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은 슬픔을 희망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가 그를 막무가내로 진창에 떠밀었을 적에도, 그는 누굴탓하기보다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강함으로 몰지각한 ‘맹금류‘와 거침없이 맞서 싸워냈다. 여전히 그는 왜곡에 대항해역사와 민중 앞에 놓인 ‘덫‘을 하나하나 걷어내고 있다.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화인(火印)」)라고말하는 도종환 시인은 시와 몸을 따로 두는 사람이 아니다.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다. 몰염치에 맞서 떳떳하고 용기 있는 싸움을 이어가면서도 우리에게 이렇듯 서정의 깊이와격과 감동을 더한 시집을 들고 왔으니, 시집 갈피에서 전나무와 삼나무 냄새가 난다. 감자 잎과 도요새가 몸을 펴는소리 들린다. 사과 익어가는 내가 손에 묻고, 오르간 음이귀에 닿아 젖는다. 마른 가슴에 들어온 눈물이 격렬한 희망‘ 되어 온몸으로 퍼진다. ˝어디서 이렇게 따뜻한 위로를받을 수 있으랴˝ (「해장국」). 시인이 말아 내미는 한그릇 국밥은 뜨겁고도 든든하다. 사무치는 위로가 있는 매혹적인시집이다.


박성우 시인




내소사


내소사 다녀왔으므로 내소사 안다고 해도 될까
전나무 숲길 오래 걸었으므로
삼층석탑 전신 속속들이 보았으므로
백의관음보살좌상 눈부처로 있었으므로
단청 지운 맨얼굴을 사랑하였으므로
내소사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도 될까
깊고 긴 숲 지나
요사채 안쪽까지 드나들 수 있었으므로
나는 특별히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다
그가 붉은 단풍으로 절정의 시간을 지날 때나능가산품에 깃들여 고즈넉할 때는 나도
그로 인해 깊어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배경이 되어주는 푸른 하늘까지
다 안다고 말하곤 하였다
정작 그의 적막을 모르면서
종양이 자라는 것 같은 세월을 함께 보내지 않았으면서
그의 오래된 내상(內傷)과 함께 있지 않았으면서
그가 왜 직소폭포 같은 걸 내면에 지니고 있는지
그의 내면 곳곳이 왜 낭떠러지인지 알지 못하면서

어찌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의 곁에 사월 꽃등행렬 가득하였으므로
그의 기둥과 주춧돌 하나까지 사랑스러웠으므로
사랑했다 말할 수 있을까
해 기울면 그의 그리움이
어느 산기슭과 벼랑을 헤매다 오는지 알지 못하면서
포(包)  하나가 채워지지 않은 그의 법당이몇백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의 흐느낌 그의 살에 떨어진 촛농을 모르면서

희망의 이유


떡갈나무 잎을 들추고 도토리를 파묻는
다람쥐의 분주한 발걸음을 보라
그대도나도 가을까지 왔다
숲의 정강이를 싹둑싹둑 잘라버리는 기계톱의 질주에
우리의 안락한 정원이 있다고 믿지 말라
우리의 미래는
불에 탄 나무에서 다시 솟는 연둣빛 새순
하늘 꼭대기에서 거기까지
햇살의 화살 한개를 쏘고 있는
태양의 따스한 손길에 있다
국경을 넘어와 땅속 깊이 감춰진 벽을 뚫어버리는
가공할 폭탄의 힘에 한 시대의 가능성을 걸지 말라
밤의 거리에서 평화를 구하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작은 촛불과
그 불을 받쳐든 어린 두 손에 희망이 있다
이웃나라를 손쉽게 굴복시키는 폭력을
부러워하지 말라
만년을 녹지 않는 히말라야 숫눈처럼
빛나는 순백의 영혼

오체투지로 낮아지고 가난해져서
다시 일어서는 정신에
영원한 미래의 날들이 숨어 있다
우리가 잔인하게 쓰러뜨린 것들을 자랑하지 말라
승리의 포만감으로 가득한 식탁과 살찐 육신은
우리가 죽이고 짓밟은 것들의 묘지를 이루고 있나니
오래오래 주류로 살아온 이들이 잘 차려놓은화려한 연회장이 아니라
그들이 경멸하고 손가락질하는 소수가
소박하고 정결하게 차린 두레반에 미래가 있다
어미 잃은 어린 짐승을 감싸안으며 눈물겨워하는
모성과 연민과 자비 아니면 희망 아니다
새 한마리의 목숨과 내 목숨의 무게가 같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직도 그대는 일주문 밖이다
속도와 경쟁과 승리의 갈망에 휘둘리지 말고그만 내려서라
댓잎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는 바람의 속도
낙화 이후의 긴긴 날을 걸어가는
꽃의 발자국을 보지 못하면

그대가 달려가는 속도의 끝은 반드시 벼랑이다
증오의 말을 가르치지 말라
세상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경전 같은 말들이 있음을 가르치되
시인의 음성으로 하라
나약하지도 않고 사납지도 않은 목소리로
신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게 하라
거기 희망이 있다 그들이 희망이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 오래도록 희망이다 

나머지 날


고립에서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이층집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네
봄이면 조팝꽃 제비꽃 자목련이 피고
겨울에는 뒷산에 눈이 내리는 곳이면 어디든 좋겠네
고니가 떠다니는 호수는 바라지 않지만
여울에 지붕 그림자가 비치는 곳이면 좋겠네아침기도가 끝나면 먹을 갈아 그림을 그리고못다 읽은 책을 읽으면 좋겠네


파도처럼 밀려오는 소음의 물결에서 벗어나적막이 들판처럼 펼쳐진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네
자작나무들과 이야기하고
민들레꽃과도 말이 통하면 좋겠네
다람쥐 고라니처럼 말을 많이 하지 않고도
평화롭게 하루를 살았으면 좋겠네
낮에는 씨감자를 심거나 남새밭을 일구고 
남은 시간에 코스모스 모종과 구근을 심겠네


고요에서 한계단 낮은 곳으로 내려가

단풍 드는 잎들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네
나무들이 바람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곳에서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이들과 어울려 지내면 좋겠네
울타리 밑에 구절초 피는 곳이면 어디든 좋겠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굽은 길이면 좋겠네
추녀 밑에서 울리는 먼 풍경소리 들으며
천천히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네


짐을 조금 내려놓고 살았으면 좋겠네
밤에는 등불 옆에서 시를 쓰고
그대가 그 등불 옆에 있으면 좋겠네
하현달이 그믐달이 되어도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듯
내가 어디로 가게 될지 묻지 않으며
내 인생의 가을과 겨울이 나를 천천히 지나가는 동안
벽난로의 연기가 굴뚝으로 사라지는 밤하늘과
나뭇가지 사이에 뜬 별을 오래 바라보겠네

어느 저녁


끓어오르며 소용돌이치던 것들을
찬물에 헹구어 채반 위에 얹어놓고 나니
마음도 국수 타래처럼 찬찬히 자리를 틀고 앉았습니다
애호박을 싸박싸박 채 썰어 밀어놓는 동안
마음 한쪽이 그렇게 소리를 내며
잘려나가는 듯한 초저녁
묵은 김치를 더 잘게 썰어 얹어 한그릇의
국수를 비우는 동안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녁산 위로 짙은 쪽빛의 시간이
잉크처럼 번져 내려오듯
무어라 이름 지을 수 없는 아릿한 것이
명치끝을 타고 내려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승에서 이렇게 애틋함과 슬픔을
한그릇씩 나누어 먹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찔레꽃에게 말하고
한세상 사는 동안
좋은 사람과 함께 호젓한 풍경이 되어
저물 수 있던 날을 고마워하며

찬물에 젓가락을 씻어 물방울을 털어내다가잠시 뼈와 살 사이가 시큰해졌습니다
일어서기 전에 듣고 싶어하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오늘 처음 붓꽃이 피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말하고 
돌아가는 그이의 발소리를 붙잡지도 못하였습니다
밤에도 검은등뻐꾸기는 울고
북두칠성 일곱 별은 그가 가는 길을 따라
몸을 틀며 별자리를 조금씩 옮기고
아까시꽃이 향기의 긴 꼬리를 그으며
별자리 뒤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불빛 하나 고개를 넘어가다 잠깐 눈물처럼
반짝이며 떨어지고 난 뒤 사방은 더 어두워졌고
호랑지빠귀가 한숨을 길게 쉬는 듯한 울음을 내뱉는 걸
숲은 다 듣고도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들국화


들국화 꽃잎에 가을 햇볕이 앉아 있다
얇고 여린 피부에서 윤이 난다
내게 들국화는 들국화 이상이다
이 세상 모든 꽃이 저마다 빛나는 얼굴을 지녔고
하나의 성기와 몇개의 꽃술을 갖고 있지만
나는 들국화만 그걸 갖고 있는 것 같다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꽃이 아니에요라고
들국화는 말하지만 나는
들국화에 마음을 빼앗긴 지 오래다
꽃이파리 하나하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꽃잎의 표정을 과장하여 해석하는 걸 보면서느티나무는 내가 들국화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의 선망을 들국화라 부르는 거라고 말한다그러나 들국화를 보면 마음이 끌리고
연한 빛깔 위에 내린 햇살 곁에 나란히 있고 싶고
작고 투명한 모습에서 위안을 받는다
내 팔에 기댄 채 들국화가 눈을 감고 있는 동안
그의 몸에서 번져오는 맑은 기운이 내 몸의
언덕과 골짜기를 지나 구석구석 따스하게 번져나가고

