르짖음이에요.
생피를 보려면 딱지 않은 것을 벗겨내야 해요. 예술은 생을 알몸으로 사는 일이에요. - P160

433
우리가 사는 세계는 세계가 아니라, 세계라는 관념이에요. 얼마든지 다른 관념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관념을 세계라고 믿으면 자기 오줌을 마시고, 자기가만든 귀신에 홀리는 것과 같아요. 그렇다고 관념을 무시해서는 안 돼요. 문화가 없다면 자연이 있을 수 없듯이, 관념이 없다면 세계를 재구성할 수도 없으니까요. - P166

435
글도 마음도 자주 살피지 않으면 나와 다른 사람을 해치게 돼요.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 도덕과 달리, 윤리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거예요. 자신에 대한 무한 책임! 자기가 얼마나 피상적인지 아는 것이 윤리의 시작이에요. 피상적인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보다 더 악질이에요.

436
삶과 글은 일치해요. 바르게 써야 바르게 살 수 있어요.
평생 할 일은 이 공부밖에 없어요. 공부할수록 괴로움은 커지지만, 공부 안 하면 내 다리인지 남의 다리인지 구분할수 없어요. 젠체 안 하고 남 무시 안 하려면 계속 공부해야해요. 늘 문제되는 것은 재주와 능력이 아니라, 태도와 방향이에요. - P167

445
이 세상은 인연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인연으로 생기지않은 의미는 없어요. 살면서 우리는 인연에서 한 발자국도벗어날 수 없어요. ‘인연‘을 은유라는 말로 바꾸어도마찬가지예요. - P170

448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의 주인이고, 모르는 것의 하인이라 하지요. 어떤 것을 이해하는 순간, 그것이 우리를 놓아줘요. 삶과 죽음을 함께 보고, 부분에서 전체를 보도록해야 해요. - P171

467
깨달음의 순간이 있기는 할까요? 문제는 깨닫고 나서도몸과 마음이 옛날방식 그대로 움직인다는 거예요. 깨달음에 목 매지 마세요. 어리석음을 그냥 두고 바라보세요. ‘절해고도絶海孤島의 섬처럼, 파도 많이 치는 밤에는 섬도 보이지 않는 절해絶처럼……‘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 P182

468
우리는 망망대해의 물거품 하나에도 못 미쳐요. 문학이란건 허망한 존재가 자기 허망함을 알고 딴짓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에요. 비참하게 깨져도 한심하게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것. 모든 것이 허망하다 해도, 허망하지 않은 게 꼭하나 있어요. 일체가 허망하다고 말하는 이것! 이 공부를오래 해야 독하게 벼려져요. - P182

469
축구 경기에서 끝까지 무승부가 되면, 양팀 선수들이승부차기를 해요. 그때 한 선수가 골대를 향해 가면, 다른선수들은 스크럼을 짜고 격려를 하지요. 기독교 박해 시대때 형장으로 들어서는 순교자를 다른 교우들이 격려할때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시를 쓰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사 앞에서, 우리와 다른 사람을 위해 스크럼을 짜는 게 아닐까 해요. - P183

470
‘당랑거철‘이라는 말이 있지요. 사마귀가 겁 없이수레 앞에 버티고 서서 한번 해보자고 덤비는 것이지요. 참말도 안 되는 한심한 짓이지만, 시도 그런 것 아닐까 해요.
아름드리 나무기둥을 뽑겠다고 부둥켜안고 용써보는 것.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에 실패 안 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올인‘하는 것. 그거라도 안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어요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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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아무리 슬픈 사연도 말하고 나면 고통이 줄어들어요. 아무리 고된 노동이라도 노래에 실리면 힘든 줄을 몰라요.
리듬 때문이지요. 그건 일의 리듬이고 몸의 리듬이에요.
계단 잘 내려가다가도 ‘조심해야지‘ 하면 걸음이 엉켜 비틀거려요. 몸 하는 일에 머리가 개입해서 생기는 혼란이지요. 시 쓸 때도 머리보다 몸에 맡기도록 하세요.

