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소리에 대꾸하지 마라. 너도 같은 사람이 되리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래야 지혜로운 체하지 못한다.
소리엔 같은 말로 대꾸해 주어라. 
잠언 26:4-5

의용군에 입대하기 전날이었다. 나는 바르셀로나의 레닌 병영에서 장교 탁자 앞에 서 있는 한 이탈리아인 의용병과 마주쳤다.
스물대여섯 살의 강인해 보이는 젊은이였다. 금발은 붉은색이 감돌았고 어깨는 단단했다. 챙이 있는 가죽모자를 밑으로 세게 잡아당겨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나와는 직각 방향으로서 있었는데, 고개를 숙인 채 찌푸린 얼굴로 어떤 장교가 탁자에 펼쳐놓은 지도를 곤혹스러운 듯 살피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풍기는 어떤 분위기가 나를 강하게 끌었다. 친구를 위해서라면살인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자기 목숨을 내던질 사람의 얼굴이었다. ㅡ무정부주의자에게서 기대해볼 만한 얼굴. 물론 그는 - P9

공산주의자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 얼굴에는 정직함과 잔인함이 공존했다. 그에게는 무식한 사람들이 자기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가지는 감상적인 존경심도 있었다. 그는지도에서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강인지도 가릴 줄 모를 터였다.
지도를 읽으려면 엄청난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고 여길 터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보자마자 이토록 마음이 끌리는 사람―정확히 말하자면, 남자―을 거의 만난 적이 없다. - P10

밖으로 나가는데 그가 가로질러 오더니 내 손을 아주 강하게움켜쥐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낄 수도 있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이 언어와 관습의 간극을뛰어넘어 순간적으로 완전히 밀착된 것 같았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그도 나를 좋아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동시에 그에 대한 첫인상을 유지하려면 두번 다시 그를 만나서는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나는 그를 다시 보지 않았다. 스페인에서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만나고 헤어질 수 있었다.
이 이탈리아인 의용병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가 내 기억에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남루한 군복과 사나우면서도 애처로워 보이는 얼굴은 당시의 특별한 분위기를 상징하는것 같다. 그는 그 전쟁과 관련한 내 모든 기억과 얽혀 있다. 바 - P10

르셀로나의 적기(赤旗), 초라해 보이는 병사들을 가득 태우고전선으로 기어가던 가늘고 긴 기차, 전선 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나오는 전쟁에 찌든 잿빛 소도시, 질퍽질퍽하면서도 얼음속처럼 추운 산속 참호.
1936년 12월 말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으로부터 불과일곱 달 전이다. 그럼에도 이미 엄청난 거리 밖으로 멀어져버린시기이다. 뒤에 일어난 사건들이 그 시기를 지워버렸다. 1935년이나 1905년을 지운 것보다 훨씬 더 완벽하게 지워버렸다. 나는신문 기사를 쓸까 하는 생각으로 스페인에 갔다. 하지만 가자마자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 시기, 그 분위기에서는 그것이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도 카탈로니아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혁명은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중이었다.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12월이나 1월에 들어서면서 이미 혁명기가 끝나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막 건너온 사람에게는 바르셀로나의 상황이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 P11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나로서는 노동 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에 들어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좀 크다 싶은 건물은 거의예외 없이 노동자들이 장악했다. 건물마다 빨간색 깃발이나, 검은색과 빨간색이 섞인 무정부주의자들의 깃발이 드리워져 있었다. 담벼락마다 소련 국기나 혁명 정당들의 머리글자를 휘갈겨놓았다. 교회는 내부가 거의 다 박살났고, 성상들은 불에 탔다.
노동자 무리들은 여기저기서 조직적으로 교회를 철거했다. 상점과 카페마다 집산화(集産化)되었다는 글이 붙어 있었다. 심지어 상자 같은 구두닦이들의 점포조차 집산화되어,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 P11