내 영혼의 물줄기가 그에게 흘러가
그의 뿌리를 적실 때도 있다
오늘도 들국화와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고들국화 곁에서도 문득 들국화가 궁금해진다특별할 것 없는 들국화의 소박한 나날과
꽃잎의 흔들리는 머리칼과
짙은 녹색의 이파리와 이파리 밑에 감춰진 그늘과
가을까지 오는 동안 그를 사랑했던 짐승들과상처와 빗줄기까지 사랑한다는 걸
들국화가 믿어주길 바란다
사랑이 왜 편애일 수밖에 없는지 알기에
가을 햇볕도 들국화 꽃잎 위에서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이리라

들국화 2


너 없이 어찌
이 쓸쓸한 시절을 견딜 수 있으랴


너 없이 어찌
이 먼 산길이 가을일 수 있으랴


이렇게 늦게 내게 와
이렇게 오래 꽃으로 있는 너


너 없이 어찌
이 메마르고 거친 땅에 향기 있으랴

정경
할슈타트에서


아름다운 정경은 사람을 선하게 한다
풍경의 전신을 대하는 순간
짧은 탄성이 저절로 새어나오지 않으면
아름다움이 아니다
탄성이 물무늬처럼 미소로 바뀌어 번져나가고
마음은 천천히 선한 빛깔로 물들게 된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을 때도 그렇다
예쁜 어린아이를 만났을 때도 그렇다
사막에 별들이 하얗게 떴을 때도 그러하다
설산 기슭 순백의 눈을 볼 때도 그러하다
마음을 선하게 하는 초저녁 성당의
성가야말로 좋은 노래다
천천히 눈가에 눈물이 맺히게 하는
오래된 영화가 좋은 영화다
할슈타트 호수에 저녁빛이 내리고 있다
그대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그러하다

사과꽃


아프다고 썼다가 지우고 나니
사과꽃 피었습니다
보고 싶다고 썼다가 지우고 나니
사과꽃 하얗게 피었습니다
하얀사과꽃 속에 숨은 분홍은
우리가 떠나고 난 뒤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요
살면서 가졌던 꿈은
그리 큰 게 아니었지요
사과꽃같이 피어만 있어도 좋은
꿈이었지요
그 꿈을 못 이루고 갈 것만 같은
늦은 봄
간절하였다고 썼다가 지우고 나니
사과꽃 하얗게 지고 있습니다

저녁노을


눈이 그쳤는데 그는 이제 아프지 않을까
지는 해를 바라보는 동안 나는 내내 아팠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동안
내 안에 저녁노을처럼 번지는 통증을 그는 알까 
그리움 때문에 아프다는 걸
그리움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를 그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루 종일 누워서 일어나지 못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그리움은 혼자 남아 돌아가지 못하는 걸까
눈은 내리다 그쳤는데
눈발처럼 쏟아지던 그리움은
허공을 헤매다 내 곁에 내린다 아프다

업연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멈추자 멈추어야 한다 하면서
오늘도 다리를 건넜다
잘 드는 칼로 끊어버린 날도 많았다
달맞이꽃도 밤별도 알고 있으리라
바보같이 천치같이를 되풀이하며
회초리로 나를 때리며 새운 밤도 많았다
오늘도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
오늘도 돌아가자 돌아가자 하면서

노란 잎


누구나 혼자 가을로 간다
누구나 혼자 조용히 물든다
가을에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대 인생의 가을도 그러하리라
몸을 지나가는 오후의 햇살에도
파르르 떨리는 마음
저녁이 오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저 노란 잎의 황홀한 적막을 보라
은행나무도
우리도
가을에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난중일기


새벽에 안개비 뿌리다가 늦게 개었다
잘 죽을 일을 생각하자
치유불능인 걸 알면서
고통스럽게 연명하는 하루하루는 치욕
죽도록 일하고 죽도록 박해받는 날들이 너무 길다
오늘도 열순의 활을 쏘고
찬술을 마시고
저녁엔 여진이와 잤다고
붓 들어 거짓 없이 쓰자
살아 있는 동안은 전선을 떠날 수 없는데
우린 늘 중과부적
이길 수 있다고 과신하지 말고
두려움에 주눅 들지 말고
물살치는 두려움의 복판으로 배를 저어나가자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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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허연은 서울에서 태어나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가 있다. 현대문학상, 시작작품상을 수상했다.


허연을 읽을 때 우리는 마치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머나먼이국에서 유일하게 통하는 말을 나누는 연인을 만나듯,
경계에서 새어 나오는 삶의 내밀함을 캐내게 된다. 달력의날짜와는 다른 시간을 지금에 새기고 싶어지고, 서 있는곳과는 다른 공기의 밀도를 입고 싶어진다. 그것은 시인이종래의 공화국의 소속이 아니기 때문. 오지 않은 자멸에대해 먼저 생각하고, 남겨질 잔해에 대해 앞서 생각하는,
자신만의 공화국의 시원(始原)이기 때문이다.


구름은 신비스러운 사상이다
구름의 이름을 지은 사람
자신보다 구름이 주목받기를 원한 사람
구름을 가져다 이야기를 만든 그 사람 생각을 해봤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설명되지 않았으므로 무한할 수 있었고
학습되지 않았으므로 소멸하지 않았던 말
그 말을 꺼내고 싶었다

시인의 말

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생은 그저 가끔씩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하다는 것을.

2016년 겨울
허연

아나키스트 트럭 1


슬픈 사람들이 트럭을 탄다. 트럭은 정체에 걸릴때마다 힘겹게 멈췄다. 정체가 풀리면 트럭은 부식된 하체 어디선가 슬픔을 흘리며 느리게 움직였다.


트럭에 올라탄 사람들이 두 손으로 신을 그려보지만 이내 슬픔이 신을 덮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들에겐 이상하게 어깨가 없다.


찌그러지고 때 묻은 트럭은 세월을 등에 업고 생의 마지막 질주를 했다. 낙오한 사람들은 어느새 세월의 등에 올라타 있었고.


도시는 어두웠고 트럭은 주저앉았다.


낙오자들은 뿔뿔이 골판지 같은 골목으로 사라졌다. 주저앉은 트럭은 도시와 아주 잘 어울렸다. 그렇게 밤이 왔다. 이미 어두웠지만 트럭은 어두워지지않았다. 안녕, 트럭.

오십 미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때늦게 내리는
물기 많은 눈을 바라보면서
눈송이들의 거사를 바라보면서
내가 앉아 있는 이 의자도
언젠가는
눈 쌓인 겨울나무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추억은 그렇게
아주 다른 곳에서
아주 다른 형식으로 영혼이 되는 것이라는
괜한 생각을 했다


당신이
북회귀선 아래 어디쯤
열대의 나라에서
오래전에 보냈을 소포가
이제야 도착했고

모든 걸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눈물이라고
난 소포를 뜯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소포엔 재난처럼 가버린 추억이
적혀 있었다


하얀 망각이 당신을 덮칠 때도 난 시퍼런 독약이 담긴 작은 병을 들고 기다리고 서 있을 거야 날 잊지못하도록, 내가 잊지 못했던 것처럼


떨리며 떨리며
하얀 눈송이들이
추억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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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소리에 대꾸하지 마라. 너도 같은 사람이 되리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래야 지혜로운 체하지 못한다.
소리엔 같은 말로 대꾸해 주어라. 
잠언 26:4-5

의용군에 입대하기 전날이었다. 나는 바르셀로나의 레닌 병영에서 장교 탁자 앞에 서 있는 한 이탈리아인 의용병과 마주쳤다.
스물대여섯 살의 강인해 보이는 젊은이였다. 금발은 붉은색이 감돌았고 어깨는 단단했다. 챙이 있는 가죽모자를 밑으로 세게 잡아당겨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나와는 직각 방향으로서 있었는데, 고개를 숙인 채 찌푸린 얼굴로 어떤 장교가 탁자에 펼쳐놓은 지도를 곤혹스러운 듯 살피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풍기는 어떤 분위기가 나를 강하게 끌었다. 친구를 위해서라면살인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자기 목숨을 내던질 사람의 얼굴이었다. ㅡ무정부주의자에게서 기대해볼 만한 얼굴. 물론 그는 - P9

공산주의자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 얼굴에는 정직함과 잔인함이 공존했다. 그에게는 무식한 사람들이 자기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가지는 감상적인 존경심도 있었다. 그는지도에서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강인지도 가릴 줄 모를 터였다.
지도를 읽으려면 엄청난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고 여길 터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보자마자 이토록 마음이 끌리는 사람―정확히 말하자면, 남자―을 거의 만난 적이 없다. - P10

밖으로 나가는데 그가 가로질러 오더니 내 손을 아주 강하게움켜쥐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낄 수도 있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이 언어와 관습의 간극을뛰어넘어 순간적으로 완전히 밀착된 것 같았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그도 나를 좋아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동시에 그에 대한 첫인상을 유지하려면 두번 다시 그를 만나서는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나는 그를 다시 보지 않았다. 스페인에서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만나고 헤어질 수 있었다.
이 이탈리아인 의용병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가 내 기억에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남루한 군복과 사나우면서도 애처로워 보이는 얼굴은 당시의 특별한 분위기를 상징하는것 같다. 그는 그 전쟁과 관련한 내 모든 기억과 얽혀 있다. 바 - P10

