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글을 쓰나 안 쓰나 우리는 망하게 되어 있어요. 글로써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서 위로받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는 것뿐이에요.
203 시는 기도예요. 하느님한테 뭐 해달라고 조르는 기도가아니라, 어쩌든지 당신 뜻대로 살겠다는 약속이지요. 시는번제예요. 희생제물을 까맣게 태워 아무도 못 먹게 만드는 거예요. 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시는 비로소 안심이 되는 자리예요.
204 『주역의 수뢰 준‘ 괘는 물 밑에서 우레가 솟는 형상인데, 창조와 신생의 간난을 의미해요. 특히 이라는 글자는 어린 싹이 땅속에서 뒤틀리며 어렵게 올라오는 모습을 하고 있어요. 출구 없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살아 나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시도 그렇지 않을까해요. - P83
205 인간의 한계와 삶의 한계는 같은 것이고, 그것이 곧 시의 한계예요. 시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탐구와 모색이에요.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한 부정같은 시가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일이에요.
206 문학은 외줄 타는 광대의 막대기와 같아요. 막대기는 흔해빠진 것이지만, 줄타기하는 사람에게는 생명이에요.
207 문학은 허기로서 가 닿아야 해요. 허기진 얘기는 골백번들어도 늘 새로워요. 이 허기는 하느님도 못 건드려요. - P84
210 시는 고통스러운 거예요. 대상에 상처를 내고 그 맨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좋은 시는 실성한 사람의 헛소리에 가까워요. 여러 번 읽어도 잘 모르지만, 한번 읽고 나면두고두고 잊히지 않아요. - P85
230 시는 언제나 ‘젊은 시‘예요. 시의 깊이는 불화에서생기고, 시의 감동은 열정에서 나와요. 시가 만약 재능이라면, 우리가 무슨 수로 나비나 공작새를 따라갈 수 있겠어요.
231 파카 볼펜의 화살표시 아시지요. 쉽게 들어가지만 나올때는 도무지 안 빠지는 화살촉 같은 시를 써야 해요. - P92
239 시는 말하는 게 아니라, 말을 숨기는 거예요. 혹은 숨김으로써 말하는 거예요. 슬픔을 감추는 것이 슬픔이에요. 슬픔에게 복수하려면, 슬픔이 왔을 때 태연히 시치미를 떼야 해요. 그것이 시예요.
240 시인은 입을 닫고 보여주기만 할 뿐이에요. 입을 열더라도 헛소리만 할 뿐, 계속 딴전을 피워야 해요. 독자가 이해하는 순간, 시는 죽어버려요. - P95
276 모든 사연을 지워버리고 ‘그리고‘로 시작해보세요. 우리 안의 내밀한 상처, 미처 돌보지 않은 거친 것들이 올라올 거예요. 우리의 참 모습은 ‘그리고‘ 이후예요.
277 야단맞은 아이들 자면서도 훌쩍거리던 모습, 잊히지 않아요. 그렇게 풀어주지 못하고 떠나온 것들 참 많지요. 이번 가을 오고 또 가고, 내년에 다시 올 것 같지만 영영 안올 수도 있어요. 사랑을 못 받아도, 못 주어도 응어리가 남아요. 그 응어리를 뒤늦게 풀어주려는 게 시예요.
278 다친 새끼발가락, 이것이 시예요. - P108
280 우리의 일상은 얼다 녹다가 하는 일의 반복이에요. 이지루한 아름다움! 우리가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얼마 되지 않아요, 오직 견디는 것뿐. 위로 안 받기 위해, 좀더 강해지기 위해 우리는 시를 쓰는 거예요.
281 겨울에 오줌 누고 나면 몸을 살짝 떨게 돼요. 체온이 떨어졌기 때문이라 하지요. 시 읽고 나서도 잠깐 떨게 돼요. 사시나무 떨 듯 하는 건 아니고… 시도 오줌도 늘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나오기 때문이겠지요. - P109
286 시는 틈새 만들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우리는시가 만든 틈새만큼 숨 쉴 수 있어요. 그 틈새만큼이 인간의 자리예요.
287 삶을 바꾸는 대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려는 게글쓰기예요. 경상북도 속으로 대한민국이 쑥 빨려 들어가는 일은 글쓰기를 통해 언제나 가능해요. - P111
303 시는 나를 통과해 씌어지는 거예요. 생각이 뻗어나가도록 가만히 두세요. 시를 통해 이전의 관념에서 벗어나는순간, 이전의 ‘나‘는 사라져요. 한 편의 시를 쓸 때마다 내가 잘 죽어야 해요.
304 글을 쓸 때는 내가 글의 품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세요. 글은 내가 맺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맺어지게 돼 있어요. 글쓰기는 머리가 아니라, 말이 하는 거예요. 써나가다헛소리가 튀어나올까 봐 겁내지마세요. 너무 튀면 나중에 잘라주면 되니까요. OR - P119
342 자기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게 중요해요. 자신이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가봐야 알아요. 스스로 통제할 수없는 데까지 나아가면, 비로소 고요하게 돼요. 그와는 달리, 뭔가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면 자기에게 속는 거예요.