48
머리로 쓰는 글은 세수 안 하고 분 바르는 것과 같아요. 글 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밀고 들어가세요. 생각은 나중에 와야 해요. ‘기다리면 늦어지고, 생각하면 어긋난다‘
는 경구는 어느 수행에서보다 글쓰기에 필요해요. - P27

77
시는 감정도 비유도 아니고, 패턴이에요. 패턴은 소급적인 동시에 예시적이에요. 은유적 의미를 띠지 않는 패턴은없어요. 패턴 자체가 은유에서 나오고, 은유를 가능하게해요.

78
시를 쓸 때는 말의 꼬임새로 패턴을 만들어야 해요. 꼬임은 서너 번 정도면 족해요. 그 이상이면 우리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요. ‘그 사람은 착한 것이 아닌 것이 아닌 것이 아니다‘ 하면 벌써 착한 건지, 아닌 건지 분간이 안 되잖아요. - P37

121
글을 쓸 때 잡생각을 받아 적어보세요. 일상에서 잡생각은 시에서 진실이고, 일상에서 진실은 시에서 잡생각이에요. 우리가 쓸데없다고 버리는 것 안에 우리 자신이 가장많이 들어 있어요.

122
잡생각은 가장 그 사람다운 생각이고, 진짜 인생이에요.
그 안에는 꿈과 사랑, 욕망과 희망이 다 들어 있어요. 잡생각의 채널에 접속하고 나면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잡생각이라는 것조차 없어요. - P54

172
다시 정리해볼게요. 행갈이를 하든 안 하든 시는 시예요. 말과 말 사이 점착성을 의식하고, 되도록 쉽게 쓰세요. 중학교 이학년 이상의 말은 필요 없어요. 담장 너머있는 사람에게 하듯 보이게 얘기하세요. 할머니가 손자 데리고 계단 올라가는 것처럼 말하세요. 아기 한 발, 나 한 발그렇게 해야지, 안그러면 가랑이 다 찢어져요.

173
보여준다고 해서, 다 보여주는 건 아니에요. 이야기가밖으로 드러나면 힘이 없어요. 포르노는 두 번 다시 안 보잖아요. 윤리나 이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포르노예요. 그것들을 얘기할 때는 에로티시즘으로 하세요.

174
시 쓰기는 봉오리가 피어나거나,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어떤 모양이 나올지 짐작하기 어려워요. 또 시는 재즈 연주와 비슷해요. 과정이 목표이고, 멈추는 곳이 끝나는 곳이에요.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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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에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버리면 그 전제前提를 무시하는 거예요.

2
시는 진실과의 우연한 만남이에요. 시를 쓸 때 우리는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요. 우리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시는 무지가 주는기쁨의 약속이에요.

3
언어는 때 묻고 상스러운 것이지만,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보고 들을 수 없어요. 언어는 어떤 대상이나목적에 이르는 수단이 아니에요. 언어 자체가 대상이고 목적이에요. 언어를 수단으로 사용하면 언제나 결핍감을 느껴요. 글쓰기는 언어 자신의 탈주이며 모험이에요. - P12

17
시에 힘이 실리지 않는 건 언어에 대한 소홀한 대접 때문이에요. 언어는 시의 처음이고 끝이에요. 하지만 언어가유일한 낙처處라 해서, 반드시 시의 형식을 가질 필요는없어요.

18
우리의 세계는 언어로 된 세계예요. ‘언어 너머‘ 또한 언어이고, 지금 이 말조차 언어예요. 시인은 알몸으로 언어와 접촉하는 사람이에요.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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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라투르 신부는 그의 호주머니에 성모마리아상이새겨진 작은 은빛 메달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 났다. 그는 그녀에게 그 메달을 주며 이는 거룩한 성부께서 축복해 주신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녀는 숨겨 두고 잘 보호하며 그녀를 감시하는 사람들이 잘 때 숭배해야 할 보물을 갖게 된 것이다. 아, 글을 읽을 수 없거나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에게형상 같은, 사랑을 상징하는 물질적인 형태 같은 게 필요하구나! 하고 주교는 생각했다.
그는 커다란 열쇠를 자물쇠에 넣고 나무로 된 문지방 위에서 천천히 되돌렸다. 문밖의 평화와 그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평화가 모두 하나 되는 것 같았다. 눈이 그치고, 아치형의하늘을 뒤덮은 희뿌연 구름이 이제는 모두 상그레 데 크리스토 산 너머로 부드러운 하얀 안개가 되어 가라앉아 있었다.
보름달이 파란 둥근 천장에서 높이, 그리고 외로이 인자하게빛나고 있었다. 주교는 성당 문가에 서서 그의 방문객이 질척한 눈 속에 남기고 간, 한 줄로 늘어선 검은 발자국 띠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 P244

