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방법
               박은정

  평생 인형의 얼굴을 파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는 아이
  네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내 이빨은 단단해졌다
  말을 해도 말이 하고 싶어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살을 꼬집으며
  되물어보던 허기처럼
  형광등은 깜빡이고
  인형은 얼굴도 없이 던져졌다

  오늘 이 자리,
  용기가 있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겠지만
  모두들 처음 보는 사람처럼 앉아
  손뼉을 치며 웃는다

      시집[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중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 중에 속된 표현을 써서 ‘이빨 깐다‘고도 하는데 이 시 속의 단단해진 ‘이빨‘이 그 ‘이빨‘일까 하면서 읽었다. 쓰는 이가 행간에 무엇을 담아두었든 읽는 이의 몫으로 돌아오는 시가 좋다. 어수선하고 참담한 심경으로 폭격을 맞은 키예프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이빨˝을 까는 세계 정상들의 입을 바라다본다. 어수선하고 참담하기는 마찬가지인 선별검사소에서 PCR 검사를 할 때도 어떤 여자분은 방역요원을 향해 소리를 질렀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은 내 뒤에서 앞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이동을 하시며 누군가와 마주치기만 하면 당신의 상황을 하소연하기 바빴다.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을까 봐 온갖 ˝이빨˝들이 난무한다.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닌˝ 이 코시국 상황 타령도 전쟁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크라이나를 생각하면 부끄러운 밤이다.
     ˝오늘 이 자리,/ 용기가 있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겠지만/ 모두들 처음 보는 사람처럼 앉아/ 손뼉을 치며 웃는다˝ 쓰게 그저 웃는다. 그것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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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책을 마저 읽으면 영화로 다시 봐야겠다고...

  이 울화통이 치미는 장면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다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누르고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격렬한 저항이었다.
르그리는 무슨 여자가 이렇게 힘이 세냐고 외치며 욕설을내뱉었고, 큰 소리로 공범자를 불렀다.
"루벨!"
루벨이 문을 박차고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루벨이 마르그리트의 한쪽 팔과 다리를 누르고 있는 사이에르그리는 다른 쪽 팔다리를 잡고 그녀를 큰대자로 침대 위해엎드리게 했다. 격렬하게 저항하느라고 거의 탈진 상태가 된마르그리트는 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두사내는 방에서 찾아냈거나 미리 지참하고 온 밧줄 내지는 긴천 조각을 써서 몸부림치는 마르그리트를 결박했다.
그러나 침대에 결박당한 뒤에도 마르그리트는 계속 고함을지르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르그리는 쓰고 있던 가죽 모자를 벗어 거칠게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꽁꽁 묶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재갈까지 물린 탓에 마르그리트는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한참 동안 몸싸움을 벌인데다가 호흡까지 힘들어진 탓에, 아까보다 훨씬 더 빠르게 품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질식해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루벨은 침대 옆에 그냥 서 있었다. 마르그리트는 결박당하고 재갈을 물린 상대에서도 최선을 다해 저항했지만, 르그리는 마침내 자기 뜻을 이뤘고, "그녀의 의향을 무시하고 자기욕정을 채웠다.
- P110

행위를 끝낸 후 르그리는 졸개에게 마르그리트를 풀어 주라고 명했다. 성폭행이 자행되는 동안 줄곧 같은 방 안에 있던 루벨은 침대로 와서 신중한 동작으로 그녀를 묶은 끈을 풀어 주었다.
결박이 풀리자 마르그리트는 침대 위에 쓰러진 채로 흐느끼며 흐트러진 옷으로 자기 몸을 가렸다.
허리띠를 다시 조이고 부츠 끈을 맨 르그리는 일어서서 침대 위로 손을 뻗었고, 그곳에 떨어져 있던 가죽 모자를 집어올렸다. 마르그리트의 재갈로 쓰였던 모자는 따스하고 축축했다.
종기사는 펼친 가죽 모자를 자기 허벅지에 털며 마르그리트를 내려다보았다.
"마담, 만약 방금 일어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한다면,
당신에게 오는 건 불명예밖에는 없을 것이오. 남편이 이걸 알게 된다면 거꾸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소. 그러니까 아무 말도하지 마시오, 나도 입을 다물고 있을 테니까."
마르그리트는 시선을 떨구고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마침내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
한순간 르그리의 얼굴에 안도한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자 마르그리트는 고개를 들어 분노에 찬 눈으로 르그리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오래 그러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쓰디쓴 어조로 덧붙였다.
르그리는 침대 위의 그녀를 쏘아보았다. "마르그리트, 나를상대로 장난칠 생각은 하지 마, 당신은 여기 혼자 있었고, 내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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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지와 돈과 가문끼리의 결속, 그리고 대를 이을 후계자를 생산하기 위한... 결혼
1380년대의 노르망디 귀족들은 저랬구나.

