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오니 마치 욕조에서 바로 나온 듯 상쾌했다. 행복한 기분에 온몸의 신경이 파르르 떨렸다. 이모부의 손을 잡고 몸을 굽혀 감사의 입맞춤을 했다.
방으로 돌아오자, 여자는 객실 안에서 혼자가 되었다.
사방이 돌연 조용해지고 혼자 있자니 무섭고 불안했다. 드레스 아래 맨살이 화끈거렸다. 여전히 흥분에 들떠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넓은 방이 이제는 비좁아 보였다.
여자는 발코니 문을 열었다. 드러난 어깨 위로 눈이 내렸다. 발코니로 나갔다. 추위로 몸이 떨리긴 했지만 기분이 상쾌했고 숨쉬기가 훨씬 편해졌다. 광활한 풍경을바라보았다. 그녀의 작은 심장이 거대한 밤하늘 아래서고동쳤다. 방 안의 고요함보다 더 적막한 자연 그대로의고요함이 느껴졌다. 아무런 부담도 무게도 없는, 부드러운 고요함이었다. 한낮에 빛나던 산들이 이제 그림자 속에 묻혀 있었다. 산들은 반짝이는 흰 눈에 덩치가 큰 까만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이아몬드를 뿌려 놓은 듯 반짝이는 별들 사이로 표면이 고르 - P110

지 못한 노란 진주 같은 보름달이 높이 떠 있었다. 음산하고 차가운 달빛을 받아 안개 자욱한 계곡의 윤곽이희미하게 드러났다.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녀가 아는 어떤 것과도 다른 신성하고 고요하고 부드럽게사람을 압도하는 풍경이었다. 차츰 고요 속으로 빠져들자 흥분된 마음도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때 갑자기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금속성 소리가 들려왔다. 계곡 아래에 있는 교회의 종소리였다. 소리는 계곡 암벽의 왼쪽 오른쪽으로 울려 퍼졌다. 순간, 여자는 마치 자신이 그 종이라도 된 듯 깜짝놀랐다. 그리고 안개 바다에서 울려 퍼지는 금속성 소리에 귀 기울이며 숨을 죽인 채 종소리의 수를 셌다. 아홉, 열, 열하나, 열둘, - P111

‘자정이다! 말도 안 돼. 이제 겨우 자정이라니? 수줍을 많고, 겁 많고, 내성적이고, 깡마르고, 보잘것없고, 소심한 영혼을 가진 여자가 도착한 지 이제 겨우 하루, 아니 열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단 말이야?‘
그 순간,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에 휩싸여 마음속 가장 깊은 곳까지 흔들린 여자는 난생처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의 영혼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고 탄력 있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어서 단 한 번의 체험만으로 무한히 커질 수 있고, 그 비좁은 공간에 온 세상을 담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 P111

‘시간 맞춰 일하러 가야 해! 늦으면 안 돼!‘
지난 십 년 동안 습관이 되어버린 생각들이 줄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곧 자명종이 울릴 거야……. 다시 잠들면 안 돼... 책임감! 책임감을 잊어선 안돼! 당장 일어나자. 여덟시에 업무가 시작되잖아. 그전에 일어나서 불 피우고, 커피 끓이고, 우유와 빵 사 오고, 방을 정돈하고, 어머니 붕대를 갈아주고, 점심 식사 준비도 해놓아야 하잖아?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더 있었는데 ...... 아! 맞아. 식료품 가게 여주인이 어제 외상 갚으라고 했었지...... 안돼, 자면 안 돼, 정신 차리고 자명종이 울리면 일어나야해...... 그런데 오늘은 무슨 문제가 있나? 자명종이 울리질 않아....... 고장 났나? 태엽 감아 놓는 걸 깜빡했나? 자명종 어디 있지? 방 안에 빛이 벌써 환한데·· 세상에! 늦잠을 잤나보다. - P112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여자의 눈길이 천장을 더듬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연기에 그을리고 거미줄이 무성하며 경사진 다락방의 우중충한 잿빛 천장과 갈색 나무 대들보는 어디 가고 황금색 테두리에 푸른색과 흰색으로 깔끔하게 채색된 천장이 보였다.
‘이 빛은 전부 어디서 들어오는 거지? 간밤에 다락방에 새 창문이 생겼을 리도 없는데……. 여기가 도대체어디야?‘
여자는 자기 손을 보았다. 낡은 갈색 담요가 아니라, 붉은색 꽃으로 수놓은 새파란 푸른색 담요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니야(첫 번째 충격)! 이건 내 침대가 아니야(두 번째 충격!) 여긴 내 방이 아니잖아.‘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나서야 기억을 되찾았다(세 번째 가장 큰 충격).  - P113

