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라투르 신부는 그의 호주머니에 성모마리아상이새겨진 작은 은빛 메달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 났다. 그는 그녀에게 그 메달을 주며 이는 거룩한 성부께서 축복해 주신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녀는 숨겨 두고 잘 보호하며 그녀를 감시하는 사람들이 잘 때 숭배해야 할 보물을 갖게 된 것이다. 아, 글을 읽을 수 없거나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에게형상 같은, 사랑을 상징하는 물질적인 형태 같은 게 필요하구나! 하고 주교는 생각했다. 그는 커다란 열쇠를 자물쇠에 넣고 나무로 된 문지방 위에서 천천히 되돌렸다. 문밖의 평화와 그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평화가 모두 하나 되는 것 같았다. 눈이 그치고, 아치형의하늘을 뒤덮은 희뿌연 구름이 이제는 모두 상그레 데 크리스토 산 너머로 부드러운 하얀 안개가 되어 가라앉아 있었다. 보름달이 파란 둥근 천장에서 높이, 그리고 외로이 인자하게빛나고 있었다. 주교는 성당 문가에 서서 그의 방문객이 질척한 눈 속에 남기고 간, 한 줄로 늘어선 검은 발자국 띠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 P244
바일랑 신부가 그곳으로 가버린 이후 주교의 부담은 점점더 커져 왔다. 오베르뉴에서 새로 데리고온 사제들은 모두좋은 사람들이어서 주교가 소망하는 것을 실현시키는 데 충실했고 지칠 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이 지방에 낯설어서 결정을 하는 데 소심해 모든 어려운 문제를 주교에게맡겼다. 라투르 신부는 그의 주교 대리가 필요했다. 그는 원주민들과 아주 잘 어울리는 재주가 있었고, 그들의 단점에도아주 쉽게 동정심을 베풀었다. 그들이 함께 있을 때면 주교는 바일랑 신부의 낙관적인 경솔함을 늘억제하지만, 혼자있게 되면 바일랑 신부의 그런 자질을 몹시도 그리워했다. 게다가 그는 바일랑 신부의 동료애가 그리웠다. 이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P249
지금까지 25년간 요셉 신부와 함께 일해 왔지만, 주교는요셉 신부의 모순된 천성에 동조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다만 그 모순된 성질 그대로를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리고요셉이 오래도록 멀리 가 있는 사이에 자신이 그 모순된 성질들을 모두 사랑했음을 깨달았다. 주교 대리는 그가 알고있는, 가장 진실 되게 영적인 사람들 중 하나였다. 비록 그가너무나 열정적으로 이 세상의 많은 물질에 집착하는 경향이있긴 하지만....... 먹고 마시는 것을 아주 좋아하지만 그는 가톨릭교회의 모든 금식을 잘 준수할 뿐 아니라, 기나긴 선교여행에서 힘겨움과 먹을 것이 없음을 견뎌내야 하는 데 대해서도 결코 불평하지 않았다. 요셉 신부가 좋은 포도주에대해 남달리 탐을 내는 취향은 다른 사람에게는 결점으로 보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몸이 허약한 그에게 포도주는그의 목적과 상상을 단숨에 실행시키도록 지원해 주는 약효빠른 육체의 자극제 같은 것이어서 그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듯했다. 훌륭한 만찬이나 클라레 적포도주 한 병이 그의 눈밑에 영적인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것을 주교는 여러 차례 봐 - P252