10066 년에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은 기사단을 이끌고 도버해협을 건넜고,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왕의 군대를 무찌른후 스스로 잉글랜드 국왕으로 등극했다. 후세의 역사서에 정복왕 윌리엄으로 기록된 바로 그 인물이다. 잉글랜드왕이 된노르망디 공작의 위세는 프랑스 왕의 그것에 맞먹었다. 향후1세기 반에 걸쳐, 번창한 성읍들과 부유한 수도원들을 다수보유한 노르망디의 반은 잉글랜드 왕가의 소유로 남게 된다.
1200년대 초에 프랑스 국왕은 길고 힘든 전쟁을 치른 끝에노르망디 대부분을 잉글랜드 국왕으로부터 재탈환했다. 그러나 노르만인의 피를 물려받은 잉글랜드의 왕들은 여전히 노르망디 정복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게다가 노르망디의 대 귀족가문 다수는 프랑스화하기 전에는 노르만인이었기 때문에 잉글랜드에 대해서는 여전히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고, 변화의 징조를 찾으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백 년 전쟁이 발발하고 잉글랜드군이 노르망디를 재정복하기 시작하자 노르만인 귀족들 다수는 프랑스 왕을 배신하고잉글랜드의 침략자들과 동맹을 맺었다.
- P25

라스트 듀얼귀족들 사이의 혼인은 사랑이나 로맨스 따위가 아니라 영지와돈과 권력과 가문끼리의 결속, 그리고 대를 이을 후계자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종기사인 장 드 카루주에게 이상적인신부란 귀족 출신에 부유할 뿐만 아니라 그의 재산을 늘려 주고 영지를 확장시켜 줄 지참금을 두둑히 가져올 수 있는 여성이었다. 건강한 아들을 여럿 낳아 줄 젊은 여성일 필요도 있었다. 신부가 처녀인 경우에는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말이다. 또한 결혼 후 낳는 자식들이 적통임을 보장해 주는 고결하고 정숙한 여성일 필요가 있었다. 이에 덧붙여 미인이라면 금상첨화였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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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상태가 이렇게 좋아진 걸 네가 보고가서 다행이다.˝ 어머니 프랑스와즈가 보부와르에게 한 마지막 말이다. 우리 엄마한테도 비슷한 얘기를 마지막으로 들었다. 생일날 아침이었다. 단 한번도 생일을 챙겨준 적 없던 분이 ˝오늘이 니 생일인데...˝ 그러셨고 삼일 후 돌아가셨다.


 

우리는 이제 이 병원을 좋아하지 않았다. 항상 미소를 지으면서 성실하게 일하는 간호사들은 형편없는 보수와 대우를 받다.
며 고된 노동으로 힘들어했다. 쿠르노 씨는 자신이 먹을 커피를 집에서 싸 오곤 했다. 병원 측에서 뜨거운 물만 제공했기 때문이다. 간병인들은 샤워실은커녕, 밤샘 근무 후 몸단장을 다시하고 화장을 고칠 수 있는 화장실조차 제공받지 못했다. 쿠르노씨가 충격받은 얼굴로 감독관과 다툰 일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어느 날 아침 밤색 구두를 신고 왔다는 이유로 감독관이 쿠르노 씨에게 화를 냈다고 한다. 굽이 없는 구두인걸요"라고 항의하자 "흰색 신발을 신어야만 합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쿠르노 씨가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하루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피곤한 표정부터 짓지 마세요!"라고 소리 질렀다고도 했다.  - P104

