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26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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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김사인

 

 

풀들이 시드렁거드렁 자랍니다

제 오래비 시누 올케에다

시어미 당숙 조카 생질 두루 어우러져

여름 한낮 한가합니다

 

봉숭아 채송화 분꽃에 양아욱

산나리 고추가 핍니다

언니 아우 함께 핍니다 

 

암탉은 고질고질한 병아리 두엇 데리고

동네 한 바퀴 의젓합니다

 

나도 삐약거리는 내 새끼 하나하고 그 속에 앉아

어쩌다 비 개인 여름 한나절

시드렁거드렁 그것들 봅니다

긴 듯도 해서 긴 듯도 해서 눈이 십니다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중에서

                                          시인은 1955년 충북 보은 태생. 1982년 [시와 경제]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있고

                                          신동엽 창작기금과 현대문학상 수상.

 

 

          

 

 

열어 논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서 찬 기운이 느껴지는 새벽입니다.

여름... 지나가나요?

 

 

폭우에 가까운 비가 쏟아진 다음 날, 오랜만에 폭포가 이름값을 했답니다.

이번 여름에도 밥터와 집을 오가면서 보냈습니다.

일하는 짬짬이 더운 머리를 식혀주던 물소리가 없었다면 가슴까지 습기로 짓무르지 않았을까 -,-...끔찍하네요.

휴일이면 지난번 올레이후로 쭈욱 말썽인 발목인대 덕에 통증클리닉, 신경외과, 한의원을 골고루 돌아다녀보았습니다.

한의원이 그중 맞는듯하여 지난주 일주일 집중적으로 치료했더니 한결 나아졌네요.

그대는 어떠신지요?

 

 

[가만히 좋아하는 (김사인)] 1권,

[돌아다보면 문득 (정희성)] 1권,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6권,

[기차를 놓치다 (손세실리아)] 3권,

[떠남과 만남 (구본형)] 1권,

[끌림 (이병률)] 2권,

[마늘 촛불 (복효근)] 1권,

이번 여름,

생일에, 고마운 마음에, 태교에 도움이 될 듯해서 전해진 책들의 목록입니다.

반 이상은 책 선물이라고는 처음 받아본다는 이들에게 가서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양식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모를 일이지요.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배가 부른데...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맛있는 문장들 (성석제)]

[섬을 걷다 (강재윤)]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더 리더 (베른하르트 슐링크)]

[생각 없는 생각 (김흥호)]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고미숙)]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 (강은교 외)]

[공손한 손 (고영민)]

[무릎 위의 자작나무 (장철문)]

[껌 (김기택)]

여름동안 먹어 치운 책의 목록입니다. (ㅎㅎ 나름~ 포스팅 게으른 이의 은근 자랑 질)

리뷰는 늘 써야겠다고 벼르지만 다음 책이 기다리고 있어서 허겁지겁 패쓰하게 되네요.

 

 

바람돌이로 쌩, 오가는 길에 연꽃을 만납니다.

엄마 기일이 있는 봄, 고향에 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기일이 있는 여름, 고향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의 큰어른이 떠나셨습니다.

88일만의 떠남이 체증처럼 명치끝을 건듭니다.

오래~ 그럴 테지요.

부디.... 평온하시기를.

 

 

그렇게 여름은 떠나갑니다.

 

이제 구월입니다.

그대, 오시려나요?

가을, 기다립니다.

 

               2009, 8, 29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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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66
마종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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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이유

                            마종기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 젖은 바람 소리.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보면 어쩔까.

 

              시집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중에서

              시인은 1939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남, 1959년 [현대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조용한 개선] [두번째 겨울] [변경의 꽃] [평균률]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그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이 있고

               한국문학 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

 

 

가게에 국화를 심었습니다.

국화 한 송이, 마음 안에 들여놓아도 좋을 가을입니다.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사이 계절이 지나가고,

속절없이 시간이 지나가듯 꽃도, 지고 말겠지요.

그 세월 앞에 우리들 마음 안에 꽃은 어떨지.......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보면 어쩔까.

어쩔까? 어쩔까?

자꾸 반문하게 됩니다. (빙그레)

마음껏 사랑하십시오.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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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 시인선 97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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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시집 [게 눈 속의 연꽃] 중에서                

               황지우시인은 1952년 전남 해남 출생.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게로] [나는 너다]

                  [게 눈 속의 연꽃]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백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

 

 

기다려본 사람은 압니다.

지치도록 기다려본 사람만이 당신의 부재를 이해합니다.

오래토록 그대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그대에게 가는 길을 시작합니다.

해 뜨는 아침부터 날마다 그대에게 천천히 가려합니다.

그대여, 당신도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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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수수밭 창비시선 122
천양희 지음 / 창비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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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손을 보면

 

                                                천양희

 

 

 

구두 닦는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두 끝을 보면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창문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창문 끝을 보면

비누거품 속에서도 빛이 난다

맑은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청소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길 끝을 보면

레기 속에서도 빛이 난다

깨끗한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마음 끝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빛이 난다

보이는 빛만이 빛은 아니다

닦는 것은 빛을 내는 일

 

성자가 된 청소부는

청소를 하면서도 성자이며

성자이면서도 청소를 한다

 

              시집 [마음의 수수밭] 중에서

              시인은 1942년 부산 출생. 1965년 [현대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사람 그리운 도시] [하루치의 희망]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 산문집 [직소포에 들다]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

 

 

       

가만히 제 손을 내려다봅니다.

많은 망설임과 갈망과 욕심을 움켜쥐었던 흔적이 선명합니다.

이 빛... 당신 손에서, 맞지요?

늘 열심인 당신, 당신이 바로 성자십니다.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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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시선 125
나희덕 지음 / 창비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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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중에서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가 있고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수상.

 

 

 

 

무언가를 잃어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당장은 상실감에 죽을 듯이 힘들지만 잃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우리,

지나온 자리에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을, 흐려놓았을까요?

마음, 아프게 했을까요? 눈물, 흘리게 했을까요?

혹여 절망하게 만들어버린 건 아닌지...

가슴 서늘해지는 시입니다.

그러니 당신, 잊지 마세요.

당신의 따뜻한 마음 길의 화살표가 당신 곁에서 길을 잃은 이에게

이정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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