르셀로나의 적기(赤旗), 초라해 보이는 병사들을 가득 태우고전선으로 기어가던 가늘고 긴 기차, 전선 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나오는 전쟁에 찌든 잿빛 소도시, 질퍽질퍽하면서도 얼음속처럼 추운 산속 참호.
1936년 12월 말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으로부터 불과일곱 달 전이다. 그럼에도 이미 엄청난 거리 밖으로 멀어져버린시기이다. 뒤에 일어난 사건들이 그 시기를 지워버렸다. 1935년이나 1905년을 지운 것보다 훨씬 더 완벽하게 지워버렸다. 나는신문 기사를 쓸까 하는 생각으로 스페인에 갔다. 하지만 가자마자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 시기, 그 분위기에서는 그것이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도 카탈로니아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혁명은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중이었다.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12월이나 1월에 들어서면서 이미 혁명기가 끝나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막 건너온 사람에게는 바르셀로나의 상황이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 P11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나로서는 노동 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에 들어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좀 크다 싶은 건물은 거의예외 없이 노동자들이 장악했다. 건물마다 빨간색 깃발이나, 검은색과 빨간색이 섞인 무정부주의자들의 깃발이 드리워져 있었다. 담벼락마다 소련 국기나 혁명 정당들의 머리글자를 휘갈겨놓았다. 교회는 내부가 거의 다 박살났고, 성상들은 불에 탔다.
노동자 무리들은 여기저기서 조직적으로 교회를 철거했다. 상점과 카페마다 집산화(集産化)되었다는 글이 붙어 있었다. 심지어 상자 같은 구두닦이들의 점포조차 집산화되어,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 P11

자가용은 없었다. 모두 징발되었다. 모든 전차와 택시, 그리고 다른교통 수단도 대부분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칠해 놓았다. 도처에혁명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선명한 포스터들은 벽에서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몇 개 남지 않은 다른광고물들은 서툴고 하찮게 보였다. 도시의 대동맥이라 할 수 있는 람블라스 거리는 언제나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곳이었다. 그거리를 따라 낮 동안은 물론이고 밤늦게까지 확성기에서 혁명가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가장 신기한 것은 군중의 모습이었다. 겉으로 볼 때 그 도시는 부유한 계급이 실질적으로 사라진곳이었다. 소수의 여자와 외국인들을 제외하면 <옷을 차려입은>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거의 모두가 노동 계급의 거칠거칠한 옷을 입었다. 또는 파란 작업복을 입거나, 의용군 군복을 약간 고쳐서 입었다. 이 모든 것이 신기했고, 또 감동적이었다. - P12

이 모든 것과 더불어 전쟁 특유의 흉흉한 분위기도 얼마간느껴졌다. 도시는 을씨년스럽고 깔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도로와 건물은 보수가 안 돼 있었다. 공습을 염려하여 밤거리의가로등은 침침했다. 상점들은 대부분 초라하고 진열대의 반은비었다. 고기는 귀했다. 우유는 거의 구할 수 없었다. 석탄,설탕, 석유는 부족했다. 그 가운데도 빵 부족은 정말 심각했다.
이 시기에도 빵을 구하려는 줄은 종종 수백 미터씩 늘어서곤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사람들은 만족해했고 희망이 넘쳤다. 실업은 없었다. 생활비는 여전히 매우 낮았다. 눈에 띄게 해보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집시를 제외하면 거지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혁명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갑자기평등과 자유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있었다. 인간은 자본주의 기계의 톱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 P13

우리를 보러 나온 우호적인 군중이거리를 가득 메웠다. 여자들은 창문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때는그 모든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워 보였는지! 그런데 지금은 왜그것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고, 비현실적인 일로 느껴지는지!
기차에는 병사들이 꽉꽉 들어차, 좌석은커녕 바닥에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 기차가 떠나기 직전 윌리엄스의 부인이 플랫폼으로 달려오더니 포도주 한 병과 어른 팔뚝만한 붉은색 소시지를주었다. 설사를 일으키곤 하는, 비누 냄새가 나는 소시지였다.
기차는 전시의 평상 속도인 시속 20킬로미터 이하로 카탈로니아를 천천히 빠져나가더니, 이윽고 아라곤 고원 지대로 다가갔다. - P24

바르바스트로는 전선에서 먼 곳이었다. 그런데도 박살이 난듯 황량해 보였다. 허름한 제복을 입은 의용병 무리는 추위를이기려고 거리를 따라 어슬렁거렸다. 거의 무너져내린 벽에는지난해에 붙은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몇 월 며칠에 투우장에서<멋진 황소 여섯 마리>를 죽일 것이라는 광고였다. 포스터의 바랜 빛깔이 어찌나 처량해 보이던지! 그 멋진 황소들과 멋진 투우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 즈음에는 바르셀로나에서조차 투우 경기가 거의 열리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훌륭한 투우사들은 전부 파시스트들이었다.
우리 소대는 화물차를 타고 시에타모로 갔다. 우리는 그곳에서 서쪽 알쿠비에레로 갈 예정이었다. 알쿠비에레는 사라고사를 마주 보는 전선 바로 뒤쪽에 있는 도시였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무려 세 번의 전투 끝에 10월에 시에타모를 점령했다.  - P25

이틀이 지났는데도 소총은 지급되지 않았다. 코미테 데 게라에 가서 벽에 뚫린 구멍들을 살펴보았다면, 알쿠비에레의 전모를 다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구멍들은 소총 일제사격때 뚫린 것으로, 파시스트들이 처형된 흔적이다. 전선은 매우 고요했다. 부상자들이 이송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가장 흥분되는일은 파시스트 탈주병이 건너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감시를 받으며 전선으로부터 알쿠비에레로 후송되었다. 이쪽 전선 건너편에 있는 병사들 가운데 다수는 파시스트가 아니었다. 그들은전쟁이 발발했을 때 때마침 병역을 때우고 있던 불쌍한 징집병들이었다. 따라서 어서 도망 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이따금씩 그들 가운데 몇 명이 무리를 지어 우리 쪽으로 건너오는모험을 감행했다. 만일 파시스트 지역에 사는 가족만 없었다면더 많은 병사들이 우리 쪽으로 넘어왔을 것이다. 이 탈주병들이내가 처음으로 본 <진짜> 파시스트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우리와 별다를 것이 없다는 데 놀랐다. 카키색 바지를 입었다는 것만 달랐다.  - P27

5월에는 잠시 상사 대리로서른 명 정도를 지휘해 보았다. 영국 사람도 있었고, 스페인 사람도 있었다. 우리 모두 몇 달 동안 포화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나는 명령을 따르게 하거나, 위험한 일의 자원자를 얻는 데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혁명적〉 규율은 정치적 의식에달려 있다. 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정치적 의식을 확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연병장에서 사람을 자동인형으로 조련하는 데도 시간이걸리기는 마찬가지다. 의용군 체제를 비웃는 기자들은 인민군이 후방에서 훈련을 하는 동안 의용군은 전선을 지탱해야 했다.
는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 의용군이 전장에 그대
‘로 남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혁명적> 규율의 힘 덕분이다. - P42

처음 한동안 나는 무질서한 상황, 전반적인 훈련 부족, 명령 하나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때때로 5분 동안 논쟁을벌여야 했던 일 등 때문에 경악했고 또 격분했다. 영국군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스페인 의용군은 영국군과는달랐다. 그러나 상황을 고려할 때, 그들은 예상보다 뛰어난 군대였다.
한편, 땔감 늘 땔감이 문제였다. 그 기간 동안 내 일기장에서 땔감이 언급되지 않았던 적은 단 한번도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땔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언급했다고 해야겠다.
우리는 해발 6백 미터에서 9백 미터 사이에 있었다. 한겨울이었다. 추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기온이 그렇게 낫지는 않았다. 얼음이 얼지 않은 밤도 많았다. 낮이면 겨울 해가한 시간 정도 비추어주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그리 춥지는않았으나, 꼭 그렇게 추운 것 같았다. 때때로 사나운 바람이 불어와 모자가 벗겨지고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 P43

우리는 특별한 생활을 했다. 그것을 전쟁이라 부를 수 있다면, 전쟁을 하는 특별한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의용병들모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화가 나 있었다. 왜 공격을 허락해주지 않는지 알고 싶어 늘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적이 먼저 도발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오랫동안 전투가 벌어지지 않을 것은 매우 분명했다. 조르쥐 콥은 정기적인 검열 때면 우리에게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오」 그는말하곤 했다. 이따금씩 사람이 죽어나가는 희가극이오 사실아라곤 전선의 교착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나는 당시에는그것을 몰랐다. 그러나 순수하게 군사적인 어려움―지원병부족은 별도로 하고라도 역시 누구의 눈에나 분명해 보였다.
우선 그 지역의 자연이 문제였다. 우리의 전선과 파시스트의전선 모두 천혜의 요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보통 한쪽으로만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고지는 참호만 몇 군데 파놓으면, 압도적 숫자가 아닌 한 보병만으로는 점령할 수 없다.  - P47

간헐적으로 소총소리가 땅땅 메아리쳤다. 이괴상한 전쟁에 조금이라도 생기를, 아니 죽음의 기운을 불어넣어 줄 만한 일이 과연 일어날까 궁금해졌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해 점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인간이아니라 폐렴이었다. 참호들이 서로 5백 미터 이상 떨어져 있을때는 우연이 아니고서야 총알에 맞지 않는다. 물론 부상자는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스스로 입은 부상이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내가 처음으로 스페인에서 본 다섯 명의 부상자는 모두 자기 무기에 부상을 당했다. 그렇다고 의도적이었다는 뜻은아니다. 사고나 부주의 때문이었다. 우리의 낡은 소총은 그 자체가 위험물이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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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조지 오웰