휴가, 여행, 자유, 스위스, 이모, 이모부, 으리으리한 호텔!
걱정할 일도 없고, 책임질 일도 없다. 해야 할 일도 없고 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다. 자명종도 없다! 불을 지피야 할 난로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몰려올 사람들도 없다. 십 년 동안 그녀의 생활을 짓밟아 온 끔찍한 굴레가 처음으로 벗겨졌다. 온몸에더운 피가 흐르는 것을 생생히 느끼며, 보드랍고 따뜻한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어도 괜찮았다. 커튼을 젖히기만하면 방 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온기가 피부에 부드럽게 와 닿았다. 눈이 다시 감겨도 걱정할 필요 없다. 이제 그녀에게는 게으름 피울 권리가 있다. 꿈을 꾸어도 되고, 기지개를 켜도 되었다. 머리맡에 있는버튼을 눌러 종업원을 부를 수도 있다(여자는 이모가 해준 말이 기억났다).  - P114

이 매혹적인 세계에서는 수만 번이라도 서비스를 주문할 수 있다. 그들은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사람들이다. 원한다면 방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 버튼을 눌러도 되고, 안 눌러도 된다. 일어나도 되고, 안 일어나도 된다. 다시 잠을 자도 되고, 침대에 앉아 있어도 된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되고, 뜨고 있어도 된다. 마음껏 공상에 잠겨도 괜찮다. 아무 생각 하지 않아도 된다. 게으름을 피워도 좋다. 시간은 나의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 있는 게아니다. 미친 듯 돌아가는 시간의 바퀴를 따라갈 필요가없다. 노를 배 안에 들여놓은 배처럼 눈을 감고 시간에몸을 맡기며 둥둥 떠가면 된다......
크리스티네는 꿈꾸듯 그 새로운 느낌을 즐기며 누워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일요일 아침 교회 종소리처럼몸에서 혈관이 뛰는 소리가 기분 좋게 귓속에서 윙윙거렸다. - P115

약한 시간 후에 산 경사면 한가운데 볼록하게 튀어오른 전망 좋은 자리에 다다르자, 여자는 풀밭 위로 몸을 던졌다.
‘이것으로 충분해! 오늘은 이만하면 됐어."
머리가 빙빙 돌았지만, 묘하게 행복했다. 눈꺼풀 아래로 피가 고동치는 느낌이었다. 바람에 드러난 피부가 쓰라렸다. 하지만 고통에 가까운 이런 느낌마저 새로운 재미로 여겨졌다. 여자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온몸을 뒤틀게 하는 육체적 고통 속에서 젊음과 생기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피가 이토록 힘차게 혈관 속을 흐르고, 맥박이 이토록 빨리 뛸 수 있는지 몰랐다. 한계를 뛰어넘어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탈진한 상태에서도 이토록 민첩하고 힘이 넘칠 수 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꿈에서도 보지 못했던 새파란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여자는 상쾌한 기분으로 얼음처럼 차고 향기로운 알프스의 이끼를 손으로 뜯으며, 파노라마처럼펼쳐지는 아래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 P119

