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가 이렇게 좋아진 걸 네가 보고가서 다행이다.˝ 어머니 프랑스와즈가 보부와르에게 한 마지막 말이다. 우리 엄마한테도 비슷한 얘기를 마지막으로 들었다. 생일날 아침이었다. 단 한번도 생일을 챙겨준 적 없던 분이 ˝오늘이 니 생일인데...˝ 그러셨고 삼일 후 돌아가셨다.

우리는 이제 이 병원을 좋아하지 않았다. 항상 미소를 지으면서 성실하게 일하는 간호사들은 형편없는 보수와 대우를 받다. 며 고된 노동으로 힘들어했다. 쿠르노 씨는 자신이 먹을 커피를 집에서 싸 오곤 했다. 병원 측에서 뜨거운 물만 제공했기 때문이다. 간병인들은 샤워실은커녕, 밤샘 근무 후 몸단장을 다시하고 화장을 고칠 수 있는 화장실조차 제공받지 못했다. 쿠르노씨가 충격받은 얼굴로 감독관과 다툰 일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어느 날 아침 밤색 구두를 신고 왔다는 이유로 감독관이 쿠르노 씨에게 화를 냈다고 한다. 굽이 없는 구두인걸요"라고 항의하자 "흰색 신발을 신어야만 합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쿠르노 씨가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하루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피곤한 표정부터 짓지 마세요!"라고 소리 질렀다고도 했다. - P104
푸페트는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로 지냈다. 나 역시 혈압이높아 얼굴이 붉어진 상태였다. 우리는 엄마가 임종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회복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걸 보는 게 괴로웠다. 또한 그걸 지켜보면서 모순적 감정을 느끼는 우리의 처지로 인해특히나 힘들었다. 고통과 죽음 사이에 경주가 벌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죽음이 이기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죽은 듯 잠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우리는 시계를 매달아 둔 검은색 리본이 미미하게나마 움직이는지를 확인하게 위해 엄마가 입고있는 하얀색 실내복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심스레 관찰하곤했다. 이게 마지막 경련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위가 쪼그라들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 P105
"너무나도 불행하구나." 내 마음을 찢어 놓는 어린애 같은 목소리였다. 엄마는 완전히혼자였다! 엄마를 어루만지고 그녀에게 말을 걸어 줄 수는 있었지지만, 지금 엄마가 느끼는 고통을 함께 나누기란 불가능했다. 엄마의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눈이 뒤집혔다. 나는 ‘돌아가시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정신을 잃을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마침내 공트랑 씨가 모르핀 주사를 놓았다. 소용이 없었다. 나는 다시 벨을 눌렀다. 아무도 곁에 없고 누군가를 호출할 수도 없던 그날 아침에 엄마가 이런 고통을 겪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무서웠다. 한시도 엄마 곁을 떠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P115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건 아니야.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무서운 거지." 엄마가 수요일 아침에 세상을 떠났더라면 알지 못했을 온갖 이미지와악몽, 슬픔을 내게 남겼다. 하지만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슬픔을 터뜨렸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그날 엄마가 돌아가셨을 경우 내가 느꼈을 심리적 타격이 얼마나 컸을지를 가늠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엄마의 죽음이 늦춰. 진 결과, 어떤 면에서 우리는 얻은 게 있었다. 그 덕분에 거의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슴을 도려내는 듯한 수많은 후회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우리는 그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독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음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부재로 인해 완전히 소멸하는 동시에 반대로 자신의 현존 덕분에 온전히 존재할수 있는 이 세계만큼이나 거대한 존재가 - P136