우크라이나판 서문


나는 『동물농장』의 우크라이나판에 서문을 써달라는부탁을 받았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지만, 어쩌면 독자들 또한 나에 대해 알 기회가 전혀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내가 이 서문에서 『동물농장』을 어떻게 쓰게되었는지에 대해 몇 마디 하기를 기대할 테지만, 우선은내 개인적인 이야기와 나의 정치적 견해를 형성시켜 준경험에 대해 말하고싶다.
나는 1903년에 인도에서 태어났다. 나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영국 행정부 소속 공무원이었으며, 나의 가정은 군인,
성직자, 공무원, 교사, 법률가, 의사 등의 가정처럼 평범한중산층에 속했다. 나는 영국 사립학교들 가운데 학비가 가 - P7

장 비싸고 속물적인 이튼 스쿨에 다녔다. 그리고 거기서장학금을 받아 그런대로 편안히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장학금을 받지 못했더라면 아버지는 이런 학교에나를 보낼 엄두도 내지 못했을것이다.
이튼 스쿨을 졸업한 직후(졸업할 당시 나는 완전히 스무살이 되지 않았다) 나는 버마로가 <인도 제국주의 경찰이 되었다. 당시 <인도 제국주의 경찰>은 스페인의 경찰대나 프랑스의 기동 헌병대와 흡사한 일종의 헌병대인 무장경찰이었다. 나는 5년 동안 그런 일을 했다. 비록 그 당시버마에는 민족주의 감정이 뚜렷이 일고 있지도 않고 영국인들과 버마인들 사이의 관계도 특별히 나쁘지 않았지만,
그 직업은 나에게 맞지 않았고나로 하여금 제국주의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 P8

그리하여 나는 1927년에 휴가를 얻어영국으로 건너와서 미련 없이 경찰직을 그만두고 성공할보장도 없는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1928년과1929년 사이에 파리에 살면서 단편 이야기와 소설들을 썼지만 아무도 그것들을 출판해 주려 하지 않았다(그때 쓴원고는 몽땅 불살라버렸다). 그다음 여러 해 동안 나는 입에 풀칠만 할 정도로 가난에 허덕였다. 1934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여러달씩 빈민가에서 하층민들이나 범죄자 비슷한 사람들과어울려 지냈고, 거리로 나가 남의 물건을 훔치고 구걸하며 - P8

생활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돈이 없어서 그들과 어울려생활했지만, 나중에는 그들의 생활 방식 자체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영국의 북부 지방에 몇 개월씩 머물며 광부들의 생활 환경을 조사하기도 했다.
1930년까지만 해도 나는 대체로 나 자신을 사회주의자로는 여기지 않았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정치적 입장을 아직 뚜렷이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친(親)사회주의자가 된 것은 이론적으로 계획 사회에 찬동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산업 노동자들이 억압받고 무시당하는 것이 싫었기때문이다.
나는 1936년에 결혼을 했다. 결혼한 그 주에 스페인에서 전쟁이 터졌다. 아내와 나는 스페인으로 가서 스페인정부를 위해 싸우고 싶었다. 6개월 후, 내가 쓰고 있던 책이 마무리되자마자 우리는 스페인으로 갈 준비를 했다. 스페인의 아라곤 전선에서 6개월을 보내고 있을 무렵, 나는어느 파시스트 저격병이 쏜 총에 맞아 목에 심한 관통상을입었다. - P9

전쟁 초반에 외국인들은 대체로 스페인 정부군을 지지하는 다양한 정치 집단들 사이에 내부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 외국인들로 구성된 국제 여단에 소속하지 않고스페인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만든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Partido Obrero de Unificación Marxista에 가입하여 - P9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937년 중반 공산주의자들이 스페인 정부를(정치적으로) 조종해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색출하기 시작했을 때 아내와 나도 당국에 체포되어 희생되리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다행히 우리는 붙잡히지 않고 스페인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당시 많은 친구들이 사살되었고 오랫동안 감옥에 감금되거나 소리 없이 사라졌다.
스페인에서의 이러한 인간사냥은 소련에서의 대숙청‘
과 거의 같은 시기에 자행되었고 그것의 연장선이었다.
시아와 스페인에서 자행된 그러한 고발들(죄목은 프랑코일당과의 공모였다)은 같았지만 그곳(스페인)에서만큼은분명히 불법이었다. 이러한 모든 경험들은 나에게 실로 값진 현장 교육이었다. 나는 이 값진 체험들을 통해 <전체주의 선전이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문명인들의 의견을얼마나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 P10

아내와 나는 죄 없는 사람들이 단지 신조가 다르고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투옥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영국으로 돌아올 무렵 우리는 의식 있고 나름대로는 정확한소식을 접한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스크바 재판‘에 대해 언론이 보도하는 공모, 반역, 사보타주와 같은 - P10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소련의 신화가 서구사회주의 운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소련 정권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밝히겠다.
나는 소련을 방문해 본적도 없고 소련에 대한 나의 지식도기껏해야 책과 신문을 통해 얻은 것이 고작이다. 설령 내게 힘이 있다 해도 나는 소련의 국내 문제에 간섭하지도,
야만적이고 비민주적 행위를 했다고 해서 스탈린과 그의추종자들을 비난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가지고 있더라도 그들은 그곳을 지배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분명 달리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 P11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서유럽 사람들은 소비에트 정권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1930년 이후 나는소련이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부를 만한 쪽으로 발전하고있다는 증거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배자들이 어떤 권력층보다도 더 확고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급사회로 변모하는 분명한 조짐을 보았다. 더구나 영국과같은 나라의 노동자와 지식인 계급은 오늘날 소련이1917년의 상황과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들이 소련의 실체를 알고 싶어 하 - P11

지 않는데도 있고(그들은 어딘가에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막연히 믿고 싶어 한다), 또 부분적으로는 공적 생활에서 상대적인 자유와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어 <전체주의>가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데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영국이란 나라도 완전히 민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영국은 또한 커다란 계급적 차별이있고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전쟁이 끝난 오늘날조차도) 부의 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자본주의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수백 년 동안내전이 없었고, 법률이 상대적으로 공정하고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소식들과 통계 자료들이 믿을만하고, 사람들이 소수 의견을 내거나 그것을 지지해도 치명적 위험에 처하지 않는 국가이다.  - P12

그런 분위기 속에서 대중들은 포로수용소, 강제 추방, 재판없는 투옥, 언론검열 등을 진정으로이해하지 못한다. 소련과 같은 국가에 대해 대중이 읽을수 있는 모든 것들은 자동적으로 영국의 관점으로 해석되어 그들은 <전체주의> 선전의 거짓말을 순진하게 다 받아들인다. 1939년까지 대다수의 영국 사람들은 독일 나치정권의 실체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고 오늘날의 소비에트 정권에 대해서도 여전히 과거와 똑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은 영국 사회주의운동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며 - P12

영국의 해외 정책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내가생각하기에 사실,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지도자들의 모든 행동은 우리가 그것을 모방하지만 않는다면 용서될 수 있다는 믿음만큼 사회주의의 근본 이념을 타락시키는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과거 10년 동안, 만약 우리가 사회주의운동의 부활을 원한다면 소비에트 신화는 반드시 파괴해야한다고 확신해 왔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나는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있고 다른 언어로도 쉽게 번역될 수 있는 이야기로 소비에트 신화를 한번 폭로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P13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상당기간동안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시 나는 조그만 시골 마을에 살고 있었다) 나는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느 꼬마가 커다란 달구지 말을 몰고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꼬마는 굽은 길을 돌 때마다 말에게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만약 저런 동물들이 자기들의 힘을 인식한다면 우리 인간들은 저들을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없을것이며, 또한 인간들이 동물들을 부려먹는 것은 부자들이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나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동물들의 관점에서 분석하기시작했다. 인간들은 동물들을 착취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 P13

단결하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의 계급투쟁의 개념은 분명히 동물들에게는 전적으로 환상에 불과했다. 이러한 출발점에서 동물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당시 나는 다른 작품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없어 1943년까지는 이 동물 소설을 마무리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동물 소설을 쓰던 중에 일어난 테헤란 회담‘과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소설에 집어넣어야 했다. 그래서 동물 소설의 윤곽은 내가 본격적으로 쓰기 전까지 6년 동안내 머릿속에만들어 있었다. - P14

이 소설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만약 소설 자체로 말할 수 없다면 이것은 실패한 작품이다. 그러나 여기서 두 가지만은 분명히 해야겠다. 첫째, 비록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러시아 혁명의 실제 역사에서 따온 것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도식적으로 다루어져 있으며 연대순도 바뀌어 있다. 이야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둘째, 내가 충분히 강조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독자들은 이소설이 돼지들과 인간들이 서로 완벽한 화해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이것은 나의 의도가아니다. 오히려 나는 돼지들과 인간들이 서로 의견이 맞지 - P14

않아 언성을 높이며 입씨름하는 것으로 이 소설의 결말을계획했다. 모든사람들이 테헤란 회담이 소련과 서구 세계사이의 최선의 관계를 이끌어 냈다고 생각하던 직후에 이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련과 서구 세계사이에서 좋은 관계가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사건들이 증명해 보여 주듯이 내 생각은 크게틀리지 않았다. - P15