푸페트는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로 지냈다. 나 역시 혈압이높아 얼굴이 붉어진 상태였다. 우리는 엄마가 임종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회복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걸 보는 게 괴로웠다. 또한 그걸 지켜보면서 모순적 감정을 느끼는 우리의 처지로 인해특히나 힘들었다. 고통과 죽음 사이에 경주가 벌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죽음이 이기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죽은 듯 잠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우리는 시계를 매달아 둔 검은색 리본이 미미하게나마 움직이는지를 확인하게 위해 엄마가 입고있는 하얀색 실내복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심스레 관찰하곤했다. 이게 마지막 경련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위가 쪼그라들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 P105

"너무나도 불행하구나."
내 마음을 찢어 놓는 어린애 같은 목소리였다. 엄마는 완전히혼자였다! 엄마를 어루만지고 그녀에게 말을 걸어 줄 수는 있었지지만, 지금 엄마가 느끼는 고통을 함께 나누기란 불가능했다.
엄마의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눈이 뒤집혔다. 나는 ‘돌아가시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정신을 잃을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마침내 공트랑 씨가 모르핀 주사를 놓았다. 소용이 없었다.
나는 다시 벨을 눌렀다. 아무도 곁에 없고 누군가를 호출할 수도 없던 그날 아침에 엄마가 이런 고통을 겪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무서웠다. 한시도 엄마 곁을 떠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P115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건 아니야.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무서운 거지."
엄마가 수요일 아침에 세상을 떠났더라면 알지 못했을 온갖 이미지와악몽, 슬픔을 내게 남겼다. 하지만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슬픔을 터뜨렸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그날 엄마가 돌아가셨을 경우 내가 느꼈을 심리적 타격이 얼마나 컸을지를 가늠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엄마의 죽음이 늦춰.
진 결과, 어떤 면에서 우리는 얻은 게 있었다. 그 덕분에 거의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슴을 도려내는 듯한 수많은 후회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우리는 그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독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음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부재로 인해 완전히 소멸하는 동시에 반대로 자신의 현존 덕분에 온전히 존재할수 있는 이 세계만큼이나 거대한 존재가 - P136

그러나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 물론 한계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누군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우리자신을 비난할 여지가 여전히 남게 된다. 엄마와 관련해서 나와 동생은 특히나 비난받아 마땅했다. 말년에 접어든 엄마를 돌보길 게을리했고 자주 찾아뵙지 않았으며 심지어 피하려고 했기때문이다. 엄마에게 헌신했던 그 며칠로, 우리가 곁에 있다는사실 덕분에 엄마가 느낀 마음의 평화로, 그리고 두려움과 고통에 맞서 얻어 낸 승리로, 엄마를 등한시했던 지난 세월에 대한젖값을 치른 듯했다. 우리가 끝까지 정성을 들이지 않았더라면엄마는 더욱 고통스러워했을 테니 말이다.
사실 엄마는 비교적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
나를 바보 같은 사람들에게 맡겨 놓지 마라.
이렇게 호소할 수 있는 이가 한 명도 없는 처지에 놓인 모든사람에 대해 나는 생각했다. 기댈 곳 하나 없이, 무심한 의사들과 과로에 지친 간호사에 의해 좌우되는 일개 환자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느낄 때 그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 P137

그래서 다인 병실에서는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면 빈사 상태에 빠진 환자의 침대를 칸막이로 가린다. 그런데 그 환자는 본 적이 있다. 그다음 날로비게 될 다른 침대들을 이 칸막이가 둘러싸고 있던 모습을, 그래서 그는 알게 된다. 나는 어디에서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는검은 태양으로 인해 몇 시간 동안 눈이 먼 상태로 있었던 엄마를그려 보았다. 벌어진 두 눈의 확장된 동공 속에 깃들어 있었을극심한 공포를 엄마는 아주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 운이좋은 자의 죽음인 셈이었다.
- P138