자가용은 없었다. 모두 징발되었다. 모든 전차와 택시, 그리고 다른교통 수단도 대부분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칠해 놓았다. 도처에혁명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선명한 포스터들은 벽에서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몇 개 남지 않은 다른광고물들은 서툴고 하찮게 보였다. 도시의 대동맥이라 할 수 있는 람블라스 거리는 언제나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곳이었다. 그거리를 따라 낮 동안은 물론이고 밤늦게까지 확성기에서 혁명가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가장 신기한 것은 군중의 모습이었다. 겉으로 볼 때 그 도시는 부유한 계급이 실질적으로 사라진곳이었다. 소수의 여자와 외국인들을 제외하면 <옷을 차려입은>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거의 모두가 노동 계급의 거칠거칠한 옷을 입었다. 또는 파란 작업복을 입거나, 의용군 군복을 약간 고쳐서 입었다. 이 모든 것이 신기했고, 또 감동적이었다. - P12

이 모든 것과 더불어 전쟁 특유의 흉흉한 분위기도 얼마간느껴졌다. 도시는 을씨년스럽고 깔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도로와 건물은 보수가 안 돼 있었다. 공습을 염려하여 밤거리의가로등은 침침했다. 상점들은 대부분 초라하고 진열대의 반은비었다. 고기는 귀했다. 우유는 거의 구할 수 없었다. 석탄,설탕, 석유는 부족했다. 그 가운데도 빵 부족은 정말 심각했다.
이 시기에도 빵을 구하려는 줄은 종종 수백 미터씩 늘어서곤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사람들은 만족해했고 희망이 넘쳤다. 실업은 없었다. 생활비는 여전히 매우 낮았다. 눈에 띄게 해보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집시를 제외하면 거지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혁명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갑자기평등과 자유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있었다. 인간은 자본주의 기계의 톱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 P13

우리를 보러 나온 우호적인 군중이거리를 가득 메웠다. 여자들은 창문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때는그 모든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워 보였는지! 그런데 지금은 왜그것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고, 비현실적인 일로 느껴지는지!
기차에는 병사들이 꽉꽉 들어차, 좌석은커녕 바닥에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 기차가 떠나기 직전 윌리엄스의 부인이 플랫폼으로 달려오더니 포도주 한 병과 어른 팔뚝만한 붉은색 소시지를주었다. 설사를 일으키곤 하는, 비누 냄새가 나는 소시지였다.
기차는 전시의 평상 속도인 시속 20킬로미터 이하로 카탈로니아를 천천히 빠져나가더니, 이윽고 아라곤 고원 지대로 다가갔다. - P24

바르바스트로는 전선에서 먼 곳이었다. 그런데도 박살이 난듯 황량해 보였다. 허름한 제복을 입은 의용병 무리는 추위를이기려고 거리를 따라 어슬렁거렸다. 거의 무너져내린 벽에는지난해에 붙은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몇 월 며칠에 투우장에서<멋진 황소 여섯 마리>를 죽일 것이라는 광고였다. 포스터의 바랜 빛깔이 어찌나 처량해 보이던지! 그 멋진 황소들과 멋진 투우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 즈음에는 바르셀로나에서조차 투우 경기가 거의 열리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훌륭한 투우사들은 전부 파시스트들이었다.
우리 소대는 화물차를 타고 시에타모로 갔다. 우리는 그곳에서 서쪽 알쿠비에레로 갈 예정이었다. 알쿠비에레는 사라고사를 마주 보는 전선 바로 뒤쪽에 있는 도시였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무려 세 번의 전투 끝에 10월에 시에타모를 점령했다.  - P25

이틀이 지났는데도 소총은 지급되지 않았다. 코미테 데 게라에 가서 벽에 뚫린 구멍들을 살펴보았다면, 알쿠비에레의 전모를 다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구멍들은 소총 일제사격때 뚫린 것으로, 파시스트들이 처형된 흔적이다. 전선은 매우 고요했다. 부상자들이 이송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가장 흥분되는일은 파시스트 탈주병이 건너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감시를 받으며 전선으로부터 알쿠비에레로 후송되었다. 이쪽 전선 건너편에 있는 병사들 가운데 다수는 파시스트가 아니었다. 그들은전쟁이 발발했을 때 때마침 병역을 때우고 있던 불쌍한 징집병들이었다. 따라서 어서 도망 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이따금씩 그들 가운데 몇 명이 무리를 지어 우리 쪽으로 건너오는모험을 감행했다. 만일 파시스트 지역에 사는 가족만 없었다면더 많은 병사들이 우리 쪽으로 넘어왔을 것이다. 이 탈주병들이내가 처음으로 본 <진짜> 파시스트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우리와 별다를 것이 없다는 데 놀랐다. 카키색 바지를 입었다는 것만 달랐다.  - P27