매너‘ 농장의 존스 씨는 그날 저녁 닭장 문은 자물쇠로채웠지만 너무술에 취한 탓에 작은 구멍 닫는 것은 잊어버렸다. 그는 마당을 가로질러 비틀비틀 걸어갔는데 손에 들린 등불의 둥그런 불빛도 그의 비틀거리는 발걸음에 따라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그는 집 뒷문으로 들어가 장화를휙 벗어던지고 주방으로 가더니 술통에서 맥주를 따라 마지막으로 한잔 쭉 들이켠 다음 2층 침실로 올라갔다. 존스부인은 벌써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침실의 불이 꺼지자마자 농장 건물 전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 날개 퍼덕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미들 화이트 상을 받은 수퇘지 메이저 영감이 간밤에 이상한 꿈을꾸었는데, 그 꿈 이야기를 다른 동물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전언이 그날 낮에 돌았기 때문이다.  - P17

하지만 이것이 단지 자연의 섭리일까요? 아니면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해 이 나라에 살고 있는사람들에게 여유로운 생활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동지 여러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영국은 땅이 기름지고 기후가 온화해 현재 영국에 살고 있는 동물들보다 훨씬 많은수의 동물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습니다. 우리 농장의 경우에도 열두 마리의 말과 스무마리의 암소와 수백 마리의 양을 먹여 살릴 수 있으며, 현재 우리 모두가 상상할 수 없을정도로 안락하고 품위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처럼 비참한 상태를 여전히 면치 못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노동으로 생산한 거의 모든 것들을 인간들이 다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은 우리의 유일한 적입니다. 인간을 여기서 몰아냅시다.
그러면 배고픔과 과로의 근원이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 P21

인간은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그들은 젖도 만들지 못하고 알도 낳지 못합니다. 그들은 몸이 너무 약해 쟁기도 못 끌고, 토끼를 잡을 만큼 빨리달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동물의 왕입니다.
그들은 동물들을 부려먹고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만 동물들에게 돌려줍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몽땅 자기들이 차지합니다. 우리는 힘겹게 땅을 갈고 분뇨로 땅을비옥하게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는 벌거벗은 가죽을 빼고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 앞에 계신 암소 여러분, 여러분이 이번 1년 동안 생산한 우유가 도대체몇천 리터입니까? 그런데 송아지를 튼튼하게 기르는 데쓰여야 할 그 우유가 다 어디로 갔습니까?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우리 적들의 목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 P22

그리고 우리는 이 비참한 생활이라도 누리며 천수(天壽)를 다할 수 없습니다. 내 경우를 말하면, 나는 대체로 운이 좋아 불만은 없습니다. 나는 열두 살이고 자식들도 4백마리가 넘습니다. 이것이 돼지의 본래 삶입니다. 그러나어떤 동물도 결국에 가서는 잔인한 칼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식용 돼지 여러분, 여러분도 모두1년 안에 도살대에서 비명을 지르며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것입니다. 암소와 돼지와 암탉과 양 모두가 말입니다. 말이나 개라고 해서 더 나은 운명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복서, 당신도 그 엄청난 근육이 힘을 잃게 되는 순간, 존스가 폐마 도축업자에게 팔아넘길 것이고, 그는 당신의 목을 잘라 삶아서 사냥개의 먹이로 쓸 것입니다. 개도 나이가 들어 이빨이 빠지면 존스가 목에 벽돌을 매달아 가까운 연못에 빠뜨려 죽일 것입니다. - P23

다만 다시 한번 말하건대, 인간과 인간의 모든 방식에 적개심을 갖는 게 여러분의 의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두 다리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고, 네 다리나 날개를 가진 자는 모두 친구입니다.
그리고 인간과 싸울 때 그들을 닮아서는 안된다는사실을또한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인간을 정복할 때에도그들의 악습을 배워서는 안 됩니다.어떤 동물도 집에서살거나 침대에서 자거나 옷을 입거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돈을 만지거나 장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습관은 모두 나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동물이든 서로를 탄압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약하든강하든, 현명하든 우둔하든 우리는 모두 형제들입니다. 어떤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합니다. - P25

그것은 3월 초순의 일이었다. 그 뒤 3개월 동안 많은 활동들이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메이저의 연설은 농장에서똑똑한 동물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삶의 가치관을 심어 주었다. 그들은 메이저가 예언한 반란이 언제 일어날지 몰랐고, 또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나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다른 동물들을 가르치고 조직하는 일은 당연히 농장에서 가장 총명하다고 알려진 돼지들의 임무가 되어 버렸다. 돼지들 중에서도 존스씨가 팔아먹기 위해 기르고 있던 두 마리의 어린 수퇘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이 가장 탁월했다. - P30

그들은 건초용 풀을 거둬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흘리며 일했던가! 하지만 수확은 기대보다 훨씬 큰 성공을거두었고 그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때로 일이 힘들기도 했다. 농기구들은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동물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뒷다리에 얹도록 되어 있는 농기구는 하나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큰문제였다. 그러나 돼지들은 영리해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말들은 풀밭을 샅샅이알고 있었고, 사실 풀을 베어 거두어들이는 일에 대해서는존스와 그의 일꾼들보다 훨씬 잘 파악하고 있었다. 돼지들은 실제로 일은 하지 않고 다른 동물들을 지휘하고 감독하기만 했다. 그들은 훌륭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감독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 P42

그해 여름 내내 농장의 일은 별 어려움 없이 돌아갔다.
동물들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행복했다. 인색한주인이 그들에게 나누어 준 먹이가 아니라 동물들 자신이직접 수확한 식량이었으므로, 그것을 한입 먹을 때마다 그들은 벅차오르는 기쁨을 만끽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기생충 같은 인간이 없어지자 각자가 먹을 음식은 더 많아졌다. 아직 실제로 즐겨본 적은 없지만 여가시간도 많이생겼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해가 저물 무렵 곡식을 거둬들일 때 농장에 탈곡기가없어서 옛날 방식으로 발로 밟아 곡식을 털어 내고 입으로불어 겨를 날려 보내야 했다. 그러나 돼지들은 머리를 쓰고 복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해 항상 그런 고난을 극복했다. 복서는 모든 동물들로부터칭찬을 받았다. - P43

이제 동물들이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한가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도 존스가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는다는점이었다. 스컬러가 이런 식으로 설명하자 그들은 더 이상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돼지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은 너무나 명백해 보였다. 그래서 우유와 떨어진 사과(그리고 다 익었을 때 수확한 사과는 물론이고)를 돼지들을 위해 보관해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이러쿵저러쿵따지는 일 없이 통과되었다. - P51

개들이 다시 그의 뒤까지따라붙었다. 그중 한마리가 스노볼의 꼬리를 날카로운 이빨로 거의 물어뜯을 뻔했지만 스노볼은 꼬리를 홱 흔들어위험을 가까스로 모면했다. 그는 이제 마지막 있는 힘을다해 뛰었고 개들과 불과 간발의 차이를 두고 울타리 구멍을 빠져나가자취를 감추었다.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동물들은 창고로 다시들어왔다. 개들도 재빨리 뛰어들었다. 처음엔이 개들이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몰랐지만 의문은 곧 풀렸다. 그들은새끼 때 나폴레옹이 어미로부터 떼내 개인적으로 길러 왔던 바로 그 강아지들이었다. 그들은 아직 완전히 자라진않았지만 거대한 덩치에 늑대처럼 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폴레옹 옆에 바싹 붙어 다른 개들이 존스씨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그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 P68

동물들은 스노볼이 추방된 데서 받은 충격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의 발표를 듣고 당황했다. 정당한 이의라도 생각났더라면 몇몇 동물들은 항의를 했을 것이다. 복서조차도 막연히 걱정이 되었다. 그는 귀를 뒤로 젖히고 몇 번이나 앞머리를 흔들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몇몇 돼지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뚜렷한 생각을 말했다. 앞줄에 앉아있던 어린 식용 돼지 네 마리가 찬성할 수 없다며 날카로운소리를 꽥 지르더니 재빨리 벌떡 일어나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갑자기 나폴레옹을 둘러싸고 있던 개들이 위협적으로 낮게 으르렁거렸고, 돼지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그 자리에 앉아 버렸다.  - P69

그는나폴레옹이 풍차 계획에 반대하는 척한 것은 동물들에게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던 위험 인물인 스노볼을 제거하기위한 술책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스노볼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 계획은 그의 방해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게 이른바 전술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깡충깡충 뛰기도 하고 꼬리를 털기도 하면서 <전술입니다, 동지들, 전술입니다!>라고 여러번 반복해서 말했다. 동물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스컬러가 워낙 설득력 있게 설명했고, 또 함께 있던 세 마리의 개가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기 때문에 동물들은 더 이상 아무 질문도 못하고 그의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 P73