바일랑 신부가 그곳으로 가버린 이후 주교의 부담은 점점더 커져 왔다. 오베르뉴에서 새로 데리고온 사제들은 모두좋은 사람들이어서 주교가 소망하는 것을 실현시키는 데 충실했고 지칠 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이 지방에 낯설어서 결정을 하는 데 소심해 모든 어려운 문제를 주교에게맡겼다. 라투르 신부는 그의 주교 대리가 필요했다. 그는 원주민들과 아주 잘 어울리는 재주가 있었고, 그들의 단점에도아주 쉽게 동정심을 베풀었다. 그들이 함께 있을 때면 주교는 바일랑 신부의 낙관적인 경솔함을 늘억제하지만, 혼자있게 되면 바일랑 신부의 그런 자질을 몹시도 그리워했다.
게다가 그는 바일랑 신부의 동료애가 그리웠다. 이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P249

지금까지 25년간 요셉 신부와 함께 일해 왔지만, 주교는요셉 신부의 모순된 천성에 동조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다만 그 모순된 성질 그대로를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리고요셉이 오래도록 멀리 가 있는 사이에 자신이 그 모순된 성질들을 모두 사랑했음을 깨달았다. 주교 대리는 그가 알고있는, 가장 진실 되게 영적인 사람들 중 하나였다. 비록 그가너무나 열정적으로 이 세상의 많은 물질에 집착하는 경향이있긴 하지만....... 먹고 마시는 것을 아주 좋아하지만 그는 가톨릭교회의 모든 금식을 잘 준수할 뿐 아니라, 기나긴 선교여행에서 힘겨움과 먹을 것이 없음을 견뎌내야 하는 데 대해서도 결코 불평하지 않았다. 요셉 신부가 좋은 포도주에대해 남달리 탐을 내는 취향은 다른 사람에게는 결점으로 보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몸이 허약한 그에게 포도주는그의 목적과 상상을 단숨에 실행시키도록 지원해 주는 약효빠른 육체의 자극제 같은 것이어서 그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듯했다. 훌륭한 만찬이나 클라레 적포도주 한 병이 그의 눈밑에 영적인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것을 주교는 여러 차례 봐 - P252

바일랑 선교사가 의전 수행관의 안내로 면회실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는 축복을 받아야 할 물건들로 가득 찬 두 개의커다란 검은 가방을 가지고 왔다. 관습대로라면 가방 하나만가지고 와야 하는데 두 개씩이나 가져왔던 것이다. 교황을접견하고서 요셉 신부는 그의 선교와 다른 선교사들에 대해너무나 생생하게 설명을 하는 바람에 교황과 비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다가 다음으로 예정되어 있던 면회를 세 번이나 뒤로 미루어야 했다. 교황 그레고리 16세는 귀족적이고전제적인 성직자로서 유럽의 정치 파동에 대해 지고 있는 편을 지지해 주고 있었고, 일관성 있게 자유 이탈리아의적에게 편을 들어주고 있었으며, 앞서 수행한 어떤 교황보다도세상의 먼 곳에 믿음을 전파하는 선교 수행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자신의 마음에 맞는 선교사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바일랑 신부는 그 자신과 그의 동료 사제들, 그의 선교, 그의 주교를 위해 축복을빌어 주십사고 청했다. 그는 행상인 보따리처럼, 십자가와묵주와 기도서와 메달과 성무일과서로 가득 차 있는 커다란가방들을 열더니 그것들에 평소보다 더 많은 축복을 주십사 - P255