공상에 잠겼다. 깨어 있는 상태로 꿈을 꾸는 듯했다. 한두 시간 동안 여자는 그렇게 맹렬한 감정의 격동과 자연의 강하고 격정적인 움직임을 온몸으로 음미했다. 그때 입술을 태워버릴 듯 날카로운 햇빛이 여자의 얼굴에쏟아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벌떡 일어나 산길을 걸어 내려가면서 노간주나무, 용담, 세이지 등 꽃 몇 송이를 땄다. 날씨가 추워서 꽃잎 사이사이에 수정 같은 얼음이그대로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관광객답게 차분하게 걸어가다가, 이내 중력에 몸을 맡기면서 빠르고 대담하게이 돌에서 저 돌로 겅중겅중 뛰어 내려갔다. 가슴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고, 전에 경험하지 못한 행복감을 느꼈다. 이리저리 굽은 길을 돌아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 여자는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다. 골짜기를 타고 불어오는 바람에 치맛자락과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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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난방이 안 되어얼음처럼 차가운 객차를 타고 가 늦은 저녁에야 돌아왔다. 집에 와서는 빨래하고, 옷을 꿰매고 깁고, 다렸다. 그렇게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는 상태가 될 때까지 일한 후에야, 옆으로 넘어진 가방처럼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1918년, 그녀는 스무 살이 되었지만 전쟁은 여전히계속되었고, 걱정 없고 자유로운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거울을 보거나 골목길에 고개를 내밀 시간도 없을만큼 바쁜 나날이 계속되었다. 크리스티네의 어머니는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눅눅하고 쉴만한 공간이 없는 병원에서 일하고 나면 다리가 퉁퉁 붓는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크리스티네에게는 어머니를 불쌍히 여길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여자도 병원에서 너무 오랫동안 일하느라 몸이 몹시 허약해졌다. 매일 끔찍하게 사지가 절단된 70~80명 환자의 입원 서류를 타이핑하느라몸 한구석에 마비 증세가 나타났다. - P43

1919년, 여자가 스물한 살 때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가난은 끝나지 않았다. 당국이 끝없이 쏟아내는 법령 아래 숨었을 뿐이었다.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전쟁 공채와 지폐의 방공호 아래로 교활하게 기어 들어가 숨어있던 가난은 뻔뻔스럽게 기어 나와 우묵한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며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전쟁의 시궁창에 남겨진 것들을 집어삼켰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던 겨우내 하늘에서는 수십만, 수백만 개의 돈다발이눈송이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눈은 온기 있는 손에닿자마자 녹아버렸다. 돈은 잠을 자는 사이에도 녹아버렸다. 다시 시장으로 뛰어가기 위해 나무 굽을 댄 구두로 바꿔 신는 동안에도 돈이 날아가 버렸다.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항상 너무 늦었다. 생활이 수학이 되고, 덧셈이 되고, 곱셈이 되고, 머리가 어질어질한 숫자들의 소용돌이가 되고, 마지막 남은 물건들을 시커멓고 탐욕스런 진공 속으로 빨아들이는 회오리바람이되었다.  - P44

스물여섯 살의 크리스티네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그런처녀들의 형태를 지켜보았다. 그들의 자존심과 욕심, 빈틈없고 대담한 시선, 도발적인 엉덩이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남자아이들이 아무리 노골적으로 몸을 더듬어도 웃기만 하는 처녀수치심도 없이 남자아이들을 숲속으로 이끌고 가는처녀들과 마주치곤 했다. 여자는 그들을 볼 때마다 심한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거리낌 없이 욕망을 충족하고,
성에 대해 개방적인 전후 세대 젊은이들과 비교할 때자신은 너무 늙었고, 너무 지쳤으며,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압도당한여자는 경쟁하고 싶은 마음도, 경쟁할 능력도 없음을 깨달았다. 여자는 경쟁하거나 애쓰지 않기로 작정했다. 조용히 몽상하고, 묵묵히 일하고, 창가의 꽃에 물이나 주면서 차분히 살아가리라고 다짐했다. 바라는 것도 갖고싶은 것도 없이, 여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새롭고 신나는 일도 찾지 않았다.  - P47

바위투성이 우뚝한 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사람을 압도하는 낯설고 거대한 풍경이었다. 크리스네가 그동안 꿈에서도 보지 못했던 알프스산맥의 웅장한 모습이었다. 여자는 놀라움으로 몸을 떨었다. 동쪽에서는 아침 햇살이 산봉우리를 뒤덮은 만년설을 비추어 찬란한 빛이 사방으로 반사되고 있었다. 희고 깨끗하고 생경한 햇빛이 너무 눈부시고 날카로워서 여자는 순간 눈을 감았다가 떴다. 놀라운 광경을 좀더 가까이 보려고 손으로 유리창을 누르자, 창문이 왈칵 열렸다. 찬바람에 날려 객차 안으로 들어오는 눈과 함께 얼음처럼 - P58

