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네 가지 요소를 살펴봐야 해요. 작자, 언어, 대상, 독자
모든 허물은 나에게 있다 하지요.
언어, 대상, 독자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러닝 소매에 머리를 집어넣으려는 아이나 매연을 뿜으며 내달리는 트럭과 뭐 다르겠어요.
어디 시 쓰는 일에서만 그러할까요. ‘안 좋은 시인의 사랑을 받는 남(여)자는 얼마나 안 행복할까.‘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 P7
시 쓰는 공부는 가파른 길이에요. 자기 자신을 내거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삶은 사라지고 시만 남겠지요.
예술과 삶은 거의 같이 나가는 것 같아요. 예술 가지고 장난치거나 멋 부리면 안 돼요. 무엇보다 정성이 있어야 해요.
공자의 스승 주공은 머리를 감다가도손님이 오면 그대로 나가 맞이했다 하지요. ‘구이경지‘라는 말처럼, 시는 끝까지 공경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거예요. - P8
가려운 데를 박박 긁으면 쾌감이 있지요. 그러나 긁고 싶은 대로 다 긁고 나면 온통 피투성이가 되지요.
시 쓸 때 들어가는 문은 가려움, 나가는 문은 따가움, 들어가는 문은 부질없음, 나가는 문은 속절없음이에요.
언제나 가까운 데서 찾고, 다른 데서 가져오려 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자기에게 절실해야 해요. 쓰고 나서 많이 아파야 해요. - P15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피상적인 사고밖에 안 나와요. 예술은 불화에서 나와요. 불화는 젊음의 특성이지요.
나이 들어 좋은 글을 쓰는 건 정신이 젊다는 증거예요. 젊지 않으면 쓰나 마나 한글, 써서는 안 되는 글을 쓰게 돼요.
우리가 할 일은 자기와 불화하고, 세상과 불화하고 오직 시하고만 화해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를 헐벗게 하고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안겨다줄 거예요. - P20
진정성을 가지고 뒤집으면, 모든 게 뒤집어져요. 이제까지 알고 있던 진실도, 거룩함도 다 뒤집어져요. 시가 안 되면, 나에게 뒤집음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세요. 간절하게 묻고, 가까운 데서 찾아보세요切問近思. 난간끝으로, 뜨거운 물속으로 자기를 밀어 넣어야 해요. - P21
시 쓰는 건 자기 정화예요. 화장실에 볼일보러 가듯이, 밥 먹은 다음 양치질하듯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할 일이에요. 우리는 그러지 않으면 금세 지저분해지는 존재예요. - P25
시 쓰는 사람은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해요. ‘자기‘라는 것도 관념일 뿐이에요.
습관과 무감각은 우리를 살게 해주지만 우리를 삶과 절연시키는 것이기도 해요. 시가 고통스러운 것은 고정관념을 벗기기 때문이에요. 그것은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거예요. - P31
시를 쓸 때는 멀리 가되 반드시 돌아와야 하고, 자기 땅을 확보해야 하고, 멀면서도 가까워야 하고,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아야 해요. 그래서 부정확한 게 가장 정확한 게 돼요. - P54
산문은 ‘……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주지만, 시는 ‘...... 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지요. 시는 삶 앞에 마주서게 하고 눈뜨게 해요.
정상적인 언어의 흐름을 교란시킴으로써 삶의 치부를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건 카메라 조리개가 찰칵! 하고 열리면서 동시에 닫히는 것과 같아요. 또 어둠 속에서 성냥불을 밝혀 잠깐 환해졌다가 어두워지는 것과 같아요. - P61
시는 전적으로 말의 일렁임, 술렁임, 속삭임이에요. 시는 뭔지 모르는 거예요.
‘오직 모를 뿐只不知!‘
시를 쓰고 나서, 읽고 나서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야 밥에 뜸이 들고, 물이 끓는 거예요.
시를 임신하고 싶으면 ‘모르는 것‘과 섹스하세요. - P83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시는 일차산업이고 철저히 수공업이에요. 시 쓰는 사람은 말을 꼬기만 할 뿐, 시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말이 알아서 할 거예요. - P93
언제나 말할 수 없는 것에 닿으려고 해야 해요.
쓰다가 막히면 위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등산할 때, 길 잃으면 출발한 데로 되돌아가듯이……
소주 두 잔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다음에 써 오실 구절은 ‘다시 울 일이 없다.‘ - P108
시는 물수제비뜨는 거예요. 언어라는 수면 앞에 한껏 몸을 낮추는 거지요.
시는 절대적으로 듣는 방식이에요. 대상이 하려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해요.
내 얘기를 하지 말고, 대상의 얘기를 하세요. 의미는 숨기고, 말의 감촉을 느끼도록 하세요.
언어에서 언어로 건너뛰다 보면 내가 할 일이 별로 없어요.
동질적인 재료로 동질적인 판을 짜세요. 만두피처럼 단단히 붙여야 해요.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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