343 시는 살아내려는 의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이 구멍저 구멍 기웃거리면 죽도 밥도 안 돼요. 재료를 최소한으로 쓰는 대신, 꺾임을 확실하게 하세요. 자기 몸에 붙여 쓰되,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달라야 해요. - P133
399 아름다움은 아름답게 하는 것이고, 더럽게 하는 것이더러운 거예요. 되도록 세상에 짐이 되지 않도록 하세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스쳐 지나가는 건 할 수있어요.
400 먹고 싶을 때 먹고, 싸고 싶을 때 싸면서 아름다울 수 있겠어요. 소중한 건 언제나 어렵게 얻어져요. 쉽게 만들고쉽게 보여주면, 쉽게 버림받아요. 물 안 줘도 시들지 않는꽃은 가짜 꽃이에요. 글쓰기는 한 번 할 때마다 한 번씩 죽는 거예요.
401 시의 아름다움은 말 자체가 아니라, 말하는 방식에 있어요. 시는 자세예요. 어떤 자세든 정신과 결부되지 않은 자세는 없어요.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건 아름다운자세밖에 없어요. - P154
414 테니스 칠 때 공을 앞에서 맞추라 하지요. 뒤에서 맞은공에는 힘이 실리지 않아요. 시 쓸 때도 전향적 사고를 해야 해요. 가령 아버지가 아들을 낳은 게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를 낳았다고 해보세요. 안 될 게 없잖아요. 삶이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은 사소한 생각의 전환에서 와요.
415 삶을 바꾸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 생각을 바꾸려면은유를 바꾸어야 해요. 믿을 수 없고 수긍할 수도 없지만, 글쓰기 외에 다른 천국이 없어요. - P159
418 시는 욕망의 꿈틀거림이고, 불화의 부르짖음이에요. 생피를 보려면 딱지 않은 것을 벗겨내야 해요. 예술은 생을 알몸으로 사는 일이에요. - P160
433 우리가 사는 세계는 세계가 아니라, 세계라는 관념이에요. 얼마든지 다른 관념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관념을 세계라고 믿으면 자기 오줌을 마시고, 자기가만든 귀신에 홀리는 것과 같아요. 그렇다고 관념을 무시해서는 안 돼요. 문화가 없다면 자연이 있을 수 없듯이, 관념이 없다면 세계를 재구성할 수도 없으니까요. - P166
435 글도 마음도 자주 살피지 않으면 나와 다른 사람을 해치게 돼요.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 도덕과 달리, 윤리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거예요. 자신에 대한 무한 책임! 자기가 얼마나 피상적인지 아는 것이 윤리의 시작이에요. 피상적인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보다 더 악질이에요.
436 삶과 글은 일치해요. 바르게 써야 바르게 살 수 있어요. 평생 할 일은 이 공부밖에 없어요. 공부할수록 괴로움은 커지지만, 공부 안 하면 내 다리인지 남의 다리인지 구분할수 없어요. 젠체 안 하고 남 무시 안 하려면 계속 공부해야해요. 늘 문제되는 것은 재주와 능력이 아니라, 태도와 방향이에요. - P167
445 이 세상은 인연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인연으로 생기지않은 의미는 없어요. 살면서 우리는 인연에서 한 발자국도벗어날 수 없어요. ‘인연‘을 은유라는 말로 바꾸어도마찬가지예요. - P170
448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의 주인이고, 모르는 것의 하인이라 하지요. 어떤 것을 이해하는 순간, 그것이 우리를 놓아줘요. 삶과 죽음을 함께 보고, 부분에서 전체를 보도록해야 해요. - P171
467 깨달음의 순간이 있기는 할까요? 문제는 깨닫고 나서도몸과 마음이 옛날방식 그대로 움직인다는 거예요. 깨달음에 목 매지 마세요. 어리석음을 그냥 두고 바라보세요. ‘절해고도絶海孤島의 섬처럼, 파도 많이 치는 밤에는 섬도 보이지 않는 절해絶처럼……‘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 P182
468 우리는 망망대해의 물거품 하나에도 못 미쳐요. 문학이란건 허망한 존재가 자기 허망함을 알고 딴짓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에요. 비참하게 깨져도 한심하게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것. 모든 것이 허망하다 해도, 허망하지 않은 게 꼭하나 있어요. 일체가 허망하다고 말하는 이것! 이 공부를오래 해야 독하게 벼려져요. - P182
469 축구 경기에서 끝까지 무승부가 되면, 양팀 선수들이승부차기를 해요. 그때 한 선수가 골대를 향해 가면, 다른선수들은 스크럼을 짜고 격려를 하지요. 기독교 박해 시대때 형장으로 들어서는 순교자를 다른 교우들이 격려할때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시를 쓰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사 앞에서, 우리와 다른 사람을 위해 스크럼을 짜는 게 아닐까 해요. - P183
470 ‘당랑거철‘이라는 말이 있지요. 사마귀가 겁 없이수레 앞에 버티고 서서 한번 해보자고 덤비는 것이지요. 참말도 안 되는 한심한 짓이지만, 시도 그런 것 아닐까 해요. 아름드리 나무기둥을 뽑겠다고 부둥켜안고 용써보는 것.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에 실패 안 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올인‘하는 것. 그거라도 안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어요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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