차고 유리처럼 예리한 공기가 화들짝 놀라 벌어진 여자의 입을 통해 폐까지 들어왔다. 생애 가장 깊고도 깨끗한 호흡이었다. 거세게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려고 여자는 두 팔을 벌렸다. 가슴을 부풀리며 들이마신 시원한 기운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아, 정말 대단해!‘
시원한 바람을 맞아 기분이 상쾌해진 여자는 고개를좌우로 돌리며 차창밖풍경을 감상했다. 점점 더 흥미를 느끼며 화강암 산비탈을 따라 눈 덮인 산 정상에서산허리까지 바라봤다. 곳곳에 절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폭포에서는 흰 물줄기가 계곡으로 쏟아져내리고 산허리에는 아담한 돌집 몇 채가 암벽 사이 깊고 좁은 틈새에 새집처럼 들어앉아 있었다. 산 정상 위에서는 독수리 한 마리가 서서히 선회하고, 그 위로 맑고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여자는 이처럼 강렬하며 행복감에 취하게 하는 대자연의 위력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 P59

어린 시절, 여자는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리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열이 내리자 어머니는 희고 달콤한 아몬드 밀크를 가져왔다. 아버지와 오빠가 침대 옆에 앉아 있었고 온 가족이 그녀를 돌보며 분주했다. 가족 모두 그녀에게 다정했다. 옆방에서는 카나리아가 지저귀고, 침대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학교에 갈 필요도 없었다. 모든 것이 그녀를 위해 존재했다. 비록 힘이 없어서놀 수는 없지만 침대 위에는 장난감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아니야 눈을 감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미용사들의 서비스를 마음껏 즐겨보자..……‘
여자는 지난 20여 년 동안 어린 시절의 그런 아늑함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그 모든 것들이 생각난 것이다. 피부가, 따뜻해진 관자놀이가 기억 - P86

불러내고 있었다. 손을 민첩하게 놀리던 미용사가 이마음 "좀더 짧게 자를까요?" 같은 질문을 했다. 생전 처음으로 명령을 내리듯 약간 거만하게 이런저런 요구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자는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앞에 있는 거울을 보지 않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용사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는 게 좋겠어.‘
빛나는 유리병에서 나오는 향기가 그녀의 머리카락위로 흘렀다. 면도날이 그녀의 피부를 간질였다. 머리가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가벼워진 느낌, 목이 시원하게드러난 느낌이 들었다. 여자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마비된 듯, 꿈같은 느낌이 기분 좋게 이어졌다.  - P87

그것은 여자가 꿈도 꾸어보지 못한, 노동도 가난도 없는 세상이었다. 이모는 여자에게 산봉우리와 호텔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지나치면서 만나는유명인 호텔 손님들의 이름도 말해주었다. 여자는 이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경외심 가득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공간을 오갈 수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런 모든 경험이 자신에게 허락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마침내 이모가 시계를 보았다. - P89

축복받은 어느 먼 나라에서 온 와인이리라.
얇은 크리스털 잔에 담긴 와인이 투명한 호박만큼 눈부시게 빛났다. 와인은 달콤하고 시원한 크림처럼 목구멍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처음에 크리스티네는 경건한 마음으로 한 모금만 마셨다. 그러나 그녀가 좋아하는 모습에 한껏 기분이 고조된 이모부가 줄곧 잔을 채워주었다.
크리스티네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많아졌다. 코르크 마개를 뽑은 샴페인처럼 그녀의 입에서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소용돌이치듯 쾌활하게 터져 나오는말에 자신도 놀랐고, 그동안 마음을 가두고 있던 ‘불안‘
이라는 견고한 벽이 단숨에 무너진 듯했다.
‘이런 곳에서 불안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모, 이모부 모두 좋은 사람들이야. 주위에 말끔하고 화려하게차려입은 사람들도 한결같이 세련되고 품위 있어. 아아,
세상은 아름다워,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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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푸가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그걸 쓰고는 집 밖으로 나오고 별들이 번득이다 그가 휘파함으로 자기 사냥개들을 불러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유대인들을 불러낸다 땅에 무덤 하나를파게 한다.
그가 우리들에게 명령한다 이제 무도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아침에 또 점심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공

중에선 비좁지 않게 눕는다.