털실 뭉치와 짜다 만 뜨개질감이 든 밀짚 핸드백, 압지, 가위, 골무를 앞에 두고 보니 격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잘 알려진바대로 사물은 힘을 지니고 있다. 삶이, 그것을 이루는 다양한순간 가운데 오직 현재의 모습을 한 상태로 사물들을 단단하게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고아 또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린 그물건들이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쓰레기가 되거나 프랑수아즈이모에게서 물려받은 내 필수품이라고 말해 줄 다른 새로운 주인을 만나길 기다리면서 말이다. 마르트에게는 손목시계를 주기로 했다. 검은색 가는 끈을 떼어 내면서 푸페트가 울기 시작했다.
- P142

어머니는 정신적인 것을 중시하며 살았다. 그러나 삶에 대해서만큼은 동물적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열정은 엄마에게 있어서는 용기의 원천인 동시에, 육신의 중요성을알게 된 그녀가 진실에 다가서는 걸 가능하게 한 한 요인이기도했다. 엄마는 그동안 자기 안에 있는 진실되고 매력적인 모습을 가려 있던 진부한 생각을 던지 버렸다. 그 결과 나는 엄마가품고 있던 나를 향한 사랑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질투심으로 인해 자주 왜곡되어 있고 서투름으로 인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던 엄마의 사랑이 지닌 따스함을 나는 엄마가 남긴 글에서 이를 보여 주는 여러 감동적인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엄마는 두 장의 편지를 따로 보관해 두었는데 하나는 예수회 사제가, 다른 하나는 한 친구가 쓴 것이었다. 두 장의 편지 모두 내가언젠가는 하느님 곁으로 돌아오게 되리라며 엄마를 안심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엄마는 손으로 앙드레 샹송이 쓴 글귀를 옮겨 적어 놓았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내가 스무 살 때니체, 지드, 자유에 대해 이야기해 줄 만큼 제대로 위엄을 갖춘손윗사람을 만났더라면 아버지 쪽 집안과는 연을 끊을 수 있었을 거라는 거였다.  - P150

"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거죠."
이 말은 노인들을 슬프게 하고, 또 그들을 유배된 것과 다를바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런데 자기가 죽을 나이가 됐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 역시 엄마에 관해서 그런 상투적인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일흔 살이 넘은 부모나 조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막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에 몹시 슬퍼하는쉰 살가량의 여자를 만났더라면 나는 그 여자를 신경 쇠약증에걸린 환자로 치부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죽을 텐데, 여든 살이면 죽을 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은 게 아닌가,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태어났기때문도, 살 만큼 살았기 때문도, 또 늙었기 때문도 아니다. 사람은 무언가로 인해 죽는다.  - P152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의 헛된 노력은일상의 평범함이 만들어 낸, 불안을 달래 주는 장막을 찢어 버리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해당한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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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중 한 명이 위암으로 수술을 받은 지난겨울에는 "나 역시 위암에 걸릴 거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암과 타마린 잼으로 치료 가능한 장 기능 장애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엄마의 강박이 현실화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결코 없었다. 그런데 훗날 프랑신 다이토는 엄마가 암에 걸리신 것 같다는 생가을 했었노라고 우리에게 털어놓았다. "얼굴을 보고 알았지요."
라고 말하면서 덧붙이길 "냄새에서도 느껴졌고요"라고 했다.
이제 모든 게 분명해졌다. 알자스에서 엄마가 일으킨 발작은 종양 때문이었던 것이다. 기절하고 넘어진 것 역시 암 때문이었다. 그리고 2주간 병상에 누워 지낸 탓에, 오래전부터 엄마를 괴롭혀 오던 장폐색증이 악화되었던 것이다.
- P35

그에 따르면 2리터 정도의고름이 복부에 가득했고, 복막을 열어 보니 커다란 좋양이, 그것도 가장 악성에 해당하는 암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수술을 맡은 의사가 떼어 낼 수 있는 만큼 암을 제거하는 중이라고 했다.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사촌 잔이 그녀의 딸샹탈과 함께 들어왔다. 리모주에서 막 도착한 참이었는데, 편안하게 누워 있는 엄마를 만나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샹탈은 낱말 맞추기 책 한 권을 챙겨 오기까지 했다. 우리는 엄마가 깨어났을 때 무슨 말을 할지 의논했다. 간단했다. 방사선 검사 결과 복막염으로 밝혀졌고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고 하면 됐다.
- P40

