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1881-1942)

슈테판 츠바이크는 1881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유대인 부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섬유공장을 경영하던 아버지 모리츠는 독일어 외에도 영어와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고 은행가의 딸인 어머니 이다 역시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여성으로서 이탈리아어에 능통했다. 이처럼 좋은 환경과 빈의 문화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츠바이크는 어린 시절부터 연극과 오페라를 감상하거나 많은 고전작품을 탐독하면서 문학적 감수성과 예술적 재능을 키워 나갔다.
1900년에 츠바이크는 빈 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학업보다는글쓰기에 몰두하면서 작가로서 준비 작업을 시작한다. 일찍이 보들레르와 베를렌의 시에 심취한 츠바이크는 이듬해인 1901년 시절은빛 현』을 발표하지만, 이후 시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소설과 전기(또는 평전)에서 훨씬 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소설집 에리카 에발트의 사랑을 시작으로 단편소설 「불타는 비밀」, 「모르는 여인의 편지」 「광란, 소설집 ‘감정의 혼란 등을발표하며 유럽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나게 된다. 츠바이크 소설의 매력은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에서 연유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인간의 내적인 감정과 심리를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서술하는 그만의 특유한 재능에서 나온다. 여기에 시적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성애 묘사와 에로티시즘적 소설은 동시대의 어느 산문작가도 따를수 없을 만큼 당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엔 히틀러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그리고 다시 브라질로 건너갔다. 하지만 전쟁과 나치즘으로 인해 점차 인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게 된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노트에 적은 뒤, 부인과 함께 약물 과다복용으로 생을 마감하게된다. 1942년 2월 22일, 그의 나이 60이었다.

오스트리아의 마을 우체국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그래서 한 곳만 보면 다른 우체국에는 가볼 필요도 없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 시절에 획일적으로 제작한 조악한 상태의 비품들로 똑같이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어느 우체국이나 경직되고 인색한 관료주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래서 눈 덮인 높은 산들의 숨결이 살아 있는 알프스산맥 티롤 지방의 가장 외진 산골 마을 우체국에서조차 싸구려 담배와 먼지 쌓인 서류 냄새가 퀴퀴하게 배어 고리타분한 관청냄새가 난다. 우체국 내부 구조도모두 똑같다. 똑같은 비율로 직원의 업무 공간과 이용자 공간을 나무판자로 나눠놓고, 판자벽에는 칸막이 유리를 끼워놓았다. 시민이 공공장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탓에 우체국 이용자가 앉을 의자는 물론 다른 편의시설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P11

엄밀히 말하자면 이 목록에는 매일 아침 8시에 유리칸막이를 열고, 사용할 비품들을 준비하고, 우편행낭을열고, 편지 봉투에 소인을 찍고, 우편환을 지급하고, 영수증을 작성하고, 소포의 무게를 달고, 일반인은 알아보기 어려운 이상한 글씨를 소포에 휘갈겨 쓰는 데 필요한 색연필들을 준비해 놓고, 전화를 받거나 전신기의 스위치를 켜는 직원의 이름도 기재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우체국 이용자들에게 우체국 직원 혹은 우체국장으로 알려진 이 직원의 이름을 목록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 직원의 이름이 기재된 서류는 중앙우편국 어느 부서 어느 공무원의 서랍 안에 보관되어있다. 다른 우체국, 다른 직원의 이름과 함께 기재되어있는 그 직원의 이름은 담당자가 바뀌면 다른 이름으로교체되고, 항시적으로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 P14

건물이 낡으면허물어져 새 건물이 들어선다. 그런데 이 나라 관료주의는 항상 똑같은 것만 고집하면서 세속의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체국 비품이 소진되었거나 분실되었거나 변형되었거나 훼손되었으면 상급 관청에 요청한다. 그러면 역시 똑같은 제품이 공급된다. 그렇게 하여,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막강한 권력의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다. 내용이 되는 알맹이는 없고, 형식이라는 껍데기만 남아 있다. - P15

우체국 벽에는 달력이 걸려 있다. 매일 한 장씩, 일주일에 일곱 번, 한 달이면 서른 번 혹은 서른한번 찢어버리는 달력이다. 12월 31일이 되면 새달력을 요청하지만 언제나 똑같은 판형, 똑같은 크기, 똑같은 서체의달력이 지급된다. 해는 바뀌어도 달력은 바뀌지 않는다.
책상 위에는 가운데 세로줄이 있는 경리장부가 놓여있다. 왼쪽을 다 채우고 나면 오른쪽을 사용한다. 마지막 장까지 다 쓰고 나면 역시 똑같은 형식 똑같은 크기의 새 장부를 사용하지만, 먼저 쓰던 장부와 전혀 구분할 수 없다. 비품이 분실되면 우체국 업무만큼이나 변함없이 다음 날 즉시 똑같은 제품을 똑같은 나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책자, 연필이든, 클립이든, 서류 양식이든 항상 다른 물건이지만 항상 똑같은 물건이다.
관료주의 관공서에서 아무것도 임의로 처분할 수 없듯이, 아무것도 새로 추가할 수 없다. 이곳에선 꽃이 시들지도, 피지도 않는 삶이 계속된다.  - P15

1925년, 수도 빈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 크렘스 시에서 믿지 않은 곳에 있는 보잘것없는 마을 클라인-라이틀링의 우체국, 이곳의 교체할 수 있는 정부 ‘비품‘은여성이다. 당국에서는 그냥 ‘우체국 여직원‘이라고 부른다. 이 우체국이 인구가 적은 시골에 있기 때문이다. 수수하지만 호감이 가는 한 젊은 여성의 옆얼굴을 유리칸막이를 통해 볼 수 있다. 다소 얇은 입술에 핏기 없는창백한 얼굴, 피곤한 탓인지 눈 밑이 검다. 저녁 무렵 여자가 사무실 전깃불 스위치를 켜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흐릿한 조명 아래에서도 여자의 이마와 눈가의 주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젊은 나이의 이 여자는 창가에 놓인 접시꽃과 오늘 재미 삼아 철제 세면대 위에놓아둔 양딱총나무 어린 가지와 함께 클라인-라이플링우체국에서는 가장 신선한 비품이다. 그녀는 적어도 15년 정도는 이 우체국에서 더 근무할 수 있을 것이다.  - P16

그런데 언니가 자신은 갈 수 없고 딸을 보내겠다는 답장을 보내온 것이다. 클레르는 제복을 입고 장대처럼 서 있는 호텔 보이에게 손짓했다. 보이는 그녀에게 다가와 진보의 내용을 받아 적고는 모자를 귀까지 덮어쓰고 우체국으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잠시 후 전신기에서 발신한 문자 부호는 천장의 구리 선을 타고 우체국 밖으로 나가 순식간에 국경을 넘고, 수천 개의 산봉우리가있는 포어아를베르크를 지나, 작은 국가 리히텐슈타인과 계곡이 많은 티롤산맥을 거쳐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빙하를 타고 내려가 도나우 계곡을 가로지르고 린츠에 있는 변압기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신호는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사람들이 ‘빠르다‘라고 말할 틈도 없이 번개 같은 속도로 클라인-라이플링 우체국 지붕에 설치된 전기 회로망을 거쳐 전보 수신기로 들어갔고, 거기서 다시 한 여인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그녀가 놀라고 당황하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게 했던 것이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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