5월에는 잠시 상사 대리로서른 명 정도를 지휘해 보았다. 영국 사람도 있었고, 스페인 사람도 있었다. 우리 모두 몇 달 동안 포화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나는 명령을 따르게 하거나, 위험한 일의 자원자를 얻는 데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혁명적〉 규율은 정치적 의식에달려 있다. 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정치적 의식을 확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연병장에서 사람을 자동인형으로 조련하는 데도 시간이걸리기는 마찬가지다. 의용군 체제를 비웃는 기자들은 인민군이 후방에서 훈련을 하는 동안 의용군은 전선을 지탱해야 했다.
는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 의용군이 전장에 그대
‘로 남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혁명적> 규율의 힘 덕분이다. - P42

처음 한동안 나는 무질서한 상황, 전반적인 훈련 부족, 명령 하나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때때로 5분 동안 논쟁을벌여야 했던 일 등 때문에 경악했고 또 격분했다. 영국군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스페인 의용군은 영국군과는달랐다. 그러나 상황을 고려할 때, 그들은 예상보다 뛰어난 군대였다.
한편, 땔감 늘 땔감이 문제였다. 그 기간 동안 내 일기장에서 땔감이 언급되지 않았던 적은 단 한번도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땔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언급했다고 해야겠다.
우리는 해발 6백 미터에서 9백 미터 사이에 있었다. 한겨울이었다. 추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기온이 그렇게 낫지는 않았다. 얼음이 얼지 않은 밤도 많았다. 낮이면 겨울 해가한 시간 정도 비추어주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그리 춥지는않았으나, 꼭 그렇게 추운 것 같았다. 때때로 사나운 바람이 불어와 모자가 벗겨지고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 P43

우리는 특별한 생활을 했다. 그것을 전쟁이라 부를 수 있다면, 전쟁을 하는 특별한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의용병들모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화가 나 있었다. 왜 공격을 허락해주지 않는지 알고 싶어 늘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적이 먼저 도발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오랫동안 전투가 벌어지지 않을 것은 매우 분명했다. 조르쥐 콥은 정기적인 검열 때면 우리에게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오」 그는말하곤 했다. 이따금씩 사람이 죽어나가는 희가극이오 사실아라곤 전선의 교착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나는 당시에는그것을 몰랐다. 그러나 순수하게 군사적인 어려움―지원병부족은 별도로 하고라도 역시 누구의 눈에나 분명해 보였다.
우선 그 지역의 자연이 문제였다. 우리의 전선과 파시스트의전선 모두 천혜의 요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보통 한쪽으로만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고지는 참호만 몇 군데 파놓으면, 압도적 숫자가 아닌 한 보병만으로는 점령할 수 없다.  - P47

간헐적으로 소총소리가 땅땅 메아리쳤다. 이괴상한 전쟁에 조금이라도 생기를, 아니 죽음의 기운을 불어넣어 줄 만한 일이 과연 일어날까 궁금해졌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해 점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인간이아니라 폐렴이었다. 참호들이 서로 5백 미터 이상 떨어져 있을때는 우연이 아니고서야 총알에 맞지 않는다. 물론 부상자는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스스로 입은 부상이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내가 처음으로 스페인에서 본 다섯 명의 부상자는 모두 자기 무기에 부상을 당했다. 그렇다고 의도적이었다는 뜻은아니다. 사고나 부주의 때문이었다. 우리의 낡은 소총은 그 자체가 위험물이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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