그러나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 물론 한계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누군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우리자신을 비난할 여지가 여전히 남게 된다. 엄마와 관련해서 나와 동생은 특히나 비난받아 마땅했다. 말년에 접어든 엄마를 돌보길 게을리했고 자주 찾아뵙지 않았으며 심지어 피하려고 했기때문이다. 엄마에게 헌신했던 그 며칠로, 우리가 곁에 있다는사실 덕분에 엄마가 느낀 마음의 평화로, 그리고 두려움과 고통에 맞서 얻어 낸 승리로, 엄마를 등한시했던 지난 세월에 대한젖값을 치른 듯했다. 우리가 끝까지 정성을 들이지 않았더라면엄마는 더욱 고통스러워했을 테니 말이다. 사실 엄마는 비교적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 나를 바보 같은 사람들에게 맡겨 놓지 마라. 이렇게 호소할 수 있는 이가 한 명도 없는 처지에 놓인 모든사람에 대해 나는 생각했다. 기댈 곳 하나 없이, 무심한 의사들과 과로에 지친 간호사에 의해 좌우되는 일개 환자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느낄 때 그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 P137
그래서 다인 병실에서는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면 빈사 상태에 빠진 환자의 침대를 칸막이로 가린다. 그런데 그 환자는 본 적이 있다. 그다음 날로비게 될 다른 침대들을 이 칸막이가 둘러싸고 있던 모습을, 그래서 그는 알게 된다. 나는 어디에서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는검은 태양으로 인해 몇 시간 동안 눈이 먼 상태로 있었던 엄마를그려 보았다. 벌어진 두 눈의 확장된 동공 속에 깃들어 있었을극심한 공포를 엄마는 아주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 운이좋은 자의 죽음인 셈이었다. - P138
털실 뭉치와 짜다 만 뜨개질감이 든 밀짚 핸드백, 압지, 가위, 골무를 앞에 두고 보니 격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잘 알려진바대로 사물은 힘을 지니고 있다. 삶이, 그것을 이루는 다양한순간 가운데 오직 현재의 모습을 한 상태로 사물들을 단단하게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고아 또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린 그물건들이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쓰레기가 되거나 프랑수아즈이모에게서 물려받은 내 필수품이라고 말해 줄 다른 새로운 주인을 만나길 기다리면서 말이다. 마르트에게는 손목시계를 주기로 했다. 검은색 가는 끈을 떼어 내면서 푸페트가 울기 시작했다. - P142
어머니는 정신적인 것을 중시하며 살았다. 그러나 삶에 대해서만큼은 동물적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열정은 엄마에게 있어서는 용기의 원천인 동시에, 육신의 중요성을알게 된 그녀가 진실에 다가서는 걸 가능하게 한 한 요인이기도했다. 엄마는 그동안 자기 안에 있는 진실되고 매력적인 모습을 가려 있던 진부한 생각을 던지 버렸다. 그 결과 나는 엄마가품고 있던 나를 향한 사랑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질투심으로 인해 자주 왜곡되어 있고 서투름으로 인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던 엄마의 사랑이 지닌 따스함을 나는 엄마가 남긴 글에서 이를 보여 주는 여러 감동적인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엄마는 두 장의 편지를 따로 보관해 두었는데 하나는 예수회 사제가, 다른 하나는 한 친구가 쓴 것이었다. 두 장의 편지 모두 내가언젠가는 하느님 곁으로 돌아오게 되리라며 엄마를 안심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엄마는 손으로 앙드레 샹송이 쓴 글귀를 옮겨 적어 놓았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내가 스무 살 때니체, 지드, 자유에 대해 이야기해 줄 만큼 제대로 위엄을 갖춘손윗사람을 만났더라면 아버지 쪽 집안과는 연을 끊을 수 있었을 거라는 거였다. - P150
"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거죠." 이 말은 노인들을 슬프게 하고, 또 그들을 유배된 것과 다를바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런데 자기가 죽을 나이가 됐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 역시 엄마에 관해서 그런 상투적인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일흔 살이 넘은 부모나 조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막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에 몹시 슬퍼하는쉰 살가량의 여자를 만났더라면 나는 그 여자를 신경 쇠약증에걸린 환자로 치부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죽을 텐데, 여든 살이면 죽을 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은 게 아닌가,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태어났기때문도, 살 만큼 살았기 때문도, 또 늙었기 때문도 아니다. 사람은 무언가로 인해 죽는다. - P152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의 헛된 노력은일상의 평범함이 만들어 낸, 불안을 달래 주는 장막을 찢어 버리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해당한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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