바일랑 선교사가 의전 수행관의 안내로 면회실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는 축복을 받아야 할 물건들로 가득 찬 두 개의커다란 검은 가방을 가지고 왔다. 관습대로라면 가방 하나만가지고 와야 하는데 두 개씩이나 가져왔던 것이다. 교황을접견하고서 요셉 신부는 그의 선교와 다른 선교사들에 대해너무나 생생하게 설명을 하는 바람에 교황과 비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다가 다음으로 예정되어 있던 면회를 세 번이나 뒤로 미루어야 했다. 교황 그레고리 16세는 귀족적이고전제적인 성직자로서 유럽의 정치 파동에 대해 지고 있는 편을 지지해 주고 있었고, 일관성 있게 자유 이탈리아의적에게 편을 들어주고 있었으며, 앞서 수행한 어떤 교황보다도세상의 먼 곳에 믿음을 전파하는 선교 수행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자신의 마음에 맞는 선교사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바일랑 신부는 그 자신과 그의 동료 사제들, 그의 선교, 그의 주교를 위해 축복을빌어 주십사고 청했다. 그는 행상인 보따리처럼, 십자가와묵주와 기도서와 메달과 성무일과서로 가득 차 있는 커다란가방들을 열더니 그것들에 평소보다 더 많은 축복을 주십사 - P255
고 청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데 놀란 의전 수행관이여러 번 드나들었고, 마츄치도 교황에게 다른 면회객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귀띔을 했다. 의전 수행관이 그곳에 없었으므로 바일랑 신부는 직접 두 개의 가방을 들고 힘겹게 뒷걸음질 쳐 나가고 있었는데, 이때 교황이 의자에서 일어나더니손을 들어 올렸다. 축복을 해주려던 게 아니라, 교황이 아닌한 인간으로서 선교를 위해 떠나는 또 다른 인간에게 인사를하려던 것이었다. 「잘 가요, 미국인!」 - P256
라투르 주교는 나바호족의 집이 숙고를 하며 머물거나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계획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는 것을알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에 있는 그의 형과 옛 친구들에게기나긴 편지를 썼다. 그 인디언 집은 대양 위에 있는 배의 선실처럼 고립되어 있어 집 주변에서 센 바람이 웅얼대고 있었다. 문 말고는 밖으로 열린 곳이 하나도 없었는데 문은 늘 열려 있었고, 밖의 공기는 모래 폭풍으로 인해 몽롱하고 누런빛을 띠고 있었다. 하루 종일 모래가 벽의 틈 사이로 들어와흙바닥에 약간 언덕을 형성할 정도로 쌓였다. 이 집은 아주허름한 주거지라서, 마치 거기 있는 사람이 먼지가 많은 땅과 움직이는 공기로 이루어진 세상의 중심에 앉아 있는 것같아 보였다. - P256
네 시쯤 그들은 리오그란데 계곡 위로 높이 솟은 산등성이로 나왔다. 이 지점에서 오솔길은 기나긴 내리막길이 되어약 60마일 떨어져 있는 앨버커키로 진입하는 샌디아 산맥의발치쯤에서 구불구불 구비치고 있었다. 이 산등성이는 원추형으로 된 바위 언덕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소나무들로 얇게옷을 입고 있었는데, 바위는 신기할 정도로 바다 빛 푸른색과 올리브 빛 푸른색 사이의 푸른빛 음영을 띠고 있었다. 단지 풍화 작용으로 인해 바위가 부서져 이루어진, 얇게 울퉁불퉁 덮인 흙도 이와 마찬가지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라투르 신부는 산등성이의 서쪽 가장자리 위로 뾰족하게 내민한적한 언덕 위로 노새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뾰족하게 내민 그 지점부터는 내리막길이었다. 이 언덕은 홀로 떨어져높이 솟아 있었고, 대담하게도 지는 해와 파란 빛깔의 샌디아 산맥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이 언덕을 향해 다가갔을때, 바일랑 신부는 서쪽 정면으로 흙이 푹 파진 곳에 울퉁불통한 바위벽들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바위벽은 주변 언덕처럼 푸른빛이 아니라 누런빛이었는데 그것도 아주짙은 금빛에 가까운 것으로, 이제는 그 위로 내리비치고 있는 태양빛의 금빛과 매우 흡사했다. 그곳에는 곡괭이와 쇠지렛대가 놓여 있었고 갓 캐낸 돌조각들이 있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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