그가 외친다 더욱 깊이 땅나라로 파 들어가라 너희들 너희 다른사람들은 노래하고 연주하라
그가 허리춤의 권총을 잡는다 그가 총을 휘두른다 그의 눈은 파랗다
더 깊이 삽을 박아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계속 무도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낮에 또 아침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가 외친다 더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하라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가 외친다 더 어둡게 바이올린을 켜라 그러면 너희는 연기가되어 공중으로 오른다.

그러면 너희는 구름 속에 무덤을 가진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점심에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저녁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의 눈은 파랗다
그는 너를 맞힌다 납 총알로 그는 너를 맞힌다 정확하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우리를 향해 자신의 사냥개들을 몰아 댄다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 하나를 선사한다
그는 뱀들을 가지고 논다 또 꿈꾼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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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기쁘지도 않아?"
‘어머니 말씀이 맞아 맞는 말이야. 그런데 나는 왜 기쁘지 않을까? 왜 마음이 들뜨지도 않고, 떨리지도 않을까?‘
여자는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올 대답에 귀 기울였다. 하늘이 내려준 놀라운 선물을 받으면 아주 작은 반응이라도 있을 법한데, 여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단지 혼란스러웠을 뿐. 이상하게도 두렵기만 했다.
‘이상하다. 나는 왜 기쁘지 않을까? 우편물을 분류하다가 노르웨이의 잿빛 피오르 해안이나 프랑스 파리의가로수길, 이탈리아 소렌토 해변, 미국 뉴욕의 빌딩 사진이 인쇄된 그림엽서를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올 때가수백 번도 넘지 않았던가? 나는 언제쯤 이런 곳에 가볼수 있을지, 내게도 차례가 올지, 안타까워하지 않았던가? 지금처럼 우체국 안이 텅 비어 있는 오전 시간 내내나는 무엇을 꿈꾸었지? 언젠가는 이 의미 없고 단순한일에서, 이 지겨운 시간과의 경주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단 한 번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산산이 조각나고 갈기갈기 찢긴 시간이 아니라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던가? 단 하루만이라도 똑같이 반복되는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가? - P34

인정사정없이 잠을 깨우는 자명종 소리에 놀라 일어나서 옷을 입고, 방을 덥히고, 우유와 빵을 집어삼키고, 서둘러 우체국에 도착하면 우편물에 소인을 찍고, 서류를작성하고, 전화를 받고, 업무가 끝나 집으로 돌아가면다림질하고, 빨래하고, 음식 만들고, 해진 옷을 수선하고, 어머니를 돌보고, 그리고 마침내 피로에 지쳐 죽은듯이 잠에 곯아떨어지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지 않았던가? 나는 그것을 바로 이 책상에서, 둥지처럼 비좁은이 의자에서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꿈꾸었어. 그리고 이제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지려 하고 있어. 난 이곳에서벗어나 자유롭게 떠날 거야. 그런데 어머니 말대로 나는왜 기쁘지 않을까? 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걸까?‘ - P35

여자는 경직된 눈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자리에 앉아, 낯설고 차가워 보이는 벽을 응시하며 마음에서어떤 기별이 오지 않을지, 늦게나마 설레는 느낌이 들지 않을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무심결에 호흡을 멈추고 마치 임신한 여자처럼 머리를 깊이 숙인 채 몸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자의 몸은 새들이 떠나간 숲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스물여덟 살의 여자는 행복이란 게 어떤 상태를 뜻하는지를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은 행복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깨달았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배운 적이 있지만 지금은다 잊어버린 한때 알았다는 사실만 기억나는 외국어와 - P35