그해에 동물들은 줄곧 노예처럼 일했다. 그러나 그들은일을 즐겼다. 자신이 하는 일이 모두 자신과 후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빈둥빈둥 놀면서 도둑질이나 일삼는 인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수고나 희생이 따르더라도 불만을 터뜨리지 않았다.
봄과 여름 내내 동물들은 1주일에 40시간씩 일을 했고,
8월이 되자 나폴레옹은 일요일 오후에도 일이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일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이었지만 참여하지 않는 동물은 누구든지 식량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일을 했는데도 어떤 일은 끝내 완수하지 못한 채 남겨두어야 했다. 수확은 지난해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고,
초여름에 근채류의 씨를 뿌렸어야 할 두 밭에는 쟁기질을제때에 못해 아직 씨도 뿌리지 못했다. 다가올 겨울이 고달프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해 볼 수 있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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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물에서 얼마나 많은 측면을 벗겨내면 더 이상 그이름으로 불리던 것이 아니게 될까? 어떤 것이 더 이상 그 자체가아니라 다른 무엇이 되는 것은 언제일까? 의미가 해체되거나 정의가 계속 확장되다가 아예 거덜 나버리는 것은 언제일까? 장미농장 견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한 기다란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색색의 장미 꽃다발이 담긴 원통형 투명 용기 수백 개가긴 철제 탁자 위에 줄지어 놓여 있었다. 그것들은 얼마나 오래가는지 시험 중이었고, 각각의 이름이 꽃다발 앞쪽 표찰에 적혀 있었다. 마치 공식 만찬의 좌석 배정표와도 같았다.  - P285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곳에 부재하는 어떤 것이었다. 그천장 낮은 방 안에 있는 수천 송이 장미꽃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향기란 일종의 목소리, 꽃이 말하는 방식이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그것을 "공중에 감도는 애무"
라고 했다. ‘꽃으로 마음을 전하라는데, 이 꽃들은 벙어리였다.
물론 온실에는 향기가 나는 노란 장미들이 심긴 줄도 있었지만,
이 꽃들 역시 겉모습과 지속성을 위해 가꾸어진 것이었고, 그 두가지야말로 그것들을 수익 상품이 되게 해주는 것이었다(종종 장미는 연약하다고 생각되지만, 다른 꽃들에 비해 오래가는 꽃이다. 다른 많은꽃들은 너무나 섬세하고 단명하여 대량 생산이나 해외 수출이 불가능하다).
향기는 일부러 교배되지도 않았지만, 굳이 찾는 이도 없었다. - P286

하지만 장미에 향기가 없다는 것은 그 견학이 불편했던이유들 중에 사소한 편에 속했다. 온실 다음에는 작업장을 둘러보았는데, 온실에서 들여온 장미들을 포장된 꽃다발로 만들어내보내는 드넓고 썰렁한 공간이었다. 어떤 꽃다발들에는 이미 바다 건너 멀리 있는 슈퍼마켓의 이름과 가격이 찍힌 라벨이 붙어있었다. 그것은 장미농장이라기보다, 장미라는 제품을 생산하는공장이었다. 바닥은 축축했고, 잎사귀와 가시 달린 줄기, 꽃잎들이 널려 있었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젊고 동작이 빨랐으며 고무장화를 신고 회색 작업용 점프슈트나 구호가 찍힌 작업용 셔츠를입고 있었다. 고무장갑을 착용한 이들도 있었다.
싸늘한 공기 속에서 150명쯤이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나날이 겪는 시련에 틈입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들의 상사와함께 있다는 것은 마치 내가 그 시스템을 용인하고 나 자신도 관리자들과 한편이 되어 위협적이고 억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너무 바삐 돌 - P287

장미는 흙에서 재배되었지만, 꽃다발은 여느 대량 생산제품과 마찬가지로 생산 라인 위에서 조립되었다. 남자들이 장미가 실린 큰 수레를 밀고 작업장 안을 돌아다녔고, 다른 남녀 노동자들이 직사각형 망사천에 싸인 장미들을 가져다가 색깔과 줄기의 길이 등 기준에 따라 분류한 후에 방의 길이만 한 괴물 빗처럼생긴 일종의 틀에 실었다. 장미들은 빗살 사이로 추려졌고, 반대편에서는 또 다른 노동자들이 장미를 한 번에 몇 송이씩 꺼내 다발로 모으고 특성과 유사성에 따라 추린 다음 모든 봉오리들―활짝 핀 것은 없고 늘 봉오리뿐이었다―이 나란하도록 묶고 줄기들을 같은 길이로 잘라냈다. 잎사귀들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는사람들도 있었고, 양동이에 물을 담아 완성된 꽃다발을 냉장실로 실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방은 냉동 직전의 온도로, 그곳에서 선적을 위해 분류되는 것이었다. 어떤 꽃다발들은 실제로컨베이어벨트 포드 자동차 공장의 상징과도 같은 구조물에실리기도 했다. - P288

베아트리스가 지적한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노동자들을연구하는 엔지니어들이 투입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작업 교대조 중 누가 화장실에 몇번 갔는지, 또 누가 꽃을 집어 드는 데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등을 일일이 기록했다. 그 모든 정보는 노동자들에게 생산성을 높이고 행동의 자유를 최소화하도록 요구하는 새로운 규정을 만드는 데 활용되었다. 작업장은 우리가 선샤인부케에서 보았듯이 현대화되었고, 노동자들은 온종일 한 가지 일만 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광대하고 끊임없이 돌아가는기계의 부속이 되었으며, 기계가 점점 빨라질수록 노동자 각자는30년 전에 하던 것의 몇 배나 되는 일을 해야만 했다. - P290

그들 뒤에서는 한 여자가-우리는 그녀를 ‘스케이터‘라 불렀는데 그 꽃들을 집어서 개수를 세고 꼬리표를 붙여 가져갔고요. 하지만 그건 한 사람이 온종일 자르고 자르고 자르고 자르기만 해야 한다는 거예요. 회사가 들어선 후 생겨난 문제들 중 또 한 가지가 그거였어요. 같은 기능의 반복으로 인한 직업병 말이에요. 꽃을 자를 때 가위를 써야했던 것처럼, 그 작업장의 여자들은 꽃을 추려야 했고, 활액낭염,
건염, 회전근개 증후군 등을 얻게 되었어요."
베아트리스 자신도 열두 해 동안이나 꽃을 자른 끝에 팔에 통증을 얻게 되었다. "일반 보건의에게 갔더니 몇 가지 질문을하고 검사를 하더군요. 결국, 꽃 일 때문에 수근골증후군과 건염이 생겼다는 진단이었어요."  - P291

문제는 단지 인간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네 여자는 화훼산업에 소비되는 물이 지하수를 고갈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물 부족을 겪고 있어요. 꽃은 60퍼센트가 물이라는 걸 기억해야지요. 꽃 한송이를 사도 60퍼센트는 물이고 40퍼센트만 고체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수출하는 건 엄청난 양의 물이지요. 게다가 사람들은 보고타의 사바나 지역은 공기가 맑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거짓말이에요. 이 사바나 지역과 인근 지자체들의 공기는 고도로 오염되어 있어요. 60년 동안 누적된 화학물질과 살균제 때문이지요. 이 살균제 때문에 나비는 물론이고 다른 곤충들과 벌레들, 여기 살던 수많은 곤충들이 죽었어요.
다시 말해 화훼 산업의 문제는 사회 문제이자 노동 문제일 뿐 아니라 환경 문제이기도 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화훼 산업에서는사회, 노동과 관련된 쟁점들이 중요하고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도 그와 관련된 거지만, 환경적인 측면도 끔찍해요. 그것은 물을고갈시키고, 동식물과 공기와 모든 것을 망쳐버렸어요." - P292

장미의 추악함은 그런 식으로 생산된다는 데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그 점을 간과한다는 데 있을까? 장미는 어떤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른 것이라는, 일종의 거짓말이 되었는가? 그것들은 이제 기만의 징표, 실제 생산 여건보다 외관상의 아름다움을표하는 일종의 기만이 아닌가? 오웰의 작품 상당 부분은 다양한 종류의 추악함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가 추악하다고 본 것은그가 아름답다고 본 것의 잘 드러나지 않는 이면이었다. - P293

오웰에게는 아름다움과 추함의 너무나 많은 것이 언어에있었다. 그는 모든 계약의 핵심이 되는 계약으로서의 언어에 열정적으로 투신했다. 말들은 그것들이 묘사하는 것―그것이 사물이든 사건이든 이념이든ㅡ과의 신뢰할 만한 관계 속에 존재해야했다. (양가성, 애매성, 혼동, 엇갈리는 시각, 믿을 만한 정보의 결여 등에 맞닥뜨린다 해도 그런 정황 자체에 대해 정직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주제가 명확하지 않을 때에도 명확할 수 있다. 가령 그가 카탈루냐 찬가』에서 자신은몇몇 상황의 진실을 알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에게서 본 것을 보고할 수 있을 따름이라고 말할 때처럼 말이다.) 깨진 계약을 가리키는 다른 말은거짓말이다. - P295

거짓말은 앎과 연결의 능력을 잠식한다. 앎을 차단하거나왜곡함으로써, 또는 거짓을 유포함으로써 거짓말쟁이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박탈한다. 정확한 정보는 공적이고 정치적인삶에 참여하기 위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자기 주위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원칙에 따라 행동하기 위해,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상황을 알기 위해,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자유로워지기 위해 필수적인데 말이다. 거짓말쟁이는 자신이 아는 것과 거짓말의 희생자가 아는 것 사이에 쐐기를 박는다. 거짓말에 넘어가는 사람 내지 사람들은 전적으로 믿을 수도, 혼란에빠질 수도, 의심할 수도 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이 기만당하고있음을 알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기만의 본질이나 그것이은폐하려 하는 바에 대해서는 알 수도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권위주의자들은 종종 사람들로 하여금 뻔히 거짓말인 줄 아는 것에동조하게끔 종용하며, 또 다른 이들을 기만할 수도 있을 마지못한 공모자들로 만든다. 아는 것은 힘이니, 앎의 공평한 분배는 다른 여러 형태의 평등과 불가분이다. 사실을 알 공평한 권리가 없이는 의사결정에서 공평한 능력을 가질 수 없다. - P296