정신이 혼미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신다 해도 마찬가지일 거야" 라고동생에게 말했었다. 이날 밤 이전까지 내가 느꼈던 슬픔은 모두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슬픔에 잠겨있을 때조차도 정신을 차린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에 느낀 절망감만큼은 나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누군가가 내 안에서 울고 있는 듯했다. 나는 사르트르에게 엄마의 입에 대해, 아침에 본 모습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 입에서 내가 읽어 낸 그 모든 것에 대해 들려주었다.  - P41

내 얼굴에 엄마의 입을 포개어 놓고 나도 모르게 그 입 모양을 따라 했던 모양이다.
내 입은 엄마라고 하는 사람 전부를, 엄마의 삶 전체를 구현하고 있었다. 엄마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나는 마음이 찢어지는것 같았다.
- P42

"적어도 난 이기적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남을 위해 살았거든."
훗날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랬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의한 삶을 살았던 것 역시 사실이다. 소유욕과 지배욕이 강했던 엄마는 우리를 자신의 손아귀에 완전히 가두어 두려고 했다. 그렇지만 엄마가 우리의 보상을 간절히 바라게 된 바로 그무렵, 우리는 자유롭게 혼자 지낼 수 있는 시간을 원하기 시작했다. 갈등이 끓어오르다가 폭발했지만, 엄마가 마음의 안정을되찾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너무나 끈질긴 사람이었다. 엄마의 의지가 이겼으니 말이다. 집에서는 모든 방문을 열어 두어야만 했고, 나는 엄마가 있는 방에서 엄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숙제를 해야만했다. 밤중에 나와 동생이 각자 침대에 누워 서로 수다라도 떨라치면,  - P51

잠에서 깨자마자 동생과 통화를 했다. 한밤중에 엄마가 의식을 되찾았다고 했다. 수술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으며 그로 인해 크게 놀란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나는 택시를 탔다. 매번 오고가던 길이었다. 햇살이 따사롭고 하늘은 푸른, 여느 때와 같은 가을날이었으며 같은 병원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맞이하게 될 문제만은 달랐다. 회복기에 들어선 환자가 아니라 임종 직전의 환자를 보러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에 병원에 올 때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무심하게 대기실을 통과하곤 했다. 비극은 닫혀 있는 저 문들 뒤에서 벌어지고 있을 뿐, 문 밖으로 새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게 닥친 비극이 되고 말았다. 나는 될 수 있는한 빨리, 하지만 동시에 가능한 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이제 병실 문에는 "면회 금지" 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다. 방 안의 풍경도 바뀌어 있었다.  - P59


사실이었다. 전문가들이 내린 진단과 즉, 그리고 결정을무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악순환에 갇힌 셈이었다. 환자는 의사들의 소유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니 그들의손아귀에서 환자를 빼내 와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수요일에는 수술과 안락사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당시로서는 굳어 가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게 되면 엄마가 장폐색증을 견다면서 지옥을 맛봐야 하는 처지에 놓일 게 변했다. 의사들이안락사를 거부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요일 아침 6시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랬다고 해도 용기를 내서 N 박사에게 "그대로 돌아가시도록 어머니를 내버려두세요" 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어머니를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면서 말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이 것이었다.  - P79

 병으로 인해 엄마를 둘러싸고 있던 편견과 오만의 껍질이 깨어져 버린 것이었다. 아마도 이제는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리라. 체념이나 희생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가 우선적으로해야 하는 일은 회복하는 것, 즉 자기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일에 전적으로 몰두하면서 마침내엄마는 원망의 감정에서 벗어났다. 예전의 아름다움과 미소를되찾은 엄마를 보면서 나는 그녀가 마침내 자신과 평화롭고 조화로운 관계를 맺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죽음의 기운이 뒤덮고 있는 이 병상 위에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기운이 피어나고있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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