내가 최근에 행복을 느꼈던 게 언제였지?‘
여자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숙인 이마에 가느다란두 줄의 주름살이 생겼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오래된장면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뿌연 거울을 통해보이듯이 어떤 모습 하나가 떠올랐다. 짧은 면 치마를입고 어깨에 멘 책가방을 흔들며 날씬한 다리를 움직여걷는 어느 금발 소녀의 모습, 친구 열두 명이 소녀를 둘러싸고 있다. 빈 교외의 공원에서 열렸던 크리켓 경기에서 공이 하늘 높이 올라갈 때마다 웃음소리도 함께 솟구쳐 올랐다. 신나게 재잘대던 맑은 목소리들, 그 웃음소리가 얼마나 밝고 자유로웠는지 새삼 기억났다. 즐거운 웃음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소녀의 몸속에서 피부를 간질이고 핏속에서 소용돌이치고 들끓었다. - P36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웃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진정 자유롭던 시절이었다. 프랑스어 수업 시간, 우스황스럽게 들리는 프랑스어 단어가 나오거나 누가 발음을 엉터리로 하면 소녀들은 두 손으로 의자를 움켜쥐고입술을 깨물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소녀들에게는 웃음의 물결이 퍼졌다. 선생님의 말더듬이 버릇, 거울을 보며 찡그린 얼굴, 제 꼬리를물고 빙빙 도는 고양이, 거리에 서서 사람들을 지켜보는경찰관……. 아무리 사소하고 의미 없고 작은 일에도 소녀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언제건자연스럽고 장난기 넘치는 웃음이었다. 소녀는 자는 동안에도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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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1881-1942)

슈테판 츠바이크는 1881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유대인 부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섬유공장을 경영하던 아버지 모리츠는 독일어 외에도 영어와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고 은행가의 딸인 어머니 이다 역시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여성으로서 이탈리아어에 능통했다. 이처럼 좋은 환경과 빈의 문화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츠바이크는 어린 시절부터 연극과 오페라를 감상하거나 많은 고전작품을 탐독하면서 문학적 감수성과 예술적 재능을 키워 나갔다.
1900년에 츠바이크는 빈 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학업보다는글쓰기에 몰두하면서 작가로서 준비 작업을 시작한다. 일찍이 보들레르와 베를렌의 시에 심취한 츠바이크는 이듬해인 1901년 시절은빛 현』을 발표하지만, 이후 시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소설과 전기(또는 평전)에서 훨씬 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소설집 에리카 에발트의 사랑을 시작으로 단편소설 「불타는 비밀」, 「모르는 여인의 편지」 「광란, 소설집 ‘감정의 혼란 등을발표하며 유럽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나게 된다. 츠바이크 소설의 매력은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에서 연유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인간의 내적인 감정과 심리를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서술하는 그만의 특유한 재능에서 나온다. 여기에 시적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성애 묘사와 에로티시즘적 소설은 동시대의 어느 산문작가도 따를수 없을 만큼 당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엔 히틀러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그리고 다시 브라질로 건너갔다. 하지만 전쟁과 나치즘으로 인해 점차 인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게 된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노트에 적은 뒤, 부인과 함께 약물 과다복용으로 생을 마감하게된다. 1942년 2월 22일, 그의 나이 60이었다.

오스트리아의 마을 우체국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그래서 한 곳만 보면 다른 우체국에는 가볼 필요도 없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 시절에 획일적으로 제작한 조악한 상태의 비품들로 똑같이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어느 우체국이나 경직되고 인색한 관료주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래서 눈 덮인 높은 산들의 숨결이 살아 있는 알프스산맥 티롤 지방의 가장 외진 산골 마을 우체국에서조차 싸구려 담배와 먼지 쌓인 서류 냄새가 퀴퀴하게 배어 고리타분한 관청냄새가 난다. 우체국 내부 구조도모두 똑같다. 똑같은 비율로 직원의 업무 공간과 이용자 공간을 나무판자로 나눠놓고, 판자벽에는 칸막이 유리를 끼워놓았다. 시민이 공공장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탓에 우체국 이용자가 앉을 의자는 물론 다른 편의시설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P11

엄밀히 말하자면 이 목록에는 매일 아침 8시에 유리칸막이를 열고, 사용할 비품들을 준비하고, 우편행낭을열고, 편지 봉투에 소인을 찍고, 우편환을 지급하고, 영수증을 작성하고, 소포의 무게를 달고, 일반인은 알아보기 어려운 이상한 글씨를 소포에 휘갈겨 쓰는 데 필요한 색연필들을 준비해 놓고, 전화를 받거나 전신기의 스위치를 켜는 직원의 이름도 기재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우체국 이용자들에게 우체국 직원 혹은 우체국장으로 알려진 이 직원의 이름을 목록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 직원의 이름이 기재된 서류는 중앙우편국 어느 부서 어느 공무원의 서랍 안에 보관되어있다. 다른 우체국, 다른 직원의 이름과 함께 기재되어있는 그 직원의 이름은 담당자가 바뀌면 다른 이름으로교체되고, 항시적으로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 P14