고 청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데 놀란 의전 수행관이여러 번 드나들었고, 마츄치도 교황에게 다른 면회객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귀띔을 했다. 의전 수행관이 그곳에 없었으므로 바일랑 신부는 직접 두 개의 가방을 들고 힘겹게 뒷걸음질 쳐 나가고 있었는데, 이때 교황이 의자에서 일어나더니손을 들어 올렸다. 축복을 해주려던 게 아니라, 교황이 아닌한 인간으로서 선교를 위해 떠나는 또 다른 인간에게 인사를하려던 것이었다. 「잘 가요, 미국인!」 - P256

라투르 주교는 나바호족의 집이 숙고를 하며 머물거나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계획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는 것을알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에 있는 그의 형과 옛 친구들에게기나긴 편지를 썼다. 그 인디언 집은 대양 위에 있는 배의 선실처럼 고립되어 있어 집 주변에서 센 바람이 웅얼대고 있었다. 문 말고는 밖으로 열린 곳이 하나도 없었는데 문은 늘 열려 있었고, 밖의 공기는 모래 폭풍으로 인해 몽롱하고 누런빛을 띠고 있었다. 하루 종일 모래가 벽의 틈 사이로 들어와흙바닥에 약간 언덕을 형성할 정도로 쌓였다. 이 집은 아주허름한 주거지라서, 마치 거기 있는 사람이 먼지가 많은 땅과 움직이는 공기로 이루어진 세상의 중심에 앉아 있는 것같아 보였다. - P256

네 시쯤 그들은 리오그란데 계곡 위로 높이 솟은 산등성이로 나왔다. 이 지점에서 오솔길은 기나긴 내리막길이 되어약 60마일 떨어져 있는 앨버커키로 진입하는 샌디아 산맥의발치쯤에서 구불구불 구비치고 있었다. 이 산등성이는 원추형으로 된 바위 언덕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소나무들로 얇게옷을 입고 있었는데, 바위는 신기할 정도로 바다 빛 푸른색과 올리브 빛 푸른색 사이의 푸른빛 음영을 띠고 있었다. 단지 풍화 작용으로 인해 바위가 부서져 이루어진, 얇게 울퉁불퉁 덮인 흙도 이와 마찬가지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라투르 신부는 산등성이의 서쪽 가장자리 위로 뾰족하게 내민한적한 언덕 위로 노새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뾰족하게 내민 그 지점부터는 내리막길이었다. 이 언덕은 홀로 떨어져높이 솟아 있었고, 대담하게도 지는 해와 파란 빛깔의 샌디아 산맥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이 언덕을 향해 다가갔을때, 바일랑 신부는 서쪽 정면으로 흙이 푹 파진 곳에 울퉁불통한 바위벽들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바위벽은 주변 언덕처럼 푸른빛이 아니라 누런빛이었는데 그것도 아주짙은 금빛에 가까운 것으로, 이제는 그 위로 내리비치고 있는 태양빛의 금빛과 매우 흡사했다. 그곳에는 곡괭이와 쇠지렛대가 놓여 있었고 갓 캐낸 돌조각들이 있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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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네 가지 요소를 살펴봐야 해요.
작자, 언어, 대상, 독자

모든 허물은 나에게 있다 하지요.

언어, 대상, 독자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러닝 소매에 머리를 집어넣으려는 아이나
매연을 뿜으며 내달리는 트럭과 뭐 다르겠어요.

어디 시 쓰는 일에서만 그러할까요.
‘안 좋은 시인의 사랑을 받는
남(여)자는 얼마나 안 행복할까.‘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 P7

시 쓰는 공부는 가파른 길이에요.
자기 자신을 내거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삶은 사라지고 시만 남겠지요.

예술과 삶은 거의 같이 나가는 것 같아요.
예술 가지고 장난치거나 멋 부리면 안 돼요.
무엇보다 정성이 있어야 해요.