내 저작 중 상당 부분은 목소리의 불평등에, 즉 성과 젠더에 관한폭력이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일부 음성들을 침묵시킴으로써 자행되어왔던가에 관심을 촉구해왔다. 침묵을 강제하기위해 흔히 위협과 폭력이 동원되었을 뿐 아니라 체계적인 저평가도 행해져왔으니, 그런 음성들은 신뢰할 수 없고, 말할 자격도 귀담아 들을 가치도 없으며, 우리의 삶이 어떤 종류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져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장소들에는 들어올 가치조차없는 것으로 묘사되어왔다.
한 사회에서 일부 음성들을 평가 절하하는 것은 실제로용인되고 장려되는 어떤 것을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듯이 취급함으로써 사회가 그것에 공식적으로 반대할 수 있게 만든다.  - P297

오웰의 가장 의미심장한 맹점 중 하나는 젠더에 관해, 결혼과 가정이어떻게 권위주의 체제의 축소판이 될 수 있는지, 진실을 탄압하고 강자를 보호하는 거짓을 선포하기에 이르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런 관행은 일터와 학교(그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권위주의에 대해서는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에서, 공적 생활에서, 그리고 사생활에서는법과 관습과 문화에 의해 강화되는 부분들에서 복제된다. 그는 그런 불평등을 드문 예를 제외하고는 전략적으로 망각했던 세대에속했다. 이후로 우리는 그런 불평등을 인식하기 위해 애써왔다.
적어도, 우리 중 일부는 그래왔다. 옛 질서와 그것이 포함하는 탄압 및 배척을 보존하기 위해 역시 힘써 투쟁해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 P297

그러나 기만은 행동뿐 아니라 신념에도 작용하므로 좀 더 미묘한 통제를 가져온다." "거짓말은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거짓말쟁이에게 일종의 방패가 되며, 허위를 유포함으로써 검이 된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믿는지 안 믿는지도 중요하지만, 권력을 가진 이들이 휘두르는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은 그 자체로 파괴력을 갖는다. 강자들의 거짓말 속에서 살도록 강요되다 보면 서사에 대한 자신의 힘을 결여한 채 살게 되며, 종국에 가서는일체의 것에 대한 힘을 상실하게 된다. 권위주의자들은 진실과사실과 역사를 무찔러야 할 경쟁 체제로 본다. - P299

오웰의 작가로서의 삶은 위선과 회피에 대한 통상적인혐오와 함께 시작되었다. 스페인전쟁은 이를 첨예화하여 정치적 삶에서 거짓이 갖는 위력에 초점을 맞추게 했고, 이런 경향은1940년대의 에세이들과 동물농장」, 그리고 아마도 제도적 기만에 관한 20세기의 가장 의미심장한 책일 1984에서 점차 강해진다. 스페인전쟁에서 프로파간다의 세례를 받은 것이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서, 적으로 추정되는 편뿐 아니라 자기편 안에서도부패를 알아보는 눈을 키워주었다.
그의 편이란 이른바 자유 세계 내의 좌익이요 인텔리겐치아였는데, 당시 그들은 스탈린의 소련이라는 극단적인 거짓말로이루어진 독재와 전 세계의 전초 기지들 및 지지자들을 묵인하고 있었다.  - P299

결국 전체주의하에서는 거짓말로 이루어진 체제가 그 치하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 및 언어에서 진실과 정확성을 찾기를 포기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정신 상태를 파탄에 이르게 한다. 때로 이것은 지적 굴복, 믿기 편리한 모든 것을 기꺼이 믿으려는 주눅 든 순응성, 때로는 냉소주의, 아무것도 믿지 않으려는 태도, 모든 것이 다 똑같이 썩었다는 단언등의 형태를 취한다. 한나 아렌트의 다음과 같은 말이 유명하다.
"전체주의 지배의 이상적인 신민은 확신에 찬 나치나 확신에 찬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 사이의 구분(즉 경험의 현실성),
진실과 허위 사이의 구분(즉 사유의 기준)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사람들이다." 그 구분을 찾아내어 기록하는 것이 오웰의 주된 과업중 하나였으니, 아렌트의 말을 뒤집어 전체주의의 강력한 적은 사실과 허구 사이, 진실과 허위 사이의 구분에 열정적이고 분 - P301

명한 자, 자신의 경험의 현실성과 그것을 증언하는 능력 위에 서있는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렌트와 오웰은 각기 전체주의의 기원』과 1984에서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아렌트는 1951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전체주의가 낳는 외로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기 생각의파트너인 자신에 대한 신뢰와 도대체 경험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필요한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잃어버린다. 자아와 세계,
생각과 경험의 능력이 동시에 상실되었다." 오웰은 1946년의 문학 예방」이라는 에세이에서 거짓말이란 "전체주의에 필수적인요소이며, 강제노동수용소와 비밀경찰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해도 여전히 존속할 무엇"이라고 쓴다. "전체주의적 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진실과 사실과 역사에 대한 권력도 갖는 것이며 꿈과 생각과 감정을 무시하고 그것들에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 P302

그는 계속 말한다. "전체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역사란 배우기보다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란 사실상 신정 국가이며, 그 지배계급은 자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결코 실수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야만 한다. 이런저런 실수를 없었던 것으로, 이런저런 허구적인 승리를 실제로 일어났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심심찮게 과거 사건들을 새로 짜 맞출 필요가 생긴다.. 전체주의는 사실상 과거를 계속 변조할 것을, 결국에 가서는 객관적 진
실의 존재 자체를 믿지 말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전체주의는 거짓말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 P302

언어의 문제요 스토리텔링의 문제이며, 따라서 어느 정도 언어를가지고 싸워야 한다. 즉 체제가 조작할 수 없는 역사의 언어, 현상황을 폭로하는 독립된 언론, 진술의 근거를 요구하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개념과 원리를 발견하고 세상을 비판적으로 보게 하는 사상의 언어, 언어로써 만든계약에 대한 존중 등으로 말이다. 관계들을 떠받치고 외로움을몰아내는 사랑과 우정의 언어로, 경험의 미세한 음영과 뜻밖의배열을 포착하는 시의 언어로 말이다. 이 모든 것은 그것들을안전하게 행할 자유와 그런 일들이 위험할 때에도 감행할 용기를요구한다. - P303

오웰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러나 전체주의로 타락하기 위해 꼭 전체주의 국가에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생각들이 우세한 것만으로도 일종의 독이 퍼져, 문학적 목적으로 쓸수 없는 주제들이 차례로 생겨난다. 강요된 정설때로는 두 가지 정설이 있는 곳에서는 좋은 글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한다."5좋은 글은 자유, 특히 진실을 말할 자유에서 나온다. 최선의 상태에서 말은 사물을 드러내며 선명히 보여준다. 최악의 상태에서는그 반대가 된다. 오웰은 1946년의 또 다른 에세이 정치와 영어」에서 그 문제를 다루어 이렇게 쓴다. "과장된 문체는 그 자체로일종의 완곡어법이다. 다량의 라틴어 단어들은 사실 위에 부드러운 눈처럼 내려 윤곽을 희미하게 하고 세부들을 덮어버린다." - P303

「정치와 영어」는 너무 헐겁고, 엉성하고, 막연하고, 우회적이고, 회피적인 언어를 비판한다. 1984는 너무 옥죄는, 어휘도 함의도 너무 제한적인 언어, 어떤 단어들은 말살되고 또 어떤단어들에서는 풍부한 환기적 의미들이 소거된 언어를 묘사한다.
그 중간 어디쯤에, 명료하지만 환기력이 풍부한 언어의 가능성이있다. 그 언어 안에서 말하고 글 쓰는 이의 모색은 듣거나 읽는 이의 모색을 촉구할 것이며, 언어에는 다소 야생적인 무엇이 있어서그 야생적인 것과 자유로운 것이 겹쳐질 것이다. 그 전일성, 그 준수된 계약들, 연결하고 힘을 주고 해방하고 조명하는 말들의 사용을 통해 온전케 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나 그 자신의 작가로서의 노력에서나 그가 가장 신봉하고 또 가장 경하했던 아름다움이다. - P306

그런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흔히 시사하는 시각적 미려함과 반드시 비슷할 필요가 없다. 1946년 에세이 나는왜 쓰는가는 그런 문제 전반을 다룬 글이다. 글을 쓰는 몇 가지동기 중 하나로 그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았다. "외부 세계의 - P306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그에 상응하는 단어들과 그 적절한 배열12이 갖는 아름다움에 대한 지각.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미치는영향이나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과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발견하는 즐거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놓쳐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욕구." 그도 젊었을 때는 "결말이 불행하고, 자세한 묘사와 매혹적인 비유로 가득한, 그리고 어느 정도 소리를 위해 택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화려한 구절이 가득한, 거창한 자연주의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화려함에대한 애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면, 따분한책들을 쓰고 화려한 문구나 의미 없는 문장, 장식적인 형용사나허튼소리에 빠져 있었던 것은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있던 때였다." - P307

윤리적 목적이 심미적 수단을 첨예하게 한다는 점을 그는분명히 한다. 그를 무의미에서 구해낸 것은 정치였다. "평화로운시대였다면 나는 장식적이거나 그저 묘사적인 책들을 썼을지도,그리고 내 정치적 방향성에 대해서는 거의 의식하지 못했을지도모른다. 그런데 실제로는 일종의 시사 논설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사 논설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심미적 요구나 즐거움이 없는 일도 아니었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하게하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 P307