건물이 낡으면허물어져 새 건물이 들어선다. 그런데 이 나라 관료주의는 항상 똑같은 것만 고집하면서 세속의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체국 비품이 소진되었거나 분실되었거나 변형되었거나 훼손되었으면 상급 관청에 요청한다. 그러면 역시 똑같은 제품이 공급된다. 그렇게 하여,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막강한 권력의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다. 내용이 되는 알맹이는 없고, 형식이라는 껍데기만 남아 있다. - P15

우체국 벽에는 달력이 걸려 있다. 매일 한 장씩, 일주일에 일곱 번, 한 달이면 서른 번 혹은 서른한번 찢어버리는 달력이다. 12월 31일이 되면 새달력을 요청하지만 언제나 똑같은 판형, 똑같은 크기, 똑같은 서체의달력이 지급된다. 해는 바뀌어도 달력은 바뀌지 않는다.
책상 위에는 가운데 세로줄이 있는 경리장부가 놓여있다. 왼쪽을 다 채우고 나면 오른쪽을 사용한다. 마지막 장까지 다 쓰고 나면 역시 똑같은 형식 똑같은 크기의 새 장부를 사용하지만, 먼저 쓰던 장부와 전혀 구분할 수 없다. 비품이 분실되면 우체국 업무만큼이나 변함없이 다음 날 즉시 똑같은 제품을 똑같은 나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책자, 연필이든, 클립이든, 서류 양식이든 항상 다른 물건이지만 항상 똑같은 물건이다.
관료주의 관공서에서 아무것도 임의로 처분할 수 없듯이, 아무것도 새로 추가할 수 없다. 이곳에선 꽃이 시들지도, 피지도 않는 삶이 계속된다.  - P15

1925년, 수도 빈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 크렘스 시에서 믿지 않은 곳에 있는 보잘것없는 마을 클라인-라이틀링의 우체국, 이곳의 교체할 수 있는 정부 ‘비품‘은여성이다. 당국에서는 그냥 ‘우체국 여직원‘이라고 부른다. 이 우체국이 인구가 적은 시골에 있기 때문이다. 수수하지만 호감이 가는 한 젊은 여성의 옆얼굴을 유리칸막이를 통해 볼 수 있다. 다소 얇은 입술에 핏기 없는창백한 얼굴, 피곤한 탓인지 눈 밑이 검다. 저녁 무렵 여자가 사무실 전깃불 스위치를 켜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흐릿한 조명 아래에서도 여자의 이마와 눈가의 주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젊은 나이의 이 여자는 창가에 놓인 접시꽃과 오늘 재미 삼아 철제 세면대 위에놓아둔 양딱총나무 어린 가지와 함께 클라인-라이플링우체국에서는 가장 신선한 비품이다. 그녀는 적어도 15년 정도는 이 우체국에서 더 근무할 수 있을 것이다.  - P16

그런데 언니가 자신은 갈 수 없고 딸을 보내겠다는 답장을 보내온 것이다. 클레르는 제복을 입고 장대처럼 서 있는 호텔 보이에게 손짓했다. 보이는 그녀에게 다가와 진보의 내용을 받아 적고는 모자를 귀까지 덮어쓰고 우체국으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잠시 후 전신기에서 발신한 문자 부호는 천장의 구리 선을 타고 우체국 밖으로 나가 순식간에 국경을 넘고, 수천 개의 산봉우리가있는 포어아를베르크를 지나, 작은 국가 리히텐슈타인과 계곡이 많은 티롤산맥을 거쳐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빙하를 타고 내려가 도나우 계곡을 가로지르고 린츠에 있는 변압기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신호는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사람들이 ‘빠르다‘라고 말할 틈도 없이 번개 같은 속도로 클라인-라이플링 우체국 지붕에 설치된 전기 회로망을 거쳐 전보 수신기로 들어갔고, 거기서 다시 한 여인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그녀가 놀라고 당황하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게 했던 것이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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