공자의 스승 주공은 머리를 감다가도손님이 오면 그대로 나가 맞이했다 하지요.
‘구이경지‘라는 말처럼,
시는 끝까지 공경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거예요. - P8

가려운 데를 박박 긁으면 쾌감이 있지요.
그러나 긁고 싶은 대로 다 긁고 나면
온통 피투성이가 되지요.

시 쓸 때 들어가는 문은 가려움,
나가는 문은 따가움,
들어가는 문은 부질없음,
나가는 문은 속절없음이에요.

언제나 가까운 데서 찾고,
다른 데서 가져오려 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자기에게 절실해야 해요.
쓰고 나서 많이 아파야 해요. - P15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피상적인 사고밖에 안 나와요.
예술은 불화에서 나와요.
불화는 젊음의 특성이지요.

나이 들어 좋은 글을 쓰는 건
정신이 젊다는 증거예요.
젊지 않으면 쓰나 마나 한글,
써서는 안 되는 글을 쓰게 돼요.

우리가 할 일은
자기와 불화하고, 세상과 불화하고
오직 시하고만 화해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를 헐벗게 하고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안겨다줄 거예요. - P20

진정성을 가지고 뒤집으면, 모든 게 뒤집어져요.
이제까지 알고 있던 진실도, 거룩함도 다 뒤집어져요.
시가 안 되면, 나에게 뒤집음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세요.
간절하게 묻고, 가까운 데서 찾아보세요切問近思.
난간끝으로, 뜨거운 물속으로 자기를 밀어 넣어야 해요. - P21

시 쓰는 건 자기 정화예요.
화장실에 볼일보러 가듯이,
밥 먹은 다음 양치질하듯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할 일이에요.
우리는 그러지 않으면
금세 지저분해지는 존재예요. - P25

시 쓰는 사람은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해요.
‘자기‘라는 것도 관념일 뿐이에요.

습관과 무감각은 우리를 살게 해주지만
우리를 삶과 절연시키는 것이기도 해요.
시가 고통스러운 것은 고정관념을 벗기기 때문이에요.
그것은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거예요. - P31

시를 쓸 때는 멀리 가되
반드시 돌아와야 하고,
자기 땅을 확보해야 하고,
멀면서도 가까워야 하고,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아야 해요.
그래서 부정확한 게 가장 정확한 게 돼요. - P54

산문은 ‘……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주지만,
시는 ‘...... 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지요.
시는 삶 앞에 마주서게 하고 눈뜨게 해요.

정상적인 언어의 흐름을 교란시킴으로써
삶의 치부를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건 카메라 조리개가 찰칵! 하고 열리면서
동시에 닫히는 것과 같아요.
또 어둠 속에서 성냥불을 밝혀 잠깐 환해졌다가
어두워지는 것과 같아요. - P61

시는 전적으로 말의 일렁임,
술렁임, 속삭임이에요.
시는 뭔지 모르는 거예요.

‘오직 모를 뿐只不知!‘

시를 쓰고 나서, 읽고 나서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야
밥에 뜸이 들고, 물이 끓는 거예요.

시를 임신하고 싶으면
‘모르는 것‘과 섹스하세요. - P83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시는 일차산업이고 철저히 수공업이에요.
시 쓰는 사람은 말을 꼬기만 할 뿐,
시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말이 알아서 할 거예요. - P93

언제나 말할 수 없는 것에
닿으려고 해야 해요.

쓰다가 막히면
위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등산할 때, 길 잃으면
출발한 데로 되돌아가듯이……

소주 두 잔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다음에 써 오실 구절은
‘다시 울 일이 없다.‘ - P108

시는 물수제비뜨는 거예요.
언어라는 수면 앞에 한껏 몸을 낮추는 거지요.

시는 절대적으로 듣는 방식이에요.
대상이 하려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해요.

내 얘기를 하지 말고, 대상의 얘기를 하세요.
의미는 숨기고, 말의 감촉을 느끼도록 하세요.

언어에서 언어로 건너뛰다 보면
내가 할 일이 별로 없어요.

동질적인 재료로 동질적인 판을 짜세요.
만두피처럼 단단히 붙여야 해요.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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