뒤이어 내 오랜 신조가 되어준 문장들이 나온다. "하지만나는 책을 쓰는 일도, 그저 좀 긴 잡지 기사를 쓰는 일도, 그것이또한 심미적인 경험이 아니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작품을 꼼꼼히 읽는 사람이라면, 노골적인 선전 글이라 해도 전업정치인의 눈에는 무관하게 보일 대목들이 많다는 걸 알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살아서 정신이 멀쩡한 한, 나는 줄곧 산문 형식에애착을 가질 것이고, 이 땅의 표면을 사랑할 것이며, 구체적인 대상들과 쓸데없는 정보 조각들에서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무관하게 보일 만한 것이란 일련의 즐거움들과 개인적인 열심들이다. 마치 ‘빵과 장미‘에서 장미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이란 많은 사물에 대한 폭넓고 길들여지지 않은 흥미, 특히 뒤이은 문장에 나오는 땅의 표면에 대한 사랑 같은 것일 터이다.) - P308

명징성, 정직성, 정확성, 진실성 등이 아름다운 것은 그런것들 가운데서 비로소 대상이 진실하게 재현될 수 있고, 앎이 민주화되고, 사람들이 힘을 얻고, 문들이 열리고, 정보가 자유롭게이동하고, 계약들이 준수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런 글은 그자체로 아름다우며, 그 글에서 흘러나오는 것에서도 아름답다.
오웰의 작품에는 더 인습적인 종류의 아름다움 버마의 숲에서영국의 초원에 이르는 자연 경관, 그 모든 꽃들과 두꺼비의 황금빛 눈알에 이르기까지도 있다. 하지만 윤리와 심미성이 별개가아닌 이 아름다움, 진실과 전일성의 언어적 아름다움이야말로그가 자신의 글쓰기에서 도달하고자 노력했던 핵심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런 아름다움은 언어와 그것이 묘사하는 것 사이, 한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 한 공동체나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종의 온전함이요 유대감으로 작용한다. - P309

1321936년, 한 젊은 작가가 장미를 심었다. 10년 후, 더 지치고더 현명해진 남자는 더 야심 찬 규모로 또 다른 정원 만들기에 착수했다. 잉글랜드 남부 웰링턴의 작은 정원과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있는 주라섬의 작은 농장으로 발전한 정원 사이 10년 동안, 그의 인생은 여러 차례 달라졌고 작가로서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그는 전쟁 기간 동안 많이 초췌해졌다.  - P313

BBC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존 모리스 John Morris는 그가
"샤르트르 대성당 전면의 인물상들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키가크고 여윈 그에게는 수척한 고딕적 분위기가 있었다. 그는 자주웃었지만, 가만있을 때 그의 주름진 얼굴에서는 돌에 새겨져 갖그에은 풍상을 겪은 중세 성인의 잿빛 금욕주의가 느껴졌다.
게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숱 많고 뻣센 머리칼과 특이한 눈빛이었다. 다정함과 열광이 뒤섞인 그 눈빛은 그가 보통 사람들보다더 많은 것을 보고 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실제로 그랬다)." 그가쌕쌕거리며 숨 쉬던 것, 그리고 조금만 힘들어도 지쳐버리던 것을회고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소진되어가고 있었다. 적어도, 그의육신은 그랬다. - P314

1946년의 오웰은 감탄할 만하다. 아일린의 죽음을 전후하여, 1943년 3월에는 이미 홀몸이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고,
1946년 5월에는 누나가 죽었다. 그 자신의 건강도 악화일로였고,
슬픔과 탈진에 빠져들 만도 했지만, 그는 오히려 많은 글을 썼고계획들을 잔뜩 갖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당시 붙인 제목으로 유럽의 마지막 인간The Last Man in Europe」이라는 야심만만한 소설을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브리튼의 섬들 중 가장 외진 헤브리디스 제도의 주라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1944년 여름에 잠깐 그 섬에 간 적이 있었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그는 "저널리즘에 깔려 죽을 것만 같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영웅 - P316

적인 속도로 에세이와 서평을 써냈고, 그해 겨울과 봄에는 때로일주일에 네 편을 쓰기도 했다.
그 무렵 쓴 글 중에 일상적인 안락함과 즐거움을 구가하는 몇 편의 에세이가 있다. 이것들은 1945년 말부터, 그가 저널리즘을 접고 장차 1984」라는 제목을 갖게 될 소설을 시작하기 위해 주라섬으로 이주한 1946년 5월 사이에 쓰인 글들이다. 이에세이들에 대해서는 실제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일에 치인 작가에게 그 가정적이고 목가적인 주제들은 그다지 자료를 읽거나 달리조사할 필요가 없는, 단순한 몽상이라고나 할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가볍게 취급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쓰게 될 묵직한 소설에도 그 가벼운 에세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 P317

오래전 내게 그토록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 패기 있는 에세이, 내가 웰링턴의 시골집을 찾아가 그곳에 피어 있는 장미를보고 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되었던 그 글은 홀아비가 된 한 남자가결혼해 살던 곳을 정리하고 그 시절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돌아갔던 여행의 결과물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최근에 나는 전에 살던 시골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흐뭇한 놀라움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 좋은 일을 했다는 느낌으로-내가 거의 10년 전에 심은 것이 어떻게 자랐는가를 보았다."
또 다른 편지에서 그는 그 방문이 예상했던 만큼 고통스럽지는않았다고 묵은 편지들을 발견했을 때 말고는썼다. 길을따라 거닐다가 "우리가 도롱뇽을 잡곤 하던, 폐기된 작은 저수지에 이르렀는데, 그곳에는 평소처럼 올챙이들이 생기고 있더군요."
또 한 문단 다음에서는, 주라섬에서의 삶을 기대하며 훨씬 더 웅장한 바다와 바다짐승을 묘사한다.  - P327

다시 시작한 가사 일기에는 런던과 누나 마조리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갔던 노팅엄에서, 거기서 내처 스페인내전 시절의 친구 집에 들렀던 에든버러 근처에서, 그리고 돌아온 주라섬에서본 꽃들이 묘사되어 있다. 5월 22일 그는 주라섬으로 돌아가는 길에 뉴캐슬 근처에 있는 아일린의 무덤을 돌아보러 갔었다. "E의무덤 위 폴리앤서 장미들은 뿌리를 잘 내렸다. 꽃다지, 패랭이꽃,
바위취, 일종의 양골담초, 돌나물, 석죽, 그런 것들을 심었다. 모종들의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비가 오고 있었으니 잘 살아날것이다." 그것은 오웰의 생애에서 가장 마음 아픈 장면 중 하나였을 것이다. 홀아비가 되어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곳에서, 흐리고 비 내리는 날, 젊은 아내의 무덤 앞에 쭈그리고서 땅을 파고 꽃을 심는 그의 모습이란. - P328

소설가이자 열정적인 나비수집가였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는 회고록 말하라 기억이여』에서 "보통 사람들에게는 나비가 얼마나 눈에 안 뜨이는지 놀라울 정도다"라면서, 산길을 내려오는 한 도보 여행자에게 나비를 보았느냐고물었던 때를 회고한다. "그는 ‘아니요‘라고, 조금 전 우리가 나비떼 속에서 즐거워하던 길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사람은 보려는것만 보는 법이다. 오웰의 시골집에서 장미를 본 후 그의 다른 작품들을 뒤지다가, 나는 이미 여러 번 읽은 소설로 되돌아갔다.
뜻깊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옛 친구를 다시 방문하는 것과도 같다.  - P335

자신이 그렇게 달라졌기 때문에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 다시만나보면, 어떤 책들은 더 자라고 어떤 책들은 시들어버린다. 묻는 질문이 달라지기 때문에 돌아오는 대답도 달라지는 것이다. 이번에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1984」에 얼마나 많은 싱싱함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들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들은위험에 처해 있고 스치듯 덧없고 오염되어 있지만 그래도 엄연히존재한다. 1984』는 주로 빅브라더, 사상경찰, 메모리 홀, 뉴스피크, 고문 등등 극도의 전체주의적 양상들로 기억되는 소설이다.
실제로 책이 나왔을 때 책에서 가장 새롭고 놀라운 점도 그런 것들이었고, 그런 것들은 오웰과 그의 주인공이 중요하게 여기는에 대한 위협으로 제시되었다. - P336

마거릿 애트우드 Margaret Atwood는 1984가 왜 흔히 생각하는 것 같은 디스토피아가 아닌가에 대해 또 다르게 설명한다.
2003년 《가디언》에 실은 글에서 그녀는 "오웰은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라는 비난을 들어왔다. 개인은 가망이 없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당의 잔혹하고 전체주의적인 장화가 인간의 얼굴을 영원히짓밟는 미래를 그려 보였다는 것이다"라면서, 책의 마지막 부분,
즉 부록으로 실린 뉴스피크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삼아 - P344

16긍정적인 독해를 제시한다. "뉴스피크에 관한 에세이는 표준 영어로, 3인칭 과거시제로 쓰였다. 이는 체제가 무너졌고, 그 언어와인간의 독자성이 살아남았음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뉴스피크에관한 에세이를 누가 썼든 간에 1984의 세계는 끝난 것이다. 그러므로 오웰은 흔히 평가되는 것보다 훨씬 더 인간 정신의 회복탄력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 시녀 이야기 (1985)의 학술적인 말투의 후기에서도 이런 장치를 차용하여 그 세계의 체제 역시 붕괴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공포는 영원하지 않아도 된다. 소련은 1991년에 붕괴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수천만 명의 죽음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파괴를 초래했고, 그 잔혹함의 일부는 현재의 러시아 정부에도 존속하고 있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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