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중 한 명이 위암으로 수술을 받은 지난겨울에는 "나 역시 위암에 걸릴 거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암과 타마린 잼으로 치료 가능한 장 기능 장애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엄마의 강박이 현실화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결코 없었다. 그런데 훗날 프랑신 다이토는 엄마가 암에 걸리신 것 같다는 생가을 했었노라고 우리에게 털어놓았다. "얼굴을 보고 알았지요." 라고 말하면서 덧붙이길 "냄새에서도 느껴졌고요"라고 했다. 이제 모든 게 분명해졌다. 알자스에서 엄마가 일으킨 발작은 종양 때문이었던 것이다. 기절하고 넘어진 것 역시 암 때문이었다. 그리고 2주간 병상에 누워 지낸 탓에, 오래전부터 엄마를 괴롭혀 오던 장폐색증이 악화되었던 것이다. - P35
그에 따르면 2리터 정도의고름이 복부에 가득했고, 복막을 열어 보니 커다란 좋양이, 그것도 가장 악성에 해당하는 암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수술을 맡은 의사가 떼어 낼 수 있는 만큼 암을 제거하는 중이라고 했다.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사촌 잔이 그녀의 딸샹탈과 함께 들어왔다. 리모주에서 막 도착한 참이었는데, 편안하게 누워 있는 엄마를 만나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샹탈은 낱말 맞추기 책 한 권을 챙겨 오기까지 했다. 우리는 엄마가 깨어났을 때 무슨 말을 할지 의논했다. 간단했다. 방사선 검사 결과 복막염으로 밝혀졌고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고 하면 됐다. - P40
정신이 혼미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신다 해도 마찬가지일 거야" 라고동생에게 말했었다. 이날 밤 이전까지 내가 느꼈던 슬픔은 모두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슬픔에 잠겨있을 때조차도 정신을 차린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에 느낀 절망감만큼은 나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누군가가 내 안에서 울고 있는 듯했다. 나는 사르트르에게 엄마의 입에 대해, 아침에 본 모습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 입에서 내가 읽어 낸 그 모든 것에 대해 들려주었다. - P41
내 얼굴에 엄마의 입을 포개어 놓고 나도 모르게 그 입 모양을 따라 했던 모양이다. 내 입은 엄마라고 하는 사람 전부를, 엄마의 삶 전체를 구현하고 있었다. 엄마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나는 마음이 찢어지는것 같았다. - P42
"적어도 난 이기적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남을 위해 살았거든." 훗날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랬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의한 삶을 살았던 것 역시 사실이다. 소유욕과 지배욕이 강했던 엄마는 우리를 자신의 손아귀에 완전히 가두어 두려고 했다. 그렇지만 엄마가 우리의 보상을 간절히 바라게 된 바로 그무렵, 우리는 자유롭게 혼자 지낼 수 있는 시간을 원하기 시작했다. 갈등이 끓어오르다가 폭발했지만, 엄마가 마음의 안정을되찾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너무나 끈질긴 사람이었다. 엄마의 의지가 이겼으니 말이다. 집에서는 모든 방문을 열어 두어야만 했고, 나는 엄마가 있는 방에서 엄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숙제를 해야만했다. 밤중에 나와 동생이 각자 침대에 누워 서로 수다라도 떨라치면, - P51
잠에서 깨자마자 동생과 통화를 했다. 한밤중에 엄마가 의식을 되찾았다고 했다. 수술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으며 그로 인해 크게 놀란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나는 택시를 탔다. 매번 오고가던 길이었다. 햇살이 따사롭고 하늘은 푸른, 여느 때와 같은 가을날이었으며 같은 병원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맞이하게 될 문제만은 달랐다. 회복기에 들어선 환자가 아니라 임종 직전의 환자를 보러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에 병원에 올 때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무심하게 대기실을 통과하곤 했다. 비극은 닫혀 있는 저 문들 뒤에서 벌어지고 있을 뿐, 문 밖으로 새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게 닥친 비극이 되고 말았다. 나는 될 수 있는한 빨리, 하지만 동시에 가능한 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이제 병실 문에는 "면회 금지" 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다. 방 안의 풍경도 바뀌어 있었다. - P59
사실이었다. 전문가들이 내린 진단과 즉, 그리고 결정을무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악순환에 갇힌 셈이었다. 환자는 의사들의 소유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니 그들의손아귀에서 환자를 빼내 와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수요일에는 수술과 안락사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당시로서는 굳어 가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게 되면 엄마가 장폐색증을 견다면서 지옥을 맛봐야 하는 처지에 놓일 게 변했다. 의사들이안락사를 거부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요일 아침 6시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랬다고 해도 용기를 내서 N 박사에게 "그대로 돌아가시도록 어머니를 내버려두세요" 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어머니를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면서 말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이 것이었다. - P79
병으로 인해 엄마를 둘러싸고 있던 편견과 오만의 껍질이 깨어져 버린 것이었다. 아마도 이제는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리라. 체념이나 희생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가 우선적으로해야 하는 일은 회복하는 것, 즉 자기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일에 전적으로 몰두하면서 마침내엄마는 원망의 감정에서 벗어났다. 예전의 아름다움과 미소를되찾은 엄마를 보면서 나는 그녀가 마침내 자신과 평화롭고 조화로운 관계를 맺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죽음의 기운이 뒤덮고 있는 이 병상 위에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기운이 피어나고있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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