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 눈 속의 연꽃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97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4월
평점 :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시집 [게 눈 속의 연꽃] 중에서
황지우시인은 1952년 전남 해남 출생.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게로] [나는 너다]
[게 눈 속의 연꽃]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백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
기다려본 사람은 압니다.
지치도록 기다려본 사람만이 당신의 부재를 이해합니다.
오래토록 그대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그대에게 가는 길을 시작합니다.
해 뜨는 아침부터 날마다 그대에게 천천히 가려합니다.